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디렉의 바다 : Ripples in the Dirac Sea

감상에 도움을 주는 브금 플레이(https://www.youtube.com/watch?v=qaYDLU37qGI) <-수동!



※ 제가 포스팅 한 모든 단편소설은 교정을 거친 뒤 올립니다(오/탈자 및 오역, 문장부호 수정).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출처 : http://blog.naver.com/kcinn/220596696164


굉장히 좋아하는 단편입니다. 로버트 하인라인 옹은 SF에 대해 '가능한 미래의 사건들에 대한 현실적인 추측'이라고 정의내린 바 있는데 그러한 정의에 참 잘 들어맞는 픽션이기도 하구요.
무한급수에 대한 기초적인 수준의 이해가 있다면 더더욱 감동을 더할 수 있습니다. 이 소설에 대해 설명했을 때 가장 깊은 흥미를 보인 건 수학을 전공한 친구였거든요.
아주아주아주아주 잘 쓴, 그리고 잘 번역된 소설이니 부디 즐겁게 읽어주세요.



디렉의 바다 (Ripples in the Dirac Sea) 
Geoffrey A. Landis 저



죽음은 가차없이, 천천히 그리고 장엄하게 밀려오는 해일처럼 덮쳐온다. 

그러나 난 도망친다. 비록 헛된 일일지라도. 

여행을 시작하면, 파도가 잊혀진 여행자들의 발자국을 지우듯, 

내가 일으킨 물결은 무한대로 발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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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장치를 시험한 날, 우리는 모든 패러독스를 피하도록 신중을 기했다. 창문이 없는 실험실의 콘크리트 바닥에 청테이프를 십자형으로 붙이고, 그 표시 위에 자명종을 올려놓은 후, 문을 잠갔다. 한 시간 후에 돌아온 우리는 시계를 치우고, 코일 안에 8mm S-VHS 카메라를 넣은, 실험중인 장치를 실험실로 가져왔다. 난 카메라가 X표시를 찍도록 조절했고, 내가 맡고 있는 대학원생들 중 한 명은 장치를 프로그램 하여, 카메라를 30분전으로 보내어 5분 동안 과거에서 머물다 돌아오도록 했다. 그것은 아무 소리도 없이 갔다가 돌아왔다. 필름을 현상해보니, 시계에 나타난 시간은 카메라를 장치에 싣기 30분전이었다. 과거로 가는 문을 여는 데 성공한 것이었다. 우리는 커피와 샴페인을 마시며 축하했다. 

지금은 시간에 관해 훨씬 더 많이 알기 때문에, 우리가 그때 저지른 실수를 알고 있다. 미래에서 온 장치를 찍을 무비 카메라를 시계와 함께 놓는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지금 내게는 명백한 것들이 그 때에는 그렇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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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서 되돌아오면, 광대한 무한의 바다로부터 현재의 이 순간으로 물결이 수렴한다. 

1965년 6월 8일, 샌프란시스코. 민들레가 점점이 핀 잔디 위로 따스한 미풍이 불고, 부푼 흰 구름이 기묘하고 놀라운 모습을 만들어 즐거웠다. 그러나 멈추어 그것을 즐기는 사람은 거의 없다. 사람들은 부지런함에 집착하여,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이 중요한 사람이라고 믿으며 이리저리 달리고 있다. 

"꽤나 바쁘군." 내가 말한다. 

"왜 일을 늦추고 편안히 앉아 즐기지 못할까?" 

"시간에 관한 환상에 빠져있으니까." 

댄서가 말한다. 그는 누워서 비누방울을 불고 있다. 그의 긴 갈색머리가 뒤로 휘날린다. 머리가 귀밑으로 내려오기만 하면 '장발'인 시대였다. 불어오는 바람이 비누방울을 언덕 아래, 보행자들의 물결 속으로 날려보내지만, 그들은 한결같이 비누방울을 무시한다. 

"그들은 지금 하고있는 일이 미래의 목표를 이루는데 중요하다는 믿음에 사로잡혀있어." 

비누방울은 어떤 서류가방에 닿아 터지고 댄서는 또 하나를 분다. 

"너와 나, 우리는 그게 얼마나 잘못된 환상인지 알고 있어. 과거도 없고, 미래도 없고, 다만 '현재'만이 있을 뿐이지. 영원히." 

그는 옳았다. 그가 상상할 수 있었던 것 이상으로 옳았다. 한때 나 역시 편집광적이었고 자만심이 강했다. 그때는 명석하고 야심적이었다. 28세에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발견을 했을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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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직원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오는 것을 숨어서 지켜보았다. 그는 굶주린 사람처럼 말랐고 머리카락은 가는 금발이었으며 팔이 없는 흰 티셔츠를 입었고, 초조해 보였다. 그는 복도 위아래를 살펴보았지만 청소부 사물함에 숨어있는 나를 발견하지는 못했다. 2갤런들이 가솔린 통을 양쪽 겨드랑이에 끼우고 양손에도 하나씩 들고있었다. 세 통을 내려놓고, 나머지 하나를 거꾸로 뒤집어서, 가솔린을 뿌려 자극적인 흔적을 남기며 복도 아래쪽으로 걸어갔다. 그는 무표정했다. 그가 두 번째 통으로 같은 일을 하기 시작했을 때, 바로 지금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숨어있는 곳 앞으로 그가 지나갈 때, 머리를 렌치로 내리치고 호텔 경비를 불렀다. 그리고 다시 옷장 속으로 숨어 시간의 물결을 되돌렸다. 

난 불타고 있는 방안으로 도착했다. 불길이 내 쪽으로 다가왔고, 열은 거의 견딜 수 없을 정도였다. 실수로 숨을 들이켰다. 그리고 키패드를 내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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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여행의 이론과 실제에 관한 노트. 

