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왜 천주교는 박해받을 수밖에 없었는가(feat. 흥선대원군)

 

 

 

0. 들어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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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사키 여행을 준비하면서 알게된건데 여기도 가톨릭(천주교)에 대한 대규모 탄압이 있더라고

한국에서도 흥선대원군이 가톨릭을 탄압한 병인박해를 학교다닐 때 배웠던 기억이 있는데 말이야

중국이나 한반도, 일본에서 모두 근대시기에 공통적으로 가톨릭을 때려잡았는데 왜 이런 현상이 발생했을까 궁금했어

현대의 시각에서 추측하자면 당시 가톨릭은 조상에 대한 제사를 부정했기에 사람들이 윤리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을거라고 생각하기 쉬워

뭐 맞긴한데 너무 단순하게 바라보는거고 당시 상황을 조금 알아보니 탄압이 납득이 가더라

결론부터 말하자면

가톨릭은 유럽 제국주의의 첨병이었다

한국에서는 개신교와 달리 가톨릭에 대한 이미지가 상당히 좋다고 생각해

당장 나조차도 교회라고 하면 뭔가 부정적인 이미지만 생각나지만 성당이라고 하면 좋은 이미지만 떠오르거든

뭐 가톨릭 교인들은 싫어하겠지만 이건 가톨릭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근대시기 동아시아를 가톨릭이라는 요소로 바라보는 글임을 미리 밝히는 바야

나가사키 여행을 준비하면서 발생한 나의 의문을 해결하고자 조사를 했고 그 과정을 글로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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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당시 유럽의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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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은 이른바 대항해시대를 맞아서 활발하게 외부로 진출하던 시기였어

주로 아메리카 대륙이나 인도, 동남아시아 지역으로 '진출'(식민지건설 or 무역)했지

특히 바다로 나가기 좋은 위치였던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가장 강력했는데 그러다보니 서로 부딪히는 경우가 많았어

땅따먹기하기에도 바쁜데 굳이 유럽세력끼리 힘낭비하고 싶지 않았던 양 국은 당시 가톨릭 세계에서 최고권위자인 교황에게 중재를 요청하게 돼

교황은 선 하나를 긋고 브라질을 제외한 아메리카는 스페인, 브라질 및 그 외 전체는 포르투갈의 것이라고 선언해(*토르데시야스 조약)

언뜻보면 너무 포르투갈에게 유리하다고 생각할 수 는 있지만 사실 그렇지는 않은게,

당시에는 질병으로 인해 아프리가 대륙으로 진입할 수가 없어서 해안 일부만 사용가능했고,

 

중동의 문명국은 포르투갈의 국력으로는 무역만 가능한 지역이었어

또 오세아니아는 아에 몰랐던 시절이었으니 실질적으로 포르투갈은 브라질, 인도, 동남아시아, 동북아시아의 해안 일부만 접근이 가능했던 거지

그래서 스페인과 포르투갈 모두 만족하는 그런 조약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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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영국, 네덜란드, 프랑스도 해외로 진출하면서 문제가 발생했던거야

영국이나 네덜란드는 가톨릭 세력이 아니기에 교황 무시하고 맘대로 했지만 가톨릭 국가였던 프랑스로서는 교황이 그은 선을 무시할 수 없었어

또한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동시에 공략하기에는 부담스러웠기에 포르투갈 영역만을 목표로 삼고 아시아로 진출하고자 했지

그렇다면 어떻게 포르투갈을 몰아낼까?

