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지방잡학자의 항변] 뉴턴주의 과학의 이해 2. <프린키피아> 정신

뉴턴 이전의 천재들이 형이상학적 원리에 얽매여 있던 것과 달리, 뉴턴은 당시의 최고의 자연철학자라고 불렸던 로버트 훅, 크리스티안 하위헌스, 로버트 보일처럼 실험과 그에 따른 귀납-연역적 방법론에 기초하여 자연철학 이론을 구축하고자 했다. 뉴턴은 18세에 케임브리지 대학교에 입학해서1 당시의 수학을 1년도 안 되어 정복한 천재였지만, 그 당시 자연철학자들의 연구를 따라가는 데엔 시간이 좀 많이 걸렸다.


하지만 뉴턴은 마침내 자연철학의 정상에 올랐고, 뉴턴의 장년기와 노년기 때 유일한 친구였던 애드먼드 핼리가 자연철학에 관한 책을 저술하는 걸 권했다. 그 책이 바로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이다.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는 총 세 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제I권은 진공에서의 운동을 다루고, 제II권은 유체에서의 운동을 다룬다. 뉴턴이 완벽에 가깝게 만들려고 노력한 제III권은 천체의 운동에 관하여 다루고 있다. 이 내용들은 현재 왠만한 고전역학, 유체역학, 천체물리학 교재에서 <프린키피아>보다 더 많은 내용을 더 자세히 다루니까 여기서는 다루지 않겠다.


뉴턴의 제자이자 동료였던 로저 코츠는 <프린키피아> 제2판의 편집을 담당하면서, 뉴턴을 대신해 머리말을 작성했다.  상당히 긴 글이지만, 이 글은 뉴턴이 생각한 자연철학과 그 이후의 뉴턴주의 과학이 가야 할 방향을 설정한 중요한 글이다. 그리고 뉴턴이 중력의 근원에 대한 질문을 하도 많이 받아서 쓴 "General Scholium"은 <프린키피아>의 가장 마지막 내용인데, 뉴턴이 자신의 천체역학에 관한 연구 방침을 확실하게 드러냈다. 


뉴턴은 현상에 기초한 자연철학을 염두해 두었다. 뉴턴은 올바른 자연철학은 반드시 현상에 기초해야 한다고 하였고, 이는 코츠가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사물의 진짜 본성은 거짓된 가설을 바탕으로 이끌어낼 수 없으며, 그것은 관찰을 통해서만 간신히 파악될 수 있다. (중략)

세 번째 부류의 사람들은 실험을 바탕으로 철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진정 모든 현상을 아주 단순한 근본 원리로부터 이끌어내는데, 실제 현상을 통해서 밝혀지지 않은 것은 근본 원리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들은 가설을 꾸미지 않으며, 그것들을 문제로 제기해 따지기는 해도, 그런 가설을 철학 속에 집어넣지 않는다.

― Roger Cotes (1687), "제2판 머리말",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


그리고 이와 같은 의미를 지니는 뉴턴의 말은 다음과 같다.


But hitherto I have not been able to discover the cause of those properties of gravity from phænomena, and I frame no hypotheses; for whatever is not deduced from the phænomena is to be called an hypothesis; and hypotheses, whether metaphysical or physical, whether of occult qualities or mechanical, have no place in experimental philosophy.2

― Sir I. Newton (1687), "Gen. Sch.", The Math. Prin. of Nat. Phil.



현상으로부터 귀납할 수 없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은 이후의 과학자들도 잘 따르고 있다. 이때, 뉴턴은 "개별적인 것에서 보편적인 것을 얻는 것"을 '귀납'으로 통칭했다는 데 주의하자. 예를 들어, 19세기에, 조사이어 깁스는 이미 잘 알려진 화학열역학 이론으로부터 화학 퍼텐셜을 유도하였다. 뉴턴에겐 이 역시도 귀납인데, 이는 화학열역학 이론이 "개별적인 사실"에 대한 것을 담고 있지만, 이를 모두 설명할 수 있게 만드는 화학 퍼텐셜은 "보편적인 명제"이기 때문이다.


