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머

라스트 제다이 안 본 눈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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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주(莊周), 자휴(子休). 노자와 더불어 도가(道家) 계통의 거두로 손꼽히는 인물로, 좌망(坐忘)과 심재(心齋)의 경지를 통해 수양할 것을 강조했다. 동양에서는 경의를 담아 장자(莊子)라고 높여 부른다>

 

장자는 한 때 송나라의 옻나무 밭을 관리하는 미관말직에 종사했는데, 워낙 박봉이라 가난을 벗어나지 못 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평생토록 궁핍한 신세였음에도 오히려 출세길을 스스로 걷어차버렸다 : 초나라 임금이 널리 인재를 구하던 차에 장자의 인물됨을 알아보고 막대한 재물과 함께 재상의 자리를 내리려 했더니, "원래 제삿상에 오를 고기는 애지중지 대접하는 법. 나는 상 위의 고기가 되느니 진창에서 뒹굴며 살겠소!" 라고 답하며 쿨하게 거절했단다. 조상(曹商)이라는 사람이 군주의 총애를 얻어서 재산이 크게 늘어난 걸 자랑하러 왔을 때도, "왕의 종기를 빨아내면 수레 다섯 채를 받고, 치질을 핥으면 수레 열 채를 받는다고 하였소. 그대는 또 얼마나 더러운 짓을 했길래 그토록 영화를 누리시는 것이오?" 라고 쏘아붙였다. 통쾌하긴 한데 그 바람에 축재할 길이 막혀버린 장자는 헐어빠진 짚신과 누더기 삼베옷만 겨우 입었고, 간혹 곡식을 꾸어야 할 정도로 근근이 연명해야만 했다.

 

반면, 별 볼 일 없던 장자의 살림살이에 비해 그의 가르침은 오래도록 사랑 받았다. 장자 사후 몇 세기도 채 지나지 않아서 발흥한 도교(道敎)와 선불교(禪佛敎)는 장자가 남긴 문장을 수용하면서 융성해져, 훗날 동양권 정신 문화의 토대로 자리할 수 있었다. 그의 이름을 따서 지은 서책 「장자」 역시 후학들이 거듭해서 덧붙인 흔적이 역력한데, 그만큼 장자의 메시지가 갖는 생명력이 왕성했다는 반증이다. 당장 오늘날조차 호접지몽(胡蝶之夢), 조삼모사(朝三暮四), 당랑포선(螳螂捕蟬), 정저지와(井底之蛙) 등등 장자와 관련된 여러 일화들이 알려졌다. 특히 호접지몽 고사의 경우, 꿈 꾸고서 남겼다는 뚱딴지 같은 소감 치고는 이름까지 붙여져서 그의 간판 문구로 두루 언급되고 있다.

 

나는 이러한 인기의 비결이 바로 우화 형식을 빌리는데 있다고 생각한다 : 장자는 이상세계의 원리에 해당하는 "도(道)"를 인간의 감각으로 인지하지 못 한다고 믿었다. 어차피 인간은 보면 보이는대로, 들으면 들리는대로 판단할 뿐이고, 같은 사물을 놓고도 서로 다르게 받아들이지 않던가. 그러니 장자가 진정한 도(道)를 깨우쳤다한들 직설적으로 가르쳐주지 못하고, 상대방은 알아먹지 못하는 참사가 발생한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서 장자는 도(道)의 참모습이 담긴 우화와 은유를 통해 상대로 하여금 스스로 깨닫도록 하는 수단을 즐겨 사용했다. 그렇다면 장자가 파악한 도(道)라는 게 대체 무엇인지, 우리들도 장자의 이야기로부터 찾지 않을 수 없다.

