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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텐더 개붕이가 쓰는 위스키 이야기 - 글렌피딕, 발베니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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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 어제는 글렌리벳에 대한 이야기를 썼던 개붕이다.

 

오늘은 다른 싱글몰트 위스키, 글렌피딕과 발베니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이 두 위스키를 같이 하는 이유는 그 위스키 증류소의 창업주가 같은 사람이며, 지금도 같은 회사 소속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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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렌피딕과 발베니의 창업주 윌리엄 그렌트.

 

그는 1839년생의 스코틀랜드 사람으로, 그렌트 클랜이라는 스코틀랜드 호족 집안 출신이다.

 

어릴때부터 소를 치고, 신발을 만들며 보냈지만 나름 호족 출신인지라 그 당시로 볼 때 꽤나 교육을 받은 지식게층이었다.

 

그렇게 성장한 그는 1866년, 그 당시 스코틀랜드의 경제를 책임지는 한축이었던 위스키 산업에 뛰어들게 된다.

 

그렇다고해서 그가 뭐 위스키를 만드는 장인이라거나 하는 건 아니었고, 모틀락이라는 증류소의 장부담당자로서 일을 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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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전통의 위스키 증류소 모틀락

 

윌리엄은 그렇게 모틀락에서 20년 동안 일을 하면서, 위스키 생산에 대한 이해를 얻게 된다.

 

"어? 이거 돈 좀 되겠는데?"

 

라는 이해였다.

 

그리고 역시나 꽤나 자본이 있던 사람 답게, 자식만 9명을 낳았다.

 

1886년, 20년이 지나서 자식들도 어느정도 크고, 위스키 생산과 유통에 대한 이해를 한 그는 증류소를 그만둔다.

 

이듬해인 1887년 크리스마스를 기점으로 그동안 모은 돈과 자식들이 모은 돈을 합쳐서 차린 글렌피딕 증류소를 오픈하고 회사를 차린다.

 

이게 지금도 글렌피딕을 생산하는 기업, 윌리엄 그랜트 앤 선즈다. 이름만 봐도 알 수 있듯이, 가족회사였다.

 

직원들은 자기 자식들, 영업사원은 사위. 그야말로 자그마한 규모의 회사였다.

 

그리고 이게 대박을 친다.

 

사실 이때 당시에는 숙성을 오래한 싱글 몰트 위스키를 팔기 보다는, 블렌디드 위스키를 만들기 위한 원액을 공급하는 업체였다고 볼 수 있다.

 

싱글 몰트 위스키라는 개념 자체는 사실 지금의 한국에서 소비되는 지역 막걸리 같은 개념과 다를 바 없었다.

 

아무도 영국을 벗어나면 이 위스키를 마시는 사람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던 시대였다.

 

그 과정에서 윌리엄 그랜트가 선택한 영업 방식은 대량생산과 박리다매였다.

 

글렌피딕 증류소는 현재에도 스코틀랜드 최대 규모의 증류소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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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렌 피딕 증류소와 증류기의 모습.

 

 

다시 말하지만 그는 교육을 잘 받았고, 회계쪽에서 20년을 일한 유능한 사업가였다.

 

1892년, 글렌피딕 증류소가 잘 운영되자 그는 그 옆에 발베니라는 증류소를 세운다.

 

오래전부터 있던 발베니라는 오래된 성 옆에 있던 Balvenie New House라는 저택을 증류소로 개조하고, 위스키를 생산한 것이다.

 

재미있는 점은, 그 증류소는 사용하는 물은 같은 로비듀라는 샘물을 사용했지만, 만드는 방식 자체가 달랐다.

 

글렌피딕이 대량생산에 초점을 두고 최신기술을 이용하는 방식을 선택했고

 

발베니는 전통적인 방식의 생산에 중점을 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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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아.

 

그 방식의 차이는 맥아에서부터 시작된다.

 

위스키를 만드는 주 원료인 맥아는 싹이 튼 보리를 말한다.

 

당연히 비용절감을 위해서는 보리를 직접 키워서 맥아를 만들기 보다는, 만들어진 맥아를 사와서 만드는 방식이 선호된다.

 

그리고 당시 스코틀랜드의 대형 증류소들은 모두 그 방식을 채용했고, 지금도 그런 방식을 통해서 만들어진다.

