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지식

[도서리뷰] 왜살아야하는가-1.쇼펜하우어

총 10장으로 이루어진 책 이다

화면 캡처 2022-11-01 231852.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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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7 궁극의 의문이란 삶과 죽음의 의미를 다루는 의문을 가리킨다. 이는 우리 존재의 핵심 파고드는 가장 근원적인 질문이라는 점에서 궁극적일 뿐만 아니라 가장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라는 점에서도 궁극적이다

 

P 8 궁극의 의문을 이해하는 한 가지 방법은 ‘목적’ 측면에서 의문을 이해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삶, 온 우주, 그밖의 모든 것을 바라보면서 이 모든 것이 결국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어떤 목적을 수행하는지 물어볼 수 있다 

 

P10 만약 우리가 죽기 위해 살고 우리 같은 존재가 살 수 있도록 죽는 것이라면 그처럼 계속 반복되는 삶과 죽음의 순환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것일까? 만약 삶이 죽음으로 이어지고 죽음이 삶으로 이어지는 것이라면 ‘이 모든 과정’ 자체는 어디로 이어지는 것일까? 살고 죽는 일의 목적은 무엇일까? 우리는 우리가 사는 이유와 우리가 죽는 이유 각각은 알지라도 우리가 ‘살고 죽는’ 이유는 아직도 알지 못한다 

 

P13 다시 말해 우리는 다른 무언가가 아니라 그 자체를 위해 존재하는 것(다른 무언가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의심의 여지 없이 ‘좋은’ 것)을 필요로 한다. 그처럼 내재적인 목적(그 자체가 곧 목적인 수단)만이 우리 인간의 죽음에 대한 도덕적 반감을 누그러뜨리거나 흐트러뜨릴 수 있을 것이다.

 

P14 표현은 중요하다. 언어 표현에서 사상을 완전히 분리해낼 수는 없기 때문이다. 표현은 의미를 드러낼 뿐만 아니라 의미를 창조하기도 한다. 표현은 이미지를 불러일으키고 이야기를 둘려줌으로써 세계를 이해하도록 돕기 때문에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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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6 간단히 말해 물리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세계에는 왜 이리도 많은 악이 존재하는 것이며 어떻게 이런 세계에 일반적인 목적이 존재한다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일까?

 

P28 우리의 ‘경험’을 시작적으로 놓고 세계의 본성을 탐구한다면 완전히 다른 결론이 나타난다. 바로 이 세계가 생각할 수 있는 세계 중 최선의 세계가 전혀 아니라는 결론 말이다. 오히려 정반대다. 세계는 여러 측면에서 정말 끔찍한 곳이다.

 

P30 쇼펜하우어가 보기에 세계는 지극히 나쁜 곳이며 그렇다고 그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사람들이 살면서 경험하는 고통과 고난은 삶의 우연적인 특징이 아니다. 고통과 고난은 삶 곳곳에 만연하고 삶의 본질 가운데 속한다(결국 삶이란 존재해서는 안 될 무언가라는 뜻이다). 우리가 살면서 커다란 재앙을 피해 갈 만큼 운이 좋다고 하더라도, 즉 우리가 다른 많은 사람들이 겪는 질병,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자연재해, 착취, 궁핍 등을 겪지 않을 만큼 운이 좋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삶은 남들보다 아주 조금 더 나을 뿐이다. 삶은 회피 가능한 범위 내에서 우연히 고통을 수반하지 않는다. 근본적으로, 필수적으로 고통을 수반한다. 모든 삶은 본질적으로 고통 그 자체다. 욕구와 욕망이라는 역학이 인간을 구조적으로 쉼 없이 분투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인간은 존재하는 한 끊임없이 갈구한다. 산다는 것은 욕망한다는 것이고 모든 욕망은 부재(혹은 부재한다고 느끼는 것)를 전제한다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한 부재 때문에 고통을 겪는다. 원하는 것을 얻으면 다시 다른 무언가를 갈구한다. … 하지만 욕망하지 않는 것 역시 실행 가능한 선택지는 아니다. 첫째로는 인간 일반에게 욕망하지 않는 능력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며 둘째로는 특정한 욕망의 부재 역시 나름의 고통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욕망할 것이 없다면 권태가 시작된다 

권태는 손쉽게 우리를 절망에 이르게 하며 심지어 목숨을 끊도록 만들기도 한다. 

