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지식

한국시 읽기, 김이듬; 가족이라는 억압과 그 탈출 방법.

이듬.jpg

(김이듬 시인).

경남 진주 태생, 현재 일산 호수 공원 앞에 "책방이듬"이라는 복합문화공간을 운영중이심.



1. ‘모성과 상징질서로서 아버지

 

<거리의 기타리스트>

-돌아오지 마라, 엄마

 

  길거리의 여자는 기타를 껴안고 있다 젖통을 밀어 
넣을 기세다 어떻게든 기타를 올려 구걸해야 한다 비
가 오기 시작하면 더 조급해진다 기타의 성기는 소리
이므로 딸을 걷어차기 시작한다

  착지가 서툰 빗줄기는 보도블록에 닿자마자 발목을
부러뜨렸다 비가 지하도를 기어간다
  질질 끌려간다 난폭한 여자의 팔에 기타가 매달려
있다 걸을 수 없는 조건을 가졌다

  담배를 물려다 말고 여자가 소리를 만지작거린다 기
타는 여자를 경멸하므로 여자를 허용한다 자라지도 않
고 떨림도 없는 기타의 성기에는 매듭과 줄이 있다

  스무 장의 신문지와 스물한 개의 철근이 뒹구는 지
하실이다 팔백 해리의 슬픔과 팔백 해리의 공복과 백
만 마일의 바퀴벌레도 늘어나는 것이 죄인 줄 안다

  기타리스트는 딸을 안고 있다 다시 보면 기타가 여
자를 껴안고 있는 자세다 기타는 기타리스트의 목을
조르고 있다 죽을까 말까 망설이느라 성장을 못한 딸
의 손목이다

  잔느 아브릴의 어머니는 딸에게 매춘을 강요했으며
기타처럼 모성이란 다양한 것이다 여자는 얼떨결에 기
타를 갖게 되었다 여자는 기타를 동반하여 계단을 굴
러가고 난간을 넘어가 세상을 추락한다 놀랍게도 어떤
모성은 잔인한 과대망상이다

  기타는 기타케이스 안으로 기타리스트를 밀어 넣는다 1

 

김이듬의 이력을 여는 첫 시집의 첫 시이다. 그녀가 그리는 모성은 일반적인 모성의 유형인 희생’, ‘사랑과는 거리가 멀다. 첫 시집뿐 아니라 지속적으로 그렇다. 그녀가 그리는 모성은 억압이나 폭력의 형태로 드러나곤 하며 늙고 병든 아버지를 대체하는 상징질서로 자리하고 있다. 이 시는 끔찍한 어머니의 첫 형상화이며, 첫 번째 폭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모성은 잔인한 과대망상이다’, ‘딸을 걷어차기 시작한다’, 등 시의 언어들은 일차적으로는 모성에 대한 비틀기로 읽힌다.

 

저는 성장하면서 아버지의 법은 물론이고 어머니의 부재문제로 가치관의 혼란을 겪었어요. () 누구도 계모가 적이 아니라 더 큰 적이 있다고 알려주지 않았고,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이 따뜻한 밥을 해놓고 자식을 위해 죽는 건 아니라고 가르쳐주지 않았어요. 저는 그저 말썽 일으키지 않는 모범생으로, 결손가정의 애라는 게 티나지 않게 더 조신해야 했지요. 안 그러면 맞았으니까

()

교과서의 어머니상은 왜 모두 헌신적이었나? 동화책의 어머니가 없는 딸들은 계모에게 괴롭힘을 당하거나 죽임을 당했지요. 심청이나 바리데기 등 초인으로 거듭나는 것만이 유일한 윤리 같았어요.

()

정치적으로 진보를 말하는 계간지조차 문학에 있어서 얼마나 보수적인지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그들은 어머니라는 식민지를 양산해요. 어머니의 노동과 출산, 눈물을 유지하고 대물림하기 위해 모성 이데올로기를 구축하죠. 여성이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열등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제가 버려진 것은 자신이 선택하거나 잘못해서가 아닌 걸 알기까지 오랜 시간 고통받았습니다. 2

 

저는 어린 시절에 예기치 않게 어머니로부터 나동댕이쳐지는 처지에 처했고 그 시기는 길지 않았지만 모성이나 사람, 사랑은 무엇일까 그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외롭게 성장했습니다. 3

