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

[마비노기] 낭만 코볼트


- 낭만 코볼트 -

Every kobold has its romance

by 토루네코/만돌린




'사박사박.'
실로 오랜만에 느껴지는 모래의 감촉이었다. 

이멘마하로의 길이 열리고 난 후 많은 사람들이 황무지의 꽃이라 불리우던 반호르로의 발길을 끊게 되었다. 그 중에는 힘과 정의의 길을 찾아 나서는 전사도, 새로운 마법에 대한 연구에 여념이 없는 마법사도, 새로운 던전으로 탐험을 나서는 도굴꾼들 그리고 보잘 것 없는 배낭에 의지해 장사를 하는 보부상들도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수 많은 보잘 것 없는 보부상인중의 한 사람이었다.

다른 수많은 보부상인들처럼 이멘마하와 던바튼을 오가며 장사를 하던 나는 반호르에서 생필품이 모자라 곤란을 겪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하지만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 반호르와의 거래량은 많지 않았기에 다른 상인들은 그 소식을 그냥 넘겨버렸다. 나 역시 평소 같았으면 그 소식을 흘려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어느 새 반호르로 갈 짐을 꾸리고 있었다.

무엇이 나를 움직였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황무지를 걷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면, 어쩌면 모래를 밟는 소리와 함께 잠시 생각할 시간을 가지고 싶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밤하늘을 보니 푸른 이웨카가 서쪽 산맥을 향해 천천히 떠내려가고 있었다. 내가 이 세상을 접했던 그 날도 지금과 같이 푸른 이웨카가 서쪽으로 천천히 침식하고 있었던 걸로 기억하고 있다. 

보부상을 시작한지도 어느새 12년이나 흘렀다. 한 때 밤 하늘의 이웨카를 바라보며 훌륭한 전사가 되어 포워르에게 잡힌 여신님을 구출하겠다는 꿈을 꾸던 어린 시절이 기억에서 사라지는 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현실은 내 꿈을 바꾸어 놓는 일에 충실했다. 수련을 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했다. 마법을 배우기 위해서도 돈이 필요했으며, 장비를 구하는 데에도 돈이 필요했다. 그 돈을 벌기 위해 보부상을 시작했다. 일년만 일하고 모험을 떠나겠다는 내 결심은 이년으로 늘어났고, 이년이 삼년이 되는 데에는 안타까운 결심조차 필요하지 않았다. 

드래곤 유적지를 지나쳐 한참 동안 길을 걷던 나는 연약한 인간을 노리는 탐욕스러운 눈빛을 느낄 수 있었다. 어둠 속에서 새파랗게 빛나는 한 쌍의 눈동자. 나는 그 눈빛의 주인이 코볼트라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녀석은 어느 새 내 옆에 다가와 나를 올려다 보고 있었다. 위기의식을 느낀 나는 가방 한 구석에 자리잡고 있을 숏 소드를 생각해냈다. 

하지만 몸을 움직일 수는 없었다. 내가 가방에서 숏 소드를 꺼내려고 하면 저 녀석은 재빨리 달려와 그 반질반질하게 빛나는 곡괭이로 내 몸을 꿰뚫어 버릴 테니까.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숨조차 쉬지 않으며 조심스럽게 팔을 뒤를 돌려 숏 소드가 있을 가방을 뒤졌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몸은 어느 새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겨우겨우 숏 소드의 손잡이를 찾은 내가 검을 뽑으려 하자 코볼트가 거친 목소리로 내게 외쳤다. 

"인간. 생선....... 생선이 먹고 싶다." 

반호르로 올 결심을 했던 그 때와 마찬가지로 나는 별 생각 없이 가방 속에서 생선을 꺼냈다. 그렇게 하면 녀석이 공격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생선을 꺼내 코볼트에게 보여주자 녀석은 조심스레 생선을 받아 들었다. 한 손에는 생선을, 한 손에는 곡괭이를 든 녀석은 내게 따라오라는 손짓을 했다. 나는 역시 별 생각 없이 녀석을 따라 라인알트 계곡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삐쩍 마른 모습을 보니 애인도 없을 것 같은 인간이다." 

