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펌) 소련 전략 공군 사상 최대의 찐빠 - 여기는 테헤란인데요?

원본: https://ar2ca.live/b/gaijin/76408012?mode=best&p=1

(2를 지워라)

https://youtu.be/i-bdJF6TUF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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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3중폭격기연대는 후술할 찐빠를 내기 전에도 여러 모로 소련 공군 내에서 악명 높은 부대였음.

 

순도 100%짜리 에탄올인 Tu-22의 냉각수를 빼돌려 근처 공장에서 유리잔과 바꿔치기를 하다가 조사를 받지 않나, 착륙 도중에 활주로 근처를 지나던 닭 수송 열차를 비행기로 치어버리지 않나, 80년대 소련군임을 감안해도 아주 기열찐빠가 난무하는 부대였다는 거임.

 

한편 소련 공군은 1983년 3월에 전략 공군을 동원하여 대규모 폭격 시뮬레이션 훈련을 계획했고, 소련에서 몇 안되는 초음속 폭격기 부대였던 203연대도 당연히 이 훈련에 참가하게 됨. 적의 항공모함 전단에서 발진한 적기를 요격하고 폭격기를 동원하여 항모 전단을 싹 쓸어버린다는게 바로 해당 훈련의 대략적인 내용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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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에서 두번째 사건 당사자1 미하일 치조프 소령, 정가운데 사건 당사자2 항법사 드로데츠키 중위

 

 

훈련이 막바지로 치닫을 무렵 203연대의 상위 부대인 제22항공사단에 기습적으로 나타난 항모 전단을 격침시키라는 긴급 명령이 송신되었음. 22항공사단장은 203연대의 폭격기들에게 야간 출격을 지시하였고, 출격할 파일럿 중에는 오늘의 주인공인 미하일 치조프 소령도 포함되어 있었음. 미하일 소령은 203연대의 정치장교를 겸직하고 있었기 때문에 야간출격 전날 밤을 새 가면서 작전 성공에 공산주의 강령이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 따위의 보고서나 쓰고 앉아 있었고, 이는 미하일 소령의 업무 피로도를 급증시키는 역할을 하게 됨.

 

한편 203연대의 지휘부는 출격 직전까지도 폭격기의 이륙 방향에 대해 갑론을박을 펼치고 있었음. 새벽 시간대의 203연대 주둔지는 바람의 방향이 수시로 바뀌어대는 통에 활주로의 이륙 방향을 정하기가 쉽지 않았고, 결국 작전 지연을 보다 못한 203연대장이 방향을 하나 딱 정함으로써 출격이 이루어 질 수 있게 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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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당시 Tu-22는 '교정항법'이라는 특이한 항법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었음. 교정항법 체계에서는 표적의 방위를 임시 북극점(방위각 0)으로 설정하고 그에 맞춰 방위각을 설정하고 항공기의 웨이포인트를 지정하는 방법을 사용해야 했음.

 

미하일 소령 기체의 항법사 드로데츠키 중위가 이륙 방향에 맞추어 교정항법장치에 표적 좌표를 열심히 입력하고 있을 무렵, 관제탑에서 이륙 방향이 바뀌었으니 방위각을 재정렬하라는 명령이 내려오게 됨. 무슨 이유에서인지 미하일 소령, 드로데츠키 중위와 무장관제사 메즈리킨 중위 모두 해당 명령을 인지하지 못했음. 해당 요격 작전은 실제 전쟁 상황을 가정하고 수행 중이었기 때문에 항공기 간 무선 침묵이 필수적이었고, 또 무슨 이유에서인지 공군 기지의 관제사들은 이륙 직후 다른 Tu-22들과 반대 방향으로 기수를 트는 미하일 소령의 기체를 완전히 놓치게 됨. 

 

그렇게 새벽 두시의 칡흑같은 어둠에 무선침묵이 겹쳐져 미하일 소령은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 제대로 파악을 하지 못한 채로 임무 수행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게 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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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203연대의 작전 계획. 모즈도크에서 이륙한 폭격기들이 카스피 해에 있는 가상 표적을 타격한 뒤 전자전 수단을 동원하여 추적기들을 떨쳐내고 바라노비치 비행장으로 복귀하는 것이 작전의 전반적인 내용이었음.

