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머

웃는 자에게 복이 오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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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 앙투안 쿠아펠, 데모크리토스. 이빨까지 빠진 노령인데도 개구쟁이처럼 헤벌레 웃고 있는 것이 그의 활력을 짐작케 한다>

 

테스 형이 고대 아테네에서 미덕과 선(善)에 관한 수련을 열렬히 강조하고 있을 시절, 데모크리토스(Δημόκριτος)는 초보적이나마 원자론을 주장하고 다녔다. 다들 아시다시피, 원자론이란 만물이 더 이상 나뉘어지지 않는 무언가로 이루어져 있다는 이론이다. 단지 데모크리토스만의 특별한 점은, 접시 · 지붕 · 짐승 같은 사물 뿐만 아니라, 영혼우주, 심지어는 들처럼 형이상적인 존재조차도 모두 원자로 구성되었다고 설명하는 점이다. 그럼 벼룩 같은 미물과 뇌신(雷神) 제우스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놀랍게도 데모크리토스는 원자의 뭉친 정도 이외에 아무것도 다를 바 없다고 덧붙였다. 다시 말해, 데모크리토스는 원자론을 통해 유물론까지 설파하고 있는 셈. 물론 이는 시대 상의 한계로 인해 실증되지는 못 했지만, 대략 2,000년은 지나서야 주류 학계에서 이야기 할 거리였던만큼, 그의 생전에는 몹시 선구적인 생각이었다. 당연히 고대 그리스인들은 너무나도 믿기지 않는 데모크리토스의 학설을 놓고 연일 격렬한 언쟁을 벌였다. 

 

이러한 논란은 데모크리토스의 후속 발표로 인해 더욱 거세어졌다 : 그는 원자의 이합집산이 다른 원자와의 충돌로 인해 발생한다고 했으면서, 정작 원자의 운동에는 어떠한 외력도 개입하지 않는다고 했다. 외부에서 가해지는 힘이 없다는 말은 곧 원자의 운동은 저절로 발생하며, 따라서 원자가 얼마나 뭉치고 흩어질지 아무도 알 수 없는 뜻이다. 그렇다면 벼룩과 제우스를 비롯하여 삼라만상의 차이를 만드는 것도 순전히 운빨이란 얘긴데, 당대 사람들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내용이었다. 열 둘씩이나 되는 세계의 지배자들마저 예외 없이 아우르는 섭리가 고작 랜덤 가챠라면, 도대체 산다는 게 무슨 의미를 갖겠는가? 어차피 세상살이는 예측할 수 없는 원자들의 변덕으로 만들어지고 마는 것을. 이와 같이 신성성이 배제된 삶에 대한 견해는 무수한 찬동과 반발을 낳아서, 어떤 동네에서는 그 업적을 기리는 동상까지 세워줬는가 하면, 다른 동네에서는 대를 이어서 데모크리토스를 성토할 지경에 이르렀다. 특히 플라톤의 경우, "데모크리토스의 서책은 불경하기 그지 없으니 보이는 족족 태워버려라!" 라며 격앙된 반응을 보이기로 유명했다.

 

이토록 삶에 비관적(?)인 학설을 탐구한 사람 치고는 신기하게도, 데모크리토스의 특기는 웃음이었다고 한다. 그의 친구들은 워낙에 방실방실 잘 웃는 데모크리토스가 정신병에 걸리지는 않았나 걱정할 정도였다. 마침내 데모크리토스를 명의로 소문 난 히포크라테스 앞에다가 앉혀놓기까지 했건만, 의사 양반은 짐짓 "이 사람은 아픈 게 아니고, 지혜로워져서 웃은 것 뿐입니다." 라고 진찰을 마쳤다. 덕분에 데모크리토스에게는 웃는 철학자라는 별명이 따라붙게 되었다. 내내 인생의 덧없음을 논한 사람이 무슨 웃을 일이 있었길래 그다지도 웃어젖혔을까? 후술하겠지만 데모크리토스가 자주 웃을 수 있었던 까닭은 원자의 움직임으로부터 통찰해 낸 삶의 비밀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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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의 만첩홍매(萬疊紅梅). 유박은 40여 종의 꽃에 아홉 개의 등급을 매기고, 그 중에서도 매화를 으뜸으로 치며 사랑하였다>

 

유박(柳璞)이라는 인물은 본래라면 역사에 아무런 이름을 남기지 못할 뻔 했다. 선비 집안의 사람으로 태어나, 한 평생을 벼슬길에 오르지 않고 은거했기 때문이다. 서경덕(徐敬德)처럼 굳이 조정에 나서지 않더라도 후세에 길이 기억되는 사례가 있긴 한데, 유박은 학문을 닦고 문파를 양성하는데 주력하지도 않았다. 그럼 무엇을 하고 살았느냐면, 당대까지만 해도 잡스런 취미에 해당하던 원예였다.

