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동남아시아의 해방자(?) 일본군

1942년 2월 17일, 싱가포르에서 일본군 헌병대가 프라나칸(화교)들을 집결시켰다.
12세에서 50세까지의 화교 남성 약 6000명이 "반일 친영분자"로 간주되어
굴비처럼 묶인 채 창이 해변으로 끌려간 다음 기관총으로 학살되었다.
이들은 주로 공산주의자(라고 일본군이 생각한 사람들)나 영국 식민정부에서 근무한 전직 공무원들이었지만
12살짜리 공산주의자나 총독부 공무원들이 얼마나 있었을지는 모를 일이다.
싱가포르의 레플스 호텔은 고위 장교들을 위한 전용 위안소로 변했다.
위안부 여성들은 주로 강제로 끌려온 한국 여자들이나 길거리에서 잡아온 예쁘고 어린 화교 소녀들이었다.

 

 

수많은 말레이시아 사람들이 일본군의 선전에 넘어가 황군이 자신들에게 자유를 가져다주리라 기대하고
작은 욱일기를 흔들며 일본군을 환영했다.
그러나 그것은 곧 전혀 사실이 아니었음이 드러났다.
한탕을 노리고 온 일본인 이민자나 밀수꾼들이 마약, 매춘, 도박 등 온갖 부도덕한 사업들로 활개를 쳤다.

 

 

네덜란드령 인도네시아에서는 항복 전에 유전을 파괴했다는 이유로 일본군이 격분한 상태였다.
그 "복수"로서 거의 모든 백인 남성들이 총살 또는 참수되고,
그들의 아내와 딸들은 위안소로 끌려가서
"아침에는 병사 20명, 오후에는 부사관 2명, 밤에는 장교 2명"을 매일 상대할 것을 강요당했다.
딸이 도망가려 하면 어머니가, 여동생이 반항하면 언니가 고문을 당했다.
일본 육군이 성노예로 강제동원한 소녀와 젊은 여성의 수는 어림잡아 약 10만 명으로 추산된다.
대다수는 한국인이었지만, 말레이인, 현지 화교, 필리핀인, 인도네시아인 여성들도 헌병대에 끌려갔다.
정복한 지역의 여성들을 군의 "자원"으로 소모하는 이러한 정책은
일본 정부 수뇌부의 명시적인 승인을 받아 이뤄졌다.

 

 

버마에서는 처음에는 수많은 버마인들이 독립을 기대하며 일본군을 반겼고
3만 명에 달하는 장정들이 버마 국민군에 입대했다.
그러나 일본군은 "열등한" 버마 국민군으로 하여금 장교들조차 일본군 이등병에게 경례를 하도록 강요하여
그들이 버마 국민군을 어떻게 여기는지 잘 보여주었다.

 

 

바탄 반도의 미군과 필리핀군을 지휘하던 에드워드 킹 소장이 항복하기 직전인 1942년 4월 9일에
나카야마 모토 대좌에게 휘하 병사들이 항복하면 정당한 처우를 받을 수 있을지 묻자
나카야마 대좌는 우리 일본군이 무슨 야만인인 줄 아느냐고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그리고 미군이 항복한 직후부터, 일본군은 야만인이 맞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굶주리며 오랫동안 전투를 벌여 이미 지칠 대로 지치고 야윈 7만 명의 미군과 필리핀군은
바탄 반도에서 캠프 오도널까지 100km의 거리를
가진 것은 모두 빼앗기고, 굶주림과 갈증에 시달리고, 총검에 쉴새없이 위협을 당하면서 강제 행군하면서
7천 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군인은 절대 항복해서는 안된다는 사이비 사무라이 정신에 세뇌된 일본군들은
항복하는 모든 적군은 존중할 가치가 없는 버러지로 여기고 있었다.
그런데 정말 아이러니한 것은, 그들이 바탄 반도의 적군들이
빨리 항복하지 않고 오랫동안 저항하며 애를 먹었다는 이유로 몹시 화를 내고 있다는 것이었다.

 

 

싱가포르에 있던 영국군과 호주군 포로들은 북쪽으로 보내져
악명 높은 철도 건설 현장에서 강제노동에 시달렸다.
각기병, 이질, 디프테리아, 뎅기열, 말라리아, 펠라그라 병으로 죽어가는 포로들에게
일본군들은 그들이 굶주리고, 목마르고, 모기에 물어뜯기고, 밀림의 가시덩굴에 상처입은 줄 뻔히 알면서도
끊임없이 "스피도! 스피도!"를 외치며 채찍을 휘둘렀다.
장교인 포로가 일본군 이등병에게 허리를 굽혀 인사하지 않으면
빰을 맞거나 칼등으로 구타를 당했다.
반항을 한 포로에게는 배가 터지기 직전까지 물을 강제로 먹인 다음
바닥에 눕히고 사지를 찍어누른 채로 경비병이 배 위에 올라가 널을 뛰었다.

