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기억에 관한 좋은글-5(사람의 학습과 기억)

사람의 학습과 기억

군소나 해우 (바다달팽이의 일종) 의 단순학습에서의 신경계의 세포수준 또는 분자수준의 변화가 보다 복잡한 신경계에서의 변화를 알아보기 위한 기초지식을 제공하는 것은 틀림없으나 사람들이 어떻게 베토벤의 악보를 기억하고 십자말풀이를 할 수 있는지에 대한 해답을 주기는 어렵다. 고등동물에서의 실험적 연구나 사람의 심리학적 연구로 사람이 어떻게 정보를 처리하고 저장하는가에 대한 이론적 모델을 구성하는 데에 중요한 지식을 제공하나 사람의 뇌에서 일어나는 일을 직접적으로 증명하지는 못한다. 그래서 뇌손상 후에 일어나는 건망증은 사람의 기억체계에 대하여 특별히 중요한 증거를 제공한다.

약 40년 전 뇌와 행동의 실험적 연구의 선구자인 심리학자 칼 라쉬리 (1937) 는 기억이 뇌에서 어떻게 조직화되는가를 알아보기 위해 동물에게 어떤 특정한 과제를 학습시키고 대뇌피질의 여러 장소를 하나씩 절제하고 기억이 어느 장소에 저장되는가를 찾아 내려고 하였다. 그러나 어느 장소에서도 기억흔적은 찾아 낼 수 없었다. 이후의 여러 연구결과에 의하면 대뇌피질 뿐 아니라 뇌내의 여러 영역과 구조가 학습과 기억에 참여하며 특히 기억은 대뇌피질 여기저기에 분산하여 중복 저장되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도날드 헤브는 기억이란 뇌 안의 어느 특정 장소에 각인된 흔적으로 저장되는 것이 아니고 신경계의 구조적 변화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 구조적 변화라는 것은 신경세포들로 이루어진 고리의 활성에 의해 생성된다고 생각했다. 즉, 피질에서 시상이나 해마로 그리고 다시 피질에 이어지는 고리가 형성되고 이 고리를 구성하는 신경세포의 반복적 활성이 신경세포 사이의 시냅스를 기능적으로 연결한다는 것이다. 일단 결합이 이루어지면 이들 신경세포는 신경집합체로 기능하게 되어 그 집합체의 어느 신경세포가 흥분하게 되더라도 집합체 전체가 활성을 나타내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세포집합체 중의 어느 세포를 흥분시키는 감각, 사고, 감정에 대한 기억이 저장되고 인출될 수 있으며, 그 구조적 변화라는 것은 시냅스에 생기는 것으로 어느 신경세포가 다음 신경세포가 나타내는 효과를 증강시키는 일종의 성장과정 또는 대사의 변화라고 생각했다. 이 집합체라는 생각은 기억이란 정적인 기록이 아니며 뇌의 단일 신경세포나 분자의 구조적 변화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한다.

어떤 사실을 기억하려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과정이 순조롭게 이루어져야 한다. 즉 정보를 얻는 일, 그 정보를 유지하는 일, 그리고 그것을 인출하는 일이다. 기억에 장애가 있다는 것은 이들 세 가지 과정 중 어느 하나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의 기억이란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다. 사람은 각각의 정보를 일일이 학습하고 기억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은 지식의 틀을 만들고 그 틀의 구조가 지식의 학습, 저장, 상기를 유도한다고 한다. 기억은 능동적 과정으로서 기존의 지식은 항상 변할 수 있고 생각하는 뇌에 의해 검토되어 재공식화된다 는 것이다. 그래서 그 특성을 파악하는 것이 쉽지 않다. 또 사람은 경험했던 일들을 일반화하는 경향과 능력이 있다. 이 능력은 사람의 특이적인 천부적 능력의 하나이다.

