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XI. 미국 (III) : 냉전 종결과 일본의 부상

너무 길어서 읽기 힘들다는 말이 있어서 목차별로 나눠서 이미지 첨부해서 올려봅니다.

원본은 https://pgr21.com/freedom/87858 아리랑쑤리랑 님이 제작했습니다.

다른 글들도 정말 좋으니 가서 읽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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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체제 그리고 초 양극화 
XI. 미국 (III) : 냉전 종결과 일본의 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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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CIA등을 통해 소련의 방첩조직인 KGB가 일종의 과잉 반응과 판단 착오를 일으키게끔 정보 공작을 시도했고, 이는 적절히 먹혀들어가 '친소' 정권 이었던 아프간 정부를 소련이 밀어버리고 중국이 AK-47 짝퉁을 무단으로 제조하면 미국이 파키스탄등의 경로를 통해 아프간의 이슬람 게릴라 집단인 후에 일부는 탈레반이 되는 무자헤딘을 지원해주고 정규전력은 분명히 다 파괴시키고 압도적인 교전비를 냄에도 도저히 전쟁은 안끝나는 베트남전보다 더 골치아픈 전쟁이 되었고 이것은 소련의 안그래도 악화하던 생산성과 경제를 더더욱 나락으로 빠뜨리고 소련 사회전반에 염세적인 분위기가 돌게끔 했습니다.





더 나아가 미국은 세계 체제와 경제의 중심이자 정점에 있다는것을 적극 활용하게 되는데 앞서 말씀드렸듯이 1960년대까지만 해도 영국내 시 오브 런던의 은행가들이 쥐고 있는 금융 권력을 완전히 가져오진 못했는데, 미국은 70년대후반 80년대 들어서 서유럽의 정치 외교 자산뿐 아니라 금융 패권마저도 접수하기 시작하며 산유국인 사우디를 이용해 소련이란 국가의 장기적 해체 플랜을 세우는데요.




위에서도 이미 논급했듯이 현재 미-중 관계처럼 미국이 직접적인 접점이나 연결망이랄게 무역이나 금융자본시장에 있는 미국 자본 및 서방 생산기지등이 전무했으므로 사실상 간접적인 공격과 압력을 넣을수밖에 없었는데 그래서 크게 4가지 수단을 사용합니다. 나열해보자면 :


1. 소위 대중에는 스타워즈로 널리 알려진 SDI 프로젝트등의 군비 증강으로 소련의 재정 출혈 증가,



2. 중공업과 기초과학이 강하지만 경공업이 약하며 석유등 원자재수출로 자금을 충당한다는점을 노려 사우디등과 협력해 석유 증산으로 인한 유가 하락으로 소련 경제 타격,



3. 문화와 인권등 가치관의 표준 경쟁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가진 미국의 소프트파워와 소련 및 공산권내 시민운동과 노조세력의 결합유도



4. 세계경제와 금융의 중심으로서 NSDD-66 작전 시행으로 금융, 기술, 석유에 대한 핀포인트 제재




일단 첫번째는 말그대로 소련에 대한 군비 압박이었는데, 이는 CIA에서도 나온 결과지만 소련은 70년대까지 미국보다도 더 많은 군비를 유지했음에도 불구 평균 4%고 후반에 좀 군비가 경제력 대비 올라갈때 7%였습니다. 이는 미국의 경제가 당시 상황이 그리 좋지 않았고 베트남전부터 경제-사회적으로 후유증을 꽤 많이 겪던 상황에 카터의 외교 정책 노선상 군비를 크게 쓰는편이 아니어서 소련이 이 부분에서 압박을 덜 받은 부분이 있으나 레이건은 공산주의 국가의 특유 국영기업의 비효율성과 지금 중국마저도 공유하는 감시국가의 특성인 비대한 치안 유지 비용등을 생각할때 이 군비 증강은 안그래도 쪼달리는 소련의 재정에 치명타를 가할것이라 판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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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미국은 군비를 증강하고 특히 당시 기술력으로는 수조달러를 퍼부어도 어림없을거라고 했고 실제 소련에서도 10분의 1 비용이면 미국의 핵 방어 체계인 SDI를 뚫을수 있을거라고 말한것처럼 그 때 무기의 실용성으로만 보았을때는 크게 효용성이 있다고 보기 힘들었으나, 이는 이념과 체제의 대결을 펼치던 소련 입장에서 거부할 수 없는 경쟁이었고 이미 아프간전으로 돈을 많이 날려먹는 와중에 1970년대까 1700~1800억 달러를 넘나들던 군비가 3000억에서 3300억달러까지 증가하면서 군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GDP의 약 15%가 되고 거의 경제 자체가 마비되는 수준에 이르게 되죠.