 

 

동남아시아에서 전시 일본의 지배 하에 약 500만 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며,
그 중 최소 100만 명은 베트남인들이었다.
베트남인들을 먹여 살려야 할 쌀과 곡식들이 연료용 알코올 제조에 쓰였던 것이다.
정당활동이나 언론의 자유는 고사하고, "반일적"인 태도를 조금이라도 보이면
(무엇이 "반일적"인지는 일본군 헌병대가 결정했다.)
헌병대가 잔인하고 원시적인 고문으로 무조건 보복했다.
일본화 계획에 의해 일본어와 일본 달력 사용이 강요되었다.
실업률이 급상승하고 물가가 폭등하여 일본군표가 휴지조각이 되면서
대동아공영권은 동남아인들에게 공빈(貧)권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 앤터니 비버 "제 2차 세계대전" 에서

 

1638089146.jpg

 

왜인지 일본 시민들은

 

그나마 조선,중국 관련된 것들은 긍정이든 부정이든 언급은 되는데

 

자기들이 동남아시아에서 했던 일들은 관심조차 없이

 

"해방자"라고 진심으로 믿는 듯하다.

 

12개의 댓글

2021.11.28

바타비아 위안부도 엄청나게 컸던 거 같더라.

0

이새끼들 평화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며 우생학적 자화자찬을 아끼지 않음. 뿌리부터 줄기까지 썩어 문들어진 새끼들

0
2021.11.28

정보) 인도네시아의 독립기념일은 한국보다 2일 느린 8월 17일이다.

일본의 패전소식이 먼 거리탓에 제대로 전달되지 못해서....

인도네시아에서는 워낙 점령기간이 비교적 짧아서 그런지 해방운동 하면 전부 네덜란드에게 점령당했을 시절이더라

그리고 인도네시아 젊은애들은 우리나라만큼 반일감정이 크지가 않음. 전에 현지 애들 수십명한테 물어봤는데 단 한명이 일본에게 식민시절이 있기에 우리는 기억해야한다 이런식으로 말했었음

한 나라에게 300~400년 지배 받았으니 해방운동 안일어나는게 신기한거긴 하지만...

일본에게 마지막으로 식민지배를 당한거의 영향인지 인니 내부에서는 일본차가 엄청나게 많더라. 미쯔비시, 혼다, 도요타 등등... 물론 부자들은 벤츠같은 외제차 타지만, 나같은 서민들은 일본차를 많이 타는거 같음. 당장 우리 가게 차량도 혼다꺼고.

독립운동도 열심히 하고 그랬던 양반들이 왜 화교들의 경제침략은 막지 못했을꼬...

3
2021.11.29
@CoffeeDobby

어차피 전 지배자인 흰둥이들을 우선 조졌으니 기뻐하면 기뻐했지 슬퍼하진 않았을 듯... 염병도 길어야 4년이었고

0

시벌 이런거 읽고 나면 뭐? 나치 홀로코스트 사망자 600만명에 비하면 일본제국주의는 훨씬 양호한? 편이었다고? 그게 씨발 엄청좆같은 개소리인게 동남아시아에서만 500백만명이래잖아... 중국이랑 동아시아 까지 합치면 도대체 개새끼들은 몇명을 죽인거야.. 그래 놓고는 핵맞았다고 피해자라고 도쿄폭격 당해서 잿더미가 됐다고 피해자라고 시벌 말이 되는 개소리냐

1
2021.11.29
@닉값할자신없어서닉못정한게이

만일 아시안들이 유대인들만큼 힘이 있었고 사회적 영향력이 컸으면, 홀로코스트같은 전쟁 학살에 대한 어휘와 개념도 전 세계인들이 기념했겠지.

 

그리고 마치 미국에서 유대인 명절인 하누카 챙기는 거 처럼 추석같은거 챙기면서 해피 홀리데이 이러고 있겠지.

 

참고로 미국 내 유대인 인구는 650만 가량인데, 아시안 인구는 2200만임.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시안 명절을 챙기거나 아시안 학살에 대해 기념하거나 영화화하거나 그런거 유대인만큼 없음.

