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

할아버지


이 이야기는 올해 늦가을인 11월경에 겪은 내 이야기야.


나는 살아생전 친할아버지, 친할머니 를 뵌적이 없어.


그도 그럴것이, 내 아버지 국민학교시절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고, 중학교1학년시절 할머니께서 돌아가셨거든.


그래서 나는 어릴때부터 두분의 영정사진으로나마 뵐 수 밖에 없었고, 이상한건 

나는 동생과도 닮은곳이 없을뿐더러 부모님 양쪽 다 하나빼곤 닮은 구석이 없어.


엄마의 피부 와 예술감각을 물려받은것 정도.


근데 외모는 정말 두분의 어느점도 닮지 않았다는게 신기한데, 친할머니와는 너무나도 닮았다는거야.


이마, 코, 눈, 눈 과 눈썹사이, 눈썹, 광대, 귀, 턱, 턱선.



커가면서 주위 친구들이나, 어른들께서 항상


"넌 참 부모님이랑 닮은데가 없구나."


웃으며 말씀하시면, 부모님께서도 딱히 반박할 구석이 없으셔서 웃어넘기시거나 언짢아 하셨지.


친구들도 나랑 부모님,동생 과 전혀 안닮았다며 신기해하곤 했어.



그래서 그런지 매 제사때마다 할머니 영정사진을 뵈면서 신기해하곤 했고, 


"난 참 할머니를 많이 닮았어."


라고 부모님께 말씀드리면


"그러네"


라고 답하곤 하셨지.




서두가 길었고, 무튼 나는 할아버지, 할머니 를 또래 친구들처럼 보고 자란 기억이 없어서 그런지

두분의 영정사진을 뿌리깊게 기억하고 있었어. 아주 어릴적부터.



시간을 조금 거슬러 올해 늦가을 11월 초 어느날 이었어.

쌀쌀해진 날씨탓에 주머니에 손을 넣지 않으면 시린 바람에 빨갛게 얼어붙은 손을 녹여야할때쯤,

주말에 하릴없어 산책이나 할겸 노래를 들으며 산책을 하고 있었지.


내가 유난히 친구녀석들 과 어울려 놀던곳을 혼자 돌아다니기를 좋아하는데,

 그날은 아버지께서 자주 등산하시는 등산로를 걷고 있었어.

요즘 부쩍 아버지께서 등산을 못하셨기에, 나라도 그 길을 들려볼까 싶어서 가게됐지.



등산로에 접어들기전, 주민들이 산책하며 걷는 산책로를 따라 쭉 걸어 올라가다보니 작은 절로 빠지는 샛길을 보게되었고

(우리집은 불교집안이라 어릴적엔 늘 지방의 깊은 산속 절에 부모님 과 같이 갔던 기억들이 아련하고 수채화빛 추억으로 간직되어있어)

오랜만에 절의 향취를 느껴볼까하고 절로 발길을 옮겼지.


우리동네가 강남권이나 개발권처럼 높은 빌딩이 즐비한 동네는 아니지만, 

그래도 서울이다보니 많은 발전속에 삭막한 도시의 모습을 갖추었기에

조금만 발길을 돌려도 이런 자연 속 숨을 쉴 공간이 있다는게 너무나도 감사하게 생각이 되었어.


모처럼 오전중에 감성적모드로 돌입되어, 절로 발길을 옮기던 중 길옆으로 길게뻗은 좁은 샛길이 보였고

나는 '시간도 남는데 저쪽도 가보자' 하는 맘으로 발길을 돌렸지.


얼마쯤 갔을까? 길은 끊기고 작은 개울이 쭉 이어져, 돌을 들춰내면 가재가 재빨리 도망갈것같은 

깨끗한 개울물을 손으로 휘휘 저으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어.



그때.



내 이어폰이 노캔이어폰 이라 외부의 소리가 상당히 차단되는데, 분명하게 사람 목소리가 들리는거야.

(내 mp3 는 sony s-704 모델이고, 번들 이어폰인 노캔이어폰을 사용. 노캔기능을 켯기때문에 앵간한 버스소음도 차단됨)


화들짝 놀라 멈칫하며 소리에 집중했어.


