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중화인민공화국 의외의 금기-6.25전쟁(5)

미중전쟁

 

2000년대에 들어 생긴 또다른 항미원조전쟁(6.25 전쟁)의 특징은 항미원조전쟁이 미중전쟁의 개념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년도 별 각 담화는 미중관계를 판독하는 풍향계마냥 중국 공산당이 설정한 고도의 정치적 의미를 함의하고 있다. 동시에 미중전쟁으로의 변화는 미중 관계에서 중국이 처한 딜레마를 보여준다.

 

 

"중국 굴기崛起"로 세계에 존재감을 드러내고 미국에 할 말을 하고 싶은 욕망과 나라의 지속적 발전을 위해 미국과 양호한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필요가 긴장을 이루고 있었다. 2000년, 2010년 한국전쟁 담화와 2020년 한국전쟁 기념 담화의 차이는 그런 모순된 욕망을 반영하여 극과 극의 반응을 보여준다.

 

 

"조선내전이 발발한 후 미국 트루먼 정부는 제멋대로 군대를 보내 무력간섭을 책동하여 조선에 전면전을 발동하고 대만해협에 제7함대를 파견했습니다. 조선을 침략한 미군은 중국 정부의 수 차례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38선을 넘어 중조 변경의 압록강과 두만강까지 근접하였으며, 전투기를 출동시켜 둥베이 변경의 도시와 농촌을 폭격하여 중국 국토를 전화로 불태웠습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독립과 자유를 직접적으로 위협하고 신생 중화인민공화국의 안보를 위협했으며 극동과 세계의 평화를 위협했습니다."

인민일보 50주년 담화

 

 

"조선 내전이 발발한 후 미국 트루먼 정부는 제멋대로 무력간섭을 책동하여 조선에 전면전쟁을 발동했습니다. 중국 정부의 수 차례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38선을 넘어 중조 변경의 압록강과 두만강으로 전투기를 출동시켜 우리 둥베이 변경의 도시와 농촌을 폭격하고 신생 중화인민공화국의 국토를 전화로 불태웠습니다."

인민일보 60주년 담화

 

 

"1950년 6월 25일 조선내전이 발발했습니다. 미국 정부는 전지구적 전략과 냉전적 사고로부터 조선 내전에 무력간섭을 책동하였고 대만 해협에 제7함대를 파견했습니다. 1950년 10월초 미군은 중국의 거듭된 경고에도 불구하고 함부로 38선을 넘어 중조 변경을 전화로 불태웠습니다. 조선을 침략한 미군 비행기는 중국의 둥베이 변경 지역을 수 차례 폭격하여 인민의 생명과 재산에 심각한 손상을 가했으며 우리나라의 안보는 심각한 위협에 직면했습니다."

인민일보 70주년 담화

 

 

세 담화의 공통적인 특징은 한국전쟁 발발에 대해 "조선 내전이 발발"했다라고 쓰고 있다. 1970년대까지 북침설을 고수하던 중국은 1992년 한중수교 이후 "조선내전이 발발했다"는 중립적인 표현으로 바꾸었다. 현재 중국의 입장은 남침이든 북침이든 전쟁에 시발에 대해 개입하지 않겠다는 반응이다.

 

 

중국이 참전한 이유에 대해 2가지 만 밝혔다. 첫째, 미국이 38선을 넘어 둥베이(동북 3성 지역) 변경 지역에 폭격을 가했다는 것, 둘째는 미국이 대만해협에 제7함대를 배치했다는 것이다. 두번째 이유를 계속해서 중국이 언급하는데, 중국의 대만 해방을 미국이 저지했으며, 이것은 미국의 내정 간섭이다.라고 중국 공산당은 규정했다.

 

 

대만 해협 7함대 드립은 2010년에는 인민일보 사설에서 언급되지 않은데 2010년 10월 시점에서 내년 2011년 1월은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이 백악관 국빈 방문이 예정되었던 시기였다. 항미원조 담화에서 대만 7함대 문제가 언급되지 않은 것은 그때까지도 양호했던 미중관계를 철저히 의식한 중국 지도부의 입맛이 반영된 입장문 이었다.

 

 

우호적이던 2010년대 초반은 2010년대 중반을 거쳐 급속도로 악화되어 갔다. 2000년 인민일보 기념 담화가 "미국 트루먼 정부가 제멋대로 조선 내전에 무력간섭을 했다."고 언급하여 이를 미국 트루먼 행정부의 미숙한 판단으로 치부했다면, 2020년 담화는 트루먼 정부에서 미국 정부, 제멋대로란 글귀 대신 "전지구적 전략과 냉전적 사고로부터"로 대체함으로써 미국에 대한 정면 비판을 피하지 않게 되었다.