 

위의 글을 통해 시인의 삶을 일정 부분 유추할 수 있는데, 그녀의 삶 자체가 시의 화자들처럼 세계-상징질서와 어울리지 못한다는 점이 특기할 만하다. 그녀는/화자는 꾸준하게 세상과 어울리지 못한다. 가족으로부터 배우는 기초적인 질서부터 시인은 불화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녀에게 상징질서는, 아버지의 이름(Name-of-the-Father)이고, 라캉에 따르면 이는 물리적 실체로서의 아버지가 아닌 부성, 질서 등에 대한 일종의 메타포이다.4 그리고 이 속성을 그녀의 시에선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가 나누어 갖고 있다. 그녀의 시가 그리는 모성과 부성은 아버지의 이름으로 일체이다. 부모는 화자에게 질서를 부여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그리고 시인은 이 질서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다. 아버지는 그녀의 인생을 망쳤으며(백발의 신사), 상징질서에 대한 편입을 거부하여 시를 쓰는 그녀의 존재를 부정한다(시골창녀). 왼손잡이에서 그녀는 세계-원장 아버지가 부여하는 질서에 노골적인 거부감을 드러내기도 한다. (“악마가 읽어주는 성경”, “원장 아버지가 선창하는 찬송가 책을 넘기면 왜 모든 책장은 불편한 방향으로 넘겨야 하는지등의 표현으로 알 수 있다.) 김이듬이 그리는 어머니는 자식을 버린 원죄를 가지며 폭력(정동진 횟집)이나 도덕률 등의 억압(유령 시인들의 정원을 지나)을 행사하는 존재로 그려지곤 한다. 이에 대한 보복처럼 그녀는 어머니를 죽은 존재로 그리기도 한다(자화상은 지겨워). 그러나 한편으로는 화자는 어머니와의 연대를 희망하기도 하며, 받을 수 없었던 사랑을 원한다. 이룰 수 없음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으나 알면서 희망한다. 여자가 여자를 사랑할 때의 세 번째 단락 사진처럼 웃어봐에서 묘사된 생모와 화자/그녀의 만남을 살펴보면 시인의 희원이 더 명징해질 것이다.

 

()

이 여자는 또 토한다. 변기를 부여잡고. 아 더러워. 오늘로 다섯번째 만나 온천동에서 온천을 했고 낙지볶음 전문점에서 낙지볶음을 먹었다. 공기밥을 시키며 나는 말한다. “엄마는 나한테 한 번도 밥해준 적 없지. 알아요?” 여자의 들고 있던 숟가락이 달달 떨린다. “아니, 엄마라고 꼭 밥을 해줘야 한다는 말은 아냐. 그냥 그랬다고요. 낳아준 게 어딘데……내가 횡설수설하는 사이, 여자가 가방을 주섬주섬 챙긴다. “! , 고작 이거 사주고 어디서 생색이니? 나 참 더러워서, 지금 내가 먹은 거 다 뱉어낼 거다.”

여자는 같이 다니기 민망할 정도로 낡아버린 코트를 입고 갈색 구두를 신었다. 몇 해 전 처음 만나 지하철 입구에서 억지로 사 신긴 구두였다. 신발을 선물하면 도망간다는 속설을 모르던 때였다. 그녀가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는지 잘 모른다. 솔직히 그리워하긴 했는지도 알 수 없다. 틀림없는 건 날 참혹하게 다시 버릴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거다. 내가 선생답지 못한 야한 화장을 한 채 술 담배 냄새를 풍기며 쓰러졌을 때, 그녀는 배신감에 활활 타는 눈으로 째려보다가 나를 길거리에 방치하고 멀어져갔다. “어이. 아줌마! 내가 뭘 잘못했는데, 날 버리는 거요?” 난 밤거리의 취객처럼 소리쳤지만 뒤도 안 돌아봤다. 처음 만나는 날이었는데, 꼬락서니 대충 정돈하고 가서 우아하고 지적인 느낌을 줬어야 했다.

