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지식

어느 벼랑 위의 감정 (1/4) by 카지이 모토지로

1697452616.jpg

 

1

 

어느 무더운 여름날 밤이었다. 야마노테 마을의 한 카페에서 두 청년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대화하는 모습에서 그들은 친구 사이는 아닌 것 같았다. 긴자 등과 달리 좁은 야마노테의 카페에서는 고독한 손님이 다른 테이블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그리 자유롭지 못하다. 그런 불편함이 - 그리고 좁음에서 오는 친근함이 그들을 서로 가깝게 만드는 경우가 많다. 그들도 아무래도 그런 두 사람인 것 같았다.

 

한 청년은 맥주 취기를 어깨 끝으로 드러낸 채, 컵 물기로 더러워진 테이블에 아랑곳 않고 팔꿈치를 대고 아까부터 거의 혼자서 수다를 떨고 있었다. 회반죽 흙바닥 구석에는 낡아빠진 빅터 축음기가 놓여 있었고, 낡은 댄스 레코드가 숨막힐 듯이 덥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원래 저는요, 한 번은 친구에게 손금을 본 적이 있는데, 방랑하고 집을 못가지는 성질을 타고났다고 하더라고요. 그 친구는 손금을 보는 남자, 그것도 서양식 손금을 보는 남자인데, 제 손금을 봤을 때 네 손에는 솔로몬의 십자가가 있다. 그건 평생 가정을 꾸릴 수 없는 손금이라고 하더군요. 저는 손금 따위를 별로 믿지 않는데, 그때는 그런 말을 듣고 깜짝 놀랐어요. 너무 슬퍼서 말이죠…"

 

그 청년의 얼굴에는 잠시 감상의 빛이 취기 아래 드러나 보였다. 그는 맥주를 한 잔 마신 후 다시 말을 이어서,

 

"그 절벽 위에 홀로 서서 열려 있는 창문을 하나하나 바라보고 있으면, 나는 언제나 그 생각을 떠올리게 돼요. 나 혼자만 세상에 뿌리를 잃고 부유물처럼 떠돌아다니고 있다. 그리고 항상 그런 절벽 위에 서서 남의 창문만 바라보고 있어야 한다. 완전히 이게 내 운명이다.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해요. -- 하지만 그보다 저는 이런 말을 하고 싶어요. 즉, 창밖의 풍경이라는 것에는 원래 사람을 그런 생각에 빠지게 하는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누구나 불현듯 그런 생각에 이끌릴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인데, 어때요, 당신은 그런 생각 해본 적 없나요?"

 

다른 한 청년은 별로 술에 취한 것 같지도 않았다. 그는 상대방의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그렇게 재미있어 하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전혀 관심이 없는 것도 아닌 듯한 차분한 표정으로 듣고 있었다. 그는 상대방이 자신의 의견을 묻자 잠시 생각에 잠겼지만,

 

"글쎄요…, 나에게는 오히려 반대의 마음이 들었던 경험밖에 기억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당신의 마음은 내가 알 수 없는 것은 아니에요. 반대되는 기분이 들었던 경험이란, 창문 안에 있는 사람들을 보고 그 사람들이 뭔가 덧없는 운명을 가지고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구나. 그런 식으로 보였다는 말입니다."

 

"그래요. 그건 정말 그래요. 아니, 그게 사실일지도 몰라요. 나도 그런 걸 느꼈던 것 같기도 하고."

 

취한 쪽 남자는 상대방의 말에 심히 감탄하는 듯한 말투로 남아있던 맥주를 한숨에 마셔버렸다.

 

"그래요. 그걸로 당신도 꽤나 창문의 대가에요. 아니 저는 말이죠, 사실 창문이라는 것이 좋아서 견딜 수가 없어요. 내가 있는 곳에서 항상 다른 사람 창문을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즐거울까, 늘 그렇게 생각해요. 그리고 제 쪽에서도 창문을 열어놓고 누군가의 눈에 항상 제 자신을 노출시키는 것이 참 즐겁습니다. 이렇게 술을 마실 때에도 강변의 식당 같은 곳에서 다리 위에서, 혹은 건너편에서 보는 사람이 있어서 술을 마신다면 얼마나 즐겁겠어요. '어찌나 가엾은지' 저에겐 이런 한 마디 시밖에 입에서 나오지 않는데, 사실 항상 그런 기분이 들어요."

