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송파장과 가락시장

1. 송파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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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파나루는 석촌호수 부근에 있던 나룻터로, 송파라는 지명은 본래 경기도 광주군 동부면 선리(지금의 강동구 강일동 및 하남 미사2동 일대)에 있던 마을로, 인조 25년(1647)에 장마로 인해 마을이 떠내려갔다. 피해를 본 주민들이 오늘날 석촌호수 일대로 옮겨와 송파라고 불렀다고 전한다.

 

조선의 한강은 전국의 모든 물화가 집하되었다가 다시 전국으로 분산되는 해운의 중심지였다. 19세기 초 전국에서 곡식이나 생선을 싣고 한강에 모여드는 상선의 수는 한해 1만척 이상이었다. 

 

송파나루는 한양 외곽을 수비하던 송파진(松坡鎭)의 별장이 있던 곳이다. 본래 송파진은 삼밭나루라고 불리던 삼전도에 있었으나 병자호란 때 삼전도의 굴욕을 겪고 송파나루로 옮겼다.

 

송파나루는 한양과 광주를 잇던 나루로, 땔나무와 담배를 실어 날랐다. 나루터 인근의 주요 장시로 유명했으며, 조선시대에 270호의 객주가 있던 상설시장 중 하나였다. 한양에서 시전상인이 지닌 금난전권(시장독점권)을 피해 삼남지방이나 강원도에서 들어오는 물품을 받아 보관하던 장시로, 도가상업의 근거지였다.

 

2. 신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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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홍수의 영향으로 한강은 지형이 수시로 바뀌었고 그중에서도 잠실은 특히 변동이 심했다. 사실 잠실은 조선 전기만해도 왕실 목장이 있던 살곶이벌(지금의 뚝섬)에 있었다. 강남권이 아니라 강북에 속했던 것이다.

 

예전에는 올림픽대교 남단부근(지금의 풍납동)에서 시작된 송파강이 석촌호수를 휘돌아 부리도(지금의 정신여고 인근) 오른쪽을 돌아 잠실 종합경기장 중앙을 관통했다. 

 

그러다 중종 15년(1520) 대홍수로 뚝섬을 가로질러 샛강이 생기면서 잠실일대는 섬으로 분리되었다. 원래 한강 본류는 잠실섬 남쪽을 지나던 송파강(지금의 석촌호수)이었다. 대홍수로 만들어진 북쪽의 샛강은 새로운 강이라고 해서 신천(新川)이라고 불렀다.

 

3. 송파장

 

신천이 만들어지며 본래 한강의 본류였던 송파강은 잠실도와 부리도를 휘돌아가게 되므로 자연스레 유속이 느리고 배가 정박하기 용이하게 되었다.

 

조선 후기 상업이 발달하고, 한강변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경강상인들의 활동이 활발해지며 송파나루 인근에는 장시가 조성되었다. 송파장이라 불리던 이 장시는 한강 상류를 오르내리는 뱃길과 육로를 통해 강원도와 충청도 일대에서 올라오는 곡식과 다양한 토산물이 집결되었다. 특히, 한양 경계를 벗어나 광주부에 속한 곳이었기 때문에 도성의 시전상인이 누리던 금난전권의 영향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거래할 수 있어 더욱 선호되었다.

 

5일 마다 장이 서던 것이 거래량이 늘면서 상설시장화 되었다. 한양의 초입으로 함경도, 강원도, 충청도 등지에서 올라오는 물산을 받아 보관하던 도가상업이 발달했기에 송파장에서 거래되는 물품의 가격은 한양 육의전에 크게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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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기 많은 인파가 운집하는 장시에 각종 놀이패를 활용해 활성화를 꾀했는데 대표적인 것이 송파산대놀이(국가 무형문화재 제49호)와 씨름대회가 있다. 하술할 을축년 대홍수로 인해 송파장이 사라지게 되어 전승이 끊길 위기에 있었으나 1960년 재건하여 지금도 석촌호수 인근 서울놀이마당에서 공연이 종종 진행되고 있다.

 

18세기 중반 시전 상인들과 이들의 관리들을 중심으로 송파장을 혁파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는 등 성업하였다. 영조 34년(1758) 장시가 잡류배로 인하여 경시민이 입는 피해가 늘어나자 송파장의 혁파를 허락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광주 유수 이철보는 송파장의 폐지나 이설을 반대하였고 영조가 이를 인정해 송파장은 존치될 수 있었다.

 

그러나 19세기의 개항으로 인천항이 열리며 증기선을 이용한 해상 운송이 확대되자 쇠퇴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또한 일제에 의해 철도가 개설되고 육의전이 몰락하면서 송파장이 가졌던 이점들은 사라지게 되었다. 다만 송파장에는 우시장이 있어 그 명맥을 이어가게 되었다.

