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

[스압,브금] 크리스마스 이야기

선브금

 

안녕 게이들아 오늘은 크리스마스에 관한 몇가지 얘기들 가지고 왓어

 

얼마 안남았으니까 기분이라도 내야지

 

그래봣자 나는 옆구리에 키보드와 마우스만 끼고 살겟지만

 

우리 읽판 게이들이라도 기분을 살려줘야지 (조낸 슬퍼진다 ㅠㅠ)

 

좀 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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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ristmas.jpg

 

그는 갑자기 잠이 깨었다.

새벽 네 시였다.



매일 그 시간이면 소젖을 짜러 가기 위해 아버지가 그를 깨웠었다.



어렸을 때의 그 습관이 아직도 남아 있다니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아버지는 벌써 30년 전에 세상을 떠나셨다.



그런데 그는 아직도 새벽 네 시면 잠이 깨곤 하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그는 돌아누워 다시 잠을 청하곤 했지만, 오늘은 달랐다.

크리스마스였기 때문이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이제 와서 크리스마스가 흥분될 일이 무엇인가?

그의 자식들은 이미 다 성장해서 집을 떠났으며,
그는 텅 빈 집에서 아내와 단둘이 살고 있었다.



엊저녁 아내는 그에게 말했었다.

"크리스마스트리는 내일 다듬어요. 여보. 오늘은 너무 피곤해요"



그래서 그 나무는 아직 뒷문밖에 놓여 있었다.



웬일로 오늘 밤은 이토록 정신이 또렷한 걸까?

아직도 밤이었다.

별들이 선명했다.



달은 없었지만, 별들은 어느 때보다도 반짝였다.



이제 생각하니 크리스마스 새벽에는 항상 별들이 크고 선명했던 것 같다.



다른 별들보다 더 크고 더 빛나는 별 하나가 눈에 띄었다.



그 별이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마치 밤새도록 먼 하늘을 이동해 온 것처럼.



당시에 그는 열다섯 살이었고 아직 아버지의 농장에서 함께 살고 있었다.



그는 아버지를 사랑했다.

그러나 크리스마스 며칠 전이되어서야 비로소 그 사실을 알았다.



그날 그는 우연히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하시는 말을 엿들었다.

"여보, 난 새벽마다 로버트를 깨우는 게 싫소. 그 앤 한창 자라고 있고
잠이 필요한 나이요. 내가 깨우러 갈 때마다 얼마나 곤히 자고 있는지!
나 혼자서 소젖 짜는 일을 할 수 있었으면 좋으련만."



"그건 불가능한 일이에요, 아담."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게다가 그 애는 이제 어린애가 아녜요. 제 할 일을 해야 할 때라구요."

"그건 그래."



아버지가 마지못해 대답하셨다.



"하지만 난 정말 그 앨 깨우는 게 싫소."



이 대화를 들었을 때 그는 무엇인가 깨달아지는 게 있었다.



아버지가 그만큼 그를 사랑하고 있었던 것이다.



더 이상 새벽마다 늑장 부리거나 두세 번 아버지가 깨울 때까지 기다릴 이유가 없었다.



그날 이후 그는 아버지가 부르자마자 잠이 가득한 눈을 부비면서도 얼른 일어나 옷을 들쳐 입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 전날 밤이 되었다.

그해에 그는 열다섯 살이었다.

그는 내일의 크리스마스에 대해 생각하며 잠시 누워 있었다.



그는 아버지에게 멋진 선물을 하고 싶었다.

예전처럼 10센트 균일상점에 가서 아버지에게 드릴 넥타이 하나를 샀다.

그것도 멋진 선물이긴 했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그것으론 충분하지 않은 듯했다.

그는 옆으로 누워 팔꿈치로 머리를 괴고서 다락방 창문을 통해 밖을 내다보았다.

별들이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지금까지의 그 어느 때보다 더 밝게 빛나고 있었다.



그 중의 어떤 별 하나는 마치 베들레헴의 별처럼 특별히 빛나고 아름다웠다.

어렸을 때 그는 아버지에게 물은 적이 있었다.

"아빠 마구간이 뭐예요?"

아버지가 말했다.

"소들이 있는 우리 집 가 우리와 똑같은 곳이란다."

예수가 가축우리에서 태어났고, 그 가축우리로
양치기들과 현자들이 크리스마스 선물을 갖고 왔다니!



거기에 생각이 미치자 그는 저 밖 가축우리에다 아버지에게
드릴 특별한 선물을 준비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네 시 전에 일어나 몰래 축사로 기어가서 소젖을 다 짜 놓는 거다.



혼자서 일을 끝낸 다음 청소까지 마쳐 놓으면 아버지가
우유를 짜러 오셔서는 내가 해 놓은 일을 보시겠지.

아버지는 누가 그렇게 했는지 금방 아실 것이다.

그는 별들을 바라보며 혼자 미소를 지었다.

꼭 그렇게 해야지.

그렇게 하려면 너무 깊이 잠들어선 안 돼.



그는 도중에 스무 번도 넘게 깨었다.

그리고는 성냥을 켜서 낡은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아직 자정이었다.



그다음에는 1시 반이었고, 또 그 다음에는 2시였다.

새벽 2시 45분이 됐을 때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꿰입었다.



그런 다음 살금살금 계단을 기어 내려가 삐걱대는 마룻바닥을 지나 살며시 밖으로 나왔다.



붉은 황금빛으로 빛나는 큰 별이 축사 지붕 위에 낮게 걸려 있었다.

암소들이 졸린 눈으로 놀라서 그를 쳐다보았다.



암소들도 너무 이른 시각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는 소들에게 건초 더미를 날라 준 뒤 소젖 짜는 양동이와 큰 양철 우유 통들을 운반해 왔다.



아버지가 놀랄 것을 생각하니 저절로 미소가 떠올랐다.



그는 침착하게 소젖을 짜기 시작했다.



두 개의 강한 젖줄기가 향기로운 거품을 내며 양동이 속으로 떨어졌다.



다른 날보다 일하기가 쉬웠다.



소젖 짜기가 전혀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것이 사랑하는 아버지에게 드리는 특별한 선물이기 때문이었다.



마침내 작업을 마쳤다.



두 개의 우유 통이 가득 채워졌다.



그는 우유 통 마개를 닫은 다음 우유 보관 창고로 옮겨다 놓았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문을 닫았다.



빗장을 거는 것도 잊지 않았다.



연장들도 문 옆 제자리에 갖다 놓고 양동이는 깨끗이 씻어 걸어 두었다.



마지막으로 그는 축사를 나와 문을 닫아걸었다.



방으로 돌아온 그는 숨을 돌릴 겨를도 없이 얼른 옷을 벗고 침대 속으로 뛰어들었다.



아버지가 일어나는 기척이 들렸기 때문이다.



그는 헐떡거리는 숨을 감추려고 이불을 머리까지 뒤집어써야만 했다.



그 순간 문이 열렸다.



"로버트!"



아버지가 그를 소리쳐 불렀다.



"오늘이 크리스마스인 건 안다만 우린 일어나서 우유를 짜야 한다. 어서 일어나라. 얘야."



"네, 알았어요."



그는 일부러 졸린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 먼저 나가마."



아버지가 말했다.



"내가 먼저 시작할 테니 너도 금방 오거라.



문 닫히는 소리가 들리고, 그는 웃음을 참으며 그대로 누워 있었다.



이제 몇 분이 지나면 아버지가 상황을 눈치채실 것이다.



그 몇 분이 너무도 길게 느껴졌다.



10분, 15분... 아니, 몇 분이 흘렀는지 짐작할 수 없었다.



아버지의 발소리가 다시 들렸다.



문이 열렸지만, 그는 여전히 자는 체하며 누워 있었다.



"롭!"



"네, 아빠."



"너 이놈..."



아버지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것은 감동의 눈물이 뒤섞인 기묘한 웃음이었다.



"너 날 놀렸구나?"



아버지는 이윽고 그의 침대 옆으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이불을 잡아당겼다.



"오늘은 크리스마스잖아요, 아빠!"



그는 얼른 아버지를 껴안았다.