 

"그렇군요, 왠지 재미있을 것 같네요. 하지만 이 얼마나 한가로운 취미인가요?"

 

"아하하. 아니, 아까 그 절벽 위에서 내 방의 창문이 보인다고 했잖아요. 제 창문은 절벽 근처에 있어서 제 방에서는 이제 절벽밖에 보이지 않아요. 저는 종종 거기서 벼랑길을 지나는 사람들을 조심하는데, 원래 사람이 좀처럼 다니지 않는 길이라서 지나가는 사람이 있더라도 저처럼 거기서 오랫동안 마을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은 절대 없어요. 사실 저 같은 남자는 둘도 없이 한가한 사람이네요."

 

"잠깐, 당신. 그 음반 좀 멈춰줘." 듣는 쪽 청년은 웨이트리스가 다시 틀기 시작한 '캐러밴'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나는 저 저 재즈라는 놈이 정말 싫어. 싫다는 생각이 들 때면 정말 견딜 수가 없어."

 

조용히 웨이트리스는 축음기를 멈췄다. 그녀는 단발을 하고 얇은 여름 양복을 입고 있었다. 그러나 거기에는 조금도 신선한 데가 없었다. 오히려 생쥐 냄새라도 날 것 같은 더러운 이국주의가 느껴졌다. 그리고 그것은 그 카페가 그 동네에 많이 사는 하등한 서양인들이 자주 드나든다는 소문을 조금은 음울하게 뒷받침하고 있었다.

 

"어이. 유리짱. 유리짱. 생맥 두 개 더."

 

화자 쪽 청년은 친숙한 웨이트리스를 무뚝묵한 손님으로부터 구해주겠다는 듯한 표정으로 그녀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바로,

 

"아니, 그런데 말이죠, 제가 창문을 보는 취미에는 그닥 남에게 말하기 어려운 욕망이 있어요. 그건 뭐 일반적으로 말하면 남의 비밀을 훔쳐보는 매력이라고 할 수 있는데, 저는 하나 더 나아가서 남의 베드신을 보고 싶다는, 결국은 그런 것으로 귀결되는 거 아닌가 하는 특수한 집착이 있는 것 같더라고요. 아니, 그런 걸 진짜로 본 적도 없는데 말이죠."

 

"그건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고가선을 지나는 성선 전차에는 그런 마니아들이 자주 타고 다닌다고 하더군요."

 

"그런가요. 그런 유형이 하나 있는 건가요. 그건 놀랍네요. …… 당신은 창문이라는 것에 대해 그런 흥미를 가져본 적이 있나요? 한 번이라도."

 

그 청년의 얼굴은 상대방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그런 마니아에 대해서 말했으니 나도 어느 정도 그런 지식이 있다고 생각해도 되겠죠."

 

그 청년의 얼굴에는 약간의 불쾌한 그림자가 스쳐 지나갔지만, 그렇게 대답하고 그는 다시 평온한 얼굴이 되었다.

 

"그래요. 아니, 저는요, 절벽 위에서 그런 흥미로 바라보는 창이 하나 있어요. 하지만 정말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죠. 하지만 사실 자주 속는답니다, 그거에. 아하하하하……. 제가 도대체 어떤 상태로 그것에 빠져 있는지 한번 이야기해볼까요? 저는 한참 동안 눈을 떼지 않고 그 창문을 바라보고 있어요. 그러다 보면 너무 집중하게 되니까 발밑이 미덥지 못하게 되죠. 비틀거리면서 실제로 절벽에서 떨어질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하하. 그러면 저는 이제 반쯤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그러면 이상하게도 그런 때 제 귀에는 절벽길을 걸어오는 사람의 발소리가 정해진 것처럼 들려와요. 하지만 저는 정말 사람이 지나가도 상관없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 발자국 소리는 제 뒤로 슬그머니 다가와서 거기서 딱 멈춰버리는 거죠. 그것이 망상이라는 것이겠죠. 나에게는 그 몰래 다가온 사람이 내 비밀을 알고 있는 것 같아 견딜 수 없다. 그리고 금방이라도 제 멱살을 잡을지, 금방이라도 절벽에서 떨어뜨릴지, 그런 두려움에 숨이 막힐 지경이에요. 하지만 나는 역시 창문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그런 때는 이제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식의 기분이 들죠. 또 한편으로는 그게 대부분 제 기분 탓이라는 것을 잘 알기에 그런 배짱을 부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역시 백에 하나 혹시나 진짜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항상 듭니다. 참 이상한 거죠. 아하하하하."

