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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압) 캐나다 건국사

영국과 프랑스의 북미 식민지 다툼

 

● 뉴펀들랜드 : 중국 땅을 발견하다 (1497)

 

1492년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은

전 유럽을 뒤흔들어 놓았다.

 

"헐! 서쪽으로 가도 

인도에 도착할 수 있었어!"

 

"보라구! 이게 콜럼버스가 

인도에서 가지고 온 것들이라는데.."

 

▲ 콜럼버스가 가져왔던 작물들 : 호박, 고추, 토마토, 감자, 카카오, 강낭콩, 땅콩, 해바라기, 옥수수

 

"와! 대박!"

 

유럽 여기저기서

신대륙 항해 붐이 일어났고

 

탐험가와 항해가들은

백방으로 후원자들을 찾아 나섰다.

 

"하하. 저를 후원해주신다면

엄청난 식민지를 갖다 바치겠슴돠."

 

그중에는 이탈리아 태생의

캐벗(카보토 : 1450~1499)이라는 자도 있었는데

 

▲ 존 캐벗 (이탈리아명 : 카보토)

 

그 역시 유럽의 왕실을

찾아다니고 있었다.

 

 캐벗

"제가 신대륙을 갈까 하는데

후원 좀 부탁합니다."

 

 캐벗

"제가 원래 콜럼버스보다

항해 경험도 많고.."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매번 냉정했다.

 

 스페인

"돈 없어!"

 

 스페인

"우린 콜럼버스에게 

이미 투자하고 있거든!"

 

▲ 서인도 제도에 도착한 콜럼버스

 

 포르투갈

"우린 바스쿠 다가마에게

이미 투자하고 있다능!"

 

 포르투갈

"곧 인도 항로를 

개척하고 돌아올거얌."

 

▲ 인도에 도착한 바스쿠 다가마

 

때문에 

캐벗은 낙담했고

 

마지막으로 찾아간 곳이

유럽의 가난한 외딴 섬 '잉글랜드'였다.

 

 캐벗

"폐하, 섬나라 잉글랜드가 부강해지려면 

바다로 진출해 식민지를 개척해야만 합니다."

 

 캐벗

"부국강병을 하려면

지금 시기를 놓쳐서는 아니 되옵니다."

 

 캐벗

"지체하면 신대륙은

모두 다른 나라의 차지가 될 겁니다."

 

 헨리 7세

"음, 듣고 보니 일리 있네."

 

 캐벗

"그러니 저에게 

투자를 좀 해주십시오."

 

 캐벗

"그러면 신대륙의 엄청난 식민지를 

개척해 바치겠습니다."

 

 헨리 7세

"음.."

 

결국 캐벗은 

설득에 성공하게 되고 

 

1497년 영국 왕실의 후원을 받고 

항해에 나서게 되는데

 

영국을 떠난 지 52일 만에

신대륙에 도착하게 된다.

 

"육지다!"

 

 캐벗

"음, 중국이야!"

 

 캐벗

"콜럼버스가 남쪽으로 가서

인도에 닿았으니, 이곳은 중국이 분명해."

 

그렇게 생각했지만

실제로 캐벗이 내린 곳은

 

실은 캐나다 동쪽의 

뉴펀들랜드 섬이었다.

▲ 캐벗의 항해

 

어쨌거나 캐벗은

크게 들떠있었고

 

'새롭게 발견된' 땅이라는 뜻에서

'New found land'라고 명명하게 된다.

 

 캐벗

"뉴 펀들랜드!"

 

 

하지만 캐벗이 발견한 땅은

춥고 황량했기 때문에

 

 캐벗

"중국 땅은 생각보다 춥군."

 

영국인들은 그다지 매력을 못 느끼고

뉴펀들랜드 섬은 방치되고 만다.

 

사실 뉴펀들랜드를 최초로 발견한 유럽인은 

존 캐벗이 아니었다.

 

"읭?"

 

이보다 앞서 

스페인 바스크 지방의 어민들이

 

이곳을 '비밀 어장'으로 삼아

대구잡이와 고래잡이를 해오던 터였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했을 때보다

더 이른 시기였다는 주장도 있고.."

 

하지만 바스크 어민들은

이런 사실을 오랫동안 비밀로 했기 때문에

 

이 황금 어장은 100년도 훨씬 넘게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던 것이다.

▲ 인디언과 조우한 바스크 어부들

 

그러나 바스크 지방의 어민보다

무려 400년 먼저

 

뉴펀들랜드 섬에 들어왔던

유럽인들이 있었으니,

 

"읭?"

 

그들은 바로 그린란드의 

'바이킹'들이었다.

 

당시 바이킹들은 '목재'를 찾기 위해

캐나다 동부를 탐험하고 있었는데

 

그러던 중 뉴펀들랜드 섬에 도착하여

잠시나마 터를 잡고 살았던 것이다.

▲ 뉴펀들랜드 섬의 바이킹 유적지

 

하지만 현지의 인디언들은 

무척이나 사나웠기 때문에

 

바이킹들은 정착하지 못하고

곧 쫓겨나야만 했다.

 

 

 

● 퀘벡 : 무지무지 추운 동네 (1534)

 

콜럼버스의 항해 이래

스페인은 신이 났다.

 

1522년에 코르테스가

아즈텍을 멸망시키더니

 

1532년에 피사로가

잉카를 멸망시키면서

 

 

스페인은 신대륙의 광활한 땅을 

식민지로 삼을 수 있게 되었고

 

더불어 엄청난 황금과 은을 

독차지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 페루의 은광산

 

"와!"

 

그런 소식에

가장 배 아파하던 이는

 

유럽의 패권을 놓고 

스페인과 힘겨루기를 하던 프랑스였으니,

 

 프랑수아 1세

"아이고, 배 아파라."

 

 프랑수아 1세

"우리도 어서 신대륙 개척에

나서야 되겠어."

 

야심가였던 

프랑스의 왕 프랑수아 1세는

 

항해가 카르티에에게 칙령을 내려

신대륙 탐사를 명령하게 된다.

 

 프랑수아 1세

"30년 전 영국이 

뉴펀들랜드란 곳을 탐사했다가 버렸다고 하니.."

 

 프랑수아 1세

"그 일대를 더 찾아봐서

쓸만한 것들이 있는지를 함 알아보라능."

 

 카르티에

"넵, 알겠사옵니다."

