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독일 근현대 산책] 8. 빈곤과 절망의 시간 2/2

* 독자 여러분의 추천과 댓글은 큰 힘이 됩니다!

 

 

 

 

굶주려야 했던 것은 농민과 도시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오랜 세월 독일 경제를 떠받쳐 왔던 수공업자들도 빈곤에 허덕였죠. 영국을 본 따 장인의 수공업을 대체할 기계가 도입되고 대규모 공장이 수공업자들의 공방을 대체하자, 수공업자들은 대대손손 이어온 가업을 포기하고 도시로 이주하여 대규모 공장의 노동자가 되어야 했습니다. 영국에서 벌어진 러다이트(Luddite)운동처럼 공장을 습격하고 기계를 파괴해서 수공업자의 몰락을 막아보려는 시도도 있었지만, 모두 무참히 진압되었죠.

 

 

 

 

하는 수 없이 들어간 공장도 상황은 열악했습니다. 특히 독일 자본가들은 도시로 몰려온 노동자들이 이곳을 떠나봤자 별달리 생계를 유지할 수단이 없다는 점을 간파하고 그들을 노예처럼 착취했습니다. 물론 그것은 곪아가는 사회문제는 무시한 채 자신들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억압 정책으로 일관했던 지배층들 덕분이었습니다.

 

 

 

 

여러 자본가들 중에서도 슐레지엔의 페터스발다우(Peterswaldau)지역에서 직조공장을 경영하던 에른스트 쯔반찌거(Ernst Zwanziger)아우구스트 쯔반찌거(August Zwanziger)형제는 포악하기로 악명이 높았습니다. 1844년 초, 또다시 식료품 가격이 급등했는데 쯔반찌거 형제는 오히려 노동자들의 월급을 삭감했습니다. 월급이 줄었다고 자기네 공장을 떠나봤자 다른 수가 없으리라는 계산에서였죠. 월급만으로는 도저히 먹고 살 수 없었던 노동자들은 침대, 탁자, 이불 등 모든 것을 내다 팔아서 식료품을 샀지만 18445월경이 되자 그것도 동이 났습니다. 그 와중에 쯔반찌거 형제는 엄청나게 돈을 벌었고, 황제의 궁궐을 방불케 하는 으리으리한 대저택을 새로 지었습니다.

 

 

 

 

184463, 노동자 한 명이 쯔반찌거 형제의 집 앞을 지나면서 당시 그 지역에서 유행하던 쯔반찌거 형제를 욕하는 노래, 피의 법정(Das Blutgericht)를 불렀습니다. 그걸 듣고 화가 난 쯔반찌거 형제는 하인들을 시켜 그를 붙잡았고, 아주 몰매를 때렸습니다. 이에 쌓일대로 쌓인 노동자들의 분노가 폭발, 184464일에 훗날 슐레지엔 직조공 봉기로 기록될 대대적인 봉기가 일어나 일군의 노동자들이 쯔반찌거 형제의 저택을 습격했습니다. 쯔반찌거 형제는 낌새가 심상치 않자 일찌감치 도망친 상태였고, 빈 저택을 점령한 노동자들은 빚 문서를 모두 불태워버렸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지역 노동자들이 대거 합류하여 봉기의 세는 5000명가량으로 불어났으며, 66일 의기양양해진 이들은 마찬가지로 악덕 자본가에게 고통 받아온 이웃 동네 랑겐비라우(Langenbielau)로 이동해 같은 일을 했습니다.

 

 

 

 

그 때 로젠베르거 소령이 이끄는 두 개 보병중대가 이들과 마주쳤고, 곧 총격에 의해 17명의 노동자가 사망했습니다. 피를 보자 크게 흥분한 노동자들은 오히려 분기탱천하여 달려들었고 로젠베르거 소령은 도망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69일까지 봉기는 주변 지역까지 가세해 대규모로 전개됐으며, 드디어는 프로이센군이 대규모로 출동해야 할 지경이 됐습니다. 184469일에 증원된 프로이센군이 벌인 진압작전으로 35명의 노동자가 더 사망하고, 수많은 노동자들이 체포된 끝에 슐레지엔 직조공 봉기는 겨우 수그러 들었습니다.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1797~1856)*는 이 사건을 전해 듣고 슐레지엔의 직조공(Die schlesischen Weber)이라는 시를 발표했습니다.