 

화자인 남자는 자신의 이야기에 격앙된 감정을 가지면서도 이번에는 자조적인 그리고 악마적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도전적인 표정을 눈에 띄우며 상대방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화자인 남자는 자신의 이야기에 흥분을 느끼면서도, 이번에는 자조적이고 악마적이라고 할 수 있는 도전적인 표정을 지으며 상대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었다.

 

"어떤가요. 그런 이야기는. -- 저는 이제 실제로 다른 사람의 베드신을 보는 것보다 그런 제 상태가 훨씬 더 매혹적으로 다가오고 있어요. 왜냐면 내가 보고 있는 어스레한 창문 안이 내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모습일 수도 있다는 것을 나는 이미 어렴풋이 알고 있기 때문이죠. 그런데도 마음을 모아 그곳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럴듯하게 느껴진다. 그 때의 마음 상태는 뭐라 말할 수 없는 황홀경이에요. 도대체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요. 아하하하하. 어때요, 지금부터 함께 그곳에 가볼 생각은 없나요?"

 

"그건 어느 쪽이든 상관없지만, 점점 이야기가 접입가경이네요."

 

그리고 듣는 쪽 청년은 다시 맥주를 불렀다.

 

"아니, 접입가경인 건 사실이에요. 저는 점점 접입가경되고 있어요. 왜냐면, 나에게는 처음에는 창문이 그저 재미있었던 것일 뿐이었거든요. 그게 점점 사람의 비밀을 본다는 기분이 의식화되어 왔어요. 그렇죠. 그러다 보니 다음에는 비밀 중에서도 베드신의 비밀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그런데 본 줄 알았던 것이 아무래도 다른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때의 황홀한 상태 자체가 결국 모든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렇죠. 아니, 당신, 사실 그 황홀 상태가 전부인 거에요. 아하하하. 하늘의 황홀 만세다. 이 유쾌한 인생에 건배하죠."

 

그 청년은 상당히 취기가 오른 상태였다. 그 건배에 응하지 않는 상대방의 컵에 자신의 컵을 거칠게 내리치고 그는 새 컵을 단숨에 마셔버렸다.

 

그들이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문을 열고 두 명의 서양인이 들어왔다. 그들은 들어오자마자 웨이트리스에게 추파를 던지며 청년들 옆 테이블에 앉았다. 그들의 눈은 한 번도 청년들을 쳐다보거나 서로를 쳐다보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미소를 지으며 여자를 향하고 있었다.

 

"폴린 씨, 시마노프 씨, 어서 오세요."

 

그들을 맞이하는 웨이트리스의 표정이 갑자기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그리고 꺄르르 웃으며 무언가 말을 주고받았는데, 그녀가 사용하는 말은 자유분방한 서양인의 일본어로, 그녀가 말을 할 때 청년들을 서빙할 때와는 전혀 다른 이상한 매력이 생겼다.


"저는 한 번 이런 소설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듣는 쪽이었던 청년이 새로운 손님이 가져온 공기에서 이야기를 다시 원점으로 돌렸다.

 

"그건, 어떤 일본인이 유럽으로 여행을 떠납니다. 영국, 프랑스, 독일을 거쳐 꽤 길고 혼잡한 여행을 계속하고 마무리로 빈에 도착한다. 그리고 도착한 어느 날 밤 호텔에 묵게 되는데, 한밤중에 문득 눈을 떠서 바로 잠들지 않고 심야의 어둠 속에서 여정을 느끼며 창밖을 바라보게 됩니다. 하늘은 아름다운 별빛으로 가득 차 있고, 그 아래에는 빈 도시가 잠들어 있다. 남자는 한참 동안 그 야경을 바라보다가 문득 어둠 속에서 단 하나 열린 창문을 발견한다. 그 방 안에는 하얀 천 같은 덩어리가 밝은 등불에 비춰지고, 거기서 하얀 연기 같은 것이 가늘고 곧게 솟아오르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점점 선명해지는데, 뜻밖에도 그 남자가 그곳에서 발견한 것은 침대 위에 원하는 대로 나체를 내던지고 있는 남녀의 모습이었다. 하얀 시트처럼 보였던 것이 바로 그것이고, 조용히 피어오르는 연기는 남자가 침대에서 피우고 있는 시가의 연기였다. 그 남자는 그때 어떤 생각을 했냐면, 여기가 바로 고도 빈이다. 이제야 비로소 긴 여정 끝에 그 옛 도시에 도착했구나, 그런 생각이 절로 들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리고 조용히 창문을 닫고 다시 자기 침대로 돌아가 잠을 잤다고 합니다만... 이건 꽤 오래 전에 읽은 소설이지만, 이상하게 잊혀지지 않는 부분이 있어서 제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좋겠다 서양인은. 저도는 빈에 가고 싶어졌네요. 아하하. 그보다 지금부터 저랑 같이 절벽 쪽으로 가지 않을래요? 네?"

