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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량, 스압]1592년 탄금대 전투에 대해 알아보자

우리 나라 교과서는 의외로 전쟁사를 간략하게 다루는 면이 있어서

승리 했던 전투도 비교적 간략하게 다루기 때문에

특히나 패배했던 전투는 언급조차 않거나 한 줄 정도로 요약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아

 

 

 

그래서 사람들이 알지만

또 자세하게는 모르는 탄금대 전투를 간략하게 알아보자

 

 

 

조선은 1592년에 일본에게 침공을 당했고 조선의 국운이 달렸던

전투가 있어

그게 바로 '탄금대 전투' 였지 

탄금대 기록화.jpg

<<탄금대 기록화>>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양측의 군세를 한번 살펴보자]

제목 없음.jpg
병력 수를 보면

조선군을 약 8천~1만6천으로 추정하는 데

최근 들어서는 1만6천설이 힘을 받고 있다고 해

 

근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조선군은 절반인 8천 가량이 기병이었고

일본군은 보병이었다는 점이지

 

기병 포함 16000 vs 보병 18000

게이들 생각에도 충분히 해볼만한 전투라고 생각하지 않니?

 

 

 

 

 

 

 

하지만 조선군에는 아주 큰 문제점이 있었어!

탄금대의 패배를 알아보려면

조선 세조 때로 거슬러 올라가야해

 

 세조.jpg

세조曰 : 이제부터 무반의 인사고과는 ''에 치중한다.!

 

 

 

이 말 한마디 덕분에 약 100년 후 조선은 엄청난 변동을 겪게 되지

 

 

사실 고려가 몽골에 털리기는 했지만

고려말 왜구의 준동과

다운로드.jpg

 

홍건적의 난 때문에

홍건적_01.jpg


조선초까지만 해도 조선군에는 충격기병의 역할을 하는 중기병이 고루 편제 되어 있었어

20131026134521.JPG

 

 

하지만 세조가 을 중시한 덕에 기병들도 자연스레 경장 궁기병이 되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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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구나 조선이 주로 상대해야 할 여진족은 대부분이 궁기병 위주였기에

기동력이 느린 중기병여진족과의 비정규전에서는 효과가 별로 없어

자연스레 사라졌지.

 

 

또한 조선은

개국 이래로 타국과 사단급 이상의 전투를 한 적이 없었기에

정규전에서 유럽의 기사처럼 기병이 돌격하여 보병대열을 무너뜨리는 개념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자료는 없다고해.

Dornach_1499.jpg


왜란 후 편찬된 <무예제보>에서는

 

"무과 시험장에선 쓰이지만 그 방도가 상세히 갖추어 지지 않아

창과 칼이 버려진 무기가 된 지 이미 오래다"

라고 지적을 하기도 했어.

 

 

 

 

 

[반면 일본군은 어땟을까?]

 

일본군은 춘추전국의 전란을 거치면서

조총과 기병의 돌격을 저지할 장창진을 활용한 보병 전술이 발달하게 되었어.

 

 

장창진.jpg

조총.jpg

후금이 있었기에 당시 동북아 최강까지는 아니지만

조선이나 명에 비해서는 체계적이고 조직적이었지.

 


 

 

 

 

[자 그럼 본론으로]

달천평야.jpg

<<충주 탄금대 달천평야>>

조선의 맹장이라 칭송 받던 신립은 8천의 기병과 8천의 보병을 이끌고

천혜의 요새인 재령을 버리고 충주의 탄금대를 선택하게 되지

그리고 강을 뒤에 끼고 절대 해선 안될 배수의 진을 쳐버려

 

 

초한지의 한신처럼 배수의 진이 성공한 사례도 있지만 극히 드물고

더구나 신립은 한신이 아니었어 결국 배수의 진은 전멸이라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지

 

 

 

 

재령 vs 탄금대 문제와

신립의 장군으로서 자질 문제도 상세히 하고 싶은데

 

이런것까지 짚고 넘어가면 글이 너무 길어질 것 같아서

다음에 알아보기로 하고 넘어갈게.

신립.jpg

<<신립 1546년 10월 23일 ~ 1592년 4월 >>

 

신립이 맹장으로 칭송 받았지만

사실 신립은 이순신과 다르게 전략, 전술적으로 뛰어난 인물이 아니었어

여진과의 공훈도 거의 개인의 무력과 소수의 궁기병의 활약으로 만들어진 것이지

사단급 이상의 병력을 단, 한번도 지휘해 본적이 없었던 인물이야.