 

 

 

 

슐레지엔의 직조공

 

 

- 하인리히 하이네, 1844년 작

 

 

침침한 눈에는 눈물도 마르고

베틀에 앉아 이빨을 간다

독일이여 우리는 짠다 너의 수의를

세 겹의 저주를 거기에 짜 넣는다

우리는 짠다, 우리는 짠다!

 

첫 번째 저주는 신에게

추위와 굶주림 속에서 우리는 기도했건만

희망도 기대도 허사가 되었다

신은 우리를 조롱하고 우롱하고 바보 취급을 했다

우리는 짠다, 우리는 짠다!

 

두 번째 저주는 왕에게 부자들의 왕에게

우리들의 비참을 덜어 주기는커녕

마지막 한 푼마저 빼앗아 먹고 그는

우리들을 개처럼 쏘아 죽이라 했다

우리는 짠다, 우리는 짠다!

 

세 번째 저주는 그릇된 조국에게

오욕과 치욕만이 번창하고

꽃이란 꽃은 피기가 무섭게 꺾이고

부패와 타락 속에서 구더기가 살판을 만나는 곳

우리는 짠다, 우리는 짠다!

 

북이 날고 베틀이 덜거덩거리고

우리는 밤낮으로 부지런히 짠다

낡은 독일이여 우리는 짠다 너의 수의를

세 겹의 저주를 거기에 짜 넣는다

우리는 짠다, 우리는 짠다!

 

 

 

 

Die schlesischen Weber

 

 

- Heinrich Heine

 

 

Im düstern Auge keine Träne,

Sie sitzen am Webstuhl und fletschen die Zähne:

Deutschland, wir weben dein Leichentuch,

Wir weben hinein den dreifachen Fluch -

Wir weben, wir weben!

 

Ein Fluch dem Gotte, zu dem wir gebeten

In Winterskälte und Hungersnöten;

Wir haben vergebens gehofft und geharrt,

Er hat uns geäfft und gefoppt und genarrt -

Wir weben, wir weben!

 

Ein Fluch dem König, dem König der Reichen,

Den unser Elend nicht konnte erweichen,

Der den letzten Groschen von uns erpreßt,

Und uns wie Hunde erschießen läßt -

Wir weben, wir weben!

 

Ein Fluch dem falschen Vaterlande,

Wo nur gedeihen Schmach und Schande,

Wo jede Blume früh geknickt,

Wo Fäulnis und Moder den Wurm erquickt -

Wir weben, wir weben!

 

Das Schiffchen fliegt, der Webstuhl kracht,

Wir weben emsig Tag und Nacht -

Altdeutschland, wir weben dein Leichentuch,

Wir weben hinein den dreifachen Fluch,

Wir weben, wir weben!

 

 

 

 

하이네의 시뿐 아니라 20세기 초 명성을 얻었던 여류 화가 「케테 콜비츠(1867~1945)」도 「슐레지엔 직조공 봉기」에 관심을 가져, 이를 「직조공」이라는 석판화 연작으로 그리기도 했습니다. 여러 석판화 기법을 잘 활용한 데다 빛의 입사를 통한 분위기 형성이 대단하기 때문에 미술에 관심있는 분이시라면 한 번쯤은 보신 작품일지도 모르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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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작 1편, 「궁핍」. 아이가 죽어가는데도 가난 때문에 어머니는 머리를 쥐어뜯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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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작 2편, 「죽음」. 결국 아이는 죽음의 사신인 해골의 품에 안겨있고, 망연자실한 어머니는 벽에 기대어 있고 아버지는 고개를 숙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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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작 3편, 「모의」.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가진 아버지들이 모여 거사를 계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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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작 4편, 「직조공의 행진」. 드디어 행동에 나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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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작 5편, 「정문 공격」. 공장주의 저택 정문을 공격하고 있다. 뒤로 보이는 으리으리한 저택과 보기만 해도 위압감이 느껴지는 화려한 정문은, 그것을 공격하고 있는 남루한 옷과 초췌한 몰골의 노동자들을 더 비참해 보이게 만든다. 그들의 손에 쥐어진 무기라고 해봐야 고작 도로에서 뜯어낸 돌 따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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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작 6편, 「결말」. 봉기에 참가했다가 진압군의 발포에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온 남편을 넋이 나간 듯 바라보는 여인이 하나, 주검 곁에 앉아 고개를 파묻고 있는 여인이 하나.>

 

 

 

 

