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머

개가 될 용기와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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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디오게네스. 괴팍한 성질머리 때문에 환영받지 못했던 디오게네스는 홀로 그늘에서 사색한다>

 

디오게네스(Διογένης)는 개를 자처하여 견유주의자(犬儒主義者)라 불리운다. 왜 하필 개를 칭하는고 하니, 개는 예뻐해주면 꼬리치고, 해코지하면 물어버린다는 게 그 이유. 재미 있는 해명이긴 한데, 디오게네스의 삶을 놓고 본다면 적절한 선택은 아닌 듯 하다 : 디오게네스는 남을 물어뜯은 일화만 많을 뿐, 남에게 꼬리치며 아양 떤 기록은 없다시피 하거든. 워낙 성미가 드셌기 때문에 아무도 이 모두까기 인형을 좋아하지 않았고, 시장 바닥에서 살았음에도 디오게네스를 찾아오는 이 하나 없었다고 한다.

 

이 성격파탄자는 하필 역사에 길이 남을 달변가라서 문제였다. 디오게네스는 "당신도 유흥이란 걸 아십니까?" 라고 묻는 사람에게, "물론이오. 다들 씨름 구경하는 거 좋아하시지? 나는 나 자신의 욕망과 씨름하길 즐긴다오. 놈을 고꾸라뜨릴 때의 쾌감은 사내 놈들 샅바 싸움 같이 시시한 것과 비할 바가 못 되고 말고 !" 하고 답하며 무절제하게 놀기 바쁜 사람들을 비판했다. "왜 거지들에게는 적선하면서, 철학자들에게는 한 푼도 주지 않는가?" 라는 질문에는, "사람들은 거지가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느끼면서, 철학자가 되리라곤 꿈에도 생각지 않기 때문이다. 작금의 베풂은 동정심이 아닌 자기 만족에서 비롯한 위선에 불과하다." 라며 통렬하게 일침했다.

 

유명인 중에서도 피해자가 속출하여,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특히나 호되게 뜨거운 맛을 봤지 : 디오게네스가 뼈다귀 한 무더기를 주물거리고 있는 꼴을 본 알렉산드로스는 뭐하느냐고 물었는데, "자네 부친의 뼈를 찾고 있네만, 노예 놈들 뼈하고 통 구분이 안 가서 말이야." 라고 대꾸했단다. 볕 가리니까 꺼지라고 일갈했다는 이야기는 너무도 잘 알려져 있다. 일개 철학자 주제에 역발산의 대왕에게 뻗대며 만담하려 드는 게 썩 마음에 들었던지, 알렉산드로스는 먼 훗날 자신이 세계를 정복하고 나면 그와 나란히 앉아 행복에 관해 논하고 싶다는 말을 건넸다. 그러자 디오게네스는 "지금 당신이 화려하게 갖춰 입은 옷가지를 벗어던지고, 내 옆으로 와서 드러누우면 될 일을 무엇 때문에 그리 질질 끈단 말이오?" 하고 타박했다. 맵다, 매워. 이럴 거면 개가 아니라 악어나 고양이를 칭하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

 

아무리 이 바닥이 이빨 세면 장땡이라지만, 디오게네스처럼 독한 사람은 명줄을 재촉하기 마련이다. 심지어 디오게네스는 땡전 한 푼 없는 신세였고, 권력자는 더더욱 아니었기 때문에 입을 잘못 놀리면 봉변 치르기 딱 좋았다. 그런데 디오게네스는 고대 그리스인 치고는 매우 놀랍게도 90세까지 장수하며 연일 사람들을 성가시게 굴었다. 이런 사람을 용납하다니, 당시 사람들이 너그러웠던 걸까? 바로 직전 시대에 살았던 엘레아의 제논은 "혹세무민하는 죄"로 목을 벤 걸 보면 꼭 그렇지는 않고, 디오게네스의 행실에 무언가 비결이 있는 것이 틀림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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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趙) 간의대부 모수(毛遂). 평원군에게 스스로를 천거하면서 낭중지추라는 고사를 남기는 장면이다>

 

모수의 이름은 「사기 - 평원군우경열전」에서 처음 등장하고서 불과 1년만에 퇴장한다. 같은 시기에 활약한 인상여(藺相如)가 워낙 돋보이는 업적을 많이 남겨서 그렇지, 모수 역시 나라를 구한 사람인데 어찌 그럴 수 있는가. 이는 공교롭게도 모수의 공훈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 별 수 없는 노릇이다.

 

기원전 260년, 장평대전으로 진(秦)에 굴욕적이게 패한 조(趙)는 45만 대군이 몰살 당하고 땅도 거의 다 빼앗겨 수도까지 포위된 신세였다. 당시 조나라 임금이었던 효성왕(孝成王)은 다급한 마음에 삼촌인 평원군(平原君) 조승(趙勝)을 시켜 진과 체급이 비슷한 초()로부터 군대를 빌려오게 했다. 평원군은 인재 모으기를 즐겨서 문하에 식객만 3,000 명이나 되었다고 하는데, 효성왕의 분부를 받자 자기 사람 중에서 초나라 사절단으로 데려갈만한 인재를 선별하기 시작한다. 그가 내정한 사절단의 기준은 "문무겸비" 였으니, 사방천지에 도사리는 진나라 군사들을 뚫고서 먼 남방의 초나라까지 자신과 함께할 용사들을 원했기 때문이다.

