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유능하고 청렴했던 북한 정치인, 조세웅

흔히 미디어에서 보듯이 북한 내 관료, 정치인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아마 주민들을 쥐어짜내 뇌물을 받아 쳐먹는 부패하고 악랄한 쓰레기일 거야.

 

그러나 사람 사는 세상이라면 어디든 예외는 존재하기 마련이지. 북한의 정치인은 부정부패를 일삼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었어.

 

중앙당 비서, 함경북도 당위원회 책임비서, 부총리, 평안북도 당 책임비서, 당 중앙위 부장 등을 지냈던 조세웅이 바로 그런 사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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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웅(1928~1998)

 

 

조세웅은 평안북도 출신으로, 그의 고지식한 성품이 김일성의 눈에 들어 청년일꾼으로 발탁되었고, 1970년대 승진가도를 달리면서 1977년 중앙당 비서 직위까지 오를 정도로 고위관직에 몸담았어. 초기에 고향이었던 용천에서 민청 군위원회 조직부장을 지낸 것을 제외하면 중앙정계에만 있었지.

 

그런데 1982년, 조세웅은 중앙을 떠나 함경북도 당위원회 책임비서(남한의 도지사급)으로 발령받게 돼. 이때까지만 해도 조세웅은 김일성의 신임을 받으면서 승승장구하던 인물이다 보니까 '좌천은 아니고 함북 도민의 생활수준을 향상시켜 본보기 삼으려는 김일성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는 소문도 돌았어.

 

 

1980년대에도 북한의 부패문제는 심각했기 때문에 조세웅은 함북 도당책임비서로 부임하자마자 맨 처음 간부들의 부정부패 문제를 해결하고 도민들의 신뢰를 되찾고자 했어. 당/행정간부의 비리를 대대적으로 조사하기 시작했고, 먼저 부패행위가 심한 도당의 고위급 간부들을 우선 손보기로 했어.

 

근데 남이나 북이나 [부패간부특) 중앙과 연줄이 있음] 이 문제는 심각했어. 처벌을 제대로 하려고 해도 이들을 보호해주는 윗선이 문제가 되지. 거기에다가 도내 당 간부는 나름 조선노동당에 속하는 사람들이라 중앙과 연계되어 있어서 기껏해야 함북 도당책임비서의 권한만으로는 처벌할 수 없었어.

 

하지만 조세웅은 김일성에게 신뢰받고 있던 사람이었어. 김일성은 '도당책임비서의 직권으로도 비리를 저지른 간부들을 처벌할 수 있다'라는 특명을 내렸고, 조세웅은 도내 부패 척결을 시작했어. 도당비서, 시/군의 당 책임 간부, 행정경제기관 일꾼 등 200여명이 노동교화형에 처해지고 산간 오지로 추방되는 등 도내 부정부패는 일소되었지.


또한 도 소재지인 청진시 건설사업과 의식주 문제의 해결을 위해 많이 노력했어. 검덕광산과 무산광산 등 중요산업 부문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후방공급 사업도 차질없이 잘 했어. 이렇게 조세웅이 부임해온 1982년 이후로 함북은 타 도민들이 부러워 할 정도로 생활수준이 나아지기 시작했어. 명절날 다른 도를 제치고 함경북도가 도민들에게 고기, 쌀, 부식물, 생활 필수품 등을 제일 많이 공급할 정도가 됬지. 함북은 이전에는 척박하고 식량생산도 잘 안되는 지역이었는데 조세웅의 유능한 행정능력으로 타 도에 뒤지지 않을 정도가 된 거야. 

 

위에 말했듯이 조세웅은 의식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어. 이는 인민의 생활에 곧 직결되는 일이라 조세웅은 신경을 꽤 많이 썼어. 이에 대한 일화도 꽤 많아. 몇개만 소개해 보자면...
 

 

 

1984년 12월 어느 날, 함경북도 도당 책임비서실.