 

예로부터 유학자들은 "완인상덕 완물상지(玩人喪德玩物喪志)"라는 상서(尙書)의 금언을 정신 수양의 기본으로 삼았다. "사람을 아끼면 덕을 잃고, 물건을 아끼면 뜻을 잃는다"는 의미인데, 쉽게 말해 매사에 너무 정을 쏟은 나머지 그것에 휩쓸리지 않게 주의하라는 경고이다. 이는 사대부들의 정신적 규격화를 통해 현실 정치의 문제에만 집중하도록 하려는 유교 나름의 학칙이었다. 그리고 여기서 일컫는 물건의 범위에는 시와 그림, 조각 같은 예술품에 더불어 화초가 포함되었다. 다시 말해, 유박처럼 꽃 돌보기에 열중하는 건 유자로서 지양해야 할 일에 해당한다.
 

물론 유박 역시 처음부터 꽃을 기르지는 않았다. 여느 선비들과 마찬가지로 젊은 시절에는 한양 살이를 하면서 공부도 하고 왕성하게 구직 활동(= 과거 시험)에도 임했다고. 그러나 20대를 즈음하여 과거 공부마저 집어치우고, 돌연 황해도로 건너가 두문불출하였다. 아마도 어느 시점에서 학문의 뜻을 완전히 접고, 본인이 선비로서는 낙제점이라는 사실을 덤덤하게 수긍했던 모양. 훗날 자신의 집 현판에다가 직접, "나는 타고나길 졸렬하여 스스로 생각해보아도 쓸모가 없는 사람이다"라는 자조적 소회를 밝히기까지 했을 정도다.

 

하지만 낙오자를 자처한 유박은 좌절하고만 살지 않았다. 오히려 주류로부터 멀어지기로 결심한 이후, 세간의 시선에 구애받지 않게 되었다. 어쨌거나 선비 행세를 그만 둔 이상,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서 지내도 무슨 허물인가? 때문에 유박은 제 갈 길을 스스로 만들어 나아가기 시작했으니, 바야흐로 40년 가까이에 걸친 세월 동안 꽃길만 걷게 된 것이다.

 

유박은 말 그대로 사방을 돌아다니며 화초를 수집했다고 한다. 각지의 특산물에 해당하는 꽃 모종을 구하려는 노력이었다. 그는 중국을 오가는 상인들에게 조선 땅에서 찾기 어려운 종려나무(= 야자수) 등을 얻어달라고 부탁했으며, 남녘에서는 동백꽃과 치자꽃을 청했다. 추운 동네인 북쪽에서도 배꽃을 피우겠다며 배나무를 모으려 했다. 귀한 꽃이 매물로 나왔다는 소식만 들리면 어디든지 한 달음에 달려갔고, 심지어는 외국인들을 섭외하여 외래종 화초마저 두루 구해다가 심었다. 덕분에 그의 화원에는 사시사철 꽃이 만개하여 별천지가 따로 없었다.

 

꽃을 향한 그의 사랑은 주변 사람들에게도 큰 귀감이 되었다. 유박이 화분을 늘리려고 외출할 때면 누군가는 꽃을 돌봐주어야 하지 않겠나? 그럴 때마다 가족뿐 아니라 이웃들이 서로 도와가면서 유박의 꽃을 관리하여, 주인이 없는데도 화초가 시들거나 상하질 않았다. 어부와 뱃사공들은 부탁 받은 일 없이도 예쁜 꽃을 발견하면 화분에 담아 유박에게 건네주었다. 꽃밭을 늘려야 할 때면 아예 온 마을의 공동 작업처럼 되어선,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거들었을 지경이었다. 10년을 꽃에 파묻혀 살자 아예 지역 명사로 거듭나 손님을 받기까지 했다. 유박은 자신의 초가집을 개축하고 백화암(百花菴)이라 이름하였는데, 저명한 문필가들이 축하하는 의미로 앞다퉈 시문을 지어주었다. 이렇게 온 동네 사람들을 감화시킨 유박의 열정은 곧 좌의정을 지냈던 채제공(蔡濟恭)의 귀에도 들어갈만큼 전국적으로 유명해졌다.