 

제나라를 지나가던 목수가 어느 사당에서 크게 자란 상수리나무를 보게 되었다고 한다. 이 나무는 높이가 산을 내려다볼 것처럼 높고, 둘레가 백 여 아름은 족히 될만큼 커다랬다. 남들은 그 모습이 신기해서 구경도 하고 소문도 내면서 부산스럽게 굴었는데, 이 목수만은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이유를 묻는 구경꾼들에게는 다만, "저런 나무로는 뭘 만들어도 금방 바스러지고 썩어버립니다. 좀이 쓸기 쉽고 진액이 자꾸 흘러나와서 아무것도 못 만들어요. 쓸모가 없으니까 저토록 오래 살아남은 것일텐데, 사람들이 뭘 모르는군요." 하고 대꾸했다. 그랬더니 그 날 밤, 목수의 꿈자리에 상수리나무가 나타났다. 나무는 "그대가 뭐길래 함부로 쓸모를 논하느냐? 사과와 귤과 배 나무가 열매 맺는 재주 때문에 과일 철이 올 때마다 가지를 잘리고, 송죽이 곧고 단단하여 매양 궤짝과 문짝 만드느라 몸이 상하는 이치를 모르느냐? 그대가 말 한 쓸모로 인하여 명맥이 끊어지는 바야말로 어리석은데, 어찌 오래 삶보다 쓸모없음을 두고서 남우세스러워 하느냐?" 라고 나무랐다. 깨어난 목수는 자신이 세속의 도리로 판단 한 게 잘못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위나라 태자의 스승으로 갓 임명된 관료가 걱정이 되어 재상에게 찾아갔다. 그는 태자의 성격이 괴팍하고 잔인하여 어떻게 가르칠지 모르겠다며 조언을 구하고자 했다. 그러자 재상은 빙긋 웃으며 말했다. "당신은 혹시 호랑이 사육하는 법을 아십니까? 우선 호랑이를 굶기는 날엔 잡아먹힐 것이 뻔하므로 당연히 고기를 주어야겠지요. 그러나 범을 기를 때는 살아 있는 먹잇감을 줘선 안 되니, 놈의 야성이 살아나 주인을 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큼직한 먹이를 주어도 발톱 쓰는 요령을 터득하게 되어 경을 치를 수 있다고 합니다. 오직 작게 자른 먹이를 조금씩 주어서 배를 불려주어야만 호랑이를 온순하게 기를 수 있습니다. 이렇듯 호랑이에게 거스르지 않으면서 작은 먹이로 제어하시면, 호랑이가 커가는 기쁨을 누리면서 호환은 당하지 않을 수 있을 것입니다."

 

장자는 어느 날 호수에서 물고기 구경을 하다가 "저 물고기들은 참 즐겁겠다." 라며 감상을 밝혔더랬다. 이를 곁에서 들은 혜자(惠子)는 문득 "님이 물고기도 아닌데, 물고기가 즐거운지는 어찌 앎?" 이라고 물어봤는데, 장자 역시 지지 않고 "님이 내가 아닌데, 내가 물고기가 즐거운 줄을 아는지 모르는지는 어찌 앎?" 이라 되물었다. 혜자는 "나야 당신이 아니니까 물어봤지. 당신도 물고기가 아니니까 물어봐야 할 것 아님?" 이라고 지적했지만, "물어봤을 때는 내가 말해주면 알 것이라 짐작해서 물어본 게 아닌가. 다시 말해, 내가 이미 알고 있다는 걸 님도 인정한 거임." 하고 웃어넘겼다. 초딩들 말싸움 같은 이 고사도 유명해져서 호량지변(濠梁之辯)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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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브란트 판 레인, 호메로스의 흉상을 바라보는 아리스토텔레스. 논리학의 아버지가 서사시의 거장을 그리워 하는 모습이다>

 