 

19명까진 어떻게 뽑았는데, 제후는 모름지기 20인의 호위를 거느려야 예법에 맞았다. 평원군은 바로 그 한 명이 모자라서 식객들을 다시금 둘러봤지만, 아무래도 자격미달이었다고 한다. 그러던 차에 평원군 밑에 있던 모수가 썩 나서서 자기 자신을 추천했다. 문제는 평원군이 그의 이름조차 몰랐을 정도로 모수는 듣보잡이자 신출내기였던 점이다. 평원군이 "너 나 하고 몇 년 됐지?" 하고 묻자 모수는 3년이라 답했는데, "송곳은 주머니에 감추어도 삐죽이 튀어나온다지? 3년이나 한 솥 밥 먹고 지냈는데 내가 이름도 모르는 걸 보면, 아마 재주가 부족했나 보다." 라는 소리로 사양하는 말만 들었다. 그러자 모수는 "그 동안 주머니에 들어갈 일이 없어서 못 보여드렸지마는, 오늘 한 번 넣어주십시오. 자루까지 보여드리겠습니다." 라고 호기롭게 내질렀다. 그 유명한 낭중지추 고사 되시겠다. 그리하여 평원군은 모수를 포함한 20인의 사절단을 꾸려 초나라로 향했다.

 

다행히도 평원군과 일행은 초나라까지 무사히 도착해 임금을 알현할 수 있었다. 이 때 초의 군주는 고열왕(考烈王)이었는데, 대략 10년 정도 진에서 인질 생활을 하다가 갓 즉위한지 3년 되어가는 참이었다. 그의 부친과 조부 또한 진에 싸움을 걸었다가 참패한 경력이 있어, 고열왕은 진의 저력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나라가 풍전등화인 평원군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진에 대항했다가 뒷일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던 고열왕은 지원군을 보내는데 망설여졌다. 때문에 두 사람이서 초와 조의 연합에 관해 논의했지만, 한나절이 지나도록 접점을 찾지 못 했다.

 

평원군을 따라온 19인의 참모들은 다급한 마음에 모수를 들들 볶아댔다. 야, 송곳, 나가서 뭐라도 좀 뚫어 봐. 그러자 모수는 대뜸 칼을 차고 올라 고함을 질렀다. "대관절 파병 할지, 말지를 정하면서 무슨 도의며 명분을 따진답시고 한 세월이 다 가도록 못 정한답니까?" 고열왕은 이름도 모르는 놈이 갑자기 튀어나와선 무례하게 구니 분노했다. "내가 네 놈의 주인과 천하 대사를 논하고 있는데,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대드느냐?" 이에 모수는 칼자루를 어루만지며 대답했다. "대왕께서 초국이 강성한 것을 믿고 저를 꾸짖으십니다만, 눈앞의 제 칼과 초나라 군사 중 누구 손에 목숨이 달려 있는지 잘 생각해 보십시오." 물론 거기서 그치지 않고, "상 탕왕은 70리의 땅만으로도 천하를 제패했고, 주 문왕 역시 100리의 영토만으로도 제후들을 복종시켰습니다. 이는 시세를 잘 살핀 덕택이지요. 초왕께선 5천 리나 되는 땅을 다스리시고, 군사도 백만이 넘습니다. 그런데 고작 진나라의 보잘 것 없는 백기(白起) 놈을 두려워 하여 3전 3패 했으니, 수치스럽지도 않으십니까? 조나라는 초나라와 연합함으로써 그 설욕을 돕겠다는 것인데, 시기를 놓쳐서 천하를 호령할 기회만 날리시렵니까." 라는 부연설명도 잊지 않았다. 고열왕은 이를 깨물더니 평원군과의 연맹을 결정짓는다.

 

우와, 해냈구나, 모 송곳 ! 고열왕은 약조대로 원군을 보내 조를 포위한 진 군대를 물리게 했고, 조는 가까스로 명맥을 이을 수 있게 됐다. 모수의 명성이 조나라에 울려퍼진 순간이었다. 평원군은 귀국하여 모수의 활약상을 소개하면서, "내가 사람을 함부로 논평했다가 걸출한 인재를 못 알아 볼 뻔 했다. 다시는 남을 가벼이 평가질하지 않겠다." 는 말까지 남겼다. 이렇듯 빼어난 재담에 힘입어 모수는 3년만에 무명의 신예에서 평원군의 귀빈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하지만 모수의 영광도 여기까지였으니, 조가 약해진 틈을 타 이웃나라인 연(燕)이 출병하여 침략을 획책한 까닭이다. 연나라 원정대는 재상인 율복(栗腹)의 지휘를 받고 있었는데, 조나라는 진나라와 대적하느라 이에 맞설 장수가 마땅찮았다. 효성왕은 꾀 많은 모수라면 적당하겠다고 생각해서 그를 보내 상대하도록 했으나, 모수는 변사(辯士)일 뿐 군략은 없어 난처해 했다. 몇 번의 사양하고 강권하는 실랑이 끝에 결국 모수가 방어 사령관이 되었지만, 그와 함께 파견된 조군은 전멸을 면치 못했고 창장(昌壯) 땅마저 빼앗기고 말았다. 가까스로 도망친 모수는 군왕을 뵐 면목이 없다며 자결로 생을 마감한다.