 

 

70주년 담화는 미국이 중국에 위협을 가하고 있다는 현재의 중국 공산당의 위기 의식을 은근히 강조하고 있다.

 

 

평화에 대한 언급도 주목할 만 하다. 2000~2010년 담화는 "평화를 수호하는 정의로운 전쟁"이라는 서사를 견지하고 있다. 장쩌민 주석의 2000년 기념담화에서 평화는 총 38회 등장했다. 탈냉전시대의 평화 공존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대목은 2000년대 양호한 미중관계를 반영했다. 때는 중국의 경제가 개혁 개방으로 성장하던 시기, 평화로운 국제 환경은 안정된 경제성장을 위해 중국 정부가 절실히 원하던 배경이었다.

 

 

2010년 기념 담화도 2000년 기념 담화의 분위기를 이어갔다. 이 담화는 항미원조전쟁을 기념하는 이유가 "대결을 지속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발전적으로 사고하고 역사를 통찰하며 현실을 관찰하고 미래를 사유하는 긴 안목으로 역사의 경험을 더 잘 길어올리기 위함"임을 밝히고 있다. 특히 당시 현안인 북핵문제에 대해 중국의 "평화발전을 실현"하는 필수 조건임을 강조하며, "대화와 협상"으로 "한반도 문제의 최종적이고 철저한 해결"을 실현하자고 주장했다.

 

 

이 시기에 2000년 평화 서사와 다른 양면적인 서사도 진행되고 있었다. 2010년부터 항미원조전쟁을 애국주의의 틀로 조형하는 서사화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6.25전쟁에서 중국이 승리한 전장과 전적을 구체적으로 언급하기 시작한 것이다.

 

 

"1950년 10월 25일에서 1951년 6월 10일까지, 중국인민지원군은 조선인민군과의 긴밀한 공조 아래 양수동의 초전, 운산성의 격전, 청천강의 총력전, 장진호의 악전 등 연속 다섯 차례의 전역을 진행하여 침략군을 압록강과 두만강변에서 38선 부근으로 몰아내고, 조선 북부의 광대한 토지를 일거에 수복하여 반침략전쟁 승리의 기초를 다졌습니다. 그후 철옹성 같은 종심 방어진지를 구축하여 적의 주요 공격과 세균전을 수 차례 분쇄했습니다. 중조군대는 전선을 38선에 안정시켰을 뿐 아니라 수 차례의 공세를 감행하여 침략자가 정전회담장에 나오도록 압박했습니다."

인민일보 60주년 담화

 

 

70주년 담화에서는 여기에 상감령의 혈전이 추가된다. 주목할 만한 점은 2010년 담화에서 세균전이 언급된다. 중국에서 제기한 세균전 문제는 미국이 둥베이 지방에 세균을 살포했다는 것이다. 박헌영과 저우언라이가 항의하여 공산권에서 조직한 국제민주법률가협회조사단이 1952년 3월 5일에서 19일까지 조사했다. 세계평화회의 집행회의가 구성한 국제과학조사단이 2개월의 현지 조사를 벌였다. 두 단체 모두 중국과 북한의 주민들이 세균전의 대상이 되었다고 주장했다. 미국은 이를 부인했다.

 

 

세균전이 진짜인지는 모른다. 몇몇 영미권 학자(캐나다의 스티븐 앤디콧Stephen Endicott과 에드워드 해거먼Edward Hagerman, 당시 조사단원 중 하나인 조지프 니덤Joseph Needhum)들이 한국전 당시 세균전이 있었다는 주장을 내놓기도 했지만, 휴전 70년 후 확실한 증거은 없다. 다만 확실한 것은 그때 중국 정부는 미국 정부가 세균전을 벌였다는 것을 진심으로 믿고 있었다는 것이다.

 

 

중국은 세균전 문제에 대해 극도로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아무래도 한국 전쟁 이후에는 서로 웃으면서 엄청나게 경제 교류를 했고, 이는 중국에서도 나쁠 것 없었다. 괜히 확실하지 않는 것을 언급했다가 미중관계가 개박살나는 것을 적어도 2010년까지는 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때 이후로 세균전은 꾸준히 언급되어 아예 드라마 전체가 한국전쟁으로 구성된 "압록강을 건너"란 드라마에서 세균전이 언급된다. 물론 드라마에서도 세균전에 대해서 신중하게 접근한다.(중국 스파이계의 거물인 리커농이 중국과 북한 휴전 대표에게 회담장에서 세균전에 대해 언급하지 말라는 언질을 준다.) 하지만 이것을 언급한다는 자체가 한국전쟁 중 세균전이 있다는 사실을 중국 정부가 공식화 한 것이나 다름 없었다.