 

4. 을축년 대홍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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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년 여름 4번에 몰아친 폭우로 한강과 임진강이 범람해 647명의 사망자를 냈다. 피해가 가장 컸던 지역은 한강변의 이촌동, 뚝섬, 송파, 잠실, 신천리, 풍납동 일대였다. 특히, 송파나루터 일대는 피해가 극심해 물 높이가 48척(약 14.5m)까지 이르러 송파장터 가옥이 273호가 유실되는 등 마을이 다 떠내려갔다. 마을 주민 전체는 지금의 송파동 일부와 가락동 일대로 이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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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마의 무서움을 체험한 송파나루 주민들은 홍수 이듬해에 홍수 피해를 잊지 말고 대비하자는 의미로 기념비를 세웠다. 이것이 현재 송파동 송파근린공원 입구에 "암행어사 이건창 불망비"와 함께 서있는 "을축년 대홍수 기념비"이다.

 

을축년 대홍수는 한강의 물길을 바꿀 정도였다. 한강의 본류가 송파강에서 신천강으로 뒤집힌 것이다. 이로 인해 송파나루로 들어올 수 있는 배가 눈에 띄게 줄어들면서 송파나루가 급격히 쇠퇴했고, 인근 구천면 암사리(현재의 암사, 천호 일대)에서 새로운 시장이 생기면서 송파장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었다. 다만 송파나루는 나루터로서의 기능을 계속하여 1960년대까지도 뚝섬과 송파를 잇는 정기선이 운항하였다.

 

5. 가락동

 

가락동의 동명은 가히 살만한 땅이라는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본래 조선시대에 가락골을 중심으로 5, 6채씩 띄엄띄엄 마을이 있었는데 을축년 대홍수로 송파동 일대가 침수되어 그곳 사람들이 지금의 가락동으로 이주하여 "가히 살만한 땅"이라고 이름 붙였다고 한다.

 

일대에는 12개의 마을이 있었는데 후에 청계천 복개 공사로 보금자리를 잃은 이주민들이 정착하기도 했다.

 

6. 경성중앙도매시장

 

1927년 조선총독부는 서울역 인근 중림동에 경성수산시장 주식회사를 설립한다. 1939년에는 청과류로 품목을 확대해 경성중앙도매시장을 개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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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수산주식회사는 해방 후 서울수산물 주식회사로 이름을 바꾸며 서울시의 수산물 도매 유통 업무를 대행했다. 경성중앙청과 주식회사는 서울청과 주식회사로 이름을 변경했다.

 

관리담당도 조선총독부에서 대한민국 정부의 상공부로 바뀌었는데, 관청의 통제 아래에 있던 중앙도매시장은 상권이 계속 위축되었고, 사설 위탁도매상이 자리잡은 남대문 시장이나 동대문 시장의 상권이 더욱 커지게 된다. 그 과정에서 중림동의 도매상들은 중림동을 벗어날 계획을 세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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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말 만초천을 복개한 원효로에 나진시장이 들어서며 도매상들이 모이게 되었다. 1975년에는 서울청과 주식회사도 용산으로 이전한다. 이 시기 용산청과도매시장은 1970년대 서울에서 가장 큰 김장시장이 열리는 곳이었다. 

 

7. 가락시장

 

86년 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에 대비해 생필품의 안전적인 공급이 필요하게 되자 서울시는 탄천변에 시장을 건설하고 용산시장 상인 전원을 이전시켰다. 1985년 6월 청과·수산시장을 개장했으며, 이듬해 축산시장을 개장했다. 92년에는 양재동 양곡도매시장까지 인수해 운영하고 있다.

 

오늘 날 가락동농수산물도매시장은 9개의 도매시장 법인을 포함해 3,300여 업체에서 1만 3천여명의 종사자가 청과물과 수산물을 유통하는 거대한 상권을 형성하고 있다.

 

송파장이 있던 송파나루는 1971년 서울시에서 잠실 개발 사업의 일환으로 송파강이 매립되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완전히 사라졌다. 다만 그 일부는 매립되지 않고 석촌호수로 조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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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락시장을 송파장의 뒤를 이은 것이라고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배경 탓에 지금도 가락시장 앞에는 송파시장 유래비 표석이 세워져 있다. 비록 가락시장이 송파장의 정통을 잇는 후신이라고 할 수는 없을지 모르겠으나, 송파라는 공간이 과거 나룻터 시장부터 지금의 현대화를 이뤄낸 가락시장에 이르기까지 민생의 동향을 느낄 수 있는 유통의 중심지로서 맥을 함께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5개의 댓글

29 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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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일 전

용산청과시장 얘기 들으니 그거 밀어내고 용산전자상가 처음 개장했을때 생각나는데 이제 용전도 없어지는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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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일 전

송파구에서 일하는데

가락시장 들어갈때마다 차로 들어가도 엄청 커서 놀랬었음

새로운 정보 배우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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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일 전

와우.. 이름이 누에밭이여서 잠실인거랑 소나무여서 송파인것만 알았는데 사는곳에 역사에 대해 좋은 정보 알아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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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일 전
@기럭기럭해

사실 송파라는 이름에 대해선 여러 설이 있는데 이 글에서는 수해라는 사건으로 이 공간의 역사를 한 번 관통시켜 보려고 이 설을 차용했습니다.

 

나중에 검색해서 다른 설도 찾아보시면 재밌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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