한편, 비슷한 시기의 서양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Ἀριστοτέλης)가 활동하고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조실부모했지만, 부친이 생전에 어의였기 때문에 왕궁에서 입양되다시피 하여 부유하게 자랐다. 이윽고 17세가 되자 아테네로 유학을 떠났고, 그 곳에서 크나큰 지적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위대한 스승 플라톤(Πλάτων)과의 만남 덕분이었다. 플라톤은 비록 이방인이지만 두드러지게 총명한 아리스토텔레스를 격찬하면서, 우리 학당의 빛나는 지성인이라고 불렀다. 이후 두 사람의 20년에 걸친 사제 관계는 플라톤이 죽을 때까지 이어진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다방면에서 두각을 드러내어 당대의 석학들로부터 큰 기대를 모았다. 그는 생전에 수사학 · 시학 · 미학 · 천문학 · 기상학 · 생물학 · 형이상학 · 물리학 · 논리학 · 윤리학 · 정치학 등등 숱하게 많은 분야에 관한 저술을 남기고 젊은이들을 가르쳤다. 특히 논리학은 일련의 지식들을 취합하고 조직화하기 위한 선행 교과목으로 창안했는데, 이후 약 2 천 년 가까이 그의 자취를 따랐을만큼 위상이 드높았다. 형이상학에 있어서도 스승인 플라톤과 우열을 다투며 나란히 발전했다. 플라톤은 본인의 스승인 소크라테스가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다가 정치적 이유로 죽은 사실을 못내 안타까워 했고, 탐오한 현실과 구별되는 이상세계의 형상, 즉 이데아(ἰδέα)를 적극 탐구하게 됐다. 반대로 의사 가문 사람이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아리스토텔레스는 다분히 현실주의적인 사람이었고 스승의 이상론과 자주 맞부딪혔다. 이데아가 별세계에 있지 않고 이 세상 어딘가에 보편적으로 존재한다는 제자의 주장에, 노선의 차이를 실감한 플라톤은 "망아지 같은 놈. 길러줬더니 나를 걷어차는구나!" 라며 서운함을 감추지 못 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윤리학과 정치학에서의 성취인데, 그가 여기서 논한 것이 바로 인간의 행복이기 때문이다 :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이 언제나 "좋은 것", 다시 말해 "선(善)"을 추구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좋은 것 중에서도 좋은 것, 이른바 최고선(最高善)이란 게 있어서 삶의 전체가 결국 이것을 위해 표출된다고 보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이 그러한 최고선을 성취했을 때 행복하다고 단언한다. 확실히 행복은 인간의 행위에서 항상 궁극적인 목표였으므로 틀린 견해는 아니라고 하겠다. 그러나 행복이란 게 도대체 무엇인가? 물론 로또나 당첨돼서 평생 이자만 받아먹고 살면 엄청 행복할테지만, 그렇게 운에 의존하는 한시적 즐거움을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이라 여기지 않았다. 진짜 행복이란 스스로가 원하면 얼마든지 취할 수 있고, 또한 생애 전반에 걸쳐 누릴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최고선에 이를 수 있을까? 아리스토텔레스는 본인의 저서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우리가 행복해지려면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기술했다. 이는 사조(師祖)인 소크라테스 때부터 유구하게 이어져 내려온 질문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 나름의 대답이다 : 우리는 무언가를 좋다고 판단할 때면 그것의 합목적성을 기준으로 삼는다. 바람처럼 빨리 달리는 말이 좋은 말이고, 예리하게 잘 듣는 칼이 좋은 칼이듯이, 대상에게 기대하는 바를 충족시키는 정도가 그것의 좋고 나쁨을 판단하는 근거가 된다. 마찬가지로 한 개인의 좋고 나쁨이 어떤지를 판가름하려면, 그에게 기대한 부분에서 만족을 이뤘는지를 따져야 한다. 어느 상인이 내다 판 물건이 형편 없지는 않았는지, 어느 선생님이 가르친 학생이 불량하지는 않았는지, 어느 청소부가 다녀간 곳이 지저분하지는 않았는지 살펴본다면 그가 좋았는지 나빴는지도 자연스레 알게 되겠지? 그런 식으로 각자에게 주어진 본분인 미덕(美德)을 실천했는지 따져물어서 좋은 사람을 가려낼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즉, 자신의 도리를 다 함으로써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결론내린 셈이다.

 

하지만 좋은 사람은 하루 아침에 완성되지 않는다 ! 고장난 기계가 잠깐 제대로 동작한다고 해서 좋은 기계가 아닌 것처럼, 어쩌다가 잠깐 미덕에 따른 인간이 제대로 좋은 사람일 수는 없다. 게다가 경험이 부족할 경우, 자기 본분이라고 생각해서 한 일이 틀어지는 바람에 잘못된 결말을 맞이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좋은 사람이 되고자 한다면, 평생에 걸친 노력과 반성으로 미덕을 실천에 옮기는 수 밖에 없다. 그리하여 매사에 자신이 미덕을 손상시키지는 않을지 노심초사 하며 행동에 옮기고, 마침내 본인의 습관과 성품으로 굳어지도록 한다면 비로소 좋은 사람으로 거듭나게 된다. 이것이 아리스토텔레스가 행복을 순간적이고 우연한 게 아니라, 이성(理性)에 의해서 도출되는 통시적 상태라고 본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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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포(Morpho) 나비 그림. 아리따운 빛깔의 날개로 유명한 나비이지만, 정작 날개 뒷면이 투박하다는 사실은 의외로 알려져 있지 않다>

