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연평해전을 보고 왔습니다.
정말..
전쟁영화라고 예상하고 갔는데
너무 슬픈 영화이더군요.
마지막쯤에는 안우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나이지긋이 드신 분들도 모두 안경을 들고 손수건으로 눈에서 눈물을 훔치느라 바쁘시더군요..
그렇게 영화를 보고 돌아와서
후기가 궁금하여 검색을 해보니
보상금으로 3천만원밖에 못받았다든지, 명예선양이 제대로 안되었다든지 안타까운글이 많아 분개하던차에
그들이 배로 다시 태어나 나라를 지키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크게 감동하여 또 울었습니다..
정장 윤영하
1973.11.24~2002.6.29
북괴군의 기습적 함교 집중포격으로 전사
전사당시 29세
그는 전사 후 10년뒤 그가 생전 지휘하던 참수리보다 더 강력한 배로 다시 태어났다.
윤영하함의 현판을 어루 만지는 고 윤영하 소령의 부모님과 이명박 전 대통령
물살을 가르며 힘차게 항진하는 윤영하함 711
조타장이었던 한상국 중사.
1975.1.31~2002.6.29
전사당시 27세
전우들을 형처럼 잘챙기고 인간미 넘쳤던 한상국 중사는 교전중 몸에 총탄을 맞아 생사가 오가는 상황속에서도 배를 남하시키기 위해 자신의 손을 키에 결박시킨후 배와함께 바닷속으로 실종된다.
후일 그를 다시 찾았을때 그는 여전히 키에 자신의 손을 결박시킨채 몸을 포개고 있었다
그의 시신을 찾은것은 전투후 실종 41일만이였다.
한상국 중사의 시신이 발견된 조타실의 실제 모습
태극기 6개는 전투중 산화한 6명을 의미한다.
한상국 중사 역시 배로 부활하여 나라를 지키고 있다.
다만 아쉽게도 한상국 중사의 아내 김한나씨는 전사가 아닌 공무상 순직으로 처리하고 기념식에도 대통령이 한번도 참석하지 않으며 연평해전이 아닌 서해교전으로 그 의미를 축소시키는 국가에 실망하여 2005년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서해교전에서 연평해전으로 이름이 바뀌고 대통령이 직접 기념식에 참석한것은 10년이 지난 이명박 대통령 정권에 이르러서였다.
김대중,노무현 정권 당시에는 유가족을 초청하여 식사를 하고 위로한적이 있긴 하나 추모식과 기념식에는 단 한번도 참석하지 않았다고 한다.
박경수 중사
357에서 연평해전을 겪고도 다시 조국을 지키기 위해 천안함에 올랐다가
천안함 폭침사건때 전사했다.
해군부사관 188기
전사당시 나이 29세
1981.2.19~ 2010.3.26
이희완 소령
당시 중위로 부정장이었다. 전투 도중 포탄파편에 직격하여 다리를 잃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소령으로 재직하며 정훈장교로서 활동하고 있다.
고정우,곽진성씨는 전투도중 몸과 마음에 큰 상처를 얻었다.
하지만 다행히 생존하여 현재는 방산업체에서 일하며 여전히 국방관련직에 종사하고 있다.
김택중씨는 당시 일병이었다.
전투도중 얻은 정신적 충격 때문에 외상후스트레스 증후군에 시달렸다.
몸에 얻은 상처보다 마음에 얻은 상처가 더 크다고 토로했다.
이해용씨는 큰 일을 당하고도 여전히 원사로 해군에 근무중이다.
권기형씨는 고 박동혁 병장과 동기였다.
당시 갑판에서 전투를 하는 도중 손에 총탄을 맞아 손가락과 팔을 잃을 뻔했으나 수술로 잃는것만은 면했다.
하지만 여전히 팔과 손을 제대로 쓸 수 없다.