교황청 오피셜로 보장받은 포르투갈을 몰아내기 위해서는 프랑스가 확실한 명분이 필요한 상황이었어

2. 당시 아시아의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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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은 이미 인도 고아, 중국, 일본 나가사키 등에 안정적으로 진출한 상태였어

왜냐하면 포르투갈은 현지문화를 어느정도 인정했고 따라서 동아시아의 조상에 대한 제사가 우상숭배가 아니라는 입장이었거든

마테오 리치 등의 선교사들은 중국어를 배우고 현지문화를 익혔고,

무엇보다 청나라에 새로운 문물과 기술을 제공하고 러시아와의 갈등을 중재하는 등 청나라에 많은 도움이 되었어

청으로서는 가톨릭이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쓸모가 많았고 유교, 제사, 중화사상을 인정했기에 어느정도 우대해주고 있었지

그리고 프랑스는 이런 점을 파고들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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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은 우상숭배를 금지하는데 포르투갈은 제사를 인정하네? 이거 완전히 우상숭배하는 이단아니냐?"

우상숭배 논란은 약 50년 넘게 지속되다가 결국 1715년 교황청의 공식적인 결론이 나와

 

"조상에 대한 제사는 우상숭배가 맞다, 포르투갈 이단놈들아!"

by 클레멘스 11세의 엑스 일라 디에 칙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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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그래도 포르투갈의 국력이 약해지고 있었는데 교황 오피셜로 '너 이단' 해버린거야

이때를 기점으로 인도나 동아시아에서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가 포르투갈을 대체하기 시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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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1차 목표는 베트남이었어

당시 포르투갈의 선교로 인해 베트남에는 이미 30만이 넘는 교인들이 있었는데,

프랑스는 같은 가톨릭임을 내세우며 같은 신자끼리 협력할 것을 제안해

무슨 협력이냐고?

'베트남의 가톨릭 교도들은 프랑스군에 협력하여 가톨릭 사회를 만들어라'

현지 가톨릭 교인들의 지원으로 프랑스는 베트남 남부를 쉽게 정복했고,

이를 발판으로 프랑스령 코친차이나(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를 차지하게 되는거지

기존의 포르투갈의 무역, 선교로 대표되는 가톨릭과는 다르게 군대를 내세우는 프랑스의 가톨릭은 그 당시 동아시아에 큰 충격을 주었어

이미 청나라나 조선, 일본 등에는 가톨릭 세력이 있었는데 선교사들이 프랑스 선교사로 교체되고 있는건 마찬가지였거든(* 마카오 제외)

또 교체된 프랑스 선교사들은 교인들에게 아래와 같이 말하고 있었어

'곧 프랑스 함대가 올 것이니 준비하라. 가톨릭 사회를 만들어 주님을 기쁘게 하라'

실제로 일본 나가사키에서는 이에 따라 반란이 일어나기도 했고,

이때부터 동아시아의 각 국에서는 가톨릭 = 외세와 결탁해 나라 망치는 세력으로 바뀌기 시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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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프랑스 선교사가 유교나 제사, 중화사상을 인정하지 않자 중국에서 죽거나 추방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때마침 청에 전쟁을 선포하려던 영국과 손을 잡고 2차 아편전쟁을 통해 힘으로 가톨릭을 공인받았어

베이징조약(1860)을 통해 청나라는 공식적으로 몰락했고 중화사상에 젖어있던 조선과 일본은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충격을 받았을거야

왜냐하면 베트남... 청나라... 그 다음은 대충 조선이랑 일본 아니겠어?

이런 상황에서 조선, 당시 흥선대원군은 서구세력에 대해 발작에 가까운 쇄국정책을 실시했고,

특히 서구세력의 첨병인 가톨릭이 탄압의 대상이 된거야

3. 당시 조선의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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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에서 나오듯이 사실 흥선대원군 이전부터 조선은 가톨릭을 탄압했어

이미 여러번 선교사와 교인들을 처형했는데 이는 유교적 질서(신분, 제사 등)를 거부하는 반사회세력이었기 때문이야

다만 여기에서는 병인박해에 대해서만 다룰거야

왜냐하면 외부적 요소와 내부적 요소가 겹쳐서 가장 크게 발생한 사건이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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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외부적으로는 가톨릭이 공식적으로 제사를 부정한 상태였고,

