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지식

[도서리뷰] 왜살아야하는가-2. 키르케고르

15224ccdaf62bac3e91c78f86194a9a525f3778d2af21504d40103c01329fcfb5fcb7bbfe9fc.jpg

 

 

P69 기독교 신앙, '진정한' 기독교 신앙이란 "정신"이다 정신이란 내면성이다. 내면성이란 주체성이다. 다시 말해 순수한 정열, 자기 자신의 영원한 행복에 개인적으로 무한한 관심을 기울이는 정열을 담은 주체성이다.

...

 

키르케고르에게 있어서 기독자가 되는 것은 사실상 "자기 자신이 되는 것" 과 차이가 없으며 자기 자신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개별 인간이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배워야만 한다

 

P70

다시 말해 '나'라는 '특정한' 개인이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숙고할 때만 나는 나라는 인간, 진정한 자기 자신이 되기를 바랄 수 있다

 

....

자기 자신이 되지 않는 가장 흔하고도 자연스러운 방식은 오직 '심미적'으로만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삶을 심미적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감각에 몰두하며 주관적인 경험을 풍요롭게 하는 가운데 기쁨을 추구하고 고통을 회피하는 것, 어떤 결과를 초래하든 자신의 욕망과 열정을 따르는 것, 육체적 만족과 정신적 만족을 추구하는 것, 삶이 우리에게 제공하는 온갖 희열을 즐기는 것을 의미한다

 

...

하지만 심미적인 삶에는 나름의 결점이 있다.

사실 '심각한' 결점이다. 우선 심미적인 삶은 지속되지 않는다. 결코 지속되지 않는다. 언젠가 고통이 반드시 찾아온다. 죽음이 아예 삶을 끝낼 것이다. 심미적으로 살아가다 보면 자신이 자기충족적인 삶을 살고 있다고 착각할 수 있다. 

 

 

 

P71 

권태는 그저 특정한 감정이나 정신 상태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권태는 '통찰'이다. 권태로울 때뿐만 아니라 권태롭지 '않을' 때도 자신이 처해 있는 상태에 대한 깨달음이다. 우리가 권태로울 때 느끼는 공허함은 우리가 공허함을 인식하지 못할 때조차 항상 그곳에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키르케고르는 심미적인 인생관이 근본적으로 "절망" 이나 다름없다고 본다. 심미적으로 살아가는 모든 사람은 인식하든 못하든 절망에 빠져 있다. 

 

 

 

P72 심미적인 인간에게 있어서 권태란 삶의 자연스러운 근본 조건이자 그것을 피하기 위해 무엇이든 한다는 점에서 숨은 원동력이다. 하지만 심미적인 생활방식으로는 권태 아래에 놓여 있는 공허함을 결코 물리칠 수 없다. 결국 우리가 우리 속에서도 마주하는 공허함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기 자신에게 의존해보지만 거기에도 식별 가능한 자아는커녕 붙들 만한 것이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심미적으로 사는 사람은 주로 자신이 하는 일을 가지고 스스로를 정의하며 아무것도 할 일이 없으면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했던 자아마저증발해버리고 만다. 

 

(심미적인 사람은 세상과 깊은 관계를 맺지 못한다)

 

 

P74 그럴수 밖에 없는 것이, 삶을 온전히 심미적으로 살기 위해서는 늘 일정 수준 유보적인 혹은 분이적인 태도를 취해야 하기 때문이다

 

 

P75 욕구 충족을 중심으로 삶을 설계한(우리 대부분이 대부분의 경우에 그렇게 한다) 사람들에게서 불행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있다. 결국 세상이란 설령 온갖 즐거움으로 개득 차 있다고 한들 거의 언제나 실망스럽다. 그렇기 때문에 심미적인 실존양식은 삶이 살망한 가치가 없는 비참한 것이라는 체념을 하게 만들 수 있다.

 

 

P76 "행복한 자는 노년에 죽음을 맞이한 자가. 더 행복한 자는 태어날 때 죽음을 맞이한 자다. 가장 행복한 자는 애초에 태어나지 않은 자다."

 

P77 여기서 따라 나오는 사실은 '행복'이라난 것이 '자기 자신에게 현존하는 것', 결국 '자기 자신이 되는 것'에서 나온다는 점이다. 나는 나 자신에게 존재함으로써, 다시 말해 자기자신에게 관계하여 자기 자신을 꽉 붙잡음으로써 나 자신이 된다.