그리고 다음은 공산국가의 특징으로 소련의 모델을 그대로 이식받은 중국도 개혁개방이전 최고 선진 경제지역이 일제가 적산하고 간 만주지역내 중공업 단지였던것과 같이 기초과학등은 강하고 군사 관련 물자와 국가 인프라를 위한 대규모 생산은 꽤 뛰어나지만, 상업적이고 실용적인 기술 측면에서는 매우 약했습니다. 그래서 현 중국 총리 리커창이 2010년대 초에도 우리는 볼펜알이나 연필심도 제대로 생산못한다면서 일갈한적이 있고요.



하여간 이런 국가전략과 전쟁에는 유용하지만 평시에는 일정 성장이후 다시 산업에 재투자와 성장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문제점이 있었고 이는 필연적으로 소련 그리고 현재 러시아까지 이어지는 석유와 원자재에 의존해서 정부의 운영자금을 충당하는 경제 구조가 만들어지는데 미국은 이것을 소련의 또 다른 약한고리라고 간주했고 그에따라 미국의 동맹국이자 석유 최대 생산국들중 하나인 사우디 아라비아와 손을 잡고서 유가 증산으로 30달러대의 유가를 3분의 1수준에 불과한 10 달러로 폭락시켜 소련이 생산을 하더라도 도저히 수익이 못남게 만들어 버리는데 소련은 1달러당 10억불 그래서 연간 200억불의 손해를 보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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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문화부분에서 이미 미국은 전간기때부터 유럽 영화시장 90%를 장악하고 미국의 재즈등의 대중문화와 의복 양식이 서유럽 중산층까지 장악할정도로 근현대사뿐 아니라 인류사를 총망라해도 그야말로 비교할 수 있는 수준이 없는 압도적인 문화력을 지녔기에 이걸 또 소련을 향한 창으로 쓰였고, 폴란드 출신의 교황인 요한 바오로 2세와 자유노조 운동의 수장인 레흐 바웬사와 긴밀히 협력하여 소련을 제외한 동구권과 바르샤바 동맹의 최대 전력중 하나인 폴란드에 소위 말하는 문화 침투를 시키게 되죠.



이런건 폴란드 뿐 아니라 그외 동구권과 소련 본토 지역에도 자유 라디오 방송부터 여러 매체들을 통해 지속적으로 서방의 소식과 문화란 토양을 동유럽에도 깔기 시작해서 냉전 말기에는 서방의 락 밴드등이 초청되는등 그런 활동들 전부가 하나의 문화적 세계화의 일환이면서 동시에 타국의 사상과 체제를 흔드는 수단이기도 하죠. 그래서 현재 중국 당국이 별거 아닌거 같은 드라마나 무해해보이는 영화에까지 극도로 히스테리 현상을 보이는것이고 말입니다.