 

그렇게 1534년, 카르티에는 

뉴펀들랜드 일대의 탐사를 시작하게 되었고

 

탐사 도중 세인트로렌스 강을 발견하게 되어

강을 따라 내륙 깊숙히 탐험하게 되는데

 

"우아! 강 한 번 엄청나게 넓네."

 

 

"세인트로렌스 강의 하구는

면적만 한국의 70% 크기라능."

 

강을 거슬러 올라가던 중

갑자기 좁아지는 곳에 도착하게 되어

 

 

현지의 인디언에게 

물어봤더니

 

 카르티에

"여기가 어디지?"

 

 인디언

"퀘벡(강이 좁아지는 곳)"

 

그리하여

그 일대가 퀘벡이 된다.

 

그리고 강을 더욱 거슬러 올라갔더니 한 마을이 보였고

여기서도 현지 인디언에게 물어봤더니

 

 카르티에

"여기는 어디임?"

 

 인디언

"카나타(마을)"

 

 카르티에

"뭐? 캐나다?"

 

그리하여

'캐나다'라는 이름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또 한참 강을 따라가다가 

섬을 하나 발견하게 되는데,

 

 

 카르티에

"섬 한복판에 솟아오른 산이 
참으로 멋지군. 왠지 기품있어."

 

 카르티에

"좋아, 이곳을 왕의 산,

Mont Real(Royal)이라고 불러주지."

 

그렇게 '몬트리올'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탐사를 마친 카르티에는 

퀘벡 일대에 정착지를 건설하게 되는데,

 

 카르티에

"강이 좁아지는 이곳이

정착지로 딱 좋겠어."

 

하지만 이게 웬걸!

겨울이 되니 툭하면 영하 40도.

 

"아놔, 엄청 춥다능."

 

도저히 버텨낼 수가 없었고

수십 명이 추위와 굶주림으로 목숨을 잃고

 

신대륙을 탐사한지 8년 만인 1542년 

다시 프랑스로 돌아가게 된다.

 

 카르티에

"정착 실패!

무지무지 추운 동네라능."

 

이후 캐나다는 

60년동안 유럽인들 기억 속에서 사라지게 된다.

 

 

● 아카디아(노바 스코시아)는 우리 땅! (1620)

 

16세기 후반 영국은

스페인이 너무도 부러웠다.

 

"아! 우리도 저런 식민지가 있었으면.."

 

하지만 맞짱을 뜨기에는

승산이 없었기에

 

영국 정부는

자국의 해적들이 스페인의 금은보화를 약탈하도록

 

물심양면으로 

해적들을 지원해줬으니,

 

 엘리자베스 여왕

"배도 만들어 주고, 무기도 내줄 테니

가서 도둑질만 잘 해오라능."

 

 존 호킨스 (해적 선장)

"알겠사옵니다."

 

그리하여 스페인의 상선들은

뻔질나게 영국 해적들에게 강탈당하게 되고

 

그러면서 

스페인의 재정은 악화되고

 

반대로 영국은 국력은

야금야금 향상되고 있었다.

 

그리고 1588년, 

급기야 영국은 

 

유럽 최강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격파하게 되었으니

 

그로 인해 스페인의 기세는 

크게 꺾이게 되고

 

이를 계기로 영국, 프랑스는

재빨리 아메리카 식민지 개척에 나서게 된다.

 

"하하하."

 

당시 영국은 '버지니아'와 '뉴잉글랜드'를

차례로 개척하였고

 

프랑스는 예전에 개척했던 

'퀘벡'을 다시 찾아갔는데

 

그런 과정에서 '아카디아'라는 땅도 

덤으로 개척하게 된다.

▲ 퀘벡(좌), 아카디아(우)의 깃발

 

▲ 17세기초 북미대륙의 판세

 

그런데 왜 프랑스인들은

혹한의 땅을 다시 찾았던 것일까?

 

"물론 춥지.

끔찍할 정도로 추워."

 

 

"하지만 이곳에서 

원주민과 모피 교역을 할 수 있음."

 

"지금 유럽에는 산짐승들이 거의 멸종해서

모피가 굉장히 귀한데.."

 

"이곳의 모피를 유럽에 내다 팔면

부르는 게 값이라고!"

 

 

때문에 일확천금을 노리고

프랑스인들은 다시 퀘벡을 찾았던 것이고,

 

소문을 듣고

하나둘씩 사람들이 모였으니,

 

1650년에 불과 200여 명이던 

누벨프랑스(북미의 프랑스 식민지 이름)의 인구는

 

1750년에는 1만 명으로 

늘어나게 된다.

▲ 누벨프랑스의 마을

 

"뭐 그래 봤자, 인구밀도가 

㎢당 0.01명도 안 됐지만.."

 

한편 영국은, '뉴잉글랜드'에서는

주로 농사와 목축업을,

 

'버지니아'에서는 흑인 노예들을 이용해

상품작물을 재배하기 시작했고

 

 

'뉴펀들랜드 섬'은

대구잡이 거점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던 중 1620년 경 

갑자기 영국은 아카디아 땅의 소유권을 주장하게 된다.

 

 영국

"생각해보니, 120년 전에 캐벗(카보토)이 

뉴펀들랜드 섬과 함께 이곳 해안을 발견했었다능."

 

 영국

"그러니 그 땅은 우리 것임."

 

그러면서 영국은 '아카디아' 대신에

노바 스코시아(Nova Scotia = New Scotland),

 

즉 '뉴 스코틀랜드'라는 

이름까지 붙이며 소유권을 주장하고 나섰다.

 

 

 영국

"노바 스코시아는 우리 땅임.

얼른 돌려줘!"

 

그동안 쳐다보지도 않았던 

아카디아 땅에

 

영국이 갑자기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는

▲ 아카디아

 

인근 연안에 엄청난 대구 어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에 프랑스 역시 이곳에서 

원주민과 모피 무역으로 짭짤한 재미를 보고 있었으니,

 

아카디아(노바 스코시아)는 

서로가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땅이 되어버렸고,

 

이후 140년 동안, 

이곳을 두고 영토 분쟁이 끊이지 않게 된다.

 

 영국

"여긴 우리 땅이야!

120년 전에 발견한 땅이라고!"

 

 프랑스

"어림 없는 소리!" 

 

 프랑스

"캐벗이 발견한 곳은 뉴펀들랜드 섬이지,

이곳은 아니라고!"

 

 

● 루퍼츠랜드 : 캐나다 땅의 40%를 차지하다! (1670)

 

먼저 발견하면 무조건 

'내 땅'이 될 수 있었던 시절.