1) 여행은 과거로만 할 수 있다. 
2) 이동한 물체는 정확히 그것이 출발한 시간과 장소로 되돌아온다. 
3) 과거로부터 현재로 물체를 가져올 수 없다. 
4) 과거의 행동은 현재를 바꿀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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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을 보려고 1억년 전의 백악기로 간 적이 있다. 그림책에는 땅 위가 온통 공룡으로 덮여있는 풍경이 그려져 있다. 

하지만 난 3일 동안 습지를 돌아다녀서야 - 새 트위드 수트를 입은 채 - 겨우 바셋 하운드보다 큰 공룡을 볼 수 있었다. 

그것은 어떤 종류의 조반류였지만 어떤 종인지는 몰랐다. 그것은 나의 냄새를 맡자마자 날아갈 듯이 도망쳤다. 매우 실망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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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월 수학 교수는 무한개의 방을 가진 호텔 이야기를 하곤했다. 어느 날 모든 방에 손님이 묵고 있는데, 또 한 명의 손님이 온다. 

"문제없습니다." 

라고 프런트 직원이 말한다. 첫 번째 방의 손님을 두 번째 방으로 옮기고, 두 번째 방의 손님을 세 번째 방으로, 계속 그렇게 한다. 자! 빈방이 생긴다. 
잠시 후에, 무한히 많은 손님이 도착한다. 

"문제없습니다." 

용감한 직원이 말한다. 첫 번째 방의 손님을 두 번째 방으로 옮기고, 두 번째 방의 손님을 네 번째로, 세 번째 방의 손님을 여섯 번째로, 계속 그렇게 한다. 자! 무한개의 빈방이 생긴다. 

내 타임머신은 바로 그 원리로 작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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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난 1965년으로 돌아왔다. 그것은 나의 카오스 궤도의 이상한 끌개로 작용하는 고정점이었다. 돌아다니는 세월동안 수없이 많은 사람을 만났지만, 댄서라고 불렸던 다니엘 레니언은 나와 이마를 맞대고 의논해준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의 웃음은 부드럽고 편안했다. 그에겐 망가진 중고 기타가 있었으며, 내가 배우려면 백 번은 다시 죽었다 태어나야 할 정도의 지혜가 있었다. 좋을 때나 나쁠 때나, 천년동안 변하지 않겠다고 맹세했던 하늘이 푸르던 여름날이나, 눈보라가 쳐서 우리의 머리 위로 눈이 높이 쌓이던 겨울날이나 항상 그와 가까이 지냈다. 더 행복한 시절에는 총신에 장미를 꽂거나, 폭동이 일어난 거리를 가로질러가도 다치지 않기도 했다. 그리고 그가 죽을 때 한 번, 두 번, 백 번도 넘게 그와 함께 있었다. 

그는 1969년 2월 8일에 죽었다. 사기왕 닉슨과 바보 내각 스파이로의 통치가 시작된 지 1달 후, 켄트 주와 알타몬트, 캄보디아에서의 첩보전이 서서히 꿈같은 여름을 질식시키기 1년 전이었다. 그는 죽었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니, 없다. 지난번에 그가 죽었을 때, 난 그를 병원으로 끌고 갔다. 그에게 아무 이상이 없는 것처럼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거기서 결국 의사들이 그를 진찰할 때까지 소리를 지르고 호언장담했다. X레이와 동맥촬영, 방사선 추적자 등을 통해, 그의 뇌에서 초기 단계의 종양을 발견했다. 그들은 그를 마취시키고, 그의 아름다운 긴 갈색머리를 깎았다. 그리고 문제가 되는 모세혈관을 잘라내어 적절하게 그것을 묶어내는 수술을 했다. 마취가 풀렸을 때, 난 병실에서 그의 손을 잡고 있었다. 그의 눈 아래에는 큰 보라색 얼룩이 있었다. 그는 나의 손을 잡고 조용히 빈 공간을 보고 있었다. 문병 시간이건 아니건 간에, 나를 방 밖으로 내보낼 수는 없었다. 그는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그리고 새벽이 오기 직전 어둑한 시간에 가볍게 한숨을 쉬고는 죽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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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여행에는 두 개의 제한이 있다. 에너지 보존과 인과율. 과거에 나타난 에너지는 디렉의 바다에서 빌린 것이고, 디렉 의 바다에서의 물결은 시간의 역방향으로 퍼져나가기 때문에 시간 이동은 과거로만 할 수 있다. 과거로 이동한 물체가 시간 지연 없이 돌아오는 한 현재의 에너지는 보존된다. 또한, 인과율에 의해 과거의 행동은 현재를 변화시킬 수 없다. 예를 들어, 당신이 과거로 가서 당신의 아버지를 죽인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렇다면, 누가 타임머신을 만들겠는가? 

아버지가 어머니를 만나기 전, 내가 태어나기 20년 전에 아버지를 죽이는 방법으로 자살을 하려고 한 적이 있었다. 물론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고, 심지어 내가 그 일을 할 때에도 그것이 아무 변화를 일으키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시도는 해봐야 한다. 그렇지 않고 어떻게 확실히 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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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우리는 쥐를 과거로 보내기로 했다. 그것은 디렉의 바다를 통해 여행을 했다가 전혀 상처를 입지 않고 돌아왔다. 그 다음에는 잔디 건너편의 심리학 실험실에서 무엇에 쓸건지 말하지 않고 빌려온 훈련된 쥐를 시험해 보았다. 여행을 하기 전에 그 쥐는 베이컨 조각을 향해 미로를 통과하도록 훈련받았다. 돌아온 후에도 쥐는 전과 마찬가지로 미로를 통과했다. 

그래도 사람을 시험해 보아야 했다. 내가 자원했고 그에 아무도 반대하지 못하게 했다. 자신을 시험함으로써, 다른 사람을 실험 대상으로 쓰지 못하게 하는 대학의 규정을 빠져나갔다. 