 

 

여튼 이 사람은 산지인 재령을 버리고

평야 지역인 충주의 탄금대를 전장으로 선택하게 돼.

 

 

기병을 활용하려면 당연히 평야가 좋겠지만

재령은 행군을 하려면 산길을 따라 1렬로 움직여야 할 정도로 험준하고 길이 좁기에

소수의 병력으로도 방어하기 아주 좋은 곳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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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탄금대의 달천평야는 하천을 끼고 있기에

기병을 활용하기 아주 안좋은 장소였고

더구나 밭과 논이 대부분이라 기병의 기동력을 살리기 힘든 장소였지

 

 

[1차 돌격]

달천평야.jpg

고니시 유키나가의 본대에서 선봉 병력을 전진 시키는 것으로 전투가 시작되었어

이에 신립은 기마대 1천을 돌격시켰는데

기병의 위력을 감당하지 못하고 일본의 선봉은 곧 후퇴를 하게 되지

 

하지만 이때까지도 신립은

왼쪽 강변의 소 요시토시의 군대와

오른쪽 산자락의 마츠라 시게노부의 군대가 매복해 있음을 알지 못했어

엄밀히 말하면 포위되어 있었던 것이지

 

바로 앞에 보이는 고니시 유키나가의 본대가 일본군의 전부인줄 알았던거야

 

[2차 돌격]

탄금대.jpg

1차 돌격에서 일본군의 후퇴하자

신립은 곧바로 2차 돌격을 감행해

 

하지만 1차 돌격 때와는 다르게 상당히 고전하게 되는데

달천은 논과 밭이어서 기병의 기동력에 제약을 받았고

더구나 조선의 궁기병은 일본군의 장창과 조총진을 뚫을 방도가 없었어


기록으로 보아도 신립의 기병대는 중기병의 치돌(馳突)이 아닌 치사(馳射)를 했다고 나와있는데

이는 궁기병의 돌격 사격을 의미하는 데, 말을 탄채로 화살을 쏘면 사거리가 줄어들기 때문에

근거리에서 조총과 1:1 교환비를 주고 받았다는 소리지

결국 조선의 기병대는 조총의 밥이 되어버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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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와중에 가토 기요마사의 후발부대 유유히

전장을 우회하여 빠져나가고

설상가상으로 충주성까지 점령 당해 해버리지

 

이후 3차 돌격도 감행하지만

 

별효과는 없었어...

 

 

[조선군 붕괴]

이후 신립은 남한강까지 밀려나

일본군과 싸우다 장렬히 전사하게 되지

 

일본군은 파죽지세로 진격에 더욱 박차를 가하게 되고

우리가 잘 알듯이 선조는 한양을 버리고 의주로 몽진을 가게되지.

 

 

3줄 요약은 없어

사실 역사에서 교훈은 승리보다 패배했을 때

더 얻을게 있다고 나는 생각해.

재밌게 읽어줬길 바랄게.

 

 

 

 

157개의 댓글

2018.03.05
더 얻을게 많지.근데 거기서 안배우면 도루묵..
0
2018.03.05
슬픈조선
0
2018.03.05
흥했던 한국역사좀 써줘

