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고레에다 히로카츠 감독 영화다. 썩 취향에 맞는 감독은 아니지만 그래도 기억에 남을 만한 영화가 있는 감독이라 이따금씩 그 이름값에 끌려서 영화를 보곤 한다. 이번 작품은 그닥 와닿지 않는 영화중 하나였다. 어떤 이야기를 하고싶은 건지는 알겠는데 공감이 간다거나 혹은 주제에 있어서 깊은 감명을 받지는 못했다.

영화는 빈부를 비롯한 육아 조건, 환경이 차이나는 A부부와 B부부끼리 아이가 서로 뒤바뀌었고, 그걸 6년 후에 알아차렸다는, 쉽게 말하면 낳은 정과 키운 정을 고찰하는 이야기를 골자로 한다. 감독이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감동적인 내용이 될 수도 있고 자극적인 내용이 될 수도 있는 주제인데, 고레에다는 둘 다 아니었다. 슴슴하고 조용하게 낳은 정과 키운 정 사이에서 고민하는 한 아버지의 변화를 고찰해가는 방식으로 영화를 이끌어 간다. 본인이 해오던 방식이자 잘하는 방식을 채택한 건데, 영화 주제와 궁합이 잘 맞지 않는다는 느낌이 있다.

제목에서도 비춰지지만 이 영화의 주인공은 아버지고, 남자가 아버지로 성장하는 과정을 다룬다. 철저하게 주인공에게만 포커스를 맞춰서 영화 내부적으로 아버지가 갈등하는 것에 초점을 잡아놓고 그 외 인물들이 겪는 감정적 갈등은 그닥 중요하게 다루지 않는다. 영화 속에서도 스쳐지나가듯 나오지만 이런 일이 발생하면 무엇보다 가장 가슴 아프고 죄책감이 드는 건 엄마다. 자신이 낳은 아이가 바뀐 것도 알아채지 못했다는 무력감과 죄책감을 겪을 엄마. 또한 무엇보다 6년동안 살던 집을 떠나 하루아침에 이유도 모르고 부모가 바뀌어야 하는 아이들의 감정과 갈등은 사실 아버지(특히 이 영화 속에서 나오는 것처럼 차갑고 무뚝뚝한 아버지인 경우는 더욱)가 겪을 감정에 비해 결코 중요도가 낮다고 말할 수 없는 것들이다. 그래서인지 오직 아버지의 입장만 줄곧 다루다 보면 어느샌가 엄마와 아이는 감정의 골을 어느정도 벗어나있고 스스로 극복해낸 상태로 나오는 형식의 연출은 보다보면 어딘가 모르게 어색하고 이질적인 느낌까지 들 정도다. 가족간 일어난 사건을 통해 한 남자가 아버지가 돼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데 있어 굳이 엄마와 아이라는 또다른 당사자의 내면을 외면할 필요까지야 있었는가 싶은 아쉬움이 남는다.

다만 영화가 과하게 감정적으로 쏠려 자칫 여운을 남기지 못하고 영화가 끝나고 단지 '슬펐다, 감동적이었다'로만 메세지가 소비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었다는 점에서는 괜찮은 작품이지 않았나 싶다.

인사이드 르윈

-기대했던 것보다는 재미있게 봤다. 캐리 멀리건은 어째 서프러제트를 제외하곤 나오는 영화마다 기본적으로 남자 관계가 복잡한 캐릭터만 맡은 것 같다. 코엔 형제 영화인데(사실 영화 다 보고나서 알았다) 코엔 형제 영화같다고 하면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다고 하면 아닌 것도 같고 그렇다. 그렇게 막 코엔 형제하면 생각나는 색깔이 진하게 묻은 영화는 아니다. 

영화는 후반부에서 갑자기 어이없는 일이 일어난다. 꽤 스포라서 뭐라 말하기가 애매하다. 이걸 말하지 않으면 후기라고 하면서 쓸 이야기는 그냥 Please Mr. Kennedy 가 좋다는 얘기 빼면 할 수 있는 말이 없다. 

