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지식

불량소년과 그리스도 (하) by 사카구치 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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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자이는 때때로 진짜 MC가 되어 빛나는 작품을 쓰곤 했다. 

 

<어복기> <사양> 그 밖에 옛날 것들에도 여럿 있으나, 근년의 것에도 <남녀동권>이라든가 <친우교환> 같은 가벼운 것도 훌륭하다. 당당하고 우러러볼만한 MC이며 역사 속의 MC답다. 

 

 그렇지만 그것이 지속이 되지 않고 아무리 해도 숙취의 MC가 되어 버린다. 거기서 회복하여 진짜 MC로 돌아온다. 다시 숙취의 MC로 돌아간다. 그것을 되풀이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때마다 이야기 방식이 능숙해져 좋은 이야기꾼이 되어 있다. 문학의 내용은 바뀌지 않았다. 그것은 그가 인간통의 문학으로 인간성의 원본적인 문제만 다루고 있으니까, 사상적인 생성변화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이번에도 자살을 하지 않고 회복해서 다시 역사 속의 MC가 되었다면 그는 더욱더 능숙한 이야기꾼이 되어 아름다운 이야기를 서비스했을 터였다. 

 

 대체로 숙취적 자학작용은 알기 쉬우니까 너무 심각한 청년의 박수갈채를 얻는 것은 당연하나, 다자이 정도의 높고 고독한 영혼이 숙취의 MC로 끌려가기 일쑤였던 것은 허약이 가져온 바, 또 하나, 술이 가져온 바였다고 나는 생각한다. 

 

 블런든 씨는 허약을 간파했지만, 나는 하나 더, 술, 이 지극히 통속적인 마물을 보탠다. 

 

 다자이의 만년은 숙취적이었지만, 또 실제로 숙취라는 통속스럽기 짝이 없는 것이 그의 높고 고독한 영혼을 좀먹고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술은 거의 중독을 일으키지 않는다. 요전날 어느 정신병 의사의 이야기에 의하면, 특히 일본에는 진성 알코올 중독이라는 것은 거의 없는 까닭이다. 

 

 그렇지만 술을 마약이 아니고 요리의 일종이라고 생각하면 큰 착각이랍니다. 

 

 술은 맛있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어떤 위스키든 코냑이든 숨을 죽이고 겨우 삼키고 있다. 만취하기 위해서 마시고 있는 겁니다. 취하면 졸립니다. 이것도 효용 중 하나. 

 

 그러나, 술을 마시면, 아니 만취하면 잊습니다. 아니 다른 인간으로 탄생합니다. 만약에 나라는 것을 잊을 필요가 없었다면, 일부러 이런 것을 나는 마시고 싶지 않다. 

 

 자신을 잊고 싶다, 뻥까지 마라. 잊고 싶으면 연중 술을 마시고 계속 취해 있어라. 이것을 데카당이라고 칭한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해선 안된다. 

 

 나는 살아 있다고. 좀전에도 말한 대로, 인생 50년 별거 아니다, 라고 말하는 것이 너무나 쉬우니까, 그렇게 말하고 싶지 않다고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유치해도, 풋내나도, 흙내나도, 어떻게든 살아 있는 증표를 세우려고 명심하고 있는 것이다. 연중 계속 취할 정도라면 차라리 죽어버려라. 

 

 일시적으로 자신을 잊을 수 있다는 것은, 이것은 매력 있는 일이랍니다. 확실히 이것은 현실적으로 위대한 마술입니다. 옛날에는 돈 50전으로 깔쭉깔쭉 1잔 쥐면, 신바시 역 앞에서 컵주 5잔을 마시고 마술을 부릴 수 있었다. 요즘은 마법을 부리는 게 쉬운 일이 아니랍니다. 다자이는 마법사에 실격하지 않고 인간에 실격한 겁니다. 라고 마음껏 놀아봅니다. 

 

 애초에 다자이는 인간에 실격하지는 않았다. 숙취에 얼굴을 붉히고 욱하는 것 만으로도, 얼굴을 붉히지 않고 욱하지 않는 놈들보다도 얼마나 성실하고 인간적이었는지 모른다. 

 

 소설을 쓸 수 없게 된 것도 아니다. 잠깐 일시적으로 완전한 MC가 될 힘이 쇠했을 뿐이다. 

