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도겸과 서주는 조조의 서주대효도의 일방적인 피해자인가?. 

도겸과 서주는 조조의 서주대효도의 일방적인 피해자인가? 

아님 

 

도겸이 조조한태 계속 선빵 날리고 있었음 

 

당시 중원은 

 

장안쪽 동탁파

 

북방쪽 공손찬파 

 

중원에서 북서쪽 원소파 (그 아래 떨거지 조조)

 

중원에서 남동쪽 원술파 (그 아래 떨거지 도겸, 흑산적)

 

그 이외에 떨거지들로 세외5궁(서북쪽 마등-한수, 서남방 유장, 남방 유표, 동남방 떨거지들, 최남단 교주, 고구려 근처 공손 어쩌고들) 

 

이 대립하는 중이었음 

 

이중에 중요하게 쌈질 중이었던건 원소파와 원술파였음 

 

조조가 근거지도 없고 벼슬도 없는 방랑 군벌(달리 말하면 도적때)의 리더이자 원소 아래 쫄따구였던 190~191년 

 

 2년(191) 7월에 원소가 한복한태서 기주를 빼앗고 독립 세력이 됨 

 

[ 가을 7월     원소가 한복을 위협하여 기주를 빼앗았다.]

 

그러니깐 원술은 흑산적을 이용해서 위군과 연주 동군을 공력함 

 

[흑산(黑山)의 적 우독(于毒)․백요(白繞)․쉬고(  固) 등 10여 만 명은 위군과 동군을 공략하였다. 동군태수 왕굉은 이를 막지 못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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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이제 막 발판을 딱은 기주 원소의 턱밑이라서 바로 공격다할 수 있는 위치엿어 


원소는 휘하 장수인 조조를 파견해서 흑산적을 쫓아내고 동군 태수에 임명해서 방어를 책임지게 함 

 

[조조가 병사를 이끌고 동군으로 들어가 복양에서 백요를 공격하여 무찔렀다. 그래서 원소는 상소를 올려 조조를 동군태수로 임명하여 동무양을 다스리도록 했다.]

 

난세가 되기 전에도 벼슬이 있었고, 재산이 많고 했었지만 그건 난세 되기 전 이야기고 이게 조조가 난세 되고 나서 처음 얻은 근거지임 

 

근거지가 없는 도적때들이니 아무리 재산이 많기로 소문난 조조였어도 맨날 반란 나고 병사들 모아봐야 다 도망가고 이런걸 무한 반복 당하다가 처음 얻은 땅이었음 

 

이게 원술진영의 1차 공격임 

 

그리고 그 다음해 봄 또 쳐들어와 

 

[  3년(192) 봄     조조가 돈구(頓丘)에 주둔하고 있었다. 우독 등이 동무양을 공격했다. 조조가 곧 병사를 이끌고 서쪽으로 향하여 흑산에 들어가 우독 등의 본거지를 공격하려 하니 우독이 그 소식을 듣고 무양을 버리고 돌아왔다. 조조는 쉬고를 기다렸다가 공격하고, 또 흉노 어부라(於夫羅)를 내황(內黃)에서 공격하여 모두 크게 무찔렀다.] 

 

그거랑 별개로 흉노 어부라 랑 싸웠는데 이놈은 독립 세력이었다가 조조한태 처맞고나서 원술한태 들어갔음 

 

이게 원술 진영의 2차 침공 (+흉노족하고 싸운거까지 3회 전쟁) 

 

그 다음에는 전설의 황건적 130만명과 싸워서 청주병을 얻는 이벤트가 발생함 

 

[여름 4월   청주의 황건군 1백만 명이 연주로 침입하여 임성국의 재상 정수(鄭遂)를 죽이고 방향을 바꾸어 동평(東平)으로 침입해 들어왔다. 유대가 그들을 공격하려 하자, 포신(鮑信)이 간언했다. (중략)  유대는 그의 말을 듣지 않고 황건군과 싸웠는데 과연 죽음을 당했다. 포신이 주리(州吏) 만잠(萬潛) 등과 동군으로 가서 조조를 영접하고 연주목(兗州牧)을 맡아주도록 요청했다. 조조가 수장(壽張) 동쪽으로 가서 황건군을 공격했다.(중략) 

  겨울     조조가 항복한 군사 30여 만 명과 남녀 1백여 만 명을 받아들였으며, 그 중에서 정예들만을 거두어 ‘청주병(靑州兵)’이라고 불렀다.]

