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저 개드립

즐겨찾기
최근 방문 게시판

삼국지 정사에서 나온 유부녀 킬러 여포

PdZMLeQQ35azUuVcoDXqj-ZqXJ4_v2Y7lI8EAQW7TNSBdWir0HtgcQfDSYQkPIcaW5RC7MPeRij5COCF9jry8w.webp

앞에 붙이는 3줄 요약 

 

1. 그새끼 존나 쎄다 로 역사서가 도배가 되어있는 넘 그새끼가 나서자 수만 군대가 달아났다 가 실제로 역사서에 반복해서 나옴 

 

2. 부하장수 여편네 따먹다가 배신당해서 골로감 

 

3. 유부녀 킬러는 조조가 아니라 여포, 실제로 조조는 미망인 킬러지 유부녀 킬러가 아님 

 

==================

 

 

 

1. 병주의 군인

 

 

 

여포(呂布)의 자는 봉선(奉先)이고 (병주) 오원(五原)군 구원(九原)현 사람이다. 효무(驍武-사납고 용맹함)하여 병주(幷州)에서 복무했다. 

 

 

 

2. 병주군의 실질적인 리더

 

 

 

=정원을 죽이고 동탁에게 가자 병주군이 여포를 따라 동탁에게 감=

 

 

 

하진이 패망하고 동탁이 경도(京都-수도)로 들어왔는데, 장차 난을 일으키기 위해 정원을 죽이고 그 군사들을 아우르려 했다. 동탁은 여포가 정원에게 신임 받는 것을 보고 여포를 꾀어 정원을 죽이게 했다. 여포가 정원의 머리를 베어 동탁에게로 나아가니 동탁은 여포를 기도위(騎都尉)로 삼고 매우 아끼고 신임하여 부자(父子) 사이가 되기로 맹세했다. 

 

 

 

3. 동탁의 호위 무사 =비장이라고 불린 동탁 휘하 가장 강력한 무장=

 

 

 

비장 : 하늘을 나는 듯한 위엄을 갖추고 용맹한 장수라는 의미. 실존 인물 중에는 신궁으로 유명한 전한의 명장인 이광과 후한의 여포, 장연에게 붙여진 별명이다.

 

 

 

 여포는 활쏘기와 기마에 능하고 여력(膂 力-완력, 용력)이 남보다 뛰어나 비장(飛將)으로 불리었다. 점차 승진하여 중랑장(中郎將)에 이르고 도정후(都亭侯)에 봉해졌다. 동탁은 스스로 남들을 무례하게 대했기에 그들이 자신을 해칠까 두려워하여 거동할 때 늘 여포로 하여금 자신을 호위하게 했다.

 

 

 

4. 10명으로 동탁을 죽이고 삼족을 멸하지만 반항하는자가 없었음 

 

 

초평 3년(192년) 4월, 사도 왕윤(王允), 상서복야 사손서(士孫瑞), 동탁의 장수 여포(呂布)가 공모해 동탁을 주살했다. 이때 천자가 병에 걸렸다 막 낫게 되어 미앙전(未央殿)에서 큰 모임을 열었다. 여포는 같은 군(郡) 출신의 기도위 이숙(李肅) 등을 시켜 친병(親兵) 10여 명을 거느리고는 거짓으로 위사(衛士)의 복장을 입고 액문(掖門)을 지키게 했다. 여포는 조서를 품고 있었다. 

 

동탁이 도착하자 이숙 등이 동탁을 막았다. 동탁이 놀라 여포는 어디 있냐고 외쳤다. 여포는 

 

“(적을 토벌하라는) 조서가 내렸다.”

 

고 말하고는 마침내 동탁을 죽이고 삼족을 멸했다. 주부 전경(田景)이 동탁의 시신 앞으로 달려가니 여포가 또 그를 죽였다. 모두 세 사람을 죽이니 나머지 사람들은 감히 움직이는 자가 없었다

 

 

 

5. 곽사와의 일기토에서 승리 (하지만 병력 자체가 적어서 결국 후퇴) 

 

 

 

(여포전)

왕윤은 여포를 분무장군(奮武將軍), 가절(假節)로 삼고 의례는 삼사(三司-삼공)에 비견되도록 하고 온후(溫侯)로 올려 봉하여 함께 조정을 장악했다. 여포는 스스로 동탁을 죽인 후 양주인(涼州人)을 두려워하고 꺼리었고(※ 동탁은 양주 농서군 임조현 출신) 양주인 들도 모두 여포에 원한을 품었다. 이 때문에 이각(李傕)등이 마침내 서로 결탁한 뒤 돌아와 장안성(長安城)을 공격했다. (주석)

 

여포가 이를 막지 못했고 마침내 이각 등은 장안으로 들어왔다. 동탁이 죽은 후 60일이 지나 여포 또한 패하니,  수백 기를 이끌고 무관(武關)을 나와 원술(袁術)에게로 가려 했다. 