 

당초 모수는 고열왕을 윽박 질러 혈맹을 맺는데 성공하자, 그 자리에 있던 평원군 측 참모진들의 무능함을 꾸짖었다고 한다. "당신네들은 남의 힘을 빌어 출세하는 소인배들일 뿐이오 !" 랬다나? 기개 넘치는 듯 보이는 말이지만 실상은 모수 본인에게도 그대로 해당되는 말이다. 평원군이 없었던들 모수가 초나라 군왕 앞에서 입이라도 떼봤을 성 싶은가. 그런 주제에 남은 무안 주고 자기 생색은 거창하게 냈으니, 주군의 신임은 얻었을지 몰라도 주변에서 그를 시기하는 사람이 생길 수 밖에 없었다. 또한 평원군 곁에서 3년을 머물렀다고 했는데, 그 때면 장평 대전 기간 아닌가. 위태로운 전란기였던만큼 모수가 그토록 찾던 "주머니"는 오히려 당시에 더욱 많았을텐데, 왜 송곳이 되길 청하며 나서지 않았는지 의문이다.

 

이러니 기회주의자를 고루하게 여기던 당시 선비들 눈에 모수의 처신은 영 아니꼬웠을 것이다. 아마도 모수가 해결사를 자처했듯이 진작부터 평원군을 위해 물불 가리지 않고 투신했더라면, 일찌기 명성을 알리고 주위로부터 인정 받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고작 입으로 흥했으면서 입방정을 떨어 기껏 쌓아올린 과업을 의심하도록 만들었으니 자업자득이었다. 결국 효성왕이 억지로 떠안긴 총책을 감당하지 못해 근심할 때, 누구 하나 거들며 구원해주지 않아 파멸에 이르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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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형(禰衡), 정평(正平). 조조의 명으로 북을 치는데, 복장을 지적 당하자 홀랑 벗는 장면이다>

 

독설가를 논할 때 예형을 빼놓을 수는 없지. 「후한서 - 예형열전」에 따르면, 예형은 어려서부터 입담이 거칠어서 남들이 그와 논쟁하길 꺼려했다고 적혀 있다. 천성이 오만하고 가학적이었나본데, 말주변까지 탁월한 바람에 주변인들의 미움을 사기 쉬웠고 실제로도 그러한 삶을 살았다.

 

예형은 스물 셋이 넘자 부지런히 청탁을 넣고 다녔다. 아마도 관직이 없어서 몸이 달았던 모양. 어찌나 열심이었던지, 자기 소개할 때마다 내밀었던 명패의 글자가 닳아버렸을 정도였다. 그러나 워낙 예형의 악명이 자자했기 때문에 끝내 아무도 그를 천거해주지 않았다고 한다. 상심했을 그에게 누군가가 "진군(陳群)이나 사마랑(司馬朗)을 찾아가보는 것이 어떤가?" 하고 권했다. 두 사람 모두 인재 채용에 관한 업무를 보는 중이었고, 결정적으로 조조의 측근들이어서 입김이 충분히 들어갈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예형은 "내가 왜 백정 놈들한테 비벼야 한단 말입니까?" 하고선 면박을 주었다.

 

하루는 예형이 당대의 인물평을 부탁 받았다. 이에 예형은 "공융(孔融)과 양수(楊脩)를 제외하면 모두 밥버러지다." 라고 단언한다. "순욱(荀彧)이랑 조융(趙融)도?" 라는 반문에는, "얼굴만 반반한 순욱이나 처먹기만 잘 하는 조융이 무슨 인물씩이나 된다고 논할 가치가 있는가?" 하고 치받았다. 이는 예형의 색깔을 드러내는 언사였다 : 공융과 양수는 언변에 능하기로 정평이 났었기 때문에 예형 또한 그들을 높이 평가한 반면, 순욱과 조융은 용모만을 기준으로 모멸한 것이다. 아마도 본인만큼 재담이 넘치는 사람들은 인정해주어도, 과시욕 없는 사람들의 재주는 딱히 알아볼 마음도 없었던 게 아닌가, 싶다. 순욱조차 기생오라비로 볼 뿐이었다니, 오만했다는 말이 딱이네 글쎄.

 

공융은 예형의 막말들이 그의 대담한 성품에서 비롯했다고 봤던지, 그를 인걸이라고 추켜세우며 적극 기용할 것을 상소했다. 공융의 표현을 빌리면, "용을 얻어 은하수를 거닐게 하시면 온 나라에 그 광채가 떨칠 것입니다. 제 목을 걸고 보증합니다." 라고 할 만큼 열렬히 예형을 찬양했다. 당시 조조는 협천자를 천명하고 전국의 어그로를 끌던 터라 널리 인재를 구하는 처지였고, 공융이 마침 천거하니 예형을 불러들이기로 했다. 한데, 날백수인 예형은 자기가 미친 병을 앓는다는 핑계로 천하의 조조를 바람 맞힌다. 뿐만 아니라 "이런 놈들 우두머리나 하고 앉았으니, 조조도 별 것 없구만." 이라는 식으로 조조와 그 세력을 싸잡아서 깔아뭉개버리는 발언을 하여 공분을 샀다.

