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지식

왜 살아야 하는가 - 도스토옙스키

총 10장으로 이어져 있는데

10장을 한꺼번에 리뷰하면 다른 사람들한테도 고봉밥이고 나한테도 고봉밥이라서

찬찬히 리뷰해보려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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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7 궁극의 의문이란 삶과 죽음의 의미를 다루는 의문을 가리킨다. 이는 우리 존재의 핵심 파고드는 가장 근원적인 질문이라는 점에서 궁극적일 뿐만 아니라 가장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라는 점에서도 궁극적이다

 

P 8 궁극의 의문을 이해하는 한 가지 방법은 ‘목적’ 측면에서 의문을 이해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삶, 온 우주, 그밖의 모든 것을 바라보면서 이 모든 것이 결국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어떤 목적을 수행하는지 물어볼 수 있다 

 

P10 만약 우리가 죽기 위해 살고 우리 같은 존재가 살 수 있도록 죽는 것이라면 그처럼 계속 반복되는 삶과 죽음의 순환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것일까? 만약 삶이 죽음으로 이어지고 죽음이 삶으로 이어지는 것이라면 ‘이 모든 과정’ 자체는 어디로 이어지는 것일까? 살고 죽는 일의 목적은 무엇일까? 우리는 우리가 사는 이유와 우리가 죽는 이유 각각은 알지라도 우리가 ‘살고 죽는’ 이유는 아직도 알지 못한다 

 

P13 다시 말해 우리는 다른 무언가가 아니라 그 자체를 위해 존재하는 것(다른 무언가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의심의 여지 없이 ‘좋은’ 것)을 필요로 한다. 그처럼 내재적인 목적(그 자체가 곧 목적인 수단)만이 우리 인간의 죽음에 대한 도덕적 반감을 누그러뜨리거나 흐트러뜨릴 수 있을 것이다.

 

P14 표현은 중요하다. 언어 표현에서 사상을 완전히 분리해낼 수는 없기 때문이다. 표현은 의미를 드러낼 뿐만 아니라 의미를 창조하기도 한다. 표현은 이미지를 불러일으키고 이야기를 둘려줌으로써 세계를 이해하도록 돕기 때문에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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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44 

이러한 살인이나 자살 행각이 특이한 점은 딱히 절박한 이유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빚을 갚을 수 없어서, 공개적으로 모욕을 당해서, 죄책감으로 만신창이가 돼서,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서 목숨을 끊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개인적인 환경과는 무관하게 더 이상 살아가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해서 목숨을 끊는다. 마찬가지로 그들이 다른 누군가를 죽이는 이유 역시 더 이상 죽이지 않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기 때문이다. 

 

….

대부분의 경우에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그들이 살인을 저지를 수 있기 때문에 그리고 그들이 살인을 저지를 수 있다는 사실을 (자신에게 혹은 타인에게) 증명해야 하기 때문에 살인을 저지른다.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주장한다. 살인은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자 독립을 선언하는 것이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을 죽임으로써 자신들이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지배하고 구속하는 도덕 법칙으로부터 독립돼 있음을 선언한다.

 

P146

그러기 위해 우리는 모든 것이 괜찮다는 사실을, 심지어 악조차 괜찮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 즉 우리가 좋다고 생각하는 것과 나쁘다고 생각하는 것 사이에는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다는 뜻이다. 모든 것이 괜찮다는 말은 무엇도 다른 무엇보다 더 좋거나 나쁘지 않다는 사실을, 그 무엇도 딱히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인류가 이런 사실을 받아들일 때 세상은 끝을 맞이할 것이다. (아마도 역사 자체가 선을 가져오고 악을 물리치려는 끊임없는 투쟁으로 여겨지기 때문인 것 같다. 따라서 선과 악 사이에 아무런 차이가 없다면 더 이상 투쟁할 이유나 대상도 없어지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고 나면 세상은 구원받을 것이다. 다만 기독교 신앙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신인 인간the God-man”에 의해(즉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인간인 신the man-god"에 의해 구원받을 것이다. 우리 자신의 해방된 자아에 의해 구원받는다는 뜻이다.

