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지식

[하릴 없을 때 써보는-형법 이야기 (1)] 사기죄

모두들 안녕! 

 

주로 눈팅만 하다가 오늘은 여유가 좀 있어서 글을 하나 써 볼까 해. 

 

개드립이든 다른 커뮤니티든 가끔 법 관련한 글이나 문의 비슷한 게 많이 올라오는데, 

나도 뭐 그렇게 대단히 많이 아는 건 아니지만 아는 선에서 - 특히 실제로 많이 접할 수 있을 법한 내용으로 - 몇 자 적어보려고 해. 

 

민사 쪽은 안 본지가 꽤 되어서 기억이 가물가물하니 형사 위주로 써 볼 거 같아.

동종업계 선배님들도 몇몇 계신 걸로 아는데, 내 지식이 일천하니 이상한 부분에 대한 태클은 언제든 환영이야! 

 

(1) 개요

 

첫 글은 사기죄에 대해서 적어볼 생각이야. 

 

사기죄를 택한 이유는,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는 너무너무 억울해서 이게 사기라고 생각하는데, 

수사기관에서는 법리 상 사기죄가 성립하지 않는 것으로 판단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기 때문이야.

 

(2) 일반적 법리 

 

사기죄에 관하여 구체적으로 따져보기 전에, 우선 '구성요건'이란 걸 설명할 필요가 있을 거 같아. (아주 간단하게)

 

형법 체계는 기본적으로 '죄형법정주의' 와 '책임주의'에 입각하고 있어.

전자는 '법에 정해져 있어야만 죄가 성립할 수 있다'는 거고 후자는 '책임 있는 자에게만 죄를 묻는다'는 거야 

 

여기서 도출되는 게 앞서 말한 '구성요건'인데, 이건 흔히 '주관적' 요건과 '객관적' 요건으로 나뉘어.

전자가 다들 잘 알고 있는 고의, 과실 이런 거고, 후자가 (대체로) 법문에서 찾을 수 있는 요건들이야.

 

(3) 사기죄의 구성요건

 

형법 347조(사기)와 347조의2(컴퓨터등사용사기) 및 특정경제범죄처벌등에관한법률(통상 '특경법')에서 사기죄에 관한 처벌규정을 두고 있어.

대표적인 게 형법 347조이니, 여기서는 일단 347조의 사기에 대해서만 살펴볼까 해.

(컴퓨터등사용사기는 통상 atm기나 컴퓨터, 휴대폰 등을 이용한 사기에 적용되고, 그 대상이 재산상 이익이라는 것만 빼면 사기와 동일해.)

(특경법도 이득액에 따른 가중처벌 조항이라 마찬가지로 법리는 동일하고)

 

위 조항을 살펴보면, 

사기죄는 '사람을 기망하여 재물의 교부를 받거나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한 경우 성립해. 

 

여기서 법조문만으로 찾을 수 없는 (내지 찾기 힘든) 구성요건이 있는데,

1) 대체로 형벌 조항에는 주관적 구성요건은 포함시키지 않아서 '고의'는 법문상 드러나지 않아도 모두 요구하는 것으로 보아야 해.

그러니 사기의 고의가 있어야 하고,

2) 나머지는 착오 - 처분행위 - 인과관계라는 이 3가지 객관적 구성요건이야. 

 

그러니까 이걸 모두 합하면 "사기죄가 성립하려면 (사기의 고의로) 행위자의 기망행위, 피기망자의 착오와 그에 따른 처분행위, 그리고 행위자 등의 재물이나 재산상 이익의 취득이 있고, 그 사이에 순차적인 인과관계가 존재하여야 한다" (대법원 2017. 9. 26. 선고 2017도8449 판결)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는 거야.

 

(4) 일반적 유형

 

위 구성요건에 관한 이야기는 더 파고들자면 얼마든 깊게 갈 수도 있는데 그러면 지나치게 현학적으로 되어 버리는데다 실생활에서 접하기 힘든 사기의 유형들도 많이 만나게 되어서 오늘은 패스하도록 하고, 

 

여기서는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접할 수 있는 2가지 사기 유형에 대해서만 다뤄보도록 할게. 

 

1) 차용사기

 

보통 '돈을 빌렸는데 떼였다'고 하는 유형인데, 굉장히 사건 수가 많았음에도 민사상 금전채무에만 해당하는지, 형법상 사기죄도 구성하는지 애매한 경우가 많아.

 

즉, "A가 B에게 2022. 2. 2. 100만원을 빌리면서 2023. 2. 1.까지 갚기로 했다. 그런데 B는 2023. 2. 1.에 A에게 100만원을 갚지 않았다"는 내용만으로는 보통 사기가 성립할 수 없어. 

 

그 이유는 보통 A의 '행위시' '사기의 고의'를 입증할 수 없기 때문이야.

 

우리가 아까 '고의'에 대해서 봤는데, 고의는 아주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일반적으로 행위시, 그러니까 해당 범죄를 하기 시작했을 때(실행의 착수)에만 요구되기 마련이야. 따라서 A에게 사기죄가 성립하려면 A가 B로부터 '돈을 빌리는 순간'에 그 고의가 인정되어야 해. 

