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 Gays! 시험기간임에도 굴하지 않고 에릭 클랩튼 성님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 돌아온 한숨만쉰다(레벨2)다! 중간고사 끝나고 한숨만 쉴지는 모르겠지만 어떻게든 되겠지.
개드립에 얼마 전에 올라온 "흔한 영국의 동네 기타리스트"야. 딱히 올드비가 아니더라도 볼 수 있었던 영상이지. 하지만 락에 관심이 전혀 없던 게이라면 "아, 저 새끼가 누구길래 댓글도 쩔고 반응도 쩌는거지? 할지도 모르겠다. 이 에릭 클랩튼이란 기타리스트는 말야, 최고의 기타리스트야! 기타를 독학으로 배웠고, 완전한 노력파의 싸나이! 유부녀에게 10년동안 집착했던 의지의 싸나이! 잠깐 이건 위험한건가
뮤지션 이름 : Eric Clapton
생년월일 : 1945.3.30~
국가 : 영국
있었던 밴드 : Yard Birds, Blues Breakers, Cream, Blind Faith, Deric and the Dominos
대표곡 : Sunshine Of Your Love, White Room, Layla, Wonderful Tonight, Tears in Heaven, Change The World 외
이번 에릭 클랩튼찡은 워낙 유명한 일화들이 많기 때문에, 약스압일지도 모르겠음. 왜냐하면, 에릭 클랩튼은 가십거리들뿐만 아니라 그 자체의 음악성으로서도 굉장히 뛰어난 기타리스트거던.
일단 스펙부터 읊겠다.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3중 헌액된 유일 무이한 싸나이(솔로 아티스트로서, Cream의 멤버로서, Yard Birds의 멤버로서)다. <롤링 스톤>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기타리스트 100명 중 4위이며, 100인의 위대한 아티스트 53위, 1994년 대영제국 훈장 4등급, 2004년 대영제국 훈장 3등급을 추서받았고, 깁슨에서 낸 시그네쳐 기타가 2대, 펜더에서 낸 시그네쳐 기타가 2대고, 심지어는 레드윙 신발도 시그네쳐가 존재하지.
여담으로 북쪽 뽀글이 정일이의 둘째아들 김정철이 그의 열렬한 팬이라더군. 2006년 베를린, 2011년 싱가포르 콘서트에서 목격된 걸로 유명하지.
에릭 클랩튼이 최초로 가입했던 밴드는 그 이름도 유명한 야드버즈야. 에릭 클랩튼 뿐만 아니라 레드 제플린의 지미 페이지, 솔로 제프 벡 등의 걸출한 기타리스트들을 배출한 밴드이지. 독학으로 기타를 배웠던 에릭은 사실 비비킹 같은 흑인 블루스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그에 따라 야드버즈 역시 블루스 록이라는 장르의 노선을 걷고 있었어. 하지만 언제나 음악성과 대중성은 비례할 수 없는 법. 야드버즈는 'For You Love' 라는 곡을 기해 팝 밴드로 변모해 갔고, 계속 블루스 록을 추구하고 싶었던 에릭은 다른 야드버즈 멤버들에 의해 쫓겨 나게 되지. 이 때 후임으로 들어온 기타리스트가 바로 제프 벡이야.
에릭 클랩튼의 여러 별명 중 하나인 '슬로우 핸드'는 야드버즈 시절에 만들어진 별명이야. 에릭이 라이브 도중 격렬한 속주를 하다가 줄이 끊어지는 일이 잦았는데, 줄을 다시 가는 동안 관중들이 느리게 박수를 쳐주면서 생긴 별명이지.
"블루스가 하고 싶어요" 라며 쫓겨난 에릭은 영국 블루스의 거장 존 메이욜을 찾아가. 존 메이욜은 믹 재거, 키스 리처드, 지미 페이지 등에게 영향을 끼친 말 그대로 '거장' 이신데, 바로 존 메이욜과 블루스 브레이커스를 결성하지. 그리고 지금 들으면 답답하리만치 정통적인 블루스 사운드를 연주하며 잠시 야드버즈의 팝적인 사운드를 벗어나지.
그리고 에릭찡은 블루스 브레이커스에서 나와. 그리고 락 역사상 최고의 트리오 밴드를 만들기 위한 움직임이 시작되지. 바로 베이시스트 잭 브루스와 드러머 진저 베이커를 만나 그 이름도 유명한 'Cream'을 결성하게 된다!
