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킴 필비가 스파이 인 걸 완전히 들키는 순간-I am 간첩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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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제스와 매클린은 소련 첩보부의 실수로 그들이 스파이라는 것에 영미 정보기관(CIA, MI5)들이 근접한 사실을 알고 소련으로 도주한다. 그리고 필비 역시 1955년 10월 26일 영국 주요 신문에서 "해럴드 필비가 제3의 공작원인가?"라는 글을 실었고, 노동당 소속 의원 마커스 립턴Marcus Lipton이 대놓고 필비를 버제스와 매클린을 도주시킨 스파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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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하원 의원 마커스 립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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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 런던 엄마 집에서 천연덕스럽게 인터뷰를 진행하는 킴 필비

 

 

필비는 11월 8일 어머니 집에서 기자회견을 가진다. 자기 주변의 떠도는 소문들을 유언비어와 헛소리로 일축하고 2가지 주요 안건으로 공격했다.

 

1. 립턴이 하원에서 한 거짓 고발을 모든 국민 앞에서 반복할 것.

2. 어떤 것이라도 좋으니 사실을 거론 할 것이며, 기밀이라 대중에게 공포할 수 없다면 추밀원에게 제출할 것.

 

이러한 도전적인 공격을 한 후 필비는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상대가 공산주의자임을 알고 대화를 나눈 것은 1934년이 마지막이었고, 1951년 4월 공산주의자와 마지막으로 대화를 나누었으나 나는 그 사실을 몰랐다. 상대는 내 집에서 머물던 가이 버제스였다."

 

 

이렇게 물러나지 않고 도전적으로 공격을 하니 마커스 립턴 의원도 한 발 물러났다. 그리고 필비에 대한 비난을 더 이상 지속하지 않았다.

 

영국의 외무부 장관 해럴드 맥밀런도 결국 대중에게 "영국 정부에는 해럴드 필비가 나라의 법을 위반했다는 증거가 없다."라는 발표를 했다.

 

 

51년 부터 필비를 지원하던 친구들은 환호했지만, 이런 상황에 몰린 필비를 옛 직장에 원복시키는 것은 불가능함을 알았기에 "옵저버Observer"와 "이코노미스트Economist"의 베이루트 특파원으로 파견했다. 이 해(55년) 흐루쇼프는 버제스와 매클린이 소련에 있으며, 이들은 이제 소련 시민이라고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베이루트에서 필비는 전 직장에서의 타고난 재주를 살려 레바논에서도 기자로서 눈부신 활약을 펼쳤다. 문장력도 좋고 내용도 풍부하여 필비가 쓴 기사는 영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또한 여기서도 필비는 소련의 스파이 역할을 톡톡히 하여 영국의 중동 지역 정책 정보 등을 소련에게 보냈다. 단순한 정보 보고를 넘어 자기 경력을 살려 그 정책에 대한 정치적 분석을 첨가한 보고서 양식으로 작성해서 올렸다. 저자(유리 모딘)도 해당 보고서를 읽고 감탄했을 정도다.

 

한편 필비의 아내 에일린 필비와 필비의 다섯 자녀들(존, 조세핀, 토미, 미란다, 해리)은 베이루트의 생활이 힘들어서 영국에 남아 있었다. 원채 몸이 안좋았던 에일린 필비는 필비를 떠난 직후 몸이 급속도로 악화되었다. 호흡장애+심장병+폐결핵 초기 증상의 합병증이 있었다. 필비는 에일린이 레바논에 올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이시기 킴 필비는 어렸을 적 자신을 버렸던 아버지 해리 필비와 같이 살고 있었다. 해리 필비는 사우디 국와 이븐 사우드의 친구였고, 무슬림으로 개종했으며(이름도 이슬람식 이름인 압둘라로 바꿨다.), 현지인 처를 맞아 두 아들 할리드와 파리드를 얻은 후 전처 도라 필비와 아들 킴 필비를 버렸다.(하지만 별거 이후에도 아들 킴 필비와의 관계는 계속 이어나갔다. 해리 필비는 아들이 키플링의 소설 "킴"의 주인공(=킴)과 닮았다고 아들에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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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 페이지 위가 킴 필비와 해리 필비 그리고 필비의 의붓동생 할리드와 파리드가 사우디 수도 리야드에서 찍은 사진, 시기는 베이루트 동거 이후

 

 

 

이븐 사우드 사후 그의 뒤를 이은 사우디 왕자들과 말다툼 후 해리 필비는 후처 로지와 아들 할리드와 파리드를 데리고 베이루트 근처 아잘토운의 마로니트에서 기거했다. 필비도 아버지와 같이 살았으며, 그렇기에 베이루트의 삶도 그렇게 외롭지는 않았다. 베이루트는 업무 때만 들리고 나머지 시간은 아버지와 같이 지냈다.

 

이들 부자는 필비 탄생 후 처음으로 긴 시간을 함께 보내었다. 킴 필비는 아버지 해리 필비와 오랫동안 살며 여러 이야기를 했지만, 자기가 소련 스파이라는 사실을 언급하지 않았다.

 

1956년 11월 사우디 아라비아 왕가와 화해한 해리 필비는 가족들을 데리고 다시 사우디 아라비아로 간다. 필비는 이떄 외로움을 느꼈지만, 곧 있어 다가올 충격적인 소식은 그의 정신을 뒤흔들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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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비의 어머니 도라 존스턴 필비, 필비의 가장 큰 버팀목 중 하나였다.

