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

수요일은 정기 휴일입니다

뉴욕의 교외에는 그 찻집이 있었다.
오직 가게의 이름과

"수요일은 정기휴일"

이라는 공지만 쓰인 무뚝뚝한 간판. 가게의 마스터 역시 과묵하고 완고한 성격.

그 가게의 쥬크박스에는
마스터가 좋아하는, 영국 출신으로 전세계에서 대성공한,
지금은 해산해 버린 한 그룹의 노래 밖에 없었다.


몇 년 전의 요즘 같은 계절.
그 날은 오후에 갑자기 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큰 길가에는 비를 맞으며 빠른 걸음으로 다리를 오가는 사람들로 붐비고
그 중 한 명이 가게에 들어왔다.

꽁꽁 언 몸으로 전신을 부들부들 떨던 그 남자는,
마스터가 좋아하는 밴드 멤버 중 한 명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깨달은 마스터는 한 순간 눈이 휘둥그레져서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러나 곧바로 익숙한 솜씨로 주문된 커피와 마른 타올을 내밀었다.

몸을 닦고 안경을 닦은 후 커피를 마시며 가게 안을 둘러 보는 남자.
가게 구석에 놓인 쥬크박스에 시선이 닿았다.
자신의 밴드 노래만 들어있다는 것을 깨달은 남자는
쑥스러운 듯 코인을 꺼내 쥬크박스를 가동했다.
흘러나오기 시작한 곡을 들으면서 남자는
스스로가 달려온 청춘시대를 그리워하듯 눈을 감고는
천천히 천천히 커피를 마셨다.

몇 곡인가를 듣고 커피를 마신 후 가게를 나서려는 남자에게,
마스터는 아무 말 없이 우산을 내밀었다.
밖은 아직 비가 계속 내리고 있었다.
남자는 우산을 받으며, 언제나처럼 웃으며 말했다.

「다음에 비가 내리면 돌려주러 올께요」

그러나 남자는 우산을 돌려주러 올 수 없었다.
몇 주일 후, 남자는 자택 앞에서 흉탄에 쓰러졌던 것이다.

그리고 20년도 더 지난 오늘도
그 찻집은 똑같이 그 자리에 서있다.
나이가 들기는 했지만 변함없이 과묵한 마스터.
쥬크박스도 같은 밴드의 곡 뿐.
가게 안은 무엇 하나 변함이 없지만,
간판에 쓰여져 있던 글자는 언제부턴가 조금 바뀌어 있었다.

"수요일은 정기휴일.
다만, 비오는 날은 영업하겠습니다"


-라라하우스 제3 별관 전파만세 펌

2개의 댓글

2013.12.02
짧지만 깊은 애잔함을 주는 글이넹
0
2013.12.03
이런 단편 매우좋음 ㅊㅊ
0
무분별한 사용은 차단될 수 있습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추천 수 날짜
12462 [기타 지식] 15년전 연애관련글 -----4 2 얀테 0 10 시간 전
12461 [기타 지식] 15년전 연애관련 글--------3 얀테 0 10 시간 전
12460 [기타 지식] 15여년전 연애관련글 -----2 얀테 0 10 시간 전
12459 [기타 지식] 15여년전 연애관련 글 ---1 얀테 0 10 시간 전
12458 [기타 지식] 1900년대의 초반, 야한 이름의 칵테일, 비트윈 더 시트 편 - ... 1 지나가는김개붕 2 12 시간 전
12457 [호러 괴담] 바람 피운 남편, 살해된 아내. 남편은 범행을 부인하는데... 2 그그그그 3 1 일 전
12456 [기타 지식] 남극 원정대가 남기고 갔던 위스키 섀클턴편 - 바텐더 개붕이... 10 지나가는김개붕 8 1 일 전
12455 [역사] 한국어) 지도로 배우는 삼국통일전쟁 3 FishAndMaps 0 1 일 전
12454 [기타 지식] 가장 좋은 것이라는 뜻을 가진 칵테일, 비즈니스(Bee's ... 9 지나가는김개붕 8 2 일 전
12453 [호러 괴담] 남편을 살해하기 위한 아내의 트릭 6 그그그그 7 3 일 전
12452 [기타 지식] 다가오는 여름, 간단하고 맛있는 스페인 태생 칵테일, 레부히... 5 지나가는김개붕 4 4 일 전
12451 [호러 괴담] 나카노구 여극단원 살인사건 6 그그그그 13 5 일 전
12450 [기타 지식] 친애하는 지도자 각하가 드시던 칵테일, 엘 프리지덴테 편 - ... 5 지나가는김개붕 9 5 일 전
12449 [역사] 광신도, 근본주의자, 사기꾼 2 김팽달 7 5 일 전
12448 [역사] 지도로 보는 삼국통일전쟁 12 FishAndMaps 5 7 일 전
12447 [기타 지식] 영국 해군의 레시피, 핑크 진 편 - 바텐더 개붕이의 술 이야기 8 지나가는김개붕 3 7 일 전
12446 [호러 괴담] 최초로 소년 사건에서 복수의 피고인에게 사형이 동시에 확정 6 그그그그 8 8 일 전
12445 [기타 지식] 바텐더의 기본기라는 오해, 진 피즈 편 - 바텐더 개붕이의 술... 10 지나가는김개붕 6 8 일 전
12444 [호러 괴담] [살인자 이야기] 만점 40점인 사이코패스 평가 점수에서 39점... 2 그그그그 6 10 일 전
12443 [기타 지식] 직구 논란이라 쓰는 직구로만 구할 수 있는 술, 스즈 편 - 바... 5 지나가는김개붕 9 10 일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