현상으로부터 보편 명제를 알아내는 것은 그리 새롭지는 않다. 하지만 그 보편 명제는 그 현상들의 원인이 아니라 그것들을 기술하는 (상관성이 높은) 명제임을 주의해야 한다. 코츠와 뉴턴은 현상들로부터 얻은 보편 명제가 그것들의 원인이라 생각했지만, 흄은 자신의 철학에서 이에 대해 깊이 있게 분석하였고, 그에 따르면, 보편 명제는 그것이 기술하는 현상과 상관성이 높은 명제일 뿐이다. 뉴턴주의 과학은 이에 기초하고 있다.


코츠는 뉴턴이 사용한 방법을 "분석"과 "종합"으로 나누고 있다.


이들의 방법은 종합적인 방법과 분석적인 방법이라는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몇 가지 현상들을 바탕으로, 이들은 분석을 통해 자연의 힘과 그 힘에 관한 간단한 규칙을 구한다. 그 다음에, 그것들을 종합해서 나머지 것들의 구조를 밝힌다.

― Roger Cotes (1687), "제2판 머리말",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



이는 갈릴레이의 그것과 같다. 이론이 어느 정도 인정을 받은 시기에는 이론에서 쓰는 방법론에 그 현상에서 알 수 있는 조건들을 대입하여 이론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그 현상에 관한 이론을 모르는 경우에는, 그 현상을 분석하고 그와 비슷한 것들을 모아 비교한다. 아직도 이론이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분야들은 이렇게 하고 있는데, 이는 과학적 방법론의 전통을 잘 계승한 것이다.


뉴턴의 방법은 수학적 방법론에 기초하기 때문에, (1) 먼저 현상으로부터 정량화할 수 있는 성질을 찾아내야 한다. 그리고 그 성질은 그 현상을 기술할 때 필요한 것이어야 한다. 예를 들어, 행성 운동을 기술할 때, 그 행성의 전하를 따질 이유는 없다. 하지만 그 행성의 질량은 따져야 한다. 왜냐하면 행성의 질량은 행성 운동이라는 현상을 기술하는 데 필요하기 때문이다.


정량화된 성질을 이용해, (2) 주어진 현상을 몇 개의 작은 현상으로 나눈다. 행성 운동에서는 행성이 중력을 받는 것과 행성이 운동하는 것으로 나눌 수 있다. 이들은 각자의 규칙성이 있다. 규칙성이 알려진 경우엔, 주어진 현상을 작게 나누는 게 편리하지만, 규칙성이 알려져 있지 않은 경우엔, 자기 직감으로 적당히 나누는 수 밖에 없다. 그 예시에서, 그 둘은 가속도를 중심으로 서로 연결될 수 있는데, 이는 나중에 현상을 종합할 때 필요하다.


(3) 현상을 종합하는 것은 각각의 작은 현상에서 얻은 결론을 수학적으로 이어나가는 것이다. 행성 운동이라면, 우리가 원하는 것은 행성의 궤도가 될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각각의 작은 현상들로부터 얻은 사실들을 궤도에 관한 미분 방정식으로 연결해야 한다. 이에 대한 일반적인 방법은 없으며, 각각의 문제에 맞게 적당한 전략을 써서 진행해야 한다.


이때, 현상이 매우 복잡한 경우엔, 그것을 나누는 것도 상당한 고역일 수 있다. 예를 들어, 섭동과 자전 등의 것들도 고려한 행성 운동은 처음부터 시작하기엔 너무나도 어렵다. 이런 경우, 이미 알려져 있는 풀이에서 조금씩 덧붙이면서 나가거나, 우선 크게 드러나는 것을 먼저 끝내고 다른 것들을 조금씩 이어나가는 전략을 택한다. 예를 들어, 유전자를 포함한 DNA(암호화 DNA)는 그것을 갖고 있는 개체의 표현형을 확실히 드러낸다. 비암호화 DNA는 그것에 작은 간섭을 줄 뿐이다. 따라서 유전자-표현형 관계를 먼저 파악한 다음, 비암호화 DNA의 섭동을 이해하는 게 바람직하다.