 

P148 

도스토옙스키는 물론 키릴로프에게 있어서 신이란 부활을 가능하게 하는 존재다. 우리 가하는 어떤 일도 잊히지 않을 것이라는, 선한 자는 보상을 받고 악한자는 처벌을 받을 것이라는 어떤 죽음도 끝이 아니라는 확신을 주는 존재다. 인간의 불멸성은 신의 존재와 연결돼 있다. 인간의 불멸성 없이는 무엇도 말이 되지 않는다. 어차피 모든 것이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므로 우리가 무엇을 하든 안 하든 아무 상관이 없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은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 신의 존재는 '도덕적’필연성을 지닌다.

 

P149

하지만 신이 없는, 따라서 근본적으로 원칙이 없는 세계에서 진정한 공동체는 존재할 수 없다. 는 존재할 수 없다. 악마는 사람들이 한데 모일 것이라고 말하지만 사실 그들은 더욱 사이가 멀어질 것이며 서로 완전히 분리될 것이다.'완전히 합리적'이라는 새로운 세계에서는 사람들이 각자 자기 일만 신경 쓸 것이며 자기 이후의 일은 될 대로 되라는 식일 것이다. 여전히 자신의 행복에는 관심이 많겠지만 더 이상 다른 사람의 행복에는 관심이 없을 것이다. 관심을 가질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도덕적으로 유의미한 집단으로서의 인류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P156

결국 라스콜니코프가 원한 것은 자기 자신의 육체와 욕망”을 충족시키는 것이 다였다" 라스콜니코프가 온갖 이론과 망상을 펼쳤음에도 실제로 그를 움직인 것은 삶에 대한 목마름이었다는 사실은 역설적이게도 그를 어느 정도 구원에 이르게 한 것으로 그려진다. 아직 모든 것을 잃어버리지는 않았다는 희망을 품게 한다. 삶에 대한 라스콜니코프의 갈증은 그를 인간으로 만든다.

 

P160

도스토옙스키는 이성보다 직감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우리가 삶을 사랑하는 한 우리는 완전히 길을 잃지 않을 수 있다. 오히려 삶을 사랑하는 것은 의미 있는 삶, 즉 서로를 이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인간으로 여기는 삶에 이르는 최선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P162

지하인은 계산식에서 빠져 있는 가장 이익이 되는 이점을 가리켜 “욕구”라 부른다. 욕구는 이성보다 훨씬 더 우월하다. 이성이 그저 겉만 건드리는 반면 욕구는 우리 존재의 깊숙한 곳까지 닿으며 우리가 무엇인지 정의하기 때문이다.

 

….

지하이든 영리한 일이든 어리석은 일이든 우리가 원하는 바를 소망할 우리의 권리를 요구하고 옹호한다. 그런 권리를 가리켜 멍청해질 권리라 부르자. 이런 권리를 가지는 것 …

심지어 그것이 우리에게 명백히 손해가 되며 우리 이성이 이익에 관해 내린 가장 합리적인 결론과 상충된다 할지라도 이익이 된다. 어떤 경우든 그것은 우리에게 가장 주요하고 소중한 것, 즉우리의 개성과 인격을 보존해주기 때문이다."33 우리 안에 내재한 욕구, 즉 삶을 향한 의지는 너무나 강력하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겉으로 표출되기 마련이다. 설령 온전한 행복을 포기해야 할지라도 인간의 본성은 완벽히 합리적이기를 거부한다. 결국 우리는 행복 보다많은 것을 바라게 된다. 만약 우리의 삶에 그 이상의 무언가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별다른 이유도 없이 삶을 벗어나고 파멸에 이르고자 할 것이다. 우리는 사회주의적인 유토피아에 살기 위해 만들어진 존재가 아니다.