맨날 수비만하냐 ㄹㅇ테란의 선조급 되는 국가인가
0
2018.03.06
@와부와부
발해를 끝으로 타국 털어먹은 적은 없지

끽해야 여진 부족 털고

세종때 대마도 턴거

무열왕 개새끼
0
2018.03.06
@기아우승
무열왕이 왜 개새끼냐. 신라보다 약해진 고구려를 안타까워 해야지.ㅜ
0
2018.03.06
@개쩌는허벅지
한국사 공부할 때 수나라 먼저 친 영양왕 뭔가 멋있다고 생각했는데
0
2018.03.06
@기아우승
팩트) 당시 고구려는 땅만 넓고 식량없고 자원없는 척박한땅에 인구도 적었음
신라는 예부터 서라벌이라는 큰 땅이있고 또한 당나라에 저항할 힘은 있었음
0
2018.03.06
@30000paep
이건 좀 애매한게 고구려도 엄연히 농지로 쓸 북한땅이 있었고 고구려 신라 가구수는 비등비등했음
삼국중에 인구가 확실히 많았던건 백제임
0
@30000paep
광개토,장수왕땐 백제 신라 다 씹어먹었잖아
그때 통일 했어야 했다
0
2018.03.06
@북북춤할아버지
씹어는 먹었는데 그걸 삼킬 능력까진 안됐으니 못삼킨거.
0
역활 > 역할
절대는 해선 안될 배수의 진 > 절대 해서는 안 되는 배수의 진
포위되어 있었던 것이지 > 포위되고 있던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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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05
@내가빅뱅이론을만났을때
고맙다 수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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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05
패배뿐인 쓰레기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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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05
뼈저리게 느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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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05
흑역사 들이밀기는 그만두는 레후

파-킨
0
2018.03.05
조선의 정규군을 여기다가 다 꼴아박아서 명나라 오기 전 까지 육지에서 개털리던 거 맞지?
그래도 나름 북방에서 실전 겪은 군대를 여따가 다 꼴아박아서 한양까지 쭉 줘버리고 ...
0
@Caesar830
신립이 끌고간 건 경험 많은 북방군 ㄴㄴ
수도 병력이라고 함
0
2018.03.06
@Caesar830
고거슨 이괄의 난 때 이괄이 정예 북방군을 이끌고서리 난을 일으켜부러서..
0
2018.03.05
신립ㅠㅠ...뭔가 아쉬웠음


임진왜란 중에 제일 아쉬웠던건

진관 체제 그대로 하면 좋았을텐데

제승방략 체제 돌리다 죶털려서 다시 진관으로 돌린거..
0
용인전투도 써주라
0
2018.03.06
@국어시간에쳐졸았나
용인전투는 사진이나 자료가 적어서 재미없을듯
0
ㅈ같은 조선 썩어빠진 유교 성리학으로 ㅈ망한 나라
0
ㅈ같은 조선 썩어빠진 유교 성리학으로 ㅈ망한 나라
0
2018.03.06
@시빌라지에이션
성리학은 죄가 없어, 교조주의가 죄지
0
2018.03.05
글쓴 사람은 당시 조선기병을 제대로 된 궁기병이라고 가정하고 쓴 것 같은데...
제대로 된 궁기병이었다면 조총대나 장창보병을 발랐겠지
일단 곡사의 활은 조총보다 사거리가 훨씬 길고
장창의 방진을 공략하는데 중기병 돌격보다 궁기병 우회포위 전술이 더 손쉬운 방법이야
당시 조선이 8천명의 제대로 된 궁기병을 운용할 능력이 있었을까?
중세 영국이 장궁병을 훈련시키는데 12년이 걸렸어 심지어 장궁병은 기독교가 절대적권위를 갖던 중세에 안식일까지 활연습을 해야 했지...
그런데 말까지 타려면 ? 얼마나 걸릴까?
신립이 거느린 병력중
제대로된 궁기병은 겨우 몇백이었을 것이고 말도 그리 많지 않았을 꺼야 허위보고로 부풀린 병력과 마필이겠지
0
2018.03.05
@골든하인드
아니 조선의 기병이 패배하기는 했지만
동북아에서 급부상하던 여진 부락을 수차례 털기도 했고
난도 여러번 진압함. 무시할 정도는 아니었음.

탄금대에서
패배의 원인은 지휘관의 능력과
잘못된 전장 선택
그리고 불균형한 병력구성 때문이었지

보통 몽골이나 게임관련 매체 때문에
궁기병을 무적이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궁기병은 돌격력이 부족한 경기병이라
몽골조차 상당수의 중기병을 항상 유지했었음
궁기병만으로는 적의 방진을 무너뜨리기에는 무리가 있음