 

....

 

 

A에 따르면 우리는 미래나 과거에 살고 있을 때 우리 자신으로부터 부재하게 된다. 우리는 주로 희망이나 회상을 통해 미래나 과거를 살아간다. 오직 희망이나 회상 속에서만 삶을 살아가며 희망하고 회상하는 와중에 현재를 살아가는 법을 잊어버린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차지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불행하다. 하지만 그들이 미래나 과거 '속'에서라도 자기 자신에게 현존하는 한 '완전히' 혹은 '진정으로' 불행하지는 않다. 가장 불행한 사람들은 이처럼 지연된 종류의 존재라도 가지고 있지 못한 사람들이다.

 

P78 가장 불행한 사람이 희망할 것이 없으면서도 계속 희망하는 사람이거나 회상할 것이 없으면서도 계속 회상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과거는 이미 지나갔으며 따라서 더 이상 바뀔 수 없는 반면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에 진정한 불행은 주로 미래 존재의 상실보다는 과거 존재의 상실에 있다.

...

 

P80

결과적으로 그들의 본성은 “다수"로 해체된다. "자기가 실제로 여럿"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인간 내면 깊숙이 존재하는 가장 신성한 것, 인격을 통합하는 힘을 잃어버린다." 빌헬름은 이것이 굉장히 심각한 문제이자 진정으로 무시무시한 가능성이라고 경고한다. “모든 사람에게는 자신이 자신에게 완전히 투명하게 드러나지 않도록 어느 정도 막아주는 무언가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밖에 놓여 있는 삶의 상황들에 지나치게 복잡하게 얽힌 나머지 거의 스스로를 드러내지 못할 정도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스스로를 드러낼 수 없는 사람은 사랑할 수 없으며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은 누구보다도 불행한 사람이다."… 윤리적인 영역에서 사랑이란 헌신을 내포한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선택'을 내포하기도 한다. 이처럼 선택을 내림으로써, 즉 의식적으로 다른 것 대신 무언가(혹은 누군가)를 정함으로써 우리는 빌헬름이 “삶의 주된 일”이라고 주장하는 일을 하게 된다. 바로 "스스로를 얻는 것, 스스로를 소유하는 것이다."

 

심미적인 생활양식 하에서 우리는 딱히 선택을 하지 않는다. 그 대신 우리의 선택이 다른 존재에 의해(혹은 환경에 의해) 이루어지도록 내버려두며 그 때문에 우리 자신을 잃어버린다 … 심미적인 선택은 어떤 식으로도 결속시켜주지 모한다. 진정한 선택이란 우리 자신을 소유하는 것을 의미한다. 선택ㅇ르 한다는 것은 “이것이 나”라고 선언하는 것과 같다.

 

P82

이 과정에서 절망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심미적 실존에서 윤리적 실존으로의 이행은 “절망의 씁쓸함”을 맛봤을 때 일어나거나 일어날 수 있으며 여기서 절망이란 특정한 무언가(우리에게 닥친 불행 등)에 대한 절망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절망이다. 따라서 절망은 아무 잘못이 없는) 세상을 향한 증오로 잘못 이어지지 않으며 오히려 세상이 "지금 모습인 것에 대해” 사랑을 유지하도록 혹은 심지어 강화하도록 만든다." 그러므로 절망은 그리 나쁜 것이 아니다. 정반대로 절망은 “절대적인 것을 찾는 진정한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빌헬름은 절대적인 것이 “영속적인 유효함을 지닌 나 자신"이라고 설명한다. 그게 무엇인가? 그것은 “무엇보다도 가장 추상적인 동시에 무엇보다도 가장 구체적인 것 - 바로 자유”다. 

 

P83 

윤리적으로 사는 한 우리는 항상 우리 자신을 붙들고 있기 대문에 스스로를 즐겁게 하기 위해 그리고 권태(또 권태가 드러내는 공허)를 저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좇을 필요가 없다.

 

P84

윤리적 삶은 보통 ‘의무’라는 개념과 연관돼 있다. 

… 의무는 “우리의 가장 깊은 본성의 표출”이어야 한다. 그냥 의무가 아니라 본질적으로 ‘나’의 의무여야 한다. … 이것이 “진정한 삶의 기술”이다. 그리고 윤리적 의무가 항상 본질적으로 ‘나’의 의무이기 때문에 오직 나만이 내 의무가 무엇인지 말할 수 있고 오직 당신만이 당신의 의무가 무엇인지 말할 수 있다. 삶에서 내가 맡은 과업이 있고 당신이 맡은 과업이 있는 셈이다. 

