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시나 문학 모음집 연재하면서 글을 여럿 개드립으로 보냈었는데 기억하는 게이가 있을지 모르겠다.
유투브를 선두로 영상문화가 절정에 다다른 이 시대에 시는 분명 친절하진 않다.
그래도 가끔 그립더라.
요즘엔 시가 오글거린다는 사람도 많은데, 나는 그래도 시가 좋다.
오늘은 읽을 때마다 가슴이 저미는 시들이 몇 수 있어서 소개해보고 싶다.
예전에 소개했던 시 중에 두 수 정도가 겹치지만 처음 보는 게이들도 있을거라 믿고 올려본다.
(1) 꿈 - 황인숙
가끔 네 꿈을 꾼다
전에는 꿈이라도 꿈인 줄 모르겠더니
이제는 너를 보면
아, 꿈이로구나 알아챈다
사랑의 끝에는 대체로 가증한 열병이 찾아온다.
멀쩡히 살려고 발악발악하다가도 한 번씩 무너지고,
꿈에서도 떠나간 사람을 찾으며 허우적거리며
그렇게 앓고 또 앓았다.
앓다보면
어느새 괜찮아져있더라.
그렇게 추억이 된 사랑이 어쩌다 꿈에 나왔을 때,
황인숙 시인이 표현하고 했던 건 아마 그 기분이 아닐까 싶다.
(2)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루 종일 밭에서 죽어라 힘들게 일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찬밥 한 덩이로 대충 부뚜막에 앉아 점심을 때워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한겨울 냇물에 맨손으로 빨래를 방망이질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배부르다 생각없다 식구들 다 먹이고 굶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발뒤꿈치 다 해져 이불이 소리를 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손톱이 깎을 수조차 없이 닳고 문드러져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가 화내고 자식들이 속썩여도 전혀 끄떡없는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외할머니 보고싶다
외할머니 보고싶다, 그것이 그냥 넋두리인 줄만....
한밤중 자다 깨어 방구석에서 한없이 소리 죽여
울던 엄마를 본 후론
아!
엄마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 시는 개인적으로 반칙이라고 생각한다.
읽을 때마다 울컥한다.
(3) 눈물의 중력 - 신철규
십자가는 높은 곳에 있고
밤은 달을 거대한 숟가락으로 파먹는다
한 사람이 엎드려서 울고 있다
눈물이 땅 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막으려고
흐르는 눈물을 두 손으로 받고 있다
문득 뒤돌아보는 자의 얼굴이 하얗게 굳어갈 때
바닥 모를 슬픔이 너무 눈부셔서 온몸이 허물어질 때
어떤 눈물은 너무 무거워서 엎드려 울 수밖에 없을 때가 있다
눈을 감으면 물에 불은 나무토막 하나가 눈 속을 떠다닌다
신이 그의 등에 걸터앉아 있기라도 하듯
그의 허리는 펴지지 않는다
못 박힐 손과 발을 몸 안으로 말아 넣고
그는 돌처럼 단단한 눈물방울이 되어간다
밤은 달이 뿔이 될 때까지 숟가락질을 멈추지 않는다
살다보면 견딜 수 없는 슬픔이 덮쳐올 때가 있더라.
그것은 상실의 아픔일 수도 있고, 실연의 아픔이기도 하며,
실패 또는 칠흑같은 미래에 대한 절망일 수도 있다.
"어떤 눈물은 너무 무거워서 엎드려 울 수밖에 없을 때가 있다"
참으로 그러하더라.
(4) 섭씨 100도의 얼음 - 박건호
너의 표정은 차갑고
너의 음성은 싸늘하지만
너를 볼 때마다 화상을 입는다
짝사랑을 해보았더라면,
이 시가 단박에 이해되리라 믿는다.
(5) 별헤는 밤 - 윤동주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헬 듯합니다.
가슴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 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아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 ,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스라이 멀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거외다.
나라를 잃은 시인 윤동주가,
저 멀리 북간도에 계시는 어머니를 그리워 하며 썼다는 시.