크림은 보통 이렇게 유명하지. "최초의 슈퍼 밴드!" 1966년 결성된, 프로젝트 밴드 느낌의 이 밴드는 프로젝트 밴드 같았지만, 결코 프로젝트 밴드가 아니었어. 이들은 당시 락의 본류라고 할 수 있었던 사이키델릭 사운드를 구성했어. 흔히 '뿅가리 사운드'라고 하는데, 원래 사이키델릭 록의 느릿하고 몽롱한 사운드가 아닌 묵직한 베이스, 출중한 드럼, 교과서적인 기타 리프를 보여주며 '헤비 블루스' 사운드를 만들어냈지. 이는 나중에 등장하는 하드록이나 헤비메탈에 영향을 주게 돼. 에릭 클랩튼의 전성기는 이때부터라고 보면 돼. 야드버즈에서 존재감을 올리고, 블루스 브레이커스에서 "기타의 신"이라는 별명을 얻었다면, 크림에서는 진짜로 "기타의 신"이 되었지. 그런데 독실한 기독교 신자라 별로 안 좋아했던 별명이라고 하네. 어쨌든 이 시기의 대표곡으로는 Sunshine Of Your Love, White Room이 있지.
(크림)
'에릭 클랩튼' 하면 생각나는 가십거리는? 바로 <Layla>의 비하인드 스토리이지. 너무나도 유명한 이야기야.
에릭 클랩튼에게는 사랑하는 여자가 있었지.. 하지만 오호, 통재라! 그 여자는 유부녀였다고.. 하지만 우리의 똥고집 에릭 클랩튼은 그녀에게 구애를 멈추지 않았고, 결국은 결혼했다는 기쁜 이야기....가 아니라 진짜로 이야기 시작한다.
(패티 보이드)
같은 락 뮤지션으로서, 비틀즈와 야드버즈는 상당히 인연이 있는 밴드였어. 둘 다 함부르크에서 자주 공연을 했었지. 그리고 '대' 비틀즈의 멤버 조지 해리슨에게는 아내가 하나 있었지. 패티 보이드라는 모델 출신의 아름다운 여자였어(솔직히 지금 기준으로도 이쁨). 그런데 이 패티 보이드는 날이 갈수록 외로워졌어. 비틀즈 편에서 다뤘지만, 조지 해리슨은 인도 사상과 음악에 상당히 빠져 있었어. 그리고 아름다운 아내에게 신경쓸 겨를이 없었지. 그리고 패티 보이드는 외로움을 탔지. 그런데 이 여자가 무서운 계획을 세웠어. 바로 질투심 유발 작전이지. 그리고 미혼의, 잘생긴 기타리스트 에릭 클랩튼에게 꼬리치기 시작했어. 그리고 어느정도 성공을 보였던 질투심 유발 작전은 약간 꼬이기 시작했어. 에릭 클랩튼은 황소고집 사나이! 아무리 유부녀라고는 하지만 너무나도 패티 보이드가 좋아지기 시작한 거야. 그리고 5년에 걸쳐 구애하기 시작했지. "어, 시발, 이게 아닌데?" 나중에 소개할 밴드 '더 후'의 피트 타운센트의 증언에 따르면, 조지 해리슨의 집에 갈 때마다 에릭 클랩튼은 3시간씩 준비하고, 자신의 가장 뛰어난 장기인 기타 치는 것을 의도적으로 보여줬다고 하는군.
에릭 클랩튼은 친구의 여자를 좋아하게 된 마음을 결국 끙끙 앓기만 하다가, 조지 해리슨에게 상담을 요청했어. 보통이라면 길이길이 날뛰고 지랄발광을 했어야 정상일 조지 해리슨은, 인도의 사상에 너무 빠진 나머지 인생무상 허허벌판 천상천하 유아독존 대수롭지 않게 넘기지. 결국 에릭 클랩튼은 노래 하나를 만들었어. 바로 <Layla>라는 노래이지. 자기가 좋아하는 남자는 자신을 보지 않고, 자기를 사랑하는 남자에게는 갈 수 없는, 갈팡질팡 하는 여인의 마음을 잘 담아낸 레일라는 엄청난 기타 리프와 함께, 정말 엄청난 이라는 수식어가 알맞은 노래야.
어쨌든 화려했던 크림은 돌연 1968년 해체를 선언해. 3명 모두 너무나도 실력이 출중했던 나머지 의견 충돌이 잦았고, 너무 실력이 뛰어났던 탓에 서로 즉흥 연주만 하다가 매너리즘에 빠지기도 했고, 리더격인 잭 브루스(베이스)의 독선적인 음악 스타일도 한몫했지. 결국 에릭찡은 크림이 해체 된 후, 또다른 슈퍼밴드에 가입하게 돼.