 

(행복을 포기하더라도 하고싶은 걸 하는 게 더 큰 삶의 목적이다, 체계를 위해 우리는 존재하는게 아니다)

 

P164

인간은 참으로 “우습게 생겨 먹은" 존재다. 우리는 목표를 달성하기를 바라지만 아직 목표가 달성되지 않은 상태를 좋아한다. 2곱하기 2는 4'도 좋지만 2 곱하기 2는 5도 때로는 가장 사랑스러운것”이 될 수 있다." 우리가 원하고 사랑하는 것은 행복이 다가 아니다. 우리는 때때로 고통 역시 겪어야 한다. 고통은 의심, 부정, 파괴,혼돈 등 “의식의 유일한 근원”이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완벽은 어울리지 않으며 바람직하지도 않다.

 

P165

우리는 삶에 너무나 익숙한 나머지 "이따금 진짜 삶을 산다는것'에 일종의 혐오감을 느끼며 따라서 그 사실을 떠올리기조차 힘들어" 한다. 우리는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누군가 말해주지 않으면 혼란스러워한다. 더 이상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을 증오해야 할지, 무엇을 존중하고 무엇을 경멸해야 할지” 모르게 된다" 인간성을, 육체를, 감정을 부끄러워하게 된다. 우리가 실패작이라는 사실을 거리낌 없이 받아들인다.

 

P167

도스토옙스키의 그리스도가 원하는(또 본으로 남기는) 것은 자유의지에서 나온 사랑, 비이기적인 사랑, 어떤 보상도 기대하지 않는 사랑, 모든 살아 있는 생명에 대한 구체적이고 개인적인 사랑이다. 한 마디로 지극히 비경제적인 종류의 사랑이다.

 

 

 

 

P168

추상적인 의미에서 인간에 대한 사랑은 가능할지 모르지만 각각의 인간을 개인적으로 알게 되는 경우의 사랑은 대부분 순식간에 사라진다. 사실 사랑은 어느 정도 거리를 두어야만 가능하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사랑은 인간이 소화할 수 있는 사랑이 아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닫혀 있기 때문에, 즉 다른 사람들이 어떤 고통을 얼마나 심하게 겪는지 결코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그리스도가 원하는 대로 사랑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P170

만약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진다면 그것은 우리가 사랑하는 법을 잊었기 때문이다. 생각은 지나치게 많은데 삶과 사랑은 지나치게 적기 때문이다. 우리는 서로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극도의 외로움을 느끼면서 삶을 살아간다. 실제로 서로 유대를 맺는 데 성공하더라도 한순간일 뿐이며 금세 서로에게서 멀어진다.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끊임없이 사랑을 찾으려 애쓰지만 제대로 찾지 못하며 설령 사랑을 찾더라도 지키지 못한다.그 후로 행복하게 살았다는 식의 이야기는 등장하지 않는다. 사랑은 연약하고 믿기 힘들며 끊임없이 변화한다. 이성 간의 낭만적인 관계는 온갖 오해로 가득 차 있으며 서로에 대한 불신으로 손상된다. 배신은 흔한 일이다.

 

P172

사람들이 사랑하기만 한다면 세계는 달라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문제는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가다. 인간은 어떤 식으로 인간 사랑하는 능력을 되찾아야 한다. 사랑 없이는 무엇도 중요하지 않는다

….

인간은 삶을 살아야지 삶을 꿈꿔서는 안된다.