 

조조는 이때까지는 그냥 연주의 한 군인 동군의 태수에 불과 했는데, 이때 연주목 유대가 병신 삽질을 해서 죽고 다음 연주목으로 추대 되고, 황건적 130만을 백성으로 흡수해서 청주병이라는 병력도 확보함 

왜 연주가 아니라 청주병이나면 청주에서 출발해서 연주로 온 넘들이라서 였음 

 

(4회 전쟁 끝) 

 

청주 황건적 이벤트가 끝나자 마자 원술이 또 쳐들어옴 

 

원술파는 중간에 낀 원소파를 같이 죽이자고 공손찬파에 연락을 해서 선빵을 놓음 

 

여기서 도겸이랑 조조의 첫 배틀이 나옴 

 

[원술은 원소와 사이가 좋지 않은 면이 있었다. 원술이 공손찬에게 구원을 요청했는데, 공손찬이 유비(劉備)를 고당(高唐)에, 단경(單經)을 평원(平原)에, 도겸(陶謙)을 발간(發干)에 주둔시켜 원소를 압박하였다. 조조가 원소와 협력하여 그들을 모두 쳐부쉈다.]

 

원술이 도겸을 발간에 주둔 시키는대 발간이 어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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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의 근거지 중에 근거지인 연주 동군이다. 

 

원술은 대놓고 조조쯤은 도겸이 조질수 있다 라는 포석을 둔거임 

 

조조는 황건적에 다 털려서 거지 신세 되어있는 연주를 이제 막 먹은 거지집단이고 

 

도겸은 오래전부터 풍요로운 서주를 지배한 당당한 군벌이니 전력으로만 보면 도겸이 이기는게 당연함 

 

그런데 도겸은 조조보다 싸움을 못했지 ㅋㅋㅋ 

 

조조한태 개발림 

 

[원술파 3차 공격(도겸의 1차 공격)] 조조승리 

 

포켓몬들이 계속 털려나가니깐 참다 못한 원술이 직접 조조를 조지러 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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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193) 봄     조조는 견성에 군대를 주둔시켰다. 형주목 유표가 원술의 식량 보급로를 차단하자, 원술은 군사를 이끌고 진류로 들어가 봉구(封丘)에 주둔했는데, 흑산에 남은 적들과 어부라 등이 그를 도왔다. 원술은 장군 유상을 광정(匡亭)에 주둔시켰다. 조조가 유상을 공격하자, 원술이 유상을 구원하기 위해 나왔으므로 양자간에 싸움이 벌어졌다. 조조는 원술을 크게 쳐부쉈다. 원술은 퇴각하여 봉구를 지켰으나 조조가 원술을 포위하였고, 원술은 포위망이 뚫리기를 기다리지 못하고 양읍(襄邑)으로 도망갔다. 조조의 군대는 태수까지 추격해갔고, 강둑을 무너뜨려 성안으로 물이 들어가게 했다. 원술은 영릉으로 도주했다. 조조가 계속 추격하자, 원술은 또다시 구강으로 도망쳤다.]

 

연주목 조조가 연주목 동군 견성에 주둔하고 있으니깐 원술이 연주 진류로 쳐들어옴 

 

원술은 휘하 포켓몬들, 흑산적, 흉노왕 어부라, 장군 유상 등을 데리고 또 포켓몬 배틀을 시전하는데 조조한태 영혼까지 털리고 구강까지 도망감 

 

이게 원술파의 4차 침공임 

 

그리고 그해 여름 

 

[여름     조조는 돌아와 정도(定陶)에 진을 쳤다.