 

천자를 데려오면서 원소(袁紹)와 결별하게 된 조조는 세력 안정화를 위한 시간을 벌어야 했다. 그리고 바로 아래에 도사리는 형주(荆州)의 유표(劉表)는 큰 위협이었고. 유표는 대놓고 원소 편을 들었던만큼, 화친을 통해 긴장을 줄여야만 했는데, 그러려면 예형 같은 세객을 보낼 필요가 있었다. 조조 입장에선 개빡치는 일이지만, 말 솜씨 하나는 뛰어나다고 두루 인정 받는 놈을 건방지다고 내치기도 영 아쉬웠을 것이다. 결국 조조는 굴욕을 무릅쓰고 예형을 다시금 불렀고, 예형 역시 실컷 비방하고 놀려먹어 놓고선 조조 밑으로 임관한다.

 

조조는 예형의 성질을 길들일 요량이었는지, 큰 잔치를 열어 빈객들을 초대한 다음 그로 하여금 북을 연주하도록 했다. 당대 선비들의 소양 중에 음률을 다루는 것도 포함되었으므로, 일종의 자질 검사였다. 하지만 조조는 예형 몰래 사람들에게 드레스 코드를 지정해 주었으면서, 예형더러는 귀띔해주지 않음으로써 짓궂은 장난을 쳤다. 이윽고 연주 시간이 되어 예형은 북을 울리며 연회장에 들어섰지만, 관리들이 "옷이 그게 뭐냐?" 라고 꾸짖었다. 그런데 예형은 기죽기는 커녕, "까짓거 갈아 입으면 되지." 라더니 옷을 홀랑 다 벗어버리곤 새 옷 갖고 오라고 소리 쳤다. 모두들 남사스러워 하면서 고개를 돌리고, 무례한 젊은이를 향해 혀를 찼으나 예형은 아랑곳 않고, "이 자리에 앉은 사람들 중 내 몸이 제일 고결하니 드러낸들 무슨 허물이겠소." 하며 너스레를 떨었다. 할 말을 잃은 조조는 오히려 자기가 창피를 당했다며 웃어 넘겼다.

 

예형은 갈수록 불손해져서 그를 추천한 공융은 맨날 조조한테 불려가 사과하는 게 일과였다 : 조조의 군영을 통금 시간 넘어서까지 지나려다가 제지 당하자, 작대기를 구해와선 바닥을 내려찧고 욕설을 퍼부은 일도 있었다. 위병이 웬 미친놈이 발광 중이라고 보고할 정도면 어지간히도 요란스럽게 굴었나보다. 조조가 이런 일로 투덜댈 때마다, 공융은 "그가 재주는 정말 뛰어난데, 지금은 병 중이라 정신이 약간 오락가락 합니다." 라고 해명하며 진땀을 뺐다.

 

조조는 예형을 채용한 당초의 목적대로 형주 가서 유표의 항복을 받아오라 명했는데, "그런 잔심부름은 다른 사람 시키시죠?" 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참다 못한 조조는 억지로 예형의 양 팔을 잡아 끌어다 말 위에 앉히고 형주로 쫓아 보내라고 지시했다. 다만 예의 상 외교 사절이랍시고 송별까진 허락해줬는데, 간소하게 차린 전송식에서 아무도 싸가지 없는 예형을 위해 술을 바치거나 인사하지 않았다. 그러자 예형이 곡소리를 내면서, "사람이 지나가는데도 통 반응들이 없으니, 이 놈들은 전부 송장이고 여기는 무덤이었구나 !" 라고 드립을 쳤다. 고인 취급을 받아 발끈한 좌중이 사람도 사람 나름이라며 욕을 해대자, 예형은 "나는 한 왕조의 신하라서 너희처럼 무도하지는 않도다." 라며 놀려댔다. 인격자로 유명한 순욱조차 이런 모욕을 못 참고 "저런 쥐새끼 같은 놈 !" 하고 달려들었지만, 예형은 "나는 쥐새끼라서 낟알을 먹지만, 너희는 분변이나 받아 처먹는 구더기떼 아니더냐?" 하고 반격을 가한다. 끝내 그들은 예형이 말을 몰고 가는 뒷모습을 지켜봐야만 했다.

 

유표라고 해서 야생마 같은 예형을 품을 도리가 없었다. 예형은 유표 휘하의 모사들을 상대로 설전을 벌여 모조리 논박해버리고, 유표 본인의 저서들을 훑어보더니 그대로 외워서 형주 관원들 기를 죽였다. 게다가 유표가 손책(孫策)에게 쓴 친교 문서를 제멋대로 첨삭하며 "이런 애새끼들 수준의 글을 어떻게 보낸단 말이오?" 라고 대차게 까버렸다. 이렇듯 예형이 점점 교만해지자, 외교 사절이고 뭐고 유표로서는 그를 감당하기 어려워졌다. 유표는 자기 휘하의 황조(黃祖)가 예형을 흠모한다는 말을 듣고는, 인사나 한 번 하고 오라고 핑계대며 내쫓듯이 보내버렸다.