우리는 이처럼 일시적인 고통의 유예를 가르켜 ‘행복’이라 부른다. 결국 행복이란 잠깐이나마 고통이 상대적으로 부재한 상태에 지나지 않는다 .

 

P32 삶이란 부존재에 맞선 끝없는 투쟁이다. 더 중요한 점으로 삶이란 우리가 승리할 수 없는 투쟁이다. 결국에는 부존재가 우리 모두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

만약 인간이 무언가를 위해 이 세계에 존재한다고 한다면, 다시 말해 인간의 삶에 목적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가능한 한 고통을 겪다 죽는 것이라고 하는 쪽이 훨씬 더 그럴듯하며 우리의 개인적인 인생 경험 및 지식에도 부합할 것이다

 

 

P35 쇼펜하우어가 보기에 진정한 철학이란 인간의 필멸성을 이해하고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 고통을 경험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행복한 사람들, 다시 말해 삶에 아무런 문제의식이 없고 세상에 만연한 온갖 고통과 인간 존재의 유한함을 거의 의식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철학하지 않는다. 그들은 삶에 관해 딱히 생각하지 않은 채 그저 자신의 삶을 살아갈 뿐이다.

 

따라서 근본적으로 철학적 궁금증이란 단지 지적 호기심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도덕적 분노에 해당한다. 철학적 의문은 세계가 응당 그래야 하는 모습이 아니라는 사실을 지각한 데서 기인한다.

…철학자로서 우리는 문제를 인정한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 거기에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 이해하고자 애써야 한다. 그러지 않고 아무런 문제가 없는 척, 모두 괜찮은 척하는 것은 지적으로 솔직하지 못한 태도일 뿐만 아니라 도덕적으로 타락한 태도다

 

P36 그럼에도 각각의 사람은 오래도록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수많은 고통과 쓰디쓴 죽음을 감내해야한다. 이런 상황은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다. 완전히 무의미해 보이는 무언가에 왜 그리도 많은 투자를 한다는 말일까?

 

P37 그 통찰이란 바로 세계가 우리에게 결콘 실제 존재하는 그대로 나타나지 않으며 항상 중재된 형태로 나타난다는 점이다. 우리는 우리가 인식하는 사물과 절대 직접적인 관계를 맺지 않는다. 우리가 사물을 인식하는 방식은 우리의 지각과 인식이 작동하는 방식에 의해 결정되므로 우리가 인식하는 대상은 사물의 본성을 반영하는 만큼이나 우리 자신의 본성을 반영하게 된다 

….

우리가 지각하고 말하고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은 ‘우리에게 나타난 대로’의 세계다. 따라서 우리는 현상 너머의 세계가 ‘실제로’ 어떤 모습인지 절대 알 수 없다. 그저 우리에게 나타나는 모습만을 알 뿐이다.

 

P39 반면 쇼펜하우어는 세계가 우리에게 나타나는 방식이 세계가 실제로 존재하는 방식은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구분한다. 현상은 우리를 속인다. 현상은 환상을 불러일으킨다.

 

P41 우리의 몸은 여러 사물들 중 하나의 사물로서 인식될 뿐만 아니라 우리 존재가 머무는 자리로서 인식되기도 한다. 우리는 몸을 가지고 있지만 우리가 바로 그 몸이기도 하다. 그리고 바로 그 몸을 통해 우리는 세계에 관한 지식을 얻으며 애초에 세계에 존재한다.