  하비 사람 궐선(闕宣)은 수천 명의 군사를 모아놓고 스스로 천자라고 일컬었다. 서주목 도겸은 그와 손을 잡고 함께 군대를 일으켜 태산군(泰山郡)의 화(華)와 비(費)를 빼앗고, 임성(任城)을 공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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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술파의 5차 침공 (도겸의 2차 침공)이 시작됨 

 

연주 태산군을 공략하는데, 이 공략에 도겸은 자칭 천자 궐선을 합류시킴 

 

이 자칭 천자를 합류시킨 이벤트 때문에 삼국지 연의가 아닌 역사서상의 도겸은 개병신 새끼 소리도 듣고 있음 

 

저저저 자칭 천자를 옹호하는 반역자 놈의 새끼 라고 

반대쪽에서는 자칭 천자를 옹호한게 아니라 자칭 천자를 동지인척 하다가 통수쳐서 죽이고 남은 무리들은 흡수한거니깐 

 

훌륭한 계략인 것이지 반역자가 아니다 라는 말도 하고,,, 

 

뭐 하여간 이 5차 침공이 문제가 됨 

 

[ 홍평 원년(194) 봄     조조는 서주로부터 연주로 돌아왔다. 예전에 조조의 부친 조숭은 관직을 내팽개치고 초현으로 돌아와 있었는데, 동탁의 난이 일어나자 낭야(瑯)로 피난갔다가 도겸에게 살해당했다. 그 때문에 조조는 동쪽을 정벌함으로써 복수하려고 생각했다.]

 

도겸이 침략한 땅이 연주 태산이라고 했지? 

 

그 태산에 있던 사람이 조조의 아버지인 조숭과 조조의 일가친척들이었어. 

 

역사서에서는 이 사건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 해 

 

[흥평(興平) 원년(194) 봄, 태조가 서주로부터 돌아왔다. 처음, 태조의 부친 조숭(曹嵩)이 관직을 버린 후에 초현으로 돌아왔는데, 동탁의 난 때, 난을 피해 낭야(瑯邪)에 가 있었다가, 도겸에게 해를 입었는데, 그래서 태조가 동쪽으로 정벌하여 복수하려는 뜻이 있었던 것이다.
 

삼국지 무제기 우선 도겸이 조조네 일가족을 다 죽였다. 


(주 :《세어》에 이르길 「조숭은 태산군 화현에 있었다. 태조가 태산군 태수 응소(應劭)에게 영을 내려 자기 가족을 연주로 모시게 했는데, 응소의 병력이 채 이르기 전에, 도겸이 비밀리에 보낸 수천 기에 붙잡혔다. 조숭의 가족들은 응소의 영접인 줄 알고 대비를 하지 않고 있었다. 도겸의 병사가 이르자, 태조의 동생 조덕(曹德)을 문 가운데서 죽였다. 조숭이 두려워 하자, 먼저 그 첩을 나가게 했는데, 첩이 뚱뚱하여 문을 나갈 수 없었다. 조숭이 측간으로 달아나다 첩과 함께 해를 입고, 온 집안이 모두 죽었다. 응소가 두려워서 관직을 버리고 원소에게로 달아났다. 후에 태조가 기주(冀州)를 평정하니, 응소는 이때 이미 죽었다.」고 한다.]

 

세어 : 조숭이 태산에 살고 있었는데, 도겸이 태산을 침략하자 조조는 태산 태수 응소에게 자기 가족들을 데려오라고 시키나, 도겸이 먼저 보낸 군대에게 조조의 일가는 몰살을 당한다. 구원하지 못한 응소는 원소한태 도망갔다. 

 

[위요(韋曜)의 《오서》(吳書)에 이르길 「태조가 조숭을 맞이하며 보낸 물자수레가 200대였다. 도겸은 도위(都尉) 장개(張闓)를 보내 기병 200명을 거느리고 호위하며 전송하게 했다. 장개가 태산군의 화현과 비현 사이에 조숭을 죽이고 재물을 약탈하여, 이로 인해 회남(淮南)으로 달아났다. 태조가 그 허물을 도겸에게 돌리고 그래서 정벌한 것이다」라 한다.]

