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라 교과서는 의외로 전쟁사를 간략하게 다루는 면이 있어서
승리 했던 전투도 비교적 간략하게 다루기 때문에
특히나 패배했던 전투는 언급조차 않거나 한 줄 정도로 요약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아
그래서 사람들이 알지만
또 자세하게는 모르는 탄금대 전투를 간략하게 알아보자
조선은 1592년에 일본에게 침공을 당했고 조선의 국운이 달렸던
전투가 있어
그게 바로 '탄금대 전투' 였지
<<탄금대 기록화>>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양측의 군세를 한번 살펴보자]
병력 수를 보면
조선군을 약 8천~1만6천으로 추정하는 데
최근 들어서는 1만6천설이 힘을 받고 있다고 해
근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조선군은 절반인 8천 가량이 기병이었고
일본군은 보병이었다는 점이지
기병 포함 16000 vs 보병 18000
게이들 생각에도 충분히 해볼만한 전투라고 생각하지 않니?
하지만 조선군에는 아주 큰 문제점이 있었어!
탄금대의 패배를 알아보려면
조선 세조 때로 거슬러 올라가야해
세조曰 : 이제부터 무반의 인사고과는 '활'에 치중한다.!
이 말 한마디 덕분에 약 100년 후 조선은 엄청난 변동을 겪게 되지
사실 고려가 몽골에 털리기는 했지만
고려말 왜구의 준동과
홍건적의 난 때문에
조선초까지만 해도 조선군에는 충격기병의 역할을 하는 중기병이 고루 편제 되어 있었어
하지만 세조가 활을 중시한 덕에 기병들도 자연스레 경장 궁기병이 되었지
더구나 조선이 주로 상대해야 할 여진족은 대부분이 궁기병 위주였기에
기동력이 느린 중기병은 여진족과의 비정규전에서는 효과가 별로 없어
자연스레 사라졌지.
또한 조선은
개국 이래로 타국과 사단급 이상의 전투를 한 적이 없었기에
정규전에서 유럽의 기사처럼 기병이 돌격하여 보병대열을 무너뜨리는 개념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자료는 없다고해.
왜란 후 편찬된 <무예제보>에서는
"무과 시험장에선 쓰이지만 그 방도가 상세히 갖추어 지지 않아
창과 칼이 버려진 무기가 된 지 이미 오래다"
라고 지적을 하기도 했어.
[반면 일본군은 어땟을까?]
일본군은 춘추전국의 전란을 거치면서
조총과 기병의 돌격을 저지할 장창진을 활용한 보병 전술이 발달하게 되었어.
후금이 있었기에 당시 동북아 최강까지는 아니지만
조선이나 명에 비해서는 체계적이고 조직적이었지.
[자 그럼 본론으로]
<<충주 탄금대 달천평야>>
조선의 맹장이라 칭송 받던 신립은 8천의 기병과 8천의 보병을 이끌고
천혜의 요새인 재령을 버리고 충주의 탄금대를 선택하게 되지
그리고 강을 뒤에 끼고 절대 해선 안될 배수의 진을 쳐버려
초한지의 한신처럼 배수의 진이 성공한 사례도 있지만 극히 드물고
더구나 신립은 한신이 아니었어 결국 배수의 진은 전멸이라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지
재령 vs 탄금대 문제와
신립의 장군으로서 자질 문제도 상세히 하고 싶은데
이런것까지 짚고 넘어가면 글이 너무 길어질 것 같아서
다음에 알아보기로 하고 넘어갈게.
<<신립 1546년 10월 23일 ~ 1592년 4월 >>
신립이 맹장으로 칭송 받았지만
사실 신립은 이순신과 다르게 전략, 전술적으로 뛰어난 인물이 아니었어
여진과의 공훈도 거의 개인의 무력과 소수의 궁기병의 활약으로 만들어진 것이지
사단급 이상의 병력을 단, 한번도 지휘해 본적이 없었던 인물이야.