마지막으로 특히 가능한 한 오래 생명을 유지하고 죽음을 연기함으로써 그저 존재하고자 하는 순수한 욕망이 있다. 이런 존재론적 욕구가 우리 존재의 핵심이며 모든 사고 활동과 반성적 의식은 말 그대로 사후의 생각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 모든 욕구는 무엇이란 말일까? 쇼펜하우어는 이를 “생의지” 혹은 그저 “의지”라 부른다 

그러므로 우리는 표상 세계의 일부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더욱 근본적으로는 ‘의지’이기도 하다. 

 

P43 우리의 삶이 무의미해 보이는 이유는 우리의 삶이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세상에 벌어지는 일에는 어떤 종합적인 계획이나 합리적인 구상도 반영돼 있거나 실현돼 있지 않다. 그 대신 세계의 중심에는 맹목적이고 강력하지만 전적으로 우둔하고 목적도 없는 분투가 이루어지고 있다. 계속해서 존재하는 것 외에는 무엇을 바라는지도 모른느 채 하염없이 바라기만 하는 것이다.

 

P43 모든 고통은 의지가 의지를 발휘한다는 사실에서 나타난다. 의지는 아무 조리도 이유도 없이 쉬지도 않고 만족할 줄도 모르는 책 생존과 우위를 점하기 위해 자기도 모르는 사이 자신과 싸운다. .. . 그렇다면 우리 존재에는 아무런 목적이 없다. 우리 존재는 어떤 고등한 목표도 수행하지 않는다. 목적지도 없이 그냥 존재한다

 

P46 우리의 실제 본성인 의지는 시간의 제약을 받지 않으며 따라서 파괴 불가능하다. 한편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는 의지가 객관화된 것, 의지가 스스로 인식하는 형식에 지나지 않는다.우리가 의지이고 따라서 시간의 제약을 받지 않으며 파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세계가 오직 우리를 위해 존다하는 점에서 세계는 언제나 우리를 위해 존재해왔고 앞으로도 우리를 위해 존재할 것이다.

 

P49 우리가 바로 이 순간 존재하는 이유는 그저 우리가 이 순간에 존재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혹시라도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면 이미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죽음을 두려워할 이유는 없다. … 하지만 이는 동시에 우리가 스스로 목숨을 끊음으로써 불행한 삶을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의미하기도 한다. 우리가 우리의 존재를 긍정하는 한, 다시 말해 우리가 의지인 한(의지는 그저 자기 존재를 긍정할 뿐이다) 우리는 좋든 나쁘든 이 세계에 묶여있다. 현재는 사라질수도 내던져질 수도 없다. 이것이 우리가 우리 자신의 필멸성을 추상적으로나마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우리의 삶이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영원히 존재할 것이라고 내심 확신하는 이유다

 

P49 우리는 다른 모두와 마찬가지로 자신이 틀림없이 죽는다는 사실을 안다. 하지만 동시에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서는 진정으로 우리가 죽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정당하다. 세계가 우리의 표상이라면 우리의 존재가 소멸되는 것은 필연적으로 세계의 종말을 가져올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죽고 난 후에도 세계가 지속되리라는 사실을 의심조차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의 존재 역시 지속될 것이다.

 

P50 우리 모두에게는 동일한 의지가 살아가고 있으며 동일한 의지가 투영돼 있기 때문이다. … 이 눈을 통해 세계를 바라보는 존재는 동일한 존재다. ‘나’가 ‘여러분’이고 ‘여러분’이 곧 ‘나’다. 따라서 내가 죽으면 나는 여러분 속에서 계속 살아가고 여러분이 죽으면 여러분은 내속에서 계속 살아간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결국 미래 세대 속에서 계속 살아간다. 우리는 서로에게서 영원히 다시 태어난다. 쇼페하우어는 이를 “시간적 불멸성”이라 불렀다

 