 

1608년 영국의 탐험가 허드슨은 

'북쪽을 탐사'하라는 명령을 받고 항해를 하여,

▲ 헨리 허드슨

 

곧 엄청난 크기의 

바다를 발견하고는

 

그곳을 자신의 이름을 따

'허드슨 만'이라고 명명했다.

 

"허드슨 만의 크기는 한국의 38배가 넘고

12억 인구의 인도 국토보다도 넓다능."

 

허드슨은 1611년까지 

그 거대한 허드슨 만을 탐사했지만

▲ 허드슨 만

 

오랜 항해와 추위에 지칠 대로 지친 

그의 부하들은 불만이 많았다.

 

"도저히 춥고 힘들어서

더는 못 참겠습니다."

 

"맞습니다. 

당장 돌아갑시다!"

 

하지만 

허드슨은 거부했다.

 

 허드슨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돌아가자니,

말도 안 된됨."

 

 허드슨

"목적을 이룰 때까지 

절대 뱃머리를 돌리지 않겠음!"

 

"뭐예요? 정 그렇다면 당신 혼자 

실컷 목적을 이루세요. 우리는 돌아갈 테니!"

 

그리하여 부하들은 

조그만 보트에

 

허드슨과 그의 어린 아들 등, 

7명을 떨궈놓고

 

자기들끼리만 

배를 몰고 돌아간다!

 

그 후 허드슨이 어찌 됐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 버려진 허드슨

 

그리고 반세기가 지난 

17세기 중엽.

 

'래디슨'이라는 자가

퀘벡 인근에 살고 있었는데,

 

그는 어린 시절 인디언에게 

포로로 잡혀가 입양되어 자라면서

 

인디언 말과 풍습을 

익힐 수 있었고

 

그런 장점을 활용해서

통역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그러다 자신이 직접

인디언과 모피를 교역하게 되었고

 

교역을 통해 얻은 엄청난 양의 모피를

퀘벡의 총독에게 몽땅 갖다 바쳤다.

 

 래디슨

"총독이 기뻐서 

나에게 엄청난 포상을 내려주겠지."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총독

"모피 교역은 총독 허가를 받은 자만이

할 수 있는데,"

 

 총독

"허가 없이 모피 장사를 했으니

법을 어겼음!"

 

 총독

"가지고 온 모피는 모두 압수하고

벌금형에 처하노라."

 

 래디슨

"아니, 그런 법이 어딨습니까?"

 

래디슨은 너무도 

화가 나고 억울했다.

 

 래디슨

"에라! 누벨프랑스는

화가 나서 떠나야겠다!"

 

그리고 그는 

뉴잉글랜드를 찾아갔다.

 

 래디슨

"저한테 기막힌 사업 아이템이 있는데,

어떻습니까? 투자만 해주시면,"

 

 래디슨

"지금 주인 없이 비어있는 허드슨 만 유역에서 

모피 교역을 하도록 해주겠슴돠."

 

그런 그의 제안은 

영국 국왕 찰스 2세에게까지 알려졌으니,

 

 찰스 2세

"그래? 그거 괜찮겠군. 허드슨 만은 원래 

우리가 먼저 발견한 곳이기도 하고.."

 

 찰스 2세

"그럼 그 땅은 내 사촌 동생인

루퍼트 왕자에게 하사하겠으니,"

 

 찰스 2세

"그 땅의 이름을 '루퍼트의 땅'

(루퍼츠랜드 : Rupert's land)이라고 부르기로 하고.."

 

 찰스 2세

"그곳에 모피 교역 회사를

만들도록 하라!"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회사가

허드슨 베이 컴퍼니(HBC)였고

 

'루퍼츠랜드'의 땅은 자그마치 390만㎢로 

우리나라의 거의 40배나 됐다.

 

▲ 루퍼츠랜드 : 現 캐나다 전체 면적의 40%를 차지한다

 

"다만 겨울에 영하 50도까지 떨어지는

땅이 대부분이라서,"

 

"남쪽을 제외하면 농사는 물론, 

사람 살기도 힘든 땅."

 

하지만 루퍼츠랜드는

캐나다 영토의 40%나 차지하는 땅이기에

▲ 루퍼츠랜드의 주요 운송수단 '개썰매'

 

훗날 영국이 캐나다를 독점 지배하는 데

커다란 기여를 하게 된다.

▲ 루퍼츠랜드의 물류 거점도시 '위니펙'

 

"만약 누벨프랑스 총독이

래디슨을 푸대접하지만 않았더라도.."

 

"지금의 캐나다의 역사는

크게 바뀌었을지도 모르는 일."

 

 

● 치열한 북미 식민지 다툼 : 최종 승자는 영국에게 (1760)

 

북아메리카의 영국과 프랑스의 

식민지 다툼은

 

점차 프랑스 쪽에 

불리하게 전개됐다.

 

누벨프랑스(퀘벡+아카디아)는 너무 추워서

주로 '모피 교역'을 주업으로 했기 때문에

 

여간해서 이주해오는 사람이 드물어 

인구가 늘지 않았던 반면에,

 

영국의 식민지였던

뉴잉글랜드와 버지니아는

 

온화한 기후에 농사짓기에도 적합해서

인구가 꾸준히 늘어났고

 

여기에 흑인 노예까지 

끌어오기 시작했으니

 

 

18세기 초가 되면 북미 식민지에서의

영국과 프랑스 세력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차이가 나타나게 된다.

 

 

그러던 이때, 유럽 본토에서 

영국과 프랑스의 전쟁이 발발했다. (1701년)

 

프랑스 국왕 루이 14세의 손자,

'필립'이 스페인의 새 국왕이 되려고 하자

 

프랑스-스페인이라는

거대 연합 왕국의 탄생을 경계한

▲ 프랑스-스페인의 영역 : 녹색

 

이웃나라 영국, 오스트리아 등이

프랑스, 스페인과 맞서 싸운 전쟁이었다.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

 

"절대로 두 나라가 

합쳐지게 해서는 안 돼!"

 

그런데 유럽에서 벌어진 전쟁은

신대륙에서도 고스란히 전이되었으니,

 

누벨프랑스와 영국 식민지 사이에도

일대의 격전이 펼쳐지게 된 것이다.

▲ 누벨프랑스(녹색) vs 영국식민지(청색)

 

재밌는 것은, 이때 인디언들까지도 

저마다 영국과 프랑스 편으로 나뉘어 싸우게 된다는 것이다.

 

"영국 앞잡이!"