(1) 학습의 해부학

신경과학자들은 뇌에 정해진 학습중추라는 것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고 아무리 간단한 학습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학습하고 저장하며 재생하기 위하여 뇌의 여러 부위가 함께 활동한다고 생각하여 왔다. 그러면 뇌는 어떻게 각각의 임무를 분담하는가? 또 뇌의 어느 부위가 어떤 특정한 학습요소와 관련이 있는가? 워싱턴 대학의 피터슨과 미에르 (1996) 는 양전자단층촬영기법을 이용한 사람에서의 단순한 운동학습과업 실험으로 문제해결을 향한 첫걸음을 내디뎠다.

연필로 미로를 따라가는 과업을 수행하는 동안 사람의 뇌영상을 이용하여 여러 뇌 부위의 대사활성의 변화를 추적함으로써 학습과정의 각 구성요소에 따르는 뇌의 각 부위의 활성을 알아보았다. 미로학습과업은 14명을 대상자로 하여 1분 동안에 여섯 번 단순한 미로를 따라 그리게 하였다. 여섯 번의 시행을 수행하는 동안에 뇌의 특정 부위의 활성이 변하였다. 학습과업의 여러 측면에 있어서의 개선 정도를 추적하여 특이한 학습곡선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변화곡선과 뇌의 활성변화와의 상관관계를 알아봄으로써 뇌의 각 부위와 학습과업의 여러 구성요소와를 연관시킬 수 있다.

예를 들면 첫 번째 시행에서는 머뭇거림이 잦았다. 이 초기학습에서는 오른쪽 운동전피질의 활성이 높았다. 머뭇거림의 횟수는 시행이 두 세 번 거듭되는 동안 급속하게 떨어졌다. 동시에 운동전피질의 활성은 떨어지고 운동보영역의 활성은 올라갔다. 오류 횟수는 처음 두 번의 시행에서는 높았다. 오류 횟수가 떨어짐에 따라 왼쪽 소뇌와 오른쪽 두정엽피질의 활성도 떨어졌다. 마지막 두세 번의 시행에서는 오류는 더 이상 감소하지 않았다. 그리고 미로를 따라 그리는 속도는 빨라졌다. 이때에는 1차 운동영역의 활성이 한층 높아졌다. 이 같은 활성의 상승은 단순히 펜을 움직이는 속도와 관계가 있었다. 학습이 충분히 이루어지기 전에도 활성은 나타내기 때문이다. 그러나 뇌의 다른 부위들은 학습과정의 여러 구성요소와 관계가 있다고 생각되었다. 어떤 것은 그럴 듯 하지만 오리무중인 것도 있었다. 학습과업 시행 초기에 운동피질의 활성이 높았던 것은 뇌의 이 부위가 운동의 계획수립역할을 담당하기 때문으로 생각되었다. 그리고 머뭇거림의 감소와 운동보영역의 활성화는 운동순서의 학습과 관련이 있다. 이는 원숭이의 실험에서도 증명된 것으로 원숭이가 운동의 순서를 학습하게 되면 운동보영역이 활성화된다. 소뇌는 행동의 조율에 관계된다. 오류 횟수가 감소하면 소뇌의 활성이 덜어지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다만 두정엽피질의 활성이 오류 횟수 감소와 함께 떨어지는 현상은 아직 설명이 쉽지 않다. 공간인식과 관계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물론 이 같은 간단한 실험으로 학습에 관련되는 뇌의 해부학적 구조를 모두 설명할 수는 없으며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와 같은 연구가 거듭되면서 학습의 해부학이 상세하게 밝혀질 것이다.

양전자방출단층촬영술이나 기능적 자기공명영상술을 이용하면 넓게 분포하는 뇌기능의 공간적 기능지도가 작성될 수 있다. 그러나 아직도 수 초라는 시간적 해상력의 제한 때문에 작업기억 같은 단기기억의 저장처럼 일시적으로 빠르게 변하는 기능을 영상화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1977년 윌리암손은 초전도양자간섭계 (SQUIDs) 라는 장치를 이용한 자기원영상술 또는 자기대뇌촬영술로 이같이 빠르게 변하는 뇌의 활성을 영상할 수 있었다. 이 SQUIDs 라는 장치는 뇌에서 뉴런의 신호발사에 의해 생성되는 미세한 자장을 검출할 수 있다.