 

 

 

(주석)[영웅기] – 곽사(郭汜)는 성 북쪽에 있었다. 여포는 성문을 열고 군을 이끌고 곽사에게로 나아가 말했다, 

 

“군사들을 물리고 다만 (우리끼리) 몸소 싸워 승부를 가름하자.” 

 

곽사와 여포는 더불어 싸웠는데 여포가 모(矛)로 곽사를 찌르자 뒤에 있던 곽사의 기병이 앞으로 와 곽사를 구했다. 이에 곽사와 여포는 각각 그만두었다. 

 

 

 

6. 원소 휘하에서 장연 격파 =인중 여포, 마중 적토=

 

 

 

이에 북쪽으로 원소(袁紹)에게로 가니, 원소는 여포와 함께 상산(常山-기주 상산국)에서 장연(張燕)을 공격했다. 장연은 정병 1만 남짓에 기병이 수천에 이르렀다. 여포는 적토(赤兔)라 불리는 좋은 말을 가지고 있었다. 주석

 

그가 친근하게 지내던 성렴(成廉), 위월(魏越) 등과 함께 적의 예봉을 꺾고 적진에 돌진하여 마침내 장연군을 격파했다. 

 

 

 

주석 [조만전]曹瞞傳 – 그때 사람들이 말하기를, “사람 중에 여포가 있고 말 중에 적토가 있다.”고 했다.

 

 

 

7. 원소 여포를 두려워 하여 암살시도하나 실패 

 

 

 

그리고 군사들을 구해 더욱 늘리고 장사(將士-장졸)들이 노략질을 일삼으니, 원소가 이를 근심하고 꺼렸다. 여포가 그 뜻을 알아채고 원소로부터 떠날 것을 청했다. 원소는 그가 돌아와 자신을 해칠까 두려워하여 밤중에 장사를 보내 여포를 습격해 죽이려 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그 일이 드러나자 여포는 하내(河內)로 달아나 장양(張楊)과 합쳤다.

 

 

 

8. 원소가 군대를 보내지만 군대가 여포를 두려워 해 다가가지 못함 

 

 

 

원소는 군사들에게 이를 추격하게 했는데 모두 여포를 두려워하여 감히 가까이 다가가려는 자가 없었다. 

 

 

 

9. 여포와 장막이 합세하니 원소가 크게 원한을 함 

 

 

 

여포가 원소를 버리고 장양을 좇으려 할 때 장막에게 들렀는데, 서로 헤어질 때 손을 잡고 맹세하니 원소가 이 일을 듣고 크게 원한을 품었다. 장막은 태조가 끝내 원소를 위해 자신을 해치리라 생각하고 내심 스스로 편안하지 못하였다. 

 

 

 

10. 조조땅에서 반란을 내자 조조가 이를 진압하는대 2년이 걸림

 

 

 

(세부 내용 11~13까지)

 

 

 

당초 태조는 진궁에게 군을 이끌고 동군(東郡)에 남아 주둔하도록 했는데, 마침내 그 군사들로 동쪽으로 여포를 맞아 연주목(兗州牧)으로 삼았다. 군현(郡縣)이 모두 호응했고 다만 견성(鄄城), 동아(東阿), 범(範)현만이 태조 편에 남아 수비했다. 

 

태조가 군을 이끌고 돌아와 복양(濮陽)에서 여포와 싸웠는데 태조 군이 불리하여 백 여 일을 서로 대치했다. 이 해는 날이 가물었고 충황(蟲蝗-누리)이 일어 곡식이 부족해 백성들이 서로 잡아먹을 지경이라 여포는 동쪽으로 가서 산양(山陽)에 주둔했다.

 

2년 사이에 태조는 여러 성들을 모두 되찾았고, 거야(鉅野-연주 산양군 거야현)에서 여포를 격파하니 여포는 동쪽으로 유비(劉備)에게로 달아났다. 