 

"프랑스의 개!"

 

하지만 신대륙에서는 

쪽수에서 프랑스가 크게 밀렸기 때문에

▲ 집을 잃고 피난가는 인디언 가족들

 

영국군에 고전을 면치 못했고

결국 1713년 정전 조약을 맺게 된다.

 

"프랑스는 뜻대로 

필립을 스페인 왕으로 앉힐 수 있다."

 

"하지만 프랑스와 스페인은

절대로 하나로 합치지 않겠다."

 

"또 북미 식민지 중에 

노바 스코시아(아카디아)를 영국에 내어준다."

 

그리하여 영국이

100년 가까이 눈독을 들이던 

 

'노바 스코시아'가 

영국의 관할로 넘어가게 된다.

▲ 1713년 조약 이후의 영국과 프랑스의 영역

 

영국 

"하하하"

 

그리고 30년 뒤,

유럽은 또다시 패를 갈라 전쟁을 했으니

 

이때도 프랑스, 스페인, 독일에 맞서

영국, 오스트리아, 네덜란드가 맞붙게 되는데,

 

어김없이 유럽의 전쟁이

북미 대륙까지 번져서

 

영국과 프랑스는

또다시 전쟁을 치러야만 했다.

 

그런데 이때 시작된 북미 대륙의 전쟁은

유럽에서 전쟁이 끝난 뒤에도 계속 되어,

 

무려 20년 동안을 

끌게 되었고

 

결국 1760년 영국군이

누벨프랑스의 수도, 몬트리올을 점령함면서

 

누벨프랑스(뉴프랑스)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만다.

▲ 몬트리올 함락 : 영국군에 항복하는 프랑스군

 

이때의 전쟁을 흔히 

'프렌치·인디언 전쟁'이라고 하는데

 

이는 영국군의 관점에서

"우리는 프랑스군과 인디언들과 싸웠어."

 

라는 뜻에서 

유래된 말이었다.

 

 

 

캐나다와 미국의 다툼

 

● 미국의 독립전쟁 (1775~1783)

 

누벨프랑스가 멸망하자

프랑스는 캐나다에서 완전히 손을 뗐다.

 

하지만 퀘벡의 프랑스인들은

고스란히 영국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에겅.."

 

그리고 10년 후,

또다시 북미 대륙은 

 

전쟁의 소용돌이로

내몰리게 되는데

 

이때 영국의 상대는

영국에서 건너온 '이민자'들이었다.

 

"읭?"

 

즉 뉴잉글랜드와 버지니아의 이주민들이 

'독립전쟁'을 일으킨 것이다.

 

"우리는 더 이상 

영국 왕의 신민이 아니다!"

 

"우리는 자유로운 아메리카인이다!"

 

그 유명한 

'미국의 독립혁명'이었다.

 

다만 이때 독립을 찬성한 이들은

1/3 정도였고

 

나머지 1/3은 무관심,

1/3은 영국의 왕당파를 지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과격한 독립파들은

왕당파들을 탄압하고

 

폭행을 가하고 재산을 빼앗고

심지어 목숨을 앗아가기도 했으니,

 

왕당파들은 상당수가 

영국 본토로 돌아가거나

 

이웃한 캐나다로 

도주하게 된다.

 

"캐나다는 영국이 지배하니 안전해."

 

그리고 1775년, 식민지 미국과 영국 사이에

'독립전쟁'이 시작되게 되는 것이다.

 

전쟁이 나자 미국은 

퀘벡의 프랑스인들을 꼬드겼다.

 

 미국

"퀘벡도 이참에 

우리와 함께 손을 잡자능."

 

 미국

"우리 모두 영국을 싫어하는 

공통점이 있지 않겠음?"

 

그러자

프랑스인들은 거부했다.

 

프랑스

"듣기에는 그럴 듯한데,"

 

프랑스

"우리가 너희들 싸움에 

왜 끼어들어야 하는 건데?"

 

하지만 1777년 이후 

전쟁에서 미국이 서서히 승기를 잡아가자

 

망설이던 프랑스가 

미국 편에 서서 적극적으로 도와줬으니,

▲ 해상에서 영국군과 프랑스군과의 전투

 

퀘벡이 이때 만약 

미국과 손을 잡았더라면

 

오늘날 미국의 지도는 

크게 바뀔 뻔도 했었다.

 

어쨌든 1783년, 미국은 6년에 걸친

독립 전쟁에서 승리하게 되어

 

영국군과 강화 조약을 맺게 되는데,

이때 이러한 내용도 추가됐다.

 

"미국은 영국의 북미 식민지(캐나다)영토에

절대로 손을 뻗지 않겠다."

 

한편 미국의 승리로

뉴잉글랜드에 남아있던 

 

영국인 4만여 명이

대거 캐나다로 몰리게 되는데,

 

이때 이들은 

프랑스계가 많은 퀘벡은 피하고

 

퀘벡 남부에 있는 온타리오로 

대거 몰려들었으니,

 

이때부터 온타리오의 토론토가 

급격히 성장하게 된다.

▲ 캐나다 최대 도시 토론토 (19세기)

 

 

● 영미전쟁 : 국경선의 확립 (1812~1814)

 

19세기 초 유럽은

또다시 전쟁판에 휩쓸리게 되는데,

 

이번에는 '나폴레옹 전쟁'이었다.

나폴레옹은 전 유럽에 

 

'프랑스 혁명 이념'을 전파하겠다는 구실로 

정복 전쟁을 일으켜서

 

"자유, 평등, 소유권!"

(19세기 후반 소유권은 박애로 바뀜)

 

영국과 러시아를 제외한 

유럽 대륙 대부분을 정복했다.

 

 

▲ 19세기초 프랑스의 직할령(짙은색)과 보호령(옅은색)

 

이어서 '눈에 가시'인 영국을 정벌하기 위해 

무진장 애를 썼지만, 

 

 나폴레옹 

"대륙 봉쇄령!"

 

 

오히려 영국은 강력한 해군력으로 

프랑스의 바다를 봉쇄해버렸다.

 

 나폴레옹 

"앵?"

 

당시 미국은 영국과 프랑스의 싸움에

중립을 지킨다고 했지만,

 

영국의 해상 봉쇄에 아랑곳하지 않고

프랑스와의 무역을 계속하고 있었다.

 

영국

"너희 정말 

프랑스와 계속 무역 할거야?"

 

 미국

"우리가 아직도 

너희 식민지인 줄 아나."