음의 에너지의 바다에 빠지는 것은 아무 느낌도 나지 않았다. 한 순간 난 두 명의 대학원생과 한 명의 기술자가 지켜보는 가운데 렌셀즈 코일의 중심에 있었다. 다음 순간 난 혼자였고, 시계는 정확히 한 시간 뒤로 가 있었다. 시계와 카메라밖에는 없는 잠긴 방에서 혼자 있었을 때, 그 순간이 내 삶의 최고의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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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서를 처음 만난 순간이 최악이었다. 난 버클리의 "트리시아의 집"라는 바에서 서서히 폐인이 되어가고 있었다. 전능과 절망 사이에 사로잡혀 마약을 많이 했다. 1967년, 히피 시대의 중반. 당시의 샌프란시스코는 어쩐지 적합한 느낌이 들었다. 

대학에서 온 한 무리의 테이블에 어떤 여자가 앉아있었다. 그 테이블로 가서 날 소개하고 앉았다. 그리고 말했다. 그녀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그녀의 세계 전체는 존재하지 않으며, 그것은 내가 보고 있다는 사실에 의해 모두 생겨난 것이고, 보지 않으면 모두 비현실의 세계로 사라질 것이라고. 그녀의 이름은 리자였다. 그녀는 논박했고, 지루해진 친구들은 다른 이야기를 했다. 잠시 후 리자는 내가 얼마나 많이 마셨는지 깨달았다. 그녀는 테이블 위에 돈을 올려놓고는 안개 낀 밤거리로 나섰다. 

따라나오는 나를 보자 리자는 지갑을 움켜잡고 도망쳤다. 그때 가로등 아래에서 그가 나타났다. 선명한 푸른 눈동자와 어깨까지 오는 곧은 갈색 머리 때문에, 잠시 난 그가 여자인 줄 알았다. 그는 수놓인 인디안 셔츠를 입고 목에 은색과 청록색의 메달을 걸고 등에 기타를 메고 있었다. 매우 말랐고, 마치 무용가나 가라대 고수처럼 움직였지만, 조심해야 한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가 나를 살펴보았다. 

"그런 식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잖아." 

나는 곧 부끄러워졌다. 무슨 생각을 했는지, 왜 그녀를 따라갔는지 더이상 확실하지 않았다. 그때는 죽음으로부터 처음으로 도망쳐 몇 년이 지났을 때였고, 나의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영구적인 영향을 줄 수 없다는 생각에, 그들을 비현실적인 것으로 여겼었다. 현기증이 나서 벽에 등을 기대고 미끄러져 털썩 보도에 주저앉았다. 어떻게 된 거지? 

그는 술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도와주었고, 오렌지 주스와 프레첼을 먹이고, 내 이야기를 들어 주었다. 난 그에게 모든 것을 말했다. 말을 취소할 수 있을테니, 했던 일들을 취소하면 어떨까? 하지만 그러고 싶지는 않아. 그는 아무말 없이 모두 들어주었다. 그때까지는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준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 영향은 설명할 수 없을 정도였다. 너무나 오랜 시간동안 난 혼자였다. 그런데, 잠시였지만...그것은 LSD 정제처럼 강한 충격이었다. 잠시였지만, 난 혼자가 아니었다. 

우리는 어깨동무를 했다. 반 블록 정도 가다가, 댄서가 좁은 골목길 앞에서 멈췄다.안쪽은 어두웠다. 

"뭔가 아주 안좋은데." 

궁금해하는 목소리였다. 

"잠깐, 저길 들어갈 생각이야?" 

망설였지만, 나도 따라 들어갔다. 

골목에는 썩은 맥주 냄새가 쓰레기 냄새, 상한 구토물 냄새와 섞여 있었다. 잠시 후 눈이 어둠에 익숙해졌다. 

리자가 쓰레기통 몇 개 뒤에 구석에 움츠리고 있었다. 옷은 칼로 찢겨져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고, 두 다리와 한 팔에 피가 많이 나고 있었다. 그녀는 우리를 못 보는 것 같았다. 댄서가 그녀의 옆에 쪼그려 앉아 차분하게 무슨 말을 했다. 대답은 없었다. 그가 셔츠를 벗어 그녀를 감싸고 팔로 안아 들어올렸다. 

"도와줘. 내 아파트로 데려가게." 

"아파트? 무슨 소리야. 경찰을 불러야지." 

"그 더러운 녀석들을? 미쳤어? 그놈들이 또 강간하라고?" 

잊고 있었다. 그때는 60년대였다. 우리는 함께 그녀를 댄서의 폭스바겐에 실어 해쉬베리에 있는 아파트로 데리고 갔다. 

그는 차를 타고 오면서, 나는 본 적이 없는, 정열적인 여름의 어두운 면을 조용히 설명해 주었다. 멕시코 놈들의 짓이라고했다. 그들은 히피 계집애들이 그것을 공짜로 준다는 말을 듣고 버클리로 와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여자를 만나면 추한 짓을 한다. 

그녀의 상처는 대부분 깊지 않은 외상이었다. 댄서는 그녀를 씻기고 침대에 눕힌 후, 밤새도록 이야기하고 흥얼거리고 작은 소리로 안심시키면서, 옆에서 그녀를 지켰다. 난 방에 깔린 매트리스 중 하나에서 잤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그들은 그의 침대에 함께 있었다. 댄서는 조용히 잠들어 있는 그녀를 안고 깨어있었다. 그가 그녀를 안기만 했다는 것을 알 정도의 지각은 있었지만, 여전히 날카로운 질투의 아픔을 느꼈다. 둘 중 어느 쪽을 질투하는지는 몰랐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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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여행에 대한 강의 노트 

20세기초는 아마 누구도 결코 도달할 수 없을 지적인 거인들의 시대였다. 아인슈타인이 상대성 이론을 만들었고, 하이젠 베르그와 슈뢰딩거가 양자 물리학을 만들었다. 그러나 아무도 그 두 개의 이론을 서로 연결시킬 방법을 알지 못했는데, 1930년에 새로운 인물이 그 문제를 풀었다. 그의 이름은 폴 디렉. 28세에 그는 다른 사람이 실패한 부분에서 성공했다.

