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비교를 통한 우리나라 ODA(대외원조) 수령 규모의 평가 결과는 다음과 같이 요약해 볼 수 있다:
우리나라가 받은 ODA의 규모는 절대 규모 차원에서 보면 전세계 ODA 수원국들 가운데 약 20위 정도의 수준에 속한다.
2차대전 이후 전세계적으로 ODA를 위해 사용된 총 자원 중 적지 않은 양이 우리나라에 주어진 셈이다.
그러나 인구 규모나 경제 규모를 고려할 때 우리나라가 받은 ODA 수령 수준은 중위권 정도를 차지한다.
이 결과는 기본적으로 우리나라의 경제성장이 원조를 통한 “큰 밀어주기”에 기인하였다는 명제를 지지한다고 보기 어렵다.
우리나라보다 훨씬 더 많은 규모의 원조를 받은 많은 나라들에서 유의미한 지속적 경제성장이 이루어지지 못한 상황을 쉽게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원조 수령 규모가 월등히 큰 것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원조가 우리나라의 장기적 경제성장에 의미있는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면, 이것은 기본적으로 (서로 반드시 배치 되지는 않는) 두 가지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는 원조의 효과적 활용이다. 많은 개발도상국들과는 달리 우리나라는 원조를 비교적 적재적소에 활용하거나 부정부패로 인한 누출 (leakage)을 비교적 잘 통제했기 때문에 원조가 경제 발전에 기여하였을 수 있다.
이것은 원조의 효과성이 수원국 정부의 책무성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는다는 Burnside and Dollar (2000)의 연구와 일관된 것이다.
둘째는 원조가 자본축적 등을 통해 경제성장에 직접적으로 활용되었다기보다 경제 안정화 등을 간접적 경로를 통해 경제성장에 기여했을 가능성이다.
1950년대에 우리나라에 제공된 원조에 대해서는 이것이 자본재보다는 소비재에 집중되었기 때문에 경제발전에 도움을 주지 못했다는 비판이 많이 제기되었었다.
하지만 소비재 원조가 물가안정 또는 사회 정치적 안정에 어느 정도 기여하고 이것이 자생적 투자를 유발하였다면, 원조는 경제성장에 중요한 기여를 하였다고 평가해 볼 수 있다.
출처: 김두얼(명지대학교 경제학과), 류상윤(LG경제연구원), 한국에 제공된 공적개발원조의 규모추정 및 국제비교, 2014. 1. 23
출처: http://www.bizhankook.com/bk/article/13982
43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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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북춤할아버지
PC 라이센스
606호에 어서오세요
이븐라이드
신경도 안쓰던 쪽발이 왜놈들이 자연재해마냥 휩쓸고 다닐때 도와준 빛빛빛 명나라. 근데 그 다음에 바로 귀신같이 망해서 좋은 모습만 기억에 남음.
미국이 존나게 많이 도와줬지만 우선 분단책임에 가쓰라 태프트 밀약에서 자유로울 순 없는 미국, 거기에 툭하면 나오는 독재정권 지원 여부(이건 팩트 여부를 떠나, 오랫동안 정치에서 입김이 의심받는단 상황) 등 완전 아름답지만은 않게 가고 있지.
뭐랄까 미국은 가끔은 추한 모습도 보여 주는 마누라라면 명나라는 사귀자마자 불치병으로 죽어버린 첫사랑처럼 완전무결한 존재임
지선
이븐라이드
드럽고 치사한 꼴 보여주기 전에 망했단 거지.
지선
아마 사대주의 문제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는거 같은데,
그냥 청에 대한 반감과 소중화주의 때문에 그런거지 명나라가 좋아서 그런게 아니야
이븐라이드
명나라를 조선이 안 좋아했다고? 망했을 시절에? 사르후 전투때도 얘들은 우리한테 지원금 주고 군사요청했지 맨입으로 요청한적 없어. 호란 이후에 우리가 명을 배신한 적은 있어도 명이 우릴 배신한 적은 없었고.
지선
이븐라이드
지선
이븐라이드
난 감정의 이야길 하고 싶었음. 뒤진 애들은 미화되고 무적의 완전무결이 됨. 넬슨이 트라팔가에서 뒤지지 않았으면 여자 따먹느라 작전도 내팽개친 놈팽이로 평가받았을 거고, 알렉산더는 똥꼬충이 됐을지 모르지. 첫사랑이 마누라보다 좋진 않지만 항상 특별한 이름으로 남아 있는 이유는 더이상 볼일이 없기 때문이잖어.