 

 미국

"왜 이래라저라래 참견이야?"

 

그러다 영국 군함이 

프랑스로 가는 미국 상선을 나포하고

 

미국 선원을 납치해

전쟁에 내보내기까지 하자

 

미국인들의 분노는 

폭발했고

 

결국 1812년 미국의 선전포고로 

영국과의 전쟁이 터졌으니,

 

전쟁의 장소는 북아메리카였고

미국은 캐나다 영토로 쳐들어갔다.

 

 미국

"어차피 700만 vs 50만."

 

 미국

"영국은 프랑스와의 전쟁으로 

구원병을 보내기도 힘드니,"

 

 미국

"이참에 북아메리카 전체를 

우리가 차지해 버리자."

 

그렇는데 이게 웬걸!

캐나다의 저항이 만만치가 않았다.

 

영국군을 도와 

인디언들이 합세하는가 하면,

 

당시 인디언들에게 미국인은 

'서부개척'을 빌미로 

 

자신들의 땅을 빼앗는 

악당들이었지만,

 

영국인들은 평소 모피 교역으로

자신들에게 '총과 탄약'을 공급해주는 거래처였다.

 

때문에 영미전쟁 당시

많은 인디언들이 영국을 도와 싸우게 된다.

 

 

미국 편에 서줄 것으로 기대한

퀘벡의 프랑스인들까지

 

영국과 손잡고 

미국의 공격을 저지하는 게 아닌가?

 

"캐나다는 우리 손으로 지킨다!"

 

결국 미국은 수적인 우세에도 불구하고

영국군(캐나다군)에게 패배하고 말았고

 

이후 2년 동안 끈질기게 

캐나다를 공격했지만 모두 실패하고 말았다.

 

미국

"아놔.."

 

그리고 유럽에서 나폴레옹이 몰락하자

1814년 미국과 영국도 서로 협정을 맺게 되는데,

 

 미국

"자, 북위 49도 선을 경계로

국경선을 긋자능."

 

캐나다 

"좋아. 대신 앞으로 

다시는 서로 침범하기 없기다!"

 

 

● 퀘벡 분리운동 (1837)

 

미국과의 전쟁으로 '캐나다인'이라는

민족주의에 눈을 뜨게 되었지만,

 

그렇더라도 내부적인 문제점은 

해결되지 않았다.

 

퀘벡 지방의 프랑스인들의

불만이 커져갔던 것이다.

 

"왜 우리 주의 총독은 

항상 영국인인가?"

 

"우리에게도 자치권을 달라!"

 

그런 불만은 결국,

1837년 무장봉기로 이어지게 되었지만

 

 

"퀘벡 독립 만세!"

 

독립운동은 처참하게 진압되었고 

프랑스인들은 커다란 좌절감을 맛보게 된다.

 

"에겅.."

 

때문에 영국은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그동안 로어 캐나다(Lower Canada : 퀘벡)와

어퍼 캐나다(Upper Canada : 온타리오)로 

 

따로 나눠 관리해오던 것을

하나로 묶어서 관리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다수의 영국계 주민들이

쪽수로 프랑스계 주민을 누를 수 있게 되겠지."

 

그와 동시에 '프랑스어 사용 금지 정책'으로

민족 동화, 혹은 민족 말살을 꾀하려고 했다.

 

하지만 프랑스인들의 저항이 

어찌나 거센지

 

"말도 안 된다.

절대 받아들이지 않겠다!"

 

결국 언어정책은

1848년 이전대로 돌아가고 만다.

 

"알겠다능. 프랑스어도 사용 가능!"

 

한편 1845년~1854년에는

유럽의 아일랜드에서

 

'감자 대기근'이 번져

감자를 주식으로 하던 아일랜드인이

 

무려 100만 명이 굶어 죽는

대참사가 발발했고

 

이때 수많은 아일랜드인이 고국을 떠나 

신대륙으로 들어오게 되는데,

 

캐나다에도 수십만 명의 

아일랜드 이주민이 유입되면서

 

당시 200만 명이었던 

캐나다 인구가 급격히 늘어나게 된다.

 

그런데 이때 아일랜드 이주민들은

주로 '퀘벡' 지방으로 들어갔는데, 

 

여기에는 

분명 이유가 있었다.

 

"아일랜드인들 역시

영국인들을 무지무지 싫어했으니깐."

 

 

● 캐나다 연방의 탄생 (1867)

 

1861년 미국에서 

남북전쟁이 터졌다.

 

건국 때부터 시작된 

남부와 북부의 갈등은 

 

 

"대농장 중심의 남부와

상공업 중심의 북부."

 

결국 노예 제도를 빌미로

전면 전쟁을 시작한 것이었다.

 

이때 영국은 

남부를 은근 지원하고 있었다.

 

 영국

"우리에겐 '원면'를 사들일 수 있는

남부가 더 중요하다능."

 

때문에 북부와 영국은 

더욱더 적대적인 관계가 되었다.

 

북부

"얄미운 놈들!"

 

하지만 전쟁의 양상이 

북부에게 유리하게 전개되자

 

영국의 캐나다 식민지는

커다란 위협에 사로잡히게 된다.

 

"헐! 북부가 남부를 점령하면,

그 다음은 아마도 우리 차례가 될 것 같은데,"

 

"이를 어쩌나.."

 

때문에 북미의 영국 자치주 대표들은

서로 한자리에 모였다.

▲ 1864년 샬럿타운 회담

 

"캐나다, 뉴펀들랜드, 노바 스코시아 

지금 이렇게 나눠진 자치주를.."

 

"모두 하나로 통합해서

우리도 미국처럼 연방을 만듭시다."

 

"그래야 미국에 맞서

힘을 뭉칠 수 있게 됩니다."

 

이때 영국은 퀘벡의 프랑스인들에게도 

당근책을 제시했다.

 

 영국

"연방제가 만들어지면

퀘벡에게도 자치를 허락하겠음."

 

프랑스인

"와! 정말?"

 

그렇게 한창 연방제를 위한

회담이 오가고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1866년, 남북전쟁을 마친 미국이 

캐나다로 쳐들어 온 것이다!

 

다만 이때 미국은, 

침략의 비난을 회피하기 위해

 

아일랜드 인들로 구성된 

민간 단체를 내세워 쳐들어오는 '얍삽함'을 보였다.

 

 아일랜드계 미국인 

"재수없는 

영국인들을 타도하자!"