아버지의 두 팔이 그를 힘껏 껴안았다.



어둠 속이라서 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고맙다, 아들아. 아무도 이렇게 멋진 선물을 내게 준 적이 없구나."



"전 다만 아빠께..."



저절로 말이 끊어졌다. 뭐라고 말해야 할지 그는 알 수 없었다.



그의 가슴은 아버지에 대한 사랑의 감정으로 터질 것만 같았다.



"그렇다면 난 다시 가서 좀 더 자야겠구나."



그러나 잠시 후 아버지는 다시 말씀하셨다.



"아니다. 애들이 벌써 일어나기 시작한 것 같구나. 난 여태껏

너희들이 잠에서 깨어 크리스마스트리를 바라보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난 늘 소들에게 매달려 있었거든. 어서 나오너라."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옷을 입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크리스마스트리가 있는 곳으로 내려갔다.



이내 별들이 있던 자리에 태양이 솟아올랐다.



얼마나 멋진 크리스마스 아침이었던가!



아버지가 어머니와 식구들 모두에게 그가 한 일을 설명했을 때

그는 부끄러움과 자랑스러움으로 다시금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내가 받아 본 최고의 크리스마스 선물이다. 매년 크리스마스
아침이 되면 너의 선물을 기억하마, 로버트. 내가 살아 있는 한 말이다."



지금 창 밖에서는 그 큰 별이 서서히 지고 있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슬리퍼를 신고 가운을 걸쳤다.



그리고 살며시 다락방으로 올라가 크리스마 트리 장식이 담긴 상자를 찾아냈다.



그는 그것을 아래층 거실로 가져갔다.



그런 다음 나무를 옮겨왔다.



작은 나무였다.



자식들이 모두 떠난 다음부터는 크리스마스트리로 큰 나무를 쓴 적이 없었다.



그는 나무를 받침대에 세웠다.



그런 다음 그것을 장식하기 시작했다.



그다지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



시간이 빠르게 지나갔다.



오래전 새벽 축사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그는 서재로 올라가 아내에게 줄 선물이 담긴 작은 상자를 가져왔다.



별 모양의 다이아몬드였다.



크지는 않지만 우아한 디자인이었다.



그는 선물 상자를 나무에 매달고서 허리를 폈다.



아주 보기 좋은 크리스마스트리였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그는 아내에게 말하고 싶었다.



자신이 얼마나 그녀를 사랑하고 있는지.



그걸 실제로 말한 것은 아주 오래전 일이었다.



지금 그는 그들이 젊었을 때보다 더 많이,

그리고 더 특별한 방식으로 그녀를 사랑하고 있었다.



사랑하는 능력, 그것은 진정한 삶의 기쁨이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능력이 결여된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그에게는 아직 사랑이 살아 있었다.



그는 갑자기 어떤 사실 하나를 깨달았다.



사랑이 그의 가슴에 살아 있게 된 것은 오래전
아버지가 그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게 된 다음부터라고.



바로 그거였다.



사랑만이 사랑을 깨울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이후 그는 계속해서 사랑의 선물을 줄 수 있었다.



오늘 아침, 이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아침, 그는 그 선물을 사랑하는 아내에게 주리라.



그는 아내에게 영원히 간직할 편지를 쓰고 싶었다.



그는 책상으로 가서 아내에게 사랑의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나의 아내에게"





- 펄 벅





테디 스톨라드에겐 분명히 '열등생'이라는 등급이 매겨져 있었다.



학교 공부에 대한 무관심, 때 묻은 구겨진 옷, 한 번도 빗질하지
않은 머리, 학교에서 가장 무표정한 얼굴, 게다가 표정없고
공허하며 초점 잡히지 않은 시선 등이 그것을 잘 입증해 주었다.



여교사 톰슨 선생이 테디에게 질문을 하면 테디는 언제나 짤막하게만 답했다.



흥미가 없고, 이렇다 할 학습 동기도 없었으며, 항상 멀게만 느껴졌다.



좋아하기엔 너무도 힘든 아이였다.



톰슨 선생은 입으로는 학생들 모두를 똑같이 사랑한다고
말하곤 했지만, 그 말이 마음속까지 진실인 것은 아니었다.



테디의 시험지를 채점할 때마다 톰슨 선생은 짓궂은 쾌감을 느끼면서 테디의 틀린
답안에 X 표를 해 나갔으며, 답안지 위에다가는 멋들어지게 F학점을 써 놓곤 했다.



톰슨 선생은 테디에 대해 좀 더 알았어야 했다.



톰슨 선생에게는 테디의 생활기록부가 있었다.



따라서 테디가 처한 환경을 모른다고 할 수도 없었다.



생활기록부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1학년-공부에 대한 가능성이 엿보이고 학습 태도도 좋음. 하지만 가정환경이 열악함.

2학년-더 잘할 수 있지만, 엄마가 중병에 걸렸음. 가정에서 아무런 지도를 받고 있지 못함.



3학년-착한 소년이지만 너무 심각한 것이 단점. 학습 속도가 뒤처짐. 올해 어머니가 돌아가셨음.



4학년-배우는 속도는 매우 늦지만 얌전함. 아버지가 아이에게 아무런 관심을 기울이지 않음.

크리스마스가 되어 남학생과 여학생들은 톰슨 선생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가져왔다.



학생들은 가져온 선물을 교탁 위에 쌓아 놓고

빙 둘러서서 선생님이 그것들을 풀어 보는 것을 구경했다.



선물들 중에는 테디 스톨라드가 가져온 것도 있었다.



톰슨 선생은 테디가 선물을 가져왔다는 사실에 저으기 놀랐다.



테디의 선물은 갈색 종이에 스카치테이프로 아무렇게나 포장돼 있었다.



그리고 종이쪽지엔 간단히 "테디가 톰슨 선생님께"라고 적혀 있었다.



톰슨 선생이 테디의 선물을 풀자 번쩍번쩍 빛나는
가짜 다이아몬드 팔찌와 값싼 향수병 하나가 나왔다.



팔찌는 중간에 박힌 보석들이 빠져 달아나고 없었다.



남학생과 여학생들은 테디가 가져온 선물을 보고 킥킥대며 웃기 시작했다.



하지만 톰슨 선생은 최소한의 분별력이 있었기에 즉각 학생들의 웃음을
중지시키고 그 자리서 팔찌를 껴 보고 향수 한 방울을 손목에 묻혔다.



손목을 학생들에게 냄새 맡게 하면서 그녀는 말했다.



"얘들아, 어떠니? 냄새가 참 좋지 않니?"



학생들도 선생님의 의도를 알아채고는 얼른 "야! 정말 좋은 냄새네요."하고 맞장구를 쳤다.



그날 마지막 수업이 끝나고 학생들이 모두 가 버린 뒤에도 테디는 가지 않고 우물쭈물 남아 있었다.



테디는 톰슨 선생의 교탁으로 다가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 톰슨 선생님, 선생님한테서 엄마 냄새가 나요...... 엄마가 꼈던
팔찌도 선생님께 잘 어울리구요. 제 선물을 받아 주셔서 정말 기뻐요."



테디가 교실을 나간 뒤 톰슨 선생은 그만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신에게 자신을 용서해 줄 것을 기도했다.



다음 날 학교 수업이 시작됐을 때 학생들은 새로운 담임을 맞이했다.



톰슨 선생은 이미 이전의 톰슨 선생이 아니었다.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이다.



그녀는 더 이상 단순한 교사가 아니었다.



이제 그녀는 신의 대리인이 되었다.



그녀는 제자들에게 아낌없는 사랑과 관심을 쏟아 붓기 시작했다.



학생들 모두에게 힘과 용기를 불어넣었으며, 특히 공부가 뒤처지는

아이들, 그중에서도 테디 스톨라드에게 뜨거운 관심을 기울였다.



그해가 끝나 갈 무렵 테디는 극적인 발전을 했다.



대부분의 학생들을 따라잡았으며, 심지어 다른 학생들을 앞지르기도 했다.



그 후 오랫동안 톰슨 선생은 테디의 소식을 듣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엽서 한 장을 받았다.