기존 포르투갈 세력에서 동아시아를 식민지화하려는 프랑스로 대체된 상태였어

포르투갈과 달리 프랑스는 조선에 대해서도 관심이 있었다는 말이야

다만, 흥선대원군이 처음부터 가톨릭에 적대적이었던 아니야

우선 자기네 집안에서조차 교인들이 있었기에 낯설지도 않았고,

무엇보다도 흥선대원군은 가톨릭보다는 안동김씨같은 세도가문부터 때려잡아야 했어

근데 가톨릭세력은 조선에서 지지하는 정치세력이 없으니 잘만하면 왕권강화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하는 기대도 있었을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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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아편전쟁의 결과로 연해주가 러시아로 넘어가면서 조선은 러시아의 남하를 막아야했어

러시아를 단독으로 막기에는 너무 버거웠으니 가톨릭세력을 통해 프랑스가 개입해서 막아주지 않을까?하는 계산도 있었지

즉 흥선대원군은 아래와 같은 이유로 가톨릭을 봐주고 있었어

  1. 왕권이 약하고 안동김씨 등 세도가문이 강력한 상황에서 가톨릭 세력은 왕권강화에 도움이 될 지도 모른다

  2. 프랑스를 통해 러시아의 남하를 견제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3. 가톨릭을 다시 건드렸다간 서방세력과 쓸데없는 분쟁을 낳을 수도 있다

따라서 흥선대원군은 가톨릭에 대해 적대하지 않으면서 묵인하고 있었는데 그의 기대와는 상황이 다르게 흘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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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러시아 견제를 위한 프랑스와 협력은 거절당했어

주교의 말처럼 상황이 안된 걸 수도 있지만 프랑스가 조선을 외교상대로 보지 않았을 수도 있지, 자세한 내역은 알 수 없어

다만 확실한 것은 흥선대원군에게 조선 내부의 가톨릭 세력을 봐줘야할 이유가 하나 사라졌다는 거야

그리고 러시아는 아프간에서 영국과 'The great game'을 하고 있었기에 조선까지 신경쓸 수가 없었어

영국도 동북아에서는 거문도점령을 통해 러시아 견제를 최소한으로 하고 있었기에 조선으로서도 당분간 러시아를 잊을 수 있었지

러시아의 상황을 알고 있는 프랑스로서는 동북아에서 조선을 도와 러시아를 견제하는게 실익이 없었던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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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흥선대원군은 이것을 프랑스나 영국 등 서방세력이 조선에 관심없다는 신호로 받아들였고,

마침 조선 내부적으로는 가톨릭을 때려잡아야한다는 정치적 압박이 커지고 있었어

이런 상황에서 흥선대원군이 계속 가톨릭 탄압에 대한 요구를 거부한다면 정치적 리스크만 짊어질텐데 정치가라면 그럴 이유가 없었던 게 아닐까?

이유야 어찌되었든 조선은 다시금 가톨릭을 탄압하면서 약 8,000명의 선교사와 교인을 처형하거나 추방했고

우리는 이를 병인박해라고 부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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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프랑스는 이에 대해 해군을 보내 조선을 공격하는 '병인양요'로 대응했어