 

P175

이런 생각 후에 화자는 잠에 빠져 꿈을 꾼다. 꿈속에서 화자는 자신에게 총을 쏘는데, 계획한 대로 머리를 쏘는 게 아니라 심장을 쏜다. 그러고는 땅에 묻힌다. 그러자 불가사의한 생명체가 나타나 그를 우주로 데려간 다음 평행세계에 있는 쌍둥이 지구를 보여준다. 그곳에는 타락하기 전의 인간들이, 즉 죄 없고 아름답고 사랑으로 가득 찬 인간들이 행복하게 살고 있다. 그곳은 지상낙원이다. “그들은 무엇도 갈망하지 않았으며 평온해 보였다. 그들은 우리와 달리 삶에 대한 지식을 갈구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삶이란 그 자체로 완전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은 더 고등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 지식 없이 사는 법을 아는 것이다. 또한 그들은 모두 서로를 사랑한다. “그것은 완전하고 보편적인, 상호 간의 사랑이었다.” 우리 모두가 내심 갈망하고 있는 종류의 사랑인 셈이다. 화자는 행복해한다.

 

P177

그러기 위해서는 내면의 변화가 요구된다. 모든 인간이 형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을 실제로 인정해야 하낟. 그렇게 할 때에야 인류는 하늘왕국을 되찾을 수 있다.

 

P178

연민이란 “전 인류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어쩌면 유일한 존재 법칙”이다. 오직 사랑만이 우리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며 우리의 삶을 이해할 수 있게 만든다.

 

P189

우리 모두가 의존적이고 취약하며 겁이 많고 사랑에 굶주려 있다. “모두가 ‘연약한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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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해한 내용

도스트예프스키에게 살인은 할 수 있기 때문에 저지른다 (자신을 살인하는 자살도 마찬가지다)

가장 죄악시 되는 살인이 별거 아닌 것처럼 실은 악도 선도 그저 받아들일 수 있고 괜찮다.

인류는 너무 오랫동안 선과 악을 구분하며 끊임없이 투쟁을 했다.

그런데 선과 악이 큰 차이가 없고 투쟁할 필요없다면 우리는 자유롭다(선과악에서 자유로울 필요가 있다)

선과 악에서 자유롭다면 우리에게 중요한 건 삶 그자체다.

삶을 사랑할 때 진정한 인간을 존재할 수 있게 된다.

우리 존재의 깊숙한 곳의 삶을 사랑하려면 욕구를 이해해야 한다

욕구는 영리하거나 어리석거나 그런 가치판단이 아니라 그냥 하고 싶은 걸 하는 것이다

(이게 이득이 되든, 손해가 되든, 행복이되든, 불행이 되든, 파멸이 되든)

욕구는 합리적인 이성과 상충될 수도 있지만 우리의 개성과 인격을 보존해준다 그리고 어차피 표출된다

행복을 포기하더라도 하고싶은 걸 하는게 더 큰 삶의 목적이다, 체계를 위해 우리는 존재하는게 아니다

삶의 존재 이유는 행복이 아니다. 원하고 사랑하는 게 행복이 아닐 수도 있고 오히려 고통일 수 있다.

어느 순간 무엇을 증오해야할지, 존중해야할지, 경멸해야할지 잘 모른다.

왜 이렇게 됐냐면 우리는 비경제적인 종류(무차별적으로, 보상도 바라지 않는) 사랑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실은 이런 사랑은 인간에게는 불가능하다(신은 가능함). 

인간은 삶을 살아야지 삶을 꿈꿔서는 안된다.

삶을 살아가는 방법은 삶에 대한 지식을 갈구하거나, 갈망하면서 찾는게 아니다.

지식없이 살아가며 그저 모두를 사랑해야한다.

누군가를 사랑하며 형제관계를 맺을려면 연민을 느껴야 한다.

결국에는 사랑(연민)이 우리 삶을 살아가도록 하고 자유롭게 만든다.

우리는 모두 의존적이고 취약하며 겁이 많고 사랑이 고픈 연약한 존재니깐

세줄 요약

  1. 선과 악이 삶에서 중요한게 아니야, 그것에 집착하면 자유롭지 못해

  2. 삶 그 자체를 사랑해야해, 내 욕구에 집중해야해. 이득,행복,체계 이런게 중요한게 아니야

  3. 삶에서 가장 중요한 건 사랑이야, 모두에게 연민을 느끼며 사랑해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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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위로 받았다.