이 여자가 내 시집을 받아 쥐더니, 아무 말도 안 한다. 무릎 위에 엎어놓는다. 어쩔 수 없이 눈에 들어오는 뒤표지 글을 훑는 것 같다. “, 오 하나님!” 여자가 눈물을 흘린다. 제기랄, 지하철 안이라 대략 난감하다. 내 시는 여자가 가장 싫어하는 계열이다. 도대체 성스러운 게, 아름다운 게 뭔가? 시는 시다. 거두절미하고 엄마는 엄마다. 엄마의 생을 산다. 영도다리를 건너기 전에 여자가 내 손을 잡는다. 난 이 여자 사는 방도 모르고 옮긴 교회도 모르는데, 전화번호라도 바꿔버리면? 처음 맞잡은 손이 앙상하고 축축하다. 내 머릿속은 빈소가 된다. 이 여자는 사진처럼 웃는다. “그래, 수고했다. 좋은 시를 쓰려면 성경을 읽어야지. 그 책이 가장 좋은 시 텍스트란다. 널 위해 평생 밤낮으로 기도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밖에 없구나. 자주 연락하지 말고 ……흩어진 그녀의 가방엔 성경과 내 연락처가 적힌 편지가 있었다 한다.

딸 하나 전도 못 해 대단히 자존심을 다쳤던 무능한 전도사. 과민한 결벽증에 시달렸던 독거노인, 그녀가 내 첫번째 엄마다. 영원한 적수이자 연인, 기타 등등이다. 여고 시절 문예부장이었다던 그 말이 뻥이 아니라면, 그녀와 난 피를 나눈 블러드 시스터즈 2인 동인이다. 둘이며 하나다. 난 혼자 처참하게 시를 쓰는 게 아니었는데, 종종 잊어버린다. 돌대가리. 엄마한테 신을 사 주는 게 아니었다. 엄마의 신이 날 구원하지 않아서 감사한다. 난 그녀가 웃을 수 있는 시를 쓰지 않았다. 앞으로도 쓸 수 없을 것 같다. 이런 자포자기 패배감의 총구가 이 밤도 나를 겨눈다. 탕탕, 내 몸은 더 많은 구멍을 원하고 그 안에 그녀가 있다. 5

 

화자는 자신을 버렸던 어머니와 만나서 함께 시간을 보내지만 그다지 유쾌한 시간을 보내지는 못한다. 엄마는 시인의 시가 가진 퇴폐와 불경함을 혐오한다. 시인은 과거 문예부장이었다는 엄마의 과거를 들어 연대가 가능했을지도 모르는 가능성의 편린을 살피지만 두 사람의 곡선은 다시 마주칠 수 없을 만큼 비틀어져 있다. “엄마는 엄마다. 엄마의 생을 산다.”, “난 그녀가 웃을 수 있는 시를 쓰지 않았다. 앞으로도 쓸 수 없을 것 같다. 이런 자포자기 패배감의 총구가 이 밤도 나를 겨눈다. 탕탕, 내 몸은 더 많은 구멍을 원하고 그 안에 그녀가 있다.” 이렇게 내몰린 상태에서 블러드 시스터즈 동인”6은 이미 이루어질 수 없다. 시인은 여기에 좌절한다. 자포자기의 심정이다. 어머니와의 관계가 실패한 데서 나타난 구멍, 즉 결핍 속에만 어머니를 그릴 수 있을 뿐이다. 회복도 연대도 이미 꿈꿀 수 없으며 오직 결핍 속에서만 위무한다. 시인은 필연적으로 결핍을 매만지고 사랑할 수밖에 없다. 이 결핍이 해소되지 않으면 주체가 형성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의 욕망은 결국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욕망으로, 그것은 결핍을 초래하고 그 결핍에 의해서 타자와 분리된 주체는 상징질서로 진입하게 된다.”7라는 진술에서 생각해볼 때, 결핍은 타자와 분리를 만들어 상징질서로의 편입을 완성시키는, 주체 형성에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다. 하지만 위 시에서 만들어진 구멍-결핍은 그 내부에 타자와의 관계를 표상하는, 버리지 못한 어머니를 내재하고 있기에 완전한 분리가 발생하지 않는다. 타자와의 분리를 만들지 못하는 결핍이기 때문에 이 결핍은 주체가 상징질서를 긍정할 수 없게 하는 불완전한 결핍이다. , 어머니의 존재도, 모성도 주체의 형성을 방해하는 불완전한 결핍이다. 여전히 해소는 요원할 따름이다.