그리고 전장이 논과 밭이어서 궁기병의 후퇴 매복(스웜)전술 같은건 활용하기도 어려울 뿐더러
유럽같은 경우도 마자르족 같은 궁기병 유목민과 싸울 때는
물가로 몰아서 보병으로 이긴 전례가 많음.
0
2018.03.06
@발빼고왔다
궁기병이 무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
하지만 장창보병한테는 무척강하고
조총대를 상대하는데는 돌격전술을 쓰는 중기병보다 우월하지.
게다가 글쓴이는 요즘 논을 생각하고 기병의 움직임이 힘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요즘은 강에서 양수기로 물을 퍼서 논에 물을 대서 양자강 이남 중국이나 동남아 일본 처럼 푹푹 빠지는 질퍽한 논을 만들지만 당시 조선은 이양법을 쓰지않고 직파법을 썼어 당시 조선의 논은 지금 밭과 비슷했음
오히려 말이 달리기에 가장 좋은 바닥이었어
0
2018.03.06
@골든하인드
신립이 전장 선택 못한 졸장인줄 알았는데 그럼 일본군이 그냥 넘모 쎘던거냐
0
2018.03.06
@개쩌는허벅지
일본군이 넘모 쎄서 작살난게 아니라...

조선이 썩어서 국가가 군대를 유지한게 아니라
병농일치 국민개병이라는 구실로
군마와 무기를 농민에게 구비하도록한게 문제였다는거지

시발. 먹고살기도 힘든데 말먹이고 창칼준비하고 활쏘기 연습하리? 말한마리 창칼 한두개 활화살 몇개로 이놈 저놈이 수십 수백명이 빌려서 검사받고 했지... 그러다 보니 장부상으로는 말이 수천필이어도 실상은 수십마리에 지나지 않고 무기는 죽창이나 농기구밖에 없는 거고
0
2018.03.06
@골든하인드
와 너무 하는거 아니냐? 지금으로 치면 입영통지서 날아오면서 동시에 총기, 피복, 식사, 숙박비 청구서도 같이 날아오는거네 ㄷㄷ
그따위로 행정 처리하니 털리지...
그럼 초기 줄패전 이후에 관군이 제역할 하기까지는 얼마나 걸림?
0
2018.03.06
@개쩌는허벅지
아니 조선군 입대하면 실제 병역 임무 수행하는 사람 있고 거기에 보급식으로 세금이나 돈으로 내주는 사람이 있음. 임진왜란쯤 가면 이미 나라에 포를 내고 나라에서 그 포로 사람을 사서쓰는 체제로 됨.

관군이 제 역할 얼마나 빨리 했냐고? 역사상 의병들이 실제로는 관의 직간접적 통제를 받는 준관군이었음. 그 의병들이 바로 관군으로 입대할 자원이었고 의병의 기본 전투력을 보면 알겠지만 이미 관군은 체계적으로 조직되고 전투에 투입되었음.
0
2018.03.06
@개쩌는허벅지
임진왜란 시작 1592년 음력 4월 13일
왜군을 해유령 전투에서 신각이 1차적으로 격파 성공. 음력 5월 16일
권율이 이치에서 야전으로 전라도 방어를 성공. 음력 7월 중순 혹은 8월 중순

지휘관만 잘 만나서 잘 조직되고 전술만 잘 짜면 이겼다.
0
2018.03.06
@골든하인드
농민이 군마와 무기를 준비했다는 그게 어디서 나온 이야기임?
0
2018.03.06
@소름
초반 패전 말고는 금방 제역할 한거구만.
0
2018.03.06
@골든하인드
궁기병이 장창보병한테 강하지
하지만 조총이 없는 장창보병한테만 강하겠지

조총, 장창 둘다 기병 억제력이 강한데다가
말을 타고 싸우면 각궁이라도 사거리가 줄어들게됨.

그리고 당시가 양력 6월이었는데 여름이고 전쟁 발발 초기라 논반에는
벼나 작물이 어느정도 자라고 있었을 거임
그리고 밭이라도 이랑이랑 고랑은 만듦.
조선 초기에는 이랑에 뿌리는 농종법을 사용했고
갈아 놓은 땅은 기병의 기동력을 제한하기엔 충분하지

논과 밭이기 때문에 기병 운용이 어려운 건
내 뇌피셜로 만들어낸 이야기도 아니고 학계 정설임

반대로 달리기 좋은 바닥이었다는게 게이 개인적인 생각이지.
1592년에 말타고 달천평야 달려본거 아니잖어

그리고 달리기 좋은 바닥이고
보병한테 강한데도 불구하고 패배한게
상식적으로 더 설명하기 어렵다고 생각안함?
0
2018.03.06
@발빼고왔다
양력 6월초에 모내기하는건 요즘 조생종이고...
당시 양력 5월에 직파하면 잔디 깔아놓은 것 같은 상태

계속 말하지만 제대로된 궁기병이면 저리 개작살 날리가 없음. 장부상 기병 병력일뿐 오합지졸 농민들 모아놓은 거니까 개작살난것임

상식적으로 상각해 보셈. 세상에 어느나라 농민이 전투용 말과 활을 구비하고 있었겠소? 200년간 큰 전쟁을 치룬적이 없는 나라 농민이
0
2018.03.06
@골든하인드
그렇게 따져도 고랑, 이랑은 반박이 안되어있네

근데 하나 물어보자.