 

 

60주년 기념 담화가 평화와 전쟁을 강조하는 양면성을 보여줬다면 70주년 기념담화는 미중대결이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 된 현 상황에서 명료한 측면을 보여준다. 물론 평화는 존재했다. 하지만 그 담화에서의 평화는 '평화를 위한 전쟁'이라는 논리로 사용되었다. 70주년 기념 담화에서 시진핑은 21세기 공적 문서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거리낌 없는 적대감을 보여준다.

 

 

"중국 인민은 깊이 알고 있습니다. 침략자와는 그들이 알아듣는 언어로 대화해야 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것은 바로 전쟁으로 전쟁을 막고 무기로 창을 막으며 승리로 평화와 존중을 얻는다는 뜻입니다. 중국 인민은 일을 저지르지도 않지만 일을 저지르기를 두려워하지도 않습니다. 어떤 역경과 위험 앞에서도 다리를 떨지 않을 것이며 허리를 굽히지 않을 것입니다. 중화민족은 겁먹지 않습니다. 무너지지 않습니다."

70주년 기념 담화에서

 

이 문장은 1953년 전쟁 직후 날 것 그대로의 적대감이 드러난 마오쩌둥의 말("평화에 찬성하지만 전쟁도 안 무섭다.")을 연상케 한다. 그 외에도 70주년 여러 담화에서 마오의 육성을 인용한 문장들이 튀어 나온다. "이제 중국 인민은 조직되기 시작했습니다. 건드릴 수 없습니다. 잘못 건드리면 골치 아파집니다!"란 구절은 마오쩌둥의 "항미원조의 승리와 의미"에서 그대로 배껴서 나온 문장이다.

 

 

70주년 담화 곳곳의 과격한 표현은 1950년 9월 5일 마오쩌둥의 발언에서 가져온 말들이었다. 2020년 시진핑의 담화는 항미원조전쟁이 역사화 되기는커녕 오히려 생생한 현실로 돌아오는 것을 보여준다.

 

 

70주년 기념담화의 또다른 특징은 뤄성자오가 빠진 것이다. 뤄성자오는 1952년 1월 평안도 성천군에서 주둔 중 최영이라는 어린아이가 언 강바닥에 빠진 것을 보고 구하다가 목숨을 잃었다. 부상당한 중공군을 구하려다 숨진 북한의 들것부대원 박재근과 더불어 뤄성자오는 조중 우호의 상징이 되었다.

 

 

2020년 담화에서는 장진호의 황초령 고지에서 폭약을 안고 미군에게 뛰어들어 폭사한 양건쓰, 상감령 598고지 탈환 중 온 몸으로 적의 토치카를 막은 황지광, 매복 중 아군의 위치가 노출되지 않도록 짚불 아래에서 산채로 불타 죽은 치우샤오윈이 언급된 것과 별개로 뤄성자오는 빠져 있었다. 2000년 기념담화에선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빛나는 국제주의 전사"로 칭송받은 뤄성자오는 2010년 담화 이후 자취를 감췄다. 중국의 한국전쟁 서사에서 서서히 퇴색되어 가는 국제주의와 중조우의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건이었다.

 

 

2016년 애니메이션 영화 "누가 가장 사랑스런 이인가(1편에 언급한 웨이웨이의 산문집)"에서도 뤄성자오는 빠져 있었다. 애니메이션은 양건쓰, 치우샤오윈, 황지광, 장타오팡(저격능선 전투의 유명한 중공군 저격수, 1931~2007), 왕하이(한국전쟁 당시 공군 에이스, 1926~2020)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었다. 기존의 추앙받은 인물들이 소위 전쟁에서 목숨을 잃은 열사였다면 장타오팡과 왕하이는 열사가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70주년 담화에서 시진핑은 한국 전쟁 당시 전사한 수가 197,000명이라고 전격적으로 공개했다. 전쟁 직후 마오쩌둥은 한국전쟁에서 중공군이 입은 피해에 대해 우리도 댓가를 치뤘지만 예상보다 훨씬 적었다고 얼버무렸다. 1980년 이후 전몰자 수가 36만 명이라는 수치가 나왔으며, 2010년 10월 183,108명(항미원조기념관 추산), 2014년 197,653명(중국총정치부와 중국 민정부의 교차대조를 통해 나온 추산)으로 각각 수정되었다.

