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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텐더 개붕이가 쓰는 위스키 이야기 - 스프링뱅크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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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슬 이 술이 나올때가 됐다. 스프링뱅크(Springbank).

 

한국에서는 흔히들 봄은행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데, 사실 은행이 아니라 언덕이라는 뜻이다.

 

즉, 봄은행이 아니라 봄의 언덕이라는 거다.

 

위스키를 좋아하는 개붕이라면 최근 2년 사이에 이 술의 이름을 많이 들어봤을 거다.

 

특히나 코로나 시기에 위스키에 입문한 개붕이들은 일종의 전설처럼 취급될 정도다.

 

뭐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단순히 말해서 구하기가 힘들어져서 그렇다.

 

원래 스프링뱅크는 가족기업이었고, 몰트 생산부터 라벨링까지 모두 자기네 기업에서 하는 걸로 유명하고, 그만큼 나오는 위스키 양이 많지 않다.

 

수요가 적을 때는 충분한 공급이 일어났지만, 갑자기 늘어난 수요로 인해서 국내 뿐만이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품귀현상이 일어나면서 덩달아 그 인지도가 올라버린 케이스다.

 

그전까지는 마시는 사람만 마시던 위스키였던 스프링뱅크의 수요가 갑자기 왜 올라갔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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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스키에서 갑자기 수요가 올라가서 물량이 부족해졌다면 이새끼들을 의심하고 보면 된다.

 

사실 위스키가 아니라 대부분의 식품군에서 동일하다.

 

코로나를 기점으로 한국 내 위스키 소비량이 늘어난 만큼, 중국에서도 묘하게 위스키의 인기가 올라갔다.

 

그리고 중국은 일종의 유행처럼 특정 위스키를 빨아주는 경향이 있는데, 코로나 시기와 맞물려서 스프링뱅크가 그 대상이 됐다.

 

그 결과는?

 

블랙홀처럼 빨려들어간 스프링뱅크가 전 세계적으로 구할 수 없는 술이 되어버렸다.

 

시발놈들

 

 

 

 

 

실제로, 코로나 이전에는 한병에 비싸게 사도 15만원이면 살 수 있었고, 2015~6년도만 해도 10만원 안짝으로 살 수 있던 스프링뱅크 10년이 이제 리셀가 30만원에 육박하는 가격을 자랑한다.

 

지금 300만원이 넘는 스프링뱅크 21년은 원래 50만원따리였다.

 

 

 

 

 

슬픈 사실은, 이렇게 가격이 올라가면 사실 쳐다도 안봐야하는데, 문제는 스프링뱅크는 맛있다.

 

코로나 이전까지는 일반인들 사이에서 지명도는 떨어졌지만, 위스키 좀 마신다는 사람들 사이에서 스프링뱅크는 믿고 마시는 술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뭘 사든간에 최소한 실패는 안하는 술, 그것이 스프링뱅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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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링뱅크는 캠밸타운이라는 지역의 대표적인 증류소다.

 

1828년에 설립되었으며 만들어진지 10년도 안되서 1837년, 윌리엄 미첼과 존 미첼이라는 두 사람이 증류소를 인수했고, 지금까지 이 회사가 경영을 한다.

 

다만 윌리엄 미첼은 중간에 손절하고 나와서 근처에 글렌기일이라는 증류소를 차렸다. 

 

지도상에서 보시다시피, 캠밸타운은 아일라 섬 옆에 위치한 항구도시다. 

 

그 지리적 특성 탓인지, 스프링뱅크는 피트처리를 한 위스키를 생산한다. 아일라 만큼 강렬하지는 않지만, 특유의 개성 있는 피트향은 매니아층이 많다.

 

참고로 이 피트처리에 사용되는 피트는 아일라섬에서 공급한다.

 

일종의 형제지간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

 

위에서 말했다시피, 스프링뱅크는 맥아의 생산부터 병입까지 모든 단계를 자기들이 직접하는 회사다.

 

맥아의 생산을 직접하는 전통적인 방식을 고집하는 회사들은 꽤 있지만, 병입과 라벨링까지 전부다 자기들이 하는 회사는 스코틀랜드에서도 거의 없다. 일단 내가 아는 한 없다. 대부분 라벨링이나 병생산은 외주를 준다. 분업이라는 개념을 만든건 영국이다.

 

하여튼 그렇기 떄문에 생산량이 다른 증류소들에 비해서 극단적으로 적다.

 

이전에 소개했던 글렌피딕 같은 곳과 비교하자면 10배 이상 차이가 난다.