당시엔 일제의 검열로 출판이 되지 못했고,
해방 후 그의 유작들이 모여 출판된다.
나는 윤동주가 살아서 해방을 맞이하지 못한 것이 마음이 아프다.
그래서 그의 시는 더욱 애틋하게 읽혀지는 것 같다.
(6) 빈 집 - 기형도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엷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다.
일생을 걸고 가장 사랑했었던 사람과 이별했을 때,
이 시를 읽고 참 많이도 울었었다.
저 알듯말듯한 비유들이 나는 이렇게 읽히더라.
그 사람과 사랑을 속삭였던 짧았던 밤들
추억들로 수놓은 겨울, 그 밖의 안개들
그 사람과 사랑을 나누던 방에 놓였던 아무 것도 모르던 촛불들.
보낼 곳을 잃어 버려져야 했던 편지들,
가지말라고 말을 해야 하는데 눈물이 먼저 터지고,
그 사람의 열망은 더이상 나를 향하고 있지 않으니 내 것이 아니며,
눈은 뜨고 있으나 이 삶이 너무 괴로워
장님마냥 더듬거리며 마음의 문을 걸어잠구고
빈집에서 홀로 슬퍼하는 내 자신.
기형도는 참 아까운 사람이라 생각한다.
혹 게이들 반응이 괜찮으면
다음에는 예전에 소개해 준 시들과 중복되지 않게 새로운 시들을 또 모아서 소개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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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틸리젼2
가슴이 짜르르하게 울리네 간염 때문에 힘들다.
아니야안졸려
힘내 ♡
wasabimayo
문태준 - 가재미 추천 군대에 있을때 엽서에 아는누나가 적어서 보내줬었는데 볼때마다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도 나고 참 슬프더라
제환공
와 이거 지금 읽어봤는데 가슴이 살짝 애이네. 고맙다
아니야안졸려
애이다 라는 표현도 오랜만이네 진짜 늙었어 단어 하나에 ㅠ
펜스룰
당신이 나를
보려고 본 게 아니라
다만 보이니까 바라본 것일지라도
나는 꼭
당신이 불러야 할 이름이었잖아요
펜스룰
너예전에 시올려서 개드립갔었지
제환공
추신 - 홍성란
예 제가 올렸습니다.
기억해주셔서 감사해요.
아주 오랜만에 올려서 두 수 정도 재탕 좀 했습니다..
블록아래견찰서
밤은 달이 뿔이 될 때까지 숟가락질을 멈추지 않는다
표현력 미쳤다 ㄷㄷㄷㄷ
정상
1, 2, 4 진짜 좋다
추천 줌
번 만지면 싼다
좋네
저는거짓말을못합니다
문풍당당 추
헤헿헿
시집 고를 때 어떻게 골라? 접근법 좀 알려줘
제환공
돌아다니다가 정말 맘에 드는 시가 있으면 그 시인의 시를 좀더 검색해보고, 아 정말 괜찮다 싶으면 그 사람의 가장 유명한 시집부터 구입을 하는 편이야 ㅎㅎ
아니야안졸려
일단 최승자 황지우 이성복부터 시작해봐 몸이 울려 그럼 이런저런시들까지 확장될거야 난 찰스부코스키 씹팬이야 ㅋ
중얼중얼
1번은 결혼하고 나니 더 와닿는듯 ㅠㅠㅠㅠㅠ
선다선다뿅간다
개인적으로 시낭송 중에, 진짜 가슴으로 개개인마다 느끼는 감정으로 낭독해서 유튜브 좀 올려줬으면 좋겠다..