 

하지만 캐나다는 적극적을 대응해

미국의 공격을 저지할 수 있었고,

▲ 당시 캐나다를 침범한 미군은 아일랜드인(녹색)들로 구성된 독립투쟁단체였다

 

이때 미국의 침략 사건으로

'연방 결성'은 더욱더 급물살을 타게 되었으니

 

1867년 7월 1일,

(미국의 독립기념일 7월 4일보다 3일 빠른)

 

캐나다는 4개주가 참가한 

새로운 연방국가로 출범하게 된다.

 

"그래서 7월 1일을 캐나다 사람들은 

'캐나다 데이'로 매년 기념하고 있다능."

 

이때 캐나다의 수도를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이 정하게 됐는데,

 

여기에는 

이런 사연이 있었다.

 

영국계

"토론토로 합시다."

 

프랑스계

"몬트리올로 해야죠."

 

 빅토리아 여왕

"그러면 토론토와 몬트리올의 중간 지점인

이곳을 수도로 하셈."

 

 

그곳이 바로 

오타와였다.

 

사실 신대륙 국가들의 경우 

이런 타협안으로 수도를 정하는 곳이 많았으니,

 

미국의 경우 

'뉴잉글랜드'와 '버지니아'의 

 

중간 지점인 '워싱턴'이 

수도로 정해졌고

 

호주의 경우도 앙대 도시인

멜버른과 시드니의 

 

중간 지점인 

캔버라로 수도가 정해졌으며

 

뉴질랜드도 북섬의 오클랜드와 

남섬의 크라이스트처치의 중간 지점인 

 

웰링턴으로 

수도가 정해졌다. 

 

 

 

캐나다의 독립과 성장

 

● 루퍼츠랜드의 구입 (1870)

 

1867년 미국이 러시아로부터

알래스카를 사들였다.

 

 

한국의 16배되는 거대한 땅을

단돈 720만 달러 에 산 것이다.

 

"현재가치 약 1억 달러.

대략 서울 아파트 200가구의 값."

 

▲ 아파트 4동 = 알래스카

 

이로써 캐나다는 서쪽과 남쪽에

미국과 국경을 맞대게 되어 불안해졌고

 

북위 49도의 국경을 넘어

미국인들이 몰려올 것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놔, 미국 이주민이 몰려오기 전에

우리도 연방의 영토를 늘려야겠다능."

 

그래서 캐나다는 서둘러

루퍼츠랜드를 사들이게 된다.

 

1670년 영국 국왕 찰스 2세의 사촌 동생

루퍼트에게 하사한 이 땅은 

 

어차피 영국의 영토였지만,

캐나다 연방정부는

 

연방의 영역을 보다 늘리기 위해 

단돈 30만 달러에 사들인 것이다.

 

"알래스카보다 2.5배 큰 땅을 

24배 더 싼값에 샀던 거임."

 

▲ 야구선수 윤석민 2년치 몸값 = 캐나다 국토의 40%

 

물론 이렇게 

싸게 구입할 수 있었던 것은

 

같은 영국 자치령이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구입한 루퍼츠랜드의 일부를

'매니토바'라고 명명하게 된다.

 

 

● 밴쿠버를 끌어들이다 (1871)

 

북미 대륙의 서부 해안은, 18세기 후반 

영국의 제임스 쿡 선장에 의해 첫 탐사가 시작되었고

▲ 제임스 쿡의 항해

 

이때 쿡 선장의 부하였던 '밴쿠버'가 

이 일대의 지도를 남기게 되면서 세상에 알려졌으니,

▲ 밴쿠버에 도착한 쿡 선장

 

나중에 사람들은 그의 이름을 따서

'밴쿠버 섬'과 '밴쿠버'란 도시 이름을 짓게된다.

▲ 밴쿠버 시와 밴쿠버 섬 : 밴쿠버 섬은 경상도와 전체와 크기가 비슷하다

 

밴쿠버 섬의 개척은

19세기 중엽 영국이 섬 남쪽 끝에 

 

모피 교역을 위한 요새를 건설하면서 

처음 시작되게 되는데,

▲ 밴쿠버 요새

 

이곳은 '편서풍'의 영향으로 연중 기온이 온난해서

거주하기에 좋은 조건을 가졌지만,

 

19세기 후반까지 

이곳을 찾는 유럽인들은 거의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파나마 운하가 생기기 전까지 

 

이곳에 도착하려면

남미 대륙을 완전히 돌아야 닿을 수 있었기 때문에

 

물자와 인력의 수송이 

너무도 열악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19세기 중엽, 

밴쿠버 섬에서 탄광이 발견되고

 

밴쿠버 시 인근에서 금이 발견되어

'골드러시'가 이뤄지기 때문에

▲ 19세기 후반에 미국과 캐나다에서 나타난, 서부개척운동

 

밴쿠버 섬과 밴쿠버는

빠르게 발전할 수 있었고,

 

 

1866년 일대는 브리티시 컬럼비아(BC)라는 

'자치령'으로 탄생하게 된다.

 

그런데 당시 '브리티시 컬럼비아'에서는

이런 의견들이 오고가고 있었다.

 

"우리 위쪽으로 알래스카,

아래로는 미국 본토.."

 

"우리도 미국 연방에 속하는 게

낫지 않을까?"

 

"글쎄? 우리는 영국령이잖아."

 

그러자 캐나다 연방은

다급해졌다.

 

"헐! 쟤네들 미국에 붙으려고 한다."

 

만약 BC가 미국에 속하게 되면

북미 대륙의 서쪽 해안가는 

 

온통 미국이 차지하게 되면서 

캐나다는 태평양 진출이 어렵게 되는 것이다.

 

때문에 캐나다 정부는 

서둘러 BC에 당근책을 제시했다.

 

 연방 정부

"이보라고. 자네들도 영국령 아닌가?

왜 미국에 붙으려고 들어?"

 

BC

"그래서?"

 

 연방 정부

"너희도 캐나다 연방으로 들어오라능."

 

 연방 정부

"들어오면 너희가 안고 있는 

모든 빚을 캐나다 연방이 갚아 주겠다능."

 

 연방 정부

"또 BC 주민들에게는

보상금도 지급해줄 거고.."

 

 연방 정부

"무엇보다 캐나다 동서를 가로지르는 

횡단 철도를 깔아주겠다능!"

 

BC

"와! 철도를 놓아주겠다고?"

 

그야말로 파격 제시였다.

하지만 그런 노력이 있었기에

 

BC는 미국의 한 주로 편입되는 것 대신에

1871년 캐나다의 한주로 들어가게 된 것이다.