 

 

 

11. 조조가 여포를 공격,

 

 

 

여포는 이를 격파하고 조조는 간신히 목숨만 건져서 도망 

 

 

 

그리고는 진군하여 여포를 공격했다. 여포가 출병하여 싸웠는데 먼저 기병으로 청주병을 공격했다. 청주병이 달아나 태조의 진영이 어지러워지자 (태조는) 말을 달려 불길을 벗어나다 말에서 떨어져 왼쪽 손바닥에 화상을 입었다. 사마 누이(樓異)가 태조를 부축해 말에 오르게 하고 이끌고 빠져나왔다. [주]

 

 

 

[주] 원위(袁暐)의 [헌제춘추]獻帝春秋 – 태조가 복양을 포위하자 복양의 대성(大姓)인 전씨(田氏)가 내통하여 태조는 성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동문을 불태워 돌아갈 뜻이 없음을 보였는데, 싸움이 벌어지자 군이 패했다. 여포의 기병이 태조를 붙잡았으나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물었다, 

 

“조조는 어디에 있는가?” 

 

태조가 말했다, 

 

“황마(黃馬)를 타고 달아나는 자가 조조입니다.” 

 

이에 여포의 기병이 태조를 놓아주고는 황마를 탄 자를 뒤쫓았다. 성문의 불길이 여전히 거세었으나 태조는 불길을 뚫고 빠져나왔다.

 

 

 

12. 조조와 여포 100일간 대치하지만 황충으로 양식이 소진되어 철수 

 

 

(태조가) 둔영에 도착하기 전 제장들은 태조가 보이지 않자 모두 두려워했다. 이에 태조가 친히 군사들을 위로하고 군중에 영을 내려 속히 공구(攻具-공성 무기)를 만들도록 했다. 그리고 다시 여포를 공격하여 백여 일 동안 서로 대치했다. 황충(蝗蟲-누리)이 일어 백성들이 크게 굶주리고 여포의 양식 또한 소진되니 각각 군을 이끌고 물러났다.

 

 

13 연주에 식량이 없어 사람들이 서로 잡아먹는 상황이 발생하며,군량이 없는 여포 연속적으로 격파당함

 

 

 

여포는 승씨(乘氏-연주 제음군 승씨현)에 이르러 그 현 사람인 이진(李進)에게 격파되자, 동쪽으로 가서 산양(山陽-연주 산양군)에 주둔했다.

 

 

 

흥평 2년(195년) 봄, (조조는) 정도(定陶-제음군 정도현)를 습격했다. 제음태수 오자(吳資)가 남성(南城)을 지키니 함락시키지 못했다.  때마침 여포가 도착하자 또한 여포를 공격하여 깨뜨렸다.

 

 

 

여름, 여포의 장수 설란(薛蘭), 이봉(李封)이 거야(鉅野-연주 산양군 거야현)에 주둔했다. 태조가 이를 공격하자 여포가 설란을 구원했는데, 설란은 패하고 여포는 달아났고 마침내 진란 등을 참수했다. 

 

여포는 다시 동민(東緡-산양군 동민현)에서부터 진궁과 함께 만여 명을 이끌고 와서 싸웠다. 이때 태조의 군사들이 적었는데 복병을 설치하고 기병(奇兵-기습부대)을 풀어 공격하여 이를 대파하니 여포는 밤중에 달아났다. 

 

 

 

태조는 다시 정도(定陶)를 공격하여 함락시키고 군을 나누어 여러 현들을 평정했다. 여포는 동쪽으로 유비에게로 달아났는데, 장막은 여포를 뒤따르면서 동생인 장초(張超)에게 가속들을 이끌고 옹구(雍丘-진류군 옹구현)를 보전하도록 했다.

 

 

 

14. 여포가 유비한태 가서 유비 통수를 쳐서 서주 먹음 

 

 

 

(선주전)

 

선주는 원술과 한 달 넘게 서로 대치했는데, 여포가 빈틈을 타 하비를 습격했다. 하비의 수장(守將) 조표(曹豹)가 배반하고 그 틈에 여포를 맞아들였다. 여포가 선주의 처자(妻子)를 사로잡자 선주는 군을 돌려 해서(海西)에 주둔했다. (주8) 

 

양봉(楊奉), 한섬(韓暹)은 서주(徐州), 양주(揚州) 사이에서 도적질했는데, 선주가 이를 격퇴하고 모두 참수했다. 선주는 여포에게 화친을 구하고 여포는 선주의 처자를 되돌려 보냈다. 선주는 관우(關羽)를 보내 하비를 지키게 했다.

 

(여포전)

 

유비가 동쪽으로 가서 원술을 공격하자 여포는 하비(下邳)를 습격해 차지하고, 유비가 되돌아가 여포에 귀의했다. 여포는 유비를 소패(小沛)에 주둔하게 하고, 서주자사(徐州刺史)를 자칭했다. 