 

과거에도 꽃을 사랑하기로 이름 난 인물은 많았다. 세종 시절 문신이었던 강희안(姜希顔)의 경우 언제나 꽃을 가꾸며 소일했고, 그 또한 사우정(四雨亭)이라는 거처를 화원으로 조성해서 지인들과 향유했던 꽃덕후였다. 나아가 강희안 본인의 오랜 경험을 담아서 양화소록(養花小錄)이란 책을 저술했는데, 일본에까지 전해질만큼 해박한 조선 최초의 원예기술서였다. 그렇지만 유박에 비하면 새 발의 피였으니, 생전에 강희안은 대략 20종 이하의 꽃을 키웠을 뿐이기 때문이다. 유박은 본인의 저서 화암수록(花菴隨錄)에서 45종이나 되는 꽃들을 일일이 선별한 다음, 총 9개의 등급을 매기고 품평까지 달아두었다. 이는 자신의 기준에 미달한 10 여 가지 화목들이 제외된 숫자이다. 특히 꽃에 대한 품평이 재밌어서, 조선만의 고유한 감성으로 풀이하여 매우 와닿는 비유를 들었다 : 해당화를 두고 "잠에서 덜 깬 꽃"이라 했는데, 확실히 꽃잎이 오그라든 모습은 몽롱해 보인다. 치자꽃은 "비쩍 마른 두루미"라는 표현으로 갈라진 꽃잎을 묘사했다.

 

유박과 같은 사람들을 일컬어 벽(癖)이라고 한다. 취미를 넘어 심원한 경지에 이른 애호가들을 위한 호칭이다. 벽을 낀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분야에서 즐거이 매진하며, 기존 지식을 보다 높은 수준으로 확장하는 등 세상을 이롭게 한다. 이들의 벽은 천성이자 특출난 재주이기 때문에 억제하면 도리어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많아진다. 유박은 이러한 순리를 일찌기 받아들이고 남의 눈 따위는 아랑곳 않은 채 화벽(花癖)을 마음껏 부리며 살았다. 그러자 막막하던 삶의 벽(壁)이 허물어지면서 지극한 행복과 명예가 뒤따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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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드리히의 초상. 병약한 몸으로 늘 골골거렸지만, 누구보다도 강인한 의지로 삶을 개척해 나간 인물이다>

 

오늘날 빌헬름 텔이라고 하면 로빈 후드와 나란히 명사수로서의 입지가 굳건한 캐릭터로 자리잡았다. 아들의 머리에 사과를 얹어놓고 쇠뇌로 맞혔다지? 본래 스위스 쪽 전설이었던 빌헬름 텔의 이야기는 이렇듯 멀리 떨어진 우리나라에서도 알 만큼 유명해졌다. 훗날 작곡가 로시니(Rossini)가 오페라를 지어다 발표하면서 더욱 널리 알려졌는데, 사실은 모두 요한 크리스토프 프리드리히 폰 실러(Johann Christoph Friedrich von Schiller)가 집필한 희곡 「빌헬름 텔」의 선풍적인 인기 덕분에 가능했던 일이다.

 

군의관의 아들로 태어나 영특함을 자랑하던 프리드리히는 영주의 강제로 사관학교에 입학했고, 전공 역시 의학으로 고정되었다. 당시 사관생도 기숙사는 몹시 엄격한 통제 하에서 운영되었으며, 졸업하자마자 후원해 준 영주의 의무관으로 복역해야만 했다. 프리드리히로서는 자기 뜻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으니 반발심이 저절로 생길 수 밖에. 그는 이러한 불만을 몰래 시와 희곡을 집필하는 것으로 달래었다. 그러다가 첫번째 극작품 「군도(群盜)」를 발표하기에 이르렀는데, 대중들의 열렬한 환호 속에서 높은 흥행을 기록했다고 한다.