 

하지만 그 고집 떄문인지, 스프링뱅크는 그것만이 가진 특유의 맛으로 옛날부터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한때 경제 상황이 안 좋았던 시기에 1979년부터 1989년까지 10년 정도 문을 닫은 과거가 있는데, 그건 뭐 대부분 증류소들이 한번쯤 거쳐갔던 과정이니까 이해하자.

 

 

 

 

 

 

 

그리고, 스프링뱅크 증류소는 현재 자기들 증류소만이 아니라 주변의 다른 증류소들을 인수해서 다양한 종류의 위스키들을 생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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롱로우

 

스프링뱅크가 근처의 증류소를 인수해서 생산하는 위스키다.

 

스프링뱅크가 가진 특징 가운데 피트를 더욱 강조해서 생산하고 있으며, 롱로우 레드라는 이름의 레드와인 캐스크 시리즈들이 유명하다.

 

다양한 통을 사용하는 시험적인 위스키들을 내면서 특유의 매니아층을 만들어내고 있지만, 스프링뱅크에 비하면 인기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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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커란

 

위에서 설명했던 윌리엄 미첼이 나가서 차린 글렌기일 증류소는 그 이후로 몇 번이 과정을 거쳐서 2000년에 스프링뱅크 측에서 다시 인수했다.

 

피트보다는 특유의 오크향과 과실의 느낌을 살린 술로 유명한데, 의외로 여기서 나오는 헤빌리 피티드 라인업이 짜세다.

 

가성비로는 굉장히 훌륭한 수준.

 

참고로 글렌기일이라는 다른 위스키가 있는데, 이 증류소를 이전에 소유하고 있던 회사에서 상표권을 가지고 다른 블랜디드 위스키를 내놔서 그걸 그대로 쓸 수 없어서 바꾼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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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즐번

 

1992년에 스프링뱅크가 인수한 증류소. 스프링뱅크 확장행보의 첫 걸음이었다.

 

헤이즐번의 특징은 피트가 전혀 없다.

 

원래 피트를 가지고 있던 스프링뱅크와 차별점을 주기 위해서 논피트 원액에 3회 증류라는 방식을 선택하는데, 이는 아일랜드 위스키들과도 흡사하다.

 

덕분에 스프링뱅크를 생각하고 이 술을 마시면 실망감이 크다.

 

하지만, 특유의 부드러움과 가벼움은 스프링뱅크에 대한 생각을 제외하고 헤이즐번 자체로도 즐기기에 훌륭한 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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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즐번과 캠밸타운에 얽힌 이야기로는, 일본 위스키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타케츠루가 일했던 증류소로도 유명하다.

 

참고로 막상 기록을 보면 이 양반, 1920년 5월부터 1920년 11월까지만 일했다.

 

사실 타케츠루의 스코틀랜드 유학기간은 1918년 12월부터 1920년으로 11월로 2년이 채 안된다.

 

그 기간 동안 그는 "견습"이라는 직함을 달고 롱몬(Longmon), 보네스(Bo’ness 참고로 여긴 1925년에 폐업하고 부활하지 못했다.), 그리고 헤이즐번 증류소에서 일을 했었다.

 

다만 그 당시 이 양반 말고는 스코틀랜드에 위스키 만드는 법을 직접 배워온 사람이 없었기 떄문에 일본에 돌아와서 생산을 할 수 있었다.

 

괜히 요즘 유명한 그 김창수씨가 한국의 다케츠루로 불리는 게 아니다. 막상 배운 기간은 뭐...

 

하여튼 이 양반이 헤이즐번에서 일하던 당시 부인인 리타를 만나 결혼했고, 그 과정 때문에 가장 인상적인 곳이 캠밸타운이 아니었나 싶다.

 

그가 만들었던 닛카 위스키를 보면 캠밸타운의 느낌이 진하게 뭍어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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닛카의 첫번째 증류소이자 그곳에서 생산되는 요이치. 스프링뱅크 하위호환이지만 일본 위스키 품귀 현상 때문에 NAS 말고는 보기도 힘들다.

 

 

 

 

 

 

 

 

 

 

 

캠밸타운은 스카치 위스키의 수도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사실 여기서 뭐가 시작됐다거나 한건 아니지만, 캠밸타운에서 생산되던 위스키들의 특징이 그 별명을 만드는데 일조하지 않았나 싶다.

 

스프링뱅크는 흔히들 스카치 위스키의 모든 특징을 가지고 있다는 말을 한다.

 

쉐리 캐스크가 가진 향기와 버번 캐스크의 특징에서 나오는 플로럴함, 피트의 스모키함까지 골고루 가지고 있다.