존경하는 톰슨 선생님께

 누구보다도 먼저 선생님께 알려 드리고 싶었어요.



제가 반에서 차석으로 졸업을 하게 됐답니다.

사랑을 보내며,

테디 스톨라드로부터


4년 뒤 또 다른 엽서가 날아왔다.


존경하는 톰슨 선생님께

제가 저희 학교에서 일등으로 졸업하게 됐습니다.

선생님께 가장 먼저 알려 드리고 싶었어요.

대학 생활이 쉽진 않았지만, 즐거운 날들이었습니다.

사랑을 보내며 ,

테디 스톨라드로부터


또다시 4년 뒤에 온 엽서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톰슨 선생님,

저는 오늘 테오도르 스톨라드 의학박사가 됐습니다. 어떻습니까?

그리고 제가 다음 달 27일에 결혼하게 됐다는 소식을 선생님께 가장 먼저 알립니다.

선생님에서 꼭 오셔서 제 엄마가 살아 계셨다면 앉으셨을 자리에 대신

앉아주시기 바랍니다. 이제 저에게 남은 가족이라곤 선생님밖에 없습니다.

아버지께서 작년에 돌아가셨거든요.

여전히 사랑을 보내며,

테디 스톨라드 올림


톰슨 선생은 테디의 엄마를 대신해 그 결혼식에 참석했다.



그녀는 그 자리에 앉을 충분한 자격이 있었다.



테디에게 결코 잊지 못할 일을 해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 작자 미상

"내가 가기 싫다는데 뭐가 이해가 안 간다는 거예요?"



나는 남편 래리에게 투덜거렸다.



래리는 의사였다.



그는 나더러 캘리포니아 북부의 타호 호수 근처에서
열리는 의학 세미나에 함께 가자고 고집을 부리는 것이었다.



때는 한겨울인 12월 중순이었다.



남편은 숫제 애원하다시피 말했다.



"나 혼자 장거리를 운전하고 싶지 않아서 그래. 그리고
내 계획을 좀 들어봐. 승용차 대신 제우스를 몰고 가는 거야."



제우스는 우리의 홈카(주방시설과 침실이 갖추어진 차. 미국에선
여행 시에 대중적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음)에 붙여진 이름이다.



남편이 계속 말했다.



"그럼 당신도 따뜻하고 안락한 여행을 할 수 있을 테고 말이야. 내가 모임에
참가하는 동안 당신은 차 안에서 곰 인형이나 뜨개질하면서 쉬면 돼.
식사는 사 먹으면 되구. 절대 차 안에서 요리를 만들게 하거나 설거지를 시키진 않을 게."



하긴 곧 있으면 크리스마스였다.



북적대는 휴가 기간을 고산지방의 고요함으로 대신한다는 계획이 내 마음을 끌어당겼다.



그 결과 이튿날 아침 나는 어느새 남편 곁에 앉아 제우스를 타고 타호 호수를 향해 떠나고 있었다.



따사로운 햇살이 새크라멘토 계곡의 서리들을 모두 날려 보내 주었다.



그것은 내 마음속에 있던 날씨에 대한 불안까지도 흩어 버렸다.



하지만 얼마 안 가서 도로가 시에라 산맥의 구릉지대들을 꾸불거리며 올라가는
동안 낮게 드리워진 회색 구름 떼가 해를 가리며 위협적으로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햇살이 화창했던 아침은 순식간에 황량하고 스산한 오후로 바뀌었다.



남편이 라디오를 켜자 음악이 흘러나오는 대신 날씨 속보가 우리를 맞이했다.



"중앙 기상대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거센 폭풍이 지금 시에라 네바다
산맥을 향하고 있습니다. 자동차를 운전하시는 분들은 스노우 체인을
준비해 눈길에 대비하셔야 합니다. 때로는 폭설을 동반할 수도 있습니다."



도너 서밋(시에라 산맥의 한 봉우리)에 이르렀을 때는 눈이 담요처럼 도로를 온통 뒤덮고 있었다.



차의 헤드라이트는 하얗게 소용돌이치는 눈발 속을 거의 뚫지 못했다.



나는 옆에 앉아서 불평을 하기 시작했다.



"집에 남아 있고 따라오지 말았어야 하는 건데."



남편은 날 안심시키려고 노력했다.



"걱정하지 말아요. 타호 호수로 가는 대신에 레노(미국 네바다 주 서부의 도시)로
가자구. 그곳에 홈카 여행자들을 위한 작은 공원이 있거든. 근처에는 카지노와
식당들도 많이 있구 말이야. 우리 그곳에 가서 쇼도 구경하면서 한번 호화스럽게
지내보자구. 한 시간이면 그곳까지 충분히 갈 수 있어."



그렇게 해서 우리는 애초의 계획과는 달리 레노 시의 공원에 우리의 제우스를 주차하게 되었다.



안전하고 꽤 괜찮은 공원이었다.



하지만 이제 우리가 있는 곳과 우리 집 사이에는 거대한
산맥 하나와 눈보라 치는 폭풍설이 가로놓여 있었다.



다음날도 눈이 내렸고, 그 다음 날도 눈이 내렸다.



또 그 다음 날도.



우리는 카지노는 둘째치고 차 밖으로 백 미터도 외출할 수 없었다.



제우스 안에 앉아서 우리는 우리가 가진 모든 읽을거리들을 낱낱이 다 읽었다.



그래도 시간은 마냥 느릿느릿 지나갔다.



그때 남편이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우리 크리스마스 파티를 열자구. 바로 여기서 말이야! 홈카를 몰고 이 공원에 와 있는
모든 여행자들을 초대하는 거야. 지금쯤 다른 사람들도 답답해서 미칠 것 같을 거야."



나는 얼굴을 빛내며 그 제안에 동의했다.



"멋진 생각이에요! 내 필기함 어딨죠? 초대장을 만들어야겠어요."



내가 갖고 다니는 필기함은 평범한 연필 상자가 아니었다. 그것은 길이가
30센티, 높이가 20센티, 폭이 15센티에 달하는 일본식 소형 서랍장이었다.



각각의 모서리는 직각으로 검은색의 얇은 쇠가 덧대어져 있고,
맨 위 칸은 경첩이 달려 있어서 위로 여닫을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그곳은 붓과 먹을 넣는 칸이었다.



그리고 전면에는 크기가 다른 일곱 개의 작은 서랍이 있었다.



서랍들마다 엔 작은 자물쇠가 달려 있어서 운치를 더해 주었다.



또한, 쇠못을 사용하는 대신에 대나무 못을 사용해 깍지를 끼듯이 공들여 짜맞춘 것이었다.



나무재질은 골동품만이 갖는 적갈색의 고풍스러움을 지니고 있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2백 년 동안 밀랍으로 정성 들여 닦고 썩지 않도록 잘 보존한 결과였다.



우리가 결혼하고 나서 얼마 안 되어 남편이 그 필기 상자를 나에게 선물했다.



나는 잉크와 펜이 담긴 서랍을 열었다.



그리고 펜촉이 넓은 펜을 골라 큼지막한 필체로 여섯 장의 초대장을 만들었다.



<오늘 저녁 여덟 시에 23구획에 주차해 있는 홈카 제우스에서 포트럭 파티(각자가

음식을 갖고 와서 하는 저녁 파티)를 엽니다. 당신과 당신의 이웃분들을 초대합니다.>



우리는 초대장을 들고 무릎까지 빠지는 눈길을 헤치고 가서 흰 이불 위에
양귀비 씨앗처럼 드문드문 흩어져 있는 홈카들의 문 손잡이에 단단히 붙여 놓았다.



시간이 되자 처음 보는 이방인들이 군침이 도는 음식과 술을 들고 자기소개를 하며 문앞에 나타났다.



우리는 모여 앉아 잡담을 나누고, 서로가 한 모험들을 주고받고,
농담을 하고, 흘러간 노래들을 부르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두 시간 뒤 손님들은 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자발적으로 하나 둘 떠났다.