 

그런데 어떤 범죄자가 '내가 사기범이오' 하겠어? 당연히 부인하지.

이럴 때 사기의 고의를 인정하는 표지로 법원이 드는 것은 '돈을 빌릴 당시에 빌리는 자에게 갚을 능력과 의사가 있었느냐'는 거야. 

문제는, 이걸 입증하기가 너무 어렵다는 거지. 그래서 억울한데도 사기죄가 성립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어.

 

전세사기도 논리구조는 차용사기와 거의 똑같다고 보면 되는 거지.

즉, 전세금을 세입자에게 반환해줄 수 없는 상황임을 알면서도 건물을 임대하면서 세입자에게 전세보증금을 받았다는 사실이 입증되어야 사기의 고의를 인정할 수 있는 거야. (반대로, 임대차계약 체결 시에는 보증금 반환이 가능했는데, 이후 사정이 안 좋아져서 못줬다는 식으로 나오면 적어도 사기가 성립하기는 어려워지는 거지)

 

2) 용도사기

 

차용사기와 유형적으로 구별되는 것이 용도사기인데, 이거는 '알려줘야 하는 사실을 알려주지 않아서 또는 다르게 알려주어서' 발생한 경우가 많아.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레퍼토리가 '어머니 병원비로 쓴다 그래서 빌려줬는데, 알고 보니 도박하는 데 썼다더라' 이런 거지. 

 

다만, 얘는 종종 빌려주거나 증여했던 사람 쪽에서 '반환받을 의사가 없었다'는 이유로 사기가 성립하지 않는 경우가 있어.

예컨대, 애인, 가족 등등의 경우에 돈을 받은 사람이 용도를 허위로 알려줬더라도 빌려준 사람이 딱히 나중에 받을 의사 없이 호의로 준 것이라면 이건 어차피 그냥 줄 거였기 때문에 사기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거야.

 

(5) 결어

 

사실 실무적으로 사기는 그 태양 자체가 너무 다양해서 하나하나 따지고 들자면 케이스마다 논문을 하나씩 쓸 수 있을 정도라

이렇게 짧게 쓰는 게 오히려 오해/오독을 부를까 다소 염려가 되는 부분도 있긴 해.

 

다만, 아무래도 법조문은 법전에 써있는 걸 액면 그대로 이해해서는 아예 해석 자체가 틀릴 가능성을 항상 내포하고 있으니

뭔가 불안하다 싶으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았으면 좋겠고,

 

무엇보다 금전관계에 있어서는 항상 계약서를 꼼꼼하게 검토하고, 못받을 거 같으면 아예 빌려주질 말든가 아님 그냥 받지 않을 생각으로 주는 게 맞는 거 같아. (그런 돈까지 나중에 받으려 하면 꼭 문제가 생기더라고)

 

또 액수가 커지면 변호사나 법무사의 동석까지는 어렵더라도

날짜라도 공증을 받으면 설령 나중에 송사에 휘말리더라도 유리하게 진행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쓰다보니 쌉노잼이라 나중에 또 쓸지는 모르겠네 ㅋㅋ.. 

그냥 지금 드는 생각으로는 다음 테마로 무고나 주거침입에 관해서 써보면 어떨까 싶어.

 

그럼 이만!

16개의 댓글

좋은글 잘 읽었어. 무고나 주거침입편도 기대할게! 소수의 개붕이들을 위해 명예훼손 모욕죄 편도 써주면 추천수 폭발할 것 같다. ㅋㅋㅋㅋㅋㅋㅋ

0
2022.06.29
@한수영아바타01

모욕이나 명예훼손은 구글링만 해도 나오는 글이 워낙 많아서 ㅋㅋ.. 그리고 커뮤 하다 보면 대충 다들 잘 알더라고. 암튼 고려해볼게!!

0
@수수한옥수수

구글링 해서 보는 거랑 같은 커뮤 사람이 작성하는 건 와닿는게 다르다고 생각해. 어떤 글이든 기대할게! 고맙다~

0
2022.06.29

좋은 내용이라 추천

0
2022.06.29

학교에서 형법 넘모 재밌게 들었던 기억이 있다. 개인적으로 법은 기본적인 수준은 누구나 다 배울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음 ㅠ 특히 형법이나 민법은 살면서 부딪힐 문제들에 요긴하게 쓰이니까

0
2022.06.30

일반인 입장에서 처분행위 개념이 제일 골때리지 않을까...

0
2022.06.30
@년째도망중

법조인 입장에서는 '이게 처분행위인가?' 싶은 게 있을 수는 있는데 일반적으로는 웬만해서 피해자 처분행위를 부인해서는 실무상 다투기 쉽지 않고

 

케이스도 서명사취나 어음채무 면제 같이 특수한 경우에만 문제가 된데다가 특히 서명사취판례에서 사실상 처분행위는 문제될 여지가 거의 없게 만들어놨다고 생각해서 ㅋㅋ...