 

조조나 유표는 나름대로 먹물 좀 찍어 본 식자층이었지만, 황조는 무부였다. 때문에 예형이 부리는 말재간을 특별하게 여기며 크게 우대했다. 황조는 조서를 꾸미거나 할 일이 생기면 예형을 불러다 의뢰했는데, 그가 빼어난 글솜씨로 유려한 문장을 지어내자 더욱 존경했다. 또한 연회를 자주 베풀어 예형을 아끼는 뜻을 내비쳤다. 하지만 예형의 불손함은 변함 없었다 : 황조와의 회식 자리에서 예형은 전혀 즐겁지 않은 기색을 노골적으로 띠며, "강하(江夏) 사람들 중에 더불어 이야기할 사람이 없다." 고 투덜거렸다. 실제 어조는 좀 더 심해서 "사람 새끼가 없네." 정도였을 것이다. 놀란 황조는 동석한 손님들께 대신 사죄하며 예형을 다그쳤지만, 그런 황조에게도 "늙갱이가 어딜 감히(실제로 한 말) !" 하며 대들었다. 이번만큼은 황조도 못 참고 예형에게 벌을 주려 했는데, 도리어 예형이 심하게 반발하였다. 그러자 대노한 황조, 아예 예형을 참형에 처해버렸다. 예형은 그렇게 26세의 젊은 나이에 목 없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예형은 나이도 어린 게 어째서 이토록 대책 없이 막 나갔던 걸까. 그가 지은 시 "앵무부(鸚鵡賦)"를 살펴보면 무슨 생각이었는지 대략 엿보인다 : 앵무새를 보고 지은 이 시는 새의 아름다운 깃털과 사람의 말을 따라하는 지혜를 칭송하면서, 동시에 타향만리 길을 붙잡혀 와 구경거리로 전락한 신세를 위로하고 있다. 그런데 예형은 인간의 욕심이 앵무새를 새장 안에 가두었다는 표현을 썼다. 새에 대한 화자의 연민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한편, 공교롭게도 동탁(董卓)과 조조의 손아귀에 놀아나야 했던 천자의 처지가 앵무부에 등장하는 앵무새와 흡사하다. 이는 천자를 앵무새처럼 가두고 이용해 먹으려는 군웅들을 풍자하는 예형의 뜻이 담긴 시적 장치라고 볼 수 있겠다.

 

기본적으로 그런 시각이었다면 대다수 영걸들이 예형 눈에는 비루하게 보였을 법도 하다. 명색이 유자, 한실의 재건을 천명하는 자들이 천자를 겁박하고, 명교를 무시한 채 입신양명만 좇는 꼴이 우스꽝스러웠겠지. 그러나 이를 비판하는 방식이 너무도 교격한 게 문제였다. 자기만 고고한 척하면서 남들을 시류에 편승하는 자들로 여기고, 단점을 지적할 때도 사정을 봐주지 않아 상처를 후벼 파듯이 했다. 새파랗게 어린 놈이 관록을 쌓은 실무 책임자들을 무시했는가 하면, 때로는 별 이유도 없이 시비 걸고 욕지꺼리를 하면서 마구 공격했다. 그런 주제에 본인은 아무런 행적도 남기지 못 했으니, 남들 눈에 으스대기만 좋아하는 빈 수레로 여겨져도 할 말이 없다.

 

가장 심한 부분은, 예형 본인도 그다지 독야청청한 게 아니었다는데 있다. 예형의 고향은 청주(青州)였으나 스물 셋 쯤에 서주(徐州)에서 대학살이 발발하자 형주로 피난 했었다. 그런데 조조가 예주(豫州)에 천자를 데려와선 새로이 도읍지를 건설하자, 굳이 거기까지 가서 명패의 먹물이 닳을만큼 유세하며 구직 활동에 나섰다. 그가 천자를 모시기 위해 예주로 간 것 아니냐고도 할 수 있지만, 그랬으면 왜 동탁과 그 잔당이 위세를 떨치던 때에 황궁으로 가서 천자를 위해 일하지 않았나? 그토록 실력에 자신 넘치는 사람이 충의지사이기까지 하다면, 가상하게 여긴 사람들의 도움으로 의분을 떨쳤을 법도 한데. 하지만 입으로는 밥통이니, 술통이니 해대며 모욕했던 사람들과 함께 일할 생각을 했으니, 언사가 실질에 따르지 못 했다. 결국 자신이 그토록 모질게 비판한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행동한 것이다.

 

차라리 본인도 어느 정도 인망과 세력을 형성한 다음, 사세만 살피는 풍조를 바꾸려 했다면 뛰어난 언변에 힘입어 성공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고루한 이상주의를 취하느라 본인의 편협한 관점이 얼마나 고립되어 있는지를 깨닫지 못한 예형은 저 잘난 맛에 살다가 명운을 달리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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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쥘 바스티앙 르파주, 디오게네스. 어쩐지 그는 지금 울먹이는 듯 하다>

 

이쯤 되면 눈치 챘겠지만, 디오게네스가 모수와 예형의 최후를 따르지 않을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솔선수범"이었다. 디오게네스는 말은 저리 퉁명스럽게 했어도, 항상 주제는 인간의 덕성 회복에만 머물렀고, 본인도 그를 몸소 실천하고자 했다. 그가 했던 독설이나 풍자들은 대상의 비인간성이나 시대의 난망함에 대한 공격이 대부분이다. 이 시기 인간의 덕성이 어쨌기에?