 

조세웅 책임비서가 주재하는 회의에 도당 조직비서, 보위부장, 안전부장 등 도내 간부들이 모두 모였다.

 

조세웅 비서가 먼저 조직비서에게 물었다.

 

“조직비서 동무, 동무 집에는 새해 설날 마실 술이 얼마나 있소?”

 

“그런 걸 다 물으십니까. 혹시 필요하지면 제가 몇 병 보내드리겠습니다. 허허”

 

“보위부장 동무, 동무는 몇 병정도 준비해 놓았소?”

 

“아, 충분히 있습니다. 비서 동지가 오신다면야 좋은 술 좀 준비해놓겠습니다.”

 

“그럼 안전부장 동무는?”

 

“저도 부족하지 않게 있습니다. 그런데 그건 왜 물으십니까?”

 

“동무들은 그러니까 설날용으로 못해도 서너 병 이상은 갖고 있단 말이지요?”

 

“아, 예...어흠. 으흠.”

 

“동무들은 간부니깐 설날에 필요한 술들이 저절로 생기지만 우리 도내 인민들은 설날 겨우 술을 한 병 가지고 치르고 있소.

 

술 한 병 공급받아서 설날 아침에 이집 저집 세배 다니면서 부어주고 나면 마실 술조차 없소.

 

이래서야 되겠소? 설날까지 며칠 안 남았지만, 어떻게 하든 술 두 병씩 공급하도록 하시오.”

 

다음해 설날 함경북도 주민들은 뜻밖에 술 두 병씩 공급받고 웅성거렸다.

 

벌써 십여 년째 국가 공급이 끊어져 있지만 1980년대 중반은 북한 경제가 그나마 돌아갈 때라 설날에 명절 공급을 좀 할 때였다.

 

한 집에 술 한 병, 기름 반병, 당과류 조금, 돼지고기 500그램 정도 등 약간의 공급이 있었다.

 

그래봤자 술은 늘 한 병을 받았는데 그 해에는 난데없이 두 병씩이나 공급해주니 어리둥절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 배경에는 조세웅 비서의 지시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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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겨울, 함경북도 도 소재지인 청진시의 동상 앞을 지나던 조세웅 비서는 새벽에 동상을 청소하려 나온 한 어린 학생 남매를 보게 됐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한 명은 양말을 신었는데 다른 한명은 맨발이다.

 

“넌 양말을 왜 안 신었니?”

 

“동생이 신었습니다.”

 

“그럼 넌 없는 거니? 양말 한 개로 돌려가며 신는 거니?”

 

남매는 고개를 끄덕였다.

 

집무실에 돌아간 조세웅 비서는 간부들 앞에서 아침에 본 사연을 이야기 해주면서 “우리가 아이들도 헐벗게 하면서 무슨 혁명을 한다는 거냐”면서 가슴 아파했다.

 

그해 함경북도의 모든 학생들은 중국에서 수입해 온 단복(체육복) 한 벌과 양말을 선물로 받았다.

 

대다수의 학생들은 단복이라는 것을 처음 구경했다. 아니, 쟈크(지퍼)로 올리고 내려입는 옷 자체를 처음 구경한 아이들이 태반이었다. 당시는 어른들도 옷은 당연히 단추를 채워야 한다고 알고 있던 때였다.

 

단복을 사온 외화는 도에서 다른 용도로 쓰기 위해 비축했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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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웅의 일화는 꽤 많아.

 

달걀 공급이 잘 안되는 걸 의심스럽게 여겨 닭공장을 몰래 시찰해보니 간부들이 하나같이 다들 계란을 차로 빼돌리고 있다는 걸 알게 되서 차 번호판 남바들 적고 간부들 추궁해서 다신 이런일 없게 만든다던지, 식량이 부족해지자 직접 황해도까지 가서 쌀을 떼온다던지. 공장에 비밀리에 시찰하러 들어갔다가 공장 간부에게 "이거 웬 늙은이가 주제넘게 노는가"라는 모욕을 듣기도 했지.