 

P85

우리는 윤리적 요소를 외면화하는 데 익숙한 나머지 삶을 어떻게 살 것인지 묻는 질문들에 대해 결코 객관적이고 무심하고 관찰적인 관점에서 추상적인 언어로 묻거나 답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곤 한다. 윤리적 생활방식의 핵심은 이것이 (이것이 무엇이든 간에 '나'와 관련돼 있으며 무슨 선택을 내리든 '내'가 바로 그 선택에 따라 살고 죽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삶이 살 만한 가치가 있는지, 죽음이 악인지, 죽는다는 것(혹은 산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숙고할 때, 그런 의문을 제기하는 자가 지금 살아 있으며 곧 죽는다는 사실을 망각하는 것은 더 나아가 지금 살아 있고 그런 의문을 제기하고 있으며 결국 죽게 될 바로 그 사람이 '나'라는 사실을 망각하는 것은 심각한 실수다. 따라서 질문은 절대 '인간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형태를 취할 수도 취해서도 안 되며 항상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와 같아야 한다. 나라는 특정한 단일 개인이 중요한 것은 물론이고 특히 나에게 있어서는 '나'가 무엇보다 중요하고 중요해야 한다. “윤리적으로 볼 때 개별 주체는 무한히 중요하다.”

 

P86

윤리적으로 살기 위해 우리는 기꺼이 위대한 위험을 감내하고자 해야 한다. 기꺼이 모든 것을 희생하고자 해야 한다. 심지어 우리 자신의 목숨, 사랑하는 사람의 목숨, 다른 사람들의 인정과 승인마저 희생하고자 해야 한다. … 다시 말해 일반적으로 옳거나 그르다고 생각되는 것, 선한거나 악하다고 생각되는 것에 맞서야 한다. … 단일한 개인은 자기 발로 똑바로 서있어야 한다. 윤리는 친절하게 구는 것과 관련이 없다. 모두(혹은 누군가)를 기쁘게 하는 것과도 관련이 없다.

 

P91

전혀 말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정확히 이것이 종교적 '믿음'이 의미하는 바다. 명백히 부인할 수 없는 방식으로 모든 것을 잃었음에도, 완벽한 실패에 직면했음에도 모든 것이 괜찮다고, 모든 것이 괜찮아질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믿음은 이해를 거스른다. 신이 모든 이해를 거스르기 때문이다. 심미적으로 우리는 가능한 것을 기대한다. 윤리적으로 우리는 영원한 것을 기대한다. 하지만 종교적으로 우리는 '불가능한 것'을 기대한다. 신에게는 어떤 불가능한 것도 없기 때문에 이는 정당한 기대다. 다만 신의 존재는 증명될 수 없으며 오로지 믿음으로 받아들여져야 할 뿐이다(신 자신이 불가능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은 하느님의 의지에 믿음으로 복종함으로써 좋은 결과를 얻었다. “아브라함은 모든 것을 무한히 포기했다. 그러고 나서 부조리의 힘으로 모든 것을 돌려받았다.”

 

P93

절망이 죽음으로 '끝나기 때문이 아니라(그렇지 않다)절망의 핵심이 죽음이 모든 것의 끝이라는 '믿음'에 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절망을 느끼는 사람은 자신의 삶이 죽음이 연장된 상태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인식한다. 절망은 내적인 모순으로 정의된다. 절망 속에서 우리는 우리가 이미 죽은 것처럼 삶을 살아간다. 절망을 거의 문자 그대로) 실패가 전제된 자살 행위라고 이해할 수도 있다. 실패할 수밖에 없는 무력한 “자기 잠식consumption of the self"인 셈이다."자기 자신 혹은 자기 자아)을 소멸시키기를 원하는 것만 하더라도 이미 절망이다. 하지만 이 절망은 절망한 사람이 그렇게 할 수 없다는 사실로 한층 더 고조된다. 절망한 사람은 "자기 자신을 잠식할 수도, 자기 자신으로부터 벗어날 수도, 무의 상태로 돌아갈 수도 없다" 우리는 우리가 아닌 것(예컨대 프리미어리그 축구선수나 제일가는 은행가)이 되기를 바라며 우리가 되어 있는 것(프리미어리그 축구선수나 제일가는 은행가가 아닌 무엇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자기가 되고 싶은 것이 되지 못했다는 사실에 절망하는 사람은 사실 자기가 되고 싶은 것이 되지 못한 자기 자신에게 절망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자기가 어떤 것이 되고 싶었던 유일한 이유가 자신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자아를 발견함으로써 '자기 자신'이 되고 싶었던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자기 자신이 되기를 바라는 동시에 자기 자신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P95