그의 이론은 한 가지 세부사항을 제외하고는 전대미문의 성공이었다. 디렉의 이론에 의하면, 입자는 양의 에너지나 음의 에너지 둘 중 하나를 지녀야 한다. 음의 에너지를 지닌 입자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어떻게 음의 에너지를 지닐 수 있다는 말인가? 그리고, 어째서 보통의 양의 에너지를 지닌 입자들은 큰 위치에너지를 방출하며 음의 에너지 상태로 떨어지지 않는가? 

당신이나 나라면 보통의 양의 에너지를 지닌 입자는 음의 에너지를 지니게 될 수 없다는 전제를 만들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디렉은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천재였고, 가장 위대한 물리학자였으므로, 해답을 지니고 있었다. 만약 모든 음의 에너지 상태가 이미 점유되었다면, 입자는 음의 에너지 상태로 떨어질 수 없다. 아하! 그래서 디렉은 우주 전체가 음의 에너지를 지닌 입자로 꽉 채워져 있다고 가정했다. 그것은 외부 우주의 진공, 지구의 중심, 입자가 있을 수 있는 모든 곳에서 우리를 둘러싸고 있고, 채우고 있다. 무한히 빽빽한 음의 에너지를 지닌 입자의 "바다", 그것이 디렉의 바다이다. 

그의 논리에 의하면, 그 바다에는 구멍이 있는데, 그것은 나중에 다루기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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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은 십자가에 못박히던 곳을 간 적이 있다. 산타 크루즈에서 텔 아비브까지 비행기로, 텔 아비브에서 예루살렘까지 버스를 타고 갔다. 도시에서 떨어진 언덕에서 디렉의 바다로 뛰어들었다. 

스리피스 옷을 입고 도착했는데, 알몸이 되지 않는 이상은 그렇게 입지 않을 수가 없었다. 땅이 생각보다 놀랍도록 푸르고 비옥했다. 언덕은 이제 포도나무와 올리브 나무로 덮인 농장이 되어 있었다. 코일을 어떤 바위 뒤에 숨기고 길을 따라 내려갔다. 그리 멀리 가지는 않았다. 5분 정도 걷자, 한 무리의 사람들과 마주쳤다. 그들은 검은머리에, 거무스름한 피부를 지녔고, 깨끗한 흰색 튜닉을 입고 있었다. 로마인? 유태인? 이집트인? 어떻게 구분하겠는가? 그들이 말을 걸었지만 한 마디도 알아듣지 못했다. 조금 있다가 그들 중 두 명이 나를 붙잡았고, 또 한 사람이 날 조사했다. 강도라서 돈을 찾는 것이었을까? 혹은 어떤 신분증을 확인하려는 로마인이었을까? 그제서야 적당한 옷을 찾아 어떻게든 군중 속에 섞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얼마나 순진한 것이었는지 깨달았다. 아무것도 찾지 못하자, 날 조심스럽고 면밀하게 조사했던 자가 날 후려쳤다. 그리고는 결국 내 얼굴을 땅에 처박았다. 다른 두 사람이 날 잡고 있는 동안, 그는 단검을 꺼내 양쪽 아킬레스 건을 끊었다. 그들은 자비로웠던 셈이다. 날 죽이지는 않은 것이다. 그들은 서로 웃으며 알아들을 수 없는 이야기를 하면서 멀어졌다. 

다리는 쓸모가 없었고, 한쪽 팔은 부러져 있었다. 멀쩡한 한 팔로 몸을 끌어 언덕을 기어올라가는 데에는 네 시간이 걸렸다. 가끔 사람들이 길을 지나갔지만, 그들은 일부러 나를 무시했다. 코일을 숨겨놓았던 곳에 닿자, 렌셀즈 코일을 꺼내어 나를 둘러싸게 만드는 것은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코일 안의 키패드까지 오는 동안 의식을 잃곤 했다. 하지만 마침내 그것을 작동시켰다. 디렉의 바다로부터 파동이 수렴했다. 

그리고 난 산타 쿠페즈에 있는 호텔 방에 있었다. 대들보가 타버린 곳에 천장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화재경보기가 크게 울렸지만, 도망칠 곳은 없었다. 방에는 매운 연기가 짙게 차 있었다. 숨을 쉬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그 순간이 아니라면 어느 때로든 이동하도록 키패드의 코드를 쳤다. 

그리고 5일 전의 호텔 방으로 갔다. 난 헐떡거리며 숨을 쉬었다. 침대에 있던 여자가 비명을 지르며 이불을 덮으려고 했다. 그녀와 하고 있던 남자는 다른 데 신경을 쓰지 못했다. 어쨌거나 그들은 실제가 아니었다. 난 그들을 무시하고 다음에 어디로 갈 것인지 약간 신경을 썼다. 다시 65년으로 가기로하고 조합을 입력했다. 

그리고는 공사중인 호텔 13층의 빈방에 서 있었다. 보름달에 조용한 공사장 크레인의 실루엣이 드러냈다. 다리를 시험삼아 굽혀보았다. 이미 아픔의 기억은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던 일이었으므로 지당했다. 시간여행. 이것은 불사는 아니지만, 분명 불사 다음으로 좋은 것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과거를 바꿀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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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댄서의 집을 둘러보았다. 헤이트 애쉬베리에서 한 블록 떨어진 작고 훌륭한 3층 아파트였고, 마치 다른 행성에서 온 것처럼 꾸며져 있었다. 바닥 전체에 오래된 매트리스가 깔려 있었고 그 위에는 이불, 베개, 인디안 담요, 박제 동물등이 난잡하게 널려 있었다. 들어오기 전에는 신발을 벗어야했다. 댄서는 언제나 고목으로 밑창을 만들고 멕시코산 가죽을 댄 샌들을 신고 있었다. 전혀 작동하지 않는 라디에이터는 불그스름하게 스프레이 칠이 되어 있었다. 벽은 포스터로 뒤덮여 있었다. 피터 맥스의 판화들, 밝게 칠해진 에셔의 그림들, 알렌 긴스버그의 시들과, 레코드 앨범 표지들, 평화 대회의 포스터들, "미움은 사랑입니다."라는 문구, 우체국에서 찢어온, 유명한 반전 활동가의 얼굴이 매직펜으로 둥글게 싸여진, FBI 10대 현상범의 포스터들, 강한 핑크색의 큰 평화의 상징. 그것들 중 일부는 어두운 빛으로 조명이 되었고 불가사의한 빛을 발했다. 방안에는 바나나 향의 환각제 냄새, 향냄새와 함께 곰팡내가 났다. 한 구석에서는 레코드 플레이어가 "Sergean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를 계속 반복해서 틀고 있었다. 앨범을 너무 많이 들어 지직거릴 때면, 틀림없이 댄서의 친구가 또 하나를 가져다줄 것이다.