 

조세웅의 능력과 일화는 북한 전역에 소문이 나기 시작했어. 조세웅을 칭찬하는 여론이 전국에 자자했고, 특히 함북 도민들은 조세웅을 열렬히 찬양했어. 조세웅이 관용차를 타고 지나다니면 사람들이 달려가 조세웅 만세를 부를정도였지.

 

물론 조세웅이 더럽게 아니꼬왔던 간부들은 김일성에게 '조세웅 만세'를 보고하면서 당의 유일체제 확립에 어긋나게 조세웅 개인숭배가 생겨나고 있다고 비난했어. 이 사안은 노동당 전원회의 의제로 제기되었지만 김일성은 "역시 조세웅이 영웅이야." 라고 두둔하고 넘어갔지. 다만 김정일은 김일성 숭배에 방해되는 조세웅을 중점관리하라는 지시를 내렸어.

 

 

조세웅은 88년 함북에서 떠나 중앙의 부총리 겸 건설공업건재위원장직에 있었다가 89년 다시 지방으로 내려가 평안북도 도당책임비서직을 맡게 됬어.

 

평안북도는 신의주가 위치한 지역으로 중국과의 국경지대라서 북한의 영 좋지않던 경제사정을 이유로 중국과의 밀무역을 하는 간부들이 많았어. 당연히 부패한 관료들은 넘쳐났고. 조세웅은 여기서도 뛰어난 행정능력을 발휘해서 평안북도 내 도민들의 생활수준 향상과 부정부패의 척결을 시작했어. 평북 도민들은 함북과 같이 '조세웅 만세'를 외치기 시작했지.

 

당연히 부패한 간부들과 관료들은 그런 그를 극혐했고, 계속 위쪽에 문제를 제기했지. 김일성이 신의주에 현지지도 하러 왔을때 한 간부가 "인민들이 수령님 만세를 부르지 않고 조세웅 만세를 부르고 있어 문제가 심각하다"라고 보고했어. 김일성은 "조세웅 만세는 나에 대한 만세입니다" 하고 넘겼지.

 

평북 간부들은 조세웅을 제거하기 위해 함정을 팠어. 술을 잘 못마시는 조세웅에게 술을 억지로 계속 먹여 취하게 만든 다음 조세웅을 부축하고 나오다 조세웅을 계단에 엎어놓아 버렸어. 그리고 중앙당 신소과(신고처리부서)에 "조세웅은 술에 늘 만취되어 사는데다 술주정이 매우 심해 간부들을 마구 대하고 계단에 누워 자는 등 추태가 심해 도당 사업에 지장이 많다"고 신고했어.

 

 

조세웅은 이전과 다르게 검열을 받은 뒤 비판을 받고 산골의 임산사업소 초급당비서로 쫓겨나게 되었어. 조세웅 만세를 몇번 들은 김일성이 빡쳐서 도와주지 않았는지, 김정일이 자기가 자리 물려받는데 방해된다 여겨 처리시켰는지는 의문이지만 아무튼 조세웅은 그렇게 추락하고 말아. 그 후로도 중앙에 복귀하지 못하고 이런 저런 한직만 맡게 되지.

 

조세웅은 그래도 김일성의 신임을 받았었던 사람인지라 김정일이 아직 후계자였을 때는 어쩌지 못했어. 하지만 김일성이 죽고, 조세웅의 배경은 사라져 버렸지.

 

김정일은 조세웅을 비롯한 김일성의 사람들이었던 노간부들을 "수령님을 모셨던 노간부들의 건강을 당에서 책임진다"며 의료진을 배치해 집중관리하도록 지시했으며 조세웅에게는 주치의까지 파견했어. 몇달이 지나고 조세웅은 뇌출혈로 사망했어. 치과치료 받으러 한평생 병원에 딱 한번밖에 가본적 없다던 그가 말이야. '김정일이 결국 조세웅을 처리해 버렸다'는 소문이 돌 정도로 조세웅의 죽음은 석연치 않았어.