악덕 자본가에 맞선 노동자들의 투쟁이라는 측면에서 슐레지엔 직조공 봉기는 독일 사회사의 중요한 분기점이 되었습니다. 우선 카알 마르크스(1818~1883)」가 슐레지엔 직조공 봉기」사건을 전해 듣고 자본가에 맞서는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투쟁이라는 아이디어를 떠올릴 수 있었고, 그의 동료가 되는 프리드리히 엥겔스(1820~1895)는 하이네의 시 슐레지엔의 직조공을 영어로 번역하여 영국에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즉 슐레지엔 직조공 봉기는 단순히 악덕 자본가인 쯔반찌거 형제에 맞서 들고 일어난 정도의 사건이 아니라, 자본가 계급 일반과 프롤레타리아 계급 일반이 서로의 생존을 놓고 벌이는 대대적인 계급투쟁(Klassenkampf)의 서막이었던 겁니다.

 

 

 

 

Heinrich_Heine-Oppenheim.jpg

*1. 하인리히 하이네(1797~1856)」라고 하면 우리에게는 주로 남녀간의 사랑을 노래한 아름답고 음악적인 서정시의 대가로 알려져 있습니다만, 그는 오히려 그보다도 여러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시로써 그것에 맞선 이들 중 하나였습니다. [독일 근현대 산책] 6편에서 「청년독일파」라고 하여 펜을 들어 사회에 저항한 작가들이 있다고 소개했었는데요, 하이네 역시 이러한 시인 중 하나였던 것이죠. 다만 하이네 자신은 여러 인간관계에서의 껄끄러움이나 개인적인 사상의 차이로 인해 조금 독자적인 노선을 걸었습니다. 가장 큰 차이로는 그 당시 지식인 사이에 널리 퍼져있던 독일 민족주의를 별로 신봉하지 않았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겁니다. 아무래도 그의 부인이 프랑스인이었던데다, 하이네 본인도 프랑스에 크게 매력을 느꼈던지라 독일 민족주의에 거부감이 있었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또 독일 민족주의의 대표자 중 하나였던 「한스 페르디난트 마스만(1797~1874)」에게 뮌헨 대학의 교수자리를 빼앗겼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40개의 댓글

2019.12.19
2
2019.12.19

ㅠㅠ 노동자 괴롭히지 말라

0
2019.12.19

요약:아 혁명마렵다

잘보고있읍니다 낚찌센세

0
2019.12.19

급 궁금한 게 있습니다.

일부 자본가 계급에서는 노동자 계급의 상황을 인식하고 개선시키기 위한 실질적인 노력을 했던 적이 있는 지 궁금합니다.

자본가 계급은 가진 것을 더욱 불리기 위해 또는 지키기 위해 현상유지를 해왔을 것 같다는 게 강해서 말이죠.

 

또한 근현대 산책 2편에서 국민들의 지방행정에 참여하였다고 한다고 하셨는 데 이들은 이 당시에 노동자들이 고통받는 당시에 노동자들을 위한 제도를 마련하는 데에 노동자 실태와 관련된 이야기를 해줬는 지 이점도 궁금하네요. 아직은 왕정이라는 것 때문에 역시 의견을 제시하기 쉽지않고 오직 위에서 내려온 명령을 따르는 것으로만 국한되었을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긴합니다.

 

엥겔스가 슐레지엔의 직조공을 영국에 번역해서 소개했다고 하는 데 혹시 이 일이 영국에서 똑같은 소란이 일어나는 데 기여를 했는 지 궁금하네요.

주변 국가에서 일어났던 일이 자국에 일어나기도 하고, 다른 타국으로 더욱 번지는 일도 생기다보니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0
2019.12.19
@키시구루

1. 자본가 계급의 자발적인 노력에서 시작된 것은 아니지만, 나치 정권의 철퇴를 맞기 싫어서 억지로 노력했던 적은 있죠. https://www.dogdrip.net/231814834 를 보십시오.

 

2. 지방행정에 대한 참여가 처음 시작된 것은 19세기 초이지만, 이 당시 지방행정에 실질적으로 참여한 것은 교양시민계급이고 이들은 아무래도 프롤레타리아보다는 자본가 계급과 더 가까운 사이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대개 정치적 자유주의나 경제적 자유주의의 확대를 논했지 고통받는 프롤레타리아 계급을 대변한 이는 거의 없었습니다. 그랬던 것이 점차 의식적 성장을 통해 1848년 2월 21일 「공산당 선언」이 출판되고, 동년 3월에는 독일 각지에서 혁명이 일어나면서 크게 변화를 겪었죠. 이후 19세기 중후반에는 비스마르크로 대표되는 기득권 세력과의 타협이나 투쟁을 통해 노동자들의 권익을 신장하기 위해 여러 정치가들이 노력했습니다.