윌리암손은 세 사람을 대상으로 실험하였다. 바둑판무늬의 체커판을 1/10 초 동안 힐끗 보여 주고 뇌의 활성을 측정하였다. 초기 1/2 초 이내에 후두엽의 1차 시각피질에서 활성이 나타나기 시작하여 오른쪽 전두전피질과 왼쪽 두정엽-후두엽-측두엽 경계부의 피질로 옮겨 갔다. 다음 실험에서는 체커판을 여러 가지 시간 간격으로 두 번 보여 주었다. 시간간격이 매우 짧았을 때 (1/10 초) 는 두 번째 자극에 대해서만 후두엽에서 신호발사가 있었고 정보처리 하류부위에서는 신호발사가 없었다. 그러나 시간간격을 10, 20, 30초로 증가시키면 하류부위에서도 신호발사가 있었다. 그래서 기억의 소거과정은 축전기에서의 방전과 같은 성질일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이 결과는 뇌에서의 정보처리과정을 경시적으로 설명하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 것이나 뇌의 심부에서 일어나는 뉴런활성의 이해까지는 아직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

(2) 뇌손상

뇌손상 환자를 통하여 사람의 학습과 기억에 관한 매우 중요한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네 가지 유형의 기억상실 환자가 임상적으로 잘 알려져 있다.

첫 번째 유형은 이미 언급한 환자 H.M. 으로 간질을 치료하기 위해 양측 해마와 편도핵의 대부분을 절제하여 건망증을 나타낸 경우이다. 수술 3년 이전의 기억은 정상인데 서술기억을 단기기억으로부터 장기기억으로 이송하는 것에 장애가 있었다. 그는 세상사를 기억할 수는 없었으나 어떤 일을 어떻게 하는가는 학습되었다.

두 번째 유형으로 환자 N.A. 는 또 하나의 유명한 건망증 예이다. 펜싱 검으로 코에서부터 찔려 뇌손상을 입은 환자이다. 환자 H.M. 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 환자는 사고 전의 기억에는 장애가 없는 것 같았다. 그러나 새로운 것의 학습에 지장이 있었다. 특히 학습자애는 학습의 재료가 언어적일 때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일련의 단어나 문장은 곧 잊어 버렸으나 공간적 위치나 얼굴은 쉽게 기억하였다. 시상의 좌측내배측핵에 손상이 있었던 환자이다.

세 번째 유형의 콜사코프증후군은 장기간 음식을 먹지 않은 알코올 중독 환자에서 나타났다. 이 병은 주로 비타민B1 결핍으로 발생하며 진행성으로 초기에 발견되어 대량의 비타민B1 을 투여하면 치료될 수도 있다. 콜사코프증후군 환자는 새로운 사실의 학습에 지장이 있을 뿐 아니라 발병 이전의 기억도 상실한다. H.M. 또는 N.A. 환자와 달리 콜사코프증후군 환자는 사고나 문제해결능력에 장애가 있다. 문제해결에 있어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과제가 주어지면 그 발상이 부적절하다는 것을 분명히 알면서도 그것을 고집한다. 예를 들어 여러 가지 기하학적 도형이 그려진 카드를 나열하고 어느 도형이 정답인가는 알려 주지 않고 환자에게 카드를 하나씩 버리게 한다. 삼각형의 도형이 그려진 카드를 집어 들면 "맞았습니다. 삼각형이 정답입니다." 라고 한다. 그리고 사고능력을 시험하기 위해 환자가 그 이후 계속해서 삼각형의 카드를 집어 내는가를 수 회 관찰한다. 그리고 나서 정답을 동그라미로 바꾼다. 즉, 삼각형을 집어 들면 정답이 아니라고 일러준다. 그러면 정상인이나 H.M. 또는 N.A. 환자는 다른 카드를 집어 들게 되고 결국 동그라미 카드를 집어 들 게 된다. 그런데 콜사코프증후군 환자는 계속 삼각형 카드를 고집한다. 콜사코프증후군 환자의 뇌손상은 광범위하다. 대부분의 경우 시상의 손상이 있으며 그것에 더하여 소뇌와 대뇌피질 특히 전두엽의 신경세포 소실이 있다. 전두엽손상 환자에서는 건망증이 나타나지 않지만 문제해결에 있어 오반응을 고집한다는 임상보고가 있으므로 문제 해결의 오반응고집이 건망증과는 직접 관련이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네 번째의 건망증은 전기충격요법에 따르는 건망증이다. 전기충격요법은 중증의 우울증을 치료하기 위해 이용되는 것으로 단기기억에는 장애가 생기나 장기기억은 정상이다. 뇌의 어느 영역이 가장 크게 영향을 받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경련발작에 대단히 예민한 측두엽과 해마에 대한 영향이 건망증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알려졌다. 이상의 임상적 예는 건망증에 관여하는 특정 뇌영역에 대한 지식은 측두엽과 해마가 기억기능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생각에 크게 공헌하였다.