사람들을 모두 보내고 내가 막 신발을 벗으려는 찰나에 문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어둠 속에서 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희는 밀러 부부입니다. 요 옆의 트레일러 하우스에 머물고 있죠."



나는 서둘러 말했다.



"어서 들어오세요. 어서요. 즐거운 파티에 좀 늦은 게 무슨 상관인가요."



코와 뺨이 빨갛게 얼은 젊은 남자가 자기소개를 했다.



"전 알버트 밀러입니다. 이쪽은 제 아내 샐리이구요."



샐리는 주저하듯 손을 내밀어 우리와 악수를 했다.



그런 다음 그녀는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는 듯 말없이 팔걸이의자에 가서 털썩 주저앉았다.



알버트는 컴퓨터 프로그래머인 자신의 직업과 샌프란시스코 근처에 있는 자신의 집,
그리고 트레일러 하우스를 몰고 지난 두 달 동안 미국 서부를 여행한 일들에 대해 말했다.



샐리는 한 번도 입을 열지 않았다.



나는 그들에게 향이 좋은 차를 대접했다.



그녀는 마지못해 한 모금 홀짝거리고는 찻잔을 한쪽으로 치우려고 했다.



하지만 그렇게 하려면 그녀는 우선 내가 별 생각 없이
테이블 옆에 놓아둔 그 필기함을 치워야만 했다.



그녀는 밤색 머리칼을 위로 쓸어올리고는 파란색이 감도는
초록색 눈으로 유심히 그 흥미있는 상자를 들여다보았다.



그 순간 나는 그녀의 어두웠던 표정이 달라지는 걸 눈치챘다.



그녀는 내가 애초에 추측했던 것보다 훨씬 젊어 보였다.



아직 서른 살도 안 된 것 같았다.



하지만 그 표정의 변화가 정말인지 아니면 내 착각인지 확인하기도
전에 무뚝뚝하고 냉담한 표정이 다시금 그녀의 얼굴을 사로잡았으며,
그녀는 다시금 그녀 자신만의 세계로 뒷걸음질쳐 들어갔다.



내 남편도 나처럼 샐리의 그런 변화를 목격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긴장을 풀기 위해 그 상자에 대해 설명했다.



"1800년대에는 대부분의 일본인들이 문맹이었어요. 이 상자들은 장거리 여행을 하는
선비들이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갈 때마다 필기도구를 챙겨갖고 다니던 상자였지요."



대화를 나눠 보려던 시도는 곧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샐리는 마음이 딴 데로 가 있었다.



알버트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머플러를 집어들었다.



가야 할 시간이라는 암시였다.



서로 잘 자라는 인사를 나눈 뒤 알버트가 말했다.



"댁이 보내신 초대장에는 '각자 음식을 가져오라'라고 적혀 있었지만
샐리는 요리를 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 대신에 샐리가 쓴 책을
한 권 가져왔습니다. 샐리는 전에는 글을 썼거든요. 글을 아주 잘 썼지요."



곧이어 그 부부는 밤의 어둠 속으로 떠나갔다.



우리의 방문객들이 떠나자마자 래리가 말했다.



"전에 분명히 저 얼굴을 본 것 같아. 샐리 밀러의 얼굴이 아니라 그녀의 표정과
아주 비슷한 얼굴 말이야. 틀림없이 어디서 본 적이 있는데 잘 기억이 나지 않는군."



다음 날 아침은 햇빛이 화창하고 따뜻했다.



며칠 동안의 춥고 음산한 날씨에 대한 보상인 셈이었다.



마치 자연이 자신의 변덕스런 마음에 대해 사죄라도 하는 듯했다.



남편과 내가 홈카 지붕에 쌓인 눈을 쓸어내리고 있을 때 알버트 밀러가 다가와 인사를 했다.



"떠날 준비가 다 되셨나요?"



남편이 대답했다.



"옙. 쫓기는 일상생활로 다시 돌아가야죠."



알버트는 장화에 묻은 눈을 털려는 듯 발을 탁탁 굴렀다.



추운 걸까? 아니었다.



나는 그가 뭔가 말을 하기 위해 애써 용기를 내고 있다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얘기를 꺼낼 적절한 순간을 기다리는 것 같았다.



마침내 그가 입을 열었다.



"떠나시기 전에 지난밤 일에 대해 사과를 드려야 할 것 같군요. 제 아내 샐리는
지금 우울증으로 고생하고 있습니다. 초대장을 받고 나서 샐리를 트레일러 밖으로
끌어내기 위해 많은 설득을 했습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거나 파티에 참석하면
그녀의 기분이 나아질까 해서였죠. 하지만 제 생각이 틀렸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알버트는 잠시 말을 멈추고 머플러를 만지작거리더니 얘기를 계속했다.



"우리는 석 달 전에 아이를 낳았습니다. 아이를 처음 가진 부모들이 으레 그렇듯이 우리도
걱정을 했습니다만 그럴 필요가 없었지요. 아기는 태어날 때부터 건강하고 튼튼했으니까요.
그런데 병원에서 퇴원해 집으로 돌아오고 나서 나흘 뒤에 아기는 요람에서 죽어 있었습니다.
의사들은 그것이 SIDS라고 하더군요. 그것에 대해 들어 본 적이 있으신가요? 유아 돌연사
증후군이라는겁니다. 아무 조짐도 없고, 아무 원인도 없으며, 아무런 치료법도 없다는 거죠."



아, 그랬었군, 하고 우리는 생각했다.



우리도 그 병에 대해선 들은 적이 있었다.



"샐리가 우울증에 빠진 건 그때부텁니다. 의사들이 안정제와 진정제 등을 처방했지만,
그런 약들은 증상을 잠시 숨길 뿐이죠. 실제론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잠시 그 집을 떠나 있는 게 좋겠다고 친구들이 권하더군요. 마음을 따라다니는
기억으로부터 멀어져 있는 게 좋겠다는 것이죠. 그래서 전 이 트레일러 하우스를 샀습니다.
그 이후 줄곧 이 차를 몰고 여행을 다니고 있지요. 하지만 이것도 별로 큰 도움이 되는 것 같지는 않군요."



우리는 뭔가 위로가 될 말을 하려고 시도했지만 적당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우리는 단지 서로에게 여행길 조심하라는 말을 남기고는 각자의 차 안으로 들어갔다.



남편이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이제 알겠어. 전에 샐리 밀러를 어디서 봤는지. 아니, 내 말은 저 트레일러에 사는 샐리 밀러가
아니라 그녀가 갖고 있는 그 무기력한 표정의 얼굴 말이야. 내가 인턴일 때 여성들의 정신병동에
잠시 근무한 적이 있었거든. 그곳에서 샐리처럼 우울증과 절망감에 빠진 여성들을 많이 본 적이 있어.
영혼이 빠져 달아난 신체와 텅 빈 의식 속에 갇혀 아무 희망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지."



남편은 탄식조로 말했다.



"불쌍한 샐리! 저런 병에서 회복될 전망은 오늘이나 18세기나 암울하긴 마찬가지야. 그 병의
희생자들은 으레 정신병원의 우리에 갇히게 되지. 왜냐하면, 사람들은 충격 때문에 그 증상이
생긴 것이니까 아무리 끔찍하더라도 또 다른 충격을 가하면 증세가 역전되리라고 믿고 있거든."



남편은 타이어를 발로 차고 오일을 체크하면서 집으로 돌아갈 여행 준비를 했다.



남편이 손을 씻기 위해 홈카 안으로 들어왔을 때, 나는 내 일본제
필기함의 작은 서랍들에 담긴 물건을 모두 꺼내는 중이었다.



남편이 놀라서 물었다.



"지금 뭘하고 있는 거야?"

내가 대답했다.



"샐리에게 이 필기함을 선물하려구요. 잘 포장해서 리본을 매달아 샐리에게 줄 거예요."



남편은 펄쩍 뛰었다.



"당신 정신 나갔어? 그 물건이 우리 두 사람에게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갖는지 잊었어?
그게 싸구려 물건인지 알아? 도대체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됐지? 이유가 뭐야?
그것도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말이야!"



내 행동이 실수라 해도 틀림없이 그 뒤켠에는 어떤 강한 이유가 있었다.