 

 다자이는 확실히 어떤 종류의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교제하기 힘든 인간이었을 것이다. 

 

 예를 들면, 다자이가 나에게, ‘문학계의 동인이 어쩌다 되어버렸는데, 이거 어쩌면 좋을까’, 라고 말하니까, ‘상관없잖아, 그런 거, 내버려두면 돼’ ‘아아, 맞다 맞아’, 라고 기뻐한다. 

 

 그 뒤에 사람들을 향해서, ‘사카구치 안고에게 이렇게 일부러 풀죽은 것처럼 보였더니 아니나 다를까, 대선배인 체하며 툭툭 가슴을 두드릴 것처럼, 상관없잖아, 내버려 둬, 라더라고’, 라고 재미있게 말할 수 있는 남자인 것이다.

 

 

 수많은 옛 친구들은 다자이의 이 행태에 다자이를 싫어하며 멀어지거나 했지만, 물론 이 방법으로 친구들은 상처 입었음이 틀림없으나, 실제로는 다자이 자신이 자기 손에 의해 내심 한층 더 상처입고 얼굴을 붉히고 욱했을 터이다. 

 

 애초에 이것들은 그 자신이 그 작중에도 말하고 있는 대로 실제로 눈앞의 사람들을 향한 서비스에 문득 말해버릴 뿐의 일이다. 그 정도의 사실은 같은 작가 친구들이 모를리는 없지만, 그렇단 걸 알아도 불쾌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에게서 멀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다자이의 내심 얼굴을 붉히고 욱하며 자기비하하는 그 고통은 심했을 것이다. 그 점에서 그는 신뢰할만한 성실한 사내이며 건전한 인간이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다자이는 좌담에서는 문득 이 서비스를 저지르고 내심 얼굴을 붉히고 욱하게 되나 그것을 문장으로 적지는 않는다. 그런데 다자이의 제자인 타나카 히테미츠가 되면 좌담도 문학도 구별 없이 이것을 저지르고 있고, 그 뒤에서 내심은커녕 까놓고 얼굴을 붉히고 혼란해하며 욱하는 걸 날려쓰고, 그걸로 본인은 구원받은 기분이니까 도와줄 수가 없다. 

 

 다자이는 그렇지는 않았다. 더욱 진실되고, 검소하고, 경건하고, 성실했던 것것이다. 그만큼 내면의 부끄러움과 욱함은 심했을 것이다. 

 

 그러한 자기비하에 배 이상 괴로워하는 다자이에게 술의 마법은 필수품이었던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술의 마술에는 숙취라는 향기롭지 못한 부속품이 있으니까 곤란하다. 불에 기름이다. 

 

 요리용 술에는 숙취는 없지만 마술용 술에는 이것이 있다. 정신적 쇠약기에 마술을 부리면 음란해지기 쉽고, 에이, 될대로 되라, 죽어도 상관없어, 라고 생각하기 쉽기에, 가장 강렬한 자각증상으로서는, 이제 일도 못하게 됐다, 문학도 싫어졌다, 이것이 자신의 속내처럼 생각된다. 실제로는 숙취의 환상으로, 그리고 병적인 환상 이외에, 이제 일을 할 수 없다, 라는 절체절명의 자리는 실재하지 않는다. 

 

 다자이 같은 인간통, 여러가지 잘 아는 인간이라도, 이런 속된 일을 잘못 생각한다. 무리는 아니지. 술은 마술이니까. 저속해도 천박해도 적이 마술이니까, 그걸 알고 있어도 인간의 지혜로는 어쩌지 못한다. 자장가입니다. 

 

 다자이는, 슬프도다. 자장가에 당해버렸습니다. 

 

 정사(情死)라니 말도 안 된다. 마술사는 술 속에서 여자에게 반할뿐. 술 속에 있는 것은 본인이 아니라 다른 인간이다. 다른 인간이 반해봤자 본인은 모른다고. 

 

 우선 정말로 반해서 죽는다니 넌센스다. 반했다면 사는 겁니다. 

 

 다자이의 유서는 형태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엉망진창으로 취해 있었던 것 같다. 13일에 죽는 것은 어쩌면 내심 생각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인간실격, 굿바이, 그리고 자살, 뭐 은근히 줄거리는 세워 두었을 것이다. 내심 줄거리를 짰어도 반드시 죽어야만 할 이유도 없다. 반드시 죽어야만 하는 그러한 절체절명의 사상이라든가 절체절명의 자리라는 것이 실재하는 것은 아닌 것이다. 