▲ 파란색 : 브리티시 컬럼비아

 

그러나 

캐나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당시 미국은 캐나다보다 

훨씬 빠른 '산업화'로 인해 부유했기 때문에

 

 

1870년대에만 캐나다 인구의 약 1/6이

미국으로 이주하게 된다.

 

 

● 캐나다 국경의 완성 (1903)

 

19세기 후반 미국에서 

서부개척운동(Go west)가 진행되던 때

 

캐나다에서도 똑같이

'Go west'가 진행되고 있었으니,

 

이때 서쪽으로 이주하는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미국에서도 49도 선 국경을 넘어오는

이주민이 생겨나자

 

그 와중에 인디언들은 살던 땅을 잃고

'보호구역' 내로 들어가야 했다.

 

"쳇! 기껏 캐나다를 위해

같이 피를 흘려줬더니.."

 

"영국 놈들도 하는 짓이 

미국 놈들하고 똑같잖아!"

 

한편 1870년에 공사를 시작한 캐나다 횡단 철도는

1885년 드디어 준공되게 되는데,

 

이는 미국 횡단 철도가 완성된지 

16년만의 일이었다.

 

"와! 드디어 완성이다!"

 

그리고 완성된 철도는 

동부의 공업지대와 서부의 자원을 이어주고

 

서부로 향하는 이주민들의 행렬을 

더욱 증가시켜주면서,

 

캐나다 연방은 더욱더 

단단히 묶여질 수 있게 되었고,

 

보다 균형적으로 

발전할 수 있게 되었다.

 

"밴쿠버는 겨울에도 온화하다면서.."

 

"맞아. 캐나다에서

가장 기후가 좋은 곳임."

 

그리고 그렇게 서부로 

인구의 이동이 증가하자,

 

1905년 경 앨버타 주와 서스캐처원 주가 

새로이 만들어지게 된다.

 

▲ 앨버타 주 (좌), 서스캐처원 주 (우)

 

한편 이 시기 캐나다는 

미국의 알래스카 국경 때문에 골치가 아팠다.

 

사실 미국이 러시아로부터 

알래스카를 처음 구입했을 때 영토는 이러했다.

 

 

그런데 알래스카 남쪽 경계선 부근의

강가에서 금이 발견되자

 

미국인들은 야금야금

태평양 연안을 차지해 나간 것이다.

 

이때 훔쳐 간 땅이, 프라이팬 손잡이와 같다 해서

'알래스카 팬핸들'이라고 하는데,

 

땅을 잠식당한 캐나다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03년 협상에 들어간 것이다.

 

그리고 결국 

이렇게 타협했다.

 

"알래스카 팬핸들을

미국 영토로 인정하되," 

 

"더 이상 미국은 

캐나다의 영토를 잠식하지 않는다."

 

때문에 캐나다 국민들은 

크게 격분할 수밖에 없었다.

 

"와! 도둑넘들!"

 

 

● 캐나다의 독립 (1947)

 

20세기 초까지 캐나다 연방은

나라의 형태는 갖추었지만,

 

독립국으로 보기에는 

부족한 부분들이 있었다.

▲ 1921년까지의 캐나다 국기

 

즉 '대영 제국'에 속한

자치령이었을 뿐,

 

'외교권'도 영국 정부가 가지고 있었고

'군대'도 여전히 영국군이었으며

 

'최고 사법 기관'도 여전히

영국 최고 법원이 맡았다.

 

사실 완전한 독립국이 되기 전엔

대영제국의 식민지였던 곳들은

 

모두 이런 식의 

자치 정부 형태였다.

▲ 19세기 후반 영국의 영토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인도, 남아공, 홍콩 등등.."

 

군사, 외교, 최고 법률 등은

모두 본국인 영국 정부가 맡고

 

나머지 부분에 있어서만

자치가 주어지는 형태.

▲ 1903년 자치 정부

 

그런 캐나다에게 

'외교권'이 부여된 것은 1909년의 일이었고

 

"알래스카 팬핸들을 상실한 이후

여론이 악화되어,"

 

"그걸 계기로 1909년에

캐나다 외무성이 창설된 것이었음."

 

영국군이 아닌, 캐나다 군대의 이름으로 

전쟁에 나선 것은

 

19세기 말 남아공에서 터진

보어 전쟁에서였다.

 

"남아프리카에 이주한 네덜란드 이주민을

보어인이라고 하는데.."

 

"보어전쟁은 영국이 남아프리카 모두를

차지하려고 일으킨 전쟁이었음."

 

▲ 보어전쟁에서의 캐나다 군

 

그리고 1차 세계대전(1914~1918)이 발발하자

캐나다군은 역시 영국의 용병으로 참전하게 된다.

▲ 1차 세계대전 신병 모집 홍보

 

"처음에 오합지졸이라고

무시당하던 캐나다군이지만.."

 

"비미 리지 전투에서 독일군에게 

큰 승리를 거두는 등, 나름 활약했다능."

 

▲ 1차대전 중 캐나다군 (비미 리지 전투)

 

"오! 캐나다 달리 봤다능."

 

하지만 여전히 캐나다인들은

대영제국의 신민이었고

 

이들이 완전한 독립을 이루게 된 것은

2차 세계대전의 이후의 일이었다. (1947년)

 

 

▲ 1965년까지의 캐나다 국기

 

 

● 풍요로운 선진국의 이면

 

캐나다는 오늘날

풍요로운 선진국으로 인식된다.

 

우리나라의 100배나 되는

광활한 영토 (한반도의 40배)

 

풍부한 천연자원

때 묻지 않은 청정자연,

 

 

높은 국민소득 (1인당 5만 달러)

잘 갖춰진 사회보장제도,

 

"자유경쟁을 중시하는 미국과 달리

오랫 동안 영국의 지배를 받았던 탓에.."

 

"캐나다에는 유럽식 사회보장 제도가 

나름 잘 갖춰져 있음."

 

다양성을 존중하는 

민족·인종 정책,

 

"미국이 '하나의 국민'이라는 기치 아래

용광로 속으로 녹아들 것을 강조한다면,"

 

"캐나다는 서로 다른 개성을 존중하는

모자이크를 지향하고 있음."

 

선진국 치고 높은 경제성장률과

안정된 경제 현황.

 

"글로벌 경제위기 속에서도

꾸준히 2%대 성장을 하고 있음."

 

▲ 1인당 소득 비교 : 캐나다와 아르헨티나는 1930년대 중반까지는 서로 비슷했다.