스토니스컹크의 흔적 이란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고, 흘러내리는 개울물을 바라보며 소리에 집중하고 있었지.



바로 그때,



"지훈아"  (몰입도를 위해 가명으로 씀. XX 보단 낫기에)



화들짝 놀라 주위를 살펴보았지만, 아무도 없었고 따사롭기 까지한 가을 하늘 햇빛이 나무숲사이를 뚫고 지나오는 모습외에는

달리 신경쓰일것도 없었어.


인적도 없고, 민가도없는 산길 개울가에서 사람목소리를, 그것도 누군가 내이름을 부르다니?



그 당시에는 소름이 돋거나 두려움 보다는 신기함 과 호기심으로 가득했어.


난 슬며시 이어폰을 양쪽 귀에서 빼내고는 


"누구세요?"


라고 말을 했지.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고, 재차 물으며 주위를 살폈지만 다시 그 소리를 들을 순 없었어.



가만히 생각해보니 30~40 대 정도로 추정되는, 다소 허스키한 목소리였기에 환청은 아닐까 싶었지.


그래서 쪼그리고 앉아있던 내 무릎을 잡고 일어서려는 찰나,

어지러움을 느끼고 다시 풀썩 주저앉으면서 이마를 부여잡고 눈을 감은채 


"끙........."


앓는 소리를 내고 있었어.


잠시 그렇게 어지러움을 느끼다 이내 정신을 차리고 일어선 후


기분이 나빠 서둘러 절쪽으로 발길을 돌려 걸어갔고, 절에 들렸더니 


어림잡아 60~70세 사이로 보이는 노승(?) 과, 20대 중반의 또래로 보이는 젊은 스님이 계셨어.


나는 합장을 해보이고


"산책하며 걷던도중 절이 있다는 표지가 보여, 한번 보고싶어 찾아왔습니다."


라고 정중히 인사를 건냈지.


잠시 말이 없으셨던 노승은 


"아미타불.. 표지라 하심은..?"


하며 물으셨고, 붉으스름하고 노릿한 단풍잎이 흐뜨려진 좁은 마당을 쓸던 젊은스님 도 빗자루질을 멈추고는 나를 보았어.



"아, 산책로로 걷던도중에 어떤 식당쪽 샛길따라 올라오던길에 작은 소나무가 있었는데, 그 소나무에 현중사 라고 적힌표지가 있었습니다."


라고 말을하자 노승께서


"자네가 표지판을 걸어두었나?"


하고 젊은스님을 보았고, 젊은스님은 아니라며 대답했지.



쨋든, 조금은 의아한 표정을 서로다른 감정으로 느낀표정으로 바라보던 나 와 스님 둘 은

찰나의 어색한 공기를 깨고 


"그럼 천천히 구경하세요."


하는 노승의 말 과 함께, 각자의 일을 하였지.



사실 작은 절 (이해를 돕자면, 좁은 마당에 법당2, 그냥 잠자는곳같은 작은 한옥집1) 이라 볼것은 그리 많지 않았어.


그냥 슬슬 둘러보다, 법당 입구 근처의 마루에 걸터앉아 단풍구경을 하고 있었지.


그때 입구에서 누군가 들어오는 인기척이 느껴져, 입구를 보았는데

낯익은 어르신 한분께서 터벅터벅 걸어오시는거야.


아니, 어르신이라기보단 .. 그냥 어른?



나는 일어나서 먼저 합장을 해보이며


"아, 안녕하세요. 저는 지나가다 잠시 구경차 들린 손님입니다."


라고 웃어보이며 인사를 건냈지.


그분도 살며시 웃어보이며


"아이고~ 먼길 잘 와줬네. 여간해서 오기 힘들었을텐데 잘 와줬구만"


이라고 친근히 말을 건내 주셨지.


"아닙니다. 힘들긴요. 길도 다 나있고, 표지판도 있어 찾는데 어렵지 않았습니다."