 

2. 아버지와 죽음, 망설이는 김이듬

 

말할 수 없는 애인, 히스테리아에서 그리는 아버지는 여전히 어떤 질서, 법으로 읽힐 여지가 있지만 이전의 시들과는 달리 들리는 말을 하고 앓는 모습으로 누워 있는, 실제 육체를 가진 아버지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아버지는 벗어나야 할 대상으로 묘사된다. 백발의 신사에서는 화자의 인생을 간섭하고 망치는 자로 그려지며 화자는 이 아버지를 죽이고 싶어 한다. 아케이드에서는 발터 벤야민의 말을 인용해가며 아버지에게서 풀려나기를 희망하지만 그녀는 아버지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아버지라는 질서를 벗어나더라도 자유로워질 수 없고(백발의 신사), “해방감이 주는 멋진 새로운 삶을 누릴 자신”(아케이드)도 없기 때문이다. 아버지라는 노인은 그녀의 삶을 망치고 억눌러왔지만 이제 약해지고 쇠락한 아버지를 부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결정하지 못한다.

 

아버지의 위암 수술은 성공적이지 못했다. 재수술을 기다리는 아버지의 병상 곁에서 무엇을 위해 이토록 살고 싶어하는지 아빠에게 묻고 싶었고 실제로 물었다. () 돌아와 보니 아버지는 죽어 있었다.8

 

글에 곧장 따라 나오는 말은 다음과 같다. “희망적인 마지막 한 문장을 빼면”, “내 아비의 살고 싶은 본능이나 내가 쓰고 싶은 본능이나 별 명분도 가치도 없다.” 아버지는 이토록 약해진 상태에 있지만, 더 나아갈 용기도 희망도 시인에게 존재하지 않는다. 시 쓰기가 그녀에게 있어 하나의 욕망이며 해소,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것으로 그려짐을 고려할 때에 그녀가 아버지에 대해 가지는 감정은 다분히 양가적임을 알 수 있다. 주체의 해방을 위해서 억압적인 상징질서가 붕괴함이 마땅하지만, 죽음이 아닌 삶에의 충동-에로스를 가진 존재로서 아버지가 시인 자신이 죽음충동-타나토스를 극복하기 위해 행하는 시 쓰기와 등치되기 때문에 화자는 그의 죽음을 원하다가도 이내 자신감을 잃을 수밖에 없다.

 

3. 화자의 대응방식 라는 불완전한 탈출구

 

어머니와 아버지는 애정을 주어야 할 가족의 일반적 모습이 아닌 자식을 내 버리고 학대한 존재로 그려진다. 하지만 시인은, 화자는 받을 수 없는 애정을 간구하는 수밖에 없다. 달리 결핍을 해소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경멸하는 아버지와 함께할 일 없는 어머니에게 받을 수 없는 사랑, “가족들은, 특히 아버지는 자기 친구나 친척들에게 내 시를 함구하고 금기시하며 쪽팔려한다. 전도사인 내 엄마는 오죽하겠는가? 딸이 불경하고 퇴폐적인 창작을 끊고 하루속히 회개하기를 눈물로 기도한다.”9

탈출구가 없는 상황에서 시인은 시 쓰기 그 자체로 도피한다. 시 쓰기라는 행위에 대해 시인이 내비치는 감정은 다양하게 나타난다. 해방의 행위(시골창녀)로써 쓰기이기도 하고 강박적증으로 써야만 하는(가릉빈가), 고통을 감내하는 행위(문학적인 선언문)이기도 하며, 죽음충동을 억누르는 기제(오빠가 왔다)이기도 하며, 지극히 허무한 행위(죽지 않는 시인들의 사회,오빠가 왔다)이기도 하다. 그리고 고통을 수반하는 수행의 과정(문학적인 선언문)이다. 시인 자신의 표현을 빌면 시 쓰기는 다음의 목록 중에 있다. 전부 혹은 일부로서. “백해무익한 짓, 지옥, 아주 기가 꺾이는 일, 어리석고 치명적인 실수, 마법처럼 매력적인 일, 유일한 친구이며 쾌락, 멀고도 가까운 나를 향한 산책, 사랑과 노여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를 이해하려는 편협한 방식.”10