 

 

 

15. 원술이 기령에게 보기 3만을 보내 유비를 공격,

 

 

 

여포가 1200으로 출병하여 원군으로 가니 3만이 퇴각 

 

 

 

(여포전)

 

원술이 장수 기령(紀靈) 등과 보기(步騎) 3만을 보내 유비를 공격하니 유비는 여포에게 구원을 청했다. 여포의 제장들이 여포에게 말했다, 

 

“장군은 늘 유비를 죽이고자 했으니 이제 가히 원술의 손을 빌릴 만합니다.” 

 

여포가 말했다, 

 

“그렇지 않소. 원술이 만약 유비를 격파하면 북쪽으로 태산(太山)같은 제장들과 연결될 것이니 나는 원술에게 포위당하게 되오. 구원하지 않을 수 없소.” 

 

곧 보병 1천, 기병 2백을 엄비해 급히 유비에게로 나아갔다. 

 

기령 등은 여포가 이르렀다는 말을 듣고 모두 군을 거두고 감히 다시 공격하지 못했다.

 

 

 

16. 그 유명한 영문에 극을 세워 쏘아 맞추는 사건 

 

 

 

여포가 기령 등에게 말했다, 

 

“현덕(玄德-유비)은 내 동생이오. 동생이 제군(諸君)들에게 곤란을 겪으니 이 때문에 구원하러 왔소이다. 내 성정이 어울려 싸우는 것은 좋아하지 않으나 다만 싸움을 화해시키는 것은 좋아하오.” 

 

여포는 문후(門候-문지기 관원)에 명해 영문(營門)에 극(戟) 하나를 세우게 했다. 여포가 말했다, 

 

“제군(諸君)들은 내가 극(戟)의 소지(小支-극의 가지창 부분)를 쏘는 것을 보시오. 적중하면 제군들은 응당 화해한 후 떠나고 적중하지 않으면 남아서 결투(決鬪)하시오.” 

 

여포가 활을 들어 극을 쏘았는데 소지(小支)를 정확히 맞췄다. 제장들이 모두 놀라 말하길, ‘장군은 천위(天威)를 갖추고 있다’고 했다. 다음날, 다시 연회를 베푼 뒤 각자 군을 물렸다. 

 

 

 

17. 학맹 반란 사건(진내 반란 사건이지만 간단하게 제압하고 참수) 

 

 

 

건안 원년(196년) 6월, 밤중에 여포의 장수 하내(河內)인 학맹(郝萌)을 반란을 일으켜 군사들을 이끌고 여포의 치소인 하비부(下邳府)로 쳐들어왔다.(중략)고순은 즉시 엄병(嚴兵)하여 (하비)부로 들어가 학맹의 군사들에게 일제히 궁노(弓弩)를 쏘았다. 학맹의 군사들은 어지러워져 패주했는데 날이 밝자 그들의 군영으로 되돌아갔다. 학맹의 장수 조성(曹性)이 학맹에게 반기를 드니, 학맹은 조성을 찌르고 조성은 학맹의 한쪽 어깨를 찍었다. 고순이 학맹을 참수하고는 조성을 수레에 태워 여포에게로 보냈다. 

 

 

 

18. 원술의 장훈군 대파  

 

 

 

원술이 분노하여 한섬(韓暹), 양봉(楊奉) 등과 세력을 연결하고 대장 장훈(張勳)을 보내 여포를 공격했다. 

 

 

 

 

 

여포가 진규의 계책을 채용해 사람을 보내 한섬, 양봉을 설득하길, 자신과 힘을 합해 원술 군을 공격하고 빼앗은 군자(軍資)는 모두 한섬, 양봉에게 준다고 했다. 한섬, 양봉이 이를 좇아서 장훈을 대파했다.

 

 

 

19. 소건에게 서신을 보내자 귀순 

 

 

 

이때 동해(東海) 사람 소건(蕭建)이 낭야상(瑯邪相)이 되어, 거(莒-서주 낭야국 거현)를 치소로 삼고 성을 보전해 스스로 지키며, 여포와 서로 통하지 않았다. 여포가 소건에게 서신을 보냈다, 

 

“천하 인들이 거병한 것은 본래 동탁을 주살하려는 것이었소. 내가 동탁을 죽이고 관동(關東)으로 와서는 군사를 구해 서쪽으로 대가(大駕)를 영접해 낙경(洛京-낙양)을 광복(光復-새로이 회복함)하려 했으나, 제장들은 도리어 서로 공격하며 나라를 염려하지 않았소이다. 나는 오원(五原) 사람으로 (오원은) 서주와 5천여 리 떨어져 있고 하늘의 북서쪽 구석에 있는데 지금 하늘의 남동쪽 땅을 다투려고 온 것은 아니오. 거(莒)는 하비와 서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아 의당 서로 통해야 하오. (그리하지 않는) 군(君-그대)은 마치 군(郡)에서는 저마다 스스로 황제노릇하고 현(縣)에서는 왕 노릇하는 것과 같소이다. 옛날 악의(樂毅)가 제(齊)를 공격할 때 순식간에 제(齊)의 70여 성을 떨어뜨렸으나 오직 거(莒), 즉묵(卽墨), 두 성은 떨어뜨리지 못했으니 이는 그 중에 전단(田單)이 있었기 때문이오. 내가 비록 악의는 아니지만 군(君) 또한 전단은 아니니, 내 서신을 받거든 지혜로운 자들과 잘 의논해보도록 하시오.” 