 

다음 웨이포인트는 카스피 해 서안 반도에 위치한 도시 바쿠였고, 드로데츠키 중위는 미하일 소령에게 반도에 위치한 도시의 불빛이 보이는지 육안으로 확인을 요청함. 그런데 분명히 반대방향으로 날아가고 있을 미하일 소령은 놀랍게도 반도 지형과 대도시임에도 다소 초라해 보이는 불빛의 도시를 육안으로 확인했고, 이를 드로데츠키 중위에게 전달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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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어떻게 된 거냐면 미하일 소령의 기체는 카스피 해가 아니라 반대방향에 있는 아조프 해로 향하고 있었는데, 아조프 해에도 마침 우연히 반도에 위치한 도시 예스크가 존재했고, 마침 우연히 두 반도의 생김새가 비슷하여 미하일 소령이 착각을 하게 만든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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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바다 위에 도착한 것을 확인한 미하일 소령은 작전 계획대로 아무것도 없는 바다 위에서 항모전단 요격 기동을 마치고 다음 웨이포인트인 마하차칼라로 향하기 시작함.

 

미하일 소령의 기체가 마하차칼라에 도착하자 드로데츠키 중위는 다시 한번 미하일 소령에게 마하차칼라의 불빛을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지 질문했고, 놀랍게도 미하일 소령은 그렇다고 답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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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또 어떻게 된 일이냐면 웨이포인트 상 마하차칼라가 있어야 할 자리에 마침 우연히 흑해 연안의 소도시 소치가 있었기 때문임. 정말 기가 막히게도 마침 우연히 다음 웨이포인트인 엘리스타 위치에는 트빌리시가 있었고, 육안으로 두 도시를 모두 확인한 미하일 소령은 아무런 의심도 없이 독자적인 작전 수행을 계속하게 됨.

 

아니 그런데 항로에서 벗어난 비행기 한 대가 지 마음대로 돌아다니고 있는데 소련 방공군은 대체 뭘 하고 있었을까? 사실 방공군 측에서는 미하일 소령의 기체가 예스크 반도에 도착하기도 전부터 해당 항공기를 추적하고 있었음. 근데 IFF를 조사해 보니 당연히 아군이라고 나타났기 때문에, 방공군 상층부는 미하일 소령의 기체를 여객기로 단정하고 왜 제출된 여객기 운영 스케쥴에 저 비행기가 없냐면서 애꿎은 민간 관제사들을 갈구고 있었기 때문임.

 

얼빠진 관제사들을 갈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오전 2시 53분 방공군은 미하일 소령의 기체가 여객기가 아님을 드디어 알아차리고 Su-15 요격기 2대를 긴급 발진시킴. 요격기들이 미하일 소령의 기체를 레이더 상에서 확인하고 락온을 걸기 시작했을 무렵 미하일 소령의 기체는 위 짤에서 보듯이 작전 계획에 따라 Tu-22의 ECM 장비를 가동하였고, 요격기와 지상 관제소는 Tu-22가 건 재밍을 그대로 얻어맞고 미하일 소령의 기체를 완전히 놓치게 됨.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요격기들을 따돌린 미하일 소령은 다음 웨이포인트인 쿠르스크에 접근하기 시작함. 그런데 미하일 소령은 여기서부터 뭔가 잘못됐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음. 미하일 소령이 아는 쿠르스크는 평야 지대인데 왠일인지 눈 앞에 나타난 쿠르스크 주위에는 거대한 산맥이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임. 그 이유는 미하일 소령 눈 앞에 있는 도시는 다름 아닌 이란의 수도인 테헤란이기 때문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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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그런데 이란 공군은 대체 뭘 하고 있었길래 전략폭격기 한 대가 수도 상공을 돌아다니는 걸 방관하고 있었을까? 그 이유는 정확히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당시 진행중이던 이란-이라크 전쟁 때문에 이란 방공군이 정신이 없었다는 추측이 있고, 당시 Tu-22가 지나간 항로에 마침 우연히 지진이 일어나고 있었기 때문에 군부가 이를 수습하느라 미처 대응하지 못했다는 추측도 있음.