 

장자는 전국시대 중엽쯤 활동한 사상가로서, 이미 그의 생전에 천하는 피비린내 나는 이합집산을 200 여 년씩이나 거듭하고 있었다. 그 동안 각지에서 이러한 난세를 평정하기 위하여 수많은 제왕과 위정자, 학자들이 몸을 일으켰더랬다. 그런데 어째서 세상은 여전히 전란의 소용돌이에 휩싸인 채 생령들의 시름으로 떨리고 있는가? 장자는 이것이 도(道)에 대한 잘못된 접근에서 비롯한 현상이라고 보았다. 

 

「장자 - 제물론(齊物論)」 편에는 "천지에 가을철 짐승의 터럭 끝보다 더 큰 게 없다고 할 수도 있고, 태산조차 작다고 할 수도 있다"는 표현이 등장하는데, 털끝과 태산은 각각 조그맣고 커다란 존재이거늘 역으로 크고 작다 일컫는 게 흥미롭다. 이는 우리들의 가치관이 실재를 임의대로 인식하고 있음을 꼬집는 말이다 : 아무래도 모래알이 털끝보다야 작을테고, 밤하늘의 은하수가 태산보다야 클 것 아닌가. 똑같은 논리로 사람들이 옳다, 그르다 나누는 바 역시 다른 관점에서는 얼마든지 뒤바뀔 수 있다. 결국 삼라만상의 크고 작음, 길고 짧음, 옳고 그름은 대상에 내재된 본질이 아니라 인간의 인위적 구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누군가는 도(道)를 인의(仁義)라 하고, 또 누군가는 도(道)를 겸애(兼愛)라 하고, 다시 누군가는 도(道)를 위아(爲我)라 하는데, 장자 입장에서는 가소로울 노릇이다. 도(道)라는 게 그렇게나 편협하고 인간적인 것이었다면, 똑같은 인간들끼리 어째서 서로 다른 결론에 이르러 다투기까지 하냐는 말이야. 소위 지식인이란 것들이 자기만 옳다며 멋대로 도(道)를 곡해하는 바람에 갈등이 생기고, 맞고 틀린 기준이 생기고, 그렇게 비뚤어진 준거를 강제하려는 법이 생겨나서 세상이 혼탁해졌다. 이런 이분법적 사고는 실제로 작용하는 도(道)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다. 진정한 도(道)라면 응당 이와 같이 인간중심적인 관점이 아닌, 만물을 두루 아우를 수 있는 보편 진리여야 한다.

 

그럼 우리가 도(道)를 깨우치려면 어떻게 해야 하죠? 장자의 생각은 "지인(至人)은 고집이 없고, 신인(神人)은 공적이 없으며, 성인(聖人)은 이름이 없다고 들었다" 라는 인용에서 드러난다. 고집이 없다는 말은 편견이 없다는 뜻이고, 공적이 없다는 말은 일부러 행한 바가 없다는 뜻이며, 이름이 없다는 말은 세상에 남긴 자취가 없다는 뜻. 다시 말해, 저 잘 났다고 불쑥 튀어나와서 검증할 길도 없는 주장을 진실인 양 떠벌리지 말라는 의미다. 오직 있는 그대로의 도(道)를 인간적 편견과 아집 없이(=좌망) 겸허한 마음으로 관조(=심재)할 때 끝끝내 도(道)에 대해 깨달음을 얻을 것이란 설명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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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체스코 하예즈,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 사후 학당을 물려받지 못한 아리스토텔레스는 제자들을 이끌고 걸어다니다가 대충 걸터 앉아서 강의를 진행했다고 한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 일당을 소요학파(逍遙學派)라고 불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 마지막 권에서 되도록 많은 이들이 미덕을 함양하려면 정치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미덕의 성찰을 개인이나 가정에 맡기면, 개인의 성정이나 집안사정에 따라 교육이 이뤄지지 않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는 자신의 저서  「정치학」 에다가 정치의 최우선 과제는 시민들의 미덕을 고양시키고, 모두에게 행복한 삶을 보장하는 것이라고 못 박아 두었다. 즉, 정치의 사명은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미덕을 보급하고 그들을 행복으로 이끌어 가는데 있다고 보았다.