 

소건이 서신을 받자 주부(主簿)를 보내 전(牋-서신)을 지니고 가게하고 좋은 말 다섯 필을 바쳤다.

 

 

 

20. 소건을 장패가 공격하자 여포가 원군으로 나섬,

 

 

 

장패는 두려워 성에 숨고, 여포는 함락시키지 못하고 돌아온 후 화해 

 

 

 

그 뒤 장패(臧霸)가 소건을 습격하여 격파하고 소건의 자실(資實-군수물자)을 빼앗았다. 여포가 이 일을 듣고 친히 보기(步騎)를 이끌고 거현으로 향했다. 고순(高順)이 간언했다, 

 

“장군께서 몸소 동탁을 주살하여 이적(夷狄)들에게 위세를 떨쳤으니 단좌고분(端坐顧盼-단정히 앉아 주위를 돌아봄)한다면 멀고 가까운 곳에서 자연 외복(畏服)할 것입니다. 가벼이 친히 출군해서는 안 됩니다. 혹 이기지 못한다면 명성을 손실함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여포는 이에 따르지 않았다. 장패는 여포의 노략질을 두려워하여 과연 성 위로 올라가 맞서니 여포는 이를 함락하지 못하고 군을 이끌고 하비로 되돌아왔다. 그 뒤 장패는 여포와 다시 화해했다. 

 

 

 

21. 유비가 조조에게 예주목과 만명의 병사와 군량과, 무기를 얻으나

 

 

 

고순에게 격파 됨,

 

 

 

조조가 하후돈을 원군으로 보냈으나 역시 격파됨.

 

 

 

고순은 또 유비의 가족들을 다 포로로 잡음 

 

 

 

(선주전)

  선주는 소패(小沛)로 돌아와 다시 군사를 합쳐 만여 명을 얻었다. 

 

여포가 이를 꺼려 친히 출병해 선주를 공격했고 선주는 패주해 조공(曹公-조조)에게 귀부했다. 조공이 그를 후대하고 예주목(豫州牧)으로 삼았다. 장차 패(沛)로 가서 흩어진 군졸들을 거두려 하자, (조공은) 군량을 대어주고 군사들을 보태어 동쪽으로 여포를 공격하게 했다. 여포가 고순(高順)을 보내 이를 공격하자 조공은 하후돈(夏侯惇)을 보냈으나 능히 구원할 수 없었고 고순에게 패했으며, (고순은) 다시 선주의 처자를 사로잡아 여포에게 보냈다. 

 

(여포전)

건안 3년(198년), 여포가 다시 모반하여 원술 편에 서고, 고순(高順)을 보내 패(沛)에서 유비를 공격해 격파했다. 태조는 하후돈(夏侯惇)을 보내 유비를 구원했으나 고순에게 패했다. 

 

 

 

22. 조조가 대군을 이끌고 여포를 석달 포위하나 함락시키지 못했고,

 

 

 

사수와 기수의 물을 끌어 수공을 하여 간신히 함락 

 

 

 

(무제기)

 

9월, 공이 동쪽으로 여포를 정벌했다. 

 

겨울 10월, 팽성(彭城-서주 팽성국)을 함락하고 팽성상(相) 후해(侯諧)를 사로잡았다. 진격하여 하비(下邳)에 이르니 여포가 친히 기병을 이끌고 역격(逆擊)했다. 이를 대파하고 여포의 효장(驍將-맹장)인 성렴(成廉)을 사로잡았다. 추격하여 성 아래에 도달하자 여포가 두려워하며 항복하고자 했다. 진궁(陳宮) 등이 이를 막으며 원술에게 구원을 청하고 여포가 출전하도록 권하니, 출전하여 싸웠으나 또 패했다. 이에 성으로 돌아가 굳게 지키니 공격하여 함락시키지 못했다. 