P53 삶은 구제할 길 없이 나쁘며 따라서 존재하지 않는 쪽이 존재하는 쪽보다 한없이 바람직하다. 하지만 우리가 죽음으로써 존재를 멈출 수 없다면, 자살이 선택지가 아니라면 우리는 영원히 고통을 겪을 운명으로 보인다. 다행히도 한 가지 탈출구가 존재한다. 쇼펜하우어는 이를 가르켜 “의지의 부정”이라 부른다

 

P54 부존재, 절대적 무의 상태는 악이 아닐 뿐만 아니라 오히려 삶보다 ‘더 낫다’는 것이다. 이를 분명히 보여주는 사실 하나는 우리가 고통을 겪을 때에만 우리 존재가 제대로 느껴진다는 점이다. 행복이란 고통의 부재, 다시 말해 존재감의 부재다. … 삶은 살만한 가치가 없다.

 

P55 근본적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부정하는 것과 부정할 때 진심을 담는 것이다.

…. 즉 우리가 끝내 세상을 뒤로 한채 세상으로부터 영구적으로 완벽히 분리 될 수 있을 때에만 우리는 구원받는다.

 

P55 첫째 방법이자 제일가는 방법은 연민을 통한 의지의 부정이다. 쇼펜하우어가 보기에 연민은 주로 감정이라기보다는 감정을 가장한 통찰에 가깝다. 도덕성은 모두 연민에서 기인하다. 우리가 누군가 -다른 인간이나 동물-에게 연민을 느끼는 우리는 우리 자신과 연민을 느끼는 대상 사이의 차이가 단지 겉보기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직관적으로 이해한다

 

P57 지극히 안타까운 상황에 철저히 역겨움을 느낀 우리는 그런 상황에 책임이 있는 의지로부터 등을 돌린다. 우리는 금욕주의자가 됨으로써 의지에 반하는 활동을 하기 시작한다. 무언가를 원하기를 그만두고 더 이상 즐거움을 추구하지 않으며 무언가에 애착을 느끼기를 거부한다. 사실상 세계와 세계 속에서 우리가 지니고 있는 물리적 존재에 완전히 무관심해진다. 굶주리기를 선택하고 자발적인 가난 속에서 살기를 선택한다. 

 

… 이처럼 자기를 부정하는 관행을 삶이 끝을 맞이 할 때까지 이어나가면 사는 동화 평화와 행복을 누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죽는 순간에도 구원을 얻을 수 있다.

 

P59 더욱 심각한 문제는 무의 상태로 성공적으로 이행한다고 해서 우리 자신이 얻는 유익이 없어 보인다. 내가 나 자신의 심대한 고통에 반응하여 혹은 고통을 겪는 모든 생명체를 향해 느끼는 무한한 연민에 반응하여 소펜하우어가 권하는 대로 행동한다면 내가 죽을 때 내 삶은 영원히 끝날 것이다

 

P60 결국 철학의 목적은 고통의 존재에 관해 숙고한 뒤 사물의 본성을 정확히 기술함으로써 일말의 위안을 가져다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P61 윤리적으로나 존재론적으로 만족스러운 형이상학을 원하는 우리의 요구에 쇼펜하우어가 제시한 첫 번째 대답은 삶에서 아무런 의미를 찾을 수 없다는 대답이었다. 오히려 삶은 본질부터가 완전히 무의미하며 이는 왜 세계가 지금과 같은 상태인지 설명해준다. 하지만 바로 이 존재의 무무읨함으부터 갑자기 ‘의미’가 생겨난다. 세계는 지옥 같은 장소일지 모르나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우리가 해야 할 중요한 일이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무로 향하는 길을, 결국 구원으로 향하는 길을 앞서 나아감으로써 말 그대로 세계를 구원해야 한다. 그리고 세계는 우리를 옳은 방향으로 부단히 밀어붙임으로써 우리가 우리의 운명을 달성하도록 돕고 있다.

