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사랑과 이별 파탄, "호랑이 남자와 여자와 처남"과 "선녀와 나무꾼"을 중심으로

이거 제가 독자연구한 겁니다. 여기 처음 올려봅니다.

 

최근 선녀와 나무꾼과 비슷하면서 대조되는 설화를 봤다. "호랑이 남자와 여자와 처남"으로 '선녀와 나무꾼'이 여성의 입장에서 구전되는 이야기였다면 '호랑이..'는 남성의 입장에서 구전되는 이야기라고 느꼈다. 그래서 비교를 해 보고자 한다.

 

호랑이 남자와 여자와 처남

 

1. 옛날에는 여자가 혼자 변소에 가면 호랑이가 물어간다는 속설이 있어 신랑이 함께 따라갔다.

2. 신랑과 함께 갔는데 큰 호랑이기 신부를 훔쳐갔다. 

3. 신랑은 새장가를 갔다.

4. 신부의 남동생이 10살이 되자 어머니와 함께 누나를 찾으러 길을 떠났다.

5. 신부가 눈을 뜨니 호랑이 등에 업혀 궁궐 같은 집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6. 호랑이가 휙 돌더니 남자로 변해 같이 살자고 제안한다.

7. 신부는 금방 시집을 갔으니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항변하니, 호랑이가 문을 잠그고 나가버렸다.

8. 신부는 할 수 없이 호랑이와 같이 산다.

9. 15살이 된 남동생은 누나를 찾아 나섰다가 어느 궁궐 같은 집에 당도한다.

10. 동생이 문을 두드리며 "누나 찾아왔다. 배 고파서 여기 들렸다."라고 말한다.

11. 동생임을 알게 된 신부가 동생을 집에 들이고, 벽장 속에 숨겨놓는다.

12. 동물들을 물고 온 호랑이가 신부에게 사람 냄새가 난다고 한다고 한다.

13. 신부는 자기 냄새라고 둘러대다가 동생이 왔다고 한다.

14. 호랑이는 처남을 찾다가 신부는 당신이 해칠까봐 벽장 속에 숨겼다고 했다.

15. 호랑이는 해치지 않을테니까 처남을 만나고 싶다고 한다.

16. 호랑이는 처남을 환대하며 돼지고기와 동물고기를 잘 차려 대접했다. 하지만 겁이 나서 먹질 못 했다.

17. 동생은 자형인 호랑이가 사냥을 나가자 누나보고 도망치자고 했다.

18. 누나는 하루가 지나고 가자고 하고, 하루가 지나자 아기를 낳았다. 아기는 반은 사람, 반은 호랑이였다.

19. 호랑이가 사냥을 나가자 신부와 동생은 아기똥을 마루 밑에 넣고, 아기를 데리고 도망을 쳤다.

20. 호랑이가 사냥을 갔다 돌아오자 신부가 없어져서 찾다가 남매를 쫒아간다. 

21. 남매를 배를 타고 강을 건넜다. 호랑이는 뛰다가 강물에 빠져 죽었다.

22. 동생이 "이 애는 아버지 죽는 걸 봤으니 복수할 것이다. 그러니 죽이자"라고 했다. 남매는 아기를 물에 빠뜨리고 돌아왔다.

출처 : 임석재 『한국구전설화』(3)평민사, 1988, 282-284면 

(평안북도 설화로 추측)

 

선녀와 나무꾼

 

1. 나무꾼이 포수에게 쫓기는 사슴을 구해준다.

2. 사슴은 보답으로 나무꾼에게 선녀를 만나는 방도를 일러주면서 아 이 셋을 낳기 전에는 날개옷을 주지 말라고 당부한다. 

3. 나무꾼은 달밤에 연못가에 숨어 있다가 선녀의 날개옷을 감추어서 선녀와 같이 살게 된다. 

4. 아이 둘을 낳고 나서 선녀가 조르자 나무꾼이 날개옷을 내어준다. 

5. 선녀는 날개옷을 입고 아이들을 데리고 하늘나라로 가버린다. 

6. 나무꾼은 사슴을 다시 만나고 하늘로 올라갈 방책을 묻는다. 

7. 보름날, 나무꾼은 사슴이 가르쳐준 대로 두레박을 타고 하늘로 올 라간다. 

8. 하늘나라에서 자식들과 아내를 만난다. 

9. 하늘나라에서 살기 위한 어려운 시험들을 선녀의 도움으로 해결하고 가족과 함께 행복하게 산다. 

10. 나무꾼은 집에 두고 온 어머니가 걱정이 되어 용마를 빌어 타고 땅으로 내려오고 선녀는 남편이 돌아오기 어려우리라 예측하고 금기를 건다. 

11. 나무꾼은 땅에 내려와 어머니를 만나고 기를 어겨 하늘로 돌아가 지 못한다(하늘을 보고 울다가 수탉으로 변하기도 한다).