 

역사적으로 기원전 5세기 경부터 4세기에 이르기까지, 아테네는 그야말로 쉴 새 없이 전쟁만 일삼는 세월을 보냈다. 초반의 아테네는 세 차례에 걸친 페르시아의 공격을 모두 막아내고 도리어 역공을 가하여, 바다 건너 아나톨리아에 식민지를 차리고 아티카와 에게 해를 아우르는 종주국으로 거듭났다. 그러나 이러한 아테네의 팽창주의적 행보를 못마땅해 한 스파르타가 동맹들을 규합해 싸움을 걸었으니,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발발했다. 전쟁 동안 힘의 저울이 스파르타 쪽으로 기울어 가는 것이 보이자, 아테네의 속주였던 많은 도시 국가들이 독립하려 했다. 때문에 아테네는 세력의 이탈을 막기 위해 반란을 진압하는데 열을 올렸다.

 

당시 아테네의 생각은 클레온(Κλέων)이 잘 보여준다 : 유력한 정치인이었던 그는 미틸레네가 반란을 일으키자, 해당 식민지의 갓난아이부터 노인네에 이르기까지 모조리 주살하여 본보기를 보이자는 소리를 지껄였다. 처음에는 아테네 민회도 설득 당해 "그러자 !" 라고 동의했다가, 다음날 잔혹성을 깨닫고는 표결을 번복하여 주동자 1,000 명만 죽이는데 그치는 관용(?)을 보인다. 한데 멜로스도 반란을 일으키자, 그동안 너무 안일했다고 여긴 아테네는 시민 투표 끝에 클레온의 계책을 쓰기로 결정, 남자는 모두 죽이고 여자와 아이는 노예로 팔아치우며, 도시는 불태웠다. 멜로스는 지도에서 사라졌다. 이후로도 아테네는 끊임 없이 식민지들의 반란과 맞닥뜨렸고, 그 때마다 가차 없이 철퇴를 내려 스키오네, 토로네 등의 도시가 멸망했다.

 

문화적으로 기원전 5세기 경, 아테네는 성인 남성에 한해 시민권을 부여하여 제한적으로나마 민주정을 발족시켰다. 민회는 아테네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민주적 방식의 정치 참여 제도로, 1년에 40여 회 가량 개회되어 시민들의 의결이 아테네 국정에 반영되도록 했다. 이 시기 페리클레스(Περικλῆς)의 주도 아래 대규모 공사가 시행됐는데, 그 대표적인 완성품이 파르테논 신전이다. 소포클레스(Σοφοκλῆς), 에우리피데스(Ευριπίδης) 등의 뛰어난 문인들이 명작을 지어다 아테네에서 상연했다. 비싸디 비싼 청동의 사용량이 늘어 조각상에도 쓰이게 된 게 이 시기였다. 수많은 자연 철학자와 수사학자들이 아테네로 모여들어 학술적 담화도 연일 오고 갔다. 그야말로 아테네는 지중해에서 첨단을 구가하는 문화 중심지였다.

 

그러나 아테네 시민들이 민회 나가서 일 보면, 누가 경제 활동을 하지? 맞아, 아테네는 이웃나라로부터 쟁탈한 부(富)와 막대한 규모의 노예를 활용했다. 노예는 아테네 인구의 25%를 차지할만큼 많아서, 집집마다 농부가 한 둘씩은 꼭 있었으며 유력자들은 1,000 명 가량의 노예를 거느리곤 했다. 이런 식으로 획득한 재화를 비단 정치에만 쓴 게 아니라, 제사와 신전 및 신상 축조 등의 종교적 활동에도 쏟아부었는데, 그 이유는 "아테네는 신께서 보우하시는 나라" 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직전까지 붙어먹던 페니키아, 이집트 등 동방 사람들을 멸시했다. "바르바로이(βάρβαροι)" 라는 말의 뜻이 "우리 말 할 줄 모르는 사람" 에서 "야만인"으로 변질된 시기도 이 때였다. 페르시아를 물리친 위업에 대한 자부심으로, 아테네인들은 다른 나라를 아테네가 당연히 지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당대의 장군이자 역사학자인 투키디데스(Θουκυδίδης)는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는 것은 자연의 섭리인즉, 신들조차 이를 가상히 여기신다." 는 말로 아테네에 만연한 패권주의적 사회 기조를 소개하고 있다.

 

지랄 났다 씨발놈들아. 명색이 민주주의의 본고장이자 서구 문명의 요람이라는 나라에서, 사람의 씨를 말려버리자고 당당히 투표하고, 저들 잘났다고 알량한 권세에 기대어 타국을 얕잡아 보고, 걸핏하면 침략해 포로로 끌고 올 수 있단 말이냐?

 

디오게네스는 이러한 사태의 원인을 사회 · 문명 그 자체에서부터 찾았다. 소위 문명인을 자처하는 사람들의 추악하고 거만한 행실이 당대의 문제를 낳았으므로, 아주 틀린 진단은 아니었다. 그는 아테네가 외적 확장을 거듭하는 동안 내적으로 인간성을 상실했다는 사실을 통찰해냈다. 그래서 나처럼 아테네의 광기 어린 폭주와 인간이 이룩한 문명 일체를 경멸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 그러나 디오게네스는 아테네를 외면하는 대신 병폐를 치유할 방법을 제시했다. 바로 금욕(禁慾)이다 : 미덕의 결정체인 신들이 아무런 문명적 요소도 필요치 않은 점에 착안한 디오게네스는, 인간도 문명의 그늘로부터 벗어나야 자연신의 미덕에 가까워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문명의 잔재인 권위와 재물 등을 욕심내는 사람들을 가열차게 비판하고, 한편으로는 절제를 통해 덕을 쌓도록 강조했다. 당신 뭐하는 사람이냐는 필리포스 2세의 질문에 "나는 네 탐욕의 정찰병이다." 라고 쏘아붙인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디오게네스는 모수 · 예형과 달리, 직접 금욕적인 삶을 영위함으로써 아테네인들에게 모범을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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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롤라모 포라보스코, 물 마시는 디오게네스. 기왕에 모든 걸 다 버렸으면서, 그릇은 왜 갖고 있어야 했는지를 자조한 그는 이윽고 그조차 내다버렸다>

