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노잼,긴글주의] 슈퍼헥사곤 리뷰

이름: Super Hexagon
분류: 액션, 아케이드
제작: 테리 케바네흐(Terry Cavanagh)
플랫폼: 안드로이드, iOS, Windows, OS X, Linux, 블랙베리
가격: 2.99달러

1.jpg


중독성 강한 아케이드 게임이다. 장애물을 피하기 위해 힘없고 조그만 삼각형을 좌우로 왔다갔다만 하면 된다. 게임은 최대한 길게 버티는 것이 목적이다. 노멀 스테이지가 3개 있고, 각 스테이지에서 60초 이상을 버티면 하이퍼 모드 스테이지가 열린다. 게임을 막 시작할 때엔 아주 쉬운 스테이지라도 10초도 버티기 어렵지만 하다보면 감이 점차 생긴다. 그리하여 비로소 20초, 30초를 버티게 되었을 때 짜릿한 쾌감이 있다. 나온지 꽤 된(2012년) 게임이긴 하나, 독창적인 게임 플레이 방식으로 여전히 인기있는 게임이다.

장애물이나 바깥 배경이나 아주 형형색색하고, 또 그냥 몰려오는 게 아니라 좌우로 빠르게 회전하면서 온다. 클럽 안에서 게임해도 위화감이 없을 정도다. 벽 사이 틈을 순발력있게 찾아내서 그리로 피해야 하기 때문에, 눈을 부릅 떠서 온 신경을 쏟아야 한다. 그렇게 집중 몇 분 하다보면 시력이 나빠지는 걸 왕창왕창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어두운 데서는 하지말기를.


 2.jpg

불쌍한 삼각형. ©DeviantArt-kimyy1019

 

 

숙련에 관하여

세상엔 수많은 재미가 있다. 경쟁해서 이겼을 때, 인정받았을 때, 협력으로 무언가를 이루어냈을 때 등 아주 많다. 그 많은 재미 중에 이번에는 “숙련의 재미”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사실 재미에 대해 논할 때 그것들 간 경계가 불분명하기도 하고 재미 요소를 설명하는 게임 이론에서도 학자간 논쟁이 많은 만큼 논리적으로만 전개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되도록 보편적인 경험에 비추어보고자 한다.

숙련의 재미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자전거나 자동차를 실제로 타면서 익혀나가는 과정에서 재미가 느껴지기 마련이다. 손놓고 자전거타기도 기술로써 연마하는 재미가 있는 것이다. 나는 스노우보드를 탈 때 처음으로 턴에 성공해서 아주 뿌듯했던 기억이 있다. 게임 또한 마찬가지다.

슈퍼 헥사곤이 숙련의 재미를 아주 잘 이끌어낸 게임이라 평가할 수 있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게임 플레이가 합리적으로 신선해서 다양한 층의 플레이어를 포용할 수 있었다. 둘째, 적절한 타이밍에 숙련 정도를 체감하게 해주는 지표를 초(second) 구간으로써 나타내주었다. 셋째, 숙련 한계점이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신선함

기본적인 게임 플레이를 보자. 육각형 위쪽에 조그만 삼각형이 있다. 스크린의 오른쪽 면을 누르면 삼각형이 시계방향으로 돌고, 왼쪽 면은 반시계 방향이다. 오른쪽-시계방향, 왼쪽-반시계방향 원리만 기억하면 되서 머리로는 이해하기 쉽다. 그러나 게임 플레이는 상식을 벗어났다고 생각될 정도로 어렵다. 시계/반시계 방향 중 어느 쪽으로 가야 장애물을 피할 수 있는지 먼저 판단하고, 그 쪽으로 가려면 오른쪽과 왼쪽 중 어디로 터치해야 하나 또 판단해야 한다. 회전이 그렇듯, 위와 아래에서는 서로 반대 방향이다. 그 와중에 판 자체도 요란하게 회전한다.

대부분의 게임에서는 관습이 있다. 이를테면 붉은색 바-체력, 푸른색 바-마나1)와 같은 기호(記號) 체계부터 초기 화면-스테이지 선택-실제 플레이로 이어지는 구조까지 다양하다. 플레이어간 감을 익히는 속도, 한계점 등이 다른 이유는 단순히 사람이 달라서 그런게 아니다. 실제로 나타나는 플레이어간 실력 차에 대해 많은 부분을 설명해줄 수 있는 건 관습이다. 즉 게임을 오랫동안 해온 플레이어에게는 새로운 느낌의 게임이라도 이전의 관습에서 오는 익숙함으로 쉽게 적응할 수 있지만, 원래 게임을 잘 안하는 플레이어는 뭘 해도 잘 못한다. 이렇게 다양한 실력 분포를 보일 수 있는 플레이어 층 중 타겟을 어디로 둬야 하는가의 문제는 항상 있다.