 

 그의 숙취적 쇠약이 내면의 줄거리를, 점차 피할 도리가 없는 것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스타코라 삿쨩이 싫다고 하면 실현되었을 리 없다. 다자이가 엉망진창 취해서 말해버리고, 삿쨩이 그것을 결정적으로 만든 것일 것이다. 

 

 삿쨩도 대주가인 것도 이유일 것이나, 그 유서는 존경하는 선생과 함께하게 된 것은 분에 넘치는 행복입니다, 라는 정돈된 것으로 전혀 취한 흔적은 없다. 그러나 다자이의 유서는 서체도 문장도 형태를 이루지 못하고 엉망진창으로 취한 것과 다를 바 없어, 이것이 자살이 아니었으면, 얼레, 어젯밤은 저런 짓을 했던가, 라고 숙취의 부끄러움 욱함이 있을 것이나, 자살해버리면 다음 아침 눈을 뜰 수 없으니까 안 된다. 

 

 다자이의 유서는 너무 형태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다자이의 죽음에 가까울 무렵의 문장이 숙취적이라도, 어쨌든 현세가 상대인 MC였음은 확실하다. 더욱이 <여시아문>의 최종회(4회째인가)는 심하다. 여기에도 MC는 거의 없다. 있는 것은 푸념이다. 이러한 것을 적음으로서 그 내면의 부끄러움 욱함은 더욱더 심해지고, 그의 정신은 소모하고, 혼자서 살기 힘들고 덧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가 MC가 아니게 되는 만큼, 주변 사람들로부터 박수갈채가 일어나, 그 어리석음을 알고 진절머리 나면서, 박수치는 사람들을 상대로 맞춰서 간 듯하다. 그 점에서는 그는 마지막까지 MC이기는 했다. 그를 둘러싼 가장 좁은 서클을 상대로. 

 

 그의 유서에는 그 좁은 서클 상대의 MC마저도 없다. 

 

 아이가 평범해도 봐달라고 한다. 부인에게는, 당신이 싫어서 죽는 게 아닙니다, 라고 되어있다. 이부세 마스지 씨는 악인입니다, 라고 되어있다. *(다자이에게 당시 부인을 소개해 준 것이 이부세 마스지) 

 

 그곳에 있는 것은 술주정뿐으로 MC는 전혀 없다. 

 

 하지만 아이가 평범해도 봐달라, 는 애달프다. 평범하지 않은 아이를 그는 얼마나 원했을까. 평범해도 자기 아이가 가련한 것이다. 그거면 괜찮지 않은가. 다자이는 그런 당연한 인간이다. 그의 소설은 그가 성실한 인간, 작고 선량하고 건전하고 정연한 인간임을 인지하고 읽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이를 그저 불쌍히 여겨달라고는 말하지 않고 특히 평범해도, 라고 말하고 있는 곳에, 다자이의 일생을 꿰뚫는 덧없음의 열쇠도 있었을 것이다. 즉, 그는 비범함에 씌인 숫자 적은 허영꾼이기도 했다. 그 허영 자체는 통속적이고 상식적인 것이나, 시가 나오야를 대하는 <여시아문>의 푸념 속에서도, 이 사실은 폭로되어 있다. 

 

 도련님이 자기 일처럼 여기면서 애독했다, 그것만으로 상관없지 않은가, 라고 다자이는 시가 나오야에게 덤벼들고 있으나, 평소 MC의 뛰어난 기술을 잊으면 그는 통속 그 자체이다. 그걸로 된 것이다. 통속적 상식적이지 않고서 어떻게 소설을 쓸 수 있을까. 다자이가 평생 한 번도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묘한 박수갈채에 맞춰서 숙취의 자학작용을 하고 있던 것이 그 성공을 막은 것이다. 

 

 반복해서 말한다. 통속, 상식 그 자체가 아니면 뛰어난 문학은 쓸 수 있을 리가 없다. 다자이는 통속, 상식의 성실한 전형적 인간이면서, 끝내 그것을 자각할 수가 없었다. 

 

 

     ★

 

 

 인간을 단정 짓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특히 심한 것은 아이라는 녀석이다. 느닷없이 태어나고는 한다. 