 

 

남과 북이 갈리지 않았더라면, 혹은 조세웅이 남한에서 태어났더라면 대중에게 존경받는 정치인으로서 길이길이 기억되었을 거야. 하지만 조세웅은 북한에서 태어났고, 그의 인간성과 뛰어난 능력은 북한 체제 아래서 빛이 바래버리고 말았어.

29개의 댓글

2020.06.07

재밌게 읽었다 훌륭한 인재인데 날 곳을 잘못 태어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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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07
@쥬ㅤ지

출신이 평북이란게 안타까울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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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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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08
@dasboot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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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07

유능하고 청렴한 분이 그 당시 남한에서 나셨어도..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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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07

98년 12월에 사망했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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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08

한국의 행정가였다면 날라다녔을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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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08

한국에도 일잘하는 행정가 인재가 있는 것 같긴 한데 워낙 옳그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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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 라인 타서 행정가를 했고 커버를 받았지 한국에서 태어났으면 정 없는 놈 이라고 찍혀서 묻혔을 듯. 김일성 라인 타고도 주변인 들 이랑 마찰이 저렇게 심했는데 남한에서 살았으면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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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08
@가슴팬티엉덩이브라

하긴 우리네 7080년대 생각해보면 그렇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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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09
@가슴팬티엉덩이브라

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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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08

저런사람들 어느나라든 꽤 있는데 저렇게 높은 자리까지 가고 역사에 남는거 자체가 희귀함.

이순신 장군도 선조가 올린거고 중앙에서 유성룡이 커버쳤으니까 전쟁기간동안 살아남았고 결국 전쟁터에서 죽었기에 저런 치욕을 겪지 않은 걸수도 있고

 

애초에 당시 북한의 시스템이 잘못된게 사회는 성악설에 기반을 두고 시스템이 갖춰져야는데 저렇게 사람이 좋아야만 돌아가는 시스템이면 실패한거고

 

북한주민들이 김일성때는 좋았다 이런말 하는거 자체가 시스템 실패를 인정하는건데 평생을 북한에서 나고 교육받아서 그걸 인정하기가 쉽지 않은듯

 

근데 한국도 80년대 시대상을 볼때 저런 마인드 가진 사람들 다 좌천됐을듯.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억울하게 미끄러졌을걸. 그때면 유럽에서나 먹힐거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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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08

동무 이곳은 개드립이오 남조선 싸-이트란 말이오

글 올릴 곳을 잘못 찾으셨소

1
2020.06.08
@Heimdall

조세웅 동지의 혁명적 과업수행은 남조선에서도 귀감이 될 일 아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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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08

나라가 잘 돌아가고 제 기능을 한다고 느낄때는 저런 인재들이 적재적소에 투입되는 것같다..

 

우리나라도 어딘가 저런 분들이 있지 않을까.. 그걸 걸러내지 못하는 건 아닌가 싶네

0
2020.06.08

국가보안법 제7조(찬양·고무등) ①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을 알면서 반국가단체나 그 구성원 또는 그 지령을 받은 자의 활동을 찬양·고무·선전 또는 이에 동조하거나 국가변란을 선전·선동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0
2020.06.08
@Plasir

국가보안법 제7조 제1항에 의하여 금지되는 동조행위는 같은 조항에서 규정하고 있는 바의 ‘반국가단체 등의 활동을 찬양·고무·선전’하는 것과 같이 평가될 정도로 적극적으로 자신이 반국가단체 등 활동에 호응·가세한다는 의사를 외부에 표시하는 정도에 이르러야 한다.

- 2003도758, 전원합의체 판결

0
2020.06.08
@Plasir

②이 법을 해석적용함에 있어서는 제1항의 목적달성을 위하여 필요한 최소한도에 그쳐야 하며, 이를 확대해석하거나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부당하게 제한하는 일이 있어서는 아니된다.