그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이 신선함이다. 슈퍼 헥사곤이 등장했을 당시 그런 플레이 방식은 생소한 것이었다. 생소함에서 오는 충격은 게임을 원체 많이 하는 플레이어와 게임을 가끔 하는 플레이어를 차별하지 않았다. 게임 조작법이 이상한 방향으로 엉뚱한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거기에 불편을 가지지도 않았다.

지표

이런 특이한 조작법으로써 게임은 숙련의 재미에 기초를 다졌다. 그러나 이 재미를 온전히 느끼려면 스스로 숙련됨을 체감할 수도 있어야 했다. 현실 세계나 게임 세계나 어떤 경험이 지표로 작동함으로써 자연스레 재미를 느끼게 된다. 이를테면 스노우보드에서 턴을 한다면, “턴을 할 수 있음”이라는 지표를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 게임 또한 마찬가지로 커다란 드래곤 보스를 쓰러뜨림으로써 그것 자체로 숙련이 증명될 수 있다. 하지만 기록 재기같이 단순한 게임은 숙련됨을 느끼기 위해 임의로 어떤 지표나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

초 구간이 그 역할을 맡았다. 게임을 시작해서 10초를 버티면 “Line”이라고, 20초를 버티면 “Triangle”이라고 말하는 찰진 기계음 소리가 들린다. 이렇게 10초 간격으로 나눈 구간은 암묵적인 지표가 되어 플레이어에게 자기가 어느 실력쯤 되는지를 정확하게 알 수 있도록 한다. 60초를 버티면 하이퍼 모드가 열린다는 사실이 단순한 “버티기 게임”에서 “60초만 버티면 나름 고수가 되는 게임”으로 탈바꿈하게 한 것이다.

 

3.jpg

슈퍼헥사곤 인게임 스크린샷. 20초를 넘기자 왼쪽 위로 “TRIANGLE”이라는 지표를 띄워준다. TRIANGLE이라고 해서 삼각형과 관련된 무언가가 게임에 영향을 주는 건 전혀 아니다.

 

숙련의 한계점

숙련의 재미는 비교적 초반에만 느낄 수 밖에 없다. 숙련될수록 그 과정은 더 어렵고 시간이 많이 걸리기 마련이다. 고로 게임을 며칠 몇달을 할 수록 숙련된다는 느낌이 줄어들고, 따라서 거기에서 오는 재미도 떨어진다. 애니팡같이 이미 익숙한 플레이 방식을 가진 게임의 경우 아주 빨리 익숙해질 수 있어서 더더욱 빨리 질린다고 볼 수 있다.

 

3.5.png


도표 – 플레이 시간 대비 실력.

 

숙련의 재미가 비교적 초반에만 유효하다는 건 모든 게임에서 할 수 있는 이야기다. 노력을 한 만큼 숙련되면 재미를 느낀다. 그렇지만 그게 무한정으로 계속되진 않는다. 초보->중수 단계의 노력과 중수->고수 단계의 노력을 비교했을 때 분명 그 차이가 있을 것이다. 필요한 노력이 이윽고 기대되는 숙련보다 과도해질때, 즉 숙련 한계점이 왔을 때 숙련으로 얻을 수 있는 재미는 사라진다.

얼마나 빨리 “고수” 단계까지 가느냐, 더 높은 실력을 얻기 위해 얼마 만큼의 점진적인 노력이 필요한가는 게임마다 다르게 할 수 있는 이야기다. 애니팡의 곡선은 급격히 완만해진다. 즉 시간을 많이 들여봤자 얻는 숙련은 미미하다. 반면 슈퍼헥사곤은 상대적으로 쭉쭉 위로 잘 올라간다. 시간을 계속 들여도 어느 정도 숙련을 얻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숙련의 재미는 당연히 한계점이 높은 후자에게 많이 느낄 수 있다.

 4.jpg

제일 제일 제일 어려운 (HARDESTESTEST) 난이도 플레이 스크린샷. 굇수들은 숙련의 재미를 변태적인 수준으로 느끼는 듯하다.