건망증은 기억하는 일이 안 되는 것뿐 아니라 기억했던 것을 잊어 버리는 일도 있다. 건망증을 나타내는 환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장애가 알려진 두 가지 뇌영역이 기억기능에서 두 가지 서로 다른 역할을 한다는 것이 알려졌다.

한 가지 연구에서는 정상인, H.M. 환자 그리고 콜사코프증후군 환자에게 120장의 슬라이드를 차례로 보여 주었다. 정상인의 경우에는 1초마다 한 장씩 보여 주었다. 일주일 후에 보여 주었던 슬라이드와 몇 장의 새로운 슬라이드를 하루에 10분간 보여 주고 슬라이드를 재인식하는지를 검사하였다. 콜사코프증후군 환자가 10분 후에 망각하는 비율은 정상인과 비슷하였으나 H.M. 환자는 대단히 빠르게 망각했다. 또 다른 실험에서 콜사코프증후군 환자의 망각률은 정상인과 비슷했으나 전기충격요법을 받은 환자는 대단히 빠르게 망각하였다. 또 N.A. 환자의 망각률도 정상이었다.

새로운 슬라이드에 대한 망각률이 비교적 정상이었던 N.A. 환자나 콜사코프증후군 환자는 시상에 손상이 있는 것이다. 대단히 빠르게 망각했던 H.M. 환자나 전기충격요법을 받은 환자는 해마와 측두엽에 손상이 있는 것이다. 이들 두 가지 서로 다른 영역은 정상적인 기억기능에 있어서 본질적으로 서로 다른 기본기능이 있다는 것을 암시했다. 원숭이를 이용한 실험으로 이 점을 분명히 했다. 시상을 절제한 원숭이는 급속한 망각이 일어나는 일이 없었으나 해마나 편도핵을 절제한 원숭이는 급속한 망각을 나타내었다.

해마와 편도핵 그리고 이들과 관련이 있는 뇌영역들은 기억의 고정, 서술기억의 장기기억으로의 이송에 필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시상은 어떤 서술적 정보의 초기 부호화에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네 가지 건망증은 예 중에서 콜사코프증후군 환자만이 발병 이전의 사실에 대한 기억장애를 나타내었다. 그리고 사고능력의 장애도 나타내어 문제해결에 있어서 오답을 고집하였다. 이 환자에서만 대뇌피질의 손상이 있었던 것이다.