 

위요의 오서 : 도겸이 (우리가 비록 전쟁중이기는 하나 가족 건드리는건 좀 아니지) 라고 생각하면서 도위 장개에게 기병 200명을 보내서 조조한태 보내주게 했는대 장개는 그냥 조조 일가를 다 죽이고 재물을 약탈해서 달아났다. 

 

 『후한서』 「도겸열전」 도겸의 별장이 음평을 지키고 있었는데, 사졸들이 조숭의 재보에 눈이 뒤집혀 그를 습격하여 죽여버렸다
 

 『자치통감』 '전임 태위 조숭이 난을 피하여 낭야에 있었는데, 아들 조조가 태산 태수 응소에게 그를 맞이하게 하였다. 조숭의 치중은 100여 대였다. 도겸의 별장이 음평을 지켰는데 병사들이 조숭의 재보를 탐내 화현과 비현 사이에서 조숭을 엄습하여 죽이고, 아울러 어린 아들 조덕추도 죽였다.'

 

여러가지가 맞을 수도 있고 다 틀릴 수도 있지만

 

어쨰든 도겸이 조조 영지인 태산을 선빵쳐서 공격할때 도겸 휘하 병력에게 조조네 일가친척들이 몰살을 당한 것은 역사적 사실임 

 

뭐 도겸은 그새끼들 도적때들이라서 도둑질 하고 도망갔다고 말은 하지만 말이야 

 

그게 뭐 중요하겠어 

 

만 2년 정도 되는 기간에 벌써 5번을 침략해온 침략군이 자기 가족들이 있는 곳을 침공하자마자 가족들이 몰살을 당했어.

 

이거 어떻게든 하지 않으면 다음달에 모가지 짤리는건 자기가 된다고 생각하는게 당연한거 아니겠음? 

 

그래서 시작되는거지 

 

서주 대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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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가 도겸이나 원술 흑산적 흉노 등에 비해서 싸움을 잘하는 건 맞지만, 

 

그게 세력이 강하고 안정적이다 라는 뜻은 아니거든 

 

오히려 세력 자체는 조조가 원술이나 도겸 보다 훨씬 약해서 

 

삼국지 도겸전에서는 오서를 인용해서 이런 소리까지 나와 

 

[조공(曹公)의 부친이 도겸의 관할하에 있던 태산(泰山)에서 살해되니, 그 허물은 당연히 도겸에게 돌아갔다. 태조는 도겸을 토벌하려고 생각했으나 그가 강대한 힘을 가지고 있음을 알고 두려워했다. 그래서 그는 도겸의 주와 군의 군대를 일시에 해산시키도록 할 것을 상주했다.(중략) 신 송지의 의견으로, 이때 천자는 장안에 있었고, 조공이 아직 정무를 장악하지 않았을 때이다. 파병(罷兵)의 조서는 조씨로부터 나올 수 없다.]

 

삼국지는 조조 근본 사상을 가지고 조조를 위주로 쓰는 역사서임에도 불구하고

 

조조가 도겸이 너무 강대하여 두려워하고, 황제한테 상소문을 올려서 도겸을 탄핵해보려고 했다는 소문이 있었다고 할정도로 

 

그리고 삼국지 장막전을 보면 

 

[태조가 도겸(陶謙)을 정벌할 때, 자기 집안에 일러두길 "만약 내가 돌아오지 못한다면 맹탁에게 가서 의지하라"고 했다. 후에 돌아와 맹탁을 만나고서는 서로 마주하며 눈물을 흘렸다. 그 친밀함이 이와 같았다.]