스포 내용

마지막은 영화의 처음으로 돌아간다. 수미상관적 구조를 이루고 마치 도돌이표, 뫼비우스의 띠 모양처럼 보이지만 사실 몇가지 변한 점이 있다. 뭣보다 가장 큰 변화는 고양이가 탈출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영화의 처음부터를 A라고 치자면 A에서 벌어진 모든 일들은 율리시스라는 고양이가 탈출하면서 발생한다. 고양이를 맡기기 위해 진의 집에 갔다가 진이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되고, 그걸 계기로 자신의 여친이 낙태를 하지 않고 애를 낳아 기르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르윈이 자신의 아이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은 좀 중요한데, 르윈은 돌아갈 곳이 없는 사람이다. 실제로 머물 집이 없기도 하고 마음적으로도 돌아갈 곳이 없기도 하다. 그가 포기하지 않고 돈도 안되는 음악을 하는 이유도 굳이 음악을 관두고 안정적 수입의 필요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음악을 계속 붙잡고 있어야 하는 이유는 아버지처럼 되지 않기 위해서라는 명확한 이유가 존재하지만 음악을 관두고 안정적인 수입에 따라 일을 해야할 이유는 그렇지 않다. 오히려 아버지처럼 죽을 때까지 흥미도 없는 일을 하다가 늙어서는 송장처럼 앉아만 있는 끔찍한 미래가 너무도 싫기 때문에 굳이 음악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 그런데 자신에게 아이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르윈은 돌아가야 할 집이 생기고, 책임져야 할 가족이 생기고, 음악을 포기하고 안정적으로 수입을 벌어야하는 이유가 생긴다. 그래서 실제로도 A의 마지막 부분쯤 오면 음악을 관두고 배를 타려고 하기도 하고.

하지만 A가 끝나고 다시 A로 이어지는 것처럼 보이는 순간에는 고양이가 탈출하지 않는다. 고양이가 탈출하지 않는다는 건 같은 일상이 반복되는 게 아니라 어디까지나 이것은 IF 세계관이라는 의미가 된다. 홍상수 영화인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처럼. 고양이가 탈출하지 않았으므로 결과적으로 르윈은 자신의 아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모를 것이고, 계속 음악을 포기하지 않고 방랑하며 살 것이다. 어쩌면 계속 누군가에 빌어먹으며 살지언정 아버지처럼 살아있는 송장으로 연명하는 끔찍한 미래는 없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다. 무엇보다 낙태비를 마련하기 위해 Please Mr. Kennedy의 저작권을 포기하고 200달러를 받은 건데, 낙태비가 급하지 않으니 저작권 포기하지 않았을 수도 있고, 노래는 대박나서 정말 스타덤에 오르는 미래가 기다릴지도 모르는 일이다.

코엔 형제가 그간 영화 속에서 어필해왔던 이야기를 살펴볼 때 결국 이 모든 것의 시작은 고양이라는 것 같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존재가 나의 인생을 어디로 이끄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시네마 천국

-영화 좋아하는 사람들이 왜 유독 더 감명받는지 이유를 알겠다. 이 영화는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바치는 일종의 헌사같은 영화다.

동네 자그마한 영화관은 마을 사람들에게는 유일한 오락 시설이다. 새로운 영화가 상영되는 날에는 2시간, 3시간씩 줄을 서고, 영화를 보지 못하면 싸움까지 일어난다. 물론 영화관이 단순히 오락 시설로만 이용되는 것은 아니다. 영화를 보면서 아이에게 젖을 물리기도 하고, 남몰래 연인끼리 섹스를 하기도 하고, 야한 장면에는 자위를 하기도 하고, 서로 골탕먹이고 골탕먹는 마을 사람들의 추억이 깃든 장소다. 그리고 그런 장소에서 영화를 상영해 마을 사람들에게 재미를 선사하는 영사기사인 알프레도가 실명을 하게 되는 건 아이러니하면서도 아마 의도가 들어있는 감독의 선택이지 않나 싶다.

영화는 마치 인생을 어느정도 다 살아 본 사람이 느끼는 과거에 대한 복잡한 심경을 나타내고 있지만 정작 영화는 애매하게 살아 본 사람에게 더 큰 감동이 오지 않겠나 싶다. 과거에 대한 향수로부터 오는 감정과 더불어 그리운 과거가 더욱 멀어지기 전, 과거가 되기 전인 지금에만 느낄 수 있는 감정도 함께 오기 때문에.

영화는 사실 어떻게 말할 수가 없다. 영화를 보면 느껴지는 감동은 아마 사람마다 그 수위가 다를 게 명백하니까. 옛날로의 향수가 얼마나 강한 사람인지에 따라 얼마나 강한 감동이 밀려올지는 다를 걸로 보인다. 취향에 맞을지 안맞을지 고민하거나 안맞을 것 같다며 보기를 망설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내가 그랬으니까. 다 보고나서 정말 취향에 맞지 않았더라도 2시간 투자할 가치는 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