함께 걷던 그 코볼트가 내게 말했다. 참 이상한 녀석이다..... 라고 생각하며 나는 고개를 저었다. 녀석의 말대로 애인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그 말에 긍정하고 싶진 않았다. 

잠시 실없는 농담을 하던 코볼트와 나는 계곡 한 켠에 위치한 커다란 바위 앞에 몸을 기대어 앉았다. 생선을 든 채 코볼트는 빤히 나를 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처음 보는 생선이었기 때문에 먹는 방법을 몰랐을 것이다. 이런 황무지에서는 생선을 찾아 볼 수 없을 테니까. 

하지만 녀석은 내 생각을 꿰뚫어 보고 있는지 나를 응시한 채 말했다. 

"예전에도 생선을 본 적이 있다." 

이런 곳에서 생선을 봤다는 코볼트의 말에 나는 묘한 호기심을 느꼈다. 

"어떻게 생선을 볼 수 있었지?" 

내 물음에 녀석은 답해줄 생각이 없는지, 하던 말을 계속 이었다. 

"하지만 생선을 먹을 줄은 모른다. 먹을 수 있고 싶다." 

녀석의 요청에 나는 생선의 등 뒤로 튀어나온 뼈와 먹을 수 없는 다른 부분들을 손질해 주었다. 적당히 손질한 생선을 녀석의 손에 쥐어주자 그때서야 녀석은 조금 전의 내 물음에 대답해 주었다. 

'어느 새 코볼트가 아니라 녀석이라고 생각하는걸 보면 나는 녀석에게 꽤나 호감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 

"생선을 본 적은 있지만 먹진 않았다. 먹은 것은 큰 돌 위의 이웨카다." 
"큰 돌 위의 이웨카?" 
"동족의 이름이다. 지금도 큰 돌 위의 이웨카를 보고 싶다. 인간들은 큰 돌 위의 이웨카 같은 동족을 보면 좋은 여자라고 하곤 한다." 

큰 돌 위의 이웨카라는 동족은 여자였던 모양이다. 아무래도 이 녀석에게는 사랑하는 여자가 있는 모양이었다. 

"지금 그녀는 어디에 있는데?" 

한 점 한 점 생선을 먹던 녀석은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나도 모른다. 어른들이 큰 돌 위의 이웨카는 정령이 됐다고 하지만 나는 믿지 않는다. 큰 돌 위의 이웨카는 반드시 어딘가에서 날 기다리고 있을 거다." 

녀석은 슬픈 내색을 보이려 하지 않는 것 같았지만, 나는 녀석이 슬퍼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조심스레 생선을 먹는 녀석의 눈은 젖어 있었다. 잠시 녀석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으려니 다시 녀석이 말을 이었다. 

"옛날부터 큰 돌 위의 이웨카와 나는 함께 자랐다. 내가 언제나 곁을 맴돌았기에 어른들은 내게 동그랗게 빛나는 구슬이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녀석의 생선을 들지 않은 한 손이 하늘을 가리켰다. 

"그날도 이렇게 이웨카를 가리는 구름이 없는 맑은 밤이었다." 
"그날?" 
"나는 그 날을 바꾸고 싶다. 하지만 이제 그날은 지난날이 되었다." 

말을 하던 녀석은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다. 나는 그 밤이 녀석에게 안 좋은 기억이 있는 밤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눈치챌 수 있었다. 

"무슨 안 좋은 일이 있었니?" 

내 말을 무시하는 건지 듣지 못한 건지 녀석은 묵묵히 생선을 먹기만 했다. 잠시 우리 사이에는 정적이 흘렀고 내가 쪼그려 앉던 다리를 앞으로 뻗자 녀석은 내 물음에 답해주었다. 

"평소처럼 열매를 찾아 계곡을 돌아다니던 큰 돌 위의 이웨카가 어떤 쓰러진 인간을 발견했던 날이었다." 

그 인간이 누구였는지 묻고 싶었지만 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입을 열면 아까처럼 녀석이 입을 다물어 버릴까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큰 돌 위의 이웨카는 녀석을 보살펴 주었다. 어른들은 인간을 내쫓으려 했지만 큰 돌 위의 이웨카는 녀석을 감싸주었다. 큰 돌 위의 이웨카 덕분에 인간들은 우리 동족들과 사이좋게 지낼 수 있게 되었다." 