 

확실히 시민들의 행복이 증진되고 모두가 미덕을 실천할 수만 있다면, 그런 시민들의 사회는 매우 부강하고 아름다울 것이다. 그런데 사회구성원이 다양해지고 복잡해질수록, 개개인이 생각하는 미덕 역시 여러 갈래로 나뉘기 마련이다. 그로 인하여 서로 충돌을 일으키고, 갈등을 낳고, 사회적 후생손실을 야기하는 것도 뻔한 수순이다. 대관절 정치가 무슨 수로 그토록 다양한 인간 군상의 미덕을 길러주고, 또 잡음 없이 조율한단 말인가? 다시 말해, 정치가 개인의 윤리관에 해당하는 미덕을 어떻게 공동체의 규범 하에 포함시킬 수 있겠는가? 이에 대해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성적 판단에 의한 정의의 도출과 "친애"라는 이름의 상호존중을 장려하여 개인과 공동체의 목표를 일치시킬 수 있다고 확신한다.

 

우선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정의는 불의를 저지르는 것과 당하는 것 사이의 상태를 의미한다. 그러나 정의의 달성은 대단히 미묘한 문제인데, 단순히 정의가 그 중간에 위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 누구나 평등한 몫을 가진다면 정의롭겠지만, 공로가 큰 사람에게 큰 몫이 돌아간다면 그 역시 정의롭다 할 수 있다. 또한 살인이 부정하다고는 하나, 사형 제도를 유지하는 나라에서 흉악범을 처단하는 방식으로는 정의롭게 받아들인다. 이처럼 똑같은 행위에 대해서도 행위자의 정체나 상황에 맞춰 정의와 불의에 대한 결론이 달라진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가 정의를 다뤄야 한다고 역설했다. 공적인 영역에 해당하는 정치 행위를 통해 개인의 사적 욕망이나 입장 차이를 배제한다면, 인간의 본연적 능력이자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힘인 이성을 발휘하여 매 순간 무엇이 진정 정의로운 결과인지 찾아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의의 가변성은 당사자들로 하여금 향후의 가능성에 대해 숙고하게 만든다. 앞서 밝혔듯이, 똑같은 행위라고 해서 결과가 항상 정의롭다고 할 수는 없다. 이는 지금이야 본인이 정의로운 상태일지 몰라도, 나중에는 불의를 당하거나 저지를 수도 있다는 의미이다. 꼭 자신이 악독한 마음을 품어서 그랬다기보단, 살던대로 살았을 뿐인데 언제는 옳다고 하더니 또 언제는 그르다고 한다면 몹시 난처하겠지? 아리스토텔레스는 바로 그럴 때 정치가 나설 수 있다고 했다. 정치에 참여한 개인은 대중 속에 낀 한 명의 인간으로서, 본인처럼 상대가 불의하고 싶어서 불의한 게 아닐 수 있음을 이성으로써 깨닫게 된다. 그리하여 자신에게 옳은 것이 아니라, 모두에게 옳은 것에 대한 고민을 하기에 이른다. 이것이 아리스토텔레스가 친애라고 불렀던 정치에서의 상호존중이 형성되는 과정이다. 자신이 얼마든지 그를 수 있다는 겸손 하에서 상대방을 존중해주고, 함께 이성적으로 정의의 지점을 찾아나갈 자세를 정치가 촉진할 수 있다고 믿었다는 말씀.

 