"하하. 그렇구만. 표지판을 봤구만. 하하하"


하고 호탕하게 웃어보이시며, 내가 앉던 자리쯔음에 앉아 등에 매고 계시던 낡은 보자기같은 곳에서 막걸리를 꺼내시고는

병째로 홀짝홀짝 드셨어.


대낮부터 절에서 술을 드시는 아저씨의 모습에서, 이 절과의 연관성을 찾으려 했지만 전혀 찾아지질 않았고

어느샌가 젊은 스님 과 노승도 법당이나 안채에 들어가셨는지 보이시질 않더군.



"이리 와 잠시 앉게"


"아닙니다. 전 술을 별로 좋아하질 않아서요."


살짝 멋적게 웃으며 정중히 거절하고는, 이제 그만 나가볼까 하려던 마음이 들때


"이리와 앉게"


라며 단호히 말씀하시는 눈빛이 정말로 어딘지 낯설지 않았어.


이상했지만, 왠지 낯설지 않은 느낌 과 어딘지모를 끌림에 그분 옆에 앉아 나무들을 보면서 힐끗힐끗 아저씨를 봤지.


거리를 어느정도 두었을때 봤던것 과 다르게, 골격은 다부지게 큰듯한데 왠지모를 왜소한 느낌에 마른모습.

정말 낯설지 않았어.



'아, 그래. 우리 아버지랑 비슷하구나.'


우리 아버지께서 친할아버지 즉, 우리 아버지의 아버지 와 굉장히 닮았다고 생각했었고 아버지도 인정하셨던 터라

그렇게 느끼고 있을때..


나도 모르게 그런 생각들을하며 물끄러미 그 아저씨를 처다보고 있었다가, 눈이 맞았어.


"왜그러냐?"


"아니요. 죄송합니다. 제가 초면에 버릇없이 어른을 너무 빤히 봤네요. 죄송합니다."


"아니야. 아니야. 그래, 내가 누군지 알겠니?"


라며 부드럽게 내 어깨를 감싸는 손이 굉장히 푸근하게 느껴졌어.

평소라면 기분나쁠 행동 과 말투지만 (난 초면에 환갑을 넘긴 어른이라도 반말하는걸 별로 안좋아하거든)

왠지모를 따스함에 이끌려, 아이처럼 품에 안기는 꼴이 되었지.


"아니요. 낯설지 않은 느낌이 드는건 사실이지만 누구신지는..."


순간,



불연듯 영정사진이 팍! 하고 떠올랐고, 이내 온몸에 소름이 끼치면서 차마 고개를 돌릴수도, 말을 꺼낼수도 없이

두려움 과 호기심. 그리고 왠지모를 그리움 과 슬픔 들이 동반되면서 눈물이 나올 지경이었어.



"힘들었지? 그동안? 자, 한잔해라."


그러면서 드시던 하얀 막걸리통을 건내주시는데, 고개도 못돌리고 떨리는 손으로 막걸리통을 잡아들고는 조금.

아주 조금 한모금 들이키고는 다시 건내드렸지.



"허허 녀석. 네 할미가 보고싶어 할낀데.."



!!!!!!!!!!!!!!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내려오면서 하염없이 흐느껴 울었어.

그분의 무릎을 부여잡은채 얼굴을 파묻고는 엉엉 흐느껴 울었지.


내 등을 차분히 다독여주는 그분의 손길이 마치, 아버지의 그 손길 과 너무 닮아있어서 더욱 더 그랬어.


얼마나 지났을까?




잠시 정신놓고 울었던것 같은데, 눈을 떠보니 잠에서 깬듯한 기분이었고 나는 아까 그 개울가에있는 바위 위에 걸터앉아 있었어.


놀라 주위를 둘러봤지만, 아까 와 똑같은 개울이었어.

가재가 있나싶어 들춰봤던 작은 바위도 내가 뒤짚어놓은채 그대로였고.



다만, 다른게 있다면..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입에 손을 대고


'하--'


하며 입냄새를 맡아보니 ..


막걸리 냄새가 희미하게 난다는것이..


그게 다른점 이었어.



