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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시티 팝에 대해서. (이미지 클릭으로 이동)




안녕! 앞서 시티 팝에 대한 생각을 끼적거렸다가 좀 놀랐어. 나 같이 시시콜콜한 애나 파는 줄 알았던 마이너 장르를 좋아해주는 게이들이 이렇게 많다니!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문득 "한국에는 이런 노래가 없나?" 싶어서 찾아봤다가 가장 먼저 나온 노래가 바로 전 글에서 소개했던 권인하, 강인원, 김현식의 "비 오는 날의 수채화"야.


"비 오는 날의 수채화", 1989년.
권인하, 강인원, 김현식 작


앞선 글에서는 이 곡을 소개하며,


대한민국의 대중음악에서도 비슷한 곡들을 찾아볼 수 있어. 우리나라도 1988년 서울 올림픽과 민주화를 전후하여 급격한 성장세를 맞이하게 되고, 곧 이와 비슷한 낙관적인 분위기가 한국의 문화에도 흐르게 되었거든. 물론 주류는 앞서 말한 포크 락이었지만, 그 한켠에서는 비 오는 날의 수채화와 같이 시티 팝을 연상케 하는 곡이 등장하기도 해.


...라고 했는데, 사실 전후 관계에 조금 틀린 부분이 있어. 음악 감상실 세시봉의 개점은 1953년이고, 세시봉 대표 아티스트인 송창식 씨와 조영남 씨가 발표한 스탠다드 팝의 번안곡이나 발라드가 유행했던 시기는 조금 앞선 70년대 이야기야. 그 즈음의 이미지로 들었던 "장발 청바지 차림에 통기타 둘러맨 대학생" 이미지, 그러니까 포크 락 또한 양희은 씨가 72년에 데뷔하며 정립했고 말야. 결론적으로 대한민국에서 시티 팝이나 그에 영향을 받은 음악은 사회가 자유화되기 시작한 90년대에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는 이야기가 돼. 그 즈음의 일본에서는 이미 시티 팝 붐이 끝물에 접어들고 시부야계의 원로격인 Mondo Grosso가 데뷔한 시점이니 한 발짝 늦었다고 볼 수 있겠지. 물론 시작이 늦었다고 음악의 퀄리티가 떨어지는 건 아니지만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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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소금 Vol. 1", 1990년.

빛과 소금



비 오는 날의 수채화 이후로 찾은 음반이 바로 빛과 소금 1집이야. 장기하와 얼굴들의 기타리스트 하세가와 요헤이 씨가 "일본의 시티 팝 매니아들이 수집에 열을 올리는 앨범 중 하나." 고 언급한 걸 어디서 본 이후로 줄곧 기억에 담고는 있었는데, 실제로 들어본 건 저번 글을 쓰고 난 이후였어. 근데, 첫 곡을 듣자마자 입이 떡 벌어지는 거 있지?  




"아침", 빛과 소금 Vol.1 1번 트랙


"와, 한국에도 이런 음악들이 있었구나." 인트로부터 너무나도 세련되고 여유로운 분위기를 팍팍 풍길진대, 다른 곡들은 더 말할 필요없이 너무나도 좋았지. 알고보니 3번 트랙 "샴푸의 요정"은 이미 히트곡 명반에 올라 있더라구. 시티 팝을 좋아하고, 그 여유로운 분위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한번쯤 들어봐야 할 앨범이라고 생각해. 


빛과 소금은 이 앨범 이후로도 정규 앨범을 5집까지 발매하지만 먼저 데뷔하며 한국 음악계에 신선한 충격을 가져다준 봄여름가을겨울의 그늘에 가려 상업적으로 성공하진 못했고, 결국 96년의 5집 앨범을 끝으로 밴드 활동을 접게 돼. 1집 이후의 앨범들은 시티 팝보다는 퓨전 재즈/스무드 재즈에 가까운 사운드를 들려주는 편이고, 전체적으로 짜임새도 몹시 훌륭하니 그 쪽 장르에도 관심이 깊다면 찾아 들어보는 걸 추천해. 개인적으로는 홀딱 반해서 실물 앨범을 구하려고 봤더니 LP는 고사하고 CD로 발매된 앨범도 중고가가 100,000원이 넘어서 결국 못 구하고 눈물을 삼킨 음반이기도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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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철 1집", 1989년.

김현철



여태까지 들어본 한국 음악 중에 시티 팝에 가장 가깝다고 생각하는 음악이야. 자유자재로 꺾이는 코드 위에 흐르는 몽환적인 분위기 하며, 새파란 해변을 떠올리게 하는 김현철 씨의 보컬까지, "대한민국의 대중가요 전성기는 바로 80년대 후반이다!" 고 할 적에 반드시 예시로 들어야 할 법한 명반이지.




"눈이 오는 날이면", 김현철 1집 2번 트랙.


타이틀 곡인 춘천 가는 열차는 물론, 수록곡 전체가 빈틈없이 충실하게 프로듀싱되어있는 점이 돋보이는데, 20세의 나이로 전 곡을 작사 작곡했다는 게 더욱 더 어마무시해. 그 놀랄만한 퀄리티와 개성으로 훗날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 중 17위를 차지하기도 해.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김현철 씨는 1,2집 활동 당시에 시티 팝이라는 장르를 몰랐다는 거야. 다만 그는 그 시기에 스무스 재즈를 좋아했다고 회상했는데, 시티 팝을 모르던 아티스트에게서 이토록 모범적인 시티 팝의 사운드가 튀어나왔다는 게 참 재미있는 우연이지.



일단 내가 찾아내 추천해주고 싶은 음반은 여기까지야. 그저 촌스럽고 옛날 "부루스" 정도나 뽑아내는 시장이라고 생각했던 올드 케이 팝 씬에 이런 기라성같은 음반들이 있었다는 게 참 신기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그런 선입견에 씌었었던 내 좁은 시야가 부끄러워지기도 하네. 이 음반들 말고도 흘러간 음반 중 듣기 좋은 음악들이 있으면 많이많이 추천해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