- 국보법 1조 2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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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08
@은빛달빛

어떤 정신 나간 사람이 있을지 모르니까 상시 주의

북한 애국가 올렸다가 이거 불법이래서 개쫄렸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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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08
@Plasir

난 또 뭔가 했네. 학술목적이면 국보법 적용 안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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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08
@은빛달빛

행정학 학술목적이긴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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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08

Tax B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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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08

언제까지 갈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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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08

자본주의는 최악의 경우에도라도 어떻게든 굴러가게 만들었다면

대부분의 실패한 사회시스템은 최상의 경우만을 염두하고 만든 느낌이 드는듯..

공산주의가 결국 망하는거 보면 시스템 그 자체가 개개인의 삶을 컨트롤 할 정도로 비대하고, 또 그만한 권력을 쥐어야 한다는 것 부터가 이미 넌센스에 가까운 것 같음.

(사실 이건 왕정이랑 다를바가 없고, 또 실제로 공산주의가 그렇게 망하곤 하니까.)

아무리 청렴한 사람도 결국 저렇게 시스템에 잡아먹히는거 보면.

0
2020.06.09
@로렌

공산주의에 대한 흔한 오해인데, 공산주의는 모든 역사가 공산주의로 귀결될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에, 시스템을 만든 것이 아니라 그냥 그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에 가까웠음.

 

실상 인간의 탐욕을 얕봤지만, 파고들어보면 그것을 무시했다기보다는 인간은 어차피 사회적 짐승이기 때문에 교육과 사회적 변화로 인간을 변화시킬수 있다고 믿었던 것임. 선천적 영향보다 후천적 영향이 절대적이라고 생각했던 것. 보통 자유주의에 가까울수록 독립된 개인을 중시하고, 사회주의에 가까울수록 개인은 사회 속에 존재한다는 쪽에 가까움.

 

그 시대 수많은 지식인들이 빠져들만한 요인들이 있었지. 그래서 공산주의 국가들이 초창기부터 사상교육과 대회들을 중시했음.

 

공산주의가 독재로 흐른것은 그 사상에서 과거 사람들이 몰랐던 심각한 오류들 때문이겠지만, 이념적으로 공산주의가 독재적 정치체를 추구한것은 아님.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어휘만 독재지 내용상 다르고.

0
2020.06.09
@공사마감

이념적으로 공산주의가 독재적 정치체제를 추구하지 않는다는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지만, 공산주의를 행하면 반드시 그렇게 흘러갈 수 밖에 없는거니까.

이념이 추구하는 바의 문제, 간과한 것의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의 주된 목표를 수행하는 그 자체만으로도 결함이 심각하게 있다는 뜻임.

위에도 기술해놨지만 공산주의는 개인에게까지 분배에 직접 개입해야하고, 그 분배가 강제성을 띈다는 점 에서 애시당초 시스템이 과도하게 강하고, 비대해 질 수 밖에 없음.

모두에게 강제력이 작동하는 분배는, 왕이 분배를 하는거랑 하등 다를바가 없는 시스템이라는거지.

오해가 아니라 애시당초 잘못 설계된 시스템인거니까. 여기서 말한 시스템적 헛점은 탐욕과도 무관함.

당대 사람들이 멍청해서 이런 실수를 저지른건 아니지만, 지금 보기에는 콜롬버스의 달걀마냥 누가보기에도 명확한 헛점이 있으니 말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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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09

유사-조선답게 이순신장군님이 생각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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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09

우리 모두가 저런 의인을 바라지만서도, 막상 저런 사람을 곁에두고 일하면 매우 싫증내는 이중성이 있는 존재들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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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16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견제 받았을 수 있었으나 만약에 똑같이 관료를 했다면 고속승진 했겠네 7080때 한국은 테크노크라트를 매우 귀중히 여겼으니깐 고속성장기엔 옳은 선택이기도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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