 

이때 공이 연달아 싸워 사졸들이 피폐해졌으므로 돌아가려 하다가, 순유(荀攸)와 곽가(郭嘉)의 계책의 써서 사수(泗水)와 기수(沂水)의 물을 성에 끌어들였다. 한 달이 지나 여포의 장수 송헌(宋憲), 위속(魏續) 등이 진궁을 붙잡고 성을 들어 항복하니, 여포, 진궁을 사로잡아 모두 죽였다. 

 

태산의 장패(臧霸), 손관(孫觀), 오돈(吳敦), 윤례(尹禮), 창희(昌豨)가 각각 무리들을 모으고 있었는데, 여포가 유비를 격파하자 장패 등이 모두 여포를 좇았었다. 여포를 꺾고 장패 등을 사로잡자 공이 후하게 대접했는데, 마침내 청주(靑州), 서주(徐州)의 2주에서 바다에 가까운 곳을 맡기고 낭야(瑯邪), 동해(東海), 북해(北海)를 나누어 성양군(城陽郡), 이성군(利城郡), 창려군(昌慮郡)을 설치했다.

 

 

23. 하비가 함락되고 포위 되니 항복하여  심약한 모습을 보여줌 

 

 

 

여포는 그 휘하들과 함께 백문루(白門樓)에 올랐으나 군사들이 둘러싸 위급해지자 내려와서 항복하니, 마침내 여포를 사로잡았다.

 

여포가 말했다, 

 

“묶은 것이 너무 조이니 조금 느슨하게 해 주시오.”

 

태조가 말했다, 

 

“범을 묶는데 꽉 조이지 않을 수 없다.” 

 

여포가 청했다, 

 

“명공(明公)이 근심하던 것이 나 여포인데 이제 내가 이미 항복했으니 천하에 걱정할 게 없소이다. 명공이 보병을 이끌며 내게 기병을 이끌게 한다면 어찌 천하를 평정하지 못하겠소이까?” 

 

태조는 의심하는 기색을 띄었다. 유비가 진언했다, 

 

“명공은 여포가 정건양(丁建陽-정원)과 동태사(董太師-동탁)를 섬기던 일을 보지 못하셨습니까?” 

 

이에 태조가 고개를 끄덕였다. 여포가 유비를 손가락질하며 말했다, 

 

“이 아이가 가장 믿지 못할 놈이다!” (16) 

 

이에 여포를 액살(縊殺-목을 매어 죽임)했다. 여포는 진궁, 고순 등과 함께 모두 효수(梟首)되어 허도로 보내졌고 그 뒤 매장되었다.

 

 

 

[헌제춘추] - 여포가 태조에게 물었다, 

 

“명공은 어찌 이렇게 수척해 지셨습니까?” 

 

태조가 말했다, 

 

“군(君)이 어찌 나를 알아보시오?” 

 

여포가 말했다, 

 

“예전 낙양에 있을 때 온씨원(溫氏園)에서 만났습니다.” 

 

태조가 말했다, 

 

“그렇소. 내가 그 일을 잊었었소. 내가 수척해 진 것은 좀 더 빨리 (군을) 사로잡지 못한 것을 한스러워 했기 때문이오.”

 

여포가 말했다, 

 

“제(齊) 환공(桓公)은 활에 맞은 띠고리를 버리고 (그 활을 쏜) 관중(管仲)을 재상으로 삼았습니다. 지금 나 여포로 하여금 고굉(股肱-팔다리)의 힘을 다하게 한다면 공의 전구(前驅-말을 타고 선도하는 자, 선봉)가 되겠습니다. 어떻습니까?”

 

여포가 꽉 조이게 포박되어 있었으므로 유비에게 말했다, 

 

“현덕, 경은 빈객으로 앉아 있고 나는 사로잡힌 포로 신세가 되었구려. 느슨하게 묶어달라고 한마디 해줄 수 없겠소?” 

 

태조가 웃으며 말했다, 

 

“어찌 내게 말하지 않고 사군(使君-주자사 급의 고관에 대한 경칭. 여기서는 유비)에게 소명(訴明-호소)하시오?” 

 

여포를 살려주려는 뜻을 품고 포박을 느슨하게 해주라 명했다. 주부(主簿) 왕필(王必)이 달려와 진언했다, 

 

“여포는 사나운 포로이고 그 무리들이 가까이 밖에 있으니 느슨하게 해주면 안 됩니다.” 

 

태조가 말했다, 

 

“본래 느슨하게 해주려 했으나 주부가 말을 듣지 않으니 어찌하겠소?” 

 

 

 

24. 유부녀 킬러 조조한태,

 

 

 

너 유부녀만 좋아해서 니 주변놈들 다 너라면 치를 떤다

 

 

 

라는 말을 들음

 

 

 

(널리 알려진건 초선이지만, 알려지지 않은 케이스는 얼마나 될지) 

 

 

 

(16) [영웅기] - 여포가 태조에게 말했다, 

 

“내가 제장들을 후대했으나 제장들은 위급해지자 모두 나를 배반했소.” 