 

참고로 이 글을 쓰는 바텐더 개붕이가 바텐더가 되게 된 계기도 이 스프링뱅크였다.

 

 

2012년전까지만 해도 본인은 그냥 술을 좋아하는 일개 개붕이였다.

 

칵테일에 살짝 빠져서 여러가지를 마시고, 20대 답게 마티니 같이 유명하면서 독한 술을 허세로 마시던 시절이었다.

 

마시다보니까 익숙해지고, 여러가지 술들을 마시고 있던 때, 자주 가던 가게 사장님이 어느 날

 

"너 독한 것도 잘 마시니까 이런 것도 마셔봐라."

 

라면서 스프링뱅크10년 한 잔을 따라주셨다.

 

처음에 나는 그 양을 보고

 

'이걸 누구 코에 붙이나, 그냥 칵테일 한 잔이나 서비스로 주시지.'

 

라는 생각을 하면서 따라준 술을 마셨다.

 

그건 새로운 경험이었다.

 

이전까지 위스키, 그러니까 흔히들 말하는 "양주"는 나에게 그냥 독한 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위스키 먹을 때는 실론티가 있었야 한다는 정도의 지식만 있던 그냥 개붕이였던 것이다.(이건 룸에서 시작된 문화라고 한다. 몰래 술을 버리고 색이 비슷한 실론티로 바꾸는데서 유래됐다고.)

 

그런데로 입에서 식도로 넘어가는 그 위스키는 그전까지 마셔봤던 소위 "양주"들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처음에는 살짝 스모키한 냄새와 약간의 꽃내음 같은게 느껴졌다.

 

그리고 혀를 지나 목으로 넘어가고 나서는 그 강렬함 때문에 역시 양주인가? 라는 생각을 했다.

 

다 마시고 난 뒤

 

목을 지나서 코로 올라오는 향기에서 바닷가의 느낌이 났다.

 

짠듯한 바닷바람의 냄새가 내 코를 간지럽혓다.

 

 

 

 

 

 

 

그후로 내 세계가 바뀌었다. 취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경험을 하기 위해서 위스키를 찾아마시고, 그 과정에서 마시던 칵테일들 가운데 위스키나 다른 40% 이상의 술을 사용하는 드라이한 칵테일들의 맛까지 본격적으로 즐기게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바텐더가 되었다.

 

 

 

뭐 중간 과정은 여러가지였지만, 그것 때문에 나는 아직도 누가 "사장님은 가장 좋아하는 술이 뭐에요?" 라고 물어보면 스프링뱅크 10년을 꼽는다.

 

원래 첫경험의 추억은 쉽게 잊혀지지가 않는다.

 

지금은 마셔도 그떄 그 감동은 없지만, 여전히 있다면 언제나 즐기면서 마시는 술, 스프링뱅크 10년이다.

 

개붕이들은 혹시라도 바에 가서 보인다면 한 잔 달라고 해보자.

 

취향에 안 맞을 수도 있지만, 한번 정도의 경험으로는 굉장히 유의미한 일 일테니까.

 

 

 

 

 

 

 

 

 

 

 

 

 

 

 

 

 

 

 

 

 

 

 

 

 

 

 

 

 

 

 

 

 

 

그리고 바텐더 하지마라.

 

하지 말라고 두번 말한다.

 

 

 

 

 

 

 

여기도 올림

8개의 댓글

2023.10.14

장궤새끼들 와인 맛보고 눈깔돌아갔었을 때도 참 힘들었었다..

그리고 요이치 NAS는 옅은 피트에 저숙성 부즈가 튄다고 느꼈었는데, (일본에서)저렴하면 납득할만한 수준

0
2023.10.14

피트향에 익숙하질 않아서 아직 잘 못마시겠음... 미즈나라 육갑산 피트 엄청 세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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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14

항상 재밌게 읽고 있습니다 선생님. 골수 피트충이라 킬달튼 트리오 증류소 없었으면 인생의 재미 절반을 손해볼 뻔 했어요. 구하기쉽고, 맛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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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WFd1000

라가불린 : ? 이제 아닐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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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14
@지나가는김개붕

라프로익이랑 아드벡 라가불린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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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14

갓스뱅 ㅠㅠ 넘마쉬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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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16

바텐더 하다가 2차전직 개발자테크탄 개붕인데

오랜만에 위스키 이야기보니까 재밌네 ㅋㅋㅋ

바텐더 박봉에 일도 더럽고 힘들텐데 고생한다

0
2023.10.18

재밌고 유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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