 

 


마지막으로 사실상 전 지구에서 세계체제와 금융 연결망의 중심인 미국만이 할 수 있는 수단인 NSDD-66 작전입니다. 용어만 보면 무슨 첩보작전 단어 같지만 길게 풀면 국가안보결정지침의 줄임말로서 국가 대전략 차원에서의 소련 경제 붕괴 작전인데요. G7을 위시로한 서방국가들과 공도보조를 취하고 소련산 천연가스 매입 중단 및 신규계약 금지와 노르웨이등의 북해산 유전 활용등 대체수단 강구와 함께 세계 금융의 중심지인 뉴옥과 런던에서 소련 채권금 리를 대폭 올려 상환 부담을 가중시키고 위험성이 높은 단기 채권에 의존하게 만드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이미 말씀드린 유가 하락 시기 소련뿐 아니라 세계의 최대 곡창지대중 하나인 우크라이나 흑토지대에서 흉작이 일어나서 곡물이 부족해졌기에 곡물을 수입하고 약한 경공업 때문에 경공업 제품들을 수입했어야 되었는데 소련 루블은 공산권에서나 통용되지 거기를 벗어나 세계 경제체제에서는 전혀 먹히지 않는 현재 중국의 위안화보다 조금 나은 수준의 비기축통화였고 큰 고객이던 유럽에서의 석유 수입 감소 내지 중단은 크나큰 경제 충격으로 다가왔고 마침 체르노빌까지 터지는 악재의 연속이 겹치면서 소련 경제 붕괴의 가속화를 이끌게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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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해서 1980년대 말 공산권의 중심인 소련이 흔들리는 조짐이 보이면서 통제권을 상실해가자, 동독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것을 기점으로 하여 동구권 전체가 무너지고 2년후 소련 그 자체마저 무너지면서 전세계 소련을 종주국으로 삼았던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전반에 걸친 대다수의 국가들은 무너집니다. 개혁개방을 하거나 마가린 공산주의라고 불릴정도로 극단적 민족주의가 공산주의만큼 강하거나 혹은 거의 대체하는 수준이었던 동아시아의 중국, 북한, 베트남과 중국-베트남의 보호국에 가까운 라오스 인민 공화국 그리고 오히려 미국의 차단으로 고립되어 다른 국가들에 비해 소련과 접점과 연결망이 많지 않았던 쿠바등 최소 3~40개에 달하던 수많은 공산주의 / 사회주의 국가들이 고작 5개의 국가 정치-경제 의존성이 절대적인 라오스와 북한을 고려할시 실질적으로는 거의 3~4개국가 수준으로 줄어듭니다.



이렇게 세계체제는 다음 주자로 넘어갈때 끊기는듯하면서도 후대로 전승되고 연결되어 더 크게 불타오르는 올림픽의 성화와 같았습니다. 게다가 세계체제란것은 물리적인 지배가 아니기에 오히려 더 견고하고 끈질긴 연속성을 지녀 수천년간 이어져오던 상위로 가는 경제, 문화, 정치의 거대한 문명적 흐름 결정체기도 했던만큼, 소련은 미국 하나가 아닌 미국을 중심으로 한 거대한 세계의 거미줄같은 연결망을 상대하는거라 더 버거웠던 점에서 어느정도 승패는 싸워보기도 전에 났다고도 할 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당시 기준에서 미국 대통령들부터 최고위층들까지 지금 중국과 다르게 어떤 경제, 금융 제재가 불가능한 소련이 핵공멸이 아닌 이상무너질리는 없을거라 여겼고 이런 양극체제는 거의 반영구적이라고 받아들여진만큼 냉전 붕괴와 세계체제의 경제적인 부분에서는 거의 완성에 가깝게 도달할것이라는에 대해서는 상상도 못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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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냉전붕괴 시기와 동시에 근대 자본주의 세계체제 내에서도 경쟁이 벌어지는데 그것은 현재 일본 장년층이 짱구 극장판의 어른제국의 역습에서와 같이 향수를 느끼는 버블시기의 일본이었습니다. 이 시기의 일본은 현재 중국과 매우 유사하면서도 오히려 더 괄목할만한 부분을 보여주는데요. 중국이 포브스에서 사실상 공산당 비호하에 내수를 독점해서 순이익은 낮지만 수입이 엄청난 그런 국영기업 위주로 도배된거에 비해 당시 일본기업은 그런 국영기업과 대형은행들도 즐비했으나 도요타, 소니, 파나소닉등 당시 글로벌 시장에서도 최선두를 달리는 기업이 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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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10대 시총 상위권중 7개 이상이 일본것이고 50대기업중 34~35개가 일본이 차지했다는것은 인터넷에 나도는 소위 '일본 버블경제의 위엄.jpg' 이런식으로 나도는 짤방을 하도 많이 보셔서 익숙해지셨을정도니 중언부언은 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일본은 이런 기업부문을 제외하고도 소득이 사실상 주요국중 세계 1위를 찍고, 해외 자산도 세계 1위를 달성하며 미국이 일본이 폭발적으로 팽창하는 1970년대 중반까지만해도 고작 100~200억달러 수준의 적자를 내거나 혹은 흑자를 간간히 내기도 했다면 70년대말 - 80년대초에는 이게 규모가 늘어서 2000억달러 무역적자가 나올정도가 되죠.