 

개의 삶을 충실하게 추구했던 디오게네스는 개가 마땅히 지녀야 할 것들 외에 모든 것을 내팽개쳤다. 술통 하나를 어딘가서 구해온 뒤 거처로 삼았고, 의복도 거적데기 한 벌만 지녔으나 이내 벌거벗고 다녔다. 밥은 늘 길가의 콩잎을 따서 삶거나 했으며, 때로는 구걸도 서슴지 않았다. 물가에 엎드려서 손으로 물 마시는 소년을 보고선, 자신이 아직도 가진 게 많음을 탄식하며 물 떠마시려던 사발을 내던졌다는 이야기도 있다.

 

재산 뿐만 아니라, 관습과 전통 역시도 디오게네스에게는 버릴 물건에 지나지 않았다 : 당시 그리스인들은 공공 장소에서 사적인 용무를 보는데 거부감을 느꼈는데, 디오게네스는 아무데서나 먹고 마셔서 눈총을 받았다. 그러자 "밥 먹는 게 무슨 대수라고 비밀스럽게 식탁에 앉아서 먹을 일이란 말인가?" 하고는 태연히 식사를 마쳤다고 한다. 흙 묻은 발로 아무 곳이나 드나들었는가 하면, 자신을 구경거리 삼는 이들에게 오줌을 갈겼다는 일화도 있다. 이렇듯 디오게네스는 예절과 품위처럼 사람 사이에 으레 차리는 격식마저 개의치 않음으로써 당대 사람들에게 충격을 안겨줬다.

 

무턱대고 다 갖다 버리고 나면 뭐가 남는데요. 디오게네스는 위대한 자유, 진정한 자존이라고 설명한다. 칼리스테네스가 알렉산드로스에게 특별한 은혜를 입었다는 말을 들은 디오게네스는 범부들처럼 부러워하는 대신에, "불쌍하구나. 칼리스테네스는 앞으로 알렉산드로스의 변덕에 비위를 맞추며 살아가야 할테니." 하고선 혀를 끌끌 찼다. 아니나 다를까, 칼리스테네스는 알렉산드로스에게 거슬리는 발언으로 목이 달아난다. 반대로 디오게네스는 군중들 사이를 벌거숭이인 채로 돌아다니고, 집도 절도 없이 떠도는 신세라 명예며 체통이며 할 게 없었다. 때문에 인기로 먹고 사는 정치인들, 수사학자들에 비해 훨씬 자유로웠다. 무엇 하나 가지지 않았고,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았기 때문에, 디오게네스는 거침 없이 행동할 수 있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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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드라스, 디오게네스와 생닭. 네 말대로면 얘도 사람인거지? 하고 놀리는 표정이다>

 

내 생각에, 디오게네스가 개 행세를 하게 된 데는 그의 학통의 영향이 지대했다고 본다. 디오게네스의 스승 안티스테네스(Ἀντισθένης)는 행복감을 죄악시 하고, 미덕 이외의 것에 만족할 줄 모르도록 가르쳤다. 아마도 그 자신의 스승인 소크라테스가 타락해가는 아테네 공동체의 각성을 촉구하며 끝없이 시민들을 훈계했듯이, 안티스테네스 역시나 자만하지 말고 덕을 갈고 닦도록 제자들을 다그친 모양. 그런데 안티스테네스는 덕의 수양에 있어 필수적으로 노력, 말하자면 행동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덕이란 훈련의 성과이며, 누구나 배울 수 있지만 체화를 위해선 거듭된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또한 고행이 좋은 것이라고도 했는데, 그 자체로 좋다기보단 고난을 맞은 사람은 이겨내기 위해 노력하므로, 그러는 사이 똑같은 고생을 하지 않도록 준비하는 덕을 쌓기 때문이란다. 그렇게 이어지는 인간성 수업의 실천 정신에 따라, 디오게네스도 개를 따라하는 기행으로써 스스로를 경계하고, 한편으로는 타인의 안일함을 꾸짖게 된 게 아닐까, 한다.