나는 그 강한 이유를 딱히 꼬집어 말할 순 없었다.



설령 안다 해도 그것을 설명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나는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이 물건은 내 것이니까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거 아녜요?"



그리고 나서 나는 한마디 말도 없이 필기함을 포장하고 카드를 동봉한 뒤,
서둘러 밀러 부부의 트레일러 하우스로 가서 문앞에 놓아둔 뒤에 그곳을 떠났다.



집까지 오는 동안 우리는 거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잘못하다간 싸우게 될까 봐 염려해서였다.



날이 저물어갈 무렵 추위와 어둠이 우리들 사이의
긴장을 더 커지게 했을 때 마침내 내가 침묵을 깼다.



"샐리가 그 필기함을 처음 보았을 때를 잊었어요? 그녀의 얼굴이 환하게 돌아왔던 것을
당신도 목격했을 거예요. 만일 그녀가 그 상자를 곁에 두고 있으면 그것을 볼 때마다
그녀를 사로잡고 있는 우울증이 조금씩 벗겨져 마침내 완전히 치료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고 난 생각했어요. 당신도 알듯이 꺼져가는 불씨에 훅하고 바람을 불어주면 불꽃이
살아나고, 다시 몇 차례 더 불어주면 마침내 큰 불꽃이 되어 활활 타오르기도 하잖아요."



남편이 맞받아쳤다.



"당신은 아직도 동화 속 이야기를 믿고 있군. 차라리 당신이 뜨개질해서 만든 곰 인형 중
하나를 선물할 수도 있었잖아. 샐리는 신이 공정하지 못한 방법으로 인생의 카드놀이를
하고 있다고 믿고 있어. 절망은 그녀의 피난처야. 조만간 그녀도 정신병원에 가게 될 거라구."



그녀에 대한 남편의 평가는 줄곧 내 마음을 괴롭혔다.



왜냐하면, 나는 그 후로도 밀러 부부로부터 어떤 감사의 말이나 편지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거의 일 년이 지났을 무렵, 하루는 집에 돌아왔더니 우리의
소중한 필기함이 현관 입구의 테이블에 놓여져 있었다.



금방 눈에 띄도록 누군가 일부러 그 자리에 놓아둔 것이 분명했다.



남편이 말했다.



"오늘 아침에 배달되었어. 주소에 우리 두 사람의 이름이 적혀 있길래 당신이 올 때까지
뜯지 않고 기다렸지. 여기 편지도 있어. 당신이 뜯어 보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



나는 봉투를 뜯고 편지를 읽었다.


캐더린과 의사 선생님께



일찍 편지를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하지만 이 편지를 읽으시고 나면 아마도 제 편지가
늦어진 이유를 이해하시고 저를 용서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알버트가 저에게 당신들이 준 선물을 내밀던 날이 기억나는군요.



전 그것을 뜯어 보지도 않은 채 저 자신의 고독한 세계 속으로 뒷걸음질쳤습니다.



이튿날 아침잠에서 깨어나 제가 맨 처음 본 것이 바로 그 필기함이었습니다.



창문으로 스며들어온 햇살이 그 상자 위에서 빛나고 있더군요.



마치 어두운 극장 안에서 혼자 서 있는 연기자에게 조명 등이 비치는 것과 같았습니다.



그 단순한 선과 절묘한 장인 정신이 한 줄기 빛처럼 저의 우울한 마음속을 뚫고 들어왔습니다.



우아함과 아름다움이 다시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필기함이 가진 정교함과 세밀함에
사로잡혀 그 서랍들과 자물쇠, 경첩, 서랍 손잡이 등을 어루만지며 한참을 놀았습니다.



저는 서둘러 옷을 입고 제가 병에 걸리기 시작한 이후 최초로 쇼핑을 하러 나갔습니다.



그렇습니다.



제가 앓던 병을 우울증이라고 부릅시다.



저도 이젠 그것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그 필기함 덕분에 저는 처음으로 외출을 할 수 있었습니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저는 날마다 펜과 잉크와 종이들을 사러 다니고,
새로운 장소들을 방문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다시 시를 쓸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얼마 후에 우리는 긴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저는 곧바로 도서관으로 가서 일본의 미술과 전통예술에 대한 책들을 읽어 내려갔습니다.



저는 그 필기함에 대해, 그리고 일본 목각품의 특별한 기법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저는 또 금세기 초에 일본으로 이주한 영국 문헌학자 라프카디오 허른의 작업에 매료되었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일본 여자와 결혼한 뒤 생애 대부분을
일본의 설화와 전설과 고전작품들을 번역하면서 보냈습니다.



그는 자신의 저서에서 호라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호라이는 겨울도 없고, 꽃들도 시들지 않는 장소이지요.


그곳에선 마음이 언제나 젊음을 유지하기 때문에
그곳에 사는 사람들 모두가 늘 미소를 짓고 있습니다.



저는 제 필기함에 호라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저는 또 샌프란시스코의 박물관에 가서 일본의 예술과 문화에 대해 더 많은 걸 배울 수 있었습니다.



저는 지금 그 박물관에서 강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물론 알버트는 직장으로 돌아갔고 저 역시 저의 새로운 취미, 박물관 일, 집안의
허드렛일 사이에서 너무 바쁘고 너무 흥분이 되어 우울증에 빠질 겨를이 없었습니다.


이 무렵 저는 과거의 행복을 되찾았기 때문에 당신들에게 편지를 써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지요.



그런데 그때 저는 제가 임신을 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옛날의 두려움과 의심이 되살아나서 저는 다시금 글 쓰는 일로부터 멀어졌습니다.



어쨌거나 우리는 지난 11월에 사랑스런 딸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제 생후 두 달이 되었구요.



마침내 저는 제 자신이 과거로부터 벗어났음을 알았습니다.



저는 이제 당신들 두분에게 정직하고 솔직하게,
그리고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이 편지를 쓸 수 있습니다.



저는 당신들이 왜 제게 이 필기함을 주었는지 종종 의아했습니다.



동정심 때문이었을까? 사려 깊지 못한 충동적인 생각 때문이었을까?

아닙니다.



그렇지 않았을 겁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는 호라이가 신코로라고도 불린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신코로는 신기루라는 뜻이지요.



손으로 만질 수 없는 어떤 환영을 말합니다.



이제 저는 알았습니다.



순간적인 영감을 통해 당신들이 그 만질 수 없는 어떤 세계를 느꼈음을.

당신들은 그 선물이 분명히 어떤 작용을 하리라는 걸 알았던 것입니다.



여기 호라이 상자를 돌려 드립니다.



제가 전보다 이것에 애착이 덜해서가 아니라,

당신들이 이것을 갖고 있으면 또 다른 불행한
영혼을 도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저는 또다시 그런 경우가 없길 바랍니다.



저는 이 호라이 상자가 영원히 우리의 만남을
기억하게 하는 행운의 물건이 되기를 바랍니다.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샐리로부터



<추신> 우리는 어린 딸의 이름을 캐더린으로 정했습니다.


물론 편지를 다 읽었을 때 나는 두 뺨에 눈물이 흥건히 흘러내리고 있었다.



남편은 몸을 돌리고서 안경을 닦았다.



하지만 그가 애초에 가졌던 차가운 의학적인 태도와 처음의 예언에도
불구하고 그 역시 눈시울이 붉어져 있음을 나는 눈치챌 수 있었다.



그 후로 우리가 제우스를 타고 특히 크리스마스 무렵에 여행을 떠날 때면
남편이 먼저 나에게 호라이 상자를 꼭 챙겨갖고 가라고 충고하기에 이르렀다.



남편은 말한다.



"이 상자는 모든 사람들에게 선한 의지를 일깨워 주는 좋은 상징이야.
게다가 크리스마스트리보다는 훨씬 자리를 적게 차지하거든."


- 캐더린 포돌스키


어렸을 때 나에게 주어진 첫 번째 임무는
땔감으로 쓸 장작을 만드는 일이었다.



난 그 일을 좋아했다.



나는 아버지와 함께 숲으로 가서 적당한 나무를 골라 작업을 시작했다.