 

조조가 [내가 죽으면 장막(맹탁)한태 의지해라] 라고 남은 가족들에게 유언을 남기고, 절치인 장막과 울면서 마지막 작별을 하고 출진을 해 

 

누가 봐도 사지로 떠나는 결사대임 

 

그리고 시작되는 서주 대효도

 

[가을, 태조가 도겸을 정벌해 10여 성을 함락시켰으나 도겸은 성을 지킬 뿐 감히 나오지 못했다.] 무제기 

 

[초평(初平) 4년 (AD 193)에 조조(太祖)는 도겸을 정벌하고 십여 개의 성을 공격하여 취했으며, 팽성(彭城)에서 도겸과 크게 싸웠다. 도겸의 군대는 패한 후 도주하였는데, 죽은 자의 수가 수만 명이나 되었으며, 사수(泗水)는 시체로 막혀 물조차 흐르지 않았다. 도겸은 물러나 담현(郯)을 지켰다. 조조는 양식이 부족하였으므로 병사들을 이끌고 돌아왔다.] 도겸전 

태조(조조)가 당도하여 사수(泗水)에서 남녀 수만 명을 갱살(坑殺)하니 이 때문에 강물이 흐르지 못했다. 도겸이 그 군사를 이끌고 원무(팽성 원무현)에 주둔하자 태조는 진격할 수 없었다. 군사를 이끌고 사수 남쪽을 따라 취려, 수릉, 하구의 여러 현들을 공격해 모두 도륙하니, 닭이나 개조차 다 없어지고 폐허가 된 읍에는 다시는 행인을 볼 수 없을 정도였다.
「조만전」


한나라 초평(初平) 4년, 조조가 도겸을 쳐서 팽성의 부양(傅陽)을 격파했다. 도겸이 담성(郯城)으로 물러나 지키니, 조조가 이를 공격하였으나 이기지 못하였고, 이에 되돌아갔다. (조조는) 지나는 길에 있던 추려(取慮), 저릉(雎陵), 하구(夏丘)를 함락하여 모두 도륙(屠戮)했다. 무릇 남녀 수십 만 명이 살육(殺戮) 당했고, 닭이나 개도 살아남은 것이 없었으며, 사수(泗水)는 이들의 (시체) 때문에 (막혀) 흐르지 못하였다. 이로 인하여 다섯 현의 성읍(城保=城堡)에는 사람의 종적이 다시는 없었다. 처음에 삼보(三輔)가 이각(李傕)의 난을 당하니, 백성들이 이리저리 떠돌다가(流移) 도겸에게 의탁하였는데 모두 (이 때) 다 죽었다(殲).[
『후한서』 「도겸열전」


[(초평 4년) 가을, 조조가 군사를 이끌고 도겸을 공격해 10여 성을 함락시키고 팽성에 이르러 크게 싸웠는데, 도겸군이 패하자 달아나 담현을 보전했다. 당초, 경(京, 장안), 락(雒, 낙양)에서 동탁의 난을 만나자 백성들이 유이(流移-유망, 유랑)하여 동쪽으로 나와 서주 땅(徐土)에 의탁한 자가 많았는데, 조조가 당도하여 남녀 수만 명을 사수에서 갱살하니 이 때문에 강물이 흐르지 못했다. 조조는 담현을 공격했으나 이기지 못하고 이내 떠나서 취려(取慮), 수릉, 하구의 여러 현을 공격해 차지하고 이들을 모두 도륙하니 닭이나 개조차 다 없어지고 폐허가 된 읍에는 다시는 행인을 볼 수 없을 정도였다.]
『자치통감』

 

서주 대효도를 하면서 어찌 어찌 이기기는 했지만 

 

청주병 같은 도적때들의 치명적인 단점인 공성전이 약한걸 극복하지 못하고 

 

또 도적때의 치명적인 단점인 군량 부족을 극복하지 못하고 후퇴하게 됨 

 

이때 조조의 진군 루트는 굉장히 특이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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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량이 떨어져서 후퇴한다는 군대가 왔던 길로 되돌아가는게 아니라 저 아래까지 몇백 km를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가 

아까 말한

 

[조조에게는 군량이 없었다.](매년 그렇게 원술군. 흉노족, 황건적, 흑산적, 도겸군 등이 미친듯이 차륜전 해가면서 처들어오는대 농사가 될리가 있나) 

 

====

 

  4년(193) 가을 조조는 양식이 부족하였으므로 병사들을 이끌고 돌아왔다.