 

똑같이 소크라테스의 제자였던 플라톤은 미덕의 중요성을 강론하긴 했지만, 이를 재주 있는 특정 인재들에게만 가르쳐서 디오게네스와 마찰이 잦았다 : 플라톤은 시민 개개인의 각성보다 정치에 기대를 걸었다. 여론에 휘둘리는 중우적 민주정에 비해 선(善)의 이데아를 인지하는 철학자의 독재를 지지한 것도 그 이유였고, 장차 나라를 이끌 인재들에게 미덕을 갖추도록 가르친 것도 그래서였다. 한데, 플라톤이 설립한 학당의 입구에는 "기하학을 모르는 자, 이 문을 넘지 말라"는 말이 적혀 있었다. 다시 말해 입학에 자격 제한을 둔 셈인데, 그 좋은 미덕이란 놈을 몇몇이서 나눠 먹으려 들면 이것도 결국 권력이 되고 재산이 되는 것 아닌가? 디오게네스가 물어 뜯을만 한 일이다. 게다가 플라톤이 저서에서 철인정치를 운운하며 학당에서 고고한 이상을 펼치고 있을 때, 디오게네스는 길거리의 사람들을 붙잡고 소리치며 부대꼈다. 그런 디오게네스의 눈에는 스승들이 목숨 걸고 광장으로 나와 아테네의 폐단을 해결하고자 노력하는 모습을 봐놓고도 고루한 이상론만 늘어놓으며 점잖빼는 플라톤이 아니꼬웠나 보다.

 

세계를 이데아계와 물질계로 나누고 인간의 영혼에 이데아계를 인식하는 수가 있다고 설명하는 플라톤에게, 디오게네스는 "그럼 어째서 이 많은 사람들 중에 너 말고 이데아를 봤다는 사람이 없단 말이냐?" 하며 성질을 긁었다. 플라톤이 이데아의 투영에 불과한 현실의 가치관에 매몰되지 말라고 가르쳤으면서 정작 본인은 저택에서 사는 걸 보자, 디오게네스는 무작정 집 안으로 쳐들어가서 난동을 부리며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놓았다. 플라톤이 인간을 "털 없고 걸어다니는 짐승"이라고 정의하자, 생닭을 들고 와서 조롱한 일화도 있다. 웬수 같은 디오게네스가 자꾸만 훼방을 놓아대니, 플라톤도 인내심을 잃고 "미친 소크라테스 같으니." 라는 평을 남겼다. 후일 이 말은 그대로 디오게네스를 찬양하는 문장으로 길이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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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티아 프레티, 정직한 이를 찾는 디오게네스와 등불. 디오게네스의 유일한 소유물은 등불이어서, 오래도록 그를 상징하게 된다>

 

디오게네스는 대낮에 광장을 쏘다니면서 희한하게도 등불을 켜고 돌아다닌 적이 있었다. 사람들이 무엇 때문에 그러느냐고 묻자, 디오게네스는 "인간을 찾고 있다네." 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러나 디오게네스는 날이 저물 때까지 끝내 인간을 찾지 못 했다. 인간성이란 한 번 잃어버리고 나면 그토록 찾기 요원한 것이고, 잠깐의 방심으로도 금새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때문에 디오게네스는 개의 본분이자 인간이 개를 기른 목적대로, 열심히 짖어서 아테네 사람들의 미덕이 도둑 맞고 있다는 사실을 알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깨닫지 못한 아테네는 불의한 전쟁을 계속하고 약자에 대한 연민을 잃은 채 방만했다가 다시는 예전처럼 위세를 떨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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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오게네스처럼 배운대로 행하는 건 여간 힘든 게 아니다. 누구나 말로는 이상론을 펼칠 수 있고, 호랑이 수염도 낚아챌 수 있지만, 스스로 그것을 지켜보이기란 쉽지 않다. 얼마 전 군대 안 간 미국인이 "너희는 약속 다 지키고 사냐"고 되물었는데, 가소롭기는 하지만 양심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면 나 역시 사소한 약속들을 어긴 경우도 많았다. 이런 알량한 글을 남기면서도 내가 그 반이나마 실천하며 살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디오게네스의 언행일치하는 삶은 초인적이기까지 하다.

 

우리가 그처럼 고행을 자초할 수는 없지만 그의 삶을 가슴에 새기고 살아갈 수는 있을 것이다. 말을 내뱉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해보고, 이를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지 고민하는 정도로도 충분하다. 그렇게만 살아가도 모수와 예형의 비참한 꼴을 면하고, 허영으로 말미암은 해악도 사라진다.

 

(제목 때문에 혼란을 드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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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개의 댓글

2021.02.28

뭘 먹고 자라서 이렇게 똑똑함?

1
@년째물구나무

모두가 한번쯤 생각해보셨을 꺼리들로 이야기만 엮어봤을 뿐입니다. 부끄럽습니다 :)

0
2021.03.01

언행이 일치 하는 삶은 그것이 어떤 모습이건 간에 그 진실된 태도로 보는이의 마음을 울리는게 있는것 같습니다.

모수, 예형과 디오게네스를 보는 당대 인물들의 시각도 그러한 차이가 있었을것같아요.

글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1
@어르토

저도 언행이 일치하는 삶을 살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재밌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0
2021.03.02

원래 제목이 도대체 뭐길래...

1
@maino

그.. 추천 안 하면........ 이라고..... 했습니다... :(

1
2021.03.02
@한그르데아이사쯔

사람들이 센스를 몰라보는군요..

1
@maino

옆지기한테 혼나고 바꿨습니다ㅋㅋㅋ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0
2021.03.02

선생님 논평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1
@뭘로해야되냐

고맙습니다. 다른 글도 잘 부탁드립니다 :)

0
2021.03.07

많이배우고갑니다

1
@무조건가능

모자란 솜씨에도 좋게 읽어주셔서 부끄럽습니다. 다른 글도 잘 부탁드립니다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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