그래서 실제로 이 때 미국은 이미 영국과 서유럽에서 가져오기 시작한 금융 통제권과 더불어 위에서 말씀드린 3차 산업혁명의 중점이 되는 IT 산업등 신산업 위주로 육성하면서 제조업 부분에선 미국과 선린관계를 가져가던 당시 중국과 그리고 냉전 이후에는 동구권등에 대한 투자 및 아숫소싱으로 굴뚝산업이라 불리는 제조업의 비중과 단가를 줄입니다.



이게 이해가 되는게 제조업들은 고용의 창출은 많이 해서 분명히 도움이 되지만 수익과 경제규모의 팽창면에서는 이미 침체 내지 감소수준이었고, 그런걸 100개 팔아도 고부가가치 서비스나 상품을 5개 정도파는거에 비해서 미미했기 때문이죠. 그렇기 때문에 단순한 매출 측면에서는 현재도 폭스바겐이나 도요타, 월마트등이 최상위권에 위치해있습니다만 순이익면에서는 수십위로 밀려나는 현상이 그래서 벌어지는것이고요.



그런데 일본도 문제점이 있었습니다. 이번해 하버드 비지니스 리뷰 4월달에 버블 일본경제와 중국 경제 등 동아시아 모델을 지적하는 기고문에서 지적되었듯이, 인프라의 과잉개발의 즉 토건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비중 즉 이것은 부동산 자산 버블로 내수 경제를 띄우는 한편, 동아시아의 고질적인 문제점인 원자재와 식량의 자급자족 불가로 이런것을 해외에서 사와야 했기 때문에 미국-유럽등에 팔아서 외화, 한 마디로 달러를 가져와야하는데 일본의 록펠러 타워 인수부터 소위 일본에 대한 공포증 줄임말로 공일증이 생기고 있어서 이것도 녹록치 않았습니다.




더군다나 이미 제가 짚어드렸듯이, 이런 산업들은 미국-유럽에서 120~130년전부터 해오던 소위 전통산업이라 성장이 크게 없었고 나눠먹을 파이 지분을 계속 뺐어먹어야 겨우 살아남는 제로섬 경쟁이 되기 일수였는데 수익도 별로였죠. 그래서 이런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서 일본 대장성은 두가지 방책을 세웁니다. 하나는 부동산버블 대신 주식 버블을 키우는 한편 2차 산업혁명의 쌀이 철강이었듯이 3차 산업혁명의 핵심이 반도체가 될 것이라는걸 파악하고 그쪽을 정부의 대폭적인 지원하에 육성하기로 한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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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해서 일본은 일반 경공업 및 중공업 제품도 자기네 국산만 쓰면서 반도체 같은 고부가가치 제품도 자국산만 쓰는걸 넘어 일본 관료와 정치인들과 서로 쿵짝하는 정경유착하 보조금을 지원받아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가성비로 쓸어버리고 있었습니다. 그게 어느정도였냐면 1989년 기준 상위 10대 반도체 회사중 1~3위가 NEC, 도시바, 히타치 였고 그외에도 5,6,