블라인드 페이스(Blind Faith)가 바로 그 두번째 슈퍼밴드야. 드러머는 전의 진저 베이커였고, 보컬리스트이자 키보디스트 스티브 윈우드, 바이올리니스트이자 베이시스트 릭 그레치가 있었던 밴드지. 에릭 클랩튼은 여기서 스티브 윈우드의 쩌는 보컬과 음악성에 감동한 나머지 모든 리더의 자리를 그에게 밀어줬다고 하더군. 어쨌든 스티브가 전에 있었던 밴드 트래픽보다 더욱 정교하고 오묘하며, 무언가 신성한 사운드를 조성하던 블라인드 페이스의 대표곡으로는 <Can't Find My Way Home>, <Presence Of The Lord> 등이 있지. 하지만 에릭 클랩튼은 너무나도 정교한 밴드에 싫증을 냈는지 단 한 앨범을 같이 내고는 홀연히 탈퇴했어.
그리고, 그의 마지막 슈퍼밴드인 데릭 앤 더 도미노스(Derek and the Dominos)를 만들게 돼. 1970년의 일이지. 밴드 <델라니 앤 보니>와 에릭 클랩튼의 합작 밴드라고 보면 되는데, 오히려 델라니 앤 보니보다 세션 기타리스트인 듀언 올맨이 더 유명하지. 이 트윈 기타는 정말 아름다운 사운드로 유명한데, 블라인드 페이스 시절의 지나치게 정교한 사운드에서 벗어나 따뜻한 블루스 록을 완성시킨 밴드야. 그리고 이 데릭 앤 더 도미노스의 시절이 에릭 클랩튼의 포텐이 터졌던 시절이야. 무슨 포텐이냐고? 비극적인 포텐이지. 저 Layla도 이 때의 곡이고, 패티 보이드에게서 구애를 거절 당했으며, 기타의 신 지미 헨드릭스와 자신의 절친한 친구 듀언 올맨이 사망했어. 그리고 그는 한동안 마약과 술에 절어 살게 돼.
그리고 몇년후, 에릭 클랩튼은 제 2의 전성기를 맞게 돼. 마침내 마약과 술에서 탈출한 그는 솔로 활동에 전념하지. 하지만 더 이상의 헤비 블루스가 아닌, 그가 원했던 블루스로의 회귀였어. 아름다운 발라드 <Let It grow>, 마약 이름이라 논란이 되었던 <Cocaine> 등의 엄청난 곡을 내었고, 마침내 조지 해리슨과 결별하게된 패티 보이드와 결혼하며(이 결혼식에는 조지 해리슨도 와 축하해주었다고) <Wonderful Tonight>이라는 명곡을 내었지. 하지만, 결국 에릭 클랩튼은 조지 해리슨의 전철을 그대로 밟으며 1988년 마침내 패티 보이드와 이혼하게 돼. 결국 셋의 삼각 관계는 셋에게 모두, 특히 패티 보이드에게 가장 큰 상처를 주고 막을 내렸지.
1991년, 이탈리아의 방송인 로리 델 산토와의 사이에서 낳은 4살 된 아들 코너 클랩튼이 아파트 베란다에서 떨어져 사망하게 돼. 그리고 그에게 바치는 곡인 <Tears in Heaven>이 히트를 치면서 제 3의 전성기를 맞지. 이 곡은 영화 러쉬에서 사운드트랙으로 활용되었어. 그는 당시 언플러그드 열풍이 불던 음악계에서 <Tears in Heaven> 뿐만 아니라 <Layla Acoustic Ver.>을 공연하며 다시 오르막을 오르기 시작했어. 그리고 그 이후로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지. 아까 말했듯이, 2011년에는 싱가포르 콘서트를 했었지.
한국과의 인연이라고 한다면, 현재 아내가 한국계 영국인이라는 것과, 첫 내한 공연했을 때 양말을 사러 갔는데 그 할머니께서 "참, 외국인이 곱게 늙었네"라며 양말 한 켤레를 더 얹어준 것을 자서전에 언급했다고.
다음에는 "하드록의 제왕"이라고 불리우는 Led Zepplin에 대해 소개할게. 그럼 ㅂㅂ!
fenderkey
존경하는 인물 짱드세요
노엘갤러거
미국의 블루스를 영국에 전파하는대에 힘썼다고 배웠어.ㅋㅋㅋ
벽돌
한숨만쉰다
OutPhase
그 사실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걸까?
좀 더 자세한 설명을 듣고 싶다.
한숨만쉰다
OutPhase
닭강정
한숨만쉰다
akaky2000
잘봤어.요즘 어린 사람들은 모르는사람도 많을꺼야
한숨만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