 

3. 영국의 노동자들이 「슐레지엔 직조공 봉기」의 영향을 받았는가...에 대한 질문을 하셨습니다만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제 생각에는, 아무래도 영국이라 함은 산업혁명의 최선두주자이니만큼 산업화로 인한 성공도 갈등도 가장 먼저 겪은 나라이기 때문에 독일이 영국에게 전방연관을 미쳤을지는 조금 의문이 드네요.

0
2019.12.19
@Volksgemeinschaft

2번 질문에서의 지방행정 참여자 계급들이 오히려 자본가 계급과 더 가까운 사이였다는 게 놀랍습니다. 아무래도 지방행정에 참여 할 수 있는 것도 그만큼의 여유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이 드는군요.

 

3번째 질문은 오히려 영국이 독일에게 영향을 끼쳤을 가능성은 있겠군요.

0
2019.12.19
@키시구루

그렇죠. 1840년대까지만 해도 독일어를 읽고 쓸 줄 아는 사람의 비율이 전체 독일인 중에서 50%가 될까 말까의 수준이었기 때문에, 아무래도 여유가 있는 사람들만이 책도 읽고 글도 쓰고 정치에도 참여할 수 있었던거죠.

0
2019.12.19
@키시구루

영국도 분명히 영향을 미쳤지만, 프랑스에서 일어난 사건들이 주로 독일에 영향을 많이 미쳤죠. 1848년 독일의 3월 혁명도 원래는 프랑스의 2월 혁명의 영향을 받은 겁니다.

0
2019.12.19
@Volksgemeinschaft

노동자계급이 쌓여서 폭발한 것도 그럼 프랑스의 영향이라고 봐도 무방한 해석인지요?

0
2019.12.19
@키시구루

3월 혁명의 경우는 분명하게 그렇다고 대답드릴 수 있지만, 「슐레지엔 직조공 봉기」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고 대답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해외사정 같은 경우도 기본적으로 외국에 나가보거나 외국어를 할 수 있어야 하는 등의 여유가 있어야 접할 수 있으니까요.

0
2019.12.19
@키시구루

또 19세기 중반 독일에서 2차 산업혁명이 시작된 이후의 산업 노동자들의 삶이 고달프긴 했어도, 19세기 초중반의 「파우퍼리스무스」 시대에 비교하면 그래도 훨씬 나았기 때문에 이번 편에서 다룬 것과 같은 대규모 봉기는 거의 없어졌거든요.

0
2019.12.19
@Volksgemeinschaft

그래도 노동자들은 빈곤한 삶이 유지되었을 텐데 대규모봉기가 없어졌다는 뜻은 생활수준이 많이 늘어났다는 걸 짐작해도 되는 부분인지요? 아무리 제 2차 산업혁명이 일어나더라도 더욱 힘들어졌을 거라고 생각만해서 그런지 대규모 봉기가 없어졌다는 게 많이 의외네요.

0
2019.12.19
@키시구루

오늘날 젊은이들이 집도 못 사고 결혼도 못한다지만 아무리 그래도 60년대 젊은이들보단 유복한 거랑 똑같은거죠 뭐.

0
2019.12.19
@Volksgemeinschaft

사실상 먹고 살기가 더욱 급급해졌다는 것 밖에 안보이는 군요 쩝.... 슬프군요

0
2019.12.20
@Volksgemeinschaft

혹시 독일사 입문서를 이야기 독일사를 사려고 하는 데 괜찮은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0
2019.12.21
@키시구루

목차나 저자 약력을 살펴보니 꽤 괜찮은 책 같아요.

0
2019.12.21
@Volksgemeinschaft

나이스! 감사합니다. 돈이 없어서 만원대에 괜찮은 독일사 입문서를 찾고 있었는 데 잘 찾았네요

0
2019.12.21
@키시구루

혹시 영어도 괜찮으신가요?

0
2019.12.21
@Volksgemeinschaft

제가 영어는 포기하고 일본어로 밀어버린터라... 진짜 못합니다 일본어도 초중급왔다갔다하구요...

0
2019.12.21
@키시구루

일본 서적도 괜찮은거 많던데 추천해드릴까요?

0
2019.12.21
@Volksgemeinschaft

추천은 받더라도 읽을 수 있을지 엄청 걱정됩니다.....