조선군이 마필과 무기를 국가에서 지급한게 아니라 군인들 스스로 구비했다는 데
어디 나오는 이야기냐?

내가 알기론 사비로 구비한건 잡색군이나 대립질하던 대립군 밖에 없고

조선초 중앙군은 5위는 사비로 충당한다는 소리 못들어봤는데?
세조 때 보법만 해도 면포 거두어서 국가가 지급한 걸로 안다.

그리고 농민 아니고 기병은 5위 갑사였음.
위에 본문에 보면 후방 보병 예비대가 징집된 농민이고

그리고 실록이나 수정실록만 봐도
니탕개의 난부터해서 여러 기록으로 따져도
조선의 궁기병 오합지졸은 아니었음.

반대로 오합지졸이라고 보는 시각이 근거가 없잖아?
안그러냐 게이야?
0
2018.03.06
@발빼고왔다
갑사들이 자기 돈으로 어느 정도 군역을 담당했던 것에서 말을 한 거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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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06
@소름
근데 그건 지금도 하잖아

특전사 아재들 사재 장비 사서 쓰시다가 금지 먹기도 하시는데
쟤는 꼭 100% 사비 구입인거처럼 말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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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06
@소름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00897

어느 정도 자기 돈으로 군역을 담당한게 아니라
기갑사들은 말을 자기돈으로 구해야 했음
0
2018.03.06
@발빼고왔다
나두 서울과 북쪽변방에 있는 소수 유급병사만 국가에서 지급받은 걸로 알고 잇음. 말은 유지비가 하도 비싸서 서민들은 잘 갖고 있지 못해 비변사와 각 군현에서 관리했지만 대부분의 군역 징집 병사들은 투구, 갑옷, 무기를 직접 해가는 걸로 알고 잇음,, 그래서 지갑(紙甲)이 그렇게 유래되었고.. 조선무사에서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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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06
@불타오르네
정군-보인 체계 이야기 아닌가? 임진년 당시는 방군수포제 하면서 반모병제 시스템이라서 국가 지급이 아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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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06
@소름
조선은 정군 1명이 징집되면 보인 2명이 지원하는게
기본 시스템이었는데

1명 지원을 2명이 하는거임 간신히 밥먹이기도 힘든데
뭔 말을 사주고 갑옷과 무기까지 대주겠음? 상식적을 생각합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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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06
@골든하인드
무슨 소리야 보병 방진을 부수려면 제대로 된 중기병을 투입해서 밀어붙이는 게 정석인데. 궁기병은 적 대열에 지속적인 타격을 가해서 붕괴를 유도하고 그 큼에 중기병을 찌르는게 정석이지 궁기병이 화살만 미친 듯이 퍼붓는다고 무너지지 않음. 당장 총이 주력 화기로 통용되던 유럽도 창기병-총기병 같이 운용했고 구스타브 아돌프 이후로는 총기병도 돌격력 살리는 방향으로 나아갔음.

궁기병의 질은 위에서 말했듯이 여진족을 수차례 털고 다니고 있었음. 문제점은 본문에 나오듯이 중기병이 할 돌격임무도 궁기병이 하느라고 통상적인 치고 빠지기가 안 되었고 네가 말한 우회기동도 없었음. 거기다 활의 사정거리가 길다더는 건 일반적인 안정된 자세고 흔들리는 말 위에서 활을 쏘면 당연히 사정거리가 줄어들고 유효타를 먹이기 위해서 조총 사거리까지 접근해야 하지. 본문에 다 나오고만.