녀석은 잠시 지난날을 생각하는 듯 이웨카를 보며 조그만 한숨을 내뱉었다. 

"인간은 우리들에게 생선을 가져다 주겠다고 했다. 그 때 우리는 생선이라는 것에 대해 모르고 있었다. 물 속을 누비며 낮에는 팔라라의 빛으로 숨을 쉬고 밤에는 이웨카의 빛 안에서 잠을 자는 동물이라고 했다. 우리 동족들은 오랜 옛날부터 땅 속에서 살아왔다. 우리 동족에게 물이란 것은 귀한 것이었기에 녀석이 말하던 생선이라는 것은 우리들에게 동경심을 가지게 했다." 

안 좋은 기억이 떠올랐는지 녀석은 생선을 든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하지만 곧 평정을 되찾았는지 다시 들고 있던 생선살을 한 점 베어 물었다. 

"한참이 지나서야 돌아온 그 인간은 우리에게 생선을 가득 안겨 주었다. 인간이 먹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고 우리는 그대로 따라 생선을 먹었다. 하지만 나는 먹지 않았다. 인간을 보고 있는 큰 돌 위의 이웨카를 보고 있으니, 그 인간이 가져온 생선에 손을 대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는 곧 그 인간이 우리를 배신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녀석의 얼굴빛이 더더욱 어두워지자 호기심을 참지 못한 나는 녀석에게 물었다. 대체 그 옛날, 그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배신? 그 인간이 무슨 짓을 저질렀었니?" 

녀석은 내 물음에 말을 끊지 않고 담담한 어조로 대답했다. 하지만 대답하고 있는 그 순간에도 녀석의 손은 분노로 떨리고 있었다. 

"우리가 생선을 반쯤 먹자 갑자기 인간은 큰 길을 향해 달려가 버렸다. 그리고 조금 있으려니 수많은 인간들이 우리 동족을 향해 달려왔다. 인간들의 손에는 검과 활이 들려 있었다. 용맹했던 우리 동족은 인간들의 공격에 대항하지 못하고 죽어갔다. 하지만 나는 열심히 싸웠다. 그래서 큰 돌 위의 이웨카와 어른들과 아이들을 데리고 동족들이 있는 다른 마을로 피할 수 있었다. 나는 그 때 큰 돌위의 이웨카가 들고 있던 생선을 빼앗았어야 했다." 

잠시 숨을 고르던 녀석은 다시 생선을 베어 물었다. 커다랗던 생선은 어느새 거의 뼈만 남아 있었다. 

"어른들은 큰 돌 위의 이웨카를 미워했다. 그래서 큰 돌 위의 이웨카를 비난했다. 큰 돌 위의 이웨카는 손에 들려있던 마지막 생선을 들고 홀로 어디론가 떠나버렸다. 나는 큰 돌 위의 이웨카를 따라가려고 했다. 큰 돌 위의 이웨카를 따라가기 전에 다른 마을에 있던 어른에게 나는 무서운 이야기를 듣고 말았다." 
"무서운 이야기라니?" 

이제 뼈만 남은 생선을 바닥에 내려 놓으며 녀석은 말했다. 

"제일 나이가 많으신 그 어른은 우리 코볼트가 생선을 먹으면 죽게 된다고 말하셨다. 그래서 생선을 먹었던 다른 동족들이 제대로 싸우지 못하고 인간들에게 목숨을 빼앗긴 것이었다." 

담담한 녀석의 어조와 달리 나는 놀라움에 몸을 떨었다. 그리고 곧 녀석의 발치에 뼈만 남은 생선이 떨어져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너..... 지금." 

"큰 돌 위의 이웨카의 손에는 생선이 있었다. 큰 돌 위의 이웨카는 생선을 먹기 위해 어디론가 떠났을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큰 돌 위의 이웨카를 따라가려 했지만 어른들은 나를 막았다. 동족을 위해 지금은 떠나면 안된다고 어른들은 나를 말렸다. 나는 일 년 동안 동족을 위해 일하고 큰 돌 위의 이웨카를 찾아 떠나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일 년만 일하고 큰 돌 위의 이웨카를 떠나겠다는 내 결심은 이 년으로 늘어났고, 이 년은 어느 새 삼 년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어느 새 12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가 버렸다. 늦었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큰 돌 위의 이웨카를 찾으러 떠날 것이다." 