다만 프랑스도 베트남과 중국에서 계속 병력이 필요했기에 많은 병력을 보낼 수는 없었고 최소한의 병력만 투입해

이 최소한의 병력은 조선군과 전투를 치루면서 생각보다 많은 피해를 입었고 따라서 더이상 진군하지 않고 돌아갔는데

조선에서는 프랑스와의 전투에서 승리했다고 인식했고 이에 따라 쇄국정책이 더욱 강화되는 계기가 되었어

물론 가톨릭 세력이 서양놈의 앞잡이라는 인식이 확신으로 바뀌는 계기이기도 하고 말이야

이후 조선은 프랑스와 정식으로 수교할 때까지 약 20년 넘게 가톨릭세력을 때려잡았어

프랑스가 그렇게 쉽게 물러난 것은 인도차이나와 청나라를 관리하고 정리하는데 많은 병력이 필요하여 조선으로 보낼 군사적 여유가 없었고

조선을 공략하는데 성공한다해도 이익은 적은데 현지 가톨릭 세력의 지원이 없었기에 공략에 들어가는 부담이 컸기 때문이야

즉, 프랑스로서는 굳이 조선에 집중하느니 차라리 베트남과 중국에 집중하는 편이 이득이었다는 말이야

4. 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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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을 비난하지만 솔직한 생각으로 내가 그 자리였다면 달랐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정치지도자로서 쇄국정책은 명백한 패착이었고 그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다만 인간적으로 어느정도 이해는 간다, 그도 초인은 아니고 그저 한 명의 인간이었으리라

또한 가톨릭 교인들을 비난할 생각도 없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조선의 가톨릭 교인들은 베트남이나 일본과는 달리 프랑스에 협력하거나 반란을 일으키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조선 외에도 동아시아에서 가톨릭은 많은 영향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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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카오에서는 포르투갈이 끝까지 프랑스에 저항하는데 성공했기에 지금까지도 포르투갈의 흔적을 볼 수 있다

교황으로부터 파문당하고 이단이 된 포르투갈 선교사는 무슨 기분이었을까

평생 믿고 헌신하던 세계에서 추방당하고 같은 가톨릭교도들이 이단이라고 자신을 사냥할 때의 그 감정은 나로서는 상상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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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에서도 가톨릭의 영향은 흥미롭다

프랑스에 협력한 가톨릭 교인들은 프랑스령 베트남에서 정치세력으로 성장했고 이후 미국 치하의 남베트남 정권까지도 계속 살아남았다

다만 남베트남의 가톨릭 정권은 부패하기도 했지만 프랑스 - 미국같은 외부세력에 빌붙어 나라팔아먹는다는 이미지가 있기도 했다

그래서 베트남 전쟁 당시 인민들로부터 그렇게 지지를 받지 못한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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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가장 흥미로운 것은 일본의 나가사키다

일본은 워낙 교회나 성당이 없는 나라인데 유독 나가사키만큼은 성당이 많기 때문이다

물론 나가사키의 가톨릭은 1637년 시마바라의 난 이후 중앙정부로부터 철저하게 짓밟혔다

또한 숨겨진 가톨릭 교인들을 찾기위해 후미에까지 했지만 가톨릭을 완전히 근절할 수는 없었다

이때 살아남은 가톨릭 교인들은 선교사없이 숨어서 신앙생활을 하게 된다

포르투갈이 나가사키에 가톨릭을 전파하고 이후 선교에 관심없는 네덜란드를 거쳐 프랑스가 올 때까지 250년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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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일본에서 가톨릭 교인이란게 들통나면 사형이었기에 그들끼리 숨어서 신앙을 이어왔는데

프랑스가 나가사키로 진출하고 일본정부로부터 성당을 짓는 것을 허락받아 오우라 천주당을 지었다

프랑스 신부로서는 이제 성당 지었으니 포교해야지 하는데 갑자기 자신을 크리스챤이라고 자처하는 현지인들이 몰려든 것이다

이는 당시 가톨릭 세계에서 기적같은 일이었고 교황청에 즉시 보고되었다

현지 교인(카쿠레키리시탄)에게도 기적같은 일이었던게

가톨릭인걸 들키면 죽기에 몇 백년이나 숨어서 믿어왔는데 어느날 갑자기 성모 마리아상이 있다는 소문이 돈다

반신반의하며 성당에 가봤더니 진짜로 마리아상이 있고 신부까지도 있다

그들의 신앙은 공인받은 것이다, 250년만에

어떻게 그 오랜시간동안 신앙을 지킬 수 있었던 걸까

종교란 참 강력한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러한 역사를 눈으로 보고자 나가사키로 가고자 한다

4줄요약

1. 근대시기 동아시아에서 가톨릭은 프랑스의 가톨릭이었으며, 침략의 선봉장 역할을 수행했다

2. 베트남, 중국, 일본, 조선 순으로 프랑스의 종교를 앞세운 침략은 성공했다

3. 조선의 가톨릭 세력은 프랑스에 협력하지 않았다

4. 교황청은 20세기말 조건부로 제사가 우상숭배가 아님을 인정했다

 

원본

25개의 댓글

2022.11.29

이번에 나오는 영화도 봐야겠어

1
2022.11.29
@독거노인

무슨 영화나옴?