전투 도중 손을뻗어 탄창을 쥐려고 했는데 안잡혀서 보니 손가락이 없더라고 증언한 장본인이다.
김승환씨도 전투에서 기적적으로 생환했다.
조천형 중사
1976.4.16~2002.6.29
전사당시 26세
조천형 중사는 당시 딸을 얻은지 얼마안된 초보 아빠였다. 병기장이었는데 교전도중 적탄에 피습되어 화재가 발생했음에도 계속 사격하다 전사했다.
358정이 와서 유해를 수습하려 보니 시신은 여전히 방아쇠를 쥔채 놓지 않은 상태였다고 한다.
조천형 중사가 순직한 자리에 총탄 자국이 선명히 남아있다.
배로 부활한 조천형 중사.
배의 후미에 조천형이라는 글자가 선명하다.
조천형 중사
전사당시 그의 나이 26세였다.
서후원 중사
1980.11.28~2002.6.29
전사당시 22세.
서후원 중사는 내연사로 엔지실에 있어야 했으나 갑판에서 전사했다.
전투가 발생하자 엔진실에서 뛰쳐나와 부상자를 나르고 직접 교전하다 전사한것이다.
서후원 중사의 아버님께서 서후원 중사가 죽은 자리에 서서 인터뷰를 하는 모습.
차라리 아들이 엔진실에 그대로 있었다면...이라며 아쉬움을 토했다.
서후원 중사 역시 배로 부활했다.
서후원 함의 승조원으로부터 경례를 받으며 승선하는 서후원 중사의 아버지
서후원 중사
1980.11.28~2002.6.29
전사당시 22세
황도현 중사
1980.2.27~2002.6.29
전사당시 21세
황도현 중사는 부모님 말씀 한번 거스른적이 없는 효자였다. 얼른 돈을 벌어서 부모님 호강시켜드리겠다며 부사관으로 입대해 근무중 전사했다.
전사당시 그의 나이 불과 21세엿다.
전투중 얼굴에 탄을 맞아 신발을 보고서야 황도현 중사임을 알 수 있었다고 한다.
황도현 중사의 어머니는 남양주시로 이사해 살고 계신다.
여전히 아들의 방을 하나 만들어 아들을 추억하고 계신다.
황도현 중사 역시 배로 부활하여 나라를 수호하고 있다.
황도현 중사의 이름이 선명하게 새겨진 현판.
당시 상병으로 약통이란 별명을 갖고 있었고 전투시 대원들을 살리기 위해 좁은 갑판을 누비다
온몸에 파편상과 총상을 입고 투병중 떠난 박동혁 병장
국군수도병원으로 전투후 긴급후송되어 차도가 나아지는등 희망적인 모습도 보였으나 결국 투병생활 83일을
만에 우리곁을 떠났다.
박동혁 병장의 몸에서는 3kg이 넘는 쇳조각이 나왔다.
의사는 박동혁 병장이 그만큼 오래버틴것조차도 기적이라고 말햇을 정도의 큰 부상이었다.
박동혁 병장은 병사계급임에도 이례적으로 전투함에 이름이 명명되엇다.
전투 상황속에서 파편상에 다리가 찟겨져 나가고 피를 흘리면서도 동료들을 헌신적으로 도운 전공을 크게 인정받은것이다.
후미에 박동혁 세글자가 선명한 박동혁함
파도를 가르며 항주중인 717 박동혁함
병장 박동혁
1981.8.25~2002.9.20
전사당시 21세
다시 태어나 영해를 수호중인 그들의 모습
영화중 옷걸이에 걸린 고 윤영하 소령의 제복을 안고 흐느끼시던 아버님의 자랑스러워 하시는 모습
박동혁 함을 바라보시는 박동혁 병장의 아버님
아들에게 손을 흔들듯 손을 흔들어보는 어머님
연평해전 후 100일가까이 지나서야 인양되는 357정의 모습
함포는 여전히 적을 향하고 있었다.