그 12년동안 녀석은 큰길을 지나가는 인간을 꼼꼼히 훑어보며 이 날을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자신의 목숨을 빼앗을 생선을 줄 인간을 만나기 위해. 

"그만 둬! 어서 생선을 토해내야 해!" 

내가 녀석의 등을 내려치려 하자 녀석은 팔을 저으며 내게 말했다. 

"나를 이대로 내버려둬라 인간. 나는 큰 돌 위의 이웨카를 찾아 떠나야 된다." 

처음 만나는 코볼트에 불과한데, 단지 인간의 목숨을 노리는 저급한 괴물에 불과한데, 어느 새 나는 죽어가는 녀석의 모습을 보며 눈물을 쏟고 있었다. 

"네가 그녀를 찾고 싶다면 지금 죽으면 안돼! 그녀도 반드시 살아있을 거야! 분명히 어딘가에서 널 기다리고 있을 거야!" 
"그래. 큰 돌 위의 이웨카는 날 기다리고 있을 거다. 너희 인간들이 말하는 또 다른 세상. 그래. 티르 나 노이라고 불리우는 곳에서 그녀는 날 기다리고 있을 거다. 나는 이제야 겨우 큰 돌 위의 이웨카를 찾으러 떠날 수 있게 됐다." 

녀석이 말을 하고 있는 동안에도 목소리에는 조금씩 죽음의 그림자가 비춰지고 있었다. 

"안돼! 죽으면 무슨 소용 있어! 큰 돌 위의 이웨카도 분명 바라고 있지 않을 거야! 죽기 위해서 생선을 먹다니! 이렇게 허무하게 죽으면 무슨 소용이야! 죽으면 안돼!" 

죽어가는 녀석의 목소리에서 미약하게 생기가 느껴졌다. 

"인간............... 너희들의 꿈은 무엇이지?" 

갑작스러운 물음에 나는 녀석의 죽음을 저지시킬 수 없었다. 

"우리들의............... 꿈?" 
"너희 인간들은 어딘가에 속박되어 있을 여신을 구하기 위해 모험을 떠난다고 한다. 하지만 너희 인간들은 그 여신이 너희를 해치려고 티르 나노이로 보낸다는 것을 알고 있다. 너희 인간도, 우리 코볼트도, 모두들 마찬가지다. 우리 모두는 죽게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지. 너도 그렇지, 인간?" 

생기를 잃어가는 녀석의 맑은 눈동자를 통해 나는 꿈을 가지고 있었던 12년 전의 나를 볼 수 있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너.... 너는....." 
"나는 이제 떠난다. 큰 돌 위의 이웨카가 있는 곳으로 떠난다. 나는 죽게 되지만 슬프지 않다. 이제 곧 큰 돌 위의 이웨카가 있는 곳으로 나는 간다. 인간. 너도 꿈을 이루게 된다면 티르 나노이에서 만날 수 있게 될 거다. 그 때가 되면 죽음을 걱정하지 말고 함께 생선을 먹자. 서로 미워하지 않아도 되는 그 세상에서 각자가 꾸었던 꿈을 이야기하며 생선을 먹자." 

녀석의 초점은 침식되고 있는 이웨카에 맞춰져 있었다. 죽어가는 그 순간에도 녀석은 나를 향해 말하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을 이었다. 

"큰 돌 위의 이웨카가 나를 부른다. 생선을 들고 어디론가 떠나던 그 모습 그대로 나를 부르고 있다. 내가 지금 간다. 다시 한 번 네 주위를 맴돌기 위해 그곳으로 간다." 

서서히 감기고 있는 녀석의 눈을 보며 나는 마지막으로 녀석의 이름을 크게 부르짖었다. 

"동그랗게 빛나는 구슬!" 

지금 녀석의 몸에서 살짝 빠져 나와 하늘로 날아가는 저 희미한 구슬은 녀석의 영혼인 것일까. 나는 한참 동안이나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라인알트는 고요했다. 커다란 바위 앞에 남아있는 것은 단 하룻밤 동안의 친구를 잃은 한 꿈을 잃은 인간과 지금쯤 사랑하는 이를 만나고 있을 코볼트, 그리고 생선뼈 뿐이었다. 