그리고 글 어땠어? 쓰면서도 너무긴가싶은데 물어볼데가없네

0
2022.11.29
@골방철학가

탄생이라고...김대건 신분 일대기 영화나오더라고.

글 안길어. 충분히 읽을만해

1
2022.11.29
@독거노인
0
2022.11.29

잠깐 공부하니까 조선의 박해의 경우엔 정치싸움의 패로 쓰이고(신유박해) 토착 문화와 트러블도 있었으며(대표적인건 제사를 안지냄) 백서 사건 등으로 탄압받았고 일본의 경우엔 들어온 천주교인 중에 노예상과 결탁해 영주가 그들에게 백성을 팔고 부와 외세의 것을 축적해 막부가 이의 심각성을 느끼고 대대적으로 탄압했다고 들었어 물론 조선인들 중 일부로 해외로 팔려가 멀리 유럽에서 발견됐다고 기록도 있고

1
2022.11.30
@설득력

ㅇㅇ 하나의 사건에는 하나의 원인만잇지는 않지. 이 글은 그냥 가톨릭이라는 이슈로만 바라본거야

0
2022.11.29

아브라함계 유일신 종교는 갈등을 일으킬수 밖에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음. 일단 여호와 이외의 신을 절대로 인정 안하는 교리에서 토착신앙하고 무조건 갈등을 유발함.

 

따라서 식민지 첨병으로 아주 유용함. 천주교 침투, 갈등유발, 토착민이 못참고 선빵, 빌미로 쳐들어 가서 식민지화

2
2022.11.29

요즘 한국 천주교가 성지만든다고 들쑤시는거 보면

하느님께 감사할게 아니라 세도가랑 흥선대원군한테 고맙다고 해야할거같어

특히 황사영이 성지 만든거랑 심심하면 제주도에 여기저기 껀수 찾는거 보면 진짜 역겨움

3
2022.11.30
@Heave

이미지 세탁 자체는 잘한듯함. 뭐 시대마다 다른거겟지만

0
1
2022.11.30

절반은 황사영때문이지ㅋㅋ 최근에 황사영 시복한다던데

이건 좀 아니지 않나

2
2022.11.30

흥미롭거 읽었다.

1
2022.11.30

재밌게 읽었어!!

1
2022.11.30

시마바라의 난은 프랑스가 아시아 진출하기 한참 전에 일어난 일이라...... 포르투갈 선교사들이 만들어 놓은 일본내 가톨릭 세력의 마지막 저항으로 봐야지.

 

가톨릭 신자로써 세례받으려고 교리공부할 때 조선시대 교회사를 살짝 접했는데, 다른 아시아 국가와는 달리 조선인들은 외국선교사가 오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성경을 읽어보고 북경까지 가서 영세를 받고 신부님 파견을 요청했더라. 사실 기독교 교리가 논어의 공자님 말씀과 비교해도 황당할 정도인데 그걸 그렇게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이유가 뭘까 생각해봤는데, 기독교는 적어도 만인이 평등하게 하느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고 하지만 논어 시대로부터 많이 변한 성리학 세계관과 전근대사회의 인습이 결합된 조선의 신분제 사회는 그런 솔루션을 제공하지 못해서 그랬던 게 아닌가 싶다.