 

태조가 말했다, 

 

“경은 처를 저버리고 제장들의 부인을 사랑했으면서 어찌 후대했다 하시오?” 

 

여포는 입을 다문 채 말이 없었다. 

 

 

 

25. 진수 평 존나 쎄지만 머리 나쁘고 말바꾸기 좋아하는 경박한 병신 

 

 

 

평한다. 여포는 효호(虓虎-포효하는 범)의 용맹을 지녔다. 그러나 특출한 지략은 없었고 경박하고 교활하게 반복(反覆-언행을 이리저리 바꿈)하여 그의 안중에는 오직 이익 밖에 없었으니, 예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런 자가 이멸(夷滅-멸망)되지 않은 적이 없다. 

 

옛날 한(漢) 광무제는 방맹(龐萌)에게 속았고 근래 위(魏) 태조(太祖) 또한 장막에게 그르쳐졌으니, ([상서]에서) 사람을 알아보는 것이 즉 지혜로움(哲)이고 요임금도 이를 어렵게 여겼다 하더니, 과연 그러하구나! 

 

 

 

26. 고순 = 병주 시절부터 죽을때까지 같이 한 여포의 충신, 

 

 

 

[영웅기] – 고순(高順)은 사람됨이 청백(淸白-청렴결백)하고 위엄이 있었으며 술을 마시지 않고 궤유(饋遺-선물)를 받지 않았다. 칠백 여 군사를 거느렸으나 천 명이라 일컬었는데, 개갑(鎧甲-갑옷), 투구(鬪具-싸움 도구)가 모두 정련(精練), 정제(齊整)하고 매번 공격할 때마다 격파하지 못함이 없으니 함진영(陷陳營)이라 불렀다. 고순이 매번 여포에게 간언하길, 

 

“무릇 집안을 무너뜨리고 나라를 망하게 하는 것은 충신(忠臣)이나 밝고 지혜로운 자가 없어서가 아니라 다만 그들이 쓰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장군께서 거동(擧動)하실 때 치밀히 생각하지 않고 번번이 ‘잘못되었다’고 말하길 좋아하시니 그런 잘못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라고 했다. 여포는 그의 충성됨을 알았으나 능히 쓰지는 못했다. 여포는 학맹의 반란을 진압한 후 다시 고순을 소원하게 대하고 위속(魏續)이 안팎의 친척이라 하여 고순이 거느리던 군사들을 모두 빼앗아 위속에게 주었다. 그러다 싸움이 있게 되자 영을 내려 위속이 거느리던 군사를 고순이 이끌게 했는데 고순은 또한 끝내 원망하는 마음을 품지 않았다. 

 

 

 

27. 진궁 = 조조를 배신했음에도 살려주려 했지만 죽음을 선택한 충신,

 

 

 

조조는 그 가족을 마지막까지 보살핌 

 

 

태조가 진궁을 사로잡았을 때, 그의 노모와 딸을 살려야 할지 그렇지 않은지에 관해 물었다. 진궁이 대답했다, 

 

“제가 듣기로 효(孝)로써 천하를 다스리는 자는 남의 부모를 해치지 않는다 하고 사해(四海)에 인(仁)을 베푸는 자는 남의 제사를 폐하지 않는다 했습니다. 노모의 일은 공에게 달려 있을 뿐 제게 달린 일이 아닙니다.” 

 

태조가 명을 내려 그의 노모를 죽을 때까지 보살피게 하고 그의 딸을 시집보내 주었다. (18) 

 

 

 

(18) 어씨(魚氏-어환)의 [전략] – 진궁(陳宮)의 자는 공대(公臺)이고 동군(東郡) 사람이다. 강직(剛直) 열장(烈壯-장렬)하고 어려서 해내(海內)에 이름이 알려진 선비들과 모두 서로 연결(連結-교우)했다. 천하에 난이 일자 처음에는 태조를 따랐는데 그 뒤 스스로 의심을 품고 여포를 따랐다. 여포를 위해 획책(畫策-계책을 세움)했으나 여포는 매번 그 계책을 따르지 않았다. 하비에서 패하자 군사들이 여포와 진궁을 붙잡았는데, 태조가 그들 모두를 만나보고 평생에 관해 말하니 여포는 살려 달라는 말을 했다. 태조가 진궁에게 말했다, 

 

“공대, 경은 평소에 늘 스스로 지계(智計-지모)를 갖추어 남음이 있다고 자부했는데 이제 결국 이리 되었으니 어찌된 일이오?” 