 

문제는 「군도」가 내용 상 신분 사회의 불합리함을 비판하는 고발극의 성격을 띠었다는데 있다. 주인공이 도적떼에 가담하여 탐욕스러운 압제자들의 목을 치고 다닌다는, 그야말로 홍길동전을 방불케 하는 모험 활극이었던 것이다. 여기서 등장하는 압제자란 두말 할 필요도 없이, 작가 프리드리히를 몰아붙인 영주를 모델로 삼은 인물이다. 자신이 후원해주던 젊은이로부터 신랄하게 풍자 당한 영주는 당연히 대노하여 그를 구금하고, 일체의 집필 활동을 금지함으로써 실망감을 드러냈다.

 

사실 프리드리히는 여기서 객기를 접고 얌전히 의사의 길을 걸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젊은 프리드리히의 인생은 이 때부터 굴곡지기 시작했으니, 도저히 절필하지 못한 그가 끝내 반 년 여 만에 탈영해버렸기 때문이다. 순응과 저항의 길 사이에서 거듭 고민하던 그는 의무관을 때려치기로 결심하면서 "나를 용서하십시오, 히포크라테스!" 라는 말을 남겼단다. 이후로 그의 작품 세계는 「군도」에서 표출된 저항 정신을 한결 같이 계승하여, 자유로운 인간으로서의 갈망을 주제로 삼게 되었다.

 

도망자 신세인만큼 기껏 「군도」로 쌓아올린 명성을 자랑할 수도 없고, 신분을 증명하지도 못한 프리드리히는 매우 고달픈 시절을 보내야만 했다. 며칠씩 유리걸식하느라 꼴이 만신창이였고, 2 ~ 3년 단위로 이사를 다녀서 정착은 꿈도 못 꿨다. 그 바람에 쇄약해져서 앓아눕기 일쑤였는데, 나중에도 건강 문제는 두고두고 후환이 되어 프리드리히의 발목을 붙잡았다. 번듯한 직장을 잡아본들 와병으로 사직하길 반복했는가 하면, 요양하면서 생활고까지 겹치자 사랑하는 연인과의 이별도 뒤따랐다.

 

하지만 결코 작품 활동을 멈추지는 않아서, 떠돌아다니는 동안 「피에스코의 모반」, 「간계와 사랑」, 「돈 카를로스」, 「환희의 송가」 같은 희곡들을 연이어 집필하여 비상한 문재를 다시 한번 세상에 알린다. 특히 「간계와 사랑」은 정의롭고 순수한 주인공이 권력욕 강한 귀족들의 계략에 놀아나다가 파멸하는 내용을 통해 또 한 번 계급사회의 부조리를 드러내는 명작으로, 독일에서는 지금도 인기리에 상영되고 있다. 이외에도 여러 논문과 철학서 및 전공 서적(주로 역사)을 저술하면서 사상적 바탕에 대한 연구 역시 게을리하지 않았다.

 

프리드리히의 왕성한 창작욕은 대문호 괴테(Goethe)와의 만남으로 더욱 큰 빛을 발하게 되었다 : 우연히 한 학술회에서 마주친 괴테와 프리드리히는 10살의 연령 차에도 불구하고 이내 서로의 극진한 독자이자 절친한 친구 사이로 거듭났다. 두 사람은 비록 지향하는 예술관이 달랐으나, 오히려 그로 인해 문예적 교류를 활발하게 가지면서 각자가 구상 중인 작품에 진한 영향을 남겼다. 프리드리히의 경우는 괴테의 비평 및 감수가 있어서 후기 작품들인 「발렌슈타인」, 「마리아 슈투아르트」, 「오를레앙의 처녀」, 「메시나 신부」, 마침내는 「빌헬름 텔」까지 연달아 출간할 수 있었다. 덕분에 프리드리히는 극작가로서의 공로를 높이 평가하여 폰 실러(von Schiller)라는 작위까지 얻었다.

 

이렇듯 뒤늦게 영광을 맞이한 프리드리히였건만, 불과 3년 뒤 병마와의 싸움 끝에 숨을 거두고 말았다. 그의 삶을 표면적으로 본다면 갖은 고생 다 해가면서 겨우 입지를 다져놨는데 채 누리기도 전에 하직하여 야속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프리드리히는 글을 쓰겠다고 고향조차 등진 위인이다. 진작부터 자신의 병세를 잘 알았던 그는 잠자코 치병에 전념하지 않고, 말년동안 숱한 걸작들을 배출하며 혼을 불태웠다. 이는 평생토록 인간의 자유라는 이상을 문장에 싣던 사람답게, 자신 앞으로 닥쳐온 운명의 파도에 절대 굴하지 않고 의연하게 맞서겠다는 뜻이었다. 이윽고 만인으로부터 그 저항 정신과 고결한 의지를 인정 받고 방랑자에서 귀족으로 거듭났으니, 그다지 후회를 남기진 않았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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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코프 요르단스, 헤라클레이토스와 데모크리토스. 견해 차이는 있었지만, 두 사람이 닦은 이법(理法)의 반석은 후세 철학자들에게 굳건한 토대가 되어주었다>