 

말한대로 비법전공이 이해하기는 처분행위 파트가 젤 어려울거 같긴 해. 형법만 보고는 이해하기 힘든 요소이기도 하고.

0
2022.06.30

글 잘읽어서 추천 근데 하릴없다는 할일없다가 아니라 어쩔 도리가 없다는 뜻임...

1
2022.06.30
@하델

와 진짜 처음 알았어 ㅋㅋ 고맙다

0
2022.07.01

나도 옛날에 개드립에 열심히 글도 써보고 정보도 전달해봤었는데 백날 써봐야 읽어야 할 놈들(대다수)는 안 읽고 읽을 필요도 없는 소수만 읽을 뿐이더라

 

스스로 지식을 정리하는 목적이거나 단순히 자기만족을 위해 쓰는 거라면 화이팅이지만 그게 아니라 조금이라도 지식을 전파/대중을 계몽하기 위해 적는거라면 헛수고라고 말해주고 싶네

 

판결뉴스 나오면 뭐가 뭔지도 모르면서 변호사욕 판사욕하다가 막상 법률지식이 필요해지면 그때만 잠깐 변호사 찾아와서 선생님 선생님 이러는 이 국민성은 적어도 단기간 안에 바뀌긴 어려울듯

0
2022.07.04
@벙글벙글

굳이 그런 의식을 가지고 쓸필요가.. 선민사상으로 이어질 위험이 큰데 너

0

개붕아 딴지거는거 같아서 미안한데 하릴없다 라는 단어 잘못쓴거같애

0
2022.07.01
@모카싫은문익점

위에서 말해줘서 알았어 ㅋㅋ..

0
@수수한옥수수

아 있네 ㅋㅋ 쏘리

0
2022.07.02

난 형법이 내 취향일 것 같았는데 정작 상법이 더 재밌더라..글 잘 읽었음!

0
2022.07.04

할랄 ㅇㄷ??

0
무분별한 사용은 차단될 수 있습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추천 수 날짜
5247 [기타 지식] 아무리 만들어봐도 맛이 없는 칵테일, 브롱스편 - 바텐더 개... 3 지나가는김개붕 1 2 일 전
5246 [기타 지식] 일본에 의해서 만들어진 칵테일들 편 - 바텐더 개붕이의 술 ... 2 지나가는김개붕 6 4 일 전
5245 [기타 지식] 중국에서 안드로이드 폰을 사면 안되는 이유? 10 대한민국이탈리아 22 5 일 전
5244 [기타 지식] 최근 지각변동이 일어나는 국내 항공업계 (수정판) 15 K1A1 23 8 일 전
5243 [기타 지식] 도카이촌 방사능 누출사고 실제 영상 21 ASI 2 12 일 전
5242 [기타 지식] 웹툰 나이트런의 세계관 및 설정 - 지구 2부 21 Mtrap 8 12 일 전
5241 [기타 지식] 100년을 시간을 넘어서 유행한 칵테일, 사제락편 - 바텐더 개... 5 지나가는김개붕 1 14 일 전
5240 [기타 지식] 오이...좋아하세요? 오이 칵테일 아이리쉬 메이드편 - 바텐더... 3 지나가는김개붕 2 16 일 전
5239 [기타 지식] 웹툰 나이트런의 세계관 및 설정 - 지구 1부 31 Mtrap 13 16 일 전
5238 [기타 지식] 칵테일의 근본, 올드 패션드편 - 바텐더 개붕이의 술 이야기 15 지나가는김개붕 14 17 일 전
5237 [기타 지식] 웹툰 나이트런의 세계관 및 설정 - 인류 2부 22 Mtrap 14 16 일 전
5236 [기타 지식] 웹툰 나이트런의 세계관 및 설정 - 인류 1부 13 Mtrap 20 17 일 전
5235 [기타 지식] 서부 개척시대에 만들어진 칵테일, 카우보이 그리고 프레리 ... 3 지나가는김개붕 5 21 일 전
5234 [기타 지식] 모던 클래식의 현재를 제시한 칵테일편 - 바텐더 개붕이의 술... 4 지나가는김개붕 2 22 일 전
5233 [기타 지식] 브라질에서 이 칵테일을 다른 술로 만들면 불법이다, 카이피... 5 지나가는김개붕 1 24 일 전
5232 [기타 지식] 럼, 라임, 설탕 그리고 다이키리 편 - 바텐더 개붕이의 술 이... 2 지나가는김개붕 6 24 일 전
5231 [기타 지식] 1999년 도카이촌 방사능누출사고 대량 방사능 피폭 피해자들 ... 9 ASI 5 25 일 전
5230 [기타 지식] 진짜 레시피는 아무도 모르는 칵테일 싱가포르 슬링편 - 바텐... 3 지나가는김개붕 2 25 일 전
5229 [기타 지식] 통계로 보는 연애 상황에서 외모의 중요성 8 개드립에서가장긴... 11 28 일 전
5228 [기타 지식] 추울 수록 단맛이 유행한다, 위스콘신 스타일 올드 패션드편 ... 1 지나가는김개붕 8 29 일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