 

 

얼핏보면 연관없어 보이는 두 이야긴 의외로 많은 공통점들이 있다. 

1. 부부 중 한쪽이 이종족이다.

2. 혼인을 위해 남자측에서 여자를 납치한다.

3. 부부처럼 살다가 아내쪽이 먼저 떠난다.

4. 남자쪽이 비극적인 최후를 맞는다. (죽거나, 수탉이 되거나)

 

  호랑이 남자와 여자와 처남 선녀와 나무꾼
부부 중 한쪽이 이종족이다. 호랑이 남자 선녀
혼인을 위해 남자측에서 여자를 납치한다. 갓 결혼한 새색시를 납치 선녀의 날개옷을 훔침.
부부처럼 살다가 아내쪽이 먼저 떠난다. 새색시가 자신의 남동생을 만나자마자 떠남 자신의 날개옷을 찾자마자 승천
남자쪽이 비극적인 최후를 맞는다 사망 수탉, 추락사

 

 

물론 대조되는 점들도 많다.

1. '호랑이 남자와 여자와 처남'에서는 남자가 이물, '선녀와 나무꾼'에서는 여자가 이물이다.

2. 전자는 아이가 죽었지만 후자는 죽지는 않았다.

 

  호랑이 남자와 여자와 처남 선녀와 나무꾼
여자의 신분 평범한 새색시 고귀한 선녀
남자의 신분 궁궐같은 집에 사는 반인반수 가난한 평민
아이의 생사 죽음 생존
파멸시키는 자 처남(의 영웅성이 부각) 노모(의 초라함이 부각)

 

파멸시키는 자

처남/노모

처남은 어린 남성이고, 노모는 늙은 여성이다. 처남은 적극적으로 누나를 설득시켜서 탈출했지만 노모는 아들을 지상에 있도록 설득시킬 능력이 없다. 기껏해야 죽을 주는 소극적 행위밖에 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적극적이든 소극적이든 둘의 결과가 상대방을 파멸시켰다는 것이다.

처남은 처가 쪽 사람이고, 노모는 자신의 가족이다.

혹시 이건 남자는 '처가가 나의 가족을 박살냈다.' 라고 생각하고, 여자는 '시가가 나의 남편을 뺐어갔다.' 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호랑이 남자와 여자와 처남과 비슷해 보이는 외국 설화들

 

'호랑이 남자와 여자와 처남'은 '프시케와 에로스'도 연상케 한다. 구혼자가 많았던 프시케 공주, 갓 혼인한 신부,

 

  호랑이 남자와 여자와 처남 프시케와 에로스
남편을 만나기 전 여자의 상태 갓 혼인한 신부 구혼자가 많았다.
여자 입장에서 혼인할 때의 심정 '나는 결혼했으니 시집으로 가야한다.'고 항변 홀로 암벽에 남겨진 프시케는 두려움과 슬픔에 떨고 있었다.
여자가 보는 남편의 모습 호랑이 예언 속 괴물
남편이 주는 부(富) 호랑이 남자는 궁궐 같은 집에서 아내를 살게 한다. 황금과 상아로 지은 호화로운 궁전
형제의 이간질 누나보고 도망치자고 설득하는 남동생 '소문대로 괴물이 맞다면 칼로 그 목을 도려내야 네가 산다.'고 충고해주는 언니들
형제의 설득에 넘어간 여자
둘 사이의 자식
남동생과 도망치는 누나
반은 호랑이 반은 사람(사망)
남편의 얼굴을 확인하려다 들키는 프시케
헤도네(생존)

 

만약 프시케가 에로스를 성공적으로 죽였다면 '호랑이 남자와 여자와 처남' 같은 결말이 나오지 않았을까?

 

이종족 같은 남편을 형제의 도움으로 죽이고 자신이 살던 곳으로 돌아온다는 점은 샤를 페로의 '푸른 수염'을 연상케 한다.

 

푸른 수염

1. 혼인하기 싫었던 두 자매, 언니가 혼인

2. 푸른 수염은 부자

3. 아내의 형제들에게 죽는 푸른 수염

 

호랑이 남자와 여자와 처남

1. 예상하지도 않았고, 원하지도 않았던 호랑이와의 혼인

2. 궁궐 같은 집에서 사는 호랑이 남자

3. 아내와 처남을 찾으려다 익사하는 호랑이 남자

 

 

 