 

데모크리토스의 웃음은 그가 견지한 학설을 고려할 때, 마치 세상사에 대한 냉소처럼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모든 게 원자의 가늠할 수 없는 운동에 달려있는 마당에, 인간이 구태여 잘 살려고 애쓸 필요는 없으니 말이다. 그러한 세계관에서는 참된 삶의 가치와 행복, 윤리 등에 대한 고민이 모두 부질 없게만 여겨진다. 실제로 이 사람의 선배 철학자였던 헤라클레이토스(Ήράκλειτος)도 비슷한 생각 때문에 지독한 염세주의자로 살았다. 그는 만물유전(萬物流轉)이라는 유일의 진리에 입각하여, 모든 것이 거대한 유기적 관계망에 속한 부속 존재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다름 아닌 그 사실로 인해 선과 악, 행복과 불행, 정의와 불의 등의 개념을 특별히 구분할 필요가 없어지고 말았다. 결국 헤라클레이토스는 이러한 본인의 깨달음을 기껏 가르쳐주어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대중들을 비웃고는, 마음의 문을 닫은 채 왕래를 끊고서 은둔했다.

 

그러나 데모크리토스는 오히려 원자론을 통해 인간적인 삶에 대한 가능성을 제시했다 : 데모크리토스가 원자론에서 중시한 또 한 가지 내용은 원자의 운동에 외력이 작용하지 않는다는 부분이었다. 이는 원자의 운동을 설명할 때 외부의 힘, 말하자면 인력이나 척력 뿐만 아니라 명분과 목적처럼 의식적인 힘을 포괄해 그 어떤 것도 고려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이다. 원자는 신과 운명처럼 불가사의한 존재들에 의해 부여받은 계획 혹은 의도에 상관 없이, 자체적으로 내재된 운동성만으로 기능하는 까닭이다. 그런데 앞서 데모크리토스가 영혼도 원자로 이뤄졌다고 하지 않았나? 그렇다면 영혼 역시나 외적으로 주어지는 명령이 아닌, 순전히 영혼 본연의 자율만으로 행위한다고 할 수 있겠다. 영혼이란 생명 활동의 근원이자 정념과 사유의 주체이므로, 결국 영혼의 기능인 이성(理性) 및 감성(感性)만큼은 원자의 연쇄로 표상되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우리들의 의지가 작용하는 영역이다. 따라서 잘 살아보고자 하는 인간의 노력은 충분히 값지며, 윤리를 바로 세우고 선을 추구하려는 결심은 헛된 게 아니다.

 

데모크리토스는 이러한 영혼을 잘 간수했을 때 비로소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영혼도 원자라 함은 곧 다른 원자들과 충돌을 겪기 마련이라는 소리와 같다. 만일 영혼의 원자가 지속적으로 충돌에 노출되어 흔들리면, 영혼의 핵심 기능인 이성이 마비되어 자신에게 이로운 선택이 무엇인지 판가름 할 수 없는 지경이 된다. 그토록 소중한 항법 장치를 잃다니, 몹시 위태롭고 나쁜 상황이겠지? 다시 말해, 영혼이 요동치게 내버려두면 불행으로 이어진다는 뜻이다. 때문에 데모크리토스는 영혼의 떨림을 다스리고, 영혼의 원자가 안정을 취하도록 해야 행복에 이를 수 있다고 결론 지은 것이다. 특히 어떠한 상황에서도 고요한 영혼을 유지하는 경지에 대해서는 따로이 "평정심" 혹은 "아타락시아(Ataraxia)"라는 이름을 붙이고, 인간이 마땅히 추구해야 할 지상과제로 여겼다. 불혹부동의 평정심을 지닌 사람은 적어도 자발적으로 불행에 처하지 않게 되고, 설령 곤경이 닥치더라도 굳건한 영혼의 힘(= 이성)으로 지혜롭게 대처가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아타락시아에 이른 현자는 언제까지나 공정하고 적절하게 행위하여 결코 불행해지는 일 없이 궁극의 행복을 영원토록 누린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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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드릭 테르부르겐, 데모크리토스. 천체본에 기대어서 여유롭게 강론하는 모습이 꼭 신선 같아 보인다>