여튼 이 사람은 산지인 재령을 버리고
평야 지역인 충주의 탄금대를 전장으로 선택하게 돼.
기병을 활용하려면 당연히 평야가 좋겠지만
재령은 행군을 하려면 산길을 따라 1렬로 움직여야 할 정도로 험준하고 길이 좁기에
소수의 병력으로도 방어하기 아주 좋은 곳이었어.
반면 탄금대의 달천평야는 하천을 끼고 있기에
기병을 활용하기 아주 안좋은 장소였고
더구나 밭과 논이 대부분이라 기병의 기동력을 살리기 힘든 장소였지
[1차 돌격]
고니시 유키나가의 본대에서 선봉 병력을 전진 시키는 것으로 전투가 시작되었어
이에 신립은 기마대 1천을 돌격시켰는데
기병의 위력을 감당하지 못하고 일본의 선봉은 곧 후퇴를 하게 되지
하지만 이때까지도 신립은
왼쪽 강변의 소 요시토시의 군대와
오른쪽 산자락의 마츠라 시게노부의 군대가 매복해 있음을 알지 못했어
엄밀히 말하면 포위되어 있었던 것이지
바로 앞에 보이는 고니시 유키나가의 본대가 일본군의 전부인줄 알았던거야
[2차 돌격]
1차 돌격에서 일본군의 후퇴하자
신립은 곧바로 2차 돌격을 감행해
하지만 1차 돌격 때와는 다르게 상당히 고전하게 되는데
달천은 논과 밭이어서 기병의 기동력에 제약을 받았고
더구나 조선의 궁기병은 일본군의 장창과 조총진을 뚫을 방도가 없었어
기록으로 보아도 신립의 기병대는 중기병의 치돌(馳突)이 아닌 치사(馳射)를 했다고 나와있는데
이는 궁기병의 돌격 사격을 의미하는 데, 말을 탄채로 화살을 쏘면 사거리가 줄어들기 때문에
근거리에서 조총과 1:1 교환비를 주고 받았다는 소리지
결국 조선의 기병대는 조총의 밥이 되어버려.
그 와중에 가토 기요마사의 후발부대 유유히
전장을 우회하여 빠져나가고
설상가상으로 충주성까지 점령 당해 해버리지
이후 3차 돌격도 감행하지만
별효과는 없었어...
[조선군 붕괴]
이후 신립은 남한강까지 밀려나
일본군과 싸우다 장렬히 전사하게 되지
일본군은 파죽지세로 진격에 더욱 박차를 가하게 되고
우리가 잘 알듯이 선조는 한양을 버리고 의주로 몽진을 가게되지.
3줄 요약은 없어
사실 역사에서 교훈은 승리보다 패배했을 때
더 얻을게 있다고 나는 생각해.
재밌게 읽어줬길 바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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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굶은국문과
드림라이너
내가 알고 있는거도 신립이 배수진을 치게 되는 선택의 배경 중 하나가 탈영을 걱정해서라고 알고 있는데 그렇다고 쳐도 전술적으로 너무 거지같은 전장을 택한 건 아니었나 시포요
키키오
이기면 좋겠지만, 지더라도 재령이 아니라 탄금대에서 기병전을 벌여야 탈영병이 안생기고 제대로 싸워나 볼 수 있지.
결과적으로 대패했지만 전략목적인 왕의 몽진은 달성해서 이후 전쟁은 전혀 다른 판도로 진행되었으니
조선 입장에서는 완전히 실패한 전략은 아닌거야.
붉은제로
조령은 들어봤는데 재령은 처음 들어보네
발빼고왔다
문경새재 생각하다 재령이라 썼구만
조령이 맞음
미안하다
너 아니면 아무도 모르고 넘어갈뻔
붉은제로
모르는 단어인 줄 알고 한 번 물어본건데 얻어걸린거지
좋은 글 고마워
있는닉네임아없자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