우리는 그녀가 나열한 시 쓰기의 수많은 목록 중에 하나를 골라 잡을 수도 있을 것이다. 쓰기라는 행위 자체에 대해서 그렇게 읽을 수도 있다. 하지만 김이듬의 시 쓰기가 무엇을 위해 쓰이며, 어떤 기능을 가지는가 살펴야 한다. “주체가 변모하는 고유한 순간은 행위의 순간이 아니라 바로 선언의 순간이다. 선언의 반성적 계기가 의미하는 것은 모든 발화는 단지 어떤 내용을 전달할 뿐만 아니라 동시에 주체가 그 내용과 관계 맺는 방식을 알려준다는 것이다.”11 그녀에게 있어서 시 쓰기란 본질적으로 주체와 타자가 관계를 맺는 방식의 하나이다. 위의 표현을 빌면 멀고도 가까운 나를 향한 산책”,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를 이해하려는 편협한 방식이라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래의 글은 관계맺기로서 시 쓰기를 말하고 있다.

 

왜 성적인 언술일까요? 저는 성에 민감합니다. 강조하고 말고 할 게 없답니다. 성과 관련된 예술에 탐닉하는 편이고요. 성은 단순히 섹스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의 주체성의 형성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심리적 섹슈얼리티를 내포합니다. 이런 사실은 위에서 허정 선생님의 질문 속에 이미 설명된 것 같습니다. 저는 가해자와 피해자로서의 성이 아니라, 주체와 타자가 관계 맺는 적극적 방식 중 하나로서의 성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원초적인 본능적 욕구나 클리토리스를 죄악시할 필요가 없으니까요. 개인적으로 성관계에서 경험하는 흥분과 떨림, 오르가슴은 시 쓰는 동안의 그것과 흡사합니다. 만약 천 편의 시를 쓴다면 수천 개의 사물, 수천 명의 사람들을 매일 다르게 만나는 거죠. 그들과 매일 다르게 음란하게 사랑하는 것입니다. 결국 속()과 성()이 만나게 될 거라는 기대는 안 해요. 12

 

김이듬의 시는 성적인 언술이 차고 넘친다. 여드름투성이 안장(鞍裝), 지금은 自慰중이라 통화할 수 없습니다, 당신의 코러스등의 시편들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첫 시집인 별 모양의 얼룩부터 최근의 표류하는 흑발에 이르기까지 성적표현은 수위나 빈도 등에 다소 차이가 있으나 꾸준하게 반복되고 있다. 시인의 말로 미루어볼 때 이 진술들은 세상과 접속하기 위한 방편의 하나로 해석할 수 있다. 상징질서로의 편입을 거부한, 혹은 거부당한 자아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시라는 통로를 통해 세계를 불완전하게나마 인식하는 일뿐이다. 편협하고 꽉 막힌 아버지와 어머니, ‘아버지--이름(Name of the Father)’의 표상으로서 세계, 세계관은 세상을 온전하게 이해하는 데에 방해가 되는 장애물이기에 인식 지평을 확대하고 상처를 위무하는 가 곧 자아의 유일한 탈출구가 된다. (그리고 시라는 방법론 가운데에 성적인 언술이 있다)

 

아래의 내용은 사족에 가깝지만, 결국 시인이라는 족속들이 왜 시를 쓸 수밖에 없는가, 시가 왜 해결책인가를 다소나마 보여주는 지점이 있다고 생각하여 싣는다.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것처럼 막막하고 답답하던 시절, 나는 시 창작에 거의 모든 것을 걸었던 것 같다. 시를 쓰면 하늘로 치솟아 다른 시공간으로 가는 느낌이었고, 구원이란 것이 있다면 시를 통해 가능할 것 같았다. 썼던 시 원고들을 묶어 출판사 신인공모에 보내보았고 신춘문예에도 투고했지만 번번이 최종심에서 떨어졌다. 나는 문창과 출신도 아니고 시 창작 교실 근처에 가볼 기회나 의지도 없었으며, 친한 도반道伴이나 시인, 스승도 전혀 없었다. 진주라는 작은 도시에서 혼자 끙끙거리며 책을 읽고 글을 썼다. 그랬던 내가 2001년에 포에지의 첫 번째 신인으로 등단하게 됐다. 황현산, 김혜순 선생님이 당시 심사위원이었는데, 그때까지 나는 두 분을 단지 책으로만 알고 있었다. 내게는 등단이 재생이나 부활처럼 느껴졌다. 피폐하고 부정적인 자아가 죽고 새사람이 되어 다시 태어난 것 같았다. 13



김이듬, <거리의 기타리스트>, 별 모양의 얼룩, 천년의 시작, 2005, 11-12.