 

물론 나중에 황사영 백서 같은 사건도 있고 개국후 제주도에서 가톨릭 신자들의 횡포로 일어난 이재수의 난 같은 사건을 보면 한국 가톨릭이 초기에 제국주의와 결합할 가능성이 없었다고 볼 수는 없는데, 일단 조선인들이 좆같은 조선사회에 질려서 먼저 기독교를 받아들였고 나중에 기독교를 내세운 서구열강이 아니라 신도잡신들을 내세운 일본한테 먹히는 바람에 한국에서는 가톨릭 이미지가 좋아진 것 같다.

3
2022.11.30
@charlote

ㅇㅇ 흥선대원군이나 지배층의 입장에서는 천주교는 때려잡아 마땅하지만 또 당시 민중입장에서는 다르니깐. 지금은 교회보다 성당이 이미지가 좋지만 가톨릭의 부패를 혐오해서 나간게 교회라는걸 생각하면 지속적으로 내부정제가 중요하지않나싶음. 어떤 종교든 힘이 약해지면 이미지가 좋아진다고 생각해

0
2022.11.30
@골방철학가

천주교를 처음 받아들인게 진짜 박해받던 기층민중도 아니고 나름 성리학 배울만큼 배워서 지배하던 양반들이 먼저였다는게 어찌 보면 당연한거지만 그 양반들 사이에 침투하는데 성공했다는 데서 그만큼 당시 성리학 기반 사회체제가 답이 없었는가 싶음

0
2022.11.30
@charlote

그 양반들도 주류가 아니고 밀려난 양반위주라 주류계층아니여. 남인이 천주교 많이배웟는데 많이 밀려난 부류라서 메인이된거. 정약용가문같이

0
2022.11.30
@골방철학가

나도 아는데 밀려난 양반이라도 농민들한테는 떵떵거렸겠지. 정약용 집안만 보면 그 형제들이 정치투쟁에서 패배해서 그렇지 원래 밀려난 가문도 아니고. 난 교리교육 받으면서 대체 천주교의 어떤 점이 조선후기 유학 엘리트들에게 어필했는지 정말 궁금했음.

0
2022.11.30
@charlote

천주교를 통해 들어온과학이나 합리성이지 않을까ㅋㅋ

0
2022.11.30
@골방철학가

처음에는 서양문물 공부한다고 학문으로 접근했다가 종교에 홀라당 빠져서 믿게 된건데, 괴력난신 논하지 않고 나름 정교한 성리학 공부할만큼 한 사람들이 왜 이런 허황된 교리를 믿게 되었는지 궁금하단 말이지.

 

가톨릭 신자인 나도 미사(분기에 한 번정도 가지만) 참석해서 사도신경이나 외우는 수준으로 무염시태나 삼위일체 교리를 믿는데 이에 비하면 논어에 나오는 공자 말씀은 얼마나 합리적인지 모르겠다. 다만 복음서의 예수님 가르침이나 행적은 공자랑 유사한 가르침도 많지만 나름 혁명적인 면도 있어서 그거에 반한게 아닌가 싶기도 하네.

0

정독했습니다. 잘읽었습니다.

1
2022.11.30
[삭제 되었습니다]
2022.11.30
@잉클링

카쿠레키리시탄의 유산임 이번에 가서볼거

0
[삭제 되었습니다]
2022.11.30
@구화지문설참신도

적어도 흥선대원군은 베트남의 프랑스 식민지화와 그 과정에해 알고있었음. 다만 선교사들은 단순히 종교적인 역할 외에도 신문물과 기술을 전파하고 주변 유럽세력의 정보와 외교적 기능까지고 제공해서 가능한 내버려두는편. 선교사가 정찰도 수행하지만 실보단 득이많으니깐..

 

학자들이 구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흥선대원군은 차이를 몰랐거나 그게그거라고 생각한듯함. 이건 내 추측이지만 당시 대원군은 유학이 국가와 시기마다 조금씩 다르듯 서방종교도 그런식으로 차이가 난다고 생각하지않았을까. 다만 이에 대해서는 나도 잘모름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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