우리는 힘센 벌목꾼들처럼 하루종일 함께 일했다.



우리의 가정과 집안의 여자들을 따뜻하게 보호하는
것이 아버지와 내게 주어진 신성한 의무였다.



그렇다.



아버지는 일찍부터 나에게 가족을 보호하고
돌보는 사람이 되는 법을 가르치신 것이다.



그것은 아주 기분 좋은 느낌이었다.



아버지는 종종 내가 커다란 나무둥치를 적어도 500번 이상
도끼질을 해야 장작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하셨다.



아, 난 그 숫자를 넘기지 않으려고 얼마나 열심히 도끼질을 했던지!



대부분의 경우에 내가 이겼다.



하지만 아버지는 언제나 일부러 넉넉한 숫자를 제시하셨다.



499번째의 도끼질을 휘둘러 마침내 그 큰 나무를 작은 장작들로 쪼개 놓았을 때
내가 얼마나 기뻐하고 자랑스러워 하는가를 아버지는 잘 알고 계셨기 때문이다.



장작을 다 패고 나면 우리는 추위 때문에 콧물을 흘리면서 그것들을 집으로 운반했다.



그리고는 음식과 따뜻한 휴식이 기다리고 있는 불가로 향하곤 했다.



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아버지와 나는 화요일 밤이면 곧잘 텔레비전을 시청했다.



우리는 주로 카우보이들의 생활을 그린 연속극을 보았다.



아버지는 과거에 그 드라마 속의 주인공들과 함께 드넓은
목장에서 말을 타고 달린 적이 있다고 나를 믿게 만드셨다.



연속극을 보면서 아버지는 그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항상 예측하셨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가 하시는 말을 믿었다.



아버지는 그 주인공들과 친구였었기 때문에 그들의 행동을 예측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난 무척 자랑스러웠다.



최고의 카우보이들과 함께 달렸던 진정한 카우보이가 바로 나의 아버지였던 것이다.



나는 학교에 가서 친구들에게 그 사실을 자랑했다.



그러자 친구들은 나를 비웃으며 아버지가 나한테 거짓말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버지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나는 끊임없이 친구들과 싸워야 했다.



하루는 내가 심하게 얻어맞았다.



내 찢어진 바지와 부르튼 입술을 보고는 담임 선생님이
나를 한쪽으로 불러서 어찌 된 사정인지 물었다.



그렇게 해서 결국 하나씩 밝혀지게 되고, 마침내 아버지는 나한테 진실을 말해야만 했다.



말할 것도 없이 나는 코가 납작하게 되고 말았지만, 그래도 나는 아버지를 너무도 사랑했다.



내가 열네 살이 됐을 때 아버지는 골프를 시작하셨다.



나는 아버지의 캐디였다.



아버지는 경기를 마치고 골프장을 떠나실 때면
늘 나한테 서너 차례 골프채를 휘둘러 보게 하셨다.



나는 골프가 좋아졌고, 어느새 썩 잘하게 되었다.



이따금 아버지는 두 명의 친구분과 동행하셨다.



아버지와 내가 한팀이 되어 그들과 경기를 해서
이길 때면 나는 너무 기뻐 하늘로 날아오를 것만 같았다.



우리는 한팀이었던 것이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두 번째로 좋아한 것(물론 첫 번째로
좋아한 것은 당신들의 자식인 우리들이었지만)은 춤이었다.



춤에 있어서 두 분은 가히 전설적이셨다.



무도회장에 모인 군중들은 나의 부모님이신 마빈과
맥사인에게 '무도회장의 M&M'이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다.



두 분의 낭만적인 환상이 실현된 것이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춤을 추실 때면 항상 얼굴 가득 미소를 지으셨다.



두 명의 누이동생 낸시와 줄리, 그리고 나는 언제나 부모님을 따라 무도회장에 가곤 했다.



얼마나 즐거운 한때였던가!



일요일 아침 교회에 다녀오고 나면 아버지와 나는 아침 식사를 준비했다.



일요일에는 그렇게 하기로 정해져 있었다.



우리는 오트밀과 건포도 등을 식탁에 차리면서 탭댄스 연습을 하곤 했다.



그것도 엄마가 아끼는 새로 왁스 칠한 깨끗한 마룻바닥 위에서!



하지만 엄마는 그것에 대해 불평을 하신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내가 좀 더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아버지와 나의 관계는 차츰 소원해져 갔다.



중고등학교에 들어가서는 학교 수업 이외의 활동들이 내 시간을 빼앗기 시작했다.



나와 어울려 다니는 패거리들은 주로 음악하는
아이들과 카페에서 디스크자키를 보는 아이들이었다.



우리는 운동을 즐기고, 뮤직그룹을 만들어 음악을 했으며,
열심히 여학생들의 꽁무니를 쫓아다녔다.



아버지가 밤에 일을 하기 시작하고 그래서 더 이상 나의 활동에
관심을 쏟지 못하게 되셨을 때 나는 얼마나 상처받고 외로웠는지 모른다.



나는 특히 하키와 골프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나는 화가 나서 혼자서 이렇게 소리치곤 했다.



"두고 보세요, 아버지! 난 해내고 말 거예요.

아버지가 없어도 최고의 선수가 될 거라구요!"



나는 하키팀과 골프팀의 주장 선수였다.



하지만 아버지는 내가 참여한 경기에 한 번도 구경을 오지 않으셨다.



나는 마치 아버지의 무관심이 나를 인생의
처절한 생존자로 만드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아버지가 필요했다.



아버진 그것을 알고 계셨을까?



어느덧 술을 마시는 것이 나에게 사회생활의 일부가 되었다.



아버지는 더 이상 영웅처럼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내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 또는 내가 매우 힘든
시기를 통과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이따금 아버지와 마주 앉아 술을 마시고 기분이 고조되었을
때는 우리 두 사람의 사이가 다시 가까워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과거와 같은 특별한 감정은 더 이상 거기에 존재하지 않았다.



열여섯 살 이후 스물일곱 살이 될 때까지 우리는
서로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11년 동안이나 말이다!



그러다가 그 일이 일어났다.



어느 날 아침 아버지와 나는 직장에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면도를 하고 있는데 나는 아버지의 목에서 혹 같은 것을 발견했다.



나는 물었다.



"아버지, 목에 난 게 뭐예요?"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나도 모른다. 아무래도 오늘 의사한테 가서 검사를 받아야 할 것 같다."



아버지가 두려워하시는 걸 본 것은 평생에 그날 아침이 처음이었다.



의사는 아버지의 목에 난 멍울이 암이라고 판명했다.



그 후 넉 달 동안 나는 날마다 아버지가 조금씩 죽어가는 모습을 보았다.



아버지는 자신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 무척 혼란스러워 하시는 것 같았다.



아버진 늘 건강하셨다.



근육질로 뭉쳤던 80킬로의 체중이 뼈와 가죽뿐인
55킬로로 줄어드는 걸 보면서 난 참을 수가 없었다.



난 아버지에게 가까워지려고 노력했지만, 아버지는 자신의 고통과
싸우느라 나에 대해, 또 서로에 대한 우리의 감정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크리스마스이브 때까지 그런 상태가 지속되었다.



그날 저녁 내가 병원에 도착했더니 어머니와 누이동생이 하루종일 병실을 지키고 있었다.



나는 두 사람이 집에 가서 눈을 붙일 수 있도록 내가 밤 간호를 맡기로 했다.



아버지는 내가 병실에 들어갔을 때 잠들어 계셨다.



나는 침대 옆의 의자에 앉아 있었다.



이따금 아버지는 잠에서 깨어나셨지만, 몸이 너무 허약해지셨기
때문에 아버지가 하시는 말을 나는 거의 알아들을 수조차 없었다.



밤 11시 30분쯤 되었을 때, 나는 졸음이 밀려와서
간호사가 병실에 가져다준 보조 침대에 누워 잠이 들었다.



얼마쯤 잤을까, 갑자기 아버지가 나를 깨웠다.



아버지는 내 이름을 소리쳐 부르고 계셨다.



"릭! 릭!"