그는 문을 잠그는 법이 없었다. 

"누군가 내게 강도질을 하고 싶다면, 글쎄, 뭐, 그들이 나보다 문을 더 필요로 하지 않겠어? 그대로 좋다구." 

사람들은 밤낮없이 그의 집에 들렀다. 

난 머리를 길렀다. 댄서와 리자와 나는 웃고, 기타를 치고, 사랑을 나누고, 어리숙한 시와 그보다 더 바보스런 노래를 만들며, 마약을 복용하면서 그해 여름을 함께 보냈다. LSD가 해바라기처럼 세상에 꽃피던 시절이었고, 사람들은 아직 현실의 반대편에 있는 이상하고 아름다운 세계를 두려워하지 않고있었다. 그때가 살만한 시절이었다. 리자가 진정으로 사랑한것은 내가 아닌 댄서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아편을 맡는 것처럼 여러 사람과 연애하는 것이 유행하던 시절이어서, 그런 것은 문제되지 않았다. 되었더라도 그리 큰 문제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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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여행에 대한 강의 노트 (이어짐) 

우주 전체가 음의 에너지 입자로 무한히 빽빽이 차 있다고 가정한 후, 디렉은 나아가, 양의 에너지 우주에 있는 우리가 음의 에너지 바다와 상호작용을 할 수 있는지 의문을 가졌다. 

음의 에너지 바다에서 탈출할 만큼의 에너지를 전자에 가하면 어떤 일이 있어날 것인가? 두 가지 일이 생길 것이다. 우선, 무(無)에서 전자가 생긴 것처럼 보일 것이다. 두 번째로, 그 바다에 전자가 있던 자리의 "구멍"을 만들 것이다. 구멍은, 반대의 전하를 가진다는 것만 빼고는, 전자와 똑같이 행동할 거라고 디렉은 생각했다. 그러나 구멍이 전자를 만나게 되면, 전자는 디렉의 바다로 돌아가게 되고, 에너지의 폭발로 빛을 내며 소멸한다. 나중에, 디렉의 바다의 구멍에 이름이 붙었다. "양전자." 

앤더슨이 2년 후 양전자를 발견하여 디렉의 이론을 입증한 것은 거의 기대 밖의 결과였다. 

그 후 50년이 넘게, 디렉의 바다 자체는 물리학자들로부터 거의 무시당했다. 중요한 부분은 바다의 구멍, 즉 반물질이었다. 나머지는 그저 수학적인 허구에 불과했다. 

70년 후, 난 초한 수학 교수의 이야기를 기억했다. 그리고 그것을 디렉의 이론과 결합시켰다. 무한히 많은 방을 가진 호텔에 엄청나게 많은 손님을 투숙시키는 것처럼, 디렉의 바다에서 에너지를 빌리는 방법을 생각해 냈다. 다시 말해, 파동을 발생시키는 법을 알아냈다. 

디렉의 바다에서 파동은 시간을 거슬러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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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엔 보다 야심적인 것을 시도해 보기로 했다. 지난 역사속으로 사람을 보내어, 증거를 가져오는 것이었다. 비록 수학적으로는 현재에 아무런 변화가 없겠지만, 우리는 여전히 과거를 변화시키기를 꺼려했다. 

무비 카메라를 꺼내고 목적지를 주의 깊게 선택했다. 

1853년 9월, 윌리엄 햅랜드와 그 가족이 시에라 네바다를 횡단해 캘리포니아 해변에 도착했다. 딸 사라는 일기를 썼고, 그들이 파커 산마루에 도달하여 멀리 태평양을 처음 보게 되었을 때, 태양이 "심홍색의 아름다운 빛을 발하며" 정확히 수평선에 닿아 있었다고 그녀는 적었다. 그 일기는 지금도 전해진다. 그들이 갔던 길 위쪽의 바위틈에 무비 카메라를 들고 숨어, 우마차를 타고 지나가는 그 지친 여행자들의 모습을 찍는 것은 매우 쉬운 일이었다. 

두 번째 목표는 1906년의 샌프란시스코 대지진이었다. 지진으로부터는 피해를 입지 않았지만 그 후에 화재로 없어진 떨어진 창고에서, 주변의 빌딩이 무너지고, 말이 끄는 소방차에 배치된 소방대원들이 헛되이 수많은 화염을 끄려고 노력하는 것을 지켜보며 찍었다. 화재가 우리가 있던 건물에 번지기 직전에 우리는 현재로 도망쳤다. 

기록은 굉장했다. 

이제는 발표할 차례였다. 