(3) 환경과 뇌의 가소성

사람의 신생아 뇌는 성인 뇌의 약 25% 이다. 뇌 신경세포의 크기나 신경결합 그리고 회로의 복잡성은 사람이 성장하면서 여러 가지 세계의 사물과 교섭하면서 발달한다. 신경발달의 양식화를 위한 청사진은 두말할 것도 없이 유전자에 의해 결정된다. 그러나 경험도 이 발달양식화에 영향을 미친다. 풍요로운 환경에서 사육한 흰쥐는 고립하여 사육한 흰쥐보다 대뇌피질이 두껍고 무거웠다고 한다. 이것은 동물의 뇌가 환경에 의해 해부학적 구조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증명한다. 풍요로운 환경에서 사육한 흰쥐의 피질에서는 신경세포의 수상돌기에 더 많은 가시가 있었고 시냅스도 고립하여 사육한 흰쥐보다 50% 나 컸고 시냅스 숫자도 많았다. 장기간 환경에서 고립시키는 실험을 사람을 대상으로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때로는 기괴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1970년 캘리포니아에서 발견된 지니라는 소녀가 그런 경우이다. 지니가 발견된 것은 13세 때였다. 지니는 그 방에서 한 걸음도 밖으로 나와 본 일이 없었다. 지니는 발가벗은 채로 그의 아버지가 만든 작은 의자에 특수한 쇠사슬로 묶여 있었다. 손발만을 움직일 수 있는 정도였다. 아이가 불쌍하다고 생각했던 정신이상인 아버지는 눈이 보이지 않는 어머니가 아이에게 말을 걸지 못하도록 금지했다. 지니는 13년 동안 우유와 유아식만으로 자랐다. 지니가 발견되었을 당시 체중은 27Kg 이었다. 팔과 다리를 곧게 펼 수 없었다. 말을 이해하지도 못하고 이야기할 줄도 몰랐다. 모친의 말에 의하면 (아버지는 지니가 발견되자 자살하였다) 지니는 정상아였다고 한다. 그 후 6년간 지니는 심리학자의 훈련과 검사를 받았고 주위 세상과 여러 가지로 교섭하게 된다. 지니는 다소의 언어를 이해하게 되어 2~3세 수준의 말을 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우유 줘' 또는 '두손' 등을 학습하였다. 도구를 사용한다거나 어떤 사태의 인과관계를 결부시키는 것도 학습하였다. 그리고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갈 수도 있었다. 예를 들면 과자가게에 갈 수 있었다. 이는 마음 속에 공간지도를 형성할 수 있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1977년 지니의 비언어적 지능지수는 74 였다. 이는 정상범위의 낮은 수준이다. 그러나 지니의 언어능력은 더 이상 발달하지 않았다. 그래서 두 살 짜리 어린아이도 절대로 범하는 일이 없는 실수를 범하였다. 말을 듣거나 그림을 보고 있는 동안의 뇌파소견에 의하면 통상적으로는 좌뇌반구가 언어에 대하여 특수화되어 있는데 지니의 경우에는 언어적 및 비언어적 기능에 모두 우뇌반구를 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니가 성장기를 지냈던 것보다 철저하게 자극이 박탈된 혹독한 환경은 없을 것이다. 지니의 대뇌피질이나 신경양상 그리고 시냅스의 발달 정도에 대하여는 아는 것이 없다. 그러나 사람이 인간답게 행동하려면 사람의 신경계는 사람답게 발달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할 수 있다.

사람의 신경계의 가소성은 습관화 같은 단순한 학습에서부터 학습하고 기억하며 조작하고 창조하는 능력으로 전개된다. 사람의 기억과 뇌의 정보처리능력은 방대하여 그 복잡성에 접근하는 일은 컴퓨터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4) 독서장애와 언어구조

백 년 전 영국의사 몰간은 현재 독서장애라고 하는 학습장애를 처음 기술하였다. "14세 된 퍼시는 똑똑하고 총명한 아이였다. 놀이도 그 아이 또래의 다른 아이들에 비해 못지 않게 잘 배웠다. 그 아이의 가장 큰 장애는 읽기를 배우는 것이었다." 이 간략한 몰간의 글이 지난 한 세기동안 과학자들은 곤혹스럽게 만들었던 것이다. 정상적인 지능을 가진 사람이 읽기의 학습에만 곤란을 겪는 이유는 무엇인가? 똑똑하고 의욕이 있는 사람이 교육을 받았다면 읽기를 배울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독서장애의 예가 상당수 실제로 존재한다.

