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아시겠지만,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는 2022년에 선거유세를 하다가 총에 맞고 사망했습니다.

 상상조차 못했을 최후였지만, 역사의 기록의 측면에서는 다행히도, 아베는 이 이전에 요미우리 신문의 관계자들과 자신의 집권기간을 회고하는 연속 인터뷰를 마친 뒤였습니다. 

 다시 정계 복귀를 노리고 있었던 아베의 요청으로 이 인터뷰는 한동안 공개가 보류되었었지만, 유족의 동의에 힘입어 작년에 '아베 신조 회고록'이란 이름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지난달에는 한국어 번역본도 나왔습니다.

 정치인의 회고록이다보니 아무래도 자기 변호가 좀 많긴 하지만, 일본의 총리로서 가장 오랜 기간 재임했던 양반이다보니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좀 있네요. 

 그 중에서도 설명이 더 길게 필요할 일본 정치판 이야기 말고, 각국 정상들에 대한 인상이나 일화들을 좀 옮겨보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일 얘기밖에 안했습니다. 정상회담이나 회식자리에서 내가 농담을 해도 그는 곧바로 본론으로 되돌립니다. 잡담에도 응하지 않습니다. 변호사 출신인 만큼 일 이야기도 매우 세세합니다."

 "전화회담도 오바마의 경우에는 15~30분 정도로 짧았습니다."

 "솔직히 친구 같은 관계를 맺기엔 어려운 타입입니다. 하지만 국가 정상으로서 같이 일하는 데는 문제가 없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이런 유형의 정치 지도자는) 전혀 없었습니다."

 “(전화 회담을 하면) 트럼프는 아무렇게나 1시간 동안 얘기합니다. 길면 1시간 반도 되고요. 중간에 이쪽이 지칠 정도예요. 그리고 무엇을 이야기하느냐하면 본론은 전반 15분만에 끝나고 나머지 70~80%는 골프 이야기나 다른 나라 정상의 비판 등이었습니다." 

 "잡담이 끝없이 이어지다 보니 제가 본론으로 되돌리고 이야기를 정리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정상회담은 실무자들이 사전에 면밀한 조율을 해놓기 마련인데) 트럼프와의 회담은 대면이든 전화든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습니다. 그가 (사전 조율 해놓은) 의견이나 정보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이쪽 자료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차가워 보이지만 의외로 소탈하고 실제로는 그렇게 까다롭지 않습니다. 블랙조크도 자주 했습니다" 

 "(협상 중에) 옆에 있는 라브로프 외무상을 향해 "할 일이 없으니 위스키나 마시고 있지. 몸에 해로우니까 마실거면 보드카를 마셔라"라고 농담을 하더군요."

 시진핑 중국 주석

 “시진핑 주석은 취임 초 한동안은 중일정상회담을 열어도 사전에 준비한 대본만 읽었습니다.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취임한 첫 미중 정상회담에서도 시진핑은 고개를 숙여 원고를 읽고 있었다고 하는데, 트럼프가 “뭐야, 시진핑이라는 사람이 저 정도였냐”며 놀랐다고 합니다." 

 "2018년경부터는 원고를 읽지 않고 자유롭게 발언하기 시작했습니다. 중국 내에 자신의 권력 기반을 위협하는 존재는 더 이상 없다고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 아닐까요.”

 “시진핑 주석은 정상회담을 거듭할수록 점차 진심을 숨기지 않게 되었습니다. 언젠가 “내가 만약 미국에서 태어났다면 미국 공산당에 들어가지 않고, 민주당이나 공화당에 입당했을 것”이라고 말하더군요. 즉, 정치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는 정당은 의미가 없다는 것이죠”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
 

 “G7 정상회의에서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 문제를 논의하고 있을 때 한 정상이 “크림을 침략한 점을 놓고 러시아를 비난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반대했습니다. 존슨 총리는 “침략이라는 단어를 가볍게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 영국은 역사적으로 지금 세계의 4분의 1 국가를 침략했었다”고 말했습니다. 역시 역사 전공자다워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중국 군함에 독일 엔진이 탑재되는 것에 대해 묻자) 그녀는 "어, 그래?"라고 뒤에 대기한 관료를 돌아보며 묻더군요. 독일이 중국에 엔진을 공급하고 있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모른척 했을 뿐이에요. 메르켈은 각료 경험이 풍부하고 많은 국제회의나 협상을 해봤기 때문에 이 정도 이야기에는 동요하지 않았습니다. 수완가에요."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회담을 마치고) 헤어질때 가을 자민당 총재 선거에 나갈거냐고 묻더군요. 그리고 '이번 회담의 가장 큰 목적은 그걸 확인하는 것이다. 나가면 당신이 당연히 이긴다. 우리의 정보로는 그렇다'라고 말했습니다. 모사드의 정보인 것 같았습니다."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

 "2017년 1월 제가 필리핀을 방문했을 때는 자택 침실로 데려가 총기 컬렉션을 보여주고는 "좋아하는 총을 가져가라"는 말까지 들었습니다. 일본에서 총기의 개인 소유는 허용되지 않는다고 거절했지만 "됐으니까 가져가라"고 집요하게 권해서 힘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