삶의 기쁨과 슬픔에 초점을 맞춘 채 “사소한 것에 무한한 가치"를 부여하면서 살아간다면 우리는 삶을 낭비하는 것이다." 결코 스스로를 정신으로서 인식하지는, 다시 말해 "명명백백히 하느님으로 말미암아 존재하지는 못한다." 우리는 흔히 다른 사람들처럼 되려고 애쓰다가 그만 자기 자신이 되지는 못한다. 자기 자신이 되는 것보다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 훨씬 더 쉽고 안전해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군중 속에 들어가 자취를 감추고는 기꺼이 자기 자신이"보잘것없는 사람, 또 다른 한 사람, 끝없는 천편일률의 또 다른 반복”이 되도록 내버려둔다. “군중"의 일부가 돼야 잘 어울릴 수 있고 일반적으로 잘 어울릴 수 있어야 인간사회에서 번영하기가 더 쉽기때문에 우리는 그 대가를 거의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 대가로 자기자신을 잃는데도 말이다. 이처럼 자신이 처한 상황에 무지한 채 자기자신을 상실하는 것은 절망 중에서도 최악의 절망에 속한다.

 

P97 자기 자신이 되는 법

침묵 -> 들어라 -> 자연세계를 집중해야한다-> 이를 통해 신 앞에 있다는 걸 인식한다


내가 이해하는 것

키르케고르가 왜 살아야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자기 자신이 되는 것' 특히 '개별 인간이 되는 것'이라고 한다

특별한 개인이 되는 방법에는 가장 흔하고 자연스러운게

'심미적'인 방법이다.

심미적인 건 감각에 몰두하며 기쁨을 추구하고 고통을 회피하며 자신의 욕망과 열정에 따르며

삶의 온갖 희열을 즐기는 것이다

하지만 

이 심미적인 것에도 결점 존재 -> 지속되지 않고 언제가는 죽음이라는 끝이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권태는 필요하다

권태는 우리 일상들 뒤에 존재하는 공허함을 느끼게 해준다.

이 권태는 심미적인 사람에게 삶의 원동력이 된다(왜냐면 피하기 위해서 그리고 근본적이라서)

그렇지만 이런 방식은 공허를 이겨낼 수 없다 -> 왜냐면 세상과 깊은 관계를 맺지 못하기 때문에

-> 왜 깊지 못하냐면 심미적으로 살려면 삶에 유보적이거나 분리적인태도를 취하니깐

그러니깐 키르케고르는 심미적인 삶은 굳이 추천하지 않음

다시한번 자기 자신이 현조하는 것,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을 강조함 

윤리적인 방법으로는 

선택을 내림으로써, 의식적으로 다른 것을 무언가를 선택함으로써 스스로를 얻고 소유하는 것이라고 한다(잘 이해안감)

심미적인 생활 양식은

우리는 선택이 아니라 선택 되어지고 선택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라서 우리 자신이 잃어버린다고 한다

아무튼 이런 윤리적인 생활양식에서 중요한 건 절대적인 것이고

-> 영속적이고 유효함을 가진 자신 -> 가장 추상적이고 가장 구체적인 것 자유를 강조한다

이 자유로움은 의무란 연결 되는데

의무는 각자 모두가 다르기 때문에 너의 의무, 나의 의무가 다르다 (나는 이걸 각자의 진리가 존재한다라고 ㅈ이해함)

모든 지 내가 선택해야하만 '나로 존재할 수 있다'

'인간은 무엇을 해야하는 가' 객관적이고 관찰적인 추상적인 답변은 없다 

대신 '나는 무엇을 해야하는가'라는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답변을 해야한다

이러기 위에서는 옳거나 그르다고 생각하는 것, 선한거나 악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맞서야한다

나로서 두발로 똑바로 존재해야한다

윤리는 친절하게 구는 것과,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과는 관련이 없다

내가 나로서 자유롭게 선택하여 답변하는게 중요하다 

우리는 다른 누군가를 꿈꾼다 (우리가 아닌 것을 꿈꾸는데)