한 달 안에 산타 크루즈에서 AAAS 회의가 있을 예정이었다. 프로그램의 의장을 불러, 그때까지 우리가 무엇을 해냈는지 밝히지 않고, 초대 연사로서 발표할 기회를 얻어냈다. 난 그 필름들을 이야기 도중에 보여줄 계획이었다. 그것들은 즉시 우리를 유명하게 해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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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서가 죽던 날 고별 파티를 했다. 리자, 댄서, 나, 우리들끼리만. 그는 죽을 것이라는 걸 알았다. 내가 이야기했고, 어쨌든 그는 믿었다. 그는 항상 나를 믿었다. 우리는 댄서의 중고 만돌린을 치며, 서로의 몸에 도란으로 초현실적인 모양을 그리고, 격렬하게 모노폴리 게임을 함께 하고, 단지 마지막이라서 의미를 지니는, 수많은 대단치 않고 어리석은 일들을 하며 밤을 샜다. 새벽 4시경에, 여명이 하늘에 보이기 시작했고, 우리는 부두로 내려가, 따뜻한 곳을 찾아 떼지어 가서는, 여행을 떠났다. 댄서는 다시는 돌아올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가장 많은 양을 취했다.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은, 꿈이 죽지 않도록 언제나 그것과 함께 하라는 것이었다. 

우리는 시에서 비용을 부담하는 공동 무덤에 댄서를 묻었다. 3일 후 우리는 헤어졌다. 

난 대강 리자와 연락을 계속했다. 70년대 말에 리자는 학교로 돌아갔다. 우선 경영학 석사 과정을 위해, 그리고는 법과 대학원에 진학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얼마동안 결혼 생활을 한 것 같다. 우리는 한동안은 서로에게 크리스마스카드를 보냈고, 그 후로는 연락이 끊어졌다. 몇 년 후, 그녀에게서 편지가 왔다. 댄서를 죽인 나를 결국 용서할 수 있었다고 했다. 

춥고 안개 낀 2월이었지만, 1965년에서 따뜻함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물결이 수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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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중으로부터 예상되는 질문: 

문(완고한 늙은 교수): 여기서 가정한 일시적인 이동이 질량 에너지 보존 법칙에 위배되는 것 같군요. 예를 들어, 물체가 과거로이동할 경우, 현재에서는 질량이 사라지게 되고, 분명히 보존 법칙을 어기게 됩니다. 

답(나): 과거로 떠난 그 순간으로 돌아오기 때문에, 현재의 질량은 보존됩니다. 

문: 좋습니다. 하지만, 과거에 도착할 때는 어떻습니까? 이것은 에너지 보존에 위배되지 않습니까? 

답: 예. 필요한 에너지는, Phys Rev지(誌)에 자세히 설명된 과정에 의해, 디렉의 바다에서 끌어오게 됩니다. 물체가 "미래"로 되돌아오게 되면, 에너지는 바다로 돌아갑니다. 

문(열성적인 젊은 물리학자): 그렇다면 하이젠베르그의 불확정성 원리가 과거에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을 제한하지 않습니까? 

답: 좋은 질문입니다. 답은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무한개의 입자로부터 무한히 작은 에너지를 빌리기 때문에, 과거에서 사용되는 시간은 얼마든지 커질 수 있습니다. 유일한 제한은 현재에서 출발한 순간이 되기 전에 과거를 떠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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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튼, 갈릴레오, 그리고 디렉과 함께 내 이름을 꼽히게 할 논문을 30분 후 발표하게 되어 있었다. 디렉이 그의 이론을 발표한 나이와 같은 28세, 난 세상을 태울 준비가 된 불붙은 장작이었다. 초조하게 호텔 방에서 연설을 연습했다. 대학원생 하나가 텔레비전 위에 두고 간 김빠진 콜라를 들이켰다. 저녁 뉴스에서 뭐라고 말이 나왔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서 전혀 모르고 있었다. 호텔이 불붙기 시작했고 나의 죽음은 예정되어 있었다. 말끔하게 타이를 매고 거울 속의 나를 살펴본 후, 문으로 갔다. 손잡이가 따뜻했다. 문을 열자 온통 불이 퍼져있었다. 열린 문으로 마치 용이 들이닥치듯 불꽃이 폭발해 들어왔다. 난 놀라서 멍한 상태로 불길을 보며 뒤로 주춤주춤 물러났다. 

호텔 어디선가 난 비명 소리를 들었고 순간적으로 정신을 차렸다. 14층. 탈출할 방법이 없었다. 시간여행장치가 생각났다. 방을 가로질러 타임머신이 있는 상자를 열었다. 빠르고 정확한 손놀림으로 렌셀즈 코일을 써내어 그것으로 몸을 둘러쌌다. 그사이 카페트에 불이 붙어 도망칠 길이 없어졌다. 질식하지 않도록 숨을 참고 키보드로 사항을 입력하고는 시간 속으로 빠져들었다. 

난 그 순간으로 여러 번 되돌아갔다. 처음 키를 쳤을 때, 방안은 이미 연기로 가득 차 거의 숨쉴 수 없을 정도였다. 그때 약 30초정도 살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 그리고 몇 해 동안 여생을 10초 이하까지 조금씩 사용했다. 

난 빌려온 시간 속에 살고 있다. 어쩌면 우리 모두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난 언제 어디서 그 빚을 갚아야 하는지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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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서는 1969년 2월 9일에 죽었다. 흐리고 안개 낀 날이었다. 아침에 그는 머리가 아프다고 했다. 그것은 댄서에게는 흔한 일이 아니었다. 그는 절대 두통을 앓은 적이 없었다. 우리는 안개 속에서 산책을 하기로 했다. 주변은 아름다웠다. 마치 낯설고 뚜렷하지 않은 세계 안에 우리만 있는 것 같았다. 난 그의 두통에 대해 완전히 잊고 있었다. 공원의 짙은 안개 너머 부두가 보였을 때, 그가 쓰러졌다. 그리고 구급차가 오기 전에 죽었다. 그는 내밀한 미소를 지으며 죽었고, 난 그 미소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 아마 고통이 사라졌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리자는 이틀 후에 자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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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처럼 평범한 사람은 미래를 바꿀 기회가 있다. 아이를 낳을 수도 있고, 소설을 쓰거나, 탄원서를 내거나, 새로운 기계를 발명하거나, 칵테일 파티에 가거나, 대통령 후보로 출마할 수 있다. 모든 행동이 미래에 영향을 준다. 그러나 나는 무엇을 하건, 미래를 바꿀 수 없다. 이미 너무 늦은 것이다. 나의 행동은 흐르는 물에 쓰여진다. 아무 영향도 주지 않고, 아무런 책임도 없다. 내 행동은 변화를 일으키지 않는다. 전혀. 