 

글렌피딕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발베니는 아예 다른 컨셉을 가지고 시작했다.

 

직접 보리를 재배하고, 플로어 몰팅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직접 맥아를 생산한 것이다.

 

원래 이게 전통적인 위스키의 제작 방식이지만, 세상 어디나 힘든 일은 자기가 직접하기 싫은 것이 인지상정.

 

몇몇 곤조 있는 증류소를 제외하고는 다들 이미 만들어진 맥아를 사오는 방식을 선호했다.

 

요즘에도 옛날 방식이 좋다면서 그대로 하고 있으면 틀딱 소리를 듣지만, 이때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2개의 증류소를 같은 방식으로 운영할거면 그냥 증류소를 확장하는 게 났다고 생각한 윌리엄 그랜트는 이 두가지 방식을 모두 채용해버린 것이다.

 

그렇게 윌리엄 그랜트는 성공적으로 두 증류소를 운영했고, 1923년에 사망한다.

 

회사는 그의 아들들이 물려 받았고, 지금까지도 안정적으로 운영된다.

 

 

 

 

 

 

 

 

 

 

그런데 여기서 끝난다면 딱히 이런 글을 쓸 필요가 없다.

 

윌리엄 그랜트는 실로 대단한 사업가였다.

 

1920년, 그가 사망하기 3년 전 미국에서는 금주법이 제정되었고, 모든 위스키 증류소들은 비상이 걸렸다.

 

앞으로 위스키의 수요가 줄어들테니 재정을 긴축하고, 생산량을 줄이자는게 당시 대부분 사람들의 의견이었다.

 

그러나 윌리엄 그랜트는 "이런 병신 같은 법이 20년이 넘게 계속 될리가 없다."라면서 오히려 생산량을 늘려버린다.

 

그의 말대로 13년이 지난 1933년, 금주법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고 위스키의 수요는 폭증했다.

 

그리고 숙성에 시간이 걸리는 만큼, 블렌디드 위스키의 원액을 공급하는 데 많은 차질이 생긴다.

 

13년 전에 생산량을 줄인 덕분에, 공급이 수요를 감당할 수 없는 사태에 이른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충분한 원액을 준비해뒀던 글렌피딕이 폭풍처럼 성장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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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티삭

 

참고로 그 시기에 윌리엄 그랜트만 그런 생각을 한 게 아니었다. 베리 브로스 루도 사 역시 이 병신 같은 법이 오래갈리가 없다고 생각해서 자사의 블렌디드 위스키 커티삭을 대량으로 생산할 준비를 마쳤고, 금주법이 풀림과 동시에 대량공급을 통해서 미국 시장을 석권한다.

 

린든 B. 존슨 미국대통령이 방한 했을 때 괜히 커티삭을 찾은 게 아니다.

 

 

 

 

 

 

 

 

 

 

 

하여튼 이렇게 순조롭게 운영을 하던 글렌피딕은 1963년, 한가지 큰 모험에 또 다시 도전한다.

 

블렌디드 위스키의 원액 공급이 아닌, 싱글 몰트 위스키를 영국만이 아닌 글로벌하게 런칭한 것이다.

 

당연히 모든 사람들은 비웃었다.

 

당시 고가 주류 시장은 위스키가 아니라 꼬냑이 주름잡고 있었고, 블렌디드 위스키가 잘 나간다고 하지만 싱글몰트 위스키는 마이너한 축에 속하는 주류였다.

 

이걸 비유하자면, 2000년 대 한국 아이돌들이 빌보드 시장에 도전하겠다고 하는 모습과 다를 게 없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원더걸스가 아니라 BTS였다.

 

블렌디드 위스키가 전 세계 시장에 침투하면서, 그 술의 원액은 어떤 맛일까 궁금해하던 사람들에게 싱글 몰트 위스키는 새로운 대안이었다.

 

글렌피딕이 먼저 포문을 열고, 2년 뒤에 맥캘란도 그 성공을 보고 세계 시장에 뛰어들었고 다른 위스키 제품들 역시 잇따라 시장에 뛰어든다. 

 

사실 BTS라고 했지만, 그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최상위권에는 들지 못했지만, 시장 자체에 안정적으로 진입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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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옛날 글렌피딕, 퓨어 몰트라면서 블렌디드와 다르다는 점을 강조한다. 싱글 몰트라는 개념이 없었던 시절의 일이다.