종합하자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가 친애에 기반한 이성적 판단이 잘 동작하도록 공공의 장(場)을 열어줄 것으로 기대했다. 특히 구성원 모두가 참정하는 민주정에서 그러한 사실이 잘 들어맞는다. 민주정은 독재정과 마찬가지로 구성원들이 공통의 가치관을 중심 삼아 구성된 정치 체계이다. 하지만 모두가 기계적이고 하향식으로 결정된 덕목만을 따라야 하는 독재정에 비해, 다양성을 기반으로 삼으면서 공공의 가치를 이성적 논의 끝에 이끌어냈다는 중요한 차이를 갖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렇게 서로의 차이를 배척하지 않고, 인간 그 자체의 미덕인 이성을 충분히 발휘하여, 모두의 손으로 정의로운 사회를 이룩한 동시에 서로의 미덕을 가꾼 민주정이야말로 미덕이 충만한 이상 사회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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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이라고 해서 장자의 상대주의적 관점 +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 관념에 어떤 부분은 일치하는 듯 해 보이는 켐페인이 절찬리에 진행 중이긴 하다. 본디 이것은 언어 관습 교정 사회운동이었는데, 쉽게 말해 "듣는 사람 기분 나쁠 말을 쓰지 말자"는 취지에서 발원했다. 특정 계층에 속한 사람들을 비하하는 용어가 일상적으로 쓰이는 세태에 반발한 것이 그 시초로, 가령 과거에는 에스키모(Eskimo)족으로 부르던 민족을 이누이트(ᐃᓄᐃᑦ)족으로 바꿔 부르자는 식. 단어가 우리들의 사고에 영향을 끼치는 정도를 고려하면, 비하적 단어가 축출되는 것만으로도 무의식 중에 해당 계층을 대상으로 갖는 편견이 많이 사라질 수 있을테니 이만하면 건전한 운동이었던 셈이다.

 

이후 정치적 올바름 운동은 도덕 · 윤리 · 규범적 관습에 있어서의 구태마저도 수정하는 기능을 행하게 되었다. 어쩌면 말을 고치다보니, 그 뿌리인 사유의 오류도 고칠 필요성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이제 정치적 올바름은 과거로부터 이어진 문화 상의 전통이나 상례 등에 자리하고 있는 편견도 바뀔 것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특정 직종은 백인 남성만 근무하던 관례를 지적한다거나, 아시아인이라면 다들 손에서 장풍이라도 내뿜는다고 여기지 말라는 등 다양한 형태의 고정관념을 정화하고자 했다.

 

그간 정치적 올바름이 보여준 일련의 취지는 훌륭한 게 맞다. 시대는 다원주의와 세계화의 물결을 타고 물리적 국경 이상의 공동체로 도약하기를 추구하는데, 언제까지 똑같은 사람들끼리 차별과 선입견 때문에 다퉈야겠는가. 또한 비하할 의도가 전혀 없었던 사람들도 정치적 올바름 운동 덕분에 그간 목소리를 내지 못해 고통받던 사회의 약자들을 돌이켜 보고, 성찰과 관심을 가지는 계기로 삼았으니 충분히 가치가 있었다. 그러나 정치적 올바름을 하나의 사상 기조로 받아들이고, 거기에 경도된 일부 문화계 관련자들의 행태는 문제라 할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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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제공 作, 퀸 클레오파트라의 표지.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는 백인 혈통이며 클레오파트라 역시 백인 여성이었을텐데, 여기선 흑인으로 묘사한다. 뚜렷한 이유도 없이>

 

요즘 문화계에서 유행하는 기조는 희한하게도 리메이크와 인종 청소, 성소수자 첨가이다. 멀쩡하게 소비되어 오던 문화 컨텐츠가 별안간 검열 받다시피 재구성되더니, 등장인물들의 피부색이 바뀌고(하얗게는 안 함), 이야기 곳곳에 성 정체성(이성애자는 아님)에 관한 묘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특히 영상 매체와 게임처럼 시각 효과가 두드러지고 파급력 강한 문화 컨텐츠에서 이런 경향이 짙다. 모든 작품에서 이와 같은 작업이 수반되지는 않지만, 규모가 큰 여러 브랜드에서는 진작에 벌어졌고 지금도 계속 진행되는 중이다. 바로 일부 문화 컨텐츠 제작자들이 대중들의 각성을 촉구하고 나섰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이들은 문화 컨텐츠에 녹아든 각종 편견이나 차별의 철폐를 각성이라 부르는 모양이다. 그런데 정치적 올바름이 추진한 교정 활동을 마치 자신들의 생득적 사명인 것마냥 고집스레 이행하고, 그 방식이 너무나 교격했다. 최소한 제작자로서 좋은 작품을 생산하는데 관심이 없고, 그저 자신의 생각이 옳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혈안이 됐다. 때문에 일부러 잘 알려져 있고 팬층이 두터운 문화 컨텐츠에 접근해서 입맛대로 변형을 가한다. 그렇게 오래도록 사랑받았던 작품이 하루 아침에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린 채 갑작스런 자아비판(?)을 해대고, 제작자는 신이 나서 이게 맞다고 큰소리 쳐댄다. 물론 이것은 아무리 지나쳐도 문화 컨텐츠를 소비하는 사람들의 고정관념을 깨뜨리기 위한 파격으로 용인 받는다.