1920년대에는 시각계통의 결함이 독서장애를 일으킨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눈을 훈련시키는 처방이 독서장애 교정에 흔히 이용되었다. 그러나 독서장애는 시각계통의 결함에 의한 것이 아니고 언어계통에 관계되는 인지능력 결함에 의한다는 것이 밝혀지게 되었다. 특히 독서장애는 회화나 문장을 구성하는 음소라고 하는 독특한 언어단위의 처리에 결함이 있는 것이다. 최근에 지능이 정상적인 사람의 독서장애를 설명하는 언어학적 모델이 소개되었다. 음성처리과정에 근거하는 독서장애 모델이다.

음성학적 모델을 이해하려면 우선 언어가 뇌에서 어떻게 처리되는가를 알아야 한다. 언어계통에는 언어의 각각 다른 측면에 관련되는 모듈 또는 구성성분의 서열이 있다. 상위서열의 구성성분은 어의, 문장 구성법 및 문장 연결법에 관련된다. 하위서열은 언어를 구성하는 특이한 음소를 처리하는 음성학적 모듈이다.

음소라는 것은 언어계통의 기본구성성분이다. 영어의 모든 단어는 44개 음소의 조합으로 이루어진다. 단어를 이해하고 기억하고 그것을 기억에서 인출할 수 있으려면 우선 뇌의 음성학적 모듈에 의해 단어가 각각의 음소로 나누어져야 한다. 회화언어에 있어서는 의식 전 수준에서 이 과정이 자동적으로 이루어진다. 말하는 사람에게는 유전적으로 결정된 음성학적 모듈이 어휘의 음소들을 자동적으로 조립되지만 듣는 사람에게는 이것이 다시 음소구성성분으로 해체된다고 한다. 즉, 사람의 회화에서 인두, 비천장, 혀 그리고 입술 같은 언어기구가 자동적으로 음소를 압축하여 어휘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독서는 숙달되기 힘든 회화언어의 일종이다. 독서나 회화는 모두가 음성학적 처리과정에 관련되는 것이지만 분명한 차이가 있다. 회화는 자연적인 것이지만 독서는 그렇지 않다. 독서는 하나의 발명이고 의식수준에서 학습해야 하는 것이다. 독서에서 주어진 과업은 시각적 문자감각을 언어감각으로 전환시키는 것이다. 이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우선 발음된 어휘의 내재적인 음성학적 구조를 의식적으로 인지해야 한다. 그리고 나서 그 음성학적 구조에 따라 철자법을 인식해야 한다. 이 과정이 어린아이들이 처음 읽기를 배울 때 일어나는 과정이다.

독서장애가 있는 어린아이들에게는 음성학적 모듈 수준에서의 언어 계통에 결함이 있다. 그래서 음성학적 성분들을 문자로 구성하는 능력에 장애가 생긴다. 이를 음성학적 결함 가설이라 한다. 이 가설에 따르면 음성학적 처리과정에 있어서의 한정된 결함이 어휘 식별을 방해한다. 하위 수준의 언어기능인 이 기본적 결함이 고위 수준의 언어처리를 차단하여 본문의 의미파악을 방해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해력 또는 의미파악에 있어서의 언어처리과정에는 장애가 없더라도 우선 어휘를 식별할 수 있어야 하므로 독서에 장애가 생기는 것이다. 이 음성학적 결함은 독서에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회화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에 관한 증거는 20년 전부터 수집되기 시작하였다. 최초의 실험적 연구의 하나는 이사벨 리버만이 수행한 것이다. 어린아이들은 4 내지 6세가 되면 발음된 어휘의 음성학적 구조를 인식하게 된다. 이 실험은 어린아이들에게 일련의 어휘들을 들려 주고 몇 가지 소리들을 들었는가를 묻는 것이다. 네 살 짜리 어린아이들은 음소를 식별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5세가 되면 17% 의 어린아이들이 음소를 인식하였고 6세가 되면 70% 의 어린아이들이 인식하였다. 6세 어린이의 대부분은 취학하여 읽기 과제가 주어졌고 읽기의 개선 정도는 음성학적 인식의 발달에 비례하였다. 샬리 쉐이위츠는 1983년에 445명이 초등학교 학생을 무작위적으로 선발하여 1996년 이들이 19세가 될 때까지 계속하여 관찰하였다. 이 연구에서 취학아동의 약 20% 에서 독서장애가 발견되었다. 이 결과는 앞서의 리버만의 연구결과와 매우 유사한 수치로서 음성학적 인식과 독서의 관계를 뒷받침하는 것이다. 1980년대의 여러 학자들도 음성학적 인식을 개선시키는 훈련으로 독서능력이 현저하게 향상된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이 연구에서는 어휘를 소리에 따라 나누게 하는 음성학적 처리과정을 훈련한 그룹과 어휘의 음성구조를 강조하지 않고 어휘를 뜻에 따라 나누는 읽기 훈련만 받은 그룹으로 나누었을 때 음성학적 인식훈련을 받은 그룹의 읽기 능력 향상이 분명하게 나타났다.