 

 

글렌피딕의 성공은 발베니의 성공이었다.

 

발베니가 잘 나가지 않더라도 글렌피딕의 매출이 받쳐주는 만큼, 발베니는 계속해서 전통적인 방식을 고수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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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 한국을 방문했던 데이빗 스튜어트 마스터 블랜더.

 

1962년부터 윌리엄 그랜트 앤 선즈와 함께 일한 데이빗 스튜어트는 그렇게 생산되던 발베니에 새로운 방식을 도입한다.

 

1980년대부터 시작한 우드 피니쉬라는 방식으로, 원래 숙성하던 통에서 다른 통으로 옮겨 담아서 두 오크통이 가진 풍미를 결합하는 것이었다.

 

그란츠라는 블렌디드 위스키에 먼저 도입했고, 이내 이걸 발베니에도 도입한다.

 

버번 오크통에서 숙성해서 바디감을 가지게 된 술을 쉐리 오크통으로 옮겨 담아서 향을 입히는 것으로, 그 전가지는 없었던 방식이다.

 

발베니 12년 더블 우드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그렇게 위스키 산업에 오랫동안 종사하고, 새로운 방식을 도입했던 공과를 인정받은 결과, 2016년, The Most Excellent Order of the British Empire, 통칭 MBE라는 대영제국 훈장을 수여받기도 했다.

 

그렇게 발베니는 점점 늘어나는 싱글 몰트의 수요와 함께 확실한 바디와 풍부한 향을 장점으로 파고들었고, 지금에 와서는 한국에서 입문용으로 가장 추천을 많이하며 오픈런까지 일어날 정도의 인기를 얻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가격이 오른 건 좀 빡치지만.

 

발베니의 물량이 부족한데는 다른 것보다도 아까 말했던 전통적인 생산 방식의 고집의 문제가 크다.

 

발베니를 이용해서 만드는 위스키 가운데 몽키숄더라는 블렌디드 몰트 위스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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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키 숄더, 원숭이 어깨는 플로어 몰팅이라는 작업을 오래한 작업자들의 직업병이다.

 

바닥에 보리를 깔고 물을 뿌리고 뒤엎는 과정을 전부 손으로 하게 되면 어꺠에 무리가 가고, 그걸 오랫동안 하게 되면 원숭이 어깨처럼 변한다는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이렇게 고집으로 인해서 만들어지는 발베니이기 떄문에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게 아닐까?

 

근데 가격은 조금만 좀 낮춰줬으면 싶다.

 

 

 

 

 

 

 

 

 

 

발베니에서 비해서 지금 한국에서 글렌피딕의 이미지는 엄청 좋다고 보기는 힘들다. 이유는 글렌피딕 12년이 가진 가벼운 맛 때문.

 

솔레라 방식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15년이 입문용으로 좋은 평가를 받는 반면, 글렌피딕 12년은 하이볼 용이라는 평가도 있을 정도다.

 

하지만 기억하자, 글렌피딕이 있었기에 지금에 우리가 싱글 몰트 위스키를 즐기고 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읽을거리 판에도 올려둠

9개의 댓글

2023.10.12

싱몰 생각보다 가격에 비해 호불호 좀 갈리드라 ㅋㅋ 난 싱글 캐스크면 종류가 어떻든 값은 한다고 보거든

 

사주면 먹긴 하는데 주변에 버번, 스카치, 피트, 셰리 취향 다 달라서 나이먹을 수록 좋아하는 것만 먹을라그럼 ㅠㅠ

0
2023.10.12

술이야긴 개츄야 개츄

0
2023.10.12

월드위스키 아오 츄라이 츄라이

0
2023.10.12

글 재밌게 잘쓴다 잘읽었음

1
2023.10.12

면세점 가면 18년 산 꼭 사왔었는데....해외나갈일이 없으니 먹을일도 없네.ㅜㅜ

0

하이볼용 위스키도 추천해줘

0
2023.10.12

자 이제 소독약 말고 법원 이야기도 써주세요

0
2023.10.13

피딕18 조아용

0
2023.10.13

그래도 피딕이 입문자에게 추라이 하긴 좋은 것 같은데..

밸런스가 잘 잡혀있다고 생각함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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