 

P62 우리가 행복 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믿는 것은 근본적인 판단의 오류일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더 많은 고통을 초래하는 원인이 된다. 우리가 행복해지는 데 실패하고 나면 우리는 우리가 삶의 목적을 이루는데 실패했다고 느끼게 되며 그만큼 더 불행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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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해한 것

세상은 충분히 선하거나 완벽한 곳이 아니다 -> 오히려 끔찍하다.

고통과 고난은 삶에서 만연하고 본질적이며 필수적이다 (그렇게 때문에 삶은 안 좋다)

그 이유는 '욕구'와 '욕망'이다

욕망이 있다 -> 얻지 못하면 부재로 고통 받음, 얻어도 또 다른 욕망이 생겨 고통 받음

욕망이 없다 -> 권태로 이어짐 -> 권태는 자살로 이어짐

행복은 고통의 부재일 뿐, 일상적인 상황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목적은 행복이 아니고 삶의 목적은 가능한 한 고통을 겪는게 더 자연스러울 것이다

(이 부분은 욕구 실현과 더 많은 욕구를 통한 고통을 많이 겪어라고 이해함)

그렇기 때문에 철학은 인간의 필멸성과 고통의 중요성을 통해 시작된다

 

우리가 인식하는 세계와 존재하는 세계는 다르다

우리가 인식하는 세계는 지각과 인식으로 결정된다

우리가 사물로서 인식되고,존재로서 인식할 수 있는 몸을 탐구하고 그걸 확장해서 세계를 이해하면

가능한 한 생명을 유지하고 죽음을 연기함으로써 그저 존재하려는 욕망 = "의지"를 확인할 수 있다

(나는 이 부분을 생물학적? DNA적으로 그냥 죽음을 멀리하고 자손을 번식하려는 번식욕구로도 이해했다, 번식과 생존에는 이유가 없다. 그냥 태초부터 그렇게 정해진 운명같은 것이다)

이런 "의지"는 무의미하게 존재한다. 맹목적이고 우둔하고 강력하다. 

위에서 말하는 것처럼 철학은 인간의 고통을 중요성을 인식하는게 중요하다고 했는데

고통은 "의지"가 "의지"를 발휘할 때 나타난다(그러니깐 무작정 생존하고 존재하고 싶은 욕망이 발휘될 때)

그런데 이 의지를 통해서 나는 나만의 세계를 구축한다 즉, (내가 인식하는 형식 인 )세계가 의지다

죽음을 두려할 필요 없는게 이런 의지는 내가 죽는다고 파괴되는 것이 아니다. 

(아쉽게도 자살을 해도 이 의지가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의 이 "의지"는 영원히 존재할 수 있다

이런 생의 목적이자 삶 그 자체이며 영원하게 존재하고 고통의 원인인 "의지" 때문에 

오히려 고통을 겪을 때 우리는 존재를 확인할 수 있고 행복은 존재감의 부재다

우리는 이런 의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연민감을 강조했다.

순수한 연민을 통해 대상을 관찰하면 대상과 내가 "의지"라는 것에 묶여 있으며 

"의지"에 반하는 행동(금욕주의)를 하게 된다 -> 

무언가를 원하기를 그만두고 더 이상 즐거움을 추구하지 않으며 애착을 느끼기를 거부하며 세상에 무관심 해진다 -> 이를 통해 의지를 끊고 평화와 행복을 누린다

 

 

 

9개의 댓글

2022.11.02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

0

의미라는 개념 자체가 망상이여

0

흄 만세!

0
2022.11.02

잘 읽었다.

0
2022.11.02

열장으로 이루어진 책인데 왜 62페이지까지 있음

0
2022.11.03

취향 맞으면 우파니샤드-불교철학-쇼펜하우어-니체-마음수련 요 카테고리로 관련 책 쭈욱 읽어봐바

0
2022.11.03
@좋은말착한말

마음수련은 어느장르임?

0
2022.11.03

5분 뚝딱 철학 좋은 채널이라 ㅊㅊ~

0
2022.11.03

쇼펜하우어 ㅇㄷ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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