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자기 얘기만 주구장창 하는 친구가 있다. 편의상 A라고 칭함

뭐가 그렇게 할말이 많은지 모르겠는데

들어보면 99% 자기는 잘못없는데 남이 자기 못살게 굴고 회사가 빡세다는 얘기들임

보통 누가 힘들다하면 

아이구 그새끼 개새끼네라든지 열받았겠네라던지 공감을 해주고 위로를 해주는데

얘는 얘기할 때마다 진절머리가 난다

한두달에 한번씩 보는데 만날 때마다 그 한두달동안 쌓인 이야기를 싸그리 챙겨옴

그 보따리 다 풀기 전까지는 성이 안 차는 거 같음

항상 자기 얘기 시작할 때는 이런 식임

"아 맞다 나 얼마전에~"

"그러고보니 우리 회사에~"

A가 얘기 시작하면 다른 친구들은 일단 눈빛 한번 쓱 주고받음 '또 시작됐네'

자기 힘든 얘기도 한두번이지 입만 열면 레퍼토리가 똑같음

재미라도 있으면 모르겠는데 재미도 없음

분명 다른 에피소드이긴 한데 똑같은 얘기 듣는 느낌

어떻게 만날때마다 네다섯개씩 다른 에피소드를 챙겨오는지... 저것도 재능이다

나는 힘들고 빡치는 일 있어도 하루이틀이면 잘 기억도 안 나는데 말이지

아니 남들은 다 힘들고 어려운 일 없어서 그런 얘기 안 하는 줄 아나

이거 얘기하면 재미있겠다 내지는 쟤가 관심이 있겠다 싶으면 얘기하는데

A는 그냥 밑도 끝도 없이 자기 얘기함

그렇다고 힘들어하는 놈한테 꼽주기도 애매하고

한번씩 농담조로 눈치는 줘봤음

'너는 만날 때마다 에피소드가 한트럭씩 나오냐? 사주에 마가 꼈냐'

했더니

'그러게 말이야. 그래서 그 차장이~'

자기 얘기 다시 시작하고

'재밌는 얘기 없냐? 빡치는 얘기말고 재밌는 얘기 좀 해봐라'

하면

'아 그러고보니 재밌는 일 있었다. 며칠전에 그 차장이 나한테~'

또 자기 얘기임.

재밌는가 들어보면 역시 재미없음.

아예 말하는 중간에 잘라보기도 했음

A 얘기 듣던 와중에 옆에 다른 친구들 빵터지길래 뭔데뭔데하면서 A 이야기 끊고 그쪽이랑 붙어서 이야기 막 했음

근데 왁자지껄 하던 게 수그러들자마자

'그래서 내가 말하던 게 뭐냐면~'

이 씨발

누가 뭔 얘기를 하든 자기 할 얘기만 계속 생각하고 있나 봄

이 새끼 제일 문제는 자기 얘기 끝나면 폰만 봄

다른 사람 말하는 거 별로 관심이 없음

친구들 낄낄거리면서 텐션업 하고 있어도 폰보고 있고

다른 친구 에피소드 귀담아듣고 있다 싶으면 자기 이야기거리 또 생각났기 때문임

친구 말 끝나자마자 바로 자기 얘기 시작함

무슨 얘긴가 들어보면 또 자기 힘들었던 얘기임

무한반복...

한번은 이 새끼 소개팅한다길래 단단히 주의를 줬음

무조건 여자분 말에 귀기울여라

공감이 최우선이다 리액션 잘 해줘라

니가 하고 싶은 말 많아도 참아라

니 얘기에 여자분은 아무 관심없다고 간주해라

여자분이 궁금해하는 거 있으면 답변만 해라

대화의 90%는 여자, 10%만 니가 말하는 거고 그마저도 리액션이 주가 돼야 한다

그러고나서 대망의 소개팅 날

다른 친구랑 미행했음

멀리 떨어진 테이블에서 몰래 봤는데

여자분은 고개 숙이고 커피만 마시고 있고

A 혼자 주구장창 떠들고 있더라...

이 새끼 이거 어떻게 좀 고쳐보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좋냐

애는 착함