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지식

종교의 자유가 있지만 신을 믿지 않을 자유는 없는 두 국가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는 대표적인 이슬람이 종교의 주류가 되는 동남아시아 국가입니다. 두 국가는 Bahasa Melayu라는 언어를 공유하지만 두 국가의 표준어의 차이는 영국식 영어-미국식 영어보다는 많이 나지만 서로 기초 대화는 통하는 정도입니다.

 

 말레이시아는 영국의 식민지배를 경험하여 영어가 말레이시아어와 함께 표준어이고 말레이시아어의 고급 어휘는 영어에서 유래한것이 많습니다. 반면 인도네시아는 네덜란드의 식민지배를 받았고 독립전쟁을 거쳐 독립하였습니다. 흥미롭게도, 당시 네덜란드는 영국의 지원을 받고 있었는데 미국의 제안으로 인한 종전협상에서 네덜란드령 동인도 주둔군에 대한 비용이 포함된 네덜란드령 동인도의 채무 전채를 계승하여 돈을 주고 독립을 산것이냐는 비판도 있습니다. 이는 패전국인 일본이 식민지 내의 재산 모두를 압류당하고 배상금까지 지불하는 상황에 대비되어 제국주의의 모순을 상기시킵니다.

 

두 나라는 다민족국가에 여러 종교가 공존하지만 주류 민족은 대부분(말레이시아는 전부) 이슬람교를 믿는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슬람이 국교인 이란과 사우디 아라비아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두 국가는 세속적이지만 두 국가 모두 이슬람은 허용되지 않는데, 이는 이슬람교에서 무신론을 터부시 하는것에서 기인하였습니다. 이슬람교는 유대교와 기독교를 성서의 백성들이라 부르고 이슬람식 도축인 할랄 도축은 무슬림만이 아닌 유대인이나 기독교인이 주도할 수 있을 정도로 당시 기준에선 교리 상 비교적 관용적인 종교였습니다. "하나님(알라, 한국이슬람교에선 하나님으로 번역) 외에 신은 없으며 무함마드는 그의 사도이다" 라는 유명한 구절에서 알 수 있듯 이슬람교는 아브라함 계통 종교답게 유일신 사상을 중요시하며 이는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의 종교 정책에 반영되었습니다.

 

LGBT_Indonesia06-thumb-500x355-13031.jpg

 

인도네시아는 인구의 87%가 무슬림이지만 네덜란드의 식민통치의 영향으로 기독교 신자 수도 약 2400만명이나 되어 인구의 10%를 차지합니다. 그러므로 인도네시아의 97%는 아브라함 계통 유일신교를 믿어 건국 이념 중 하나가 유일신에 대한 믿음입니다. 인도네시아의 모든 사람은 신분증에 이슬람교, 기독교, 불교, 유교, 힌두교, 전통 신앙 중 하나를 선택하여 기재해야 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유일신교가 아닌 불교, 유교, 힌두교가 공식 종교에 포함되었다는 점 입니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불교는 우주를 창조했다는 본초불을 믿고, 유교는 공자가 유일신 天의 계시를 받은 선지자라 주장하며 힌두교의 모든 신은 유일신 Acintya의 화신이여서 사실상 유일신교라는 요상한 논리를 주장하여 이러한 종교들이 유일신에 대한 믿음을 벗어나지 않는다고 설명합니다. 또한 분리주의가 활발하던 아체 주는 연방정부와의 합의로 유일하게 샤리아 법을 적용하여 이슬람 율법에 따른 자치를 허용받았습니다.

 

 

반면 말레이시아의 종교정책은 겉보기에는 인도네시아와 비슷해보이나 실상은 꽤 다릅니다.

 

첫번째로는 말레이시아는 이슬람교를 연방종교로 지정하여 인도네시아와는 다르게 국교가 존재하는 국가이고 두번째로는 이슬람교가 부미푸트라라는 말레이계 우대정책의 수혜자의 조건으로 기능한다는 점입니다. 말레이시아는 인도네시아처럼 신앙을 가질 의무가 있습니다. 말레이시아의 주류 종교는 말레이계 전부와 일부 타 민족이 믿는 이슬람교이고 중국계들은 주로 불교나 도교, 유교, 기독교를 믿고 인도계들은 대부분 힌두교를 믿습니다.