문제는 조선 초부터 이어진 여진족과 왜구 등 소규모 약탈단 및 민병대에 대응하기 위해서 소규모 기동전과 소부대 전술, 대여진족용 궁기병 위주로 편성된 교리로 인한 문제, 그리고 대부분의 장수들이 여진족, 왜구와 싸우는 등 소규모 전투에 능했다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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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06
@골든하인드
여진족놈들 쳐바르려면 궁기병 수백으론 택도없지

걔넨 타고난 궁기병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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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06
@골든하인드
국궁이랑 장궁은 크기랑 활용 하는 방법이 다르긴 한데 장궁병에 비해 짧으면 짧았지 긴 사거리라고는 생각 안된당.. 물론 국궁이 같은 크기의 활임에도 불구하고 탄성이 좋아 같은 크기일 경우 다른 나라의 활에 비해 좋은 편이긴 하지만 장궁에 비해 말 위에서 다루기 쉬운 편이라 4-5년이면 충분한 시간이라고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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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06
@박음직스럽다
보병인 장궁병 육성보다
궁기병 욱성이 쉬울 수는 없지...

물론 직업군인으로 이루어진 상비군이라면 가능할 수도...
문제는 조선은 병농일치 농민이 군인이고
세금도 양인 즉 농민이 내는 것임
농민이 농사안짓고 군사훈련하면 농민은 본인 굶어죽고
나라는 세금이 없어서 망함

농민이 말을 타고 활쏘는 연습을 어찌함? 그럴 여유있으면 소를 사서 농사짓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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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06
@골든하인드
ㅇㅇ 그건 맞는 말이야
장궁 쓰는 기병을 말한게 아니라 그냥 장궁병 말한 거였구나....
장궁보다 궁기병 육성이 더 쉽다고 말할라그랬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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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06
@골든하인드
본문에 써 있잔아 세조 왈 앞으로 과거에 활을 중시한다고. 당연히 갑사라고 하는 직업군인들 위주로 편성된거지. 무슨 농민 경기병을 육성해. 동로마 제국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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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06
@소름
갑사는 양반자재들이고 조선 초기에나 제대로 운영되었는데...
전성기에도 총병력이 1만5천명도 안됨. 그중에도 기병은 소수고
16세기 말엽엔 갑사들로 이루어진 5위는 거의 소멸했고 유명무실한데 뭔 갑사들로 8천의 기병을 만듬?

그리고 누가 농민 경기병을 육성했다고 했음? 당시 남아있는 병력이라곤 양인 징집병인 정병과 천민 잡색군 그리고 대립군등 밖에 없으니 경기병이 제대로 있을 리가 없다고 한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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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X, 쿠X보다 큰 회사에 일하고 있는 아내 48 온푸 61 7 분 전
일본 시골의 버려진 신사 모습 47 nijvfdnivfre 47 8 분 전
??? : 야 외국인이다 외국인 외국인 처음본다 32 이타헨아잉 40 17 분 전
사람들은 잘 모르는 세계 지리의 진실.jpg 33 김츼 55 17 분 전
의외로 맛있는 군대 별미.jpg 68 구름이구름 35 17 분 전
뷰티풀너드 과거 레전드 26 이타헨아잉 53 18 분 전
성대 성차별 논란 ㄷㄷ 26 오뚜기푸엥카레 61 18 분 전
위암환자의 식습관 65 엄복동 52 25 분 전
드디어 터진 성심당 빵가격 논란..jpg 41 댓글달려고가입했어 29 25 분 전
오랫만에 북한음식 먹어본 탈북자 찐 반응ㄷㄷ 37 사익 72 28 분 전
유재석을 울린 핑계고 다음 게스트 28 등급추천요정여름이 45 34 분 전
ㅆㄷ) 냉동에서 깨어났더니 불나있어서 당황한 블붕이 27 살쪄서숨쉬기힘든애 48 34 분 전
요즘 씹덕들이 쓰는 뜌따콘이 만들어진 과정 58 준구 63 37 분 전
당근마켓에 올라온 물건.jpg 30 차차나아지겠지 61 38 분 전
아내가 경제권을 가져간 뒤 이혼을 원한하는 남편 62 온푸 102 40 분 전
장원영과 30초 아이컨택 56 qop 54 43 분 전
실직자가 된 벡터맨 근황.jpg 48 김츼 108 45 분 전
커뮤니티가 돌아가는 방식을 깨달은 익붕이 26 대영닉 66 57 분 전
현재 힙합 커뮤니티 근황...JPG 97 아무것도몰라효 110 59 분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