 

진궁이 돌아보며 여포를 가리켜 말했다, 

 

“다만 이 사람이 내 말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이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만약 그가 내 말을 좇았다면 필시 사로잡히는 신세는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태조가 웃으며 말했다, 

 

“오늘 일은 무어라 하시겠소?” 

 

진궁이 말했다, 

 

“신하가 되어 충성하지 않고 자식이 되어 효도하지 않았으니 죽는 것이 그 운명입니다.” 

 

태조가 말했다, 

 

“경의 뜻이 그러하다면 경의 노모는 어찌하시려오?” 

 

진궁이 말했다, 

 

“제가 듣기로 장차 효로써 천하를 다스리려는 자는 남의 부모를 해치지 않는다 했으니, 노모의 존부(存否-생사)는 명공에게 달려 있습니다.” 

 

태조가 말했다, 

 

“경의 처자는 어떠하오?” 

 

진궁이 말했다, 

 

“제가 듣기로 장차 천하에 인정(仁政)을 베풀려는 자는 남의 제사를 끊지 않는다 했습니다. 처자의 존부 또한 명공에게 달려 있습니다.” 

 

태조가 다시 말하지 않았다. 진궁이 말했다, 

 

“청컨대 저를 밖으로 내보낸 뒤 죽여서 군법을 밝히십시오.” 

 

그리고는 내보내기를 재촉하니 제지할 수 없었다. 태조가 울면서 전송했으나 진궁은 다시 되돌아보지 않았다. 진궁이 죽은 뒤 태조가 그 일가를 대우함이 당초(진궁이 태조 휘하에 있을 때)보다 더 후했다. 

 

 

 

===========================================

 

 

 

결론

 

 

 

연의에 나온 여포는 실제 여포의 절반에도 못미치는 무력이다. 

 

 

 

참고로 여포는 문관으로 연의 여포는 실제 여포의 절반에도 못미치는 지력이다. 

 

 

 

여포가 망한 원인중 하나는 부하의 부인들을 따먹어서로 연의에 나온 여포는 실제 여포의 절반에도 못미치는 인성이다. 

5개의 댓글

19 일 전
0

마중적토 인중여포가 괜히있는 말이 아닌듯

0

조조는 그럼 유부녀 킬러 킬러인거냐

0
19 일 전

삼국지와 초한지의 무력본좌라 그런지 항우와 자주 비교되던데 항우쪽 자료읽다가 여포보면 참 인간적?으로 보임

0
19 일 전

위도우뻐커 조조 ㄷㄷ

0
무분별한 사용은 차단될 수 있습니다.
제목 글쓴이 추천 수 날짜
자기전에 웃긴거보고자 ㅋㅋㅋ 데바데 0 방금 전
외계인이 시간을 조작하고 있다는 증거 1 닼린이 1 1 분 전
말 잘듣는 고양이 SweetieFox 0 1 분 전
길에서 넘어졌다가 머리뼈 2/5를 제거한 사연 3 AARRRRRRENA 3 3 분 전
구멍에 꽂힌 도마밤 2 SweetieFox 3 3 분 전
잉글랜드 FA컵 결승... 전반 종료, 맨유 2 : 0 맨시티 4 더드 3 7 분 전
ㅆㄷ) 커뮤에는 여고생이 많다 2 부분과다른전체 2 8 분 전
23-24 Fa컵 결승 맨시티 vs 맨유 전반전 골 모음 6 6월9일이생일임 0 8 분 전
진짜 존나게 용했던 관상가 착한생각올바른생각 1 8 분 전
ai가 그린 T1 징크스 스킨 ㄷㄷ 4 멍멍몬 4 8 분 전
챗GPT야 그림 그려라 3 효조 1 9 분 전
자동자 도둑새끼 SweetieFox 0 10 분 전
친구가 나 때문에 인생망했대... 10 종근당홀딩스 10 11 분 전
근위병은 어떤 상황에서도 부동 4 SweetieFox 5 16 분 전
좆소기업 퇴사할때 나오는 마법의 단어.jpg 9 효조 8 17 분 전
스포) 영화 <헌트>의 반전 엔딩 명대사 🎬 6 아그토 5 18 분 전
고전 명작) 경상도 콜 상담원 2 루미쨩 1 23 분 전
고추장은 먹고싶은데 매운거 못 먹는 외국인들의 대책 17 착한생각올바른생각 12 27 분 전
먹방 GOAT '맛있는 녀석들' 근황 11 고드십 8 31 분 전
주운카드로 결제 8 붕따기 5 43 분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