이런 의미에서 하는 말이지 조선의 사대주의가 어쩌고 굴종외교에 재조지은이~ 이런건 내가 말하고 싶은 것도 아니고 관심사도 아님.
싸우지 말고 좋게좋게 확인하구 가자고
이븐라이드
걸스캔두애니씽
마지막 황제이자 좋짱이셨다.
니렙에잠이오냐
년차 익머생
굳이 말하자면 가츠라 태프트로 일본에게 똥 쌀 권리를 주고 태평양 전쟁으로 그 똥물이 자기한테도 튀니 똥통을 통째로 불살라버린 격이지.
결론적으로 똥쟁이 척살은 미국이 손수 함.
여하간 현실적으로 미국이 일제 뚜까패지 않았으면 우린 독립 못했을 거고 했어도 미국 협조없이는 지금처럼 잘 살지는 못했을 게 분명함.
그리고 남북 분단의 책임은 결정적으로 소련한테 있는게 맞음. 애초에 미국을 비롯한 UN은 남북 통합선거를 치루려 했는데
김일성을 위시로 한 이북 친소련 세력들이 그거 쌩까고 지들 맛대로 군 거.
명도 완전무결하지는 않은게 여말선초에 시비 털어댔고, 우리가 만주 진출 하다못해 여진과의 예방전쟁을 치루는 것조차 못마땅해했었음.
정통성가지고 시비털면서 내정간섭 해대고, 지금 미국보다 못한 모습도 많음.
한국사람들 가만 보면 역사를 이상하고 편향적으로 보는 흐름이 강해.
PC 라이센스
당시 사람들은 공산주의를 더 선호하는 사람이 많았어요
공산주의는 가진자들 것을 빼앗아 다 같이 나눠 살자는 주장을 하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다같이 잘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다가 당시 부자들 상당 수가 친일파였거든요
년차 익머생
북한이 통합선거를 하자고 한 자료가 있으면 나도 좀 보고 싶네요.
당시 남한에서는 극좌부터 극우까지 다양한 정당들이 난립하며 대립하고 있었는데 무슨 근거로 공산주의가 우세했다고 주장하시는지?
애초에 국가 조직 자체가 30년간 그것도 근대화를 맞이하는 결정적인 시기에 부재했는데 무엇이 친일이고 무엇이 반일이죠?
당장 일본이 제대로 전수해준 기술력도 없어서 해방직후에 남기고 간 철도 인프라를 관리할 형편조차 안돼서 사고가 빈발하던 시절에
냉전의 첨병의 돼서 좌익과 우익이 극렬하게 대립하던 상황에서 친일 반일을 따지는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지?
정말 친일파들이 집권했다면 그후에 그들이 보인 행보가 정말 친일적이었는지?
애초에 오늘날까지도 일본과의 영토분쟁 대명사로 알려진 독도자체를 대한민국의 영토로 못박은게 이승만 대에 일인데 이게 과연 친일적인 행보라고 생각하십니까? 우리가 오늘날 당연하게 여기는 친일파라는 개념 자체가 후대의 창작입니다.
당시에는 건국에 도움이 되냐 안되냐만이 중요했지.
정의하기조차 애매한 친일행위가 있냐 없냐 같은 걸 따지면서 찬 물 더운 물 가리면서 시간과 자원을 낭비할 상황이 아녔습니다.
PC 라이센스
UN결의안도 미소가 각각 제안했으나 대부분의 UN 의사국들은 자본주의 진영이었기에 소련의 안은 부결되고 미국의 안이 채택되었지요
미국의 안은 쉽게 말하면 선 정부 수립 후 군대 철수인데 소련은 군대가 철수하지 않으면 공정한 선거가 되지 않을 것을 우려했습니다
이러한 판단을 내린 근거는 당시 미군정이 실시한 서울시민이 선호하는 겅제체제 조사 결과입니다.
당시 미군정이 실시한 조사에서 서울시민이 선호하는 경제체제는 자본주의 14%, 사회주의 70%, 공산주의 10%로 나타났습니다. 주로 좌익이 진정성 있게 독립운동을 했기 때문인 것으로 추측됩니다.
