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해서 실패한 진보 정당 20년사의 역설

2020년 총선에서 정의당은 269만7956표(9.67%)를 받았다. 역대 최다 득표였지만 비례 당선자는 5석에 그쳤다. 거대 양당이 비례대표만 내는 위성정당을 따로 만들면서, 지역구 의석과 별도로 비례대표 의석도 가져갔기 때문이다. 만약 양당의 위성정당이 없었다면 정의당은 비례대표 15석을 얻을 수 있었다. 위성정당 타격으로 5석으로 쪼그라든 비례대표에 청년 할당을 적용받은 류호정·장혜영 의원이 포함됐다. 두 사람에게 비난이 집중됐다. 특히 2020년 7월, 성추행 의혹이 일자 스스로 목숨을 끊은 박원순 서울시장 조문을 가지 않겠다고 두 사람이 밝히면서, ‘노동중심성을 잃고 페미니즘에 경도됐다’는 꼬리표가 4년 내내 정의당을 따라다녔다.

앞서의 관계자는 말했다. “페미니즘 논쟁이 전방위적으로 벌어질 때 진보 정당 내부가 게을렀다. 복잡해진 젠더 갈등에 대처하고 균형적 시각을 펼치기 위해 노력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노동중심성은 20년간 진보 정당이 반복해 강조해온 언어이지만, 정의당은 이중 삼중으로 갈라진 노동시장과 그곳에서의 요구, 거대 양당과 더 많은 정책 교류와 협상을 하는 노동조합과의 관계, 노동 내부의 갈등을 조정하거나 기업과 노동조합의 역할을 재정립하는 문제들에서 유능하지 못했다. 모든 평가를 통틀어 가장 근본적 문제는 ‘진화하지 않는 진보의 세계관’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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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대선에서 민주당이 ‘비정규직 정규직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등을 공약한 것을 기점으로 정의당과 민주당의 노동·복지 노선 차이가 줄어들었다. 대-중소기업 임금격차에 대해서는 두 당 모두 각 기업 노사를 넘어 산업별 노동조합과 고용주 단체가 교섭하도록 제도로 촉진하겠다고 공약한다. 5인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적용, 플랫폼 노동자를 우선 노동자로 추정하자는 내용도 같다. 적어도 노동·복지 정책에 큰 차이가 없다면, 민주당과 별도의 진보 정당이 남아 있어야 할까?

정의당 내에는 크게 ‘노동자 계급이 독자 정당을 유지해야 한다’는 급진적 사회운동 노선과, ‘국민의힘 계열 정당의 낙선을 위해 민주진보 진영이 연합해야 한다’는 민주대연합 노선이 긴장하며 공존해왔다. 이 중에서 후자는 이번에 민주당 위성정당에 참여하거나, 정의당에 남아 있으면서도 지역구에 불출마했다. 전자의 흐름이 녹색당과 연합한 지금의 정의당이라고 할 수 있지만, 시민들의 선택을 받지 못하면서 정당 이전의 사회운동 세력으로 되돌아간 셈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