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한 이야기

초등학교 4학년 때 사이비 교주가 될 뻔한 썰

초등학교 때 나는 공책에다 게임북이나 그리던 

조용하지만 창의력 넘치는 찐따였음.

 

어느 날, 뚜렷하지 않은 계기로 손금을 보게 됐는데

어디선가 주워들은 지식들이 혼합된 아무 말 대잔치였음에도 불구하고

애들이 엄청 신기해하더라.

특히 여자애들이 관심을 많이 가져줘서 그게 좋았던거 같음.

 

그러다가 본격적으로 사이비 교리를 퍼트리게 되었는데

교리의 핵심은 우리에게는 현실세계의 '나'와 이상적인 세계의 '나'가 동시에 존재하며,

이상세계의 '나'와 동화될 때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이었음.

덧붙여 나는 이미 이상적인 세계의 '나'와 동화되어

다른 사람의 구원을 돕고자 하는 구원자라고 설명했지.

 

이미 손금이나 전생체험 등의 신비주의적인 느낌으로 명성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 반 여자애들을 비롯하여 꽤 많은 추종자들이 있어 교리 설파는 굉장히 수월했음.

 

나는 이상적인 '나'를 보게 해주겠다면서 양손을 마주잡고

명상이나 기도를 하게 했고, 거짓된 자신의 모습을 버리기 위해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고 이상적인 자신의 모습을 그려보라고 유도했음.

 

처음에는 100% 장난처럼 시작한 거였는데 이틀도 지나지 않아

나랑 손을 잡고 기도하니 진짜 자신의 모습을 봤다는 애들이 생겨나면서

우리 반 뿐만 아니라 우리 학년 전체에서 나는 유명인사가 되었음.

 

나는 의미심장한 말을 하거나, 우연히 가지고 있던 구슬같은 하찮은 물건들을

액운으로부터 너를 보호해줄 거라면서 소중하게 간직하게끔 하는 등

기행을 일삼았는데 약 일주일 정도 후에는 정말로 사이비 교주처럼 추앙받는 존재가 되었음.

 

나의 일탈은 아주 간단하게 정리가 됐는데

추종자였던 여자애 한명이 우리 반 담임선생님에게 나를 구원자라고 소개하며

선생님도 구원받으라고 한거임.

 

선생님은 교탁에 앉아서 내가 만든 교리를 찬찬히 듣고는

갑자기 날짜를 찍는데 사용하던 도장을 번쩍들어 내 이마를 찍어버렸음.

 

그렇게 교무실로 끌려가서 설교와 반성문을 쓰다가

부모님 모셔 오라고 하기 직전 싹싹 빌어서 훈방조치되었고

나는 다시 공책에 게임북 그리던 찐따로 돌아가게 되었음.

 

그닥 좋은 기억은 아니었지만 이 경험으로 나는 사람의 모습 중 하나를 체득할 수 있었음.

사람은 죽음이나 구원, 신, 운명 등 쉽게 증명하지 못하고 두려워하는 개념에 대해

매우 취약할 수 있으며 이것을 믿음 하나로 편하게 만들어 줄 존재가 있다면

그 존재를 쉽게 추앙할 수 있다는 사실.

 

요즘 사이비 종교로 떠들썩하던데 초딩 때 사이비 종교를 만들어 본 나로서는

그런 허무맹랑한 말들을 믿는 사람들이 한편으론 측은하고 한편으론 어리석게 보임.

10개의 댓글

2023.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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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12

그때 선생님까지 넘어가게 했으면 님이 만든 사이비 조금 더 퍼졌을듯.

 

처음엔 장난으로 시작하다가 사람들이 추앙하기 시작하면 자기 스스로 내가 진짜 구원자일지도? 하는 단계가 올거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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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귀엽네 이정도는 머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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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13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좋은담임한테 뚝배기 깨졌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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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드립하면안됨

재밌네ㅋㅋㅋ

얼굴도 개연성 있었음?

0
2023.03.13

뚝빼기 쾅 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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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13

도장은 왜 찍으셨대?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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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15
@붉은제로

참 잘했어요

0

역시 물리치료가 답이었어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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