창작 글

휴학

 첫 연애를 그렇게 망친 후 나는 줄곧 학교를 떠나고 싶었다. 가족들은 계획 없이 무작정 도피하는 것에 반대했다.
 "취업시장에서 여자는 나이가 특히 중요하니 최대한 빨리 졸업하고 취업을 하는게 좋지 않겠니."
 맞는 말이었다. 그래도 정 휴학을 하고 싶다면 방법을 찾아야 했다. 상세한 계획서를 작성하여 설득하거나 가족 몰래 저지르든가. 나는 불사를 열정도 배짱도 없었다. 그 누구도 강요하지 않고 내 선택으로 학교에 다니면서도 늘 남탓을 하고 불만족스러웠다.
 어쨌든 기회는 2학년 2학기가 지날 때쯤에 왔다. 지병이 악화되어 기말고사 1주일 전에 침대 신세를 지고 3과목에 낙제를 받은 것이다. 3학년이 되지 못하고 유급으로 마무리한 후에 나는 정말로 지쳤다고 쉬고 싶다고 호소하며 펑펑 울었다. 부모님께서는 하는 수 없이 승낙을 했다. 단, 한 학기 동안만.
 경직된 사고로는 6개월이라는 제한이 걸리자 자유롭게 구상을 할 수가 없었다. 아르바이트 조차도 구하기가 난감했다. 야간 근무나 너무 시간이 길거나 힘든 일은 하기 싫었다. 택배 상하차 같은 것을 제외하고는 6개월 이하로 잠깐 일하고 말 사람을 구하는 자리가 없는 것만 같았다.
 [xx병원 응급실 사무보조: 월~토 새벽 6시~오후 12시 (6시간) 근무, 최저시급]
 몇 주 동안 알바 구인광고 사이트를 뒤적거려도 적당한 자리를 찾지 못하다가 드디어 한 군데가 눈에 띄었다. xx역이면 지하철 타고도 35분 정도라서 거리가 조금 멀기는 했지만 근무 시간이 마음에 들었다. 이력서를 제출하자 며칠 후 몇시에 어디로 와서 면접을 보라는 문자가 왔다.
 '붙으면 좋겠다.'
 그 뒤로도 다른 알바 몇 군데에 이력서를 넣으면서 시간을 보냈다. 며칠 후 긴장을 하며 병원에 들어서자 높은 직책인 것 같은 나이든 간호사와 젊은 간호사가 들어왔다. 나는 바짝 얼어붙어서 의자에 앉았다.
 "휴학은 왜 했어요?"
 "별 이유 없이 했어요."
 "뭐 시험 준비 같은거 안 해요? 왜 알바 해요?"
 "그냥.. 학기 중에 입원도 했고 공부하기 지쳐서 쉬고 싶어서 했어요. 준비하는 시험은 딱히 없고 세상 경험하고 싶어서 했어요."
 "구체적인 계획도 없는데 부모님이 그걸 허락하셨어요?"
 "네. 니 알아서 하라고 하시던데요."
 "내놓은 자식인가 보네요."
 순간 어버버하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말문이 막혀서 도무지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었다. 심장이 쿵쿵거리고 얼굴이 화끈거려서 모든 것이 아득해지는 것 같았다. 면접은 그렇게 떨어졌다.
 며칠 동안 내상을 입고 시무룩해있다가 곧 다른 곳에서 연락이 와서 일을 하기 시작했다. 유원지 내에 있는 민속촌에서 한복을 입고 서빙 업무를 하는 것이었다. 내 또래 대학생들이 많았고 매일매일 부대끼면서 친해져서 같은 타임 알바들끼리는 종종 술자리 갖거나 함께 놀러가고는 했다.
 복학할 때가 되어 그만두기로 했을 때 나와 함께 그만두는 다른 사람들도 있어서 송별회가 열렸다. 아직 주량을 몰라서 늘 적당히 마시고 말았지만 그날은 분위기에 휩쓸려서 옆에서 따라주는 잔들을 다 마셨다.
 "와, 연희 술버릇이 병나발 부는 거였네."
 누군가 말을 하자 흔들리는 세상 밖에서 왁자지껄 웃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히죽히죽 웃으면서 양 손에 과일 소주를 들었다. 일하면서 친해진 여자애가 걱정을 하며 술을 가져가려 했지만 온 몸으로 병을 사수해서 결국 그만두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어디인지 모를 모텔에 혼자 누워있었다. 속옷까지 모두 벗고 있었다. 나는 정신없이 도망쳐 집으로 왔다. 이가 딱딱 부딪히도록 덜덜 떨면서 온 몸을 벅벅 씻었다. 기력이 없어서 며칠 동안 물도 마시지 못하고 침대에 누워있기만 했다. 겨우 정신이 들어서 점장에게 연락을 했다.
 '안녕하세요 점장님. 지난번 회식 때 제가 필름이 끊겨서 그런데 혹시 실수한 건 없었나요? 그리고 헤어질 때 저 누구랑 같이 돌아갔는지 기억하세요?'
 초조하게 답장을 기다리는 동안 그제서야 허기가 느껴졌다. 일단 뭐부터 먹자. 며칠 안 감아서 떡진 머리로 쓰레빠를 찍찍 끌고 나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국밥집에 들어갔다. 뜨끈한 국에 말아서 입안 가득 밥을 쑤셔넣었다. 삼키기도 전에 한 숟갈, 한 숟갈, 또 한 숟갈. 볼이 빵빵해질수록 시야가 흐려졌다. 눈물이 똑똑 떨어졌다. 주인 아줌마가 아이고 학생, 밥 먹다 말고 갑자기 왜 우냐고 휴지를 갖다 주었다. 나는 결국 소리내서 엉엉 울었다.
 밥을 다 먹고 돌와오는 길에 메신저를 켜니 점장에게 답장이 와 있었다. 그날 자리가 파하고 같은 방향 지하철을 타는 몇번 같이 일했던 오빠가 나를 데려다주겠다고 부축해서 헤어졌다는 내용이었다. 가슴이 너무 두근거려서 집까지 가는 길에 쓰러질 것만 같았다. 메신저에 글자를 썼다가 지우기를 반복하다가 밤 늦게야 덜덜 떨리는 손으로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날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에요..?
 "집에 데려다주려고 가는 길에 너가 나한테 관계하고 싶다고 해서 모텔로 갔어. 그게 다야."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경악에 차서 아무말도 할 수가 없었다. 통화를 어떤 정신으로 마치고 끊었는지 모르겠다. 세상이 빙글빙글 도는 것 같았다.
 도대체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경찰에 신고할 생각은 하지 못했다. 친하게 지냈던 몇몇 사람들과 점장에게 조심스럽게 상의하자 사람들은 내게 그게 왜 강간이냐고 물었다. 애초에 너가 꽐라가 되지 말았어야지. 상현이 말대로 너가 하고 싶다고 한거일 수도 있잖아.
 그 일이 있은 후로 한동안 나는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내가 겪는 모든 정신적인 문제가 범죄 피해를 입었기 때문인 것 같았다.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과거가 재생되었다. 당시에는 신고하거나 고소를 진행할 생각을 하지 못했지만 몸에 작게 나마 못 보던 상처도 남아있었고 내 카드로 결제된 기록을 확인하면 깨어난 모텔을 찾아서 CCTV 영상을 확보할 수도 있었는데. 하다못해 가족에게 상의하기만 했었어도.

 

 

 

=후기=

 20.07.10.

미완인데 잘 안 써져서 일단 올려봄.

1화는 여기: https://www.dogdrip.net/2651558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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