나는 녀석을 땅에 묻어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맑은 영혼과 꿈을 지닌 작은 친구가 늑대들의 먹이가 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쿵. 쿵.' 

배낭에서 삽을 찾고 있는 내 귀로 땅을 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보니 한 마리 트롤이 내 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트롤이 가까이 옴에도 불구하고 나는 도망치려 하지 않았다. 트롤의 두 눈은 조금 전 세상을 떠난 맑은 영혼을 지닌 코볼트와 같이 파랗게 빛나고 있었다. 내가 자신의 모습을 보고도 자리에 머물러 있자 트롤은 내게 떠나라는 듯 고개짓을 해 보였다. 

배낭을 짊어진 나는 그 자리를 떠났다. 큰길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내 뒤에서 트롤은 춤을 추고 있었다. 
코볼트의 죽음을 슬퍼하는 춤인지, 혹은 코볼트의 앞길을 인도하는 춤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 트롤의 어색한 손짓, 발짓은 내게 그 어떤 춤이나 노래보다도 더한 슬픔을 느끼게 해 주었다. 


세상이 환하게 밝아 올랐을 때 쯤에야 나는 반호르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 길로 나는 마을의 물자를 관리하는 도매점으로 향했다. 내가 보부상임을 알아본 점주는 나를 기쁘게 맞이해주었다. 

나는 상점의 데스크에 가져온 물건을 펼쳐 보였다. 

"감사합니다. 아무도 이 마을로 물건을 공급해 주지 않아 잘못했으면 큰 위기에 빠질 뻔 했습니다. 당신같은 분들이 있어서 정말 다행이군요." 
"그렇습니까?" 

배낭 안에서 꺼낸 물건을 둘러보던 점주가 익숙한 물건을 들어 보이며 내게 물었다. 

"이 숏 소드도 파실 물건입니까?" 
"아닙니다. 이것은 제가 지니고 다니는 무기입니다." 
"허허..... 요즘에도 숏소드를....."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점주는 내게 숏소드를 건네주었다. 그리고 조그만 돈주머니도 함께 건네주었다. 

"여기 대금입니다. 앞으로도 종종 부탁 드리겠습니다. 그럼 조심해서 가십시오." 

금화를 챙겨넣고 숏 소드를 집어든 나는 숏 소드의 손잡이가 내 손에 꼭 맞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저기........ 실례지만 한가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네. 뭐든지 물어보십시오." 
"시드 스넷타로 가려면 어디로 향해야 합니까?" 

12년 전 한 아이는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모아왔던 돈으로 숏 소드 한 자루를 구입했다. 그리고 12년이란 세월이 흐르는 동안 어른이 되어버린 아이는 그 꿈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오늘날에서야 그 아이는 깨달았다. 꿈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한 그 12년 동안 아이는 하루도 빠짐 없이 그 숏 소드를 손질해 왔다는 사실을. 


'꿈을 이룬 자의 세상에서 다시 한 번 만나자.'




한줄요약

Every kobold has its romance.PNG


코볼트찡...곁을 맴돈다고 이름이 동그랗게 빛나는 구슬이라니..ㅠㅜ


6개의 댓글

2013.03.25
마비노기는 생전 해본적이 없는데
재밋네
0
2013.03.25
니 덕에 옛날 마비노기 하던 추억이 떠오르고 있다. 고마움.
0
MWL
2013.03.25
으아아 지금까지 것중엔 이게 제일 좋다.
0
2013.03.26
나 이거보다가 급 마비노기하고싶어져서

케릭을 만들긴 햇는데

서버어디다가 만들어야 좋음 ??
0
2013.03.26
@Greybeard
음..말로는 류트만 아니면 된다던데? 거긴 애기들이 너무 많아서 시끄럽데...
아 글구 요즘에 한창 서버통합 진행중이라 만돌린/모리안/골렘은 못만들껄?
0
꾸뇽꾸냥
2013.03.26
@Greybeard
마비 진짜 할생각이면 울프섭에 내이름 친추해라 아템좀줄께 많이는못주지만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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