 

문제는 영혼의 형상이 개인마다 다르고 직관적이지 못하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제각각 다른 모양의 영혼을 가졌고, 안정감이라는 기준도 천차만별이다. 누군가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 다른 누군가의 영혼을 뒤흔들지 모르고, 시일이 지나면서 똑같은 사건이 다르게 받아들여지는 등 종잡을 수가 없다. 게다가 하필이면 원자, 그 중에서도 영혼이라는 눈에 보이지도 않을 물건의 상태에 신경 쓰라고 하니, 당최 무슨 재간으로 그것을 안정시키란 말인지 모르겠다.

 

안타깝게도 데모크리토스 역시 행복해지는 방법에 대해서 이 이상으로 소상히 알려주진 않았다. 하지만 그 이유를 유추해보자면, 영혼의 진정한 주인인 자기 자신만이 행복을 탐구할 자격이 있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 기왕에 행복이 영혼을 중심으로 설명되는 것이라면, 어차피 타인이 대신해서 행복을 이뤄주거나 알려주지는 못 할 게 아닌가? 그래서 데모크리토스는 구태여 보편적인 행복을 제시하지 않고, 각자가 자신의 내면에서 느껴지는 평온함에 집중하라고 주문했다. 덕분에 우리는 타인의 성취를 부러워하거나 주눅 들거나 시기 · 질투할 이유도 없고, 남의 시선을 신경쓰다가 후회할 필요도 없어졌다. 행복을 찾는 여정에서 정말로 중요한 것은 본인의 영혼이 언제 떨림을 멈추는지에 대한 이해, 그리고 몰입 뿐이다.

 

물론 그 과정이 순탄하지는 않을 것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자신의 영혼을 관조하여 행복만 골라먹는 사람은 없고, 누구나 수많은 시행착오와 고통의 순간을 넘어서야 윤곽이나마 알아챌 수 있는 까닭이다. 참된 행복이란 그런 식으로 매사에 각자가 자신의 영혼에게 되물어서, 영혼과 동조하는지의 여부를 가려내는 실천적 수행 끝에 겨우 얻어진다. 그러므로 행복을 바라는 자, 무엇보다도 자기긍정의 자세를 갖출지어다. 먼저 자신의 영혼을 있는 그대로 들여다 볼 용기와 인정하려는 겸손이 있어야만, 장차 영혼을 가다듬는 것도 가능한 까닭이다. 우리의 여정은 결코 하루 아침에 마무리되지 않으며, 숱한 번뇌와 불안을 동반한 고행의 연속이다. 현명한 사람이라면 머나먼 길을 나서기 앞서서 응당 든든한 지침이 되어줄 내면의 이정표, 영혼의 구조부터 확고하게 파악해야겠지.

 

이처럼 각자가 영혼을 살펴서 자신만의 행복을 추구하라는 메시지는 언뜻 인간을 단절시키려는 내용처럼 들린다. 그러나 데모크리토스의 당부는 고작 저 혼자 잘 먹고 잘 살라는 게 아니었다. 그는 오히려 개개인이 영혼의 원자를 유심히 궁리하고 돌볼 수록 사회적으로 편익이 더욱 증진된다고 생각했다 : 영혼을 온전히 보존한 사람들이 이룩한 사회란 곧 이성적인 사람들의 모임이나 마찬가지다. 이성은 자신에게 유익한 선택을 하도록 돕지만, 한편으로는 옳고 그름에 대하여 분명하게 판단한다. 따라서 사회 구성원들의 영혼이 충분히 안정적이라면, 모두가 이성에 기초하여 서로의 자아를 실현함과 동시에 정의로운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상기한 데모크리토스의 실천 정신과 점진적 수양의 필요성, 공동체 참여와 윤리적 가치를 설명하는 내면 성찰의 논리는 이후 "너 자신을 알라"고 일갈한 소크라테스의 미덕론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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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람하는 SNS 매체에 몰두하는 우리들의 모습은 앞이 아닌 아래를 보고 있다>

