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쯤인가, 중학생 때 호스피스 병동에 가본 일이 있었다.
당시 위암 말기였던 작은 고모 할아버지를 봬러 갔었는데 그곳은 내게 불쾌했던 기억 뿐이다 .
복도에 흐르는 적막, 기분 나쁜 소독약 냄새, 굳은 표정을 하며 병실을 나오는 누군가의 문병객들이 아주 깨름찍한 장면을 연출 했다.
호스피스 병실 안은 더 했다.
눈만 겨우 뜨고 있는 산 송장 같은 어르신들이 침대에서 입을 벌린 채 초점없는 눈으로 허공만 보고 있었다.
주변 보호자들은 하나같이 피곤에 쩔어 있었는데 침대에 이마를 기대고 있거나, 굳은 얼굴로 멍하니 병실 티비를 보고 있었다.
살풍경 한 광경, 그곳은 희망이 없었다.
아버지 말씀으로는 작은 고모 할아버지께선 소싯적엔 힘이 장사셨다고 한다.
동네에선 힘으로는 당해 낼 사람이 없었고, 지게 짐도 100kg는 기본으로 지고 다니셨다고 한다.
하지만 눈앞엔 작게 쪼그라들어 겨우 숨만 붙어 있는 백발의 노인 한분 만 게셨다.
작은 고모할아버지의 소싯적 얘기는 거짓말 같았다.
나에겐 그냥 병약하게 태어나서 병약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그런 분이었다.
아버지는 사촌 지간인 작은 고모와 안부 겸 몇 마디 주고 받았다.
10분이 채 안된 시간이었지만, 억겁의 시간이었다.
난 무겁게 짓누르는 병실 안 공기가 싫어, 연신 아버지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는 빨리 병원을 나가자며 보챘다.
도처에 놓여있는 절망들을 어떻게 받아드려야 할지 몰라서 그랬던 것 같다.
그리고 두달 뒤 쯤이었나, 작은 고모 할아버지께서 그 해 봄을 넘기지 못하고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렇게 난 기억에서 호스피스 병동 지웠다.
그렇게 잊은 호스피스 병동을, 다신 가고싶지 않던 그곳을
담관암으로 입원한 외할머니를 뵙기 위해 얼마 전 다녀왔다.
외할머니가 계신 5층 병동에서 멈춘 엘리베이터가 열렸다.
기분나쁜 적막, 소독약 냄새, 희망이 꺼져있는 병실 모습, 입 벌리고 누워있는 백발의 산송장들.
다른 시기, 다른 장소, 다른 사람들인데 데칼코마니 마냥 똑같았다.
그때 감각이 되살아났다.
등 뒤의 깨름찍함들과 함께 외할머니의 병실에 도착했다.
그렇게 꾸미기 좋아하셨던 외할머니께서, 하얀 환자복에 산소호흡기를 달고 있는 모습을 보자
참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외할머니의 병문안을 마치며 무거운 마음으로 나오는데
갑작스럽게도 20년전 작은 고모 할아버지가 생각났다.
어쩌면 그땐 믿지 못했던 소싯적 작은고모할아버지의 얘기가 사실 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젊은 내 모습이 나중에는 누군가에겐 믿겨지지 않을 순간이 오겠지?
상념에 빠진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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