1
2021.12.01
@쿠릭

유태인은 단일문화고 아시안은 단일문화는 아니자너

1
2021.12.01
@견쌍섭

유대인도 생각보다는 계열이 여러가지로 나뉨. 독일계열, 동유럽계열, 중동계열, 심지어 아프리카 계열 등 마치 기반은 한자문화권인데 언어부터 식습관 전통 등 다 다름.

 

어차피 서양 입장에서 24절기 기반의 음력 문화, 한자 문화, 유교 문화 같은 걸로 묶으면 유대인과 비슷한 정도의 동질감을 가진 그룹이라고 느껴질 거임.

 

유럽이라는 개념도 사실 영국, 북유럽, 동유럽, 중부유럽, 남유럽 다 다른데 그냥 적당히 기독교 문화권, 로마제국 문화권으로 퉁 치는 것 처럼.

0
2021.12.01
@쿠릭

머 그렇긴한데 결국에 미국에서 인정하는 주류 유태인 문화라는것도 (동)유럽계 유태인의 문화가 아닌지? 실제 정재계에서 실력을 행사하는것도 그쪽이고. 니 말대로 유태인을 동일한 그룹으로 볼 수 없다면 아시안을 음력문화 한자문화 등으로 뭉뚱그려서 하나로 봐줄 수 있다는게 얼마나 우스운 일이고. 물론 정치적으로 asian representative 를 뽑기위해서 연대하는 정도는 가능하고 필요한 일이다만

0
2021.12.01
@견쌍섭

아시아 정도면 경제나 사회문화면에서 영향력이 상당히 크고 비주류가 아닌 주류로 올라설 기회가 충분히 있는데, 굳이 따로따로인 경향이 커서 서구 백인이나 유대인처럼 효과적으로 주류로 인정받지 못 하는게 아쉬운 마음이 더 큼.

 

불과 몇 세기만 하더라도 유대인 취급이 사회적으로 인간 이하 취급이었는데, 지금은 유대인=엘리트 상류층이라는 인식으로 완전히 바뀌었잖아. 아시안들도 전략적으로 이런 시나리오를 생각해야되지 않나 싶음.

 

이런걸 누가 챙겨줄 수도 없는 이슈인데, 진전은 커녕 갈등만 커지는 것 같아서 안타까움.

 

물론, 중국이 별나게 문제이긴 한데 미국의 경우 중국계 2세는 중국인 특유의 문제점이 거의 없더군.

 

서구 백인 사회 및 유대인들이 오늘날 영향력이 압도적이고 스탠다드처럼 여겨지는 주요 원인 중 큰 부분은 종교와 사회문화를 바탕으로 한 이러한 결집력도 크다고 봄.

 

아프리카, 중동, 아시안 모두 결집하고는 거리가 머니까.

 

딱히 이론에 바탕에 둔 건 아니고 지구 상에 쥐똥만한 규모의 유대인에 대비해서 지능 수준이 대등하다고 불리는 대규모의 아시안들이 너무 저평가 받는게 안타까워서 쓰는 뇌피셜임.

0
2021.11.29

동남아시아에서 일본이 대가리를 잘써서 그랫다고 들었음 우리 나라랑 다르게 동남아에서 가장 큰 골치거리는 화교였기 때문에 일본인들이 동남아인들과 화교의 전쟁을 부축였다고... 실제로 말레이 같은 경우는 독립 이후에 화교랑 말레이인들이 혈전 일으킨 경우가 허다함....똥묻은 개 때매 겨묻은 개가 가려진 것... 사족인데 말레이인들은 진짜 중국인을 싫어하더라 나 말레이인들 첨만났을 때 걔네가 한 말이 중국인 족같다엿음 ㄷㄷㄷ

0
2021.12.01
@원더걸스

지금이야 나아진 편이긴 한데

말레이-인도네시아 안에서 90년대에 화교학살사건이 자행되기도 했고

아직도 시위나 데모할때 외국인 지나가면 집단 린치하고 그럼

화교들중에 현지인들 / 외국인들(또는 피부 흰 아시아 사람들) 이랑 대하는게 완전 다른 새기들 있다.

아예 인간으로 취급조차 안하는 애들또한 아직도 많음

학살사건을 좋다 말하는건 아니지만 화교에 대한 혐오? 감정이 어느정도는 지역마다 가지고 있는거 같음

개개인으로 보면 순박하고 착해보일지 모르나

집단주의로 가면 극한의 급진주의적 폭력성을 띄는 사람들... 현지 사는데 가끔 보면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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