내가 일어나 앉자 아버지는 아주 단호한 표정으로 침대에 앉아 계셨다.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난 춤을 추고 싶다. 난 지금 당장 춤을 추고 싶어."



처음에 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그리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채로 그냥 그곳에 앉아 있었다.



다시 아버지가 고집을 부렸다.



"난 춤을 추고 싶다. 얘야, 우리 마지막으로 춤을 추자꾸나."



나는 침대에서 내려가 아버지 앞에 섰다.



그리고 살짝 고개를 숙여 절을 한 다음 아버지에게 요청했다.



"아버지, 저와 함께 춤을 추시겠습니까?"



정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나는 아버지가 침대에서 내려오시는 걸 거의 도와 드릴 필요가 없었다.



아버지는 스스로 침대에서 내려오셨다.



그 기운은 신으로부터 내려오는 기운임에 틀림없었다.



손에 손을 잡고, 팔에 팔을 두르고, 우리는 병실 안을 돌며 춤을 추었다.



어떤 작가도 그날 밤 우리가 나눈 에너지와 사랑을 묘사하긴 어려울 것이다.



아버지와 나는 춤 속에서 하나가 되었다.



사랑과 이해와 서로에 대한 염려 속에서 하나로 합쳐졌다.



우리의 전 생애가 바로 그 순간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만 같았다.



탭댄스, 사냥, 낚시, 골프, 우리는 그 모든 것을 그 순간에 한꺼번에 경험했다.



시간은 존재하지 않았다.



우리는 카세트테이프나 음악을 틀어줄 라디오가 필요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세상에 존재해 온 모든 노래, 그리고 앞으로
존재할 모든 노래가 대기 속에서 울려 퍼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좁은 병실은 내가 춤을 추어 본 어떤 무도회장보다 넓었다.



아버지의 두 눈은 내가 전에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어떤 광채와, 슬픔에 찬 기쁨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우리가 계속해서 춤을 추는 동안 우리의 눈에서는 둘 다 눈물이 흘러내렸다.



우리는 그런 식으로 서로에게 작별의 인사를 하고 있었다.



너무도 짧은 시간을 남겨두고 우리 둘 다 다시금 깨달은 것이다.



서로에 대한 이러한 무조건적인 사랑을 갖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이윽고 춤이 멎었다.



나는 아버지가 다시 침대에 눕도록 도와 드렸다.



아버지는 이제 무척 지쳐 보였다.



하지만 아버지는 내 손을 힘있게 잡고는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씀하셨다.



"고맙다, 아들아. 오늘 밤 네가 여기에 있어 줘서
난 정말 기쁘다. 나한테는 너무도 의미 있는 시간이야."



이튿날 크리스마스에 아버지는 세상을 떠나셨다.



그 마지막 춤은 크리스마스이브에 신이 내게 주신 선물이었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사랑이 얼마나 강하고 의미 있는
것인가를 깨닫게 하는 지혜와 행복의 선물이었다.



아버지, 전 아버지를 사랑해요.



이다음에 하늘의 무도회장에서 아버지와 함께
또다시 춤을 추게 될 날을 기다리고 있겠어요.


- 릭넬스


크리스마스가 되려면 아직 두 달이나 남았을 때였다.



우리 집의 열 살짜리 딸아이 에이미 로즈가 갑자기 자기는
크리스마스 선물로 새 자전거를 받고 싶다고 말했다.



사실 에이미가 타고 다니는 바비 자전거는 너무 어린애용이고,
또 게다가 타이어를 전부 교환해야 할 만큼 낡아 있었다.



그런데 크리스마스가 가까이 다가옴에 따라
에이미는 자전거에 대한 욕망이 시들해진 듯했다.



아니면 적어도 그 애의 부모인 우리는 그렇게 생각했다.



왜냐하면, 에이미가 자전거에 대해 다시 거론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기쁜 마음으로 가장 최근에 유행하는 선물을 샀다.



아기 보는 인형이 그것이었다.



그리고 아름다운 동화책, 인형의 집, 나들이옷 한 벌, 장난감 몇 가지 등도 샀다.



그런데 너무 놀랍게도 막상 12월 23일이 되자 에이미는 당당히 선언하는 것이었다.



"전 어떤 것보다 자전거를 선물 받기 원해요."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크리스마스 만찬도 준비해야 하고 막바지 선물들도 챙겨야 했기 때문에
우리의 어린 딸을 위해 자전거를 사러 가기엔 너무 늦은 시간이었다.



우리가 파티에 초대되어 갔다가 돌아왔을 때는 이미 밤 아홉 시였다.



우리는 이제부터 몇 시간 동안 아이들에게 줄 선물, 부모님께 줄 선물,
오빠에게 줄 선물, 친구들에게 줄 선물을 포장해야만 했다.



에이미 로즈는 이미 자기 방에서 잠이 들었다.



우리는 어떻게든 자전거 문제를 해결해야만 했다.



부모가 되어 아이를 실망시킬 것이라는 죄책감이 우리를 사로잡았다.



그때 남편이 하나의 영감을 떠올렸다.



그는 내게 말했다.



"점토로 작은 자전거를 만들어서, 그 점토 제품과
진짜 자전거를 바꿔 주겠다는 쪽지를 써서 주면 어떨까?"



좋은 아이디어라고 나는 생각했다.



물건과 교환이 가능한 상품권 같은 것이라고 설명하면 될 것 같았다.



그리고 내 딸아이는 '정말 대단한 아이'이기 때문에 자신이 직접
마음에 드는 자전거를 고르게 하는 편이 훨씬 좋으리라 판단되었다.



그래서 남편은 마침 집에 있던 점토를 가져다가 자전거 모형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것은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것을 완성하는 데 무려 다섯 시간이 걸렸다.



남편은 거의 꼬박 밤을 새워야만 했다.



세 시간 뒤 크리스마스 아침이 밝았을 때, 우리는 긴장된 마음으로 에이미
로즈가 하트 모양의 상자에 담긴 점토 자전거와 쪽지를 열어 보기를 기다렸다.



자전거에는 흰색과 빨간색 물감까지 멋지게 칠해져 있었다.



마침내 에이미는 선물 상자를 풀었다.



그리고 쪽지까지 다 읽었다.



에이미는 나를 쳐다보고 나서 다시 제 아빠를 쳐다보더니 말했다.



"그래서 이 자전거는 내가 진짜 자전거와 교환할 수
있도록 아빠가 날 위해 만든 것이란 말이죠?"



나는 얼굴을 빛내며 말했다.



"그렇단다."



에이미 로즈는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난 아빠가 날 위해 만들어 준 이 아름다운 자전거를 세상의 어떤
자전거와도 바꿀 수 없어요. 진짜 자전거 대신 난 이것을 갖고 있을래요."



그 순간 우리는 에이미에게 자전거를 사주기 위해서라면 하늘이고
땅이고 어디든 뒤지고 다닐 것만 같은 황홀한 기분이 되었다.


- 미셀 로렌스


한 회사의 대표이고, 존경받는 한 집안의 가장인 남자가 왜 창피한
줄도 모르고 자신의 양복 옷깃에 장난감 공룡을 꽂고 다니는가?



내가 문제에 직면한 것은 크리스마스가 되었을 때였다.



우리 집 아이들은 학교에서 열린 벼룩시장에서 선물을 사기로 했다.



벼룩시장에는 일반 가게에서도 구할 수 없는 독특한 상품들이 많다.



그리고 물건들이 값이 싸기 때문에 아이들이 좋아한다.



아이들은 나를 위해 선물을 샀다.





그리고 내가 무엇을 받을 것인가에 대해 끝까지 비밀을 지켰다.



특히 여섯 살짜리 아들은 내가 받을 선물이
무엇일까에 대한 궁금증으로 나를 계속 괴롭혔다.



선물은 크리스마스트리 아래 '창조적으로' 포장되어 있었다.



하지만 아이는 스스로도 참을 수 없는지 날마다
그것이 무엇일 것 같으냐고 내게 묻곤 했다.