성인이 되서 나는 행복을 많이 추구했다

왜냐면 어렸을 때 부터 행복이 삶의 목적? 이유 라고 생각했는데 나는 딱히 행복감을 많이 느끼지는 못해서 더 많이 추구했다

그래서 행복이 뭔지, 삶이 뭔지 관심이 많았다.

근데 딱히 행복하지 않더라도 하고싶은 것 하며 사는 게 삶을 그 자체를 사랑하는 방법이였다

그러면서 내가 중요하게 추구하는

머리로 이해하는게 아닌 욕구적인 삶의 소중함과 무차별적인 사랑에 대한 소중함을 말해줘서 좋았다.

 

10개의 댓글

좋은 책 알아갑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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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좀 맘에 드는데. 특히 P168. 내가 인간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리기 전에 했던 말 중 하나가 저거거든. 인간종에 대해선 애착이 있지만 개별 인간에 대해선 회의적이다 라고. 그 좆같은 인간 새끼들 하도 처 보다보니 이젠 인간 종에 대한 애착도 없어져 버렸지만 말야.

 

사람에게는 의미가 있고, 그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선 신이 필요하다는 관점도 뒤집어 보면 인간에게 의미 같은거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나면 신같은 것은 필요없다는 것도 알게 될텐데. 의미가 없으면 인간은 살아갈 수 없기 때문에, 굳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고 싶어하는 발버둥이 잘 느껴지네.

 

가엾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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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16

見月忘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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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16

잘보고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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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17

너덕분에 이 책 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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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17

윤리와 사상 ㅈ빠지게 공부해서 얻은건 저런것들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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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17

좋은 글 좋은 요약 감사.

예전 어떤 스님의 말씀이 생각나네. 산속에 새처럼 다람쥐처럼 살면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산속에 있는 그들은 특별히 행복을 추구하지 않으면서도 잘 살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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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18

잘봤음 ㅊ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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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18

도스토옙스키 읽은 지 몇 년 지나긴 했지만, 기억나는 대로 써 보겠음 (약간의 스포 주의)

- 물론 키릴로프를 통해 “모든 것(살인, 자살 포함)은 허용된다”는 주장을 펼치긴 했지만, 그걸 도스토옙스키가 설파하고자 했던 내용으로 보기는 어려움. 이는 키릴로프의 최후를 영웅적이기는커녕 우스꽝스럽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모양새로 만들었다는 것을 통해 알 수 있지. 이게 왜 중요하나면, 키릴로프의 자살은 키릴로프의 사상을 완성시키는 것임이 작품 내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나타났기 때문이지. 같은 작품([악령])의 주인공인 스타브로긴의 최후도 비슷한 맥락이고. 사실 키릴로프의 사상적 분신이라고 할 수 있는 다른 작품들의 등장인물들, 특히 [죄와 벌]의 스비드리가일로프와 [카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의 이반 표도르비치도 비슷한 대우를 받은 걸 통해 확실히 할 수 있는 내용이지. (난 오히려 스비드리가일로프의 최후는 비교적 온건하다고 보고 있음.) 정작 "모든 것은 허용된다"는 사상을 뒤집어 쓴 (아니, 사실 그 사상의 인격화라 할 수 있는) 이 등장인물들이 후대 문학가들과 사상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은 아이러니이지. 그만큼 도스토옙스키가 이 셋을 끝내주게 잘 그려냈다는 이야기겠지만.