함교는 처참히 깨져나가 있고 함체 곳곳에는 총탄구멍이 가득했다.
현재는 평택2함대에 실물이, 전쟁기념관에 목업이 전시되어 있다.
풍기작작
도타하세요도타
SsongOwO
껍질인간
커스타드크림
아녕려추추ㅜ투ㅜㅇ
솔직히 영화 초반부엔 좀 지루했다...
근데 전투 시작되고, 마지막에 장례식 장면까지.. 안우는 사람이 없었다
나도 슬픈영화 보면서 운적 한번도 없는데 나도 모르게 진짜로 눈물이 흐르더라
Eos5DMark2
알아서뭐
영화 전투시간이 실제 전투시간과 똑같은 30분으로 해서 만들었다고 하니까
전투끝나고 영상보여주고 하는게 10분정도 된듯
그럼 딱 맞아덜어질겨
앰창인생발버둥
닉네임은없습니다
스리슬쩍
하나 수정하자면 3000만원 보상은 이중배상금지조항때문에 어쩔수 없었고.. 김대중 대통령이 편법으로 우회해서 더 지원하고 조의금도 따로 보냄.
나중에 김-노-이 거치면서 수정
로밍중
스리슬쩍
북한의 도발 목적 중에 하나가 월드컵의 성공적인 개최에 초치려는 건데 거기에 넘어가서 마지막 폐막식에 우리나라가 빠지면 안된다. 라는 주장을 받아들임.
국내에는 국무총리가 남아 상황지휘.
판단은 알아서
스리슬쩍
함마유
예우와 보상금에 있어서 많은사람들이 지적하는 것과 다르게 역사상 최대 였다는건 무슨 근거야?
스리슬쩍
김대중 정부는 2002년 6월 30일 서해도발 과정에서 전사 또는 실종된 해군장병 5명에게 일계급 특진과 함께 훈장을 추서했다.[40]
2002년 6월 30일 국군수도병원 합동분향소에는 이한동 국무총리를 비롯한 국무위원과 국회의원, 군 장병 등이 방문했다. 이 총리 등 국무위원 일행 21명은 이날 합동분향소를 방문, 헌화 및 묵념하고 고(故) 윤영하 소령에게 충무무공훈장, 고(故) 조천형 중사등 사망 및 실종 병사 4명에게 화랑무공훈장을 각각 추서했다.
2002년 7월 2일 ...국군수도병원을 방문, 서해교전에서 부상당한 장병들을 위로했다.[44] 7월 23일 김대중은 서해교전에서 전사하거나 실종된 장병 5명의 가족 12명을 청와대로 초청한 자리에서 “북한의 불법적이고 무도한 도발행위로 인해 돌아가신 분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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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정권이랑 비교해보면 차이가 명확한데.. 이렇게 우회적으로나마 보상금을 더 챙겨준 정부는 김대중 정권 이전에 없었고, 대통령이 병문안을 가거나 유가족을 청와대로 초청하거나 따로 조의금을 보내거나 한것도 없었음.
가장 큰 예로 96년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때의 사망자에게는 저런 우회적인 방법 없이 법대로 주고 끝.
I scream
이래서 전작권 회수 하자는 거다
전작권 있으면 교전수칙 선발포로 바꿀수 있다
낄렵낄렵
눼예눼얘
존댓말쓸거닼ㅋㅋ
개인적으로 위에서 뒤에서 비리 저지르고 까대는데도 묵묵히 싸우는 젊은이들 멋지다.
지금 한국이란 나라가 저런사람들의 피를 마실자격있을려나?
켄트지
네롱
Eos5DMark2
Raphael 華月
단발차기
죄와돈
큰솔방울
년째아다
버스터머신
관자로리
병역회피자 강력처벌이 이루어져야 한다
골든바바라봉붓
설희
fafflas
XCOM
사내
남자간호사
wu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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