8위에 후지츠 미츠비시 마츠시타등이 있었고 반도체 시장 점유율이 57%에 달했고, 인텔은 1985년에 아예 D램 시장에서 손을 들고 백기투항까지 해버리는 상황까지 발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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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수준이다보니 미국입장에선 뚜겅이 열릴수밖에 없었고, 미국은 그 유명한 플라자 합의로 수출 가격을 절상해 가격경쟁력을 떨어뜨리독 유도하는 한편, 일본내 외산 반도체 비율을 최소 20%이상으로 올려야 된다는 1986년 미일반도체 협정을 맺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기세는 꺾일 여지가 안보여 앞서 말씀드린 1989년 1990년도 까지만해도 세계 반도체 시장의 주도권을 쥐고 있었는데 1991년도부터 시작해서 조금씩 일본의 기업들이 1~2위권은 지키고 있었지만 3위권등은 추격당하는등 그 조짐을 보이다가 1993~1994년도 이후부터는 미국에게 1위권등을 내주고 시장 점유율이 점진적으로 내려가기 시작해 미국은 고부가가치 산업 및 핵심기술에 대한 거의 독점수준으로 3차 산업혁명을 단독으로 주도할 계기를 맞게 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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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에 일본은 내수 진작을 위해서 유도해 한때 미국 증시 규모보다 커졌던 일본의 니케이 버블도 터져버리고 그 충격파가 이후 부동산에도 서서히 전가되면서 약 1990년대 중반에 미국 경제의 73%까지 따라잡고 그 시절까지만해도 그래도 일본이 미국을 최소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초에는 제친다는 말이 나오다가 동아시아 경제의 중심이자 자산의 6~70%이상을 차지하고 도쿄만으로 미국을 사고 덴노가 거처하는 황거만으로 캘리포니아를 산다던 그 부동산 버블이 펑 터져버리면서 모든게 골로가고 거대한 정부 지원을 통한 가성비로 경쟁해왔던 상당수의 일본 기업들 및 그리고 아예 정부 소속인 국영기업들은 순식간에 세계 100대기업등의 순위권에서 전부 탈락하게 되는 참사를 맞게 됩니다.

 


이렇게 미국은 장장 50년 가까이 전 세계를 체스판으로 놓으며 정치-이념-군사에서 싸운 유이의 초강대국중 하나인 소련을 붕괴시켰고, 2020년 현재까지도 미국의 경제 규모 대비 가장 거대했으며 주식과 해외자산에선 미국조차 능가했던 일본조차 경제전쟁한지 약 15년만에 미국에게 도전할수 없을정도 수준으로 떨어뜨리는데 성공했고 이것은 그야말로 세계체제의 가장 꼭대기에 있는 국가만이 휘두를수 있는 권능이자 전가의 보도에 힘입은 덕택이였습니다. 물론 이런 지위도 미국이 처음에 유럽에게 가져오기 위해서 장고의 세월을 참으며 유럽 식민제국 전체보다 커질동안 군사-정치적 존재감을 최대한으로 줄인 진정한 의미의 도광양회를 했기에 날로 획득한건 아니지만요.


여하튼 미국은 드디어 세계의 공산권 붕괴와 경제적 라이벌의 침체로 마지막 경제 세계화의 스퍼트를 뛰는 한편 국제기구가 설립된 이후 어떤때보다 강력해지게끔 조력해 한 때 NGO등을 포함해 초국가단체라고 교수와 전문가들이 논했을정도로 국가간의 국경을 초월하는 정치 기구들의 힘의 향상 즉 세계화의 마지막 단계라 일컬을수 있는 정치적 세계화의 시초를 닦게 됩니다.

1개의 댓글

2020.09.02

잘 읽었습니다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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