크리스마스 아침이 되자, 그것도 매우 이른 시각에 아이는
흥분과 기대에 찬 얼굴로 첫 번째로 내게 선물상자를 내밀었다.



자기가 주는 선물을 맨 먼저 열어 보라고 아이는 졸라댔다.



아이는 흥분이 되어 죽겠다는 표정이었다.



마치 내가 이런 굉장한 선물은 두 번 다시 못 받게 되리라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나 역시 기대에 차서 포장을 뜯고 상자를 열었다.



거기 그 선물이 있었다.



정말로 내가 여태껏 받은 것들 중에서 가장 멋진 선물이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서른다섯 살 어른의 눈을 통해서 그것을 바라보지 않았다.



'최첨단 기술'이 생산해내는 물건들에 닳아 빠진, 그리고 '더 빠르고,
더 간편하고 더 경제적인' 것들에만 가치를 두는 어른의 눈을 버리고,
그 대신 흥분된 여섯 살짜리의 눈으로 그 선물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2센티미터 크기의 초록색 플라스틱으로 만든 티라노사우루스 공룡이었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고 모양이 다른 여러 개가 세트로 들어 있었다.



하지만 아들은 재빨리 그 중 가장 멋지게 생긴 것을 가리켰다.



그것의 앞발톱에는 항상 옷에 꽂고 다닐 수 있도록 클립이 부착되어 있었다.



그날 크리스마스 아침에 본 아들의 눈을 나는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그 눈은 기대와 희망과 사랑으로 가득 차 있었다.



어린아이의 순수한 눈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그런 눈빛이었다.



나는 아이가 온갖 자질구레한 물건들 속에서 하나의 보석을
발견하기 위해 얼마나 고심하며 벼룩시장을 뒤졌을까를 상상했다.



아빠에게 사랑의 감정을 가장 잘 전달할 그런 물건을 찾아서.



나는 그 자리서 그것을 옷깃에 꽂고는 매우 근사하다고 환성을 질렀다.



그럼으로써 아이의 생각이 옳음을 증명해 보였다.



난 그 선물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그 후 몇 주일 동안 나는 말 그대로 어느 곳엘 가든지
그 플라스틱 공룡을 내 윗옷 옷깃에 꽂고 다녔다.



이상하게도 아무도 그것의 가치를 눈치채지 못하는 듯했다.



아들밖에는 아무도 그것을 알아주지 않았다.



크리스마스에 특별히 마음의 선물을 주고받는 아이들의 얼굴에 나타난
표정은 비싼 보석이나 음반을 선물하는 어른들의 얼굴 표정과는 다르다.



지난해 크리스마스에는 이웃집에 사는 두 아이가 우리 집
아이들에게 종이로 직접 만든 크리스마스 양말을 선물했다.



양말 안에는 여러 가지 보물들이 들어 있고, 바느질 대신
수십 개의 호치키스가 양말 둘레에 촘촘히 박혀 있었다.



양말 속에는 이상한 모양의 크리스마스 캔디와
자기들이 갖고 놀던 아끼는 물건들이 들어 있었다.



그 아이들의 집안은 결손 가정이어서 돈이 별로 많지 않았다.



하지만 사랑과 진심 어린 마음이 그 물건들 속에 깃들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어린아이들의 입장에서 보면 그것들이 바로 황금과 유향과 몰약이었다.



언제 우리는 마음의 중요성을 잊어버리는가?



나는 이 질문을 내 자신에게 거듭 묻곤 한다.



그것은 우리가 서로를 위해서 하는 가장 소중한
행동들을 물질적인 가치로 평가할 때이다.



그때 마음의 소중함은 뒷전으로 밀려난다.



내 아들이 내게 선물한 물건의 실제 값어치는 몇 푼밖에
안 되지만 내게는 그것이 황금만큼이나 가치가 있다.



따라서 이다음에 만일 누군가 존경받는 어른의 옷차림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조잡한 종이 넥타이나 판박이로 된 5센트짜리
'근사한' 나비 문신을 하고 다닌다면 그를 안 됐다고 여기지 마라.



만일 그에게 그것들이 약간 우스꽝스럽게 보인다고
말하면 그는 단지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럴지도 모르죠. 하지만 내 여섯 살짜리 아들은 내가 지금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을 선물로 받았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미국 재무성이
아무리 많은 돈을 가졌다 해도 내게서 이것을 사 갈 순 없지요."



이것이 내가 플라스틱 공룡을 양복 옷깃에 꽂고 다니는 이유이다.


- 댄 셰퍼

폴이라는 이름의 내 친구가 있는데, 그의 형이 큰 부자였다.



폴은 지난해 크리스마스 선물로 형으로부터 자동차 한 대를 선물 받았다.



크리스마스이브에 폴이 일을 마치고 사무실 밖으로 나와 보니,
개구쟁이 소년 하나가 폴의 새 차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폴이 다가가자 소년은 부러운 눈으로 차를 바라보면서 폴에게 물었다.



"아저씨가 이 차의 주인이세요?"



폴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단다. 내 형이 크리스마스 선물로 사준 거지."



그러자 소년의 놀라움이 더 커졌다.



"아저씨의 형이 이 차를 사줬고, 아저씨는 돈 한 푼 내지 않고
이 멋진 차를 얻었단 말이에요? 나도 그럴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소년은 말을 끝맺지 못했다.



당연히 폴은 소년이 멋진 차를 갖고 싶어하는 것 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소년의 그다음 말은 폴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소년이 말했다.



"나도 그런 형이 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폴은 놀라서 소년을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무심결에 소년에게 말했다.



"너, 이 차 타 보고 싶니? 내가 한 번 태워 줄까?"



소년은 기뻐서 소리쳤다.



"정말이에요? 고맙습니다."



폴은 소년을 차에 태우고 주위를 한 바퀴 돌았다.



그런데 소년이 문득 폴을 돌아보면서 눈을 빛내며 말했다.



"아저씨, 미안하지만 저희 집 앞까지 좀 태워다 주실 수 있으세요?"



폴은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소년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있었다.



멋진 차를 타고 집에 도착한 자신의 모습을
이웃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것이었다.



그러나 폴의 생각은 또다시 빗나가고 말았다.



집 앞에 도착한 소년은 폴에게 부탁했다.



"저기 층계 앞에 세워 주세요. 그리고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소년은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잠시 후 폴은 소년이 집 밖으로 나오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소년은 집 밖으로 나오는데 시간이 걸렸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소년은 두 다리가 불구인 어린 동생을 데리고 나오는 중이었다.



소년은 동생을 계단에 앉히고, 어깨를 껴안으면서 폴의 자동차를 가리켰다.



"내가 방금 말한 게 저 차야, 버디. 저 아저씨의 형이 크리스마스 선물로
사준 거래. 그래서 저 아저씨는 한 푼도 낼 필요가 없었대. 버디, 나도 언젠가
너에게 저런 차를 선물할 거야. 넌 한 푼도 내지 않아도 돼. 그리고 넌 그 차를
타고 가서 내가 너한테 설명해 준 세상의 멋진 것들을 모두 구경할 수 있게 될 거야."



폴은 차에서 내려 층계로 다가갔다.



그러고는 장애인 소년을 번쩍 안아 차의 앞좌석에 앉혔다.



장애인 소년의 형도 눈을 반짝이며 그 옆에 올라탔다.



그런 다음 그들 세 사람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크리스마스 드라이브를 떠났다.



그날 크리스마스이브에 폴은 성경에 적힌 예수의 말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베푸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 댄 클라크







Christmas_Eve.jpg

크리스마스는 이 세상에 마법의 지팡이를 휘두른다.

봐라, 모두가 더 자비롭고 아름다워졌다.

- 노먼 빈센트 필









 Merry_Christmas.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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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췌: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

 출처 - 이상한 옴니버스

 

읽어주는 사람은 언제나 사랑함

5개의 댓글

2012.12.09
4줄 읽다가 길어서 내림
0
2012.12.10
메리크리스마스~
0
2012.12.10
@조오오카
너도 메리크리스마스 ㅠㅠ
0
2012.12.11
@종범이다
Merry christmas!!
0
2012.12.18
아... 보다가 눈물이......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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