이 같은 음성학적 처리과정이 뇌에서 어떻게 일어나는가를 직접적으로 증명하는 일은 실험동물로는 불가능하므로 뇌손상환자에서 부분적인 지식을 얻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1980년대 후기에 기능적 자기공명영상술이 개발되면서 뇌의 회로 연구에 혁신이 있게 되었다. 이 방법은 인지기능을 수행하는 동안에 뇌의 대사활성의 변화를 측정할 수 있어서 뇌의 기능지도 연구에 적합한 것이다. 최근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문자의 식별은 후두엽의 선조외피질에서 일어나고 음성학적 처리는 브로카 영역이라고 알려진 하전두회가 담당하며 의미파악은 1차적으로는 상측두회 그리고 중측두회와 상근연회에서 처리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그림 7). 또 음성학적 처리과정이 일어나는 부위에 있어 남녀의 차이가 있음도 관찰되었다. 머지않아 독서장애를 신경학적으로 이해하고 이를 교육에 응용하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그림 7  독서에 관련되는 뇌의 기능적 구조. 기능적 자기공명영상에 의한 기능 지도이다. 문자인식에서 후두엽의 선조외피질이 활성을 나타내고 음성학적 처리에는 하전두회 (브로카 영역) 가 활성을 나타내며 의미파악에는 주로 상측두회가 활성을 나타내고 중측두회와 연상회의 일부가 활성을 나타낸다.

말은 사람과 동물을 확실하게 구분하는 것이다. 언어는 문화적 배경에 따라 서로 다르다. 따라서 언어는 선천적 결정요인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언어는 감각-운동 기구로 이루어진다. 언어에서는 우리가 듣거나 발성할 수 없는 진동수의 소리는 이용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대단히 다양한 언어 사이에도 공통된 문법의 원칙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언어의 구조는 뇌의 구조에 의해 강제되는 개념적 구속에 의해 결정된다고 한다.

사람의 언어발달에 있어서의 환경인자와 생물학적 구속 사이의 상호작용을 실험적으로 밝히기는 쉽지 않다. 몇 가지 의사소통모델은 동물실험으로 가능하다. 비인간 영장류는 신호언어를 이용한 의사소통법을 가르칠 수 있다. 새의 지저귐도 사람의 언어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나 의사소통의 기능이 있다. 새의 지저귐에서 선천적 인자와 환경 사이의 상호 작용을 잘 나타내는 예가 있다. 병아리는 다른 병아리 소리를 듣지 못하도록 격리하여 키워도 정상적인 소리를 낸다. 그러나 되새나 앵무새는 격리 사육하면 정상적인 소리를 내지 못한다. 즉, 이 새들은 다른 새소리를 들어야 완전한 소리를 낼 수 있는 것이다. 이 새들에게는 자신이 내는 소리와 비교할 내장된 형판이 있다. 귀머거리 새의 소리는 불완전하기는 하지만 아무 소리나 내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모든 행동은 유전적 및 환경인자의 상호 작용으로 이루어지고 학습된 행동과 타고난 행동의 분명한 구별은 힘들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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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5 [과학] 학문적(과학적) 접근과 유사 진화심리"학" 26 날씨가나쁘잖아 19 2024.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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