뉴턴의 이런 자세는 그 이후의 과학에서도 잘 드러난다. 특별히 우리는 몇 개의 사례를 통해 그것을 실증적으로 이해하도록 하자. 먼저, 전자기학의 구조를 분석하고, 그 다음, 화학양론과 멘델유전학을 분석한다. 하지만 뉴턴주의가 항상 성공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실패한 경우도 있는데,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 (뉴턴주의 과학이 되려고 노력했으나 실패한) 생리학을 분석한다.


P.s 참고 첨부파일이 2개 있는데 여기엔 올릴 수 없을듯해 패스합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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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 당시엔, 대학을 15세 정도에 입학했다. 뉴턴이 3년이나 늦게 입학한 이유는 그의 어머니가 뉴턴을 농장 관리인으로 만들려고 집안일을 시켰기 때문이다. 물론 뉴턴은 집안일을 하는 게 개판이었고, 그의 하인들도 뉴턴이 학교로 가기만을 바랐다. 다행히도, 지인들이 뉴턴을 대학교에 입학시킬 것을 권유하였고, 그래서 뉴턴은 케임브리지 대학교에 입학하였다.
  2. 영어가 힘든 사람들을 위한 번역 : 
    "그러나 지금까지 나는 현상으로부터 중력의 그런 성질들의 원인을 발견할 수 없었고, 나는 아무 가설도 수립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현상으로부터 귀납될 수 없는 것 무엇이든지 가설로 불려야 하며, 가설은 그게 형이상학적이든 물리적이든 신비한 양의 것이든 역학적인 것이든 실험철학에 있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4개의 댓글

2017.12.22
뉴턴의 작업은 자연철학이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자연철학이 말할 수 있는 한계를 설정하는 것이기도 하네.

[현상으로부터 귀납할 수 없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은 이후의 과학자들도 잘 따르고 있다.]
이 문장에 대해서 약간의 의문이 드는데... 현대물리라고 해야하나? 거기서 말하는, 예를 들어 끈 이론, 막 이론, 다중우주 등등의 이러한 이론들은 귀납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인가? 이것도 과학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들이야? 이것들에 대해 지식이 없어서 가볍게 설명하는 글이나 영상 정도만 보았을 뿐이라... 이것들이 현상으로부터 이끌어나올 수 있는 것들인지 궁금해.

다른 한편, 인간 감각의 한계 때문에 정밀한 기구들을 통해서만 그것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것들도 있잖아. 그러니까 전자 같은 것들. 현상이라는 것은 어느 범위까지를 말하는 것인지 의문이 들어. 분명 전자가 존재하고, 어떠한 성질을 가진다는 것을 도구를 이용해서 알 수 있지만, 과연 이것도 현상이라는 영역에 포함될 수 있는 걸까?

이번 글도 재밌게 읽었어.
0
2017.12.22
@김옥지
현대물리 전문가가 아니라는점을 미리 말하고 시작할게

끈이론을 비롯한 다중차원, 우주 등은 귀납으로 추론이 불가능하다고 봐 왜냐하면 귀납적으로 확인이 불가능한 하나의 가설로 보기 때문에 그것들은 엄밀히 뉴턴주의 과학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지 현상은 물리적 상황은 물리적 상황과 연계되어 보일때 그리고 반복되어 나타날때 이론으로 정립이 가능해 그러므로 상기한 끈이론이니 막이론이니 그런건 "현재로선" 뉴턴주의 과학이 아니야

정밀한 기계라도 오차가 발생하는건 당연하지 내가 말한대로 그 오차를 줄일려면 반복을 통해 무효화 시키는 방법으로 현상을 설명할 수 있어 그러므로 기계로 통한 2차관찰이나 사람의 감각을 이용한 1차관찰 둘다 현상이란것에 포함이 가능해

길고도 재미없는 글 읽어줘서 고마워 :D
1
2017.12.27
뉴턴과 코츠가 명제를' 원인'으로 생각한 이유가 뭐야? 이 표현이 이해가 잘 안가네. 자기 공식으로 물체의 운동을 완벽히 표현했다는 자신감인가?
0
2017.12.27
@시카다
앞문장 잘 읽어보심 나와요 :D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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