재밌는 점은 호랑이 남자는 나무꾼처럼 무능한 인물이 아니였다는 거다. 나무꾼은 노모를 모셔야 하는 가난한 평민이었지만 호랑이 남자는 궁궐 같은 집에 사는 자다. 호랑이에서 사람으로 변하는 모습은 마치 반인반수 요괴를 연상시킨다. 여자는 오히려 더 좋은 남편을 얻고, 신분이 상승했을 수도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인간 남자와 계속 혼인 상태를 유지했으면 그저 '인간의 아내'로만 남았을 것이다. 거기다 인간 남자는 결론적으로 자신의 아내를 지키지도 못 하고 구하지도 못했다. 또한 전 아내는 나몰라라 하고, 새장가를 가는 무책임함까지 보여줬다. 반면 호랑이 남자는 방법이 불순하기는 했지만 어쨌든 자신의 아내에게 부를 안겨주고 사랑해 줬다. 물론 텍스트를 보건데 호랑이 남자가 아내의 거동의 자유를 막는 억압적인 태도를 취하고는 있지만 나무꾼의 아내로써 신분이 하락한 선녀보다는 궁궐 같은 집에서 잘 살았을 것이다. 그런데 아내는 그런 호랑이 남자의 남자의 곁을 떠난다. 그리고 처남에게 죽음을 맞이한다.

 

이 두 설화에는 남자의 입장이 반영되어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여자는 잘해주든 못해주든 날 떠난다.'라는 생각이 남성들의 기층에 깔린 생각 아닐까?

 

여자 입장에서는 '네가 가난하고 날 억압하기에 떠난다.'

남자 입장에서는 '내가 얼마나 잘 해줬는데 떠나냐?'

 

 

 

호랑이 남자의 아내가 떠난 이유는 뭘까?

 

'여성교환'이란 단어가 있다. 남성은 신분으로 교환되지만 여성은 '여성'이란 성별로 교환된다는 것이다. 호랑이 남자의 아내가 떠난 건 교환되기 싫어서 떠난건 아닐까?

 

호랑이 남자는 호랑이에 대한 두려움과 경외심이 합쳐져서 탄생한 존재일 것이다. 여자는 남자에 대한 두려움으로 자신의 남편을 호랑이로 봤을테고, 남자 입장에서는 '내가 이렇게 강인한 존재다.'라는 걸 강조하기 위해 호랑이라고 지칭했을 것이다.

 

호랑이 남자는 아내가 원하는 것을 잘 안다. 아내는 부유하게 살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궁궐같은 집에서 같이 살자고 했다. 하지만 배신당했다. 개인적인 사담이지만 '선녀와 나무꾼'보다 '호랑이 남자와 여자와 처남'이 더 슬프고 비극적이라 생각한다. 나무꾼보다 훨씬 부유했지만 자신과 자식은 죽음을 맞이했다. 그리고 남동생의 권유로 갓 태어난 자식을 죽인 신부는 그 후 행복하게 살 수 있었을까?

 

+

으아, 두서없이 쓴 글입니다.

이 이상 어떻게 정리할지 모르겠어. ㅠㅠ

8개의 댓글

2023.04.24

그런 설화가 있는지도 몰랐었어서 재밌게 읽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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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결예승

재밌다니 다행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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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6

저 설화들 원형이 에로스와 프시케자너 산신령이 헤르메스고 교화되지 않은 야생성을 가진 남자는 여자를 가질 수 있다

타잔이나 그레이의 그림자나 다 비슷한 맥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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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없는몽상가

오호, 그럼 타잔이나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는 에로스와 프시케의 현대적 변주?

그래도 에로스와 프시케는 해피엔딩이지만, 호랑이 남자와 여자와 처남은 배드엔딩인데. 이게 신과 짐승의 차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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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8
@마음속의무지개

해피엔딩이라고 하기도 글치 않냐? 둘다 남편이 헌신하는데 배신하고 몰락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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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없는몽상가

에로스와 프시케 : 고생 끝에 낙이 옴.

호랑이 남자와 여자와 처남 : 아이 죽고, 남편 죽음

난 이렇게 이해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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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30
@마음속의무지개

음... 오로지 남자 입장만 생각하면 억울하지않냐ㅋㅋ 저기 나오는 남자들은 신이거나 부자거나 호랑이거나하는 다른 남성들을 제압할 수 있는, 지금으로 따지자면 알파메일이란말야 먹여주고 재워줬는데 배신당했자나 그렇게해서 여자가 주체적으로 행복해졌어?? 그건 아니자나 프시케만하더라도 제우스가 불쌍히 여긴거지 주체적인 행복을 가진건 아니라고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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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없는몽상가

아하, 그렇게 이해했구나. 결국 여자가 주체적으로 행복하지 않으면, 비극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구나. 프시케와 에로스가 특이 케이스고.

그러고보니, 남자들은 행복하지만 약탈혼이나 다름없는 결혼을 한 여자들은 상대가 아무리 부유해도 그 사랑을 온전히 받아들이기 어렵겠구나. 그런 의미에서 남편찾아 삼만리 한 프시케는 다른 설화의 여자들에 비해 순애보였네.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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