 

World-Data-religious-affiliation-pie-chart-Malaysia (2).jpg

 

말레이시아는 여러 민족으로 이뤄진 다민족국가이지만 인구의 70%를 차지하는 원주민에 대한 우대정책을 시행중입니다. 부미푸트라의 조건은 말레이시아 연방 내에서 태어난 부모 중 한명 이상이 무슬림 말레이인이거나 아버지가 사라왁 원주민인 사라왁 주 출생자 또는 부모 모두가 사바 주 원주민인 사바 출생자이며 이를 쉽게 요약하자면 영국 식민지배 전부터 살던 원주민의 후손입니다. 흥미롭게도, 말레이인일 경우에는 이슬람 신앙을 포기할 경우 사회적 지탄과 함께 부미푸트라로서의 모든 혜택이 박탈됩니다. 부미푸트라 정책은 정치, 경제, 교육 등 수많은 분야에서 원주민에 대한 혜택을 의무화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말레이시아의 정치계는 대부분 말레이계가 장악하고 있으며 부동산 거래에선 부미푸트라가 7% 싸게 살 "권리" 가 있습니다. 또한 말레이시아의 대부분 국공립대학에서는 부미푸트라에 대한 쿼터제를 적용중이며 공립 학교에선 말레이계의 종교인 이슬람교에 대한 교육이 실시됩니다. 

 

 

말레이계 입장에선 타 민족(주로 중국계)와의 엄청난 경제적 격차를 줄이고, 식민정부에 의해 특혜를 받았던 인도계와 중국계에 의해 빼앗겼던 권리를 되되찾는것이라며 부미부트라 정책을 합리화하지만 타 인종 입장에서는 수십년에서 200년간 대대로 살아온 고향에서 단지 인종적 배경에 의해 차별하는 정책이고 부미푸트라 상류층이 타 인종 하류층보다 더 많은 혜택을 받는다고 항의합니다.

 

World-Data-ethnic-composition-pie-chart-Malaysia.jpg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차별적인 정책이 생각보다 잘 작용했다는 것입니다. 말레이시아인의 말레이시아를 외치던 리콴유를 싱가포르와 함께 축출하고 실시한 부미푸트라 정책은 독립 당시 인구의 1/3을 차지했던 화교 인구를 20% 언저리까지, 인구의 11%를 차지하던 인도계를 7%까지 낮추었으며, 주로 중국계에 집중되어 있던 부를 말레이인들에게 재분배하는 효과를 보였습니다. 또한 말레이시아는 도시국가인 싱가포르와 아예 비원주민이게 시민권을 부여하지 않는 독재 산유국 브루나이를 제외하고는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소득 수준과 생활 수준이 높은 국가입니다. 1인당 GDP는 10000달러로 베트남의 3배, 이웃국가인 인도네시아의 2배를 넘어가는 수치이며 물가 수준을 감안한 1인당 GDP(PPP)는 3만 2000불로 그리스, 터키, 러시아와 유사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레이시아의 경제적 상류층과 중산층은 중국계이며 아직도 부미푸트라와 타 인종의 평균적인 부는 꽤 격차가 있습니다. 말레이시아의 부자 순위 1위부터 10위는 4위 인도계를 제외하곤 모두 중국계입니다. 또한 말레이시아인은 인종에 관계없이 모두 외국인에 대해 베타적인 경향이 있으며 중국계가 주류고 중국계 야당 주지사가 집권중인 페낭 주에선 페낭 음식문화의 순수성을 위해 외국인의 요식업계 종사를 금지하는 정책이 제정되었다는 점이 이를 반증합니다.

 

 

요약하자면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모두 이슬람교가 주류인 국가이며 신앙 보유의 의무가 있습니다. 또한 말레이시아는 이슬람교를 통하여 원주민과 비원주민을 구분하기도 하며, 부미푸트라 정책이라는 말레이시아 원주민 우대정책은 현재까지도 작동하고 있습니다.

 

 

6개의 댓글

2021.12.17
0
2021.12.17

굉장히 흥미로운 내용이면서, 디테일이 엄청나군요.