처음 불을 피해 과거로 도망쳤을 때, 상황을 변화시키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했다. 방화범을 잡거나, 시장과 논쟁하거나, 심지어 집으로 가서 내 자신에게 회의에 가지 말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시간이 흐르는 방식이 아니다. 주지사에게 이야기를 하건, 호텔을 폭파시키건, 내가 무슨 일을 하건 간에, 그 결정적인 순간, 나의 운명인 현재, 내가 떠나온 순간에 이르게 되면, 내가 있었던 곳이 어디든 그곳에서 사라져 불길이 점점 다가오기만 하는 호텔 방으로 돌아오게 된다. 약 10 초 정도가 남아있다. 디렉의 바다에 빠질 때마다, 과거의 모든 변화는 사라지게 된다. 가끔 내가 일으킨 변화가 새로운 미래를 만드는 척 한다. 그렇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과거에서 돌아오면, 수업이 끝난 교실의 칠판을 지우는 것처럼, 수렴하는 파동의 물결에 의해 모든 변화가 지워진다. 

언젠가는 돌아가 나의 운명을 맞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난 과거에 살고 있다. 괜찮은 삶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하는 모든 일이 세상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사실에 익숙해지면 자유로운 느낌이 든다. 아무도 가본 적 없는 곳에 가 보았고, 아무도 보지 못한 것을 본 적이 있다. 물론 물리는 그만두었다. 어떤 이론도 산타 크루즈의 죽음의 밤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다. 아마 누군가는 순수한 학문의 즐거움을 계속해서 누릴 것이다. 하지만 이제 나에겐 의미가 없다. 

위안이 되는 것이 있다면, 호텔로 되돌아올 때마다, 기억을 제외한 모든 것이 변하지 않은 상태라는 것이다. 난 다시 28살이고, 똑같은 스리피스 옷을 입고 있으며, 입안에 김빠진 콜라의 흐릿한 맛이 느껴진다. 

돌아올 때마다 시간을 약간씩 사용한다. 언젠가는 시간을 다 쓰게 될 것이다. 

댄서 역시 결코 죽지 않을 것이다. 그를 죽게 하지 않을 것이다. 난 항상 그가 죽은 2월 아침으로, 혹은, 그 6월의 완벽했던 날, 1965년으로 돌아간다. 그는 나를 모른다. 결코 알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 언덕에서 만난다. 아무 일도 안하고 그저 즐기려는 두 사람으로서. 그가 천천히 기타의 코드를 잡고, 비누거품을 불며, 구름 낀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눕는다. 

후에 난 그에게 리자를 소개시켜줄 것이다. 그녀는 아직 우리를 모르지만, 상관없다. 시간은 많이 있다. 

"시간." 

언덕에 누워 댄서에게 말한다.

"정말 많은 시간이 있군." 

그가 대답한다. 

"언제나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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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흥미 차원에서 디락의 일화 몇 가지를 전합니다. 사실 여부는 확실하지 않으니 재미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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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ul A. M. Dirac


1933년 노벨상을 받은 영국의 물리학자 폴 디락(Paul A. M. Dirac, 1902-1984)은 양자역학의 창립멤버 중 한명이며, 디락 방정식으로 특수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을 접목하는 위업을 남깁니다. 디락 방정식은 양자전기역학(Quantum Electrodynamics)의 시초이며, 여기서 반물질의 존재가 최초로 예측됩니다. 그리고 공대생들의 전가의 보도 델타함수(delta function)를 정의하기도 했지요. 이 양반은 번뜩이는 학문적 재능 외에도 '극단적으로 비사교적이고 논리적인' 성격으로 유명했습니다.


1.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말은 단 세가지 뿐이었다고 합니다. "Yes.", "No.", "I don't know."


2. 케임브릿지의 동료 학자들은 디락의 과묵함을 빗대어 '디락'이란 단위를 정의했는데 1디락은 한 시간에 한마디 말하는 것을 뜻합니다.


3. 동료 물리학자 오펜하이머(맨해튼 프로젝트의 수장이었죠)는 시를 쓰는 취미가 있었습니다. 이 취미에 대해서 디락은 다음과 같이 평합니다.

"과학의 목적은 이전까지 아무도 몰랐던 사실을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말들로 전달하는 것이며, 시의 목적은 이미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사실을 아무도 알아듣지 못할 말들로 표현하는 것이다."


4. 1929년 디락과 하이젠베르크(불확정성 원리의 그분)는 학회 참석차 일본으로 크루즈 여행을 떠납니다. 활달한 성격에 얼굴도 잘생겼던 하이젠베르크는 밤마다 파티에서 여자들과 어울려 춤추는 것으로 시간을 보냈지만, 디락은 온종일 방구석에서 책을 읽거나 사색하면서 사교적인 활동이라곤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하루는 디락이 하이젠베르크에게 이런 질문을 합니다.

"왜 매일같이 춤을 추러다니나?"

"멋진(nice) 여자들이랑 같이 있으면 기분이 좋거든"

이라고 하이젠베르크가 답하자, 디락은 곰곰히 생각하더니 다음과 같이 반문합니다.

"그런데 말이야, 여자들이 착한(nice)지 어떻게 미리 알 수 있지?"


5. 이런 양반이 어떻게 또 결혼은 합니다. 부인은 유진 위그너(1963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의 여동생인데, 위그너가 소개시켜주거나 한 건 아니고 우연히 오빠와 식사를 하던 부인이 옆자리에서 '혼자서 고독하게 밥을 먹던 매력적인 남자'에게 한눈에 반해 적극적으로 구애를 하기 시작합니다.


6. 결혼 후에 이 사실을 몰랐던 동료가(혹은 학생이) 집으로 찾아왔다가 무려 '디락의 집에' 아름다운 여자가 살고 있는 걸 보고 깜짝 놀라 디락에게 누군지 묻습니다.