 

SNS는 역사 상 그 어떤 대중매체보다도 효과적인 전파력을 지녔다.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누구나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고, 정보의 생산에 별다른 지식이나 자격이 필요치 않은 까닭이다. 특히 트위터와 인스타그램 같은 마이크로 블로그는 극도로 개선된 편의성에 힘입어 전세계로부터 널리 사용자를 끌어모았다. 이들은 대부분 유행에 민감하고 창의력 넘치는 청년 세대들로서, 단순한 정보 교류의 차원을 넘어 적극적인 자기 표현의 수단으로 SNS를 활용하고 있다. 이제 SNS는 실시간으로 대중 문화를 선도하는 생활 양식의 산실로 기능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와 같은 SNS의 편리함은 엉뚱한 사회 현상의 근원이기도 하다. 일명 "SNS 피로" 증상이다 : SNS에서는 온갖 신변잡기가 게시되고 또 모두에게 공개되다보니, 사용자들이 타인과 자신의 삶을 비교하기 십상이다. 비교 의식이야 인간의 자연스러운 생활 방식인만큼 딱히 엉뚱할 것도 없지만, 상향 비교 경험과 그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의 확산은 쉽게 예상치 못할 문제다. SNS로 여러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자신이 꼭 남보다 못하게만 느껴지고 잘 살고 있는지에 대한 초조함이 밀려드는 것이다. 그러한 부정적 심리는 자괴감, 불안감, 우울감, 고립감 등을 유발하는 SNS 피로로 발전하게 된다.

 

상술한 바대로 SNS의 사용자는 대다수가 전세계 청년층이기 때문에, SNS 피로 역시 전세계적인 골칫거리로 자리매김했다. 청년들은 호기심 많고, 행복에 대해 가장 활발하게 탐구하는 존재들 아닌가? 그렇다면 이들이 SNS 사용에 다소 의존적이고, 동시에 SNS 사용으로 말미암은 상대적 박탈감을 강하게 받는 것도 당연해 보인다. 그들은 지금 행복해지고 싶은데, 방법을 몰라서 표류하고 있다.

 

여러분, 너무 아파하지 마시라. 청년들의 또 다른 특징을 꼽자면, 바로 힘과 열정이 넘치고 아직 앞날이 길게 남았다는 점이라 하겠다. 다시 말해, 우리들에게는 행복해질 기회가 아직도 많이 있으니, SNS에서 엿보는 여러 행복의 순간들을 부러워만 할 필요는 없다. 명품백이나 멋진 외제차, 훌륭한 휴양지와 오마카세 등등을 향유하고 싶다면 미래에 얼마든지 도전하고 쟁취할 수 있으니까. 당장의 조바심 때문에 무리하게 자신을 학대하거나, 또는 오직 그것만을 위해서 뒷일은 포기한 채 달려들었다가 고통에 겨워하지 않아도 된다.

 

게다가 SNS가 실어 나르는 정보들 가운데서 진실이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마이크로 블로그 형식의 짧은 텍스트와 몇 장의 사진은 그저 단편적인 기록만을 드러내는데, 참인지 거짓인지의 증명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과시욕이 있거나 허세 부리는 게시자라면, 그게 무엇이 되었든 간에 잔뜩 기망을 섞어서 SNS에다가 등재할 게 뻔하다. 결국 SNS에서 주고받는 소식들은 진위 여부를 판단하기 불가능하므로, 차라리 가볍게 받아들이는 편이 낫다. 더욱이 뿌리가 진실일 수 없는 이야기들로부터 느껴지는 우울감과 불안감은 당연히 실체가 없고 심각하게 여길 이유가 없다.

 

비단 SNS만의 말썽도 아니다. 과열 경쟁 사회에서 우리는 언제나 스스로가 남들 못지 않음을 증명하며 살아야 한다. 똑같은 출발선 상에 서서 공정하게 경쟁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이는 자꾸만 남과 똑같은 기준을 맞추도록 하는 강박으로 이어지고, 타인에 비해 뒤처지지 않으려는 발버둥을 낳는다. 그러면서 우리는 어느덧 남들보다 앞서는 것은 고사하고, 최소한 남들만큼은 살아가는 것을 목표로 삼게 됐다. 즉, 살아가기 위한 기준이 자신도 모르게 우리들의 내면이 아니라 바깥에 형성 됐다는 말씀이다. 이러니 피로감을 느끼지 않을 리 있나.