 5.png

한때 테트리스는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한때 테트리스는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미래의 어느 장난감 공장에서나 만들 것 같은 추상적인 블록으로 숙련의 재미를 기적적으로 끄집어올린 결과다. 테트리스가 그 많은 사람들의 입맛에 맞을지 누가 알았겠는가. 수십 년 뒤 나온 슈퍼 헥사곤도 같은 메커니즘을 잘 활용하여 꽤 성공했다. 물론 미래에도 숙련의 재미를 잘 살리는 건 좋은 전략이 될 것이다.

11개의 댓글

갤4로 하는데 씨팔 존나어렵다
0
2015.07.11
하다보면 그냥 패턴을 외우게되서 쉬워짐..
0
2015.07.11
@사골곰탕
마지막 얼마나 버티냐?
0
2015.07.11
와 이거 어제 엔딩봤는데, 오늘 글 올라오네
0
2015.07.11
이거 난 하다가 못하겟더라. 너무 어렵다.
0
2015.07.12
숙련의 재미는 진짜 매니악게임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이다
이거하다가 다른게임하면 엄청 느린느낌ㅋㅋㅋㅋㅋ
0
2015.07.12
폰으로 1년정도하니까 어느정도 실력이 늘긴하더라

지금은 컴으로 마지막껀 그냥 깸

근데 그다음 나오는건 도저히 엄두가 안남
0
2015.07.12
이거 마지막꺼 58초
0
2015.07.13
직선에서부터 삼각형 사각형등 점점 늘어나지
0
2015.07.13
이걸 리뷰할 생각을 할 줄이야 ㄷㄷ

뻐킹 하이퍼 모드!!!
0
2015.07.15
3G도 안터지는 산골에서 2주동안 있어야한 적이 있었는데 이때 결국 3일만에 하이퍼모드 열었지
0
무분별한 사용은 차단될 수 있습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추천 수 날짜
31 [분석] 오늘의 겜 리뷰- 리퍼~ 창백한 방랑검사 이야기 8 말많은악당 2 2016.03.19
30 [분석] 게임 리뷰 - 건담 브레이커3 48 므르므즈 7 2016.03.12
29 [분석] 게임 리뷰 - 언레이블(UNRAVEL) 6 므르므즈 2 2016.02.19
28 [분석] 게임 리뷰 - 섬란 카구라 ESTIVAL VERSUS -소녀들의 선택- 15 므르므즈 3 2016.02.12
27 [분석] 게임 리뷰 - 그래비티 러쉬: 소녀는 하늘로 떨어졌다. [스포] 11 므르므즈 2 2016.02.11
26 [분석] 게임 리뷰 - 토귀전 (스포 주의) 12 므르므즈 2 2016.01.04
25 [분석] [리뷰] 아르피엘, 캐쉬 준다길래 해봤다. 17 금수저 0 2015.12.29
24 [분석] 게임 리뷰 - 위쳐3 와일드 헌트 22 므르므즈 2 2015.12.16
23 [분석] 2016년, 오픈 및 대규모 패치예상으로 할만한 게임들 프리뷰 ... 31 여성외교부장관 5 2015.12.03
22 [분석] 게임 리뷰 - 파이널 판타지 영식 [스포] 3 므르므즈 1 2015.11.30
21 [분석] 게임 리뷰 - 어쌔신 크리드 : 신디케이트 [스포] 13 므르므즈 2 2015.11.30
20 [분석] 웹툰 리뷰 - 저승에서 만난 사람들 (스포) 12 므르므즈 2 2015.08.20
19 [분석] 영화 베테랑(2015) 리뷰 (스포X) 11 꿍꽝꿍꽝 1 2015.08.05
18 [분석] [노잼,긴글주의] 슈퍼헥사곤 리뷰 11 관종말 10 2015.07.11
17 [분석] 발리언트 하츠: 더 그레이트 워(Valiant Hearts: The Great W... 10 레몬닥터 2 2015.07.11
16 [분석] 얀데레 시뮬레이터, 프리뷰 7 레몬닥터 2 2015.07.10
15 [분석] 밑엣놈 글을 재구성해서 쓴 왜 도타 리뷰 18 레벨억제기 7 2015.07.10
14 [분석] 게임 리뷰 - 도타2 (소개글 아님) 177 람싸 1 2015.07.10
13 [분석] 히오스 리뷰 및 롤과의 비교 112 ILSY 18 2015.07.09
12 [분석] [리뷰/데이터 주의] Enslaved: Odyssey to the West - 인슬레... 2 messy 0 2015.06.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