 

 

이런 구체적인 수치가매체를 통해 대중에게 공적으로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2020년 10월 23일 CCTV에서 항미원조 197,653분의 희생열사를 기억합시다.라는 기사를 띄우고 황지광, 양건쓰, 치우샤오윈, 양롄디, 쑨잔위안, 양춘쩡, 쉬자펑, 우셴화, 양바오산 9명의 위패를 온라인에 올렸다. "항미원조 197653位 희생열사"란 해시태그가 중국에서 빠르게 확산되었다.

 

 

앞서 1편에서 언급한 BTS가 밴플리트상을 수상하고 중공군의 전사를 언급 안한 것에 많은 중국 네티즌들이 분통을 터트린 이유도 바로 당시의 이 같은 사회적 분위기의 영향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미국 국방성은 한국전쟁 당시 미군 전사자를 33,686명(2000년)으로 공식화 했다. 비전투요인 전사까지 포함하면 54,246명이었다. 국군 전사자와 북한군 전사자도 고려해야 하지만 197,653명의 전사는 중국인에게 있어 미군과 비교하면 뭔가 그때 중공군이 무능하고 압도당한 느낌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진핑은 한국전쟁 당시 중공군 전사자의 수를 한 자리까지 불러 말했다. 이는 그 당시 전사한 이들을 지금의 비상한 '위기' 상황에서 필요한 애국주의 교육의 재료로 삼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숫자를 언급한다는 것은 중국에서 항미원조전쟁이 모호한 금기에 얽매이지 않겠다는 자신감의 의지로 보인다.

 

 

이후 만들어진 영화(장진호, 금강천)나 드라마(38선을 건너)는 이런 중국 정부의 영향을 받아 2020년 이후(더 정확히는 2010년 담화 이후) 중국의 입장이 반영된 한국 전쟁 담론을 작품 내에 한껏 담아내고 있다.

 

 

 

 

출처: 중국인들의 한국전쟁-항미원조抗美援朝

2개의 댓글

12 일 전

중국의 한국전쟁 관련 영화에서 국군은 있다는 것만 언급되고 미군만 나오는 이유도 바로 저런 이유일 것임.

3
11 일 전

중국에서 근래 문혁에 대한 자체 평가가 년단위로 왔다리 갔다리 하는 것도 보면 재밌음

0
무분별한 사용은 차단될 수 있습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추천 수 날짜
1229 [역사] 광신도, 근본주의자, 사기꾼 1 김팽달 3 10 시간 전
1228 [역사] 지도로 보는 삼국통일전쟁 12 FishAndMaps 5 2 일 전
1227 [역사] 장진호 전투 트리비아. "모든것이 얼어붙었다" 4 잔다깨우지마라 10 7 일 전
1226 [역사] 한국의 성장과 서울의 성장 13 쿠릭 4 7 일 전
1225 [역사] 지도로 보는 올초 겨울까지의 우크라이나 전쟁 13 FishAndMaps 21 11 일 전
1224 [역사] 중화인민공화국 의외의 금기-6.25전쟁(5) 2 綠象 4 12 일 전
1223 [역사] 중화인민공화국 의외의 금기-6.25전쟁(4) 綠象 3 12 일 전
1222 [역사] 중화인민공화국 의외의 금기-6.25전쟁(3) 1 綠象 3 12 일 전
1221 [역사] 중화인민공화국 의외의 금기-6.25전쟁(2) 4 綠象 11 17 일 전
1220 [역사] 중화인민공화국 의외의 금기-6.25전쟁(1) 4 綠象 14 17 일 전
1219 [역사] 네안데르탈인은 어떻게 생겼을까? 2부 3 식별불해 12 17 일 전
1218 [역사] 네안데르탈인은 어떻게 생겼을까? 11 식별불해 29 18 일 전
1217 [역사] American Socialists-링컨대대의 투쟁과 최후(下) 2 綠象 5 22 일 전
1216 [역사] American Socialists-링컨대대의 투쟁과 최후(中) 1 綠象 3 23 일 전
1215 [역사] American Socialists-링컨대대의 투쟁과 최후(上) 5 綠象 4 24 일 전
1214 [역사] English) 지도로 보는 정사 삼국지 3 FishAndMaps 6 26 일 전
1213 [역사] 인류의 기원 (3) 3 식별불해 8 29 일 전
1212 [역사] 지도로 보는 정사 삼국지 ver2 19 FishAndMaps 15 2024.04.18
1211 [역사] 군사첩보 실패의 교과서-욤 키푸르(完) 1 綠象 1 2024.04.17
1210 [역사] 아편 전쟁 실제 후기의 후기 3 carrera 14 2024.04.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