 

전반부 종교 의무화 내용 외에도, 후반부 처럼 민족 출신지 의무화인 국가가 생각보다 적지 않더군요.

0
2021.12.17
@쿠릭

민족 출신지가 의무화된 국가는 중국이 또 있죠.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0
2021.12.18

재밌구마이

0
2021.12.18

오 추천드림ㅋㅋ 사실 한국에 살면 잘 모르고 살게되지만 세상 대부분의 나라는 엄청 다양한 민족이 얽혀사는 나라들이 훨씬 많은듯하네

0
2021.12.19

옛날에 터키 파견나가서 거주증 만드는데 종교란이 있길래 무교라고 하려했더니 현지직원이 그런거 없다고 머라도 쓰라고 해서 가톨릭 적었던 기억이 나네. 그 직원도 무신론자인데 지 신분증에는 걍 이슬람이라고 적어 다닌다 했음. 그러고 1넌 있다가 가톨릭 세례받음.

0
무분별한 사용은 차단될 수 있습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추천 수 날짜
5251 [기타 지식] 당신이 칵테일을 좋아하게 됐다면 마주치는 칵테일, 사이드카... 4 지나가는김개붕 4 1 일 전
5250 [기타 지식] 클래식은 아니지만, 여전히 사랑 받는 칵테일, 갓 파더편 - ... 2 지나가는김개붕 3 2 일 전
5249 [기타 지식] 페미니즘은 여성에게 도움이 되었는가 02 16 키룰루 28 7 일 전
5248 [기타 지식] 페미니즘은 여성에게 도움이 되었는가 01 25 키룰루 26 9 일 전
5247 [기타 지식] 아무리 만들어봐도 맛이 없는 칵테일, 브롱스편 - 바텐더 개... 3 지나가는김개붕 2 14 일 전
5246 [기타 지식] 일본에 의해서 만들어진 칵테일들 편 - 바텐더 개붕이의 술 ... 2 지나가는김개붕 6 16 일 전
5245 [기타 지식] 중국에서 안드로이드 폰을 사면 안되는 이유? 10 대한민국이탈리아 25 17 일 전
5244 [기타 지식] 최근 지각변동이 일어나는 국내 항공업계 (수정판) 15 K1A1 24 20 일 전
5243 [기타 지식] 도카이촌 방사능 누출사고 실제 영상 21 ASI 2 24 일 전
5242 [기타 지식] 웹툰 나이트런의 세계관 및 설정 - 지구 2부 21 Mtrap 9 24 일 전
5241 [기타 지식] 100년을 시간을 넘어서 유행한 칵테일, 사제락편 - 바텐더 개... 5 지나가는김개붕 1 26 일 전
5240 [기타 지식] 오이...좋아하세요? 오이 칵테일 아이리쉬 메이드편 - 바텐더... 3 지나가는김개붕 2 28 일 전
5239 [기타 지식] 웹툰 나이트런의 세계관 및 설정 - 지구 1부 31 Mtrap 13 28 일 전
5238 [기타 지식] 칵테일의 근본, 올드 패션드편 - 바텐더 개붕이의 술 이야기 15 지나가는김개붕 14 28 일 전
5237 [기타 지식] 웹툰 나이트런의 세계관 및 설정 - 인류 2부 22 Mtrap 14 28 일 전
5236 [기타 지식] 웹툰 나이트런의 세계관 및 설정 - 인류 1부 13 Mtrap 20 28 일 전
5235 [기타 지식] 서부 개척시대에 만들어진 칵테일, 카우보이 그리고 프레리 ... 3 지나가는김개붕 7 2024.04.11
5234 [기타 지식] 모던 클래식의 현재를 제시한 칵테일편 - 바텐더 개붕이의 술... 4 지나가는김개붕 2 2024.04.10
5233 [기타 지식] 브라질에서 이 칵테일을 다른 술로 만들면 불법이다, 카이피... 5 지나가는김개붕 1 2024.04.08
5232 [기타 지식] 럼, 라임, 설탕 그리고 다이키리 편 - 바텐더 개붕이의 술 이... 2 지나가는김개붕 6 2024.04.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