술에 취한 청년은 어떤 열의에 찬 목소리로 상대를 유혹했다. 하지만 한 쪽은 그저 웃기만 할 뿐 그 이야기에 응하지 않았다.

무분별한 사용은 차단될 수 있습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추천 수 날짜
5246 [기타 지식] 일본에 의해서 만들어진 칵테일들 편 - 바텐더 개붕이의 술 ... 2 지나가는김개붕 4 1 일 전
5245 [기타 지식] 중국에서 안드로이드 폰을 사면 안되는 이유? 10 대한민국이탈리아 19 2 일 전
5244 [기타 지식] 최근 지각변동이 일어나는 국내 항공업계 (수정판) 15 K1A1 23 5 일 전
5243 [기타 지식] 도카이촌 방사능 누출사고 실제 영상 21 ASI 2 9 일 전
5242 [기타 지식] 웹툰 나이트런의 세계관 및 설정 - 지구 2부 21 Mtrap 8 9 일 전
5241 [기타 지식] 100년을 시간을 넘어서 유행한 칵테일, 사제락편 - 바텐더 개... 5 지나가는김개붕 1 11 일 전
5240 [기타 지식] 오이...좋아하세요? 오이 칵테일 아이리쉬 메이드편 - 바텐더... 3 지나가는김개붕 2 13 일 전
5239 [기타 지식] 웹툰 나이트런의 세계관 및 설정 - 지구 1부 31 Mtrap 13 13 일 전
5238 [기타 지식] 칵테일의 근본, 올드 패션드편 - 바텐더 개붕이의 술 이야기 15 지나가는김개붕 14 13 일 전
5237 [기타 지식] 웹툰 나이트런의 세계관 및 설정 - 인류 2부 22 Mtrap 14 13 일 전
5236 [기타 지식] 웹툰 나이트런의 세계관 및 설정 - 인류 1부 13 Mtrap 20 13 일 전
5235 [기타 지식] 서부 개척시대에 만들어진 칵테일, 카우보이 그리고 프레리 ... 3 지나가는김개붕 5 18 일 전
5234 [기타 지식] 모던 클래식의 현재를 제시한 칵테일편 - 바텐더 개붕이의 술... 4 지나가는김개붕 2 19 일 전
5233 [기타 지식] 브라질에서 이 칵테일을 다른 술로 만들면 불법이다, 카이피... 5 지나가는김개붕 1 21 일 전
5232 [기타 지식] 럼, 라임, 설탕 그리고 다이키리 편 - 바텐더 개붕이의 술 이... 2 지나가는김개붕 6 21 일 전
5231 [기타 지식] 1999년 도카이촌 방사능누출사고 대량 방사능 피폭 피해자들 ... 9 ASI 5 22 일 전
5230 [기타 지식] 진짜 레시피는 아무도 모르는 칵테일 싱가포르 슬링편 - 바텐... 3 지나가는김개붕 2 22 일 전
5229 [기타 지식] 통계로 보는 연애 상황에서 외모의 중요성 8 개드립에서가장긴... 11 25 일 전
5228 [기타 지식] 추울 수록 단맛이 유행한다, 위스콘신 스타일 올드 패션드편 ... 1 지나가는김개붕 8 26 일 전
5227 [기타 지식] '얼마나 걸릴까?'를 찾는데 걸린 시간은.. 1 동부전선이상무 5 26 일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