홍평 원년(194)

여름 이때 명충이 일어났고 백성들은 굶주림에 고통을 받았으며, 여포의 군량미도 모두 떨어져 쌍방은 각자 군사를 퇴각시켰다.

겨울 10월 이 해에 곡식 한 섬은 50여 만 전(錢)에 달했으며,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는 지경이었다. 그래서 조조는 군리(軍吏)와 병사들 중에서 새로 소집된 자들을 고향으로 돌려보냈다. 
 

 

====

 

[조조의 주 병력은 황건적 투항병인 청주병이다]

 

[조조는 이번 전쟁에서 자기가 죽을 것을 각오하고 모든 능력을 다 쏟아부었다]

 

를 합쳐보면 답이 나오지 

 

서주 대효도는 단지 효도를 위한 학살만이 아니라,

 

굶어죽지 않기 위해서 식량을 빼았는 전쟁인 측면도 있는거임  

 

식량 뺏어가서 먹으려면 민간인이야 가져갈 밥을 축내는 기생충들이고 

 

개소닭들은 도축해서 먹어야 될 식량들이지 

 

조조가 도겸보다 쎈 이미지고 그래서 널널하게 잡을 수 있는 도겸같은 잡몹을 잡기 위해서 그런 대량 학살을 꼭 해야 하냐? 

 

라는 이미지가 있는건 사실인데, 

 

실제 역사에서 조조는 도겸보다 겁나 약한 세력이었고,

 

그대로 방어만 하고 있었으면 얼마 안가서 자기 아버지 처럼 모가지가 짤렸을거야 

모가지가 안짤리더라도 매계절마다 계속 차륜전 으로 쳐들어오는 원술진영 때문에 수확을 못해서 굶어죽었을 수도 있고 

 

아니면 배고파서 못참겠다 라는 130만 황건적들에게 반란 나서 죽었을 수도 있지 

 

조조의 서주 대효도가 잘한건 분명 아니지만, 

 

조조한태도 그렇게 라도 하지 않으면 나랑 내 영지랑 내 군대는 다 죽는다. 라고 하는 절박함이 있었다는거임. 

8개의 댓글

2022.12.28

댓글 잘 안쓰는데, 글이 정말 좋네요.

 

개드립 5년만에 2번째로 댓글답니다.

 

좋은 글 더 부탁드려요

 

화이팅.

4
2022.12.29

대효도 글제목부터 뻘하게 터졌네

1
2022.12.29

개추. 잘한 짓은 아닌데 유일한 짓도 이유없는 뻘짓도 아님

0
2022.12.29

개드립에서 보던 글 중에서 손꼽힐 정도다!!

 

내용정리, 적확한 근거, 인사이트까지 완벽하네

0
2022.12.29

도겸을 좆밥으로 보는데 생각보다 큰 세력에 본인도 꽤 이름 날렸던 군벌이고, 조조가 막 생긴 신생 세력이었다는걸 보면 당시 선택이 이해 안되는게 아님. 물론 저 선택이 후에 발목을 잡고 역사에도 오명을 남기게 되지만 전쟁이란게 뭐 그런거고, 서주 효도 아니었음 조조 세력도 커지지 못했을터니.

0
2022.12.29

도겸이 연의에서 여린 군자마냥 나와서 그렇지 군벌세력중 하나였음.

0
2022.12.29

서주대효도가 역설적으로 도겸이 존나게 강했다는 반증임 본진 털고 일꾼학살을 안하면 다음엔 지가 위험해질수도 있다고 판단한거

0
2022.12.31

솔직히 연의에서는 유비한테 서주 땅 넘겨주는 역할로 나오니까 순하고 인심좋은 할아범으로 묘사가 되긴했는데, 정사 기록으로는 그냥 양아치들 중에 하나긴했음. 그리고 개인적으로 유비가 서주땅 먹은 것도 도겸이 순순히 넘겨준 것이 아니라 이미 유비군이 주둔하다보니 거의 반강제로 강탈한게 아닌가 싶기는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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