님의 침묵, 서시, 별 헤는 밤 등등
올라 와있는 시낭독은 뭔가 영혼이 없는것 같더라
wasabimayo
예전에 개드립에 찌짐버거 이야기 이거도 진짜 뭉클했었는데 글쓴이 아직 활동하고있을까 ㅠㅠ
제환공
추천 다들 감사드립니다
medasin
공장의 검은 굴뚝들은 일제히 하늘을 향해 / 젖은 총신을 겨눈다
기형도, 안개
그는 신이야
제환공
너무 빨리 가셨지
medasin
https://www.youtube.com/watch?v=ysR_OeqdbCI
너가 올린 시들은 피아노곡보다는 이게 더 어울려보인다... 그냥 사견이얌ㅎ
아니야안졸려
야 친구새끼가 그러는데 그는 요절했으므로 과대평가되었대 내생각엔 근데 그가 질기게 살아서 다작했으면 얼마나 기괴하고 더욱 야하게 슬픈 시들을 볼수있었으까 싶어
Quissont
꽃게가 간장 속에
반쯤 몸을 담그고 엎드려 있다
등판에는 간장이 울컥울컥 쏟아질 때
꽃게는 뱃속의 알을 껴안으려고
꿈틀거리다가 더 낮게
더 바닥쪽으로 웅크렸으리라
버둥거렸으리라 버둥거리다가
어찌할 수 없어서
살 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한 때의 어스름을
꽃게는 천천히 받아들였으리라
껍질이 먹먹해지기 전에
가만히 알들에게 말했으리라
저녁이야
불 끄고 잘 시간이야
제환공
스며드는 것. 안도현 작품 중 제일 좋아한다.
고민했다 추가하고 싶어서.
근데 이미 소개했던 시라서 중복이 많아지는 것 같아서 제외했다.
호구등신
너무 좋다 이런 거 더 올려랏 추천먹고
퍽퍽헉헉이맛에합니다
혹자는 기형도가 상징적 시어만을 남발하는 아마추어라하지만 내 가슴속 최고의 시인은 기형도다
제환공
나도 제일 좋아하는 시인이다 ㅎ
스푸트너스
질투는 나의 힘도 그렇고, 빈 집도 그렇고, 기형도시인은 마지막 몇 줄이 정말 가슴을 후벼 파더라... 문장이 눈으로 들어오는 게 아니라 가슴을 열어 젖히고 들어오는 것처럼 강렬해.
아니야안졸려
기형도 -병 옆에 한자한자 또렷이 필사했던 기억 그때 나도 20대였는데 쓰봉탱
illekka
시 ㅇㄷ
illekka
내 인생시는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내가 그렇게 살고 있는듯
의미없다
바락바락+발악=발악발악?
긔요미티모
나는 이육사 광야 읽고 뭔가 울컥하더라
아니야안졸려
나는 18살때 수업받다가 문제집에 박목월 하관 이 지문으로 나왔어 밑줄긋고 문제풀어야하는데 너무 눈물콧물이 처내려서 쪽팔려서 책상밑으로 수그려 소리숨죽여 울었어 그게 나의 시에대한 첫경험이야
874boy
그만 올려라
Free Tibet
내 오롯이 한평 반 방 안에 담겨 시어간다.
-술(개붕이 작)
HerbalV
밤이 되어 뜨거워졌던 고추는
너에 대한 열망을 뿜어내고야
잠이 들었다
못다한 수정의 꿈이여
-딸-
아니야안졸려
어머 너 좀 쓰네?
지림지림
좋은 시 감사
꾸에에에엥
기다립니다
세월 지나 강산이 변해도..
기나긴 기다림의 끝에 당신이 있다면
나 햇살처럼 웃어보이리
립톤티
옛날에 시 올렸었던 개붕이구나 너 덕분에 시의 아름다움을 좀 더 알게됐다. 앞으로도 많이 올려달라고 개추줌
pakistan
야 내가 보냈다!
IlIIlIlllIlIlIIlI
술먹고 보니까 또 느낌이 다르네
크레용신짱
나는 이제
너 없이도 너를
좋아할 수 있다
나는 이 시가 너무 가슴아프다 비슷한 추억때문인가봐
치킨은멕시칸말고맥시칸
크으 나태주센세....
귀여운꾸이
와..
남자간호사이직준비중공부하라고해줘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뒤지기 싫으면
지은수
ㅋㅋㅋㅋㅋㅋ
스푸트너스
내 감동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