실은 그거는 자신이 되고 싶고 싶은 것이 되지 못해 절망하는 것이고

-> 자기 자신을 부정한다 

우리는 결국엔 우리가 바라는 모습과 현 모습이 맞아야 한다 

더 요약

살아야하는 이유 -> 

나 자신으로 존재하기 위해 -> 심미적인 방법으로는 안돼 -> 윤리적인 방법으로(그 다음에 종교적인게 존재) 가능해 -> 윤리적인건 자유롭게 선택해서 개별적인 자신으로 존재해야해 -> 내가 스스로 바라는 모습과 현재 내모습이 맞아야해 -> 이를 통해 나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어

 

1개의 댓글

세상을 다 없애버릴 힘을 가지게 된다면 한번 해 보고 싶은게, 인류 전체에 대해 니들이 사라지지 않고 존속해야 할 이유를 한번 설파해봐라. 설득못하면 니들 다 없어짐 ㅇㅇ 해보고 싶긴 하다. 진짜로 좆될 위기에 처한 인류는 나에게 무슨 답을 줄 것인지. 이런 정도래서는 밑도 끝도 없는 허무에 대해선 아무 답도 안되는 느낌인디.

0
무분별한 사용은 차단될 수 있습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추천 수 날짜
5247 [기타 지식] 아무리 만들어봐도 맛이 없는 칵테일, 브롱스편 - 바텐더 개... 3 지나가는김개붕 2 4 일 전
5246 [기타 지식] 일본에 의해서 만들어진 칵테일들 편 - 바텐더 개붕이의 술 ... 2 지나가는김개붕 6 6 일 전
5245 [기타 지식] 중국에서 안드로이드 폰을 사면 안되는 이유? 10 대한민국이탈리아 22 7 일 전
5244 [기타 지식] 최근 지각변동이 일어나는 국내 항공업계 (수정판) 15 K1A1 23 9 일 전
5243 [기타 지식] 도카이촌 방사능 누출사고 실제 영상 21 ASI 2 14 일 전
5242 [기타 지식] 웹툰 나이트런의 세계관 및 설정 - 지구 2부 21 Mtrap 8 14 일 전
5241 [기타 지식] 100년을 시간을 넘어서 유행한 칵테일, 사제락편 - 바텐더 개... 5 지나가는김개붕 1 16 일 전
5240 [기타 지식] 오이...좋아하세요? 오이 칵테일 아이리쉬 메이드편 - 바텐더... 3 지나가는김개붕 2 18 일 전
5239 [기타 지식] 웹툰 나이트런의 세계관 및 설정 - 지구 1부 31 Mtrap 13 17 일 전
5238 [기타 지식] 칵테일의 근본, 올드 패션드편 - 바텐더 개붕이의 술 이야기 15 지나가는김개붕 14 18 일 전
5237 [기타 지식] 웹툰 나이트런의 세계관 및 설정 - 인류 2부 22 Mtrap 14 18 일 전
5236 [기타 지식] 웹툰 나이트런의 세계관 및 설정 - 인류 1부 13 Mtrap 20 18 일 전
5235 [기타 지식] 서부 개척시대에 만들어진 칵테일, 카우보이 그리고 프레리 ... 3 지나가는김개붕 5 23 일 전
5234 [기타 지식] 모던 클래식의 현재를 제시한 칵테일편 - 바텐더 개붕이의 술... 4 지나가는김개붕 2 24 일 전
5233 [기타 지식] 브라질에서 이 칵테일을 다른 술로 만들면 불법이다, 카이피... 5 지나가는김개붕 1 25 일 전
5232 [기타 지식] 럼, 라임, 설탕 그리고 다이키리 편 - 바텐더 개붕이의 술 이... 2 지나가는김개붕 6 26 일 전
5231 [기타 지식] 1999년 도카이촌 방사능누출사고 대량 방사능 피폭 피해자들 ... 9 ASI 5 27 일 전
5230 [기타 지식] 진짜 레시피는 아무도 모르는 칵테일 싱가포르 슬링편 - 바텐... 3 지나가는김개붕 2 27 일 전
5229 [기타 지식] 통계로 보는 연애 상황에서 외모의 중요성 8 개드립에서가장긴... 11 29 일 전
5228 [기타 지식] 추울 수록 단맛이 유행한다, 위스콘신 스타일 올드 패션드편 ... 1 지나가는김개붕 8 2024.0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