 

그렇게 어딘가 불안한 비행을 계속하던 미하일 소령은 착륙이 예정된 바라노비치의 불빛을 발견하게 됨. 물론 해당 도시는 바라노비치가 아닌 이란의 도시 마사드였고, 아까와 마찬가지로 정체불명의 산맥들이 계속 나타나는걸 본 미하일 소령은 자신이 아는 소련 서남부의 산맥들을 곰곰히 생각해보기 시작함. 점점 엄습해오는 불안감에 다급해진 미하일 소령은 바라노비치 주변 비행장의 주파수에 대고 교신을 시도하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없었음. 그러던 중 미하일 소령은 온 몸의 털이 다 곤두설 정도의 소름끼치는 광경을 목격함. 서쪽으로 향하고 있었다면 절대로 보여서는 안되는 일출이 눈 앞에 떡하니 나타났기 때문임.

 

미하일 소령은 다급하게 자신의 기체를 북쪽으로 몰기 시작했지만, 이제는 연료량이 발목을 잡고 있었음. 이쯤 되면 소련 쪽도 사태를 전부 파악했기 때문에 그나마 제일 가까웠던 마리 항공기지로 미하일 소령의 기체를 유도하였고, 미하일 소령은 전투기용으로 건설된 짧디짧은 활주로에 간신히 착륙하는데 성공함. 여담으로 이 때 유도를 위해 출격한 전투기들은 미하일 소령의 뒤에서 자기들끼리 추적하고 유도하고(이유는 전투기 중 하나가 급하게 출격하느라 IFF 트랜스폰더를 오늘꺼로 안하고 전날꺼로 설정해서 서로 적기로 오인했음.) 쿵짝을 치는 바람에 접선하지 못해 미하일 소령은 무선 지시에 따라 착륙을 할 수밖에 없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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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선-원래 훈련 계획  퍼런색-실제로 찐빠낸 이동거리

 

이 사건이 소련 공군에 미친 영향은 대단했음. 당장 미식별 항공기 한대가, 그것도 전략폭격기가 자국의 영공을 몇 시간동안이나 휘휘 젓고 다녔는데도 적합한 대응 조치를 취하지 않았으니 방공군 장교들의 목이 천명 단위로 날아가 버렸음. 당시 총지휘를 맡았던 22항공사단장이 해임되었음은 물론이고 미하일 소령은 "무단 이탈에 대한 진위"를 캐내려는 각종 정보부의 등쌀과 조사를 이기지 못하고 그 해가 가기 전에 예편해버림. 이 당시 받았던 스트레스가 정말 어마어마했던 모양인지 미하일 소령은 예편 후 자신의 경험을 책으로 쓰고 1년도 지나지 않아 심장마비로 사망함.

 

이 사건의 주범이기도 한 드로데츠키 중위는 놀랍게도 큰 문책을 당하지 않았고 조금 더 구형인 Tu-16을 운용하는 부대로 전출가는 선에서 마무리 됨. 해당 부대에서 드로데츠키 중위는 Tu-16의 항법사로 근무하다 해당 연대의 선임 항법사까지 달고 소령까지 진급 후 전역하는 해피 엔딩을 맞이함. 훗날 조사에서 드러난 바로는 드로데츠키 중위는 사건 전에도 Tu-22의 고성능 항법 장비를 잘 다루지 못했으며 203연대장은 드로데츠키 중위를 언제 전출 보낼지를 고심하고 있었다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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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 이후에도 모스크바 한복판에 서독 경비행기가 똭! 나타나는 등 소련 방공망이 상당히 허접함을 증명했음.....

 

6개의 댓글

2023.05.17

아 너무 무섭다…

0
2023.05.18

넘나재밋는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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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18

길치가 이렇게 무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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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20

러시아 핵무기 쏠 수 있는거 맞는지 의심스럽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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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퍼스카이 ㅈㄴ 재밌음. 우크라이나 아저씨가 소련 비행기 얘기 해주는 채널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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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20

...마지막 한줄이 더 무서운데???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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