 

 신기하게도 나에게는 아이가 없다. 두 번이나 얻을 뻔한 적이 있었는데, 죽어서 태어난 적도 있었고, 태어나자마자 죽은 적도 있다. 덕분에 나는 아직까지 편하게 있다*(본 투고 이후 5년 뒤 1953년에 아들 츠나오를 무사히 얻는다).

 

 전혀 무의식적으로 이상하게 배가 부풀어 오르기도 하고, 갑자기 그 기분이 들기도, 부모 같은 마음이 되기도 하고, 그렇게 해서 인간이 태어나고 자라는 것이니 참 우습다.

 

 인간은 결코 부모의 자식이 아니다. 그리스도와 마찬가지로 모두들 우사나 변소 같은 곳에서 태어나는 것이다.

 

 부모가 없어도 자식은 자란다. 거짓말이다.

 

 부모가 있어도 자식은 자란다. 부모라는 게, 멍청한 놈이, 인간 흉내를 내고, 부모 흉내를 내고, 배가 불러오르고, 갑자기 당황하고, 부모답게 되어버린 못난이가 동물도 아니고 인간도 아닌 이상한 동정심을 가지고, 숨어서 자식을 키운다. 부모가 없으면 아이는 더 훌륭하게 자랄 수 있다.

 

 다자이라는 남자는 부모형제, 가정이라는 것에 혼나고 있던 이상한 불량소년이었다. 

 

 출생이 어떠냐고 재미없는 말만 하고 있다. 강박관념이다. 그 결국, 녀석은 정말로 화족의 아이 천황의 아이인가 뭔가면 된다고 내심 생각하고, 그러한 재미없는 몽상이 녀석의 내심의 인생이었다. 

 

 다자이는 부모라든가 형이라든가 선배, 장로라고 하면 이제 머리가 올라가지 않는다. 그러니까 그것을 해치워야만 한다. 분한 것이다. 그러나 덜덜 떨리고 울고 싶을 만큼 애정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데는 불량소년의 전형적인 심리였다. 

 

 그는 40살이 되어서도 아직 불량소년으로, 불량청년도 불량노년도 되지 못한 남자였다. 

불량소년은 지고 싶지 않아 한다. 어떻게든 위대하게 보이고 싶다. 목이 베여 죽어서라도 위대하게 보이고 싶다. 궁중이나 천황의 자식인 것처럼 죽어서라도 위대하게 보이고 싶다. 마흔이 되어도 다자이의 내면 심리는 그 정도의 불량소년 심리로, 그 어설픈 짓을 정말 해버렸으니 무모한 녀석이다.

 

 문학자의 죽음, 그런 게 아니다. 40살이 되어서도 불량소년이었던 이상한 못난이가 마음이 흐트러져서 결국 저질러버린 것이다. 

 

 정말이지 웃기는 녀석이다. 선배를 방문할 때 선배라고 부르면서 하오리하카마 차림으로 오고 앉았다. 불량소년의 인의다. 예의 바르다. 그리고 천황의 아이처럼 일본제일, 예의 바르려고 하고 앉았다. 

 

 아쿠타가와는 다자이보다도 더욱 어른 같고 영리한 얼굴을 하고, 그리고 수재에 얌전하고 순진한 척했으나, 실제로는 같은 불량소년이었다. 이중인격에 또 하나의 인격은 품에 단도를 품고 잿날인지 무슨날인지 어슬렁거리며, 소녀들을 협박 구애하고 있던 것이다. 

 

 문학자, 더욱 심한 것은 철학자, 웃기지 마. 철학. 뭐가 철학이냐. 아무것도 아니지 않은가. 사색 같은 소릴 하고 앉았다. 

 

 헤겔, 니시다 키타로가 다 뭐냐, 바보 같다. 예순이 되어서도, 인간 따위, 불량소년일 뿐이지 않은가. 어른 답지 않게 명상 따윌 하고 앉았다. 

 

 뭘 명상하고 있었는가. 불량소년의 명상과 철학자의 명상과 어디에 차이가 있는 건가. 가지고 돌고 있을 뿐, 어른 쪽이 바보 같은 테마가 걸려있을 뿐 아닌가. 

 

 아쿠타가와도 다자이도 불량소년의 자살이었다.

