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한 시위 끝에 값진 승리를 거뒀지만 아르메니아 전역은 숙연한 분위기이다.
매해 4월 24일은 1915년 아르메니아 대학살 사건을 추모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오스만튀르크 제국은 민족 및 종교적 차이로 인하여 독립을 요구하는 아르메니아인을 오랜 세월 억압해왔다.
아르메니아의 독립은 곧 제국의 분열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제 1차 세계대전의 발발 후 오스만튀르크 당국은 아르메니아인들이 종교적으로 밀접한 러시아 제국의 회유에 넘어갈 수 있다는 핑계로 본격적인 탄압을 시작했다.
1915년 4월 24일, 오스만튀르크 당국은 우선 아르메니아인들의 정신적 지주나 구심점 역할을 하는 것으로 판단된 이스탄불 거주 아르메니아 지식인(시인, 작가, 대상인, 종교인, 정치인 등) 250명을 체포 및 학살했다.
1917년까지 약 150만에 달하는 아르메니아인이 학살당했고, 많은 수의 아르메니아인들이 고향을 등지고 피난길에 올라야만 했다.
이후 아르메니아는 대학살 사건의 시발점인 4월 24일을 '아르메니아인 대학살 기념일'로 정하여 추모해왔다.
올해 역시 아르메니아인들은 승리의 기쁨을 잠시 뒤로 하고 수도 예레반의 '꺼지지 않는 불'과 희생자 위령탑에 운집해 헌화 및 추모식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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