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옥저 동예 삼한은 분량이 적은관계로 통합해서 하겠음
1. 옥저 // 동예,삼한 은 빼겠음
음.. 옥저 와 동예 진짜 국사 한번도 보지않은 사람은 못들어 봤다고 생각하는데 학창시절 국사시간에 나오는 나라들임
*옥저 : 옥저는 고구려와 마찬가지로 부여족의 한 갈래에서 나왔는데 특이점으로는 고구려에 서옥제가 있으면 옥저하면 민며느리제 가있었음
// 자세한건 역사서 참고// 그리고 옥저는 고구려와 달리 터잡은곳이 엄청좋았어 .
전편에서 말했지만 고구려는 지형이 험하고 농사짓기 안좋은 조건이였다면 옥저는 그반대였지,
그리고 아래 지도에보면 해산물도 풍부히 얻을수있었고 소금도 구하기 쉬웠지
근데 이 옥저 나 동예나 동쪽변방에 너무 치우쳐있어서 선진문물 받기가 힘들었고
결국 일찍부터 고구려한테 짓눌리고 공납이나 바치는 신세가 되버려 그리고 고구려의 침입에 멸망하지 ㅜㅜ(불쌍)
2. 백제
백제 건국 : 백제는 고구려의 주몽의 둘째아들 온조가 세운나라야 다들 흔히 알고있고,
성립과정은 한강유역 토착민들하고 고구려 계통의 유이민 세력들과의 결합으로 성립이되
고구려의 계통임에도 고구려와 거의 계속 전쟁을하고있지..
* 정복 : 백제의 대표적인 정복군주는 근초고왕인데 전남, 황해도지역, 또 가야에 대해서 지배력도 있었고
중국쪽으로는 요서, 일본쪽으로는 규슈 등 엄청나게 대외활동과 동시에 한반도 까지 많은 영토를 정복해
그과정에서 고구려의 고국원왕을 전사시키기도 하는 백제 최대의 정복군주이자 전성기였다고 봐도 무방해
그리고 백제는 일본과 아주 친밀한 사이였어 백제가 멸망할때 일본이 대규모 병력을 지원해줄정도로
근데 정말 웃긴건 일본의 주장이야 일본의 주장으로는 백제를 "신하" 의 나라로 주장한다는거야
그근거로는 임나일본본부설과 아래 그림의 칠지도인데 상식적으로 칠지도 하사할당시가 근초고왕 때인데
그 대외적으로나 한반도쪽으로나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고 전성기였던 나라가 왜 나라한테 칠지도를
"공물" 식으로 바쳤냐는거지 ㅋㅋ 백제왕이 왜왕에게 "하사"했다면 모를까
< 칠지도 / 현재 칠지도는 일본 이소노카미 신궁에 보관중
* 동맹 그리고 멸망 : 백제는 의자왕떄 멸망하게되 그당시 신라는 당과 연합하여 백제를 공격하게되 영화로도 나왔을거야
김유신은 신라군을 이끌고 황산벌에서 계백의 결사대를 격파시키고 당군은 금강으로 침입하고 알다시피
의자왕때 정치질서는 개판이였으니 순식간에 사비성이 함락되고 멸망하게되
*의자왕 : 의자왕은 멸망하기 불과 몇년전만해도 신라의 성 몇십개를 빼았는등 엄청난 정복활동을하기도 했어
그리고 3000궁녀 설은 참고로 그당시 백제 사비성 인구는 약 5만명이라고 하는데,
조선시대에도 궁녀수가 600명이라고 하는데 그당시 3000명은 말도안되는소리고 불쌍한 의자왕은
방탕한 왕으로 낙인찍혀 수세월을 기억된거지 ㅠㅠ
이과
특히 민며느리제는 어린 나이에 결혼할 상대의 집에 가서 산다는게 나한텐 충격이었음ㅋ
의자왕 일화는 승자에 의해 얼마든지 역사가 와전될 수 있다는걸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지..
글 간단하게 잘 써놔서 읽는 동안 머릿속에서 정리가 깔끔하게 잘되서 좋음. 계속 챙겨보고 있음. 고맙다
꿈몽
☆김치포터☆
삼국사기를 편찬한 김부식은 신라출신 가문의 관료로
역사 집필중 많은 부분을 신라가 유리하게 ㅅㅓ술하지.
신라의 백제 정복을 미화하기위해 말년의 의자왕을 폭군의 상징으로 안든거지.
이와달리 일연이 쓴 삼국유사에는 의자왕에 대한 평이 좀더 객관적이라고 해.
실제로 삼국시대를 공부하고 싶다면
삼국사기, 삼국유사 모두 보는것을 추천하고 싶어.
삼국사기는 국가관계, 사건에 대해 비교적 자세한 편이고
삼국유사는 민중, 문화, 전설, 고사에 자세한 편이지. 삼국사기에는 없는 고조선에 대한 이야기가 삼국유사에는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