0
2019.12.21
@Volksgemeinschaft

혹시 개드립은 이메일을 주고받는 건 엄격히 금지되어 있나요?? 제가 1년동안 독일사를 준비해서 학교에서 스터디를 운영하려고 계획을 짜고 있어서 하게되면 어떻게 해야할지 틀을 좀 여쭤볼게 많아질 것 같아서 이렇게 물어봅니다. 불쾌하셨다면 죄송합니다

0
2019.12.21
@키시구루

안 들키면 문제없죠. 저번에 어떤 분께서 스탈린시대 공업화를 여쭤보시기에 러시아 자료를 보내드린 적이 있습니다. 미약하게나마 도움이 된다면 저로서는 큰 보람이니 불쾌하리란 생각 마시고 언제든 여쭤보세요. 바깥일을 하느라 댓글이 늦었네요.

0
2019.12.21
@Volksgemeinschaft

진짜 실례가되지 않는다면 이메일주소 여쭤봅니다.

제가 확인하면 댓글이나 이메일보내드릴테니 그때 지워주실 수 있으신지..

제가 이렇게 여쭤볼 수 있는 분을 뵌게 진짜 오랜만이라 실례가되지만 부탁드려봅니다!

아무래도 제가 요청하다보니 조심스럽네요...

0
2019.12.21
@키시구루

아니면 오픈채팅이나 카톡도 방법이 있으니 편하신거 말씀해주히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0
2019.12.21
@키시구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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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21
@Volksgemeinschaft

넵 확인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첫 질문은 새벽즈음에 이메일로 프로이센 근대화 부분을 여쭤보겠습니다! 혹시 프로이센의 근대화 부분의 자료가 있다면 조심스럽게 부탁드리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0
2019.12.22
@키시구루

새벽이라는게 아침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되도록이면 바로 답장을 드리려고 했는데 너무 피곤해서 이만 자러 갈게요..

0
2019.12.22
@Volksgemeinschaft

아이고 너무 늦어서 죄송합니다. 공부하다가 새벽 2시 25분에서야 보냈습니다.

너무 늦게 보내서 죄송합니다. 메일은 보냈으니 확인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0
2019.12.22
@키시구루

늦은 시각까지 열심히 공부하시네요...화이팅!

답변 보내드렸습니다.

0
2019.12.21

ㅗㅜㅑ 내가 수업시간에 발표했던게 그대로 들어가있으니까 신기하누

빨리 비스마르크 시대도 연재해주세요 현기증난단 말이에요

0
2019.12.21
@Sead

덧붙여 하이네는 당시에도 시인으로 유명했는데 저런 성향때문에 반정부인사로 낙인찍히고 나치시대때 가면 아예 작품과 이름조차 지워지게 됐다가 전후에 와서야 다시 조명됨

그나마 가장 유명했던 시 로렐라이는 작자미상 처리되는 정도로 끝났지만

0
2019.12.21
@Sead

게다가 유대인 혈통이라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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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21
@Sead

하이네는 당시로서는 굉장히 특이하게도 반정부ㆍ반민족주의ㆍ반종교의 극단적인 자유주의를 추구했는데, 나치 시대에 와서 이 반정부 기질은 크게 중요하지는 않았으나 반민족주의 기질이 아주 거슬렸고, 또 나치와 결탁한 프로테스탄트ㆍ가톨릭 입장에서는 반종교 기질이 아주 거슬렸던 거죠. 그런데 마침 혈통이 유대계이니 잘 걸렸다 하고 분서 및 금서 조치를 내린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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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21
@Sead

반종교 성향이 나온 김에 생각나서 같이 첨부해봅니다.

https://www.dogdrip.net/227015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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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25

매번 잘 읽고있습니다! ㅠㅠ

혹시 이 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몹시 좋은 사료라고 생각되어지네요

https://www.dogdrip.net/index.php?_filter=search&mid=dogdrip&search_target=title_content&search_keyword=%EB%8F%85%EC%9D%BC%EC%9C%A0%ED%95%99&document_srl=61524838&pag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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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25
@연탄바리

한두번 당한 줄 아십니까? 좀 더 노력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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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26
@Volksgemeinschaft

저희 둘 사이의 관계 또한 히틀러도 모를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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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학문과 여러 제도들은 게르만의 우수성에서 나온줄 알았는데 이런 뒷배경이 있었군요.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는 말을 다시금 느낍니다.

 

중간에 삽입하신 석판화는 그 시대 배경을 모르고 미술적 지식이 없는 제가 봐도 정말 소름이 끼칩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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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28

좋은 글 감사합니다 항상 챙겨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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