김이듬, <집요한 허정, 달아나는 이듬>, 불가능한 대화들, 산지니, 2011, 212-213.

김이듬, [나의 시론] 나는 당신보다 8시간 느리다, 작가세계27(4), 2015, 219.

심재호,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 대한 비판적 고찰, 철학논총89, 2017, 185.

김이듬, 말할 수 없는 애인, <여자가 여자를 사랑할 때> 문학과지성사, 2011, 168-171.

시인은 블러드 시스터즈라는 이름으로 소설을 출판하기도 하였다.

심재호, 위의 글, 184.

김이듬, 위의 책, 198.

김이듬위의 책, 198.

10 김이듬, 위의 책, 220.

11 슬라보예 지젝, 박정수 역, HOW TO READ 라캉, 웅진 지식하우스, 2007, 29.

12 김이듬, 앞의 책, 214.

13 김이듬, 디어 슬로베니아, 로고폴리스, 2016, 270.


* 시인은 일산호수공원 앞에서 책방이듬이라는 문화공간을 운영중이심. (서점, 카페, 강연회 등을 여는 공간으로 사용중이다.)

14개의 댓글

2018.06.03
문학글 많이 써라
0
2018.06.03
@돌연
노력해볼게
읽어줘서 고맙소
0
MWL
2018.06.04
읽게에서 이런 글을 보게 될줄은 상상도 못했는데... 이런 글 자주 써주면 감사하겠음.
혹시 이 시인 시집으로 한권 추천해줄 수 있어?
0
2018.06.04
@MWL
말할 수 없는 애인이 편하지 않을까 싶어요.
다른 시집들에는 라캉을 레퍼런스로 쓴 시들이 좀 있어서...
0
2018.06.04
쌍팔년도 산악동호회인 줄 알았다
0
2018.06.05
너무 촘촘해서 가독성이 떨어진다....인용글이라서 글씨체 다르게 한 건 알겠는데 그래도 차라리 인용 표시를 다른 방식으로 제대로 하고 글씨체를 통일 해주라....간격도 좀 넓게 조정 좀 해주고...눈 아포ㅠㅠ
0
2018.06.05
페미냄새 존나게 짙네
0
모바일만 이리보이냐? 글씨가 너무 작고 줄간격도 촘촘함.
0
눈에 익은 이름이라 읽어보는데수. 고마운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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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06
@세레브민주공원
수기 시 초단편소설로 담달 말일까지 원고 받으시던데 참피단편 윤색해서 실어봄이 어떠실런지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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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얼굴
와타시는 적어도 수치는 아는 사람인데스.
0
2018.06.07
어후.. 난 이런거 잘 못보겠더라. 아 이거 가독성 때문에 그런게 아니고 오해는 말아줘.
그래도 이런류의 칼럼이나 글을 보는 이유가 많은 시사점을 남기기 때문이라고 생각함..
내가 생각하는 가족은 아웅다웅하지만 결국에는 화목해지는 혈연 집단인데, 이렇게 거의 풍파를 거치다 싶이 해온 가족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글을 보면 불편함과 여운이 많이 남더라고.. '아 불쌍해'가 아니라 '아 가족이 이럴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

내가 보기엔 이 분은 가족의 해체라는 시점보다, 기성세대의 관념을 무비판적으로 수용(무조건적인 모성애, 바깥사람)하여 결국에는 현재를 사는 사람들이 입는 피해(억지 모성애, 기성세대의 강제성으로 인한 자유 박탈)를 시로 승화 한 것 같은데.. 맞나? 싶네ㅠㅠ

잘 이해는 안가도 착잡해지는 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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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07
@이히멘붕!
비슷한 것 같아요. '모성 이데올로기' 등의 말씀에서 알 수 있듯 나는 엄마를 사랑해야 하고 엄마도 나를 사랑하는 게 당연한데 그렇지 않은 환경에서 상처받으며 살았으니 그 마음이 시에 녹아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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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07
당연히 위에 글쓴사람이 그랬잖아 자기는 결손가정에서 자랐다고 그러니까 일반가정에서 자란 사람은 이해못하지 당연한걸 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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