 

일련의 행태가 짜임새 있게 진행되었다면 또 모르겠으나, 대부분은 문화 컨텐츠가 본래 지녀야 할 맥락과 개연성에서 동떨어진 훈계를 갈겨버리느라 작품의 수준이 선전물 정도로 퇴보하기 일쑤다. 이런 질 나쁜 문화 컨텐츠는 우리가 그것을 소비하는 목적인 몰입에 이르지 못하도록 방해한다. 따라서 몰입의 부산물인 작품과의 유대 및 감정은 자연스럽게 무시된다. 과연 그들은 결국 흥이 깨져버린 팬들이 컨텐츠 소비를 중단하게 되었을 때, 그렇게나 본인이 의도했던 메시지 전달도 거기서 끊기고 만다는 사실을 알까? 악평이 퍼지던가 보이콧이 발생하던가 하여 경제적 손실로 이어지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기어이 생산자와 소비자 그 누구도 이득을 누리지 못하는 이상한 현상으로 치닫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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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트 디즈니 제공 作, 스타워즈 : 라스트 제다이. 전작의 무리한 설정을 수습해보려다가 그만 유서 깊은 프랜차이즈에 먹칠을 했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뛰어난 문화 컨텐츠 제작자라면 보다 세련된 방법을 사용함이 마땅하다 : 컨텐츠와 제작자가 자신을 옳다고 설정한 순간부터, 구작을 사랑하고 아꼈던 사람들은 틀린 게 되어버린다. 제대로 된 문화 컨텐츠 제작자들은 정치적 올바름의 취지를 멋지게 반영하면서도 좋은 작품을 내어 놓을 수 있다. 그들은 구태여 자신의 생각이 옳다는 뜻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으며, 소비자들의 견해와 문화 컨텐츠의 역사성을 그대로 존중한다. 나아가서 본인이 생각하는 바를 억지로 주입하기보단, 팬들이 스스로 납득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 이는 문화 컨텐츠 제작자로서 소비자들을 즐겁게 해준다는 미덕도 실천하고, 세상의 올바른 변혁에 기여한다는 뜻깊은 성취이기도 하다. 굳이 도(道)를 입으로 떠들고 다니지 않은 장자, 그리고 정의를 모두가 생각해서 도출해내게끔 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방법론에 닿아 있는 경지다.

 

라스트 제다이 안 본 눈 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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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개의 댓글

2023.08.09

1
2023.08.09
@스테비아

Life

1
2023.08.09
@스테비아

안 본 눈을 삶은 계란

1
@스테비아

선 제시요

0

재밌다

1
@우당탕탕몽실이

감사합니다 :)

0
2023.08.09

그 결론으로 이르는 과정에서 사랑에 대한 이해라곤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로즈키스

내 눈엔 아무리봐도 고민없는 억지였는데 감동받은 평론가들은 이해하기가 힘들더라

1
@바지를내리며

평론가들은 스타워즈라는 작품의 방향성을 전환하는데 성공했다는 식으로 찬미했습니다만, 제가 막눈이라 그런지 전혀 공감할 수 없었습니다..

0
2023.08.09

간만에 좋은 글이었다 추천

1
@오섬

감사합니다, 다른 글들도 잘 부탁드립니다 :)

0
2023.08.09

나는 로그원만 봤지롱

...그런걸로해두기로 했다

1
@영화나봐야지

그런 걸로 해 둘 걸 그랬네요......

0
2023.08.09

라제? 그런 작품이 있을리가 없잖아

그거 팬메이드임ㅇㅇ 아무튼 내 말이 맞음

1
@융영용양

팬이 만들었더라면 이러지 않았을 겁니다.... 이래선 안 돼...

0
2023.08.09

개봉일 전날에 발목 나갔나? 그래서 3일 드러누웠는데 그 3일이 내가 그 좆같은걸 돈내고 시간버려가며 IMAX까지가서 안보게 만들어줬고 그 뒤에 흉흉한 소문덕에 안봤다가 19년에 다운받아서 보는데 레아장군님 축지법 아니 포스력 쓰신다 보고 때려침.