 

하지만 이런 캐나다에도

어두운 이면이 짙게 드리워져 있으니,

 

무엇보다 이웃 나라 미국의 힘과 영향력이

너무나 거대하다는 것이다.

 

특히 '냉전시대'를 거치면서 미국은 

캐나다를 마치 자신들의 '졸개'로 여기는 경향이 짙어서

 

▲ "51번째 주 하하하"

 

 미국

"베트남 전쟁에 파병해주라능."

 

 미국

"너희 땅에 소련을 견제할 

핵미사일 기지를 건설하고 싶다능." 

 

이런 요구들을 

끊임없이 하고 있었으니,

 

이는 평화롭고 조용히 살고 싶었던

캐나다인들의 뜻에 반하는 일이었다.

 

때문에 한때 캐나다 수상은 

이렇게 항의를 하기도 했었다.

 

 트뤼도

"당신네들 옆에서 사는 것은 

마치 큰 코끼리 옆에서 자는 것 같아요." 

 

 트뤼도

"당신들이 아무리 

친절하고 얌전한 맹수라고 해도.."

 

 트뤼도

"그 옆에서는 움찔거리거나 잠자는 소리 

하나하나가 다 신경쓰인다구요."

 

또 다른 문제점은

퀘벡 주의 분리 독립 움직임이다.

 

70년대 분리주의 과격파들의 

잇달은 테러 때문에

 

1980년 캐나다는 퀘벡 주민들을 대상으로 

국민 투표를 실시했는데,

 

이때 60%가 반대하여

퀘벡 독립은 무산되었지만,

▲ 1980년 당시의 실시간 개표

 

15년 뒤인, 1995년 

두 번째 투표에서는

 

50.6% 반대, 

49.4% 찬성이라는

 

아슬아슬한 표 차이로

부결된 바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언제 다시 

분리 여론이 불거질지 모르고,

 

그때가 되면 캐나다가 쪼개지지 않을 거라

누구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퀘벡이 진짜로 분리가 된다면,

퀘백 하나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만약 캐나다에서

퀘벡이 빠져나가면,

 

↓이렇듯 캐나다 영토의 일부는

서로 떨어진 월경지가 되고,

 

그렇게 되면 

본토에서 떨어져 나간

 

노바 스코시아, 뉴펀들랜드 등의 미래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동서로 떨어졌던 파키스탄이 

파키스탄, 방글라데시로 나뉘었던 것만 봐도 그렇고."

 

▲ 1971년 파키스탄에서 방글라데시가 떨어져 나갔다

 

"게다가 뉴펀들랜드는 

캐나다 연방에 속하기를 계속 거부해오다가,"

 

"1949년 주민 투표를 통해

가장 뒤늦게 캐나다 연방으로 들어온 역사가 있음."

 

또 캐나다 GDP와 인구의 

20% 이상이 떨어져나가기 때문에

 

그렇게 되면 국력 면에서

호주와 여러 면에서 엇비슷해진다.

 

"혹시 G7 클럽에서 

퇴출되는 거 아닌가?"

 

 

출처 //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alsn76&logNo=220428234354&proxyReferer=https%3A%2F%2Fwww.google.com%2F

47개의 댓글

2019.12.07

와 정말 유익한 내용이네요! ( 한줄 읽고 내림 )

0
2019.12.07
@구더기는레후

나도 사실 퍼오기전에 한줄읽고

퍼옴

2
2019.12.07

이모티콘보고 그냥 내렸어 미안

0
2019.12.07

길고 재미없고...

1
2019.12.07
0
2019.12.07

저 이모티콘 때문에 읽기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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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07

재밌는데 저 콘들 개거슬리네 ㅋㅋ

0
2019.12.07

내용은 유익한데 네이버 이모티콘 씨이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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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아메리카사 관심있어서 재밌게봄

1
2019.12.07

저짝도 거의 삼국지나 전국시대급 난리였구나

1
2019.12.07

재밌네

0
2019.12.07

요 블로그 역사쪽 애들이 좀 그렇타고 비판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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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이모티콘은 붐업 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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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07

존나 유익하고 재밌네

신뢰의 아이콘이 너무많아서 어색하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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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07

아니 왜 유익한건데 시발 ㅋㅋㅋㅋㅋ

잘 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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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나개열심히 스크롤 훅훅내렷다 욕하려고 씨발

0
2019.12.07
@국어시간에쳐졸았나

바보야 오른쪽에 바로내려가기 있잖아

0
2019.12.07
0

난 재미잇게 봣드 감사

1
2019.12.07

라인 이모티콘 꼴사납죠? 내용길죠?

추천 가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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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07

읽다가 뭔가 이상해서 스크롤바 길이봤는데 ㅅㅂㅋㅋㅋ 존내길어 ㅁ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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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07

몬트리올 유래 알아간다 ㅋㅋ

마운틴 로얄 이었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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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에읽다가 안끝나서 뭐지하고봣는데 스크롤 시발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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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항온 하고 싶어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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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07

ㅋㅋㅋㅋㅋ 재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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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07

라인 이모티콘 역겹긴 한데 재밌네 추천줌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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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07

캐나다 안정적인 국가인줄 알았는데 되게 불안한 국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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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07

유익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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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07

비밀 댓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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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07

재밌네 ㅊ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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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길고 라인이모티콘 개많아서 비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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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다읽음꿀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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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07

캐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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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07

재밌는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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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07

이분 블로그 라인이모티콘,선오공,베지터 많이나옴ㅋㅋ

재미는있는데 많이까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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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07

재밌게 보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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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07

이모티콘 때문에 잘 쓴 장문의 소설같이 보인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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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07

캐나다 역사 별로 재미없긴 하다

 

춥고 매력없는 땅이라 개척도 잘 안하고 있다가 미국이 먹으려고 하니까 그제서야 개척하고 통합도 잘 안되는 시골냄새나는 국가란 이야기네

 

0
2019.12.07

이모티콘 우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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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07

스크롤내리는데도 한시간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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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07

재밌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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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07

네덕 ㅂ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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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08

끝까지 다 읽었다. 캐나다 생각보다 부침이 많은 국가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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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08

재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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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08

항상 알레스카나오면 싸게삿다인데 당시 환율로 계산하면 32조원정도이고 이게 이렇게라도 팔아버리지않앗다면 어차피 빼앗겻을 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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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왕 .. 제미있게 잘봤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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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10

캐나다 건국사 ㅇ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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