 

 

1957년 필비의 어머니인 도라 필비가 사망했다. 어떤 일에도 흔들리지 않는 신념을 가진 필비도 어머니의 죽음에 큰 충격을 먹었다. 도라 필비는 죽을 때까지 남편 해리 필비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이 충격 이후 그는 과음하기 시작했으며, 서식스 동부 크로버러에 사는 가족들의 형편에 대해 걱정하기 시작했다. 필비는 그들이 근근이 살 수 있을 정도의 돈만 보내주었다.

 

이때 필비는 베이루트에서 "뉴욕 타임즈" 특파원 샘 포프 브루어와 브루어의 아내 엘리너와 친해졌다. 필비는 엘리너를 유혹하여 사귀었고, 브루어는 그걸 애써 못본 척 하였다. 엘리너가 미국의 가족들과 지내기 위해 베이루트를 떠날 때 1957년 12월 11일 아내 에일린이 사망했다. 그녀는 고작 47세 밖에 안되었고 5명의 어린 자녀들이 있었다.

 

다음해 엘리너가 다시 돌아오자 필비는 엘리너에게 남편과 이혼하고 자기와 결혼하자고 고백하였고, 엘리너가 이를 받아들여 59년 1월 24일 런던에서 결혼을 했다. 필비의 증인으로 전 직장의 필비의 동료 2명이 나왔다. 필비는 이때 아이들에게 계모인 엘리너를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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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비의 아버지인 해리 세인트존 브리저 필비의 모습, 이븐사우드 왕의 친구이자, 사우디인보다 더 사우디를 사랑했던 사람이었다.

 

1960년 9월 30일 잠시 베이루트로 건너와 필비와 같이 지냈던 아버지 해리 필비가 심장발작으로 사망했다. 이것이 킴 필비가 겪은 두번째 큰 충격이었다. 아버지는 베이루트의 이슬람 묘지에서 성대한 장례식을 하며 묻혔다. 장례식 이후 킴 필비는 더욱 술에 찌들어 살았는데, 부친 사후 2년이 지나자 몰골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망가졌다.

 

 

 

MI5는 필비의 이런 심적인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1963년 새해 과거 MI5 고정 간첩이자 킴 필비의 오랜 친구인 니콜라스 엘리엇Nicholas Elliot(1916~1994)이 필비를 방문했다. 오랫동안 연락이 없던 니콜라스 엘리엇이 필비를 찾아온다는 사실은 예전의 킴 필비라면 충분히 의심했을 테지만 연이은 부모의 죽음으로 정신이 무너져 문란한 생활을 하던 필비는 경계심이 완전히 풀어졌다.

 

늦게까지 술파티를 하고 파하려는 순간 니콜라스 엘리엇이 필비에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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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는 네가 소련 스파이라는 부정할 수 없는 증거를 가지고 있어."

 

필비는 바로 반박했지만 엘리엇은 필비와 오랜 우정을 이어간 플로라 솔로몬의 진술에 대해 언급했다. 로스차일드가의 친척인 플로라 솔로몬에게 필비가 본인이 소련 공작원 임과 소련 공작원으로의 전향을 권유했다는 내용이었다.

 

이 말에 필비는 오랫동안 부정했던 소련 스파이 사실을 인정하였다. 니콜라스 엘리엇은 필비에게 나중에 부정할 수도 있으니 자필로 상세하게 자백서를 쓰라고 요구했다.

 

술에서 깬 필비는 자기가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달았다. 방금 그는 자신의 사형서에 스스로 서명할 꼴이 되고 말았다. 그는 베이루트에 있는 소련 고정간첩에게 접근하여 소련으로 망명할 것을 요구했다.

 

1963년 1월 23일 필비는 베이루트 항에 정박한 소련 화물선 돌마토프Dolmatov 호를 타고 소련으로 망명했다.

 

 

tmi) 엘리너는 필비가 망명한 모스크바로 건너가 필비와 같이 거주했다. 하지만 추운 모스크바의 날씨에 엘리너는 적응하는데 실패했고, 먼저 망명한 매클린의 아내 멀린다와 필비는 눈이 맞았다. 이일이 결정타가 되어 엘리너는 1965년 필비와 헤어졌고, 3년 뒤에 사망했다. 필비와 멀린다 매클린의 사랑은 오래가지 않았다. 1966년 필비와의 사랑이 깨진 멀린다 매클린은 남편(매클린)에게로 갔고, 한동안(13년) 남편과의 어색한 관계가 이어지다가 1979년 멀린다 매클린은 아예 미국으로 가버렸다. 필비는 한동안 음주벽(저자도 필비와 멀린다가 깨진 주요 원인의 하나라고 생각함.)에 시달리다가 폴란드계 러시아인인 루피나Rufina와 만나서 재혼을 하게 된다. 이후엔 음주벽에서 벗어나 KGB에서 일하면서 죽을 때까지 소련을 위해 일하다 죽는다. 저자 유리 모딘이 킴 필비의 추도사를 맡았다.

 

 

출처: 나의 케임브리지 동지들-KGB 공작관의 회고록(저자: 유리 모딘)

4개의 댓글

2023.10.28

요약: 만약 someone가 스파이인지 알고 싶다면 해당 인물의 parents를 delete하고 metal을 브레이킹 한 후에 alcohol beverage로 유혹하여 털어놓게 해라. handwriting은 필수다.

0
2023.10.28
@綠象

선생님 메탈 말고 멘탈이요

0
2023.10.28
@오스만유머

i am 실수에요

2
2023.10.28

TTSS에서도 주인공 혼을 빼놓으려고 섹스공작을 하던데

이런게 은근 크구만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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