 

내가 씨발 친구들한테 스타워즈 영업하러 다녀서 님들 그 4,5,6은 유튜브 요약본으로 보셔도 되니 7좀 봐주십쇼 나중에 열심히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하면서 7 같이 보고 오 씨바 괜찮은데? 소리 나오게한 다음.

나중에 로그원 데려갈때도 이게 말이죠 3~4사이의 일인데 이게 설정누락이 있어서 메꾸는 역할의 영홥니다요 4보기 좀 그랬잖아요 / 여러분 스타워즈가 무엇입니까 스타워즈란 바로 함대전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 스타워즈라고 하면서 맨날 붕쯔붕쯔거렸습니다만 이번 로그원에선 진짜 함대전이 나온답니다 꼭 보러가시지요 하며 네 놈 데려감.

로그원 영화 다 보고나서 두놈은 오오 점점 괜찮네 하고 다른 두놈이 씨발 야 스타워즈 배틀프론트 재밌냐 스타워즈로 하는 배틀필드라서 재밌대. 야이 반란군놈의 쉐끼야 내 지금 당장 스팀을 켜서 배틀프론트를 구입하겠어! 하며 어! 그렇게! 씨발! 애들이 스타워즈에 관심을 가지게 만들었는데!!!

그렇게! 개씹창을내야!! 속이 후련했냐!!!!!!!! 이 개씹좆같은새끼들 아주 다 씨발 책임자새끼가 남자면 후장에다가 여자면 ㅂㅈ에다가 형광등으로 만든 라이트세이버 넣고 깨버려야지 이 개좆같은새끼들

1
2023.08.09
@해외생활

여자임 할카스임

응원한다

1
@해외생활

명색이 문화 산업계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이렇게 소비자와 문화 컨텐츠가 맺는 관계의 특수성을 고려했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하는데, 제 식견이 짧았나 봅니다.. 이런 작품이 세상에 나오다니..

0
2023.08.09

글 잘못들어온줄 ㅋㅋㅋㅋ

2
@lilllilillilll

안 본 눈 삶니다..

0

눈을 왜 삶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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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춤법이단심판관

깨어난 포스 다 보고 이거 또 봤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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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09

난 깨어난 포스 보고서 라스트 제다이 안봤는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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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그조스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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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09

다시 돌아왔군요. 예전부터 회사 점심시간에 짧게 읽었었는데 글 내용이 좋아서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재미있어요 많이 써주세요.

1
@어디서봤던가

좋게 읽어주셔서 좋은 글이 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

0
why
2023.08.10

VR 과로사

1
@why

진짜 그런 식으로 스카이 워크 해버릴 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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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10

난 깨포가 너무 실망이었고 라제는 극장서 생각보다 재밌게 봄. 물론 로즈 나올 땐 끔찍했지만. 로즈 파트 다 날려도 영화가 문제 없을거라는게 꽤 빡쳤지. 근데 보고 나온 후 반응들은 꽤나 예상 밖이었음. 난 클리셰 박살 내는 진행들 보면서 클리셰와 오마주 밖에 없어서 지루함 그 자체였던 깨포보다 훨씬 흥미로웠거든. 하지만 기존 팬덤은 기대한 내용이 배신 당한 거에 대한 분노가 이렇게 크구나, 라는 걸 느낌. 이건 라오어2에서도 반복되는 패턴이었고. 결국 2편에 대한 팬들의 저항으로 3편이 이도저도 아닌 가족물로 끝나버린게 너무 아쉽다.

1
@프라이먼

사람마다 여러가지 감상이 있을 수 있겠지요 :)

0
2023.08.10

기왕 본거 끝까지 보고 막편도 까주시죠

1
@딜리트

그 땐 눈과 함께 제 지갑도 삶고 싶어질 겁니다..

0
2023.08.11

나 스타워즈 시리즈 30년만에 봤음

로그원-오리지널3편-프리퀄3편 이렇게만 봤는데

와 오리지널3편은 시대감안 안하면 너무 재미없더라....

시퀄3편은 평이 졸라 별로라길래 걍 안보는중... 볼만한가?

1
@리노잭슨

저는.. 안 보셔도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0
[삭제 되었습니다]
@얼음동동코코아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주제를 추천해주신다면 좋은 기회에 다뤄볼까 합니다.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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