- 도스토옙스키가 진정으로 말하고 싶어했던 것은 다름 아닌 기독교적 구원임. 비록 그의 작품들에서 이러한 구원의 "승리"가 만족스러울 정도로 그려지지 않긴 하지만 ([죄와 벌]의 마지막 장면은 너무 갑작스럽고, [카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에서는 알료샤와 그루셴카 정도 말고는 기독교적 구원을 받은 인물이 없어 보이거니와 알료샤를 비롯한 기독교 쪽 인물들은 주요 사건에서 그리 큰 영향을 발휘하지 못 함), 그럼에도 작품 여러 곳에서 나오는 기독교적 구원을 대변하는 인물들([죄와 벌]의 소냐, [카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의 조시마 장로 등)은 도스토옙스키가 원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용서를 유감 없이 보여주고 있지.

- 그리고 이러한 기독교적 구원은 "모든 것은 허용된다"와 작품 내에서 극명한 대치를 이루고 있지. 기독교적 구원을 대변하는 인물들은 끊임없이 삶과 대지를 사랑하라고 이야기하지만, 키릴로프를 위시한 "모든 것은 허용된다"는 사상을 외치는 이들이 보여주는 모습은 삶을 사랑하는 모습과 거리가 멀지. 아니, 사실 그들이 보여주는 모습보다는 그들의 사상과 짙은 연관을 가진 다른 인물들이 저지른 짓을 통해 그게 더 잘 드러나지. 기어이 살인을 저지른 [죄와 벌]의 라스콜리니코프, [악령]의 스타브로긴과 5인조, 그리고 스메르쟈코프가 그 극명한 예고.

- 하지만 삶 그 자체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은, 다름 아닌 도스토옙스키가 가장 강조한 내용이기도 함. 사실 앞서 말한 기독교적 구원을 설파한 인물들이 강조한 것도 그거고. 특히 조시마 장로의 회상록에서 그 진면목이 드러나지. 그 외에도 라스콜리니코프를 수사한 포르피린 역시 삶을 사랑하라는 주장을 하였고. (뭐, 자살하지 말고 자수해서 광명 찾자는 걸로 받아들일 수 있겠지만.) 이들의 주장에서 삶을 사랑해야 하는 이유가 어디 있나 싶을텐데, 사실 유감스럽게도 난 잘 모르겠음. 기독교적 사상에서는 일단 받아들이고 봐야 하는 것이라서 그런 건지, 아니면 도스토옙스키의 삶이 너무 극적이라 그런 극적인 상황이 아니면 깨닫기 어려운 내용이기에 도스토옙스키마저 이야기를 안 한 건지 (대신 여러 극적인 상황을 통해 이를 드러내고자 한 것으로 보임), 아니면 내가 뭘 놓쳐서 그런 건지 잘 모르겠지만... 나보다 더 깊이 읽으셨을 다른 분께서 추가해 주셨으면 좋겠음.

1
2022.11.18
@quark2

추가로, (신의 부재 하에) "모든 것은 허용된다"를 도스토옙스키가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 주는 그의 단편 소설이 있지. 제목은 [보보끄]인데, 대략적인 스토리는 다음과 같음. 화자가 어느 공동 묘지에서 밤을 보내게 되었는데, 그 곳의 묘지들에서 망령들이 일어나고는 자기들끼리 대화를 하기 시작하더니, 그 대화 주제가 갈수록 추잡해져 가다가 급기야 남녀 가릴 것 없이 발가벗고 날뛰자는 주장을 내놓고는 정말로 그렇게 하기 직전, 화자의 재채기에 귀신 같이(?) 사라져 버리고는 그걸로 글이 끝나는 내용임. 뭐, 나도 그렇고, 요즘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 내용이 엽기적이라고 하기에도 한참 모자를 수 있겠지만 (사실 그래서 나도 역자 해설 보고 이해함), 당시 시대 상을 고려했을 때 "모든 것이 허용된" 사회가 얼마나 추해질 수 있는지 작가가 보여주고 싶었던 것으로 보임. 어떻게 보면 키릴로프의 사상과 비극을 유머러스하게 비틀었을 때 나올 수 있는 결과물 쯤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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