38선 이남 민심마저 좌익에 우호적이었고, 해방 이후 국민들의 가장 큰 요구는 신탁통치 반대와 친일청산 요구라는 근거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신탁통치 반대는 진정한 독립을 이룩하지 뭇한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이고 친일청산 문제는 아무리 당시 시대상이 어려웠지만 친일하던 사람들에 대한 분노가 당시에도 매우 컸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승만은 친일하던 사람이 아닙니다. 아무리 나라가 어려웠어도 친일파가 대통령할 정도로 막장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이승만은 개인적으로는 친일파를 싫어하던 사람입니다.
시간 있으시면 다음 글을 한번 읽어보시면 좋겠네요
http://m.mediatoday.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136310#csidx587397d27c4a7d297cdcead6849428c
원문보기:
http://m.mediatoday.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136310#csidxee079d62841124b8584b71167288884
혜화동매콤주먹
혜화동매콤주먹
있는닉네임아없자나
애니메이션
PC 라이센스
ayahyahyah
늉늉이오너
ㄴㄴㅇㅀㄳㅎㅅㅎㅍㄿ
쿠하하
미국의 원조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지원이 훨신큼
이번에 M램을 삼성과 IBM에서 개발했다는대 따지고 보면 미국원천기술
삼성이 램 처음 시작한것도 미국 원천기술에 일본 양산기술
삼성이 메모리에서 시장지배력을 갖는 포인트가 DRAM표준화인대 이 표준을 정하는 기구가 미국협회
혜화동매콤주먹
년차 익머생
당장 처음 무기 자체 생산도 안되던 나라에서 미국이 기술 안주니깐 역설계로 간신히 카피떠서 총 만들고 한게 역사인데
하여간 이상한 소리하는 놈들이 한둘이 아니다..
그리고 말이 근로자 갈아넣기지, 원천기술도 자본도 특별한 자원도 없는 나라에서 압도적인 우위에 있는 국가를 조금이라도 따라잡는 방법은 효율밖에 없어.
가진게 노동력밖에 없는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부지런을 떨어야 그 차이가 0.1mm라도 좁혀지니 부지런을 떤 것이고 결국에
그 과실은 불과 한두세대가 지나기도 전에 명확하게 드러났는데 시대적인 상황은 고려도 안하고 지금 논리를 고대로 투영시키네.
지금 근로환경 개선이 문제가 되는 건 나라가 부강해졌고 노동형태도 바껴서 단순육체노동이 아닌 새로운 아이디어로 부가가치를 창출해야 하는 시대에 접어들었는데도 아직도 구시대적인 마인드에 사로잡혀 근로시간만 강조하니 문제가 된다는 거지.
저런 식으로 앞뒤 맥락 짜르고 기계적으로 현대의 사고관을 과거에 투영시킨다면 세종대왕조차도 전근대적이고 비인륜적인 노비제 옹호자로 낙인 찍힌다.
시리우스바너드
시리우스바너드
문틈
일300
년차 익머생
그걸 해결할 의지도 능력도 없는 것들이 기적 자체가 허구에 사기극이라 공갈을 처대는 거고.
일300
년차 익머생
폐허에서 빠르게 산업을 일군 것만큼은 다소 부작용이 따르더라도 부정할 수 없는 업적이 아닐까 싶어.
일300
년차 익머생
년차 익머생
바꿔 말하면 무일푼에 전후 폐허상황에서 앞으로 100년은 있어야 재건이 될 거란 말을 듣는 상황에서
그 적은 원조자금이나마 얼마나 절실했을 지 다가옴. 결국엔 많고 적음은 여러 변수가 개입하는 상대적인 문제이지
단순히 숫자 놀음으로 끝낼 일은 아니라고 봐.
좆냥이는닥붐
PC 라이센스
그러나 돈의 가치는 계속해서 떨어지는 경향이 있고 마셜플랜은 1947년부터 4년간 무상으로 뿌린(안돌려줘도 됨) 돈인데 반해 우리가 받은 경제 지원은 수십년의 긴 기간동안 그리고 상당액은 차관(빚) 형태였다는 점에 차이점이 있습니다.
1947년의 10억과 1970년의 10억은 금액은 같아도 그 가치는 큰 차이가 있을 겁니다. 단순 숫자 비교로 분석하는 건 의미가 없다는 말이죠..
조쪽에요쪽에
많은 부분에서 이익을 취하긴 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