 

 불량소년 중에서도 유난히 약골, 울보 꼬마였던 것이다. 완력으로는 이길 수 없다. 이성으로도 이길 수 없다. 그래서 무언가 대결을 벌이고 그 권위로 자기주장을 한다. 아쿠타가와도 다자이도 그리스도를 내세웠다. 약골의 우는 아이, 불량 소년의 수법이다.

 

 도스토예프스키 정도가 되면 불량소년이라도, 골목대장의 완력이 있었다. 녀석 정도의 완력이 되면 그리스도든 뭐든 대신 내세우지 않는다. 자신이 그리스도가 된다. 그리스도를 만들고 앉았다. 정말이지 마침내 만들고 앉았다. 알료샤라고 하는, 죽음 직전에 겨우 시간을 맞췄다. 거기까지는 지리멸렬했다. 불량소년은 지리멸렬하다. 

 

 죽는다느니 자살한다느니 헛소리다. 졌기 때문에 죽는 것이다. 이기면 죽지 않는다. 죽음의 승리, 그런 바보 같은 논리를 믿는 것은 오타스케 할아버지의 벌레잡기를 믿는 것보다 더 멍청하다.

 

 인간은 사는 것이 전부다. 죽으면 없어진다. 명성이니 예술은 길고 어쩌고는 어리석은 소리다. 나는 유령이 싫다. 죽어도 살아 있다니 그런 유령은 싫다.

 

 사는 것만이 중요하다, 이것만 알면 된다. 고작 이걸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사실 안다 모른다의 문제가 아니다. 살거나 죽거나 두 가지밖에 없다. 게다가 죽는 쪽은 그냥 없어지는 것일 뿐,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닌가. 살아남아보이고, 해내보이고, 끝까지 싸워보아야 한다. 언제든 죽을 수 있다는 그런 시시한 말은 하지 마라. 언제든 할 수 있는 일 따위는 하는 게 아니다.

 

 죽을 때는 무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이 지독한 인간의 진정한 의무에 충실해야 한다. 나는 이것을 인간의 의무라고 본다. 살아 있는 것만이 인간이고 나머지는 그저 백골, 아니 무이다. 그리고 오직 사는 것만을 앎으로써 정의, 진실이 생겨난다. 삶과 죽음을 논하는 종교나 철학 등에는 정의도 진리도 없다. 그건 장난감이다.

 

 하지만 살다 보면 피곤하지. 그러고 보니 나도 가끔은 무로 돌아가고 싶을 때가 있다. 싸워서 이겨낸다는 건 말로는 쉽지만 피곤하지. 그러나 용기는 굳건하다. 비록 이대로라도 살아야 할 시간을 살아내야지. 그리고 싸운다. 결코 지지 않는다. 지지 않는다는 것은 싸운다는 뜻이다. 그 외에는 승부 따위는 있을 수 없다. 싸우고 있으면 지지 않는 것이다. 결코 이길 수 없는 것이다. 인간은 결코 이기지 못한다. 그저 지지 않을 뿐이다.

 

 이기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잖아. 누구에게, 뭐에게 이길 생각인가.

 

 시간이라는 것을 무한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런 허황된, 어린아이의 꿈 같은 것을 진지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시간이라는 것은 내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시간이다.

 

 너무 허황된 것이다. 한계. 학문이란 한계 발견에 있는 것이다. 허황된 것은 어린아이의 꿈이지 학문이 아니다.

 

 원자 폭탄을 발견하는 것은 학문이 아니다. 어린아이의 놀이다. 이것을 통제하고, 적당히 이용하고, 전쟁을 하지 않고, 평화로운 질서를 생각하고, 그런 한계를 발견하는 것이 학문이다.

 

 자살은 학문이 아니다. 어린아이의 놀이다. 처음부터, 먼저 한계를 아는 것이 필요하다.

 

 나는 이 전쟁 덕분에 원자폭탄은 학문이 아니고, 어린아이의 놀이는 학문이 아니고, 전쟁도 학문이 아니라는 것을 배웠다. 허황된 것을 비싸게 사고 있던 것이다.

 

 학문은 한계의 발견이다. 나는 이것을 위해 싸운다.

1개의 댓글

2023.09.29

세상엔 신도 많고 술도 많지만 먹어보지 않은것을 평가할수없는 법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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