 

Demócrito,_by_Diego_Velázquez.jpg

<디에고 벨라스케스, 데모크리토스. 행복은 우리 자신에게 달렸다네, 하며 넉살 피우는 듯한 표정이다>

 

상대적 박탈감의 만연으로 희망과 생기를 잃어버린 우리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데모크리토스의 웃음 처방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겠다. 공포와 미혹을 내쫓는데 웃음만 한 게 어딨을까. 오랜 옛날부터 권위를 무너뜨리는 것은 익살이었고, 참주도 광대의 마당에서는 서슬을 부리지 못했다. 그래서 데모크리토스는 웃음을 통해 삶의 고난에 맞서라고 조언한다. 괴로울 땐 웃으며 떨쳐내고, 즐거울 땐 웃으며 만끽하라고 독려한다. 항상 쾌활함과 여유를 잃지 말고, 내면이 평정을 유지할 수 있도록 가르친다. 그럼으로써 영혼의 안식을 취하고, 다시금 행복한 삶으로의 길을 되짚어 나아갈 힘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것이 웃음의 철학자가 생애 내내 웃으며 살아간 이유이고, 누구보다 행복에 가까울 수 있었던 비결이다. 옛 현인을 본받아서 우리도 긍정적인 태도를 간직한다면, 언젠가 영혼을 다스리고 반드시 행복과 자존을 이룰 수 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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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개의 댓글

고마워 잘읽었어. 안그래도 요즘 왜 태어났을까 왜 부모의 죽음 그로인한 슬픔을 왜 느껴야하는가 신은 싸이코패스인가까지 생각하면서

나름(?) 고민이 많았거든....ㅋㅋㅋ 우울에빠지고 혼자 근데 확실히 진짜로 웃는자에게 기회가오고 여유가 생기고 내면의 평정심까지 갖을수있는거같긴해

덕분에 활짝 웃고가네 ㅋㅋㅋㅋ 고마워 자주 웃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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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뚜기푸엥카레

제 글이 조금이나마 도움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부디 너무 괴로워 마시고 함께 용기를 내시길 바랍니다. 역전만루홈런과 행복은 또 하루를 살아가기로 결심한 사람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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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11

데모크리토스는 니체가 말한 위버맨쉬와 부합하는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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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빌런

저도 어느 정도 닮았다고 생각합니다. 데모크리토스는 세상만사를 명분없이 운동하는 원자들의 조화로 정초했고, 따라서 모든 것에는 좋고 나쁜 가치 따위가 없음을 선언했습니다. 오직 사람의 영혼이 그것을 받아들이면서 두려움과 의구심 때문에 긍정적, 부정적으로 지레짐작할 뿐이라고도 했습니다. 그러므로 현명한 사람이라면 세상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 원자 꾸러미)으로 바라보고 이성적이게 대처하라고 일렀지요.

 

삶의 허무와 고통을 그대로 인정하고, 의지로 이겨내고자 했던 니체의 생각과 유사하다고 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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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머글이랬는데 왜 유익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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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스를많이뿌려

좋게 봐주셔서 유익글이 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다른 글도 잘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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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13

꽃덕후 유박의 이야기가 인상깊다. 지금은 자극적인게 많아서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인지, 찾는게 어려운 시대인 것 같음. 자극이 일시적으로 사람을 즐겁게 할수는 있어도 그 끝에 찾아오는건 공허라서. 그래도 살아가면서 행복은 계속 찾아가야 하는 거 같다. 글 잘 읽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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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냐치

데모크리토스도 지나친 쾌락은 고통과 다를 바 없다고 보았습니다. 둘 다 영혼을 동요시켜서 불행에 이르도록 만들기 때문이지요. 결국 우리는 영혼의 평화와 행복을 누리기 위하여, 항상 적정선의 쾌락이 무엇인지 직접 찾아나서야만 합니다.

 

우리도 함께 우리들의 즐거움과 행복이 어디에 있을지 찾아가봅시다. 늘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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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16

웃음의 철학이라는 책에서

데모크리토스를 플라톤과 대비하면서 소개한걸 처음봤는데

아조씨도 주제 잘 엮어서 소개해주셨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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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째서당개

미진한 솜씨라 부끄럽습니다. 소개해 주신 책은 저도 꼭 읽어보아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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