난 분명 전날도, 그날도 술을 먹지 않았고, 막걸리는 굉장히 싫어해서 평소엔 입에도 안대거든.



기억이 날아가지않게 집중해서 기억을 더듬었고, 조금 흐뜨려진 기억들을 조각조각 모아 이 글처럼 기억을 집합시켰지.



기억을 따라 다시 절로 가는 길로 들어서려 했지만, 조금 올라가다보니 아까 올라갔던길은 온데간데없고

철조망으로 막힌채 길은 끝났어.



'아냐. 길을 잘못들은 걸거야. 다른길.. 다른길..'


그렇게 해매고 해맸지만, 다시 그 길을 찾을 순 없었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내려가 표지판을 찾으려 했지만 더는 찾을 수 없었지.


다시 터덜터덜 내려오면서 어르신들이나, 산책로 쪽 계곡주점에 들어가 절의 이름을 물었지만

다들 처음듣는 절이라고, 그런 곳 본적 없다고 하셨어.



이 이야기를 그날저녁 아버지 집에 찾아가 말씀드렸고, 아버지께서는 말없이 반주를 드시다가

오늘은 그만 돌아가고 내일 이야기 하자 하시며 나를 보냈어.



그 주의 주말.


아버지의 전화를 받고, 아버지 집으로 아침에 찾아갔더니 어딜 좀 가자고 차에 타라고 하셨어.

차에 타면서 어디가냐고 여줬더니


"절에 가자."


"무슨 절? 예전에 갔던 그 절요?"


"어."


가는동안에 내가 겪은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냐고 여쭈면서


"내가 생각해도.. 그닥 믿기진 않으실것 같아요. 꿈이겠죠 뭐. 잠시 현기증때문에 정신을 잃었었나봐요."


"막걸리 냄새도 낫다며."


"뭐.. 착각일 수 있겠죠.."


"그래.."



그렇게 어색하게 시간은 흘렀고,

그전까지 기억에 어느지방, 어느곳에 있었는지 조차 기억나지않고, 절의 일부모습만 기억나던 그 절에 도착했어.


아버지 고향에 있던 절이었더군.



그곳 주지스님 과 말씀을 나누고 돌아오신 아버지께서, 오랜만에 왔으니 절밥이나 먹고 가자며

스님들 과 점심을 먹었고 돌아왔지.



그리고나서 아버지께서는 다시 주말마다 시간을 내시어 다시 등산을 하고 계셔.



아버지께서 약주를 거하게 하실때면 가끔 내게


"산이 좋다. 나무가 좋고 풀이 좋다. 정상에 오르고, 내려올때가 좋다."


라며 천진난만하게 말씀하시는게 생각나, 다시 취미생활을 하시는가 했는데..

아버지는 생각이 다르셨더군.



몸도 예전같지 않고, 삶이 고단해서 그냥 등산을 쉬셨던건데

하필이면 아버지께서 주로 즐기는 등산로입구에서 내가 그런일을 겪었던게..


어쩌면,


정말 어쩌면..


그곳에서나마 자유로이 아버지를 볼 수 있으셨던 할아버지께서 내게 서운함을 표한것은 아닐까 싶으시다더군.



그래서 나도 주말이면 짬을내어 아버지 와 등산을 하고 있어.


무슨 사연이 있어, 할머님께서 날 보고 싶어하실거란 여운을 남기셨는지..

혹여 보고싶어도 날 보실 수 없는건지.. 아니면 나도 같이 등산을하면 두분께서 나 와 아버지를 보실 수 있으신건 아닌지..


그런 마음에 나도 같이 등산을 따라 다니고 있어.


그리고 항상 아버지께서 산 중턱에 전망이 탁 트인 넓찍한 바위 위 휴식을 취하던 곳에서

막걸리 두 통을 천천히 뿌리며 다시 산을 올라가는 습관도 생겼지.



믿거나 말거나 지만,

내가 최근에 겪은 일이야



그간 조용하던 삶에 다시한번 이와같은 일을 겪게된게 다시금 떠올라 쓰고 간다.^^



에펨코 Di stefano님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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