디락은 "그...... 그러니까 유진 위그너의 동생이야." 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 "유진 위그너의 동생이고, 지금은 내 아내이지" 라고 대답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7. 말년에 학회에서 촉망받는 젊은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과 만날 기회를 가집니다. 잠시동안의 침묵이 이어진 후 이런 얘기를 했다고 합니다.

"나는 (내 이름을 딴)방정식이 있는데, 자네는 있는가?"


8. 저녁을 먹다가 다른 사람이 "바람이 많이 부네요"라고 하자 일어나서 문을 열더니, "정말이네요."라고 확인을 하고 돌아왔다고 한다.


9. 러시아 물리학자 표트르 카피차가 디락한테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을 읽어보라고 빌려줬다. 디락이 책을 돌려줄 때 어땠냐고 물어보니까, "괜찮은 책이네. 하지만 한 장(章)에서 작가가 실수를 했어. 한 날에 해가 뜨는 장면이 두 번 나오더군."


10. 디락이 성에서 누구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한다. (옛날에 왕족들이 살던 그 성 맞다. 유럽이니 딱히 이상할 것도 없다.) 다른 손님이 이 성에는 자정에 귀신이 나온다고 말을 하자 디락이 되묻길, "자정이라는 게 그리니치 표준 시간 기준인가요, 서머타임 기준인가요?"


11. 많은 과학자들처럼, 디락도 다른 과학자들이 발표를 할 때 졸았던 것으로 알려진다. 코펜하겐에서 클라인과 니시나가 클라인-니시나 공식의 유도를 발표하고 있었는데, 칠판에 적힌 것과 논문에 적혀 있는 것이 다르다는 지적을 했다 (부호 하나가 틀렸었다). 그러자 니시나가 확인을 하더니, "논문에 있는 게 맞습니다. 제가 유도하면서 부호 실수를 하나 했나 보네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디락이 한 쪽 눈을 뜨더니, "홀수 번 실수했겠지!"라고 했다.


12. 디락의 문장은 간결하고 분명한 것으로 유명하다. 닐스 보어가 논문을 쓸 때 계속 문장을 고치고 고민하면서 "이 문장을 어떻게 끝내야 될지 모르겠네."라고 했더니 디락이 말하길, "나는 끝마칠 줄 모르는 문장은 시작하지 말라고 학교에서 배웠네만."


13. 토론토대학에서 디락이 강연한 후 질문을 받았는데, 누가 "디락 교수님, 칠판 왼쪽 위에 있는 방정식을 어떻게 유도하셨는지 이해가 안 됩니다."라고 했다. 그러자 디락이, "그건 질문이 아닙니다. 선언문이지요. 다음 질문?"이라고 했단다......


14. 이것도 8이랑 비슷한 에피소드인데, 디락이 칠판에 수식을 적던 중 디락답지 않게 실수를 했다고 한다. 한 학생이 "교수님, 2번 방정식이 이해가 안 됩니다."라고 말했으나, 디락은 계속 수식을 써내려갔다. 못 들었다고 생각하고 학생은 다시 얘기했으나, 이번에도 디락은 계속 수식을 쓸 뿐이었다. 이러자 다른 학생이 "교수님? 학생이 질문하고 있는데 왜 계속 무시하십니까?"라고 하자, "아, 질문이었어? 그냥 선언하는 줄 알았지..."


15. 코펜하겐의 한 파티에서, 디락이 여자의 얼굴이 가장 아름다워 보이는 최적의 거리가 있다는 이론을 폈다. 거리가 무한대라면 여자가 보이지 않을 것이고, 거리가 너무 가깝다면 눈의 주름이나 피부 결함이 잘 보이기 때문에 흉해 보인다는 것이다. 러시아 물리학자 조지 가모브가 "이봐, 폴. 자네는 여자 얼굴을 가장 가까이서 본 게 얼마나 가까이였나?"라고 물었다. 그러자 디락이, "아." 하더니 팔을 60cm 정도 떨어뜨린 후, "이 정도?"라고 답했다. 여자의 얼굴을 제대로 본 적도 없는 게 무슨 이론이야 이론은 물론 나중에 결혼은 했다.


16. 러시아 물리학자 표트르 카피차와 디락이 카피차의 집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카피차의 아내 안냐 카피차는 옆에서 뜨개질을 하고 있었는데, 이야기가 끝난 후에 디락이 안냐한테 매우 흥분된 상태로 말을 걸었다. "안냐, 내가 네가 스웨터를 만드는 방법을 보면서 생각을 좀 했는데 말이야, 내가 뜨개질의 위상기하학적인 측면에 관심이 생겨서 생각을 해 봤어. 뜨개질을 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생각하다가 두 가지 방법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냈지. 하나가 네가 쓰고 있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가," 그 다른 방법을 손가락으로 보여주며, "이거야." 그러자 안냐가 네가 발견한 "새로운 방법"은 여자들은 잘 알고 있으며, 안뜨기라고 불린다고 대답했다. (안뜨기를 머릿속으로 위상기하학적으로 생각하더니 알아낸거다 덜덜)

5개의 댓글

2016.01.18
디렉의 바다라길래 에반게리온인 줄 알았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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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18
@감솨합니다
디렉의 바다는 물질/반물질에 대한 이야기 아닌가?
어째서 현실우주는 쌍생성에 의한 반물질우주도 있어야하는데 물질우주밖에 없는가에 대한 가설로
물질의 에너지가 특정 양의 값보다 크면 물질, 그보다 작으면 반물질이 되고
그걸 해수면 위에 있는 것을 물질, 그 아래 공기방울을 반물질로 봐서 디렉의 바다라고 하는걸로 알아.
0
2016.01.18
@아카리나
본문엥 설명되어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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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19
@아카리나
해수면 위